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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55 1,192회 0건
“진짜 수입원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녀석은 우리뿐인 초소 안에 듣는 귀라도 살피겠다는 둥 내게로 반걸음 다가와 몸을 낮추고 목소리를 깔았다.

“남자들 생각 없이 돈 쓰게 만드는 건 다른 거 없습니다.”

“여자?”

“맞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겨우 그거였나 싶은 마음에 그의 말을 정리했다. “진짜 수입원은 매춘이었다?”

“아니지 말입니다!”

그가 강하게 부정했다.

“겨우 매춘하는 거라면 그렇게 많은 돈은 못 벌지 말입니다.”

겨우 매춘이라? 매춘도 장난으로 보일만한 것?

“여자랑 도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게 해주는 겁니다.”

나는 방금 전 그가 말했던 ‘바다나라’라는 슬롯머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슬롯머신과 매춘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녀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박하는 사람들, 돈 따러 오는 거 아닙니다.”

“그럼?”

“스릴 즐기러 오는 겁니다. 돈 따러 오는 사람은 중독 안 되는데, 스릴 즐기러 오는 사람들은 중독되기 쉽지 말입니다. 호기심에 한두 번 오는 손님보다는 중독자들 받는 게 더 짭짤합니다.”

일리 있었다.

“그런데 그 스릴이라는 게, 점점 더 자극적인 걸 던져줘야 지속되지 말입니다. 돈은 그저 액수만 불어갈 뿐이고, 말초신경은 자극 못합니다.”

“그래서.......”

“여자만큼 남자 자극하는 건 없지 말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걸고 도박한다는 건가? 설마하니 중독자의 부인이나 딸, 애인을 걸고 도박을 하냐고 묻자, 녀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희가 무슨 인신매매 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나는 괜히 머쓱한 기분에 가만히 듣기로 했다.

“단골손님이나 멤버십이 있는 손님들만 따로 게임하는 방이 있는데 말입니다, 어느 금액 이상의 잭팟이 터지면 여자를 주는 겁니다. 한 번 주는 걸로는 재미가 없으니 며칠 데리고 놀 수 있게. 사장이 안마도 가지고 있고, 모텔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자랑 장소는 있으니까 돈 대신 여자랑 방을 주는 겁니다.”

역시 여자였다.

“보통 팟이 터지면 ‘천’은 기본인데 말입니다, 손님한테 돈 주기 전에 딜을 먼저 하지 말입니다. 현금 받아갈지, 아니면 여자 데리고 며칠 있을지. 어차피 거기 손님들은 돈 보다는 쾌락을 찾는 사람들이라서 말입니다. 아가씨들도 그런 손님이 팁도 잘 주고, 한 사람만 상대하면 되니까 더 좋다고 그럽니다.”

“신천지군.”

나는 감탄했다.

“돈을 따도 여자한테 팁 주고 방에서 또 돈 쓰고, 서비스 시키고 그러면 오히려 더 개털 됩니다. 또 여자애들도 계속 뭐 시켜 달라 뭐 먹고 싶다 떼쓰지 말입니다. 다 사장이 남는 장사하는 겁니다.”

근무 시간이 끝나가고, 다음 근무자들이 인솔자와 함께 초소에 닿았다. 우린 형식적인 임무교대를 하고 인솔자를 따라 본부로 이동했다. 달이 밝은 날이라 우리가 내미는 발걸음 밑이 환했다. 구름도 한 점 없어 사계가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가까이로 고속도로의 빛줄기가 시원한 속도를 가르는 것이 보였고, 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초롱하게 발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이곳에서 시골공기 마시며 청춘을 깎아낼 때, 저 고속도로 건너의 불빛에서 타오를 또 다른 젊음들을 상상했다. 나도 이제 몇 달 후면 저 안에서 리비도를 발산할 수 있을까?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녀석은 내 쓴 입맛을 모르는지 다시금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내 흥미와는 다르게, 녀석은 말하는 재미를 느낀 듯 떠벌렸다.

“가장 많이 터진 건 3억인가, 4억인가도 봤는데, 그 손님도 돈은 1억만 받아가고 아가씨 셋을 아예 데리고 나갔지 말입니다. 무슨 기업 하는 양반이라고 했는데, 아가씨 중에 에이스 끼고 데려갔는데도 사장은 오히려 남는 장사 했다고, 저 손님은 어차피 다시 올 거고, 그때 (돈을) 더 많이 탈탈 털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딸 수 있는 확률이 있냐고 물었다.

녀석은 “절대 못 땁니다. 지금까지 오락실에 발 들여서 돈 따서 나가는 사람, 한 번도 못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두 번 장난삼아 올 때는 딸 수 있을지 몰라도, 중독 수준으로 드나들면 패가망신하는 길 뿐이라고 녀석은 말했다.

“모니터가 있습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몇 번째 방문하는 손님인지, 예전에 얼마를 따고 잃었는지 다 나옵니다. 몇 번 드나들지 않은 손님한테는 적당히 잃어주고 적당히 따기도 하는데, 중독이다 싶으면 휘몰아치는 겁니다.”

그러면서 녀석은 절대 그런 곳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탄과 탄창을 반납한 후 내무실로 들어가 활동복으로 환복한 후 세면실에 들렀다. 강원도의 가을은 시렸다. 깔깔이를 입었지만 그 안으로 찬 공기가 저며 들어왔다.

녀석과 나란히 씻으면서 그곳에 일하는 여자들에 대해 물어봤다.

“엄청 많습니다. 연예인 하려다가 안 된 애들도 있고, 다른 업소에서 일하던 프로들도 있고....... 요즘엔 평범한 대학생이나 회사원들도 아르바이트 한다고 시작했다가 이쪽에서 못 빠져 나가는 경우도 엄청 많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녀석은 조금 뜸을 들인 후 “사실.......”이라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들이랑 얼굴 여러 번 봤는데 말입니다, 중학교 동창 여자애를 본 적 있습니다.”

나는 놀라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우렸다.

“중학교 때 가출하고 그랬던 앤데, 화장하고 얼굴도 좀 달라지고 그랬는데, 딱 보이지 말입니다. 실장 형한테 물어보니까 제가 아는 애 맞았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어쩌면 김지승 상병님 아는 사람 중에서도 숨기면서 일하는 사람 있을 수 있지 말입니다.


5. 썅년


강 중위는 거의 매일 지현 씨 이야기를 했다. 무슨 통화를 하다 잠들었는지, 어떤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지난 주말엔 어디로 함께 놀러갔는지. 그러면서 그녀와 찍은 사진들을 디카에 담아 보여주었기에, 나는 단 한 번 만난 지현 씨를 언제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밤 강 중위가 가리킨 화장실로 향하는 손가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입술 끝에는 ‘지현 씨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남자친구가 잠든 사이 화장실에서 했다는 그 여자가 지현 씨입니까?’라는 물음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고여 있었지만, 차마 그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그저 강 중위가 부대원들과 음담패설을 할 때면 나 혼자 남 몰래 지현 씨의 얼굴과 그녀의 가슴, 유륜, 음모 그리고 그녀의 바디라인을 상상하다 마는 게 전부였다.

강 중위는 깔끔한 성격이었기에 짓궂은 농담은 가려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의리를 다지기 위한 자리라든가(왜 이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해야 의리가 다져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와의 술자리에서는 심심찮게 음담패설을 뱉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현 씨의 가슴이 정구공만큼이나 탱탱하다는 것. 나는 그 말 속에 담긴 함축적 의미들을 되짚어 봤다. 최소한 두 사람이 몸을 섞는다는 것 정도는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불침번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서 자위를 했다. 고여 있던 리비도는 허연 액체를 타고 뿜어져 나왔다. 스물세 살의 나는 매우 건강한 청년이었다.

해를 넘긴 겨울, 어느덧 나는 병장으로 진급했고, 축하의 의미로 외박을 받아 나왔다. 상병을 달고 있던 7개월 동안 나는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게 자세를 낮춰 군생활을 했다. 사고의 기억도 내 팔에 남은 관통상만큼이나 희미해져,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낮 동안에는 조금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는 꿈자리에서도 서너 번 죽은 김상택과 그와 함께 세상을 등진 전우들이 나왔을 뿐. 나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외상 하나 없이 군생활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었다.

강 중위는 모든 것을 극복한 듯 보였다. 그의 뒤통수에는 여전히 어지럽게 파흔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사고 전이나 후나 구별 없이 모두의 귀감을 받을 수 있는 남자로 살고 있었다.

외박을 받아 나온 날 역시 강 중위와 그의 BOQ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지현 씨와 연결된 것이었다.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중위 님 때문에 매일 만나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그는 오히려 더욱 흥을 부리며 지현 씨 이야기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막걸리를 두 주전자 정도 비웠을까, 강 중위는 벌개진 얼굴로 지현 씨의 가슴을 묘사했다. 술이 약한 그가 이미 자신의 주량을 넘긴 후였다. 어쩌면 나는 이런 것을 기대하고 그의 술잔에 제동을 안 걸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브래지어 때문에 잘 몰랐는데, 직접 만져보니까, 어휴~ 그 감촉이.......”

이러면서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모아 잡는 시늉을 했다. 허공을 더듬는 손바닥의 범위를 보며 지현 씨의 가슴이 어느 정도 크기일지 상상해보았다.

“좋으셨습니까?”

나 역시 껄껄 웃으며 그를 떠봤다.

“당연하지! 색깔도 얼마나 예뻤는데!”

“무슨 색이었습니까?”

“아주아주 예쁜, 핑크색.”

“부럽습니다.”

그는 기분 좋다는 듯 껄껄 웃으며 남은 막걸리 잔을 비워냈다. 그리고 이미 식어버린 파전을 한 점 집어 우물우물 씹어댔다. 그를 따라 나 역시 파전을 씹었다. 빠지지 않은 기름기가 입안에 고였다.

“너 잘 있냐고 물어보더라.”

“저 말입니까? 지현 씨가 제 이야기도 합니까?”

나는 반갑고도 놀란 마음에 물어봤다.

“그래, 인마. 춘천 오면 또 같이 보자고 그러는데....... 요즘은 바빠서 그런지 춘천까지 안 오네.”

강 중위는 주로 주말에 자신이 서울에 올라간다며 그녀의 근황을 전했다. 그녀가 다니는 전산회사 일이란 게, 주말 밤낮이 없는 거라 두 사람이 짬을 내어 데이트를 즐기기가 여간 빡빡한 게 아니라는 것. 그래도 강 중위가 부지런히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덕에 일주일에 이틀은 본다고 했다.

“이틀이라면.......”

“토요일에 올라가서 자고 오니까.”

“아.......”

강 중위는 너무 쉽게 그녀와의 동침 사실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의 안쪽은 어떤 느낌인지, 내가 상상만 하던 그녀의 음모와 바디라인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 그걸 안다면 화장실 안에서의 내 리비도는 조금 더 수월하게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실례를 저지르진 않았다. 다만 나는 상상만으로 그녀를 상상하며 수음하기를 십수 번 반복했다.

---

실제로 지현 씨를 만난 건 봄과 여름의 경계였다.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 조금씩 민간인 흉내(라고 해봐야 머리 기르는 정도지만)를 내던 말년이었다.

나는 전역을 한 달 정도 남겼을 때 마지막 남은 9박10일 정기휴가를 나갔고, 강 중위와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차피 전역이 가까웠기에 사회에 나와 있는 것에 큰 미련이 없었고, 지금 아니면 군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날이 없을 거란 생각에 그와 건대의 모처에서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당연히 지현 씨도 함께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건 밤 아홉 시를 살짝 넘긴 이후였다.

“미안해요. 퇴근이 늦어져서 일찍 나올 수가 없었어요.”

춘천에서 내가 봤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 몇 개월 사이의 시간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혹은 춘천과 서울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이 그녀에게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처음 봤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순수한 처녀의 얼굴과 되바라진 썅년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만 춘천에서 처음 봤을 때는 순수한 처녀의 얼굴이 첫인상이었다면, 서울서 본 두 번째 모습에는 되바라진 썅년의 얼굴이 먼저 다가왔다..

검은 색으로 스타일을 살려 배꼽을 살짝 드러낸 그녀의 탑과 다리라인을 드러내는 스키니 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살짝 웨이브 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이얀 목덜미가 야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짙게 찍어 바른 붉은색 립스틱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더욱 도회적인 인상으로 나타났다.

나는 “살이 좀 빠지신 거 같아요.”라며 에둘러 그녀의 변화를 말했다. 그녀는 무척 좋아하며 “일하다 보니 살이 자꾸 빠지네요.”라며 웃어보였다.

“이젠 민간인 같아 보여요.”

그녀는 되도 않는 농담으로 보답했다.

사실 닭갈비만은 먹고 싶지 않았는데.......(춘천에서 외박외출 나가면 항상 닭갈비를 먹었다) 그녀는 나를 보니 예전에 먹었던 닭갈비가 생각난다고 하였고, 우리가 만난 건대 앞은 널린 게 닭갈비집이었다. 닭갈비가 지글거릴 때 강 중위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지현 씨 술 되게 잘 먹어.”

강 중위는 닭갈비를 헤집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현 씨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그럼 중위님 보다 잘 드시겠습니다? 중위님 술 약하시니까.”

그는 껄껄 웃으며 “오늘은 왠지 술이 잘 받을 거 같은데?”라며 병뚜껑을 꺾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 먹고 남은 닭갈비 위에 밥을 볶을 무렵, 강 중위는 이미 취해 버렸다. 아마 그는 다음날 자신이 계산했다는 사실도, 자신이 앞장서 실내포차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도 가물가물 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강 중위가 제 정신을 붙들고 있길 바랐다. 그가 취한다면 지현 씨와의 자리가 일찍 끝나게 될 것이고, 그 둘은 나를 남겨두고 자리를 이동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실내포차에서도 지현 씨는 매 술잔을 넘기기 전 강 중위와 건배를 했고, 강 중위는 무식하리만치 씩씩하게 그 잔들을 비워냈다.

“술 정말 쎄네요.”

내가 지현 씨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지간한 남자들은 나 못 당해네요.”라며 호호 웃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그때 춘천에서는 아쉬웠어요. 막차 시간 때문에 중간에 끊고 일어나서.......”

“혹시 서울 가서 따로 한 잔 더 하신 거 아니에요?”

나의 농담에 그녀는 어떻게 알았냐고 반문했고 우린 한 바탕 웃었다. 강 중위는 이미 우리의 이야기에 동참하지 못할 만큼 취해 있었다. 우리가 웃으면 웃고, 우리가 이야기 하면 무언가 주정하듯 추임새를 넣을 뿐이었다.

포차에서 세 병째를 주문하자 슬슬 뒤처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술기운이 쌓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요즘 서울 막차가 몇 시죠?”

내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지 지현 씨는 뜬금없이 “두 분, 친하세요?”라고 물어왔다.

강 중위와 나?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강 중위는 나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지현 씨 이야기를 했는데 정작 지현 씨에게는 내 이야기를 안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 중위를 친형처럼 따르는 만큼 그 역시 나를 친동생처럼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귀는 여자에게 나와 얼마나 친한지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친형제 같이 친해요. 군대 말고 다른 곳에서 알게 되었다면 형제 보다 더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그럴 거 같아요, 두 사람.”이라며 술잔을 들었다. 나 역시 따라 들었다.

네 병째를 주문할 때는 막차시간이고 내일이고 없이 되는 대로 되어라, 라며 체념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강 중위는 화장실 이용이 잦았고,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면 한동안 돌아올 줄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는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면서 술을 토해낸다든가, 숙취해소 음료를 사먹으러 편의점에 들렀다고 한다.

“걱정인데요, 중위님. 저렇게 마시다가는 내일 속 다 버릴 텐데.”

걱정은 오히려 내가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걱정과는 무관하다는 듯 안주를 하나 더 시키자고 하였다. 이 여자 오늘 작정하고 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식 역시 강 중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엔 내 수음의 여신인 지현 씨가 타이트한 차림으로 앉아 있다는 것에 황홀했으나, 술잔이 닳도록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이면에 썅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내 의식이 혼탁해지고 있었다.

동그란 원형 스테인리스 테이블 건너편의 있는 지현 씨의 웃음이 조금씩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경인 실내포차의 풍경도 조금씩 검붉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남자들이 당해내지 못한다는 그녀의 술실력. 나는 어지간한 남자가 아닌데, 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으려 손끝에 신경을 집중했고, 말이 꼬이지 않도록 긴장하며 단어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눈이 풀리지 않도록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었다.

이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녀가 “괜찮아요? 많이 드셨나?”라고 손을 뻗어왔다. 여전히 그녀의 뒷배경은 검붉게 보였고, 그녀의 웃음도 조금 일그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이 내 얼굴에 닿으면서 모든 것들이 다림질이라도 한 듯 말끔하고 정돈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실내포차의 소음도 음소거 된 듯 사라졌고, 내 정신 역시 상처 한 번 입은 적 없는 어린아이처럼 말끔하게 돌아와 있었다. 무엇보다 내 얼굴-정확하게 말하자면 발개진 뺨-에 손등을 얹어 “볼이 따뜻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썅년의 모습 따위는 박박 씻어낸 듯, 깨끗하고 청순한 처녀의 미소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너무 많이 먹였나?, 아니에요 괜찮아요, 더 먹을 수 있겠어요?, 그럼요 아직 멀쩡해요, 미안해요 내가 사실 술을 많이 좋아해요, 저도에요 술 진짜 좋아해요, 잘 됐네요 그럼 우리 자리 옮겨서 더 먹을까요?, 아름다우십니다, 네? 뭐라고요, 그 의견이 아름답다고요 자리 옮겨 더 마시자는,

“뭐야, 둘이? 나 없는 사이에 썸이라도 탔나?”

그 놀라운 광경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강 중위가 자기 자리에 털썩 앉으며 농담을 뱉을 때 사라져버렸다. 마치 내가 봤던 그 광경이 커튼이었는데, 강 중위가 그 커튼을 확 걷어 버린 것처럼. 그리고 걷힌 커튼 뒤로 검붉은 실제의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다시 일그러진, 너무나 현실적인 풍경으로 돌아와 버렸다.

---

방을 잡아 술을 먹자는 건 강 중위의 의견이었다. 지현 씨는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으로 집에 돌아가겠다, 두 분이서 따로 들어가시라 사양했지만, 나를 더 잡아두려는 강 중위의 의지는 상당했다.

“너, 인마! 형이랑 한 잔 더 가야지!”라면서 그는 되도 않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의 실랑이는 “그냥 들어가서 술만 마셔요.”라는 지현 씨의 중재로 일단락 짓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긴 것이 ‘그냥 들어가서 술만 마시자’는 지현 씨의 중재는, ‘술 마시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는 것.

모텔 프런트에서의 계산도 강 중위의 몫이었다. 1차 닭갈비와 2차 실내포장마차, 그리고 편의점에서의 술도 모두 강 중위가 부담했으니 모텔비만은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으나, 강 중위는 “어허! 어허!”하며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혼숙이었기에 추가로 요금이 부과 되었다.

하지만 정작 강 중위가 술을 마시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그는 널찍한 방에 들어서자마자 팽개쳐진 빨래처럼 침대 위에 널브러졌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그의 팔다리를 정리해 가지런히 눕히면서 “지현 씨가 고생이 많겠어요. 이런 남자랑 만나느라.”라고 농담했다. 지현 씨는 이 광경이 재미나다는 듯 웃으며 “글쎄요, 나랑 마실 때는 이렇게까지 안 마시는데.”라며 우리가 사온 술과 씹을 거리를 테이블 위에 펼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맥주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과 종이컵 가득 술을 따라주며 살짝살짝 비치는 그녀의 목덜미 하얀빛에 내 의지와는 다르게 술잔을 들게 되었다.

방 안은 무거우리만치 고요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지현 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내 시선을 의식하고 짐짓 다른 곳을 보는 척하던 지현 씨도, 결국 집요한 내 시선에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모텔 특유의 짙고 노란 조명 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에서 풍겨져 나오는 처녀와 쌍년의 빛깔이 어지러이 섞여 잘 읽히지 않았다.

한참 서로를 들여다보다가 그녀가 먼저 배시시 웃으며 “이상해요.......”라며 종이컵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었다.

그 눈빛은 썅년의 되바라짐이었다.

불현 듯, 남자친구에게 술을 먹인 후 강 중위를 유혹했다는 어떤 썅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
[IN THE CLUB] 5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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