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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3 Players] e book 나왔어요. ㅎ 사이트 북큐브에서 검색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3 P]가 가장 마음에 들고 재밌었네요.
헌병대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내심 수상쩍었던 나는, 헌병대에서 연락이 오고 강 중위와 대면하게 되면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모두 끝나가도록 헌병대나 군검찰에서는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에 내가 먼저 강 중위의 행방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민간인 신분인 내가 군법재판의 동향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직접 실체를 캘 유일한 방법은 지현 씨에게 먼저 연락을 하여 추궁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강 중위에 대한 걱정과는 별개로 지현 씨는 절대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매번 오가는 처녀와 썅년의 이미지처럼, 그녀는 혀가 두 갈래로 나뉘어 두 가지 모순된 진실을 한 입에 담는 독사같이 느껴졌다. 그녀를 가까이 하다 혀 안쪽 어딘가 돋아난 독니에 물리면 그대로 아득한 고통에 잠식될 거 같아 두려웠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강 중위의 흔적을 뒤지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이따금 부대에 전화를 걸어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별의 부스러기라도 찾고자 했다.
“진짜 몰라요. 탈영 조치되고 수배된 다음부터는 강 중위님 이름은 꺼내지도 않는다고요.”
나중엔 김얼벌이 제발 좀 그만 전화하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까지, 나는 전화를 걸어댔다.
그 사이 수진이와 나는 완전히 끝을 보았다.
앞서 설명한대로 그녀는 군대 간 남자친구를 두고 나와 몸을 섞었고, 주변에서는 우리들이 지나간 자리 뒤로 온갖 억측을 주고받았다. 여우같은 그녀가 복학생인 나를 꾀어 진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사실은 남자친구와 안 좋게 헤어져 그에 대한 복수로 나를 만난다는 말도 돌았다. 더욱 심하게는 나는 그저 섹스파트너일 뿐이고(사실 이건 사실이다) 실제로 사귀는 남자는 학교 밖에 따로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진실은 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1박2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렇게 돌아온 날에는 갖은 핑계를 대며 관계를 피하곤 했다. 어쩌다 힘들게 관계를 맺을 때면 나는 그녀가 누군가의 손을 타고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렁그렁 맺혀있는 열매를 따먹는 달콤함에 빠져, 나는 계속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수진이와의 끝은 그녀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에 그녀는 매우 당황하였고, 어머니가 자취방에 오는 중이니 서둘러 나의 흔적을 지워줄 것은 요구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으며 그녀와 함께 하기로 했던 토요일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오신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닫히는 대문 사이로 그녀는 어머니가 하루 자고 갈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나를 찾았다. 어머니는 밤차를 타고 내려가셨단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달콤한 과즙을 머금은 그녀의 애교에 못 이기는 척 그녀를 안았다. 그녀에게선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엎드린 채 뒤로 나의 페니스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다그쳤다.
이 씨발년아, 이 개 같은 썅년이.
그녀는 내 욕설에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자지러지길 반복했다. 나는 이미 벌개진 그녀의 엉덩이를 더욱 치며 그녀를 다그쳤다.
이 씨발년이, 하루에 자지 두 개 받으니까 좋냐, 썅년아.
나는 그녀가 고개를 떨구지 못하도록 머리채를 더욱 내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녀의 턱이 하늘을 향하며 정신없는 신음을 담아냈다.
대답 안 하면 안 박아준다, 이년아.
그녀는 헉, 허윽, 거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흥분에 겨운 내 눈에는 암캐 한 마리가 내 페니스를 더욱 깊이 받으려 몸을 배배 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다.
오빠 꺼가 더 좋아, 남친 꺼보다 오빠 꺼가 더 좋아.
그녀가 남친이라는 말을 내 앞에서 담은 것 처음이었다. 페니스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짜릿함과는 다르게, 배덕한 아가씨가 내뿜는 썅년의 향기가 보라색으로 풍겨져 나왔다. 나는 그 보라색을 볼 수 있었다. 헐떡이는 썅년의 안쪽에는 애액이 울컥울컥 솟고 있었다.
안에 했더냐?
그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몇 번 했더냐?
그녀는 답하기를 주저했지만 나는 다그쳤다. 어렵게 두 번 했다는 말을 들었다.
좋았더냐?
그녀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너는, 정말 썅년이야, 썅년.
나는 그녀의 안쪽에 진한 남성을 토해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이가 휴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 민폐녀
해가 지나도 헌병대나 군검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2월 무렵 집으로 군사 우편이 하나 왔지만 단순히 예비군에 편입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나는 김얼벌이 병장을 달았다는 것을 듣고 시간이 꼬박꼬박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김얼벌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아직도 디제잉을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강 중위의 꿈은 별을 다는 거였는데,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3월, 나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 아침, 스물다섯이라는 숫자가 주는 ‘아직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어쩌면 지뢰 사고로 나의 나이는 영원히 스물셋에서 더해지지도 덜해지지도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귀에서 살아났고 여전히 젊음 위를 달리고 있었다. 사고로 죽은 세 명의 전우도, 팔꿈치 아래를 잃은 이등병 모두 뒤섞인 꿈만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맞아야 했다.
3학년이 되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도서관에서 보냈다. 또래의 학생들은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하거나 학점관리에 들어갔지만, 나는 되도록 그런 현실적인 것들에서 떨어져 있고 싶었다. 학교 서고에 있는 장서들 사이를 걸을 때면 책장들이 듬직한 성벽이 되어 청춘을 난도질하는 취업전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
복학 이후 쉬고 있던 아르바이트도 시작하였다. 정릉 쪽에 위치한 전통 찻집이었는데, 소란스럽지 않은 다실 분위기와 부담스럽지 않은 알바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에 네 번, 다섯 시간씩 티 테이블을 옮기거나 손님들의 말동무를 하는 일이었다. 페이도 합리적이었고 심심찮게 팁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60대 사장 내외가 나를 비롯한 또래의 알바생들을 매우 따뜻하게 대해주었는데, 알바가 끝나고 내외가 차려준 맑은 된장국에 멸치볶음으로 늦은 저녁을 먹을 때면 갓 지은 밥만큼이나 세상은 따뜻하고 그 구성원들은 찰기 있게 서로를 안아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수진이에게 질려 버렸던 것인지 소중한 나를 의미 없는 여자에게 함부로 내어주기 싫었다. 간혹 성욕이 올라올 때는 학교 운동장 트랙을 달리며 숨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고, 수음은 열흘에 한 번 정도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만 하였다.
술도 제한적인 경우에만 스스로의 통제에 따라 마셨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했기에 알맹이 없는 약속들은 잡지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려 학교 본관 앞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한 번의 건배에 입술을 적실만큼 나누어 마셨기에 술자리를 마치고 기숙사 침대에 누운 후에도 멀쩡한 정신으로 책을 보거나 과제를 할 수 있었다.
4월의 중간고사를 끝마친 후에는 꾸준히 모아놓은 팁으로 괜찮은 옷감으로 꼼꼼하게 박음질 된 그레이 재킷을 샀고, 5월의 어느 날엔 깔끔한 보트 스타일의 가죽 스니커즈를 샀다.
그렇게 봄을 보내고 나니 내 얼굴에선 제법 멋진 남자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이를 인생의 한 쿼터(100살 중 1/4)가 끝나며 찾아온 자연스런 변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변화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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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온 것은 5월 말이었다.(재학 중이기에 하루짜리였다) 예비군 훈련소는 불암산 근처에 있었는데, 서울 근교에 이런 규모의 군시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었다.
나는 마음 맞는 동기 셋과 종일 줄지어 다니며 시시껄렁한 농담(야삽으로 맷돼지 잡았다는 놈도 있었다)으로 시간을 보내며 퇴소 후 학교에서 술자리를 만들 궁리를 하였다.
영점사격을 위해 사선 뒤에서 대기하면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사고의 현장을 떠올렸다. 평온하게 나를 넘고 가던 살랑바람과 선명하고도 시원하게 보였던 북쪽의 풍광. 이 정도면 더할 것 없이 좋다 싶었던 그날의 날씨를 생각했다. 그런 좋은 날에 그런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 다시금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사고 이후 나와 강 중위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함께 전출하여 지내온 1년과 그 사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썅년인지 처녀인지 모를 지현 씨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언젠가 헤어지며 했던 말이 기억났다.
“왠지 지승 씨는 말이죠, 다음에 또 만날 거 같아요. 어디선가에서.”
그날이 하필이면 첫 예비군 훈련을 받은 날이 될 거라는 건, 다섯 시 퇴소와 함께 받아든 휴대전화기 전원을 켜기 전까진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부재중 통화에 남아 있던 이름은,
우지현!
그녀는 내가 전화기를 다시 받아들기 30분 전에 5분 간격으로 두 번의 부재중 통화를 남겼다. 그리고 확인하지 않은 문자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전화 안 받네요? 저 지현이에요. 혹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분명 강 중위의 일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자는 것이다, 라고 직감했다.
그녀는 왜 전화로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얼굴 보며 하자는 것일까? 내가 닿을 수 없었던 강 중위에 대한 일들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지현 씨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건, 두 사람이 아직 교제 중이라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이끌려 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녀와 약속한 대학로 어느 골목어귀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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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옷차림은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밝고 니트(neat)한 것이었다. 붉은색과 하얀색 계통의 작은 격자 체크무늬 남방 차림이었는데, 두 어 개의 단추만 잠긴 안쪽으로는 회색 V넥 티셔츠가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긴 다리 윤곽을 드러내는 흰색 스키니 진이 인상적이었다. 대학로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녀는 눈에 띄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머리 위로 팔을 휘휘 저으며 반겼다. ‘우리가 친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환대였다. 엉거주춤 그녀의 곁으로 가니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군복 입은 거 오랜만에 보네요?”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녀가 나의 군복차림을 본 건, 사실, 처음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강 중위가 건네 준 사복을 입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났을 때 나는 휴가 중이었다. 가장 최근에 봤던 네 번째 만남에서 나는 민간인이었다.
그녀는 왜 내 군복차림을 보고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넨 것일까? 아마도 김상택 때문일 것이다. 내 팔에 오바로크 쳐진 부대마크를 보며 그녀는 면회소에서 기다리던 김상택의 모습을 찾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생각에 나는 씁쓸한 기분과 함께 ‘왜 이렇게 나를 적극적으로 반기나’싶은 생각에 의아했다.
나는 간단한 인사만 먼지 불어 날리듯 훅 재낀 후 강 중위의 안부부터 물었다. 사실 강 중위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면 그녀를 만나러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위님은요?”
그녀는 여전히 실실 웃으며 “잘 있죠~ 오늘도 얼굴 보고 왔는데요!”라고, 필요 이상으로 쾌활한 말투로 “오랜만에 본 건데 나는 안 궁금했어요?”라며 자신의 얼굴을 내 턱 밑까지 내밀며 물었다. 나는 한 걸음 반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정말 중위님 헌병대 간 거 맞아요? 아무런 연락도 안 왔다고요, 8개월 동안.”
그러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해맑기만 한 목소리였다.
“8개월! 8개월 동안 어쩜 한 번 연락도 안 해요?”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였다.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홍조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처음엔 색조 화장을 화사하게 한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뜸 내 앞에 차렷 자세로 서서 어설프게 “충성!”이라고 경례하는 그녀를 보며 알게 되었다.
술 마셨구나. 그리고 맛이 갔구나.
술 마셨냐고 물어보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던 그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애교 섞인 말투로 답하더니, 이내 “사실은 오늘 좀 마시고 싶어서 마셨어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저 웃음만 보면 정말 괜찮은 여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누구와 마셨는지, 얼마나 마셨는지 묻자 이번에도 애교 섞인 목소리로 혼자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 두 병 정도 마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파들이 교차하는 대학로 위에서 그녀의 횡설수설한 말들을 받아주니 괜히 내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래도 일단 강 중위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길 위에 서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라도 들어가서 차를 들자 하니 그녀는 룸식 주점에 가자며 자신의 두 팔을 내 왼쪽 팔에 두르며 나를 끌었다.
“잠깐만요, 지현 씨.”
나는 거의 털어내다시피 그녀의 팔짱을 고사했다.
“지현 씨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우리 어디 조용한 데 들어가서 이야기부터 해요.”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의 알맹이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룸식 주점이 가장 조용해요.”라고 대꾸했다.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녀가 팔꿈치로 쿡쿡 두들겨 깐 소주를 받으며 생각했다. 어차피 내 여자도 아닌데 취하건 말건 나는 상관없다, 나는 강 중위의 소식만 듣고 일어서겠다, 라고.
그녀는 요란하게 건배를 청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따라 지구가 빨리 도나 봐요.”
뭔 소린가 싶어서 뒷말을 기다리니 “오늘따라 어지러워요.”라며, 지구가 빨리 도는 것이 내 탓인 마냥 나를 쳐다봤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피식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어! 웃었다! 웃었다!”
어이없어 새어나온 미소에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지승 씨는 나 안 좋아 하잖아요. 근데 웃었네?”
그러면서 그녀는 헤헷 소리 내며 따라 웃었다.
나는 다시 정색하며 물었다.
“중위님, 그러니까 현택이 형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사실, 내일쯤 판결이 나올 거예요.”라고 말하며 다리를 바꿔 꼬았다. 내가 말없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자 그녀는 “정확히 언제 판결날 지는 나도 모르는데, 아마도 전역하게 되겠죠.”라고 답했다.
“전역이요?!”
나는 놀라 물었다. 사실 강 중위가 전역한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신장 하나를 잃은 군인이 어떻게 계속 군복을 입을 수 있겠는가? 만약 장기까지 팔았다는 지현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불명예 전역은 예고된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그 사고만 안 쳤어도 대통령 표창도 받고, 진급도 하고, 누구보다 탄탄한 군이력을 쌓을 수 있던 그였기에.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왜 그런 일이 벌이지고 8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판결이 나는지, 왜 강 중위는 나를 직접 찾지 않는 것인지, 정말 강 중위는 잘 있는 것인지, 등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강 중위의 아버지가 군대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사건을 수습하느라 기한이 오래 걸렸으며, 강 중위의 아버지와 많이 친해졌는데 자신을 딸처럼 예뻐해주시고 조심스럽게 대해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 역시 천상 괜찮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썅년인지도 모를 이 여자가 최소한 강 중위를 버릴 거 같지는 않았다.
가만 보니 그녀의 외모가 또 달라진 것 같았다. 이마가 좀 더 도톰해진 느낌이었고, 이 때문에 상당히 앳되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턱이 좀 더 짧아진 느낌이었다. 턱선이 갸름해진 것은 아마도 그녀가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으로 떨어져 나간 살 때문이라 생각했다. 여하튼 볼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고 그 이미지도 바뀌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동안 나에게 연락이 없었던 이유가 무어냐 묻자, 기본적으로 구속되어 있던 강 중위는 가족과 변호인 외에는 접견 및 연락이 어려웠고, 군검찰 쪽에서는 굳이 내 증언이 필요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 중위는 건강하냐는 질문에는 이젠 육체적, 정신적 외상은 거의 극복했으며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예전 기력을 회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승 씨랑 빨리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녀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듯 말했다.
“전역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중위님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홀로 잔을 들어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치사해요! 혼자 먹는 게 어딨어요?”라며 한 잔 더 받고 자신과 같이 마시자고 하였다.
강 중위에 대한 걱정이 풀리니 그동안 그녀에게 대해 곤두서 있었던 경계도 동시에 해제되는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 잔을 부딪히고 넘긴 술잔이 또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중위님은 언제쯤 나올 수 있는 거예요?”
“당장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종일 훈련을 받다 빈속으로 넘긴 술 때문이었을까, 그녀와 한 병을 나눠 비우자(사실 내가 조금 더 많이 마셨다) 때 이른 취기가 올라왔다. 물론 전작이 있던 그녀는 나 보다 더 빨리 흐트러졌다. 다리 꼰 자세로 앉아 있던 그녀는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이는 자세가 불편해서라기보다는 방금 자세를 바꾼 것을 잊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것으로 보였다. 자세를 고칠 때마다 조금씩 벌어지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눈이 갔다.
지현 씨의 잔은 계속 비워져 나갔다.
그녀가 확실히 취했구나 싶었던 것은 그녀가 꺼낸 의외의 이름 때문이었다.
“김상택이랑 강 중위, 그리고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궁금하죠?”
나는 놀랐다.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대놓고 물어볼 만큼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능청 떨자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집게손가락을 까딱까닥 흔들며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도 사연이 많~~~은 여자랍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혼자 술잔을 들었다. 나는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거 같다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끄떡없다며 그대로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떨어진 젓가락을 주우려다가 컵을 엎질렀다.
“아, 미안 미안~ 나 좀 많이 마시긴 했나봐.”
많이 마신 정도가 아니라 이 여자를 어떻게 집에 데려다 주나 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잔을 뺏어 들었고 그녀는 아직 괜찮다며 술을 더 달라고 하였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덕분에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애교를.
힝, 이라고 몇 번을 콧방귀를 뀌던 그녀는 “나빴어! 너 정말 나빠!”라며 삐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투정을 부리더니 이내 히죽거리며 실없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녀도 이내 체념한 듯 “이제 나가자. 나 그 전에 화장실 다녀올게.”라며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 언제부터 반말한 거지?
그녀가 꽤나 오래 안 돌아온다는 생각이 든 찰나,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알바생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에게 좀 나와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일행분이 화장실 안에서 잠든 거 같은데....... 다른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리셔서요.”라는 게 아닌가?
최악이었다. 여자화장실 앞에는 두 어 명의 젊은 여자들이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욱 최악인건 알바생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연 문 뒤로, 변기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잠들어 있는 지현 씨가, 자신의 토사물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썅년인 줄만 알았는데 민폐녀였다. 민폐, 민폐, 민폐. 이런 민폐도 없었다.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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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CLUB] 1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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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내사정기 - 첫경험 편] 내일 업댓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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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에 내가 먼저 강 중위의 행방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민간인 신분인 내가 군법재판의 동향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직접 실체를 캘 유일한 방법은 지현 씨에게 먼저 연락을 하여 추궁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강 중위에 대한 걱정과는 별개로 지현 씨는 절대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매번 오가는 처녀와 썅년의 이미지처럼, 그녀는 혀가 두 갈래로 나뉘어 두 가지 모순된 진실을 한 입에 담는 독사같이 느껴졌다. 그녀를 가까이 하다 혀 안쪽 어딘가 돋아난 독니에 물리면 그대로 아득한 고통에 잠식될 거 같아 두려웠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강 중위의 흔적을 뒤지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이따금 부대에 전화를 걸어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별의 부스러기라도 찾고자 했다.
“진짜 몰라요. 탈영 조치되고 수배된 다음부터는 강 중위님 이름은 꺼내지도 않는다고요.”
나중엔 김얼벌이 제발 좀 그만 전화하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까지, 나는 전화를 걸어댔다.
그 사이 수진이와 나는 완전히 끝을 보았다.
앞서 설명한대로 그녀는 군대 간 남자친구를 두고 나와 몸을 섞었고, 주변에서는 우리들이 지나간 자리 뒤로 온갖 억측을 주고받았다. 여우같은 그녀가 복학생인 나를 꾀어 진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사실은 남자친구와 안 좋게 헤어져 그에 대한 복수로 나를 만난다는 말도 돌았다. 더욱 심하게는 나는 그저 섹스파트너일 뿐이고(사실 이건 사실이다) 실제로 사귀는 남자는 학교 밖에 따로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진실은 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1박2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렇게 돌아온 날에는 갖은 핑계를 대며 관계를 피하곤 했다. 어쩌다 힘들게 관계를 맺을 때면 나는 그녀가 누군가의 손을 타고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렁그렁 맺혀있는 열매를 따먹는 달콤함에 빠져, 나는 계속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수진이와의 끝은 그녀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에 그녀는 매우 당황하였고, 어머니가 자취방에 오는 중이니 서둘러 나의 흔적을 지워줄 것은 요구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으며 그녀와 함께 하기로 했던 토요일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오신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닫히는 대문 사이로 그녀는 어머니가 하루 자고 갈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나를 찾았다. 어머니는 밤차를 타고 내려가셨단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달콤한 과즙을 머금은 그녀의 애교에 못 이기는 척 그녀를 안았다. 그녀에게선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엎드린 채 뒤로 나의 페니스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다그쳤다.
이 씨발년아, 이 개 같은 썅년이.
그녀는 내 욕설에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자지러지길 반복했다. 나는 이미 벌개진 그녀의 엉덩이를 더욱 치며 그녀를 다그쳤다.
이 씨발년이, 하루에 자지 두 개 받으니까 좋냐, 썅년아.
나는 그녀가 고개를 떨구지 못하도록 머리채를 더욱 내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녀의 턱이 하늘을 향하며 정신없는 신음을 담아냈다.
대답 안 하면 안 박아준다, 이년아.
그녀는 헉, 허윽, 거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흥분에 겨운 내 눈에는 암캐 한 마리가 내 페니스를 더욱 깊이 받으려 몸을 배배 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다.
오빠 꺼가 더 좋아, 남친 꺼보다 오빠 꺼가 더 좋아.
그녀가 남친이라는 말을 내 앞에서 담은 것 처음이었다. 페니스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짜릿함과는 다르게, 배덕한 아가씨가 내뿜는 썅년의 향기가 보라색으로 풍겨져 나왔다. 나는 그 보라색을 볼 수 있었다. 헐떡이는 썅년의 안쪽에는 애액이 울컥울컥 솟고 있었다.
안에 했더냐?
그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몇 번 했더냐?
그녀는 답하기를 주저했지만 나는 다그쳤다. 어렵게 두 번 했다는 말을 들었다.
좋았더냐?
그녀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너는, 정말 썅년이야, 썅년.
나는 그녀의 안쪽에 진한 남성을 토해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이가 휴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 민폐녀
해가 지나도 헌병대나 군검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2월 무렵 집으로 군사 우편이 하나 왔지만 단순히 예비군에 편입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나는 김얼벌이 병장을 달았다는 것을 듣고 시간이 꼬박꼬박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김얼벌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아직도 디제잉을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강 중위의 꿈은 별을 다는 거였는데,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3월, 나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 아침, 스물다섯이라는 숫자가 주는 ‘아직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어쩌면 지뢰 사고로 나의 나이는 영원히 스물셋에서 더해지지도 덜해지지도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귀에서 살아났고 여전히 젊음 위를 달리고 있었다. 사고로 죽은 세 명의 전우도, 팔꿈치 아래를 잃은 이등병 모두 뒤섞인 꿈만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맞아야 했다.
3학년이 되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도서관에서 보냈다. 또래의 학생들은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하거나 학점관리에 들어갔지만, 나는 되도록 그런 현실적인 것들에서 떨어져 있고 싶었다. 학교 서고에 있는 장서들 사이를 걸을 때면 책장들이 듬직한 성벽이 되어 청춘을 난도질하는 취업전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
복학 이후 쉬고 있던 아르바이트도 시작하였다. 정릉 쪽에 위치한 전통 찻집이었는데, 소란스럽지 않은 다실 분위기와 부담스럽지 않은 알바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에 네 번, 다섯 시간씩 티 테이블을 옮기거나 손님들의 말동무를 하는 일이었다. 페이도 합리적이었고 심심찮게 팁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60대 사장 내외가 나를 비롯한 또래의 알바생들을 매우 따뜻하게 대해주었는데, 알바가 끝나고 내외가 차려준 맑은 된장국에 멸치볶음으로 늦은 저녁을 먹을 때면 갓 지은 밥만큼이나 세상은 따뜻하고 그 구성원들은 찰기 있게 서로를 안아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수진이에게 질려 버렸던 것인지 소중한 나를 의미 없는 여자에게 함부로 내어주기 싫었다. 간혹 성욕이 올라올 때는 학교 운동장 트랙을 달리며 숨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고, 수음은 열흘에 한 번 정도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만 하였다.
술도 제한적인 경우에만 스스로의 통제에 따라 마셨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했기에 알맹이 없는 약속들은 잡지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려 학교 본관 앞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한 번의 건배에 입술을 적실만큼 나누어 마셨기에 술자리를 마치고 기숙사 침대에 누운 후에도 멀쩡한 정신으로 책을 보거나 과제를 할 수 있었다.
4월의 중간고사를 끝마친 후에는 꾸준히 모아놓은 팁으로 괜찮은 옷감으로 꼼꼼하게 박음질 된 그레이 재킷을 샀고, 5월의 어느 날엔 깔끔한 보트 스타일의 가죽 스니커즈를 샀다.
그렇게 봄을 보내고 나니 내 얼굴에선 제법 멋진 남자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이를 인생의 한 쿼터(100살 중 1/4)가 끝나며 찾아온 자연스런 변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변화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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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온 것은 5월 말이었다.(재학 중이기에 하루짜리였다) 예비군 훈련소는 불암산 근처에 있었는데, 서울 근교에 이런 규모의 군시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었다.
나는 마음 맞는 동기 셋과 종일 줄지어 다니며 시시껄렁한 농담(야삽으로 맷돼지 잡았다는 놈도 있었다)으로 시간을 보내며 퇴소 후 학교에서 술자리를 만들 궁리를 하였다.
영점사격을 위해 사선 뒤에서 대기하면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사고의 현장을 떠올렸다. 평온하게 나를 넘고 가던 살랑바람과 선명하고도 시원하게 보였던 북쪽의 풍광. 이 정도면 더할 것 없이 좋다 싶었던 그날의 날씨를 생각했다. 그런 좋은 날에 그런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 다시금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사고 이후 나와 강 중위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함께 전출하여 지내온 1년과 그 사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썅년인지 처녀인지 모를 지현 씨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언젠가 헤어지며 했던 말이 기억났다.
“왠지 지승 씨는 말이죠, 다음에 또 만날 거 같아요. 어디선가에서.”
그날이 하필이면 첫 예비군 훈련을 받은 날이 될 거라는 건, 다섯 시 퇴소와 함께 받아든 휴대전화기 전원을 켜기 전까진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부재중 통화에 남아 있던 이름은,
우지현!
그녀는 내가 전화기를 다시 받아들기 30분 전에 5분 간격으로 두 번의 부재중 통화를 남겼다. 그리고 확인하지 않은 문자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전화 안 받네요? 저 지현이에요. 혹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분명 강 중위의 일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자는 것이다, 라고 직감했다.
그녀는 왜 전화로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얼굴 보며 하자는 것일까? 내가 닿을 수 없었던 강 중위에 대한 일들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지현 씨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건, 두 사람이 아직 교제 중이라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이끌려 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녀와 약속한 대학로 어느 골목어귀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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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옷차림은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밝고 니트(neat)한 것이었다. 붉은색과 하얀색 계통의 작은 격자 체크무늬 남방 차림이었는데, 두 어 개의 단추만 잠긴 안쪽으로는 회색 V넥 티셔츠가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긴 다리 윤곽을 드러내는 흰색 스키니 진이 인상적이었다. 대학로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녀는 눈에 띄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머리 위로 팔을 휘휘 저으며 반겼다. ‘우리가 친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환대였다. 엉거주춤 그녀의 곁으로 가니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군복 입은 거 오랜만에 보네요?”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녀가 나의 군복차림을 본 건, 사실, 처음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강 중위가 건네 준 사복을 입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났을 때 나는 휴가 중이었다. 가장 최근에 봤던 네 번째 만남에서 나는 민간인이었다.
그녀는 왜 내 군복차림을 보고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넨 것일까? 아마도 김상택 때문일 것이다. 내 팔에 오바로크 쳐진 부대마크를 보며 그녀는 면회소에서 기다리던 김상택의 모습을 찾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생각에 나는 씁쓸한 기분과 함께 ‘왜 이렇게 나를 적극적으로 반기나’싶은 생각에 의아했다.
나는 간단한 인사만 먼지 불어 날리듯 훅 재낀 후 강 중위의 안부부터 물었다. 사실 강 중위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면 그녀를 만나러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위님은요?”
그녀는 여전히 실실 웃으며 “잘 있죠~ 오늘도 얼굴 보고 왔는데요!”라고, 필요 이상으로 쾌활한 말투로 “오랜만에 본 건데 나는 안 궁금했어요?”라며 자신의 얼굴을 내 턱 밑까지 내밀며 물었다. 나는 한 걸음 반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정말 중위님 헌병대 간 거 맞아요? 아무런 연락도 안 왔다고요, 8개월 동안.”
그러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해맑기만 한 목소리였다.
“8개월! 8개월 동안 어쩜 한 번 연락도 안 해요?”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였다.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홍조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처음엔 색조 화장을 화사하게 한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뜸 내 앞에 차렷 자세로 서서 어설프게 “충성!”이라고 경례하는 그녀를 보며 알게 되었다.
술 마셨구나. 그리고 맛이 갔구나.
술 마셨냐고 물어보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던 그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애교 섞인 말투로 답하더니, 이내 “사실은 오늘 좀 마시고 싶어서 마셨어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저 웃음만 보면 정말 괜찮은 여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누구와 마셨는지, 얼마나 마셨는지 묻자 이번에도 애교 섞인 목소리로 혼자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 두 병 정도 마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파들이 교차하는 대학로 위에서 그녀의 횡설수설한 말들을 받아주니 괜히 내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래도 일단 강 중위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길 위에 서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라도 들어가서 차를 들자 하니 그녀는 룸식 주점에 가자며 자신의 두 팔을 내 왼쪽 팔에 두르며 나를 끌었다.
“잠깐만요, 지현 씨.”
나는 거의 털어내다시피 그녀의 팔짱을 고사했다.
“지현 씨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우리 어디 조용한 데 들어가서 이야기부터 해요.”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의 알맹이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룸식 주점이 가장 조용해요.”라고 대꾸했다.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녀가 팔꿈치로 쿡쿡 두들겨 깐 소주를 받으며 생각했다. 어차피 내 여자도 아닌데 취하건 말건 나는 상관없다, 나는 강 중위의 소식만 듣고 일어서겠다, 라고.
그녀는 요란하게 건배를 청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따라 지구가 빨리 도나 봐요.”
뭔 소린가 싶어서 뒷말을 기다리니 “오늘따라 어지러워요.”라며, 지구가 빨리 도는 것이 내 탓인 마냥 나를 쳐다봤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피식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어! 웃었다! 웃었다!”
어이없어 새어나온 미소에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지승 씨는 나 안 좋아 하잖아요. 근데 웃었네?”
그러면서 그녀는 헤헷 소리 내며 따라 웃었다.
나는 다시 정색하며 물었다.
“중위님, 그러니까 현택이 형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사실, 내일쯤 판결이 나올 거예요.”라고 말하며 다리를 바꿔 꼬았다. 내가 말없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자 그녀는 “정확히 언제 판결날 지는 나도 모르는데, 아마도 전역하게 되겠죠.”라고 답했다.
“전역이요?!”
나는 놀라 물었다. 사실 강 중위가 전역한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신장 하나를 잃은 군인이 어떻게 계속 군복을 입을 수 있겠는가? 만약 장기까지 팔았다는 지현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불명예 전역은 예고된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그 사고만 안 쳤어도 대통령 표창도 받고, 진급도 하고, 누구보다 탄탄한 군이력을 쌓을 수 있던 그였기에.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왜 그런 일이 벌이지고 8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판결이 나는지, 왜 강 중위는 나를 직접 찾지 않는 것인지, 정말 강 중위는 잘 있는 것인지, 등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강 중위의 아버지가 군대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사건을 수습하느라 기한이 오래 걸렸으며, 강 중위의 아버지와 많이 친해졌는데 자신을 딸처럼 예뻐해주시고 조심스럽게 대해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 역시 천상 괜찮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썅년인지도 모를 이 여자가 최소한 강 중위를 버릴 거 같지는 않았다.
가만 보니 그녀의 외모가 또 달라진 것 같았다. 이마가 좀 더 도톰해진 느낌이었고, 이 때문에 상당히 앳되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턱이 좀 더 짧아진 느낌이었다. 턱선이 갸름해진 것은 아마도 그녀가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으로 떨어져 나간 살 때문이라 생각했다. 여하튼 볼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고 그 이미지도 바뀌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동안 나에게 연락이 없었던 이유가 무어냐 묻자, 기본적으로 구속되어 있던 강 중위는 가족과 변호인 외에는 접견 및 연락이 어려웠고, 군검찰 쪽에서는 굳이 내 증언이 필요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 중위는 건강하냐는 질문에는 이젠 육체적, 정신적 외상은 거의 극복했으며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예전 기력을 회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승 씨랑 빨리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녀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듯 말했다.
“전역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중위님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홀로 잔을 들어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치사해요! 혼자 먹는 게 어딨어요?”라며 한 잔 더 받고 자신과 같이 마시자고 하였다.
강 중위에 대한 걱정이 풀리니 그동안 그녀에게 대해 곤두서 있었던 경계도 동시에 해제되는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 잔을 부딪히고 넘긴 술잔이 또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중위님은 언제쯤 나올 수 있는 거예요?”
“당장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종일 훈련을 받다 빈속으로 넘긴 술 때문이었을까, 그녀와 한 병을 나눠 비우자(사실 내가 조금 더 많이 마셨다) 때 이른 취기가 올라왔다. 물론 전작이 있던 그녀는 나 보다 더 빨리 흐트러졌다. 다리 꼰 자세로 앉아 있던 그녀는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이는 자세가 불편해서라기보다는 방금 자세를 바꾼 것을 잊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것으로 보였다. 자세를 고칠 때마다 조금씩 벌어지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눈이 갔다.
지현 씨의 잔은 계속 비워져 나갔다.
그녀가 확실히 취했구나 싶었던 것은 그녀가 꺼낸 의외의 이름 때문이었다.
“김상택이랑 강 중위, 그리고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궁금하죠?”
나는 놀랐다.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대놓고 물어볼 만큼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능청 떨자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집게손가락을 까딱까닥 흔들며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도 사연이 많~~~은 여자랍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혼자 술잔을 들었다. 나는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거 같다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끄떡없다며 그대로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떨어진 젓가락을 주우려다가 컵을 엎질렀다.
“아, 미안 미안~ 나 좀 많이 마시긴 했나봐.”
많이 마신 정도가 아니라 이 여자를 어떻게 집에 데려다 주나 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잔을 뺏어 들었고 그녀는 아직 괜찮다며 술을 더 달라고 하였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덕분에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애교를.
힝, 이라고 몇 번을 콧방귀를 뀌던 그녀는 “나빴어! 너 정말 나빠!”라며 삐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투정을 부리더니 이내 히죽거리며 실없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녀도 이내 체념한 듯 “이제 나가자. 나 그 전에 화장실 다녀올게.”라며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 언제부터 반말한 거지?
그녀가 꽤나 오래 안 돌아온다는 생각이 든 찰나,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알바생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에게 좀 나와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일행분이 화장실 안에서 잠든 거 같은데....... 다른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리셔서요.”라는 게 아닌가?
최악이었다. 여자화장실 앞에는 두 어 명의 젊은 여자들이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욱 최악인건 알바생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연 문 뒤로, 변기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잠들어 있는 지현 씨가, 자신의 토사물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썅년인 줄만 알았는데 민폐녀였다. 민폐, 민폐, 민폐. 이런 민폐도 없었다.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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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CLUB] 1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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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내사정기 - 첫경험 편] 내일 업댓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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