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은 집으로 돌아와보니 벤츠가 서 있었다. 선우가 온 모양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보니 선우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별로 깨우고 싶지 않아 쇼핑백을 희주의 방에 두고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지나자 선우가 방에서 하품을 하고 나왔다.
-언제 왔어?
-아까 왔어요.
-미국에 갔다왔어. 그동안 별일 없었지?
-네 없었어요.
채경은 창배에 대해서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괜히 이야기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선우는 평소에는 조용조용한 성격이지만 한번 화를 내면 불같이 내곤 하였다. 사업을 하면서 검은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도 교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만 조용히 하면 모든게 넘어갈거라고 생각하고 입다물고 있었다.
-근데 물이 하나도 없어.
냉장고를 열어보곤 선우가 말했다.
-물은 박스채로 배달시켜 먹어요. 너무 무거워서..
-지금 없잖아. 니가 나가서 한통만 사가지고 와라. 너도 필요한 거 사고
선우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석장을 꺼내주며 말했다. 채경이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선우가 다시 불러세웠다.
-너 요새 내 말 안듣는다.
-뭐가요?
-누가 브라랑 팬티 다 입고 있으래? 이러면 재미 없어...
채경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선우가 용납하지 않았다. 선우는 채경의 방 의자에 걸려있는 원피스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만 입고 가서 사와.
-이 옷은 집에서만 입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게 어딨어? 옷이면 다 옷이지. 빨리 다 벗고 이 옷만 입고 가서 사와.
채경은 선우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어 그 자리에서 옷을 다 벗었다. 그리고 원피스를 입었다. 엉덩이와 보지를 아슬아슬 하게 가리는 길이도 문제였지만 유두 위로 유방의 반이 드러나는 깊게 파인 넥 부분도 문제였다.
-꼭지는 너무 드러난단 말이에요. 가디건이라도 하나 걸칠 수 있게 해주세요.
-하.. .이것참.. 그래. 그건 봐줄게.
채경은 가디건을 걸치고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편의점에서 물과 티슈를 샀다. 봉지에 물건을 담으면서 편의점의 종업원이 채경을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여자가 아니었음에도 파격적인 옷 스타일 때문에 기분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7200원입니다.
만원을 받은 종업원은 거스름돈을 주었다. 그러나 종업원은 거스름돈을 주면서도 채경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흘리고 말았다. 동전 네 개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채경은 치마를 부여잡고 주으려고 했지만 조금만 자세를 수그려도 엉덩이가 다 드러날거 같았다. 그때 종업원이 카운터 앞으로 나와 동전을 줍기 시작했다. 동전을 주으면서 힐끔힐끔 채경의 다리를 훔쳐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업원을 잔돈을 건네주자마자 채경은 물건을 들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종업원에게 자신의 알몸을 모두 노출 당한것 같은 부끄러움이 들자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거 같았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려고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저기요
채경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봤지만 왠 남자가 자신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요, 저 모르시겠어요?
채경은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누구인지 몰랐다. 채경은 반사적으로 가디건으로 가슴쪽을 여몄다.
-모르겠는데요.
-아 이거 섭하네.. 저번에 서점에서 제가 그쪽 번호 물어봤잖아요.
그제서야 채경은 그 남자가 누군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네. 그래서요? 무슨 일이시죠?
-그래서요 라니요? 그때 주신 번호 그쪽 번호 아니었죠?
-네. 아니에요.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는게 어딨어요?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셔야죠.
-기분 나쁘셨어요? 전 그렇게 하면 알아들으실줄 알고...
-기분 나쁜건 아니에요. 전 그쪽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런건데...
시현은 말을 이어나가면서도 계속 채경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오호.. 이거봐라. 존나 새끈하게 입고 다니네.. 브라는 안한거 같고 팬티도 안입은거 아니야? 창배가 도도하다더니만 입고 다니는건 완전 창녀같은데?>
-그럼 지금 말할게요. 싫으니깐 이만 갈길 가세요.
채경이 말을 마치고 급히 자리를 이동하려고 하자 시현은 채경의 한쪽 팔을 잡았다. 가디건을 여몄던 팔을 잡히자 가디건이 벌어지고 원피스 위로 유두가 비쳐졌다. 시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않고 채경을 보았다. 채경은 자세를 옆으로 틀어 소리쳤다.
-무슨 짓이에요? 소리지르지 전에 놔주세요.
-번호 알려주시면 곱게 보내드릴게요. 이 근처 사시는거 같은데 저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거든요. 우리 자주 볼거 같은데 친하게 좀 지내요
시현의 막무가내 접근에 채경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불렀다. 사실 시현은 채경의 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창배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위치도 창배에게 듣고 할 일없이 서성거리다가 오늘 좋은 구경을 공짜로 한 셈이다. 채경이 부른 번호가 실제 번호와 같다는 것을 알고 시현은 채경의 손을 놔주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만나서 밥 한번 먹어요.
채경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실룩거리는 채경의 엉덩이를 보면서 시현은 입맛을 다셨다. 엉덩이의 밑살이 보일듯 말듯 했지만 멀어져가는 채경인지라 자세히 볼수는 없었다.
채경은 급하게 건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1층 문 앞 대리석 기둥에서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어둠속이지만 희주와 준기인것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둘은 이마를 맞대로 계속 웃고 뭐라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아마 헤어지기 싫어서 계속 말을 하는거 같았다. 채경은 둘의 분위기를 깰까봐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둘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실소가 낫지만 풋풋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 순간 준기가 희주에게 키스를 하였다. 짧은 키스였지만 그 동안 희주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준기의 상의 옆만 꽉 잡고 있었다. 준기도 손을 어쩌지 못하고 한손으로는 희주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희주의 골반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키스 후에 둘은 민망한지 서로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준기가 쪽하고 입술을 맞추었다.
-나 갈게.
-잘 들어가. 전화해.
준기는 그렇게 키스를 하고 큰길쪽으로 뛰어갔다. 희주는 지갑을 꺼내 카드키 대는 곳에 자신의 지갑을 갖다댔다. 채경은 이대로 희주가 들어가면 선우와 마주칠거란 생각이 들었다. 희주가 문을 열고 들어갈때쯤 채경이 희주를 불렀다.
-희주야.
-어? 언니? 어디 갔다와? 허얼~ 언니 그렇게 입고 갔다왔어?
점점 다가오는 채경의 옷차림을 보고 희주는 깜짝 놀랐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희주야 지금 집에 언니 남친 와 있거든. 어떻게 하지?
채경은 엉겁결에 선우가 자신의 남친이라고 인정해버렸다. 희주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뭘 어떻게 해? 인사 드리면 되지. ㅋㅋ 같이 산다고는 해도 방이 따로 있으니깐 서로 조심하면 괜찮을거야. 그리고 언니가 남친을 데리고 와야 나도 준기를 데리고 오지 ㅋㅋㅋ 안 그래?
희주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해 주어 채경은 안심이 되었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선우가 쇼파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채경 언니랑 같이사는 서희주라고 합니다.
-아.. 니가 그 동생이구나. 그래 반갑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희주에게 인사했다. 둘은 간단히 이야기를 하고 희주가 눈치껏 방으로 들어갔다. 선우는 물을 그 자리에서 따서 한 모금 들이 마시더니 채경을 힘껏 안았다.
-종업원 눈 좀 호강시켜주고 왔어?
-조용히 해요. 희주 듣겠어요?
-방에서 잘 안들리잖아. 전에 살던 애도 뭐 별 얘기 없두만....
선우는 채경의 가랑이에 손을 곧바로 집어넣었다. 선우의 손이 닿아 자극을 주자 채경은 젖기 시작했다.
-으응.. 하.. 아저씨.. 여기선 무리에요,. 방으로 들어가요
채경은 거실에 불을 끄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선우는 채경의 원피스를 벗겨내었다. 등에 조그마한 멍이 들어있었다.
-이거 뭐야? 니 애인이 이렇게 해놓은거지? 내가 너 남자친구 사귀는건 사생활이라 터치는 안하겠는데 내가 너랑 만나고 있는 동안 티는 내지 마라. 기분이 좀 나쁘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남자친구가 샌님인줄 알았더니 등까지 빨고 아주 난리 났었나봐. 후후..
다른 남자의 품에서 농락당했을 채경을 침대에 눕히고 그대로 키스를 했다. 채경은 선우의 말대로 이전에도 미경이와 살 때 미경이가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채경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선우는 채경의 가슴을 빨다가 곧장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으로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희주는 돌아가는 길에 심심할까봐 준기와 통화를 하였다. 그렇지만 둘 다 부끄러웠는지 아까전에 있었던 첫키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주도 준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랬었다. 준기가 집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희주는 오전부터 쇼핑 하랴 오후에는 준기와 데이트 하랴 해서 씻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채경이 남친과 무엇을 할지는 대충 알고 있어서 거실로 쉽게 나가지 못했다. 샤워만 빨리 하고 나오겠다고 생각하고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을 바라봤다. 거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희주는 서둘러 욕실쪽으로 걸어갔다.
-하앙.. 하.. 흐음... 하.... 음.... 하
희주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얼어버렸다. 채경의 방에서 간드러지는 채경의 신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중3때 친구집에서 본 에로수준의 비디오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던 희주로서는 라이브로 들려오는 채경의 신음소리가 충격적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시간에는 난자가 어떻고 정자가 어떻다는 학술적인 교육만 받았지 진짜 성행위는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하아... 아저씨... 흥.... 하.... 하......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음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게 더 희주를 흥분 시켰다. 희주는 그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 채경의 방으로 조금씩 가까이 걸어갔다. 발바닥이 거실 장판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당황한 희주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거울 속에 자신도 대단히 놀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을 벗어 수건걸이에 걸고 샤워기 물을 틀었다. 물을 틀자 채경의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희주는 별다른 화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클렌징을 하는데 시간이 적게 걸렸다. 얼른 머리를 감고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나서 물을 뿌렸다. 채경의 방 안에서 채경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 보니 급하게 나온다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땀이 난 입던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선우와 채경은 방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희주는 그대로 알몸으로 나왔다. 집에서조차 한번도 그래본 일이 없던 것이었다. 거실에 홀로 알몸으로 나와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하.... 하....
<퍽~ 퍽~ 퍽~>
-하.. 하앙.. 흥... 하... 아하...
이제는 채경의 신음소리와 더불어 살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희주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도 잊고 조용히 채경의 방문쪽으로 걸어갔다. 놀랍게도 방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방안은 환했고 거실은 어두우니 희주는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틈사이로 안을 바라봤다. 불행히도 그 틈의 크기와 각도로는 두 사람의 네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희주는 충격을 받았다. 네 다리가 포개져 열심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틈을 벌려보았다. 정상위의 자세에서 채경이 다리를 활짝 벌리고 그 사이를 선우의 엉덩이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희주는 소리를 지를 뻔 한 걸 입으로 막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입는 것도 까먹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채경의 다리 사이로 움직이는 선우의 엉덩이가 움짤처럼 머리 속에서 생생히 재생되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희주는 준기에게 전화를 걸까도 생각했지만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그것도 그만 두었다. 조용히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채경의 말대로 그다지 크지 않지만 모양이 예쁜 가슴이었다. 준기가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져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자신조차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던 그곳으로 손을 가져가 보았다. 한번도 그런 생각은 안해보았지만 조만간 준기가 이곳을 보게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준기가 자신을 채경언니처럼 다리를 벌리고 딱딱한 준기의 그곳으로 농락할거라고 생각하자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미 상상속에서 자신은 준기에게 따먹히고 있었다. 무슨 몹쓸 상상이라도 한 것처럼 희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속옷을 꺼내입었다.
희주와 준기는 수업이 끝나고 캠퍼스 안 벤치에 앉아있었다. 오늘 저녁에 채경과 선우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바로 있다가 채경의 전화가 왔고 정문으로 나가자 집 앞에서 몇 번 봤던 벤츠 한 대를 보았다.
-여기야, 타
조수석의 창문이 열리고 채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넷은 남산 근처에 있는 고급 한정식 집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고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채 요리부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전 김준기라고 합니다.
식탁 세팅을 끝내고 준기가 다시 채경과 선우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선우도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고 식사를 했다. 준기는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해서 희주에게 신경을 쏟았다. 희주가 반찬을 흘리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휴지를 가져다 주었고 물을 찾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물을 따라주었다. 채경은 준기의 자상함을 보면서 자신이 마치 케어를 당하는 듯한 만족함을 느끼고 흐뭇해했다.
-형님은 사업가라고 하시는데 대단해요. 저는 사업체질이 아니라서 그런 사람들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오늘은 차 가져오셨으니까 다음에 술한잔 사주세요.
준기는 선우에게도 싹싹하게 굴면서 식사 분위기가 쳐지지 않게끔 유도했다. 선우도 그런 준기가 싫지만은 않아서 술약속도 했다. 채경은 사실 현민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지만 현민은 철저하게 숨길 생각이었다. 이번 자리를 마련한 것도 채경의 생각이었다. 선우가 자신의 집에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날 생각이라면 적어도 희주한테만은 남자친구 행세를 해달라고 선우에게 부탁한 것이기 때문이다.
희주도 희주나름대로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어제 밤 채경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와 선우의 엉덩이가 떠오르자 선우와 채경을 바라볼 수 없었다. 털로 뒤덮힌 선우의 허벅지도 떠올랐다. 준기도 결국 남자일거라고 생각하자 이제는 손만 잡는데도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희주는 말이 없네. 입맛에 안맞아?
-아니에요 언니. 여긴 진짜 맛있네요. 역시... 이름값을 하는거 같아요.
희주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밥을 먹었다. 맛있긴 정말 맛있는 집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음식점 이었다. 준기는 서빙된 양보다 추가로 더 시켜 식성을 보였다. 선우는 딱 정량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미리 예약을 하면서 계산까지 끝냈는지 별다른 계산을 하지 않고 그대로 음식점을 나왔다.
선우는 다시 차에 태워 근처 카페로 향했다. 테이블에 안고 나서야 준기는 채경의 치마가 대단히 짧고 다리가 길고 예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팬티와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몰랐다. 채경은 카페 계단을 올라갈때도 대단히 조심스럽게 제일 마지막에서 걸어 올라갔다. 불편할 법도 한데 선우와 함께 다닐때는 생리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속옷을 입지 못해서 어느정도 노하우가 생긴 모양이었다. 선우는 전화를 받더니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을 하고 채경에게 택시비를 하라고 십만원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가 많은 선우가 일어나자 나머지 셋의 분위기가 조금 더 편해졌다.
-준기는 희주 어디가 좋아?
채경이 끈적한 질문은 하자 희주가 부끄러워하면서 은근히 준기의 대답을 기다렸다. 준기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희주는 예쁘잖아요.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섹시하기도 하고....
준기는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밤새 말할 것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희주가 듣다가 민망했는지 준기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준기는 희주의 손을 꼭 잡았다.
-언니, 근데 아저씨 되게 멋있다. 계산 딱 하고 일 때문에 바쁘다고 딱 하고... 우리 벤츠 타기 전까지 벤치에 앉아있었잖아. ㅋㅋㅋㅋ
-희주야, 좀만 기다려 나도 조만간 성공해서 너 벤츠 태워줄게..
-난 벤츠 못타도 되니깐 내 옆에만 있어.
채경은 희주와 준기가 닭살멘트를 쏟아내며 이야기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벤츠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자신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현민을 그 자리에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현민도 만만치 않게 바쁜 사람이었다. 선우의 장난에서 비롯되어 사귀게 되었다 하더라도 현민은 채경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당장 옆에 없는 날은 공허함만 커지기 마련이었다.
-누나, 저 누나 집에 놀러가도 되요? 희주방도 구경하고 싶고..
-야, ㅋㅋㅋ 왜 내 방을 구경하는데 언니 허락만 받아? 내 허락도 받아야지.. ㅋㅋ
희주와 준기가 티격태격했다.
-응 놀러와. 나야 뭐 언제든 환영이지.
-아, 감사합니다. 찾아가기 전에는 항상 미리 말씀드릴게요.
-안그래도 되는데 ㅋㅋ
준기는 채경의 허락을 구하고 희주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희주는 돌려 말하기도 어려웠던 부분을 준기가 재치있게 말을 해주어 오히려 고마웠다. 그대로 카페에서 나와 희주와 준기는 조금 더 같이 있겠다고 하고 채경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치마가 짧아서 불편했던지 선우가 준 돈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채경은 몸을 뉘였다.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오늘 준기와 희주의 모습을 보는 내내 흐뭇했지만 돌아와 남는 건 허무함 뿐이었다. 왜 자신은 선우가 건넨 손을 잡았을까. 선우가 아니었다면 대학등록이나 지금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계속 돈을 벌려고 여기 저기 돌아다녀봐야 모두 다 채경의 몸을 탐하기 위해서 거침없이 달려들 이리떼같은 남자들 뿐일 것이었다. 그냥 선우에게 정착한 자신을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선우가 아니었더라면 더 심한 일도 당했을 것이라고. 그나마 현민이 있어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도 씨씨까지는 아니어도 남들처럼 그 나이때에 맞는 알콩달콩한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한참을 욕조에 있다가 물이 거의 식었을 무렵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이 봐도 완벽한 몸매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열심히 운동하고 관리한 부분은 있었지만 역시 타고난 것이 컸다. 부친의 사업이 망하고 부모님이 이혼을 하는 과정속에서 억척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았다. 대학교에 와서 장밋빛미래가 있을 줄 알았지만 선우에게 발이 메어 자유롭게 사는 것도 아니었다. 희주가 너무 부러워졌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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