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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52 1,325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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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모의고사에서 저는 대망에 ‘S대 합격 가능 점수’를 받았습니다! 방학동안 학원에서 사탐과탐을 완성한 것도 컸지만, 그녀가 열심히 신경 써준 수학과외가 1등 공신이었습니다.

성적표를 받아든 날 그녀와 저는 간만에 기분을 내자며 강 건너 동네까지 가 밥을 먹었습니다. 삼겹살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녀는 저에게 젓가락 만지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은 후 직접 고기를 굽고, 쌈을 싸서 처음부터 끝까지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민폐 오브 더 민폐 애정행각을 벌인 것입니다.(다행히 손님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어휴~ 여자 친구 참 잘 뒀네~”

사장님의 말에 저는 왠지 으쓱한 마음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녀의 고집으로 옷도 위 아래로 선물 받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좋은 거 해주고 싶은데 그건 나중에 합격하고 하자며 그녀는 웃었습니다.

S대 합격 가능한 성적을 받아 들고 보는 세상은, 참으로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달만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도, 그리고 그녀도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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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한 달 남겨놓은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저를 좀 보자고 하더군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점심도 거른 채 운동장 계단에 앉아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녀석이....... 결국 사고를 쳤다는 겁니다! 그것도 여자 친구가 먼저 알게 된 게 아니라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먼저 알게 되었다더군요. 평소 생리대를 한 곳에 두고 같이 쓰는데, 여자애가 생리대를 안 쓰는 것을 수상쩍게 생각했던 어머니가 식사자리에서 입덧이 터진 여자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다고. 녀석의 울먹임에 괜히 제 머리가 다 띵했습니다.

임신이라니! 게다가 부모님도 아시다니!! 이미 열여덟 살 커플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지금쯤이면 자기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을 거라고 괴로워했습니다. 녀석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는지 였습니다.

만약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면 얼싸 좋다 혼수로구나, 하며 같이 기뻐해줬을.......리 만무하겠구나. -_- 여하튼 그때 우리는 몸만 자란 어린이였습니다. 저는 “너네 부모님께는 니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다독이기도 하고 “그래도 수능은 볼 수 있을 거야.”라며 함께 걱정해주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친구 녀석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녀석의 여자 친구 얼굴이 떠올라 더욱 안쓰러웠습니다. 매우 얌전한 얼굴에 빼빼 마른, 교복과 애나멜 구두가 매우 잘 어울리던 모범생이었는데.......

그날 저녁 저는 괜히 그녀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사실 저 역시 두려웠던 겁니다. 혹시라도 그녀가 임신을 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그녀와 ‘정말’ 미래를 같이 꾸릴 수 있을까?

그녀 역시 까칠하게 구는 제가 미웠는지 등짝 스매싱을 날렸으나 오히려 저의 반항심만 돋울 뿐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선포하듯 말했습니다.

“우리 수능 끝날 때까지 보지 말자.”라고.

그녀는 그 큰 눈을 꿈뻑이다가 “정말 그런 거 때문이야?”라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녀와 다툰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사실 여섯 살 위의 그녀랑 제가 싸움이 되겠어요? 제가 뭘 어떻게 하건 막내 동생 같을 텐데.......

이후 우리는 수능 날까지 데면데면 했습니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여느 선생과 제자처럼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고, 학교 밖에서 따로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1년 후의 일들을 그려보았습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그녀가 내 여자 친구가 되는....... 솔직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미래는 세밀한 정물화 같이 또렷했는데, 막상 조금씩 그 미래가 가까워지자 추상화나 상상화 같이 실체 없이 번져나가기만 했습니다.

친구 녀석의 일은 결국 조용히 수능 이후에 해결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당사자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저만 아는 이야기로 묻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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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채점 결과가 조금 아슬아슬 했습니다. 특히 믿었던 영어 과목에서 실수를 하면서 S대는커녕 커트라인으로 생각했던 대학들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밤늦게 집을 나와 친구들과 밤새 쿨피스를 취할 때까지 마시고 노래방에서 놀다 친구네 집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 제 책상 속에 있는 그녀의 편지를 보기 전까지, 저는 한 번도 그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책상 속에는 작은 상자와 함께 그녀의 글씨로 보이는 손편지가 있었습니다.

[수능 전에 주고 싶었는데....... 연락도 안 되고 기회도 없어서 ^^ 수능 잘 봤을 거라 믿어. 우리 애인 파이팅!]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일부러 주는 이 받는 이의 이름은 없었지만 분명 그녀의 글씨였습니다. 상자 속에는 값비싸 보이는 초콜릿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오래 전에 미뤄뒀던 숙제가 생각난 것처럼 그녀와의 관계가 현실로 와 닿았습니다.

친구 녀석은 결국 중절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녀석은 개도 못 먹일 만큼 수능을 죽 쒔고, 여자애 역시 마찬가지였던 거 같습니다. 아예 둘 다 일찌감치 재수를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여자애 수술부터 할 거 같다고 녀석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습니다. 부모들이 떨어뜨려 놓으려 할 때는 죽어도 싫다며 붙어 있던 남녀였는데, 중절 수술을 하고나니 정해진 공식인 듯 헤어지더군요.

저 역시 그녀와의 일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그녀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단순히 더 이상 수학과외가 필요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녀가 나이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그녀가 우리 학교 선생님이기에 주변 시선이 의식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녀에게 느꼈던 처음의 강렬함이 사그라진 것 뿐. 그 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전화를 피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수능 후 개통한 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제가 전화를 받지 않자 무슨 일 있는 거 아닌지, 혹시 수능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온 건 아닌지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아직 열여덟 살, 철딱서니라고는 노란 싹수조차 안 돋아나던 저는 그녀의 마음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결국 얼마지 않아 그녀는 제 마음을 알겠다며, 자기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마저도 답을 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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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생각만큼 망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담임은 제 성적이 참 애매하다고 했습니다. 정 S대에 가고 싶으면 가장 낮은 과에 써볼 수는 있지만 합격을 장담하긴 힘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립대는 제가 원하는 학과를 골라 갈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니면 재수해서 1년 더 하면.......”

말하는 뉘앙스가, 재수를 시켜서라도 S대를 보내고 싶다, 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재수는 싫다고 못 박았습니다.

결국 ‘가’군에는 사립대학교에, ‘나’군은 S대의 제일 낮은 과 지원, ‘다’군은 쓰지 않았습니다.

원서를 넣은 후, 그 남고남고남아도는 시간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열심히 논술 학원 다니는 일.

“너 재수 할 거라더니 논술은 왜?”

“그냥 한 번 넣어보기라도 하려고.”

재수를 한다던 친구 녀석은 무심하게 답했습니다.

“OO는? 이제 완전 연락 안 해?”

“유학 갈 거래. 캐나다로.”

녀석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결국 저는 사립대에 합격 하였고, S대에는 예비번호로 합격하였습니다. 부모님은 혹시라도 S대에서 연락이 오면 사립대 등록금 빼서 S대로 가자고 하셨지만, 저는 처음부터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S대에서 연락 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졸업식 날, 저는 무슨 이유인지 학생 대표로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을 수여하는 교장 옆에서 상패를 나르고 부상을 수여하는 역할이 그녀였습니다. 지금도 당시 사진을 보면 상 받는 제 표정이 사과로 포크 찍어 먹다 포크를 삼켰던 그때 그 표정.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저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누가 먼저 쳐다봤다는 거 없이 동시에 둘의 시선이 교차했습니다. 그녀와 저 사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오고 가고 엉키고 설키고 있었지만 우리 둘의 시선은 한동안 서로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노여움이나 섭섭함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련함과 미안함이 순서 없이 섞여 저를 더욱 미안케 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던 그녀는 등을 돌렸습니다.

그때 그녀는 겨자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직도 겨자색을 보면 그때 그녀가 담고 있던 수많은 감정의 눈동자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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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며 저는 그녀를 완전히 잊어냈습니다. 한때는 내 인생에 말뚝 같이 박혀 누구도 뽑아내지 못할 거 같았던 그녀였는데, 또래 여자 친구를 만나고, 친구들과 술을 푸고, 다른 누군가와 동침을 하면서 첫경험은 스티커자국도 남기지 않고 아물어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군대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미니홈피로 쪽지가 왔습니다.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저의 안부를 물으며 그때는 한 살이라도 어른인 자기가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자기는 잘 살고 있고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지금 하는 일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다시는 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줍게 덧붙이는 말로,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그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 역시 잘 살고 있으며, 당시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당신에게 상처를 줬다, 지금이라도 나를 용서해줬으면 한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정말 아름답고 수채화 같은 사랑이었을 텐데....... 그 쪽지를 계기로 우린 연락을 시작하였고, 이윽고 약속을 잡고 만나기에 이르렀습니다. -_- 그리고 왜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안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처음엔 퍽퍽할 정도로 서먹했던 우리였지만, 드라마 [로맨스] 이야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그때의 일을 더듬으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더듬어서일까....... 눈 떠보니 여관. 모텔도 아니고 여관. -_-

당황하고 실망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퇴실하는 그 순간까지 “미쳤어....... 미쳤어.......”를 되뇌었습니다. 저 역시 기분이 더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30대 후반인 그녀는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스승에 날에도 학교를 못 가는 이유입니다. ㅋㅋㅋ 아, 뜻하지 않게 스승의 날 때마다 은사님들께 죄 짓고 있네요.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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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재수도 불사하겠다던 그 친구 녀석....... 정말 운 좋게 추가합격으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답니다! 게다가 장학금도 항상 받고 군대도 해병대 지원해서 가고 졸업도 우수한 성적으로!! 현재는 능력을 인정받아 아직까지 공무원시험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5년 정도....... -_- 5년 동안 내가 계속 술 사주고 있음.

그녀가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그 남친.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국가대표 운동선수셨다는....... 성깔도 한 성깔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만약 나랑 사고친 거 걸렸다면 우린 스포츠 뉴스에 나왔을까요, 사회면에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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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입 온 이등병 시절.

당시 우리 부대에서는 신병들의 통과의례가 있었는데, 바로 부대원 앞에서 ‘첫경험 고백하기’가 그것이었습니다. 누구든 예외 없이 불 꺼진 생활관 한 가운데 서서 자신의 처음을 읊조려야만 했습니다.

간혹 아직 총각인 녀석이 있다면 총각 딱지를 뗄 때까지 놀림을 받아야 했기에 없는 경험담을 만들어 내는 촌극도 있었습니다. (전역하는 그날까지 놀림 당하던 고참도 봤음. 스물다섯까지 virgin이라니....... 고참이거나 혹은 고자거나 ㅋ)

저 역시 전입 온 첫날 고참들의 기대(?)어린 시선 속에 불 꺼진 내무실 한 가운데에 섰습니다.

“제 첫경험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어둠 속 어디쯤이나에서 “오~ 새끼~ 빠른데?”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어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도 군데군데 들려왔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수학선생님이랑 했습니다.”

순간 생활관은 암전된 듯 정적.......

이윽고 어딘가에서 “새끼, 이거 완전 야설 쓰네?!”라는 말과 함께 베개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정말 야설을 쓰고 있네요. -_-

그렇게 저는 신고식을 무사히(?) 치르고 짬밥 열심히 먹어 계급을 하나 씩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당직을 서고 있는데 함께 당직을 서던 강현택 중위님이 잠도 깰 겸 비디오나 보자고 하더군요. 중위님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테크에 넣은 비디오는 ‘녹색의자’. 당시 틴에이지 스타였던 심ㅈㅎ 씨가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 영화였습니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미성년자 남자와 성인 여성의 사랑을 어떤 잣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그냥 아줌마가 애 따먹은 거지!”

강 중위의 심드렁한 한 줄 평에 저는 매일 밤 그녀를 집에다 데려주고 난 후, 그녀를 삼키던 그녀 집 녹색 대문이 생각나 심란했습니다.

---
[나의 질내사정기 - 첫경험 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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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가이고, 넌 독자야!
난 새글쓰기고, 넌 추천누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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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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