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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44 1,006회 0건
뭔가 느낌이 왔다. 이건 잘 하면 대박이 되겠다는 촉이 뇌리를 강타하면서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다시 움켜잡고 내 자리로 돌아가 살며시 주위 직원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일 큰 문제는 대순씨 옆자리에 있는 은영씨가 문제였다. 긴 2인용 책상으로 되어 있어 2인 1책상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 얇은 칸막이가 되어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총 4개의 책상이 되어 있으니 일단은 은영씨가 자리에 없어야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간절한 바램에 소라신이 응답을 했는지 은영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을 들고 밖에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은영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한 번 주도면밀하게 주위 직원들을 한 번 더 살펴본 후 나의 움직임에 다들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순씨 자리로 갔다. 만약 들켜서 누가 나보고 뭐하냐고 물으면 잠깐 사무용품 좀 빌리러 왔다고 핑계대면 될 일. 사무용품은 전 직원들 책상 서랍에 다 들어있는데 왜 모자라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직원들의 행동으로 볼 때 자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에는 상당히 무관심, 무성의, 무신경으로 사는 사람들이라서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는 마치 공놀이를 하다가 옆집 유리창을 깬 아이가 그 집 마당에 공을 가지러 갈 때의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조심조심 대순씨 자리로 갔다.

‘오! 발견발견!!’

그 살색 천의 정체는... 바로...

‘에그머니나!! 뭐 이딴...’

그 살색 천의 정체는... 손수건이었다.

‘그 놈 참 취향 독특하네. 대부분 꽃무늬나 아니면 뭔가 화려하고 조화가 있는 그런 손수건을 쓸테고 손수건을 안갖고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하필 살색 손수건이라니.. 이건 진짜..’

나는 조용히 살색 천의 정체를 확인하고 다시 최대한 원상복구 시켜 놓은 후에 내 자리로 얼른 돌아왔다. 오늘 소득은 무였다. 깍두기에 쓰이는 채소인 무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오후 일과 시간이 지루하리만치 흐르지 않는 가운데 오후 5시쯤 되자 다들 눈이 말똥말똥 생기가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대순씨는 앞자리에 와서 뭘 하는지 끄적끄적 뭔가 쓰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마침 은영씨도 어디를 다녀왔는지 제법 오랜 시간 있다가 들어온 것 같다. 내 자리는 말단 중에도 최고의 말단, 그것도 임시계약직이라서 사무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는 몰래 인터넷을 하다가도 문이 열리면 수시로 얼른 화면을 바꿔놓고 누가 오나 확인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 중에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아마 내가 왕궁의 경비병이었다면 적군의 동태를 감시 잘 하는 우수 병사였을텐데... 하는 진짜 쓸데 없는 생각을 몇 초 해보았다. 그런데.. 어라?? 나의 눈을 통해 들어온 주위 환경의 상황들이 알람을 거세게 울려대고 있었다. 뭔가 이질감이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게 뭘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은진씨가 나를 한 번 슬쩍 보더니 다시 자기 일에 몰두한다. 나의 육감을 넘어선 칠감이 주는 경고는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무관심하게 보면 잘 모를 것 같은 바로 그것. 은영씨의 머릿결과 스타킹이 문제였다. 은영씨 다리를 감싸고 있는 스타킹이 사라진 채로 맨다리로 있었던 것이다. 분명 오늘 출근할 때부터 내내 은영씨의 미니 원피스 아래로 곧게 뻗은 다리의 각선미를 더더욱 살려주는 진짜 비싼 스타킹인지 신은 듯 안 신은 듯 한 그런 스타킹. 빛에 살짝 살짝 빛나는 것으로서야 스타킹을 신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고급 제품 같은데 지금 빛에 비쳐지는 다리는 빛은 분명 나고 있지만 스타킹의 재질과 촉감이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분명 맨다리라는 것을 현미경으로 자세하게 관찰하듯 지켜본 나로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면 누구는 또 물을 것이다.

“왜 그렇게 여자 다리에 관심이 많아? (아니 그냥 보여서 보는 것 뿐이오)”
“왜 남의 스타킹에 남자가 신경을 써? (아직은 날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니 같은 직장 동료로서 좀 챙겨주고자 하는 나의 자상한 마음일 뿐이오.)”
“너 변태 아니야? (변태는 직장 다니면 안되나?)”
“스타킹 올이 나가서 화장실에서 벗을 수도 있잖아? (그럼 내가 여자 화장실을 다 찾아보고 오리다.)”

어쨌든 각설하고, 내가 확신을 가지게 된 데는 스타킹 뿐만이 아니라 은영씨의 머릿결을 보고 갖게 된 것이었다. 분명 단발의 동그스름한 귀여운 스타일의 머리는 맞는데 머리카락이 전체적으로 진짜 희미하게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 물을 것이다.

“너 바보 아니냐? 밖에서 돌아다니다 왔으면 당연히 지금처럼 낮에 더울 때는 땀이 나서 젖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땐 땀이 나면 머리 안쪽부터 해서 땀이 난다고 해도 저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오, 머리를 감는다면 몰라도....)”

그렇다. 분명 땀이 나도 머리 안쪽부터 전체적으로 젖어 올 때도 머리카락이 풍성한 은영씨 스타일로 볼 때 절대 머리가 저렇게 감고 나서 말리다 만 것처럼 전체적으로 젖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보다 더 정확한 증거와 정황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내가 저 둘이서 뭐하러 다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일일이 미행하면서 어디어디를 가는지 쫓아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라 야설에 나오는 것처럼 비싼 고급형 몰카를 사다가 화장실과 집에다가 설치해놓고 언젠간 걸리겠지 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나에겐 사치이자 불가능한 일이었다.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난 한 번 호기심이 생기면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생긴 것 같으니 난 어떻게 해서든 이 호기심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방법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비록 임기응변에 강하고 학교 다닐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어르신들이

‘저 놈은 커서 뭐가 되려나? 진짜 천재(天災)일세 천재(天災)야.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내 스스로가 천재(天才)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어른들이 볼 때는 그 천재가 아닌 다른 천재였던 모양이다. 고3때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셔서 담임 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할 때에도 함께 동석하고 있던 내가

“선생님! 저는 꼭 S대를 가겠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것이 저의 신조입니다!!”

라고 했다가 어머니가 집으로 가시고 나서 종례 후에 면담실에 불려 가서 한 시간이 넘도록 잔소리를 들으며

“넌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든 점수다 이놈아! 언제 정신차릴래? 너 지방대 무시하냐? 니 점수로?? 제발 선생님 말 좀 듣자. 너 대학 가려면 선생님이 추천해 준 대학으로 원서를 넣어라. 제발 부탁이다. 응??”

하시며 내민 대학입시전형에 나온 대학 중에 S대는 S대인데... 세워진 지 5년이 채 안된 서림대라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이었던 것이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난 내 스스로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천재라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지만 고3때 이후로 남들에게 말해본 적은 없다. 현실이니깐. 내 장점 중 하나는 적응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지..후훗♡ 하고 나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다시 한 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불과 사흘 뒤 모든 직장인들이 행복해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이 아니라 월화수목휴일휴일휴일 이렇게 된 달력 속에서 금요일 아침, 출근해야 정상이지만 달력이 가지 말라고 빨간 경고등을 켜는 바람에 직장인들이 너무나 회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다 쉬라고 지정한 날에 나에게 일어났다.

모처럼 쉬는 휴일 첫날 금요일. 분명 목요일 밤에 잘 때는 오늘은 밥도 안먹고 낮까지 늘어지게 자보리라 했건만... 이런 왜 항상 휴일일 때는 눈이 더 일찍 떠지는 것일까?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1분이라도 더 자보겠다고 이불을 껴안고 씨름을 하다가 보통은 아내가 잔소리를 한가득 늘어놓으면서 이불을 끌어당겨서 뺏어갈 때 마지 못해 일어나고 나 같은 경우에는 이불과 베개를 동시에 껴안고 쓰리섬을 시전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잔소리와 함께 가차없이 내 등짝으로 날라오는 강력한 손바닥 스매싱 공격에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가 이번에는 국자로 머리통을 맞고 머리통을 한참 움켜 쥐며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심오한 고민은 할 겨를도 없이 찬물을 틀어 놓고 세수를 하던 때와 달리 모든 가족들에게 내일 직장 쉬는 날이니 밥 먹으라고 부르지도 말고 절대 내 방에 와서 깨우지도 말고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선포했건만 눈을 떠보니 5시다... 저녁도 아니고 새벽 5시... 원래 기상 시간이 6시인데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나버린 나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아직 밖이 어둑어둑한 관계로 컴퓨터를 켜고 메일 확인하고 스포츠 기사를 좀 읽고 있다가 6시쯤 되어서 나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운동을 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어디를 갈까 생각해보니 작은 시골이라서 딱히 갈 만한 곳도 없고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를 가자니 아침부터 아줌마 아저씨들이 진을 치고 있을테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나의 직장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쉬는 날이라서 그런지 당연히 직원들 거의 다가 출근을 안했지. 당직인 사람들 몇 명만 빼고. 각 사무실과 별로 한 명씩 당직이 있어서인지 항상 만차였던 주차장도 텅텅 비어 있고 아주 띄엄띄엄 차가 몇 대 있을 뿐이었다. 우리 청사는 비록 시골이지만 어디서 돈을 다 끌어왔는지 엄청 화려하게 지어져서 우리 동네에 오는 사람들이 보면 할미꽃들 사이에 화려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며 자신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호박꽃처럼 오래된 건물들 속에 유일하게 드러나 있고 또 약간 언덕 쪽에 있어서인지 더더욱 눈에 띄는 새건물이다. 주차장은 지상1층부터 지하2층까지인데 지상1층은 민원인들을 위한 주차장이어서 직원들은 차를 댈 수 없고 직원들은 지하2층을 이용하고 2층이 다 차면 1층으로 올라오고 아니면 보통은 2층에 다 주차를 하는 편이었다. 나는 건물 주위를 쭈욱 돌아보다가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가 지났다. 내 발걸음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차가 다니는 통로로는 사람들이 드나들 일이 평소에도 거의 없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에는 더더욱 없으리라 생각하며 난 남들이 안하던 새로운 시도, 차가 다니는 통로를 따라 지하2층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지하 2층에 도착해서 보니 차가 3대... 진짜 휴일이라는 것이 주차장만 봐도 확 느껴졌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올라오려고 하는 그 때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렸다.

‘이건 핸드폰 벨소리인데.. 응?? 사람이 있었나?’

그냥 차량 출입구 쪽에서 봤을 때는 별다른 것을 못느꼈는데 벨소리가 1-2초 울리다가 끝나고 얼핏 잘못 들었나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올라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출입구에서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스포티지 차량 옆으로 쏙 숨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차 창문으로 보니 총 3대의 차량 중에 유별나게 검은색 소나타 한 대가 하필 전구가 나가버려서 조금 더 어두운 가장 안쪽 기둥 옆에 주차가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 주차 전쟁이 일어날 것도 아니고 주차할 사람도 없으니 편하게 엘리베이터 옆에다 대면 될 것을 왜 굳이 저 멀리까지 차를 주차해 놓은 것일까? 운전자 취향도 어두운 걸 좋아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숨은 차량 창문을 통해서 보니 어둠에 가려져 있는 검은색 소나타에 왠지 사람의 움직임 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출근한 직원인가?’

그런데 10분이 지나도록 내릴 생각을 안했다. 한참을 지켜 보니 내 눈도 어두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인지 아까보다는 비교적 잘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보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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