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76
뭇사람의 관심을 끌며 화려하고 뻐쩍지근한 결혼식을 올린 뒤 금아는 새로운 생활에 그런대로 잘 적응한 셈이었다.
5박6일간의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상기와 금아는 우선 사당에 인사를 올리고 시부모 앞에도 큰 절을 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주렁주렁한 열쇠꾸러미 중 3개를 꺼내어 금아에게 건네주었다. 그 열쇠는 곳간과 뒤주, 제기그릇이 있는 광의 열쇠였는데 실속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시어머니 역시 시집 와서 그 열쇠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이름이 박점순, 밀양박씨 중 전농공파의 후손으로 몇 대 선조 중에는 영의정과 판서, 부사도 있는 꽤 뼈대 있는 집안의 규수로 19살에 권부자집으로 시집왔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었다.
이 집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없었고 경상도에서는 결혼한 여인들이 거의 택호(宅號)로 불리우지만 그녀는 열외였다. 집안에서는 ‘마님’, ‘큰 마님’, 혹은 ‘숙부인님’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숙부인은 정3품으로 조정에서 작호를 받은 여인을 부르는 것으로 그녀가 사는 시대에 그런 절차는 없었을 테인데도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어떻든 그녀는 명문대가의 안주인답게 곱게 늙었으면서도 기품과 권위가 몸에 배인 것 같았다.
금아는 결혼식을 갖기 전부터 “처음 3년동안은 시집에서 기거하며 가풍과 법도를 익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은 그때도 서울의 식품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그들 부부는 신혼 초부터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거부감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왕비나 후궁으로 간택을 받았다면 그 영예와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겠지만, 반대급부처럼 많은 속박과 제한도 따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구중궁궐에서 상감 하나만 우러러 보며 사는 왕비보다 현실적으로 나은 편이었다.
그래도 종가집의 주어진 일은 많았다.
아침 저녁으로 시부모에게 문안인사를 드려야 했고, 한달이 멀다않고 찾아오는 기제사도 치러야 했다. 이제 머슴이나 몸종이라는 명칭은 없어졌지만 수십명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지휘하는 일도 참여해야 했다.
집안 일은 거의 시어머니가 주도했지만 금아도 ‘작은 마님’으로서 차츰 일상사와 이 집의 법도에 익숙해져 갔다. 물론 그 중에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거부감 없이 모두 순응했다.
그중 한 예가 식사예절이었다.
그녀는 시집온 뒤로 이 집에서 남편이나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남녀유별은 특히 밥상에 철저해서 남자들은 사랑채에서 여인들은 안채에서 따로 먹는 것이다.
약혼기간 중에 병세는 서울에 오면 가끔 며느리감을 불러내어 호텔의 식당이나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에서 담소하며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시집에서도 어쩌다 가족이 외식을 하게 되면 시부모, 남편과 한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항상 남자 따로, 여인 따로였다.
시집살이가 마냥 고되고 따분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금아는 다시 캔버스를 마주하지 않았지만 대신 동양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수묵화에 맛을 들였다.
마침 안동에는 국전 심사위원도 역임하고 화단에 꽤 이름이 알려진 70대의 동양화가가 살고 있었다. 풍곡이라는 아호를 쓰는 이 노인은 금아를 기꺼이 문하생으로 받아주었다.
틈이 나면 시어머니는 수를 놓았지만, 금아는 사군자를 치며 간결한 붓놀림에 피어나는 난초와 매화, 그리고 여백(餘白)의 매력에 빠져 들어갔다.
섹스는 물론 신혼부부에게 중요한 일상사의 하나였다.
금아는 대학 2학년 때 강간을 당하며 처녀막을 상실했다지만 그 후 약혼기간에도 철저히 수절(守節)하며 몸을 지켜왔다.
혼례식을 치루고 화도의 그녀 집에서 첫날밤을 치루는 것이 그녀로서는 두 번 째 남자와의 경험이었다.
첫 번 째 경험과는 많이 틀렸다. 비록 수동적이었지만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 되어 어떤 거부감도 없이 남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날 신랑은 아무래도 장소가 불편했는지 한차례의 섹스만으로 끝냈다.
그러나 하와이 신혼여행지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비행시간을 빼고 4일간 호텔에 숙박하면서 신랑은 약혼기간 중에도 굶을 수밖에 없었던 욕구를 한꺼번에 찾아 먹겠다는 듯 주야장창 씹만 해댔다.
창문 너머에는 와이키키 해변과 수려한 풍광이 보이지만 그들은 해변을 한번 거닐어 보지도 못했다. 객실에서 4일동안 거의 알몸 상태로 20회 이상을 한 것 같았다. 금아는 섹스가 끝난 후 한두번 옷을 챙겨 입었지만 곧 다시 벗어야 되기에 나중에는 아예 포기했다.
귀국 비행기를 탔을 때 보지는 팅팅 붓고 속은 쓰라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의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만 오는 신랑은 또 며칠동안의 금욕을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 듯 저녁식사가 끝나자말자 서둘러 좆을 들이밀었다. 주말이면 하룻밤에 3~4회 씩은 기본이었다.
이러한 남편의 넘치는 성욕과 맹렬한 공격을 그녀는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늘 남편이 요구해 오면 스스로 옷을 벗고 가랑이를 벌렸다.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녀는 결혼한 여인이면 다른 집안일에도 순종해왔듯 당연히 남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섹스를 하면서도 그녀는 환희를 느낀다거나 점점 익숙해져가는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늘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이었으며 주말이 다가오고 밤을 맞는다는 것이 그녀는 무섭고 싫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강간을 당한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지금도 거부하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려 받아들이는 남편이 바로 그때 강간의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첫날밤을 치룰 때, 바로 그녀의 두 번 째 남자 경험도 그녀에게는 쓰디쓴 기억으로 남아있다.
화촉동방의 불이 꺼지고 신방은 암흑이었는데 마침 보름께라 밖의 달빛이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작대기같은 빛살로 방안에 스며들었다. 첫날밤을 훔쳐본다고 몇사람이 장난을 친 것이다.
“저기 누군가가 ······ ?”
알몸이 된 수줍음 속에서 그녀는 깜짝 놀라 작은 소리고 신랑에게 말했다.
“하 하, 저건 그저 전해오는 풍습일 뿐이야.”
신랑은 겁에 질린 신부을 무시하고 그대로 좆을 꼽았다. 신방에는 병풍이 쳐있고 이불을 덮었으며 여전히 방은 깜깜해서 사실 남들에게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금아는 창호지 구멍으로 스며든 빛살을 보며 강간을 당할 때 그녀를 지켜본 눈동자가 생각났다. 지금의 남편이 데려온 똘마니 둘은 그때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신혼여행지에서 그 광란의 씹질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더욱 증폭시키고 고질병으로 정착하게 했다.
이같은 금아의 증세를 남편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폭력과 무지에서 비롯된 아내의 상처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좀 별스런 여자로 치부한 것이다.
상기는 호색한을 자처할만큼 색을 밝히면서 자신이 여인을 능숙하게 다루며 대부분의 여인들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말하자면 그저 방종한 망나니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어릴적부터 부모 말을 잘 안 듣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병세는 4대 독자인 권부자집의 후계자를 자신이 선조들에게 받았던 가정교육처럼 근검절약하면서도 강건한 아들로 키우려 해다.
그러나 이런 목표가 어긋난 데에는 상기의 어머니 박씨부인의 빗나간 모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시집와서 3남1녀를 낳았는데 손이 귀한 집이라 그런지 두아들과 딸을 잃고 겨우 막내 상기만 남았다.
그래서 더욱 이 외아들에게는 모든 것이 오냐 오냐였다. 남자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이 가문의 오랜 전통이지만 그녀는 이 못된 아들에게도 그 전통을 적용한 셈이다. 그래서 아들의 잘못이나 어긋난 버릇도 싸고 돌았다.
특히 상기가 여자를 알게되면서 그 방종은 여자편력과 환락으로 쏠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의 30대 하녀에게 동정을 떼인 후 그의 주변에는 늘 씹을 할 수 있는 여인들이 많았다. 20대의 부엌데기에서 50대의 침모까지 고용된 여인들이 우선 그의 먹잇감이었다.
중학교까지만 안동에서 다니고 서울로 유학한 그는 고교생 신분으로도 창녀촌을 드나들었고, 방학 중에는 고향의 여학생들도 많이 따먹었다. 용모나 허우대는 멀쩡했고 권부자집 외아들이라는 상표에 여학생들은 쉽게 옷을 벗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그의 여성편력은 더욱 화려해졌다.
병세는 아들의 용돈도 엄격하게 관리했는데 박씨부인은 아들이 조르는 대로 언제나 아버지가 주는 용돈의 2배 이상을 뒤로 주어 그의 여성편력은 더욱 쉬워졌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급차를 캠퍼스 안까지 몰고 다녔고 고급 옷에 돈도 잘 쓰는 그에게 퍽 많은 여대생들이 쉽게 넘어갔다.
더러 녹녹하지 않으면 비싼 선물공세를 펴며 더 공을 들이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강제로 범한다. 송금아도 그런 케이스의 하나였다.
그의 적지 않은 강간 경험에서 여인의 반응은 두가지다. 피해 버리거나 오히려 더 달라붙는 것이다.
송금아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캠퍼스 안에서 선배에게 당했으니 여인 쪽에서 창피해 쉬쉬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된 것은 바로 전화위복이며 운명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용모는 뛰어났고 매력적이다. 난생 처음 수갑을 차고 유치장 생활까지 해보면서 얻은 아내이기에 더욱 값진 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섹스에서 여전히 숫처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그녀가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아내는 불감증이다. 책도 보고 남들의 경험담도 참고 삼아 그는 아내의 성감을 개발하는데도 공을 들였다.
체위도 이리저리 바꾸어 보고, 포르노 테이프도 틀어주고, 남성용 여성용의 섹스용품도 사용해보고, 몰래 흥분제라는 것도 먹여보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오히려 아내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올 뿐이었다.
언제나 순순히 옷을 벗고 가랑이는 벌리는데 그 다음은 전혀 호응이 없는 것이다. 그는 차차 불만이 쌓여갔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날 상기는 고향친구 7~8명과 술을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대화의 주제는 금아의 미모에 대한 것으로 옮아갔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흔히 있었던 현상이다. 그런데 이날은 상기가 먼저 반발을 했다.
“야들아! 이 자리에 저 병구, 민수, 광철이는 아직 총각이제? 내가 선배, 경험자로서 한마디 해준다. 느그는 장가갈 때 절대로 여자 얼굴 찾지 마라. 돼지 얼굴 보고 잡아 묵나? 그저 살집 좋고 색 잘 쓰마 그게 장뗑인 기라.”
상기는 서울생활을 오래 하며 평소 서울말을 썼지만 고향에 돌아오면 경상도 사투리가 편했다.
“와, 니 마누라는 밤일이 시원찮나?”
“말도 마라. 목석도 그런 목석은 ······ 얼굴 잘 난 가시나들은 꼭 지 얼굴값을 할라 칸다 카이. 그런 여자 상대하기 보다는 살집 좋은 고기 묵는 기 훨씬 알차제.”
“임마야, 피리도 장인이 불마 천상의 곡조가 나오지만 돌팔이가 불마 소리도 안 난다 아이가. 니가 돌팔이라 그런 거 아이가?”
“짜슥아. 내가 맛본 여자가 한둘이가? 세워 놓으마 느그 집까지도 갈끼다. 그런데 그 가시나들은 모두 닐리리 닐리리 울어대는데 마누라는 아직도 먹통인 기라.”
“그기 니 기술의 한계겠제. 나한테 하룻밤 좀 빌려줄래? 내가 소리 잘나는 피리로 만들어 줄게.”
“뭐라고 ······ ? 이 새끼가 ······ ”
상기는 술병을 들어 그 친구의 머리를 내리쳤고 선혈이 낭자했다. 이 일이 사건화 되었다면 상기는 흉기를 사용한 특별범죄처벌법의 가중 대상이 되어 중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피해자가 친구의 아내를 먼저 모욕했다는 약점이 있어 친구들의 중재로 유야무야 되었다. 꽤 많은 액수의 치료비를 물어주기는 했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상기의 아내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싸여갔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 부부는 잘 빚어진 도자기 같았지만 안으로 눈에 안보이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또 하나 부부간의 문제는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금아도 4대 독자의 집에 들어왔으니 빨리 후손을 낳아줘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시부모들의 기다림은 더 간절한 것 같았다.
1년이 지났을 때 박씨부인은 그녀를 서울의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당연히 ”남편도 함깨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상기가 펄쩍 뛰며 거부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2년 째 접어들며 그녀는 입덧을 했고 배도 조금씩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진찰을 해보니 그것은 상상임신이었다. 그만큼 금아는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시집살이의 계약기간인 3년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상기는 이제 서울에서 단둘이 살면 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오붓한 분위기에서 아내의 불감증을 고쳐야겠다며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방종한 망나니는 그 새를 못 참고 사고를 저질렀다. 그가 몰던 자동차가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려 병세가 상경해서 보니 상기는 만취한 상태에서 전봇대를 들이받았고, 차가 박살이 나며 상기는 4주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나 조수석에 동승한 여인은 중상이었고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더구나 그 여인은 상기가 서울의 현지처처럼 동거중이었다.
병세는 크게 노했다. 며느리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아들은 회사도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데려왔다. 지금이라도 좀 더 철저하게 아들을 관리하며 바로잡아야 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상기는 그나마 자유분방했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 억울했지만 자기 잘못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 분풀이처럼 그는 더욱 아내의 몸을 탐닉했다.
결혼 4년 째 되던 해 시어머니는 금아에게 “백일기도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무신론자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금아는 절이나 교회를 가본 적도 없지만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했다.
“기도를 잘 받고 영험이 많은 절.”이라는 화동사는 강원도의 산골에 조그만 암자 같은 절이었다.
시어머니는 그전부터 절과 무당을 꽤 좋아하는 편으로 안동에서도 초하루와 보름이면 절을 찾았고 계절마다 집에서 굿을 했다.
그래서 동행한 시어머니는 산골의 암자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았지만 금아는 매일 백팔배를 하는 것도 힘들었고 내용도 알 수 없이 주문 같은 경문을 외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한달 쯤 지나자 ‘심묘장구대다라니’나 ‘반야심경’을 독송할 수 있었고 법회에서 주지의 법문도 가끔은 솔깃하게 들렸다.
“아가, 니는 경도날이 언제고?”
“네?”
아침밥상 앞에서 시어머니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을 때 금아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들 하는 달거리 말이다.”
아, 생리 ······ ! 말뜻은 알았지만 그녀는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것은 매달 지겹게 찾아오지만 여인들의 은밀한 행사다. 하지만 같은 여자고 지엄한 시어머니 앞이라 그녀는 대답했다.
“12일 쯤 시작해요.”
“경도를 거르거나 불규칙할 때는 없나?”
“네, 아직까지는요.”
며칠 후 그녀는 한밤중 치한의 습격을 받았다.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육중한 남자에게 짓눌려 있었고 한손으로 입을 막은 채 또 한손은 팬티를 벗기고 있었다. 이미 그런 경험을 겪은바 있는 금아는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읍, 읍!”
자갈을 물린 것 같은 입에서 비명은 맥이 없었지만 머리를 흔들자 잠시 느슨한 남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팬티는 어느새 벗겨져 있지만 발버둥을 치면서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
“아얏!”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남자가 고통으로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리를 낼 때 그녀는 힘껏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계속 쳐댔다. 포기한 남자가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일단 그녀는 안도했지만 밀려드는 공포는 여전했다.
그녀는 바로 붙어있는 시어머니의 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옆방에서 끔찍한 소동이 벌어진 것을 시어머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불빛에 눈이 시린 듯 찡그리며 일어난 시어머니에게 금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어머니, 어떤 남자가 저를 겁탈하려 했어요!”
“그래? 그기 누군데 ······ ?”
“어둠 속이라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그 남자는 우찌 됐노?”
“제가 깨물고 할퀴고 하니 도망갔어요. 그래도 아직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니가 욕봤구나. 오늘은 이 방에서 내캉 같이 자자. ······ 그런데 요상타. 이 심심산골에 도적놈이 있다 카는 기 ······ ”
강간범을 도적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생뚱맞지만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금아는 다음날도 시어머니와 함께 백일기도를 드렸고 잠도 함께 잤다. 이틀 째 되던 날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옆의 시어머니가 없었다. 다시 공포가 엄습하며 그녀는 바깥 동정을 살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길래 문을 살짝 열고 나와 보았다. 말소리는 객사의 옆담에서 들려왔다.
“······ 그래 큰 소리 치더니 아니, 병아리 같은 여자 하나 못 다루나?”
“사모님,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몇 대 쥐어박거나 목을 졸랐다면 쉽게 해결됐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 하여튼 움직이는 바늘에는 실을 꿸 수 없다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일은 없는 걸로 하고 입조심 몸조심하소.”
시어머니와 말을 나누던 상대는 기골이 장대했고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이 절의 상좌승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왼쪽 뺨에 반창고를 붙인 것이 보였다.
금아는 며칠 전 시어머니가 생리 이야기를 한 것도 떠올렸다. 그녀는 며느리의 배란기까지 계산한 것이다.
“니 지금 뭐하노?”
“집에 가려구요.”
“아니, 백일기도는 우쨔고 ······ ?”
아침에 짐을 싸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처음 화를 내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잘 아실텐데요!”
금아는 시집 와서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독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쏘아 부쳤다. 잠시 멍한 표정이던 시어머니는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아무 이의들 달지 않고 함께 짐을 싸서 하산했다.
“저, 친정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도착하자말자 며느리가 일방적으로 통고하듯 말할 때도 시어머니는 아무런 대응을 못했다. 그런데 금아는 친정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떠나온 화동사를 다시 찾은 것이다.
경찰관을 대동하고 갔을 때 상좌승은 절에 있었다. 몸조심해야 할 상대들이 떠났으므로 그는 마음을 놓았었다. 경찰의 심문에 우선 부인부터 했지만 손가락의 이빨자국과 얼굴의 상처에 대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그는 진땀을 흘리며 쩔쩔 매다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금아의 말에 백기를 들었다.
상좌승의 고백은 금아가 예상한 대로였다.
“며느리의 몸을 일단 범하고 만약 잉태를 하면 더 큰 사례를 하겠다는 권부자집 사모님의 말씀으로 이 일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금아는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상좌승의 자술서에 지장까지 받고 다시 그 절을 떠났다.
하루는 웬 남녀가 찾아와 “권부자를 만나야겠다.”며 사랑채에서 소란을 피웠다.
여인은 배가 불룩한 것이 출산이 가까운 임신부였고 함께 온 남자는 그녀의 오빠라는데 첫눈에도 건달처럼 보였다. 마침 병세도 상기도 출타중이었고 바깥이 시끄러운 것을 마님도 알게 되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인은 조연자라고 같은 안동에 사는 처녀였는데 상기와 이미 오래전부터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까지 하게 되었는데 두달 쯤 전부터 갑자기 발길을 끊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좋다고 실컷 재미를 볼 때는 언제고 ······ 여자를 이 꼴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오빠라는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마님이 어떻게 무마를 시켰는지 그들은 떠나갔지만 이 소동으로 80간 넓은 집에 기거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졌다.
“젊은 서방님이 첩을 두었고 애까지 곧 낳게 생겼다.”는 그 소문은 금아의 귀에도 들어갔다.
외출에서 돌아온 상기는 제 어머니와 한동안 밀담을 주고받은 뒤 금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내에게 뭔지 설명을 하려고 더듬더듬 말을 꺼내는데 금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 말을 막았다.
“당신이 마냥 정숙한 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집까지 찾아와서 소동을 피우니 정말 남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겠군요. 더구나 나는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나누어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를 정리하든지 나와 헤어지든지, 결정을 하세요. 그동안은 이 방도 절대 들어오지 못합니다.”
머쓱해진 상기는 그대로 방을 나가 한동안 안채를 찾지 않았다.
집안 전체에 냉기류가 감돌았다. 백일기도를 중간에 깨버리고 돌아온 후 박씨부인은 노골적으로 며느리를 홀대했다. 대놓고 꾸짖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 전체를 휘어잡을만큼 권위 있는 여인의 심통은 알게 모르게 금아를 압박했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났을 때 상기가 만취한 상태로 안채에 들어왔다.
금아를 끌어안고 옷을 벗기려는데 그녀는 반항했다. 결혼 이후 처음 있는 동침거부였다.
“야, 이년아! 네가 뭐 그리 대단해? 얼굴 좀 반반해봤자 보지맛도 형편없는 년이 ······ 하지만 나는 네 남편이니 그 맛없는 보지라도 먹어주겠다는 거야.”
상기는 그녀에게 따귀를 올려 부쳤다. 금아로서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서 욕설과 손찌검을 당한 것이고 그는 폭력을 쓰면서 야욕을 채우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없었다. 그제야 어젯밤 주정을 부린 것이 생각나 후회하면서 아내를 찾았다.그녀는 부엌에서 찬모들이 아침밥상 차리는 것을 감독하고 있었다.
“여보, 어제는 내가 정말 ······ ”
아내를 불러 내고 사과를 하려는데 그녀는 남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만 던졌다.
“당신, 다시 그런 짓 하면 나는 죽어요.”
그러나 불과 며칠 후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이날도 상기는 만취상태였다. 술이 취하면 객기가 나오는지 객기를 부리고 싶어 일부러 취했는지, 하여튼 그는 아내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하며 또 야욕을 채웠다.
새벽에 잠이 깬 그는 또 자신의 주정과 행패를 후회하며 한쪽에 쪼그린 채 자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게 살그머니 안방을 빠져나왔다.
“다시 그런 짓하면 나는 죽어요.”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낮에도 저녁에도 이튿날에도 슬금슬금 아내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아내는 죽지 않았을 뿐더러 평소와 행동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로서 안도했다.
두 번 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금아는 소문으로 들어왔던 안동시 외곽의 무당집을 찾았다.
그녀는 무당이 챙겨주는 몇가지 물건을 받아왔다. 그중 볏집으로 만든 인형에는 무당의 지시대로 바늘을 몇 개 꼽고 닭 피를 묻혔다. 그 인형들은 마당에 묻기도 하고 마루 밑에 밀어 넣기도 했다. 부적은 처마 끝에 쉽게 눈에 뜨이지 않도록 감추어 놓았고 사람 뼈 몇조각도 적당한 자리에 처리했다.
사흘 째 되던 날 금아는 별채의 석가래에 명주 끈을 걸고 목을 걸었다. 하인 하나가 발견해 목숨은 건졌지만 목의 조였던 상처는 열흘이 넘도록 남아 있었다. 발견이 조금만 늦었다면 불귀의 객이 될 번한 것이다.
금아의 품에서 봉투 하나가 발견되었다. 친정부모에게 보내는 짤막한 유서 한 장과 또 하나는 백일기도를 하다 중단한 화동사 상좌승이 쓴 자술서였다.
병세는 며느리의 자살기도도 충격적이지만 아내의 비행이 밝혀진 그 진술서 내용에 더 경학하고 분노했다.
“백년 전이었다면 임자는 이 가문에서 파문하고 곤장을 맞고 조리돌림을 당해야 마땅할 일이오.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다고 인륜을 어긴 범죄가 용서받을 수는 없는 거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만 그 일은 어찌했던 이 가문을 계승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 ”
병세도 그 심정은 이해한다. 사실 자신도 후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고 며느리가 잉태를 못하면 밖에서라도 하나 낳아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어떻든 이 일은 며느리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큰 사건이 일어난 판국에 다시 소란을 피울 수 없어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며칠 뒤 상기가 빈사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작은 사랑채에 묵고있는 상기가 늦은 아침까지 기침이 없어 하녀가 방문을 열어보니 가슴을 쥐어뜯으며 거의 의식이 없었다. 엠블란스로 병원에 가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의사는 “부정맥이 심해 잠시 가벼운 심장 발작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고 3일만에 퇴원했다.
박씨부인의 지시로 이 집의 단골인 한의가 왕진와서 진맥을 하고는 “몸이 허해서 그렇지, 다른 이상은 없다.”며 보약을 챙겨 보내겠다고 했다.
그 한의를 배웅하러 나오다 박씨부인은 댓돌에서 미끄러지며 한쪽 무릎뼈가 깨져 버렸다.
다음 날에는 곡간 하나가 몽땅 불에 탔다. 지난날에는 8백석이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였지만 요즘은 추수가 끝나면 바로 정미소로 보내기 때문에 다행이 곡간은 텅비어 있었다.
화재를 진압하고 소방관이 조사를 하는데 하인 하나가 “어젯밤 잠시 나와서 별구경을 하는 중 저 곳간 위로 도깨비불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소방관은 “도깨비불이란 반딧불처럼 열이 없이 빛만 나는 것이다.”라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화재 원인은 전기 누전이라고 결론을 냈다.
다시 며칠 후에는 병세의 벤츠 승용차가 논바닥에 쳐박히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주인은 타고 있지 않았다. 타이어를 갈러 가는 중에 난폭한 화물차를 피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는데 차는 꽤 크게 다쳤다.
60대로 보이는 장님 하나가 승용차에서 내려 하인의 손을 잡고 내실로 들어왔다.
“숙부인 마님, 소인 문안드립니다.”
장님은 안주인에게 큰 절을 했다.
“심판수, 어서 오이소. 그렇지 않아도 내가 찾아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다리를 다쳐 기동을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게 했소.”
“무슨 황공한 말씀을. 마님이 부르시면 천리길인들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수라고 불리는 그 방문객은 장님 점쟁이였다. 권부자집에서 30여리 떨어진 풍천면에 살고 있는데 점궤가 신통하다고 해 벌써 몇10년 째 박씨부인도 단골이었다. 해마다 정초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찾아가 점괘를 받아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리를 다쳐 집까지 승용차로 태워 데려온 것이다.
그녀가 먼저 요즘 집안이 좀 뒤숭숭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렇군요. 소인도 대문을 들어서며 집안 전체에 냉기가 덮여있는 것 같아 좀 으스스 했습니다. 우선 숙부인 마님의 신수부터 한번 볼까요?.”
그 말에 박씨부인은 오른 손을 내밀었다. 심판수는 보통 점을 볼 때 대통의 젓가락을 뽑거나 돌멩이를 상 위에 놓고 굴리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신수를 볼 때는 의원처럼 진맥을 하는 것이다.
“왜 이럴까?”
심판수는 백태가 끼고 볼 수도 없는 눈을 껌벅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와, 안 좋은겨?”
“글쎄요. 지난 정초에 뵈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 그래도 소인은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아서 ······ 참, 이 댁의 둘째 어른인 작은 마님도 안녕하시죠?”
박씨부인은 문앞에 대기하고 있는 하녀에게 작은 마님을 모셔오도록 시켰다. 금아는 처음 보는 손님인데 시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진맥을 마꼈다.
“아직도 삼재를 벗어나지 못했군요.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앞길은 다복하고 부귀영화가 가득합니다. 3년 안에 귀인을 만나게 될테니 그동안은 옥체를 잘 보전하옵소서.”
“아니, 갸는 지금도 서방이 두눈 뜨고 있는데 새로 만나는 귀인은 누구요? 새 남자라도 만난다는 거요?”
박씨부인이 참견을 했다. 자기 신수는 풀어주지도 않고 며느리에게 긴 말을 늘어놓는 것에 심통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소인이 말씀 드리는 것은 배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마님의 지아비는 분명 하나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귀인은 친정 부모님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하여튼 마님의 앞길에는 서광이 비칩니다.”
심판수는 갑자기 금아의 무릎 앞에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박씨부인도 금아도 이 돌발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다.
“작은 마님! 부디 마음을 푸시옵소서. 살다보면 중생의 삶이 업과 인연이 엉킨 실타래처럼 답답하기도 하지만 불심(佛心)으로 보면 한갓 스쳐가는 꿈이며 또 슬슬 풀려간답니다.”
금아는 곧 그 방을 나섰다. 백일기도도 처음이지만 점쟁이를 마주한 것도 처음이라 그 말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헛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심판수의 이상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는 박씨부인에게 그가 한마디로 말했다.
“작은 마님입니다.”
“뭐라꼬 ······ 지금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며느리 때문이라고 ······ ?”
심판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고, 근본도 없는 집안의 아를 우리 아들이 사고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는데 그게 요괴라니 ······ 알았소! 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 처리해야 겠구만.”
“숙부인 마님께서 직접 처리하신다니 어떻게 ······ ?”
“무슨 짓이라도 해야지. 심판수 말대로 우리집에 요괴가 있는데 그저 팔짱 끼고 있으라고 ······ ?”
“그럼 혹 작은 마님께 해꼬지라도 ······ ?”
“못할 건 뭐고? 필요하면 어떤 짓이든지 ······ ”
심판수는 보이지 않는 눈을 크게 떴다가 껌벅거린 후 말했다.
“큰 일 납니다. 숙부인 마님, 지금도 저렇게 기(氣)가 강한데 ······ ”
“보소! 저 액자는 ······ 아니, 심판수 눈에는 안보이겠지만 저게 헌종대왕님의 친필이고, 이 뒤의 병풍은 11대 시할머님이 정경부인 작호를 받을 때 순조대왕님이 하사하신 것이고, ······ 이 집에는 지금 상감님의 하사품도 일곱점이나 있소, 이렇게 이어온 가문과 전통의 영광을 14대 후손인 나도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거 아니오? 나랏님이 사직을 지키듯이 ······ ”
“하지만 숙부인 마님, 순리를 거스르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멸문(滅門)과 멸족(滅族) 까지도 ······ ”
“뭐라꼬 ······ ? 멸문 멸족이라니 ······ ”
“그렇습니다. 소인은 지금도 천기를 누설하는 것 같아 말을 꺼내기도 외경스럽습니다만은 숙부인 마님과는 몇10년 인연을 맺어 오고 늘 복채도 후하셨으니 소인이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부터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고 했습니다.”
박씨부인은 혼란스러웠다. 점쟁이의 말이 허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점괘에 미래를 예견하고 의지하려 했으니 그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날더러 우짜라고요?”
“숙부인 마님께서 우선 덕과 자비를 베푸십시오. 어찌됐건 액운이 풀리기 전에 이 집에서 송장이 나가면 안됩니다.”
“송장이라니 ······ ”
“이승에서 생을 다한 인간이지요. 이집 안에 있는 가족과 식솔들을 마님이 모두 건사하셔서 누구든 송장으로 이 집을 나가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댁의 멸문과 멸족도 막지 못합니다.”
박씨부인은 어쩌면 애매하게도 들리는한 그 말에서 불쑥 며느리를 떠 올렸다. 며느리는 바로 얼마전 이 집에서 송장으로 나갈 수도 있던 가족이었다.
심판수가 다녀간 뒤로 한동안 집안에는 평화와 온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박씨부인은 기브스를 하고 목발을 잡은 채 가끔 밖에 나와서 며느리에게 웃음을 보내며 “아가, 니는 좀 쉬거라.”라고 말을 건넸고, 감기가운이라도 있으면 급히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금아는 남편에게 시달림을 받지도 않았다. 상기는 사실 그녀가 앞에서 가랑이를 벌려줘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새 한약도 먹어봤지만 그는 여전히 제 몸도 못가누는 환자였다.
이제 금아는 누구에게 핍박을 받거나 미움과 무시를 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의 일상은 한마디로 편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와도 같았다.
애증(愛憎)의 기폭도 없고 감정의 교류도 없는 그 환경은 삭막하고 공허했으며 그래서 더욱 질식할 것 같았다.
금아는 다시 목을 맸다. 다행히 이번에는 바로 발견되어 첫 시도 때처럼 목에 오랜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이집 큰 마님의 지시로 그녀에게는 거의 24시간 감시의 눈초리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두 번 째 자살을 시도한 것에 병세는 아들부부를 이혼시키기로 작정했다.
사돈의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을 때 송만석은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나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반가운 소식을 전할 리는 없는 것이다.
병세를 만났을 때 만석은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식사나 하시자.”고 했지만 사돈은 “조용한데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래서 읍내 단골다방의 구석자리에 마주 앉았는데 어렵게 말을 꺼낸 사돈이 하고자 하는 말은 딸의 이혼문제였다.
“아니, 당신의 그 잡놈새끼가 내 딸한테 그런 못된 짓을 하고, 그때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더니 이제 급한 불은 껐다고 단물 빼먹고 버리겠다는 기가?”
사돈의 말을 끊고 만석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그 잡놈새끼가 빵간에 가서 썩도록 놔둬야 하는 긴데 인간이 불쌍해 봐줬더니 이렇게 뒷덜미를 칠 수 있나? 이 망할놈의 인간 말종들 깉으니 ······ ”
권부자집 주인은 어쩌면 이런 폭언을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고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기에 더욱 제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며늘아기가 제 자식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왔고 그런 따님을 보내주신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따님의 목숨과도 관련된 일이라 ······ 며늘아기가 저희 집에서 두 번이나 자진을 하려 했습니다.”
자진 ······ ? 자살 ······ ? 내 딸이 ······ ? ······ 만석이 그 말을 이해하려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병세가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금아가 처음 자살을 시도했을 때 써놓은 유서였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 소녀는 이제 세상을 하직하려 합니다. 부모님의 하해 같은 은혜의 만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다만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이승의 인연이라면 두분은 먼저 떠난 저를 꾸짖으시고 하루 빨리 잊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마지막 저의 부탁도 받아주세요. ······ 금아 올림>
내용은 짤막했고 시집간 후 1년에 두세번씩 받아보았던 안부편지의 글씨체와 똑같았다.
만석은 망자의 유서를 보는 듯 그 짧은 글을 보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사장 어른!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내 딸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가장인 제가 가정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한 불찰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도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고부간의 불화가 원인이겠지만, ······ 부부유별이라고 아낙들의 일은 제가 거의 간섭을 안 했고, 부자유친이라지만 요즘 젊은애들하고 사실 소통도 안되고 ······ 가장 큰 문제는 제가 며늘아기를 완벽하게 지켜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막내딸의 목숨이 걸린 문제는 이혼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결국 만석은 이혼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만 지난날 강간고소 때 위자료를 포기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사돈이 제시한 거액의 위자료를 그냥 받기로 했다.
딸을 데리러 세 번 째로 안동의 권부자집을 찾았을 때 금아는 차디찬 표정마저 외면한 채 말했다.
“저는 이미 출가외인이예요. 아버지가 참견하실 일도 아니고 저는 권씨 집안의 귀신이 될거예요.”
만석은 그 자리에서 딸을 껴안고 통곡을 했다.
“이 짜슥아! 니가 내한테 어떤 딸인줄 아나? 내는 니한테 별로 해준 것이 없다. 하지만 니한테 뭘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니는 언제나 내한테 먼저 준 기라. 니는 내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변변찮은 내가 우째 이런 선물을 받았는지 ······ 별을 보고 땅을 볼 때도 나는 감사했다. 어여 집에 가자. 이제사 내가 그 보답처럼 니를 잘 보살필 기다.”
그 다짐은 깨져 버렸다. 딸은 친정에 온지 석달만에 다시 자살을 기도했고 6개월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 굴곡진 삶은 친정 아버지뿐 아니라 혈육 모두에게 슬픔이며 부담이었다.
뭇사람의 관심을 끌며 화려하고 뻐쩍지근한 결혼식을 올린 뒤 금아는 새로운 생활에 그런대로 잘 적응한 셈이었다.
5박6일간의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상기와 금아는 우선 사당에 인사를 올리고 시부모 앞에도 큰 절을 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주렁주렁한 열쇠꾸러미 중 3개를 꺼내어 금아에게 건네주었다. 그 열쇠는 곳간과 뒤주, 제기그릇이 있는 광의 열쇠였는데 실속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시어머니 역시 시집 와서 그 열쇠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이름이 박점순, 밀양박씨 중 전농공파의 후손으로 몇 대 선조 중에는 영의정과 판서, 부사도 있는 꽤 뼈대 있는 집안의 규수로 19살에 권부자집으로 시집왔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었다.
이 집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없었고 경상도에서는 결혼한 여인들이 거의 택호(宅號)로 불리우지만 그녀는 열외였다. 집안에서는 ‘마님’, ‘큰 마님’, 혹은 ‘숙부인님’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숙부인은 정3품으로 조정에서 작호를 받은 여인을 부르는 것으로 그녀가 사는 시대에 그런 절차는 없었을 테인데도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어떻든 그녀는 명문대가의 안주인답게 곱게 늙었으면서도 기품과 권위가 몸에 배인 것 같았다.
금아는 결혼식을 갖기 전부터 “처음 3년동안은 시집에서 기거하며 가풍과 법도를 익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은 그때도 서울의 식품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그들 부부는 신혼 초부터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거부감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왕비나 후궁으로 간택을 받았다면 그 영예와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겠지만, 반대급부처럼 많은 속박과 제한도 따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구중궁궐에서 상감 하나만 우러러 보며 사는 왕비보다 현실적으로 나은 편이었다.
그래도 종가집의 주어진 일은 많았다.
아침 저녁으로 시부모에게 문안인사를 드려야 했고, 한달이 멀다않고 찾아오는 기제사도 치러야 했다. 이제 머슴이나 몸종이라는 명칭은 없어졌지만 수십명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지휘하는 일도 참여해야 했다.
집안 일은 거의 시어머니가 주도했지만 금아도 ‘작은 마님’으로서 차츰 일상사와 이 집의 법도에 익숙해져 갔다. 물론 그 중에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거부감 없이 모두 순응했다.
그중 한 예가 식사예절이었다.
그녀는 시집온 뒤로 이 집에서 남편이나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남녀유별은 특히 밥상에 철저해서 남자들은 사랑채에서 여인들은 안채에서 따로 먹는 것이다.
약혼기간 중에 병세는 서울에 오면 가끔 며느리감을 불러내어 호텔의 식당이나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에서 담소하며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시집에서도 어쩌다 가족이 외식을 하게 되면 시부모, 남편과 한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항상 남자 따로, 여인 따로였다.
시집살이가 마냥 고되고 따분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금아는 다시 캔버스를 마주하지 않았지만 대신 동양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수묵화에 맛을 들였다.
마침 안동에는 국전 심사위원도 역임하고 화단에 꽤 이름이 알려진 70대의 동양화가가 살고 있었다. 풍곡이라는 아호를 쓰는 이 노인은 금아를 기꺼이 문하생으로 받아주었다.
틈이 나면 시어머니는 수를 놓았지만, 금아는 사군자를 치며 간결한 붓놀림에 피어나는 난초와 매화, 그리고 여백(餘白)의 매력에 빠져 들어갔다.
섹스는 물론 신혼부부에게 중요한 일상사의 하나였다.
금아는 대학 2학년 때 강간을 당하며 처녀막을 상실했다지만 그 후 약혼기간에도 철저히 수절(守節)하며 몸을 지켜왔다.
혼례식을 치루고 화도의 그녀 집에서 첫날밤을 치루는 것이 그녀로서는 두 번 째 남자와의 경험이었다.
첫 번 째 경험과는 많이 틀렸다. 비록 수동적이었지만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 되어 어떤 거부감도 없이 남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날 신랑은 아무래도 장소가 불편했는지 한차례의 섹스만으로 끝냈다.
그러나 하와이 신혼여행지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비행시간을 빼고 4일간 호텔에 숙박하면서 신랑은 약혼기간 중에도 굶을 수밖에 없었던 욕구를 한꺼번에 찾아 먹겠다는 듯 주야장창 씹만 해댔다.
창문 너머에는 와이키키 해변과 수려한 풍광이 보이지만 그들은 해변을 한번 거닐어 보지도 못했다. 객실에서 4일동안 거의 알몸 상태로 20회 이상을 한 것 같았다. 금아는 섹스가 끝난 후 한두번 옷을 챙겨 입었지만 곧 다시 벗어야 되기에 나중에는 아예 포기했다.
귀국 비행기를 탔을 때 보지는 팅팅 붓고 속은 쓰라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의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만 오는 신랑은 또 며칠동안의 금욕을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 듯 저녁식사가 끝나자말자 서둘러 좆을 들이밀었다. 주말이면 하룻밤에 3~4회 씩은 기본이었다.
이러한 남편의 넘치는 성욕과 맹렬한 공격을 그녀는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늘 남편이 요구해 오면 스스로 옷을 벗고 가랑이를 벌렸다.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녀는 결혼한 여인이면 다른 집안일에도 순종해왔듯 당연히 남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섹스를 하면서도 그녀는 환희를 느낀다거나 점점 익숙해져가는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늘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이었으며 주말이 다가오고 밤을 맞는다는 것이 그녀는 무섭고 싫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강간을 당한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지금도 거부하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려 받아들이는 남편이 바로 그때 강간의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첫날밤을 치룰 때, 바로 그녀의 두 번 째 남자 경험도 그녀에게는 쓰디쓴 기억으로 남아있다.
화촉동방의 불이 꺼지고 신방은 암흑이었는데 마침 보름께라 밖의 달빛이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작대기같은 빛살로 방안에 스며들었다. 첫날밤을 훔쳐본다고 몇사람이 장난을 친 것이다.
“저기 누군가가 ······ ?”
알몸이 된 수줍음 속에서 그녀는 깜짝 놀라 작은 소리고 신랑에게 말했다.
“하 하, 저건 그저 전해오는 풍습일 뿐이야.”
신랑은 겁에 질린 신부을 무시하고 그대로 좆을 꼽았다. 신방에는 병풍이 쳐있고 이불을 덮었으며 여전히 방은 깜깜해서 사실 남들에게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금아는 창호지 구멍으로 스며든 빛살을 보며 강간을 당할 때 그녀를 지켜본 눈동자가 생각났다. 지금의 남편이 데려온 똘마니 둘은 그때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신혼여행지에서 그 광란의 씹질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더욱 증폭시키고 고질병으로 정착하게 했다.
이같은 금아의 증세를 남편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폭력과 무지에서 비롯된 아내의 상처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좀 별스런 여자로 치부한 것이다.
상기는 호색한을 자처할만큼 색을 밝히면서 자신이 여인을 능숙하게 다루며 대부분의 여인들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말하자면 그저 방종한 망나니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어릴적부터 부모 말을 잘 안 듣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병세는 4대 독자인 권부자집의 후계자를 자신이 선조들에게 받았던 가정교육처럼 근검절약하면서도 강건한 아들로 키우려 해다.
그러나 이런 목표가 어긋난 데에는 상기의 어머니 박씨부인의 빗나간 모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시집와서 3남1녀를 낳았는데 손이 귀한 집이라 그런지 두아들과 딸을 잃고 겨우 막내 상기만 남았다.
그래서 더욱 이 외아들에게는 모든 것이 오냐 오냐였다. 남자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이 가문의 오랜 전통이지만 그녀는 이 못된 아들에게도 그 전통을 적용한 셈이다. 그래서 아들의 잘못이나 어긋난 버릇도 싸고 돌았다.
특히 상기가 여자를 알게되면서 그 방종은 여자편력과 환락으로 쏠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의 30대 하녀에게 동정을 떼인 후 그의 주변에는 늘 씹을 할 수 있는 여인들이 많았다. 20대의 부엌데기에서 50대의 침모까지 고용된 여인들이 우선 그의 먹잇감이었다.
중학교까지만 안동에서 다니고 서울로 유학한 그는 고교생 신분으로도 창녀촌을 드나들었고, 방학 중에는 고향의 여학생들도 많이 따먹었다. 용모나 허우대는 멀쩡했고 권부자집 외아들이라는 상표에 여학생들은 쉽게 옷을 벗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그의 여성편력은 더욱 화려해졌다.
병세는 아들의 용돈도 엄격하게 관리했는데 박씨부인은 아들이 조르는 대로 언제나 아버지가 주는 용돈의 2배 이상을 뒤로 주어 그의 여성편력은 더욱 쉬워졌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급차를 캠퍼스 안까지 몰고 다녔고 고급 옷에 돈도 잘 쓰는 그에게 퍽 많은 여대생들이 쉽게 넘어갔다.
더러 녹녹하지 않으면 비싼 선물공세를 펴며 더 공을 들이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강제로 범한다. 송금아도 그런 케이스의 하나였다.
그의 적지 않은 강간 경험에서 여인의 반응은 두가지다. 피해 버리거나 오히려 더 달라붙는 것이다.
송금아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캠퍼스 안에서 선배에게 당했으니 여인 쪽에서 창피해 쉬쉬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된 것은 바로 전화위복이며 운명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용모는 뛰어났고 매력적이다. 난생 처음 수갑을 차고 유치장 생활까지 해보면서 얻은 아내이기에 더욱 값진 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섹스에서 여전히 숫처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그녀가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아내는 불감증이다. 책도 보고 남들의 경험담도 참고 삼아 그는 아내의 성감을 개발하는데도 공을 들였다.
체위도 이리저리 바꾸어 보고, 포르노 테이프도 틀어주고, 남성용 여성용의 섹스용품도 사용해보고, 몰래 흥분제라는 것도 먹여보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오히려 아내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올 뿐이었다.
언제나 순순히 옷을 벗고 가랑이는 벌리는데 그 다음은 전혀 호응이 없는 것이다. 그는 차차 불만이 쌓여갔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날 상기는 고향친구 7~8명과 술을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대화의 주제는 금아의 미모에 대한 것으로 옮아갔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흔히 있었던 현상이다. 그런데 이날은 상기가 먼저 반발을 했다.
“야들아! 이 자리에 저 병구, 민수, 광철이는 아직 총각이제? 내가 선배, 경험자로서 한마디 해준다. 느그는 장가갈 때 절대로 여자 얼굴 찾지 마라. 돼지 얼굴 보고 잡아 묵나? 그저 살집 좋고 색 잘 쓰마 그게 장뗑인 기라.”
상기는 서울생활을 오래 하며 평소 서울말을 썼지만 고향에 돌아오면 경상도 사투리가 편했다.
“와, 니 마누라는 밤일이 시원찮나?”
“말도 마라. 목석도 그런 목석은 ······ 얼굴 잘 난 가시나들은 꼭 지 얼굴값을 할라 칸다 카이. 그런 여자 상대하기 보다는 살집 좋은 고기 묵는 기 훨씬 알차제.”
“임마야, 피리도 장인이 불마 천상의 곡조가 나오지만 돌팔이가 불마 소리도 안 난다 아이가. 니가 돌팔이라 그런 거 아이가?”
“짜슥아. 내가 맛본 여자가 한둘이가? 세워 놓으마 느그 집까지도 갈끼다. 그런데 그 가시나들은 모두 닐리리 닐리리 울어대는데 마누라는 아직도 먹통인 기라.”
“그기 니 기술의 한계겠제. 나한테 하룻밤 좀 빌려줄래? 내가 소리 잘나는 피리로 만들어 줄게.”
“뭐라고 ······ ? 이 새끼가 ······ ”
상기는 술병을 들어 그 친구의 머리를 내리쳤고 선혈이 낭자했다. 이 일이 사건화 되었다면 상기는 흉기를 사용한 특별범죄처벌법의 가중 대상이 되어 중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피해자가 친구의 아내를 먼저 모욕했다는 약점이 있어 친구들의 중재로 유야무야 되었다. 꽤 많은 액수의 치료비를 물어주기는 했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상기의 아내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싸여갔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 부부는 잘 빚어진 도자기 같았지만 안으로 눈에 안보이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또 하나 부부간의 문제는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금아도 4대 독자의 집에 들어왔으니 빨리 후손을 낳아줘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시부모들의 기다림은 더 간절한 것 같았다.
1년이 지났을 때 박씨부인은 그녀를 서울의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당연히 ”남편도 함깨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상기가 펄쩍 뛰며 거부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2년 째 접어들며 그녀는 입덧을 했고 배도 조금씩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진찰을 해보니 그것은 상상임신이었다. 그만큼 금아는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시집살이의 계약기간인 3년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상기는 이제 서울에서 단둘이 살면 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오붓한 분위기에서 아내의 불감증을 고쳐야겠다며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방종한 망나니는 그 새를 못 참고 사고를 저질렀다. 그가 몰던 자동차가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려 병세가 상경해서 보니 상기는 만취한 상태에서 전봇대를 들이받았고, 차가 박살이 나며 상기는 4주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나 조수석에 동승한 여인은 중상이었고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더구나 그 여인은 상기가 서울의 현지처처럼 동거중이었다.
병세는 크게 노했다. 며느리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아들은 회사도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데려왔다. 지금이라도 좀 더 철저하게 아들을 관리하며 바로잡아야 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상기는 그나마 자유분방했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 억울했지만 자기 잘못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 분풀이처럼 그는 더욱 아내의 몸을 탐닉했다.
결혼 4년 째 되던 해 시어머니는 금아에게 “백일기도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무신론자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금아는 절이나 교회를 가본 적도 없지만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했다.
“기도를 잘 받고 영험이 많은 절.”이라는 화동사는 강원도의 산골에 조그만 암자 같은 절이었다.
시어머니는 그전부터 절과 무당을 꽤 좋아하는 편으로 안동에서도 초하루와 보름이면 절을 찾았고 계절마다 집에서 굿을 했다.
그래서 동행한 시어머니는 산골의 암자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았지만 금아는 매일 백팔배를 하는 것도 힘들었고 내용도 알 수 없이 주문 같은 경문을 외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한달 쯤 지나자 ‘심묘장구대다라니’나 ‘반야심경’을 독송할 수 있었고 법회에서 주지의 법문도 가끔은 솔깃하게 들렸다.
“아가, 니는 경도날이 언제고?”
“네?”
아침밥상 앞에서 시어머니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을 때 금아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들 하는 달거리 말이다.”
아, 생리 ······ ! 말뜻은 알았지만 그녀는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것은 매달 지겹게 찾아오지만 여인들의 은밀한 행사다. 하지만 같은 여자고 지엄한 시어머니 앞이라 그녀는 대답했다.
“12일 쯤 시작해요.”
“경도를 거르거나 불규칙할 때는 없나?”
“네, 아직까지는요.”
며칠 후 그녀는 한밤중 치한의 습격을 받았다.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육중한 남자에게 짓눌려 있었고 한손으로 입을 막은 채 또 한손은 팬티를 벗기고 있었다. 이미 그런 경험을 겪은바 있는 금아는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읍, 읍!”
자갈을 물린 것 같은 입에서 비명은 맥이 없었지만 머리를 흔들자 잠시 느슨한 남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팬티는 어느새 벗겨져 있지만 발버둥을 치면서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
“아얏!”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남자가 고통으로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리를 낼 때 그녀는 힘껏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계속 쳐댔다. 포기한 남자가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일단 그녀는 안도했지만 밀려드는 공포는 여전했다.
그녀는 바로 붙어있는 시어머니의 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옆방에서 끔찍한 소동이 벌어진 것을 시어머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불빛에 눈이 시린 듯 찡그리며 일어난 시어머니에게 금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어머니, 어떤 남자가 저를 겁탈하려 했어요!”
“그래? 그기 누군데 ······ ?”
“어둠 속이라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그 남자는 우찌 됐노?”
“제가 깨물고 할퀴고 하니 도망갔어요. 그래도 아직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니가 욕봤구나. 오늘은 이 방에서 내캉 같이 자자. ······ 그런데 요상타. 이 심심산골에 도적놈이 있다 카는 기 ······ ”
강간범을 도적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생뚱맞지만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금아는 다음날도 시어머니와 함께 백일기도를 드렸고 잠도 함께 잤다. 이틀 째 되던 날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옆의 시어머니가 없었다. 다시 공포가 엄습하며 그녀는 바깥 동정을 살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길래 문을 살짝 열고 나와 보았다. 말소리는 객사의 옆담에서 들려왔다.
“······ 그래 큰 소리 치더니 아니, 병아리 같은 여자 하나 못 다루나?”
“사모님,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몇 대 쥐어박거나 목을 졸랐다면 쉽게 해결됐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 하여튼 움직이는 바늘에는 실을 꿸 수 없다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일은 없는 걸로 하고 입조심 몸조심하소.”
시어머니와 말을 나누던 상대는 기골이 장대했고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이 절의 상좌승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왼쪽 뺨에 반창고를 붙인 것이 보였다.
금아는 며칠 전 시어머니가 생리 이야기를 한 것도 떠올렸다. 그녀는 며느리의 배란기까지 계산한 것이다.
“니 지금 뭐하노?”
“집에 가려구요.”
“아니, 백일기도는 우쨔고 ······ ?”
아침에 짐을 싸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처음 화를 내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잘 아실텐데요!”
금아는 시집 와서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독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쏘아 부쳤다. 잠시 멍한 표정이던 시어머니는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아무 이의들 달지 않고 함께 짐을 싸서 하산했다.
“저, 친정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도착하자말자 며느리가 일방적으로 통고하듯 말할 때도 시어머니는 아무런 대응을 못했다. 그런데 금아는 친정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떠나온 화동사를 다시 찾은 것이다.
경찰관을 대동하고 갔을 때 상좌승은 절에 있었다. 몸조심해야 할 상대들이 떠났으므로 그는 마음을 놓았었다. 경찰의 심문에 우선 부인부터 했지만 손가락의 이빨자국과 얼굴의 상처에 대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그는 진땀을 흘리며 쩔쩔 매다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금아의 말에 백기를 들었다.
상좌승의 고백은 금아가 예상한 대로였다.
“며느리의 몸을 일단 범하고 만약 잉태를 하면 더 큰 사례를 하겠다는 권부자집 사모님의 말씀으로 이 일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금아는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상좌승의 자술서에 지장까지 받고 다시 그 절을 떠났다.
하루는 웬 남녀가 찾아와 “권부자를 만나야겠다.”며 사랑채에서 소란을 피웠다.
여인은 배가 불룩한 것이 출산이 가까운 임신부였고 함께 온 남자는 그녀의 오빠라는데 첫눈에도 건달처럼 보였다. 마침 병세도 상기도 출타중이었고 바깥이 시끄러운 것을 마님도 알게 되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인은 조연자라고 같은 안동에 사는 처녀였는데 상기와 이미 오래전부터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까지 하게 되었는데 두달 쯤 전부터 갑자기 발길을 끊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좋다고 실컷 재미를 볼 때는 언제고 ······ 여자를 이 꼴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오빠라는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마님이 어떻게 무마를 시켰는지 그들은 떠나갔지만 이 소동으로 80간 넓은 집에 기거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졌다.
“젊은 서방님이 첩을 두었고 애까지 곧 낳게 생겼다.”는 그 소문은 금아의 귀에도 들어갔다.
외출에서 돌아온 상기는 제 어머니와 한동안 밀담을 주고받은 뒤 금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내에게 뭔지 설명을 하려고 더듬더듬 말을 꺼내는데 금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 말을 막았다.
“당신이 마냥 정숙한 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집까지 찾아와서 소동을 피우니 정말 남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겠군요. 더구나 나는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나누어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를 정리하든지 나와 헤어지든지, 결정을 하세요. 그동안은 이 방도 절대 들어오지 못합니다.”
머쓱해진 상기는 그대로 방을 나가 한동안 안채를 찾지 않았다.
집안 전체에 냉기류가 감돌았다. 백일기도를 중간에 깨버리고 돌아온 후 박씨부인은 노골적으로 며느리를 홀대했다. 대놓고 꾸짖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 전체를 휘어잡을만큼 권위 있는 여인의 심통은 알게 모르게 금아를 압박했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났을 때 상기가 만취한 상태로 안채에 들어왔다.
금아를 끌어안고 옷을 벗기려는데 그녀는 반항했다. 결혼 이후 처음 있는 동침거부였다.
“야, 이년아! 네가 뭐 그리 대단해? 얼굴 좀 반반해봤자 보지맛도 형편없는 년이 ······ 하지만 나는 네 남편이니 그 맛없는 보지라도 먹어주겠다는 거야.”
상기는 그녀에게 따귀를 올려 부쳤다. 금아로서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서 욕설과 손찌검을 당한 것이고 그는 폭력을 쓰면서 야욕을 채우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없었다. 그제야 어젯밤 주정을 부린 것이 생각나 후회하면서 아내를 찾았다.그녀는 부엌에서 찬모들이 아침밥상 차리는 것을 감독하고 있었다.
“여보, 어제는 내가 정말 ······ ”
아내를 불러 내고 사과를 하려는데 그녀는 남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만 던졌다.
“당신, 다시 그런 짓 하면 나는 죽어요.”
그러나 불과 며칠 후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이날도 상기는 만취상태였다. 술이 취하면 객기가 나오는지 객기를 부리고 싶어 일부러 취했는지, 하여튼 그는 아내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하며 또 야욕을 채웠다.
새벽에 잠이 깬 그는 또 자신의 주정과 행패를 후회하며 한쪽에 쪼그린 채 자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게 살그머니 안방을 빠져나왔다.
“다시 그런 짓하면 나는 죽어요.”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낮에도 저녁에도 이튿날에도 슬금슬금 아내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아내는 죽지 않았을 뿐더러 평소와 행동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로서 안도했다.
두 번 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금아는 소문으로 들어왔던 안동시 외곽의 무당집을 찾았다.
그녀는 무당이 챙겨주는 몇가지 물건을 받아왔다. 그중 볏집으로 만든 인형에는 무당의 지시대로 바늘을 몇 개 꼽고 닭 피를 묻혔다. 그 인형들은 마당에 묻기도 하고 마루 밑에 밀어 넣기도 했다. 부적은 처마 끝에 쉽게 눈에 뜨이지 않도록 감추어 놓았고 사람 뼈 몇조각도 적당한 자리에 처리했다.
사흘 째 되던 날 금아는 별채의 석가래에 명주 끈을 걸고 목을 걸었다. 하인 하나가 발견해 목숨은 건졌지만 목의 조였던 상처는 열흘이 넘도록 남아 있었다. 발견이 조금만 늦었다면 불귀의 객이 될 번한 것이다.
금아의 품에서 봉투 하나가 발견되었다. 친정부모에게 보내는 짤막한 유서 한 장과 또 하나는 백일기도를 하다 중단한 화동사 상좌승이 쓴 자술서였다.
병세는 며느리의 자살기도도 충격적이지만 아내의 비행이 밝혀진 그 진술서 내용에 더 경학하고 분노했다.
“백년 전이었다면 임자는 이 가문에서 파문하고 곤장을 맞고 조리돌림을 당해야 마땅할 일이오.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다고 인륜을 어긴 범죄가 용서받을 수는 없는 거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만 그 일은 어찌했던 이 가문을 계승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 ”
병세도 그 심정은 이해한다. 사실 자신도 후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고 며느리가 잉태를 못하면 밖에서라도 하나 낳아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어떻든 이 일은 며느리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큰 사건이 일어난 판국에 다시 소란을 피울 수 없어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며칠 뒤 상기가 빈사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작은 사랑채에 묵고있는 상기가 늦은 아침까지 기침이 없어 하녀가 방문을 열어보니 가슴을 쥐어뜯으며 거의 의식이 없었다. 엠블란스로 병원에 가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의사는 “부정맥이 심해 잠시 가벼운 심장 발작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고 3일만에 퇴원했다.
박씨부인의 지시로 이 집의 단골인 한의가 왕진와서 진맥을 하고는 “몸이 허해서 그렇지, 다른 이상은 없다.”며 보약을 챙겨 보내겠다고 했다.
그 한의를 배웅하러 나오다 박씨부인은 댓돌에서 미끄러지며 한쪽 무릎뼈가 깨져 버렸다.
다음 날에는 곡간 하나가 몽땅 불에 탔다. 지난날에는 8백석이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였지만 요즘은 추수가 끝나면 바로 정미소로 보내기 때문에 다행이 곡간은 텅비어 있었다.
화재를 진압하고 소방관이 조사를 하는데 하인 하나가 “어젯밤 잠시 나와서 별구경을 하는 중 저 곳간 위로 도깨비불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소방관은 “도깨비불이란 반딧불처럼 열이 없이 빛만 나는 것이다.”라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화재 원인은 전기 누전이라고 결론을 냈다.
다시 며칠 후에는 병세의 벤츠 승용차가 논바닥에 쳐박히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주인은 타고 있지 않았다. 타이어를 갈러 가는 중에 난폭한 화물차를 피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는데 차는 꽤 크게 다쳤다.
60대로 보이는 장님 하나가 승용차에서 내려 하인의 손을 잡고 내실로 들어왔다.
“숙부인 마님, 소인 문안드립니다.”
장님은 안주인에게 큰 절을 했다.
“심판수, 어서 오이소. 그렇지 않아도 내가 찾아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다리를 다쳐 기동을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게 했소.”
“무슨 황공한 말씀을. 마님이 부르시면 천리길인들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수라고 불리는 그 방문객은 장님 점쟁이였다. 권부자집에서 30여리 떨어진 풍천면에 살고 있는데 점궤가 신통하다고 해 벌써 몇10년 째 박씨부인도 단골이었다. 해마다 정초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찾아가 점괘를 받아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리를 다쳐 집까지 승용차로 태워 데려온 것이다.
그녀가 먼저 요즘 집안이 좀 뒤숭숭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렇군요. 소인도 대문을 들어서며 집안 전체에 냉기가 덮여있는 것 같아 좀 으스스 했습니다. 우선 숙부인 마님의 신수부터 한번 볼까요?.”
그 말에 박씨부인은 오른 손을 내밀었다. 심판수는 보통 점을 볼 때 대통의 젓가락을 뽑거나 돌멩이를 상 위에 놓고 굴리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신수를 볼 때는 의원처럼 진맥을 하는 것이다.
“왜 이럴까?”
심판수는 백태가 끼고 볼 수도 없는 눈을 껌벅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와, 안 좋은겨?”
“글쎄요. 지난 정초에 뵈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 그래도 소인은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아서 ······ 참, 이 댁의 둘째 어른인 작은 마님도 안녕하시죠?”
박씨부인은 문앞에 대기하고 있는 하녀에게 작은 마님을 모셔오도록 시켰다. 금아는 처음 보는 손님인데 시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진맥을 마꼈다.
“아직도 삼재를 벗어나지 못했군요.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앞길은 다복하고 부귀영화가 가득합니다. 3년 안에 귀인을 만나게 될테니 그동안은 옥체를 잘 보전하옵소서.”
“아니, 갸는 지금도 서방이 두눈 뜨고 있는데 새로 만나는 귀인은 누구요? 새 남자라도 만난다는 거요?”
박씨부인이 참견을 했다. 자기 신수는 풀어주지도 않고 며느리에게 긴 말을 늘어놓는 것에 심통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소인이 말씀 드리는 것은 배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마님의 지아비는 분명 하나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귀인은 친정 부모님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하여튼 마님의 앞길에는 서광이 비칩니다.”
심판수는 갑자기 금아의 무릎 앞에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박씨부인도 금아도 이 돌발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다.
“작은 마님! 부디 마음을 푸시옵소서. 살다보면 중생의 삶이 업과 인연이 엉킨 실타래처럼 답답하기도 하지만 불심(佛心)으로 보면 한갓 스쳐가는 꿈이며 또 슬슬 풀려간답니다.”
금아는 곧 그 방을 나섰다. 백일기도도 처음이지만 점쟁이를 마주한 것도 처음이라 그 말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헛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심판수의 이상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는 박씨부인에게 그가 한마디로 말했다.
“작은 마님입니다.”
“뭐라꼬 ······ 지금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며느리 때문이라고 ······ ?”
심판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고, 근본도 없는 집안의 아를 우리 아들이 사고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는데 그게 요괴라니 ······ 알았소! 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 처리해야 겠구만.”
“숙부인 마님께서 직접 처리하신다니 어떻게 ······ ?”
“무슨 짓이라도 해야지. 심판수 말대로 우리집에 요괴가 있는데 그저 팔짱 끼고 있으라고 ······ ?”
“그럼 혹 작은 마님께 해꼬지라도 ······ ?”
“못할 건 뭐고? 필요하면 어떤 짓이든지 ······ ”
심판수는 보이지 않는 눈을 크게 떴다가 껌벅거린 후 말했다.
“큰 일 납니다. 숙부인 마님, 지금도 저렇게 기(氣)가 강한데 ······ ”
“보소! 저 액자는 ······ 아니, 심판수 눈에는 안보이겠지만 저게 헌종대왕님의 친필이고, 이 뒤의 병풍은 11대 시할머님이 정경부인 작호를 받을 때 순조대왕님이 하사하신 것이고, ······ 이 집에는 지금 상감님의 하사품도 일곱점이나 있소, 이렇게 이어온 가문과 전통의 영광을 14대 후손인 나도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거 아니오? 나랏님이 사직을 지키듯이 ······ ”
“하지만 숙부인 마님, 순리를 거스르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멸문(滅門)과 멸족(滅族) 까지도 ······ ”
“뭐라꼬 ······ ? 멸문 멸족이라니 ······ ”
“그렇습니다. 소인은 지금도 천기를 누설하는 것 같아 말을 꺼내기도 외경스럽습니다만은 숙부인 마님과는 몇10년 인연을 맺어 오고 늘 복채도 후하셨으니 소인이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부터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고 했습니다.”
박씨부인은 혼란스러웠다. 점쟁이의 말이 허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점괘에 미래를 예견하고 의지하려 했으니 그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날더러 우짜라고요?”
“숙부인 마님께서 우선 덕과 자비를 베푸십시오. 어찌됐건 액운이 풀리기 전에 이 집에서 송장이 나가면 안됩니다.”
“송장이라니 ······ ”
“이승에서 생을 다한 인간이지요. 이집 안에 있는 가족과 식솔들을 마님이 모두 건사하셔서 누구든 송장으로 이 집을 나가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댁의 멸문과 멸족도 막지 못합니다.”
박씨부인은 어쩌면 애매하게도 들리는한 그 말에서 불쑥 며느리를 떠 올렸다. 며느리는 바로 얼마전 이 집에서 송장으로 나갈 수도 있던 가족이었다.
심판수가 다녀간 뒤로 한동안 집안에는 평화와 온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박씨부인은 기브스를 하고 목발을 잡은 채 가끔 밖에 나와서 며느리에게 웃음을 보내며 “아가, 니는 좀 쉬거라.”라고 말을 건넸고, 감기가운이라도 있으면 급히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금아는 남편에게 시달림을 받지도 않았다. 상기는 사실 그녀가 앞에서 가랑이를 벌려줘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새 한약도 먹어봤지만 그는 여전히 제 몸도 못가누는 환자였다.
이제 금아는 누구에게 핍박을 받거나 미움과 무시를 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의 일상은 한마디로 편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와도 같았다.
애증(愛憎)의 기폭도 없고 감정의 교류도 없는 그 환경은 삭막하고 공허했으며 그래서 더욱 질식할 것 같았다.
금아는 다시 목을 맸다. 다행히 이번에는 바로 발견되어 첫 시도 때처럼 목에 오랜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이집 큰 마님의 지시로 그녀에게는 거의 24시간 감시의 눈초리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두 번 째 자살을 시도한 것에 병세는 아들부부를 이혼시키기로 작정했다.
사돈의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을 때 송만석은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나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반가운 소식을 전할 리는 없는 것이다.
병세를 만났을 때 만석은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식사나 하시자.”고 했지만 사돈은 “조용한데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래서 읍내 단골다방의 구석자리에 마주 앉았는데 어렵게 말을 꺼낸 사돈이 하고자 하는 말은 딸의 이혼문제였다.
“아니, 당신의 그 잡놈새끼가 내 딸한테 그런 못된 짓을 하고, 그때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더니 이제 급한 불은 껐다고 단물 빼먹고 버리겠다는 기가?”
사돈의 말을 끊고 만석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그 잡놈새끼가 빵간에 가서 썩도록 놔둬야 하는 긴데 인간이 불쌍해 봐줬더니 이렇게 뒷덜미를 칠 수 있나? 이 망할놈의 인간 말종들 깉으니 ······ ”
권부자집 주인은 어쩌면 이런 폭언을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고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기에 더욱 제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며늘아기가 제 자식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왔고 그런 따님을 보내주신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따님의 목숨과도 관련된 일이라 ······ 며늘아기가 저희 집에서 두 번이나 자진을 하려 했습니다.”
자진 ······ ? 자살 ······ ? 내 딸이 ······ ? ······ 만석이 그 말을 이해하려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병세가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금아가 처음 자살을 시도했을 때 써놓은 유서였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 소녀는 이제 세상을 하직하려 합니다. 부모님의 하해 같은 은혜의 만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다만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이승의 인연이라면 두분은 먼저 떠난 저를 꾸짖으시고 하루 빨리 잊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마지막 저의 부탁도 받아주세요. ······ 금아 올림>
내용은 짤막했고 시집간 후 1년에 두세번씩 받아보았던 안부편지의 글씨체와 똑같았다.
만석은 망자의 유서를 보는 듯 그 짧은 글을 보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사장 어른!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내 딸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가장인 제가 가정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한 불찰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도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고부간의 불화가 원인이겠지만, ······ 부부유별이라고 아낙들의 일은 제가 거의 간섭을 안 했고, 부자유친이라지만 요즘 젊은애들하고 사실 소통도 안되고 ······ 가장 큰 문제는 제가 며늘아기를 완벽하게 지켜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막내딸의 목숨이 걸린 문제는 이혼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결국 만석은 이혼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만 지난날 강간고소 때 위자료를 포기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사돈이 제시한 거액의 위자료를 그냥 받기로 했다.
딸을 데리러 세 번 째로 안동의 권부자집을 찾았을 때 금아는 차디찬 표정마저 외면한 채 말했다.
“저는 이미 출가외인이예요. 아버지가 참견하실 일도 아니고 저는 권씨 집안의 귀신이 될거예요.”
만석은 그 자리에서 딸을 껴안고 통곡을 했다.
“이 짜슥아! 니가 내한테 어떤 딸인줄 아나? 내는 니한테 별로 해준 것이 없다. 하지만 니한테 뭘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니는 언제나 내한테 먼저 준 기라. 니는 내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변변찮은 내가 우째 이런 선물을 받았는지 ······ 별을 보고 땅을 볼 때도 나는 감사했다. 어여 집에 가자. 이제사 내가 그 보답처럼 니를 잘 보살필 기다.”
그 다짐은 깨져 버렸다. 딸은 친정에 온지 석달만에 다시 자살을 기도했고 6개월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 굴곡진 삶은 친정 아버지뿐 아니라 혈육 모두에게 슬픔이며 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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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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