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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41 1,595회 0건
야밤의 작은 고깃집. 깔끔해보이는 한 남자와 술로 나발을 분 듯 엎드리기 직전의 다른 남자가 상에 나란히 앉아있다. 고기는 진작에 다 먹은 듯 탄 불판에 달랑 몇 점 남아있고, 얼굴이 새빨간 남자 옆에 소주 서너병, 멀쩡한 남자 옆에 사이다 두병이 놓여 있다.


"야 IC... 미친놈아. 적당히 처마셔. 너 벌써 4병째다. 고등학교 때 보고서 몇년만에 이짓할라고 불렀어?"

"닥쳐 두바커 사커킥 곱빼기로 처먹을 놈아. 넌 고등학교 때 절친이란 놈이 헤어졌는데... 술 한 방울도 안마시는 게 말이 돼애~?"

"나 술 못마셔 미친놈아."


"역시 예상은 했지만 이놈은 미친놈이다. 물론 나도 미친놈이지만. 상황을 정리하면 나는 며칠 전에 헤어졌어. 그래서 며칠 동안 친구들이랑 술만 마시면서 달리다가, 애들이 오늘은 전부 다 안된대. 그래서 고등학교 때 만났다가 한동안 연락 안한 이놈이라도 불러서 마시는 중이야. 물론 이놈은 내가 4병 마실 동안 한.병.도. 마시지 않았지만 말야. 원래 그때 별명이 미친놈이었긴 했는데 말이지."


취한 남자가 자신이 마시던 소주병을 들이대며 앞의 남자에게 따진다.


"그래도 고등학교 땐 절친이었는데, 한 병정도는 마셔라."

"시끄러. 내 간한테 강제노동 시키려 하지 말고. 헤어진 거 다 아는데. 어찌 됐건 지나간 여자는 지나간 여자야.

그 여자가 너 생각 할 거 같아? 이런 말도 있잖아. 남자는 후회하고 여자는 잊어가고. 라는."

"...너 존나 패고 싶은 거 알지?"

"나 알잖아. 미친놈인거. 근데 틀린 말 없잖아."

"그런 말 한두달 있다가 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너가 한두달 뒤에 나랑 만나려 연락을 할 거 같아?"

"아니."


"지금 내 앞에 있는 미친놈. 강규현이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똑똑한데 눈치가 존나게 없다. 물론 나만큼은 이녀석 진심을 잘 안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냥 "병신, 술이나 마셔."라고 한마디 하고서 끝냈을 거다. 내가 그나마 학창시절에 놀아줘서 얘도 나한테는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게 말이다."


취한 남자가 답답한 표정 반, 씁쓸한 표정 반으로 다시 술병을 한모금 들이킨다. 규현이 취한 남자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이다를 유리잔에다 담아 한모금 들이킨다.


"그나저나 너 은주랑 어쩌다 헤어졌냐? 너 고등학교 때 사귀는거 존나 오글이더만. 그 착한 애한테 뭔 짓을 했길래 헤어졌냐?"

"아 몰라... 말 안해?"

"나 알잖아. 말해봐."


"강규현의 특징, 해결책은 잘 내놓는데 사람의 기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사귄지 3년 되고서... 첨으로 내 자취방에 같이 들어갔어..."

"덮쳤냐?"

"...너 뒤질래?"

"...미안하다."

"...아냐. 어느 정도는 맞아. 은주랑 처음으로 하려고 들이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안됐을 거야."


"사실은 이렇다. 내 전 여자친구 은주랑 3주년 째 되던 날, 나는 대한건아답게 은주를 데리고 3주년 이벤트를 진행한 뒤, 마지막 코스로 우리 집으로 돌아와 영광의 첫경험(!!!)을 이루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독단적으로 강행해버렸고, 그 날 이후로 여차저차 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물론 연인의 이별이라는게 어떤 이유에서든 쌍방과실이라지만, 이 일의 잘못을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내 잘못이 8~90은 될거다. 전문용어로 데이트 강간 이라고 하던데. 암튼 난 쓰레기였다."


(이야기 후)


"전에도 느낀 거지만 넌 흥분하면 똘끼 기질이 있어. 너도 알잖아 그거?"

"알어 씨발놈아. 내가 돌은거. 그래서 헤어졌잖아."

"...그래서 술만 처마시냐? 니네 부모님이 보면 존나 좋아하시겠다."

"이 상황에 울엄마 아빠가 왜나와?! 그딴 말만 할거면 꺼져!"



취한 남자가 화를 내며 소리지른 뒤 상에 엎드린다. 규현이 한심한 듯 바라보다가 엎드린 채로 술을 마시려는 남자의 술병을 뺏어서

자신이 마셔버린다.



"야, 넌 왜 내 술 뺏냐? 도움도 안되면서?"

"그만 처마셔. 너 그러다 간암 걸려 미친놈아. 일어나."

"뭐 임마? 야!"



규현이 일어나서 계산을 하더니 취한 남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취한 남자가 규현의 손을 뿌리치더니 바닥에 냅다 누워버린다.

규현은 그런 남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또로로롭"

"네, 소라대리입니다."

"네, 여기 연신내 원이엄마고기인데요. 대리 되죠?"

"연신내 원이고기요?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규현이 옆에서 자는 남자를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또로로롭"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준희 어머님이시죠? 저 규현입니다."

"어 규현이니? 야밤에 무슨 일이야?"

"아 다른건 아니고, 지금 준희가 술을 마시고 뻗어가지고... 혹시 집이 어디세요?"

"...거기 어딘데?"

"여기 연신내요."

"...알겠다. 주소 찍어줄테니까 최대한 빨리 보내."

"네."


규현이 전화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문자가 왔다.


"왔네..."


규현이 문자를 받고선 핸드폰을 뒤적거리더니 얼마 되지 않아 한 중년의 남자가 규현에게 말을 건다.


"혹시 대리 부르셨어요?"

"아, 네. 여기 차키구요. 식당 뒤 주차장에 73사 1582에요. 대리비는 2만원 미리 드릴게요.
이 주소로 가주시면 받아 줄 사람 있을 거예요. 먼저 가 있어주세요."


대리기사가 키와 돈을 주머니에 넣고선 주소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선 주차장을 향해 갔다. 규현은 대리기사가 가자 한숨을 내쉬며 준희를 이끌고선 주차장에서 차 앞에 서 있는 대리기사와 함께 차안에 박는다.


"휘유. 잘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소라대리 잘부탁드립니다. 차키는 이분한테 드리면 되죠?"

"네."


"텁"


대리기사가 차문을 닫더니 출발해버렸다. 규현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확인하곤 터덜터덜 걸어간다.


"씨발... 걸어가기 귀찮은데..."



------------------------------------------------------------------



서울의 모 아파트 앞 주차장, 방금 전의 그 대리기사와 만취한 준희가 탄 차가 도착했다. 대리기사는 차 키를 뽑더니 준희의 주머니에 넣어놓곤 준희를 흔들어 깨운다.


"(흔들흔들)손님?"


그러나 준희는 반응도 없다. 수차례 준희를 흔들고 뺨도 때려봐도 만취한 상태여서인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 미치겠네..."

"혹시 대리기사님이세요?"


차 밖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대리기사 옆에 갑자기 나타났다.


"네. 아 그분이시구나. 여기 데려왔습니다. 대리비는 받았구요. 차키는 주머니에 넣어놨습니다."

"갑사합니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이거 준희 차 아닌데... 규현이 차구나."

"알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대리기사가 차에서 나와 아파트 밖으로 나간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더니 준희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깨운다.


"짝!!!"

"일어나 이 미친놈아!"

"헙! 으므!... 어마..."

"뭐 으므야! 빨리 나와!"


여자가 준희를 강제로 일으키더니,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차를 잠근다.


"삐립"


차가 삐립 소리를 내며 잠긴 걸 확인한 여자는 키를 주머니에 넣고서 준희를 이끌고선 아파트 엘리베이터 4층 버튼을 누르고 준희를 내팽개친다.


"스물둘이나 먹어놓고선 술이나 처먹고..."

"아! 먹을 수도 있징... 머 어때!"

"너희 아빠는 술도 안먹는데... 넌 누굴 닮아서 그래?"

"엄마 닮았다!"

"시끄러! 엄마 없으면 몸도 못가누는게..."

"띠링. 4층입니다."

"벌써 4층이야... 응차..."


여자가 다시 준희를 들더니 엘레베이터 앞 402호의 도어락을 두들겨 문을 연다. 열자마자 내팽겨쳐진 준희는 신음을 한번 다시 내더니 기어서 소파 위로 올라가 잔다. 그 모습을 바라본 여자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문다.


"으앙... 크어어억..."

"야! 씻고...아니다..."


여자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더니 불을 끄고선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여름밤 특유의 매미소리가 울려퍼졌다.

PS . 많은 댓글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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