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달맞이꽃 8장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민이는 거의 매일 아침 내 원룸에 들렀다. 그러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적어도 한 시간은 당겨야 했는데, 아침잠 한 시간을 손해보는 건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수민이는 거의 반년을 그렇게 다녔다. 그 반년 동안 나는 매일 수민이가 깨워서 일어났고, 수민이는 나를 깨울 때 내가 아는 가장 짜릿하고 황홀한 방법을 사용했다. 아침 발기로 바짝 일어선 그 녀석을 수민이의 부드러운 입술과 혀로...
수민이는 학교에 가는 시간이 항상 규칙적이었고, 나를 깨운 시각도 거의 일정했다. 매일 매일 같은 시각에 깨어나다 보니 그 시각이 되면 저절로 잠이 깰 정도가 되었고, 수민이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고, 수민이의 애무를 받고서야 깨어나는 척을 했다. 그때부터였나요? 내가 잘 때 홀딱 다 벗고 아무 것도 안 입고 잔 게...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황홀하게 나를 깨워 주고 일어나던 수민이가 시각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내 품에 파고들며 칭얼거렸다.
- 아~... 가기 싫어... 히잉~
- 수민이 안 가면 나야 좋지.
- 진짜, 오빠랑 그냥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 후후후...
- 나, 여기서 자면 학교 안 늦을 텐데...
- 나도 빨리 그랬으면 좋겠어.
- 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예요?
- 왜? 싫어? 그럼, 뭐... 쯧~, 딴 사람 찾아 봐야겠네?
놀리듯 말하면서 곁눈질로 수민이를 힐끗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수민이는 금새 코가 빨개지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 나... 그러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 하길...
- 흑~...
- 이런...? 그러게 왜 그런 소릴 해, 하길...? 에유, 바보...
- 흑~, 오빠... 장난인 줄 아는데... 흑~
- 아는데?
- 아는데도... 흑~, 그런 말 들으니까 막...
- 으이그... 이 바보, 정말... 킥킥킥...
- 훌쩍~
- 뚝~, 그만... 쪽~
- 훌쩍~
수민이는 눈을 꼭 감아 눈물을 짜내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마에 입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워서 안고 있는데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키스밖에... 수민이의 입술과 혀를 한참을 빨았다.
- 근데, 나 만나는 거 오빠네 집에서 알아요?
- 음... 우렁각시 하나 있다고 말은 해 놨어.
- 킥킥~ 우렁각시?
- 후후~ 우렁각시지, 뭐. 나 잘 때 오니까...
- 난 집에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주말에 외박할 땐 뭐라 그랬는데?
- 오빠 집에서 잔다고는 못하고, 친구 핑계 댔죠.
- 믿어 주셔?
- 그럼요. 믿어 주시지...
- 흠... 뭐, 잘 말씀드려 봐야지.
- 나, 한... 내년쯤에 엄마아빠한테 오빠 소개하고...
- 그리고?
- 4학년 때 약혼하고, 졸업하면서 결혼하고... 어때요?
- 졸업 전에 결혼하면 안 되고?
- 네...? 어...
- 후후... 농담이야.
- 아니, 안 될 건 없는 거 같아요.
- 진짜?
- 응.
- 흠... 결혼하면 수민이 안 먹여줘도 되겠다.
- 남자가 돼 갖구, 아내를 먹여 살리지 않겠다구요?
- 먹여 살리는 거 말구, 수민이가 맨날 먹는 거... 킥킥~
- 내가 맨날...? 어우, 오빠아~
- 아야야... 쪽~
- 어우, 정말... 치~
그제서야 알아들은 수민이가 주먹질을 했지만 콩콩 토닥이는 수준이었다. 나는 제법 아픈 척 엄살을 부리며 수민이를 끌어안았다. 쪽~ 뽀뽀 한 번에 화가 풀리는 단순한 수민이... 그런 수민이의 혀를 빨며 또 한참 키스하고 나서 수민이의 매끈한 아랫배를 만지며 귓가에 속삭였다. 옷 안으로 손을 넣어 쓰다듬자 수민이의 보드라운 음모가 손 끝에 간지럽게 스쳤다.
- 결혼하면 이 안에 그냥 다 뿜어 버릴 거야. 쪽~
- 하아... 오빠...
- 아기 생기게... 쫍~
- 아기...요? 하아~
- 그래, 우리 아기, 수민이 닮은 예쁜 아기가 나오겠지?
- 흐응... 떨려요. 생각만 해도...
- 근데 그러면 배가 이마안~해질 텐데 학교 다닐 수 있겠어?
- 이잉~, 배 나오는 건 싫은데...
- 아줌마 소리 듣겠다, 그지? 킥킥킥~
- 히잉~... 그거 상상해 버렸쪄. 어떡해잉~?
- 상상? 음...
- 아익~, 하지 마, 상상하지 맛~...
- 크크크... 쪼옥~
수민이와 나는 그런 대화를 하면서 김칫국을 아예 독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그런 공상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불행한 공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이다. 행복한 공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힐링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미래, 행복한 사랑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 어? 오빠 거, 작아졌다. 헤헤...
- 작아진 건 처음 봐?
- 킥킥~ 그건 아니구... 오빠 잘 때 몇 번 봤어요. 킥~
- 그래, 작으니까 어때?
- 음... 덜 징그러워요.
- 그래도 아직 징그럽다는 거네?
- 또 삐지려고?
- 몰라. 치. 난 수민이 온몸 어디든 다 예쁜데...
- 풋~ 사실, 작을 땐 귀여워요. 안 징그러.
- 흐흐흐...
- 어? 오빠, 그 웃음은...?
- 귀여울 때 키스해줘 봐.
- 아유, 정마알...
- 어서... 작고 부드러우니까 목도 안 찌르고 좋잖아.
수민이는 또 눈을 흘겼지만 금새 내려가 내 작아진 꼬추를 입에 넣었다. 그러나 그 귀엽던 놈은 수민이의 자극에 급격히 커져서 또 수민이의 입 안을 가득 채웠고, 나는 수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음했다. 잔뜩 흥분해서 수민이를 끌어당겼지만, 수민이가 진짜 늦어서 안된다는 바람에 더 욕심부리지 못하고 서둘러 수민이를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잘 참고 늦지 않게 수민이를 바래다 주지는 못했다. 수민이의 입과 혀로 잔뜩 흥분한 상태로 깨어나서 수민이를 쓰러뜨리고 옷을 벗기는 바람에 수민이가 학교에 못 가거나 늦게 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빼먹고 나를 탓하며 칭얼거렸으면서도 계속 같은 방법으로 깨운 걸 보면, 수민이도 은근히 내가 벗겨 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던가 생각할 뿐이다.
처음부터 애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섹스를 바란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 수민이가 와서 여느 때처럼 내 자지를 핥고 빨아서 나를 깨웠는데. 그렇게 수민이의 애무를 받다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며 아쉬워했었다.
- 오빠, 이제 가야 돼요.
- 아... 아쉽다.
- 훗~, 일어나세요~?
- 응...
- 근데 오빠... 어제, 차 몰고 왔어요?
- 차? 아, 어제 갖고 왔지, 참... 어떻게 알았어?
- 색깔도 같고... 인형도 똑같아서...
- 아, 그거 봤구나?
스키장 갈 때 아버지께 허락을 얻어 몰고 갔던 그 차였다. 그 전날, 프로젝트 의뢰를 받아 이천에 있는 모 회사에 가야 했었고, 서울 집에 들렀다가 거기서 바로 출발하면서 차를 가지고 갔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도로 갖다 놓지 못 하고 그냥 수원으로 몰고 왔었다. 수민이는 빛을 받으면 까딱거리는 인형을 대시보드 위에 놓아 주었었다.
- 잘 됐다. 수민아, 오빠가 태워다 줄게.
- 학교까지?
- 응.
- 와, 많이 안 걸어도 되겠다. 헤헤...
- 좋아?
- 좋죠. 갈아타는 시간도 아끼지, 걷는 거리도 줄지.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헤헤...
- 미안하긴 뭐가...? 자, 그럼...
- 아이, 안돼요.
- 왜? 시간 벌었잖아. 나 사랑해 주고 가.
- 아우... 오빠아~ 얘기가 왜 그렇게 가는데에~? 히잉...
- 후후후...
나는 수민이를 잡아끌어 눕혔다. 내가 수민이를 학교까지 태워 주면 적어도 한 시간쯤, 시외버스 내려서 또 버스 갈아타고 학교 가는 것보다는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그 아낀 시간만큼만 더 있다가 가라고 수민이를 졸랐고, 더 있다 가라는 얘기는 당연히...
수민이는 안 된다며 나를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 진작 그럴 것이지. 후후...
- 치, 애기 같애... 맨날 떼쓰고...
- 시간 아까우니까 그렇지. 실랑이할 시간에 사랑 나눴으면 벌써 출발했겠다.
- 쪽~ 그만... 이제 나한테만 집중해 줘요.
- 그거, 무지 야하게 들리는데? 후후... 쫍~
- 아... 오빠...
- 쫍~... 쫍~...
- 하아... 오빠, 나 사랑하죠?
- 그러엄~ 사랑하지, 수민이... 쫍~
- 나도 사랑해요... 아~ 오빠...
수민이는 그렇게 안 된다던 것과는 달리 내 품에서 금새 흥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민이가 만족할 만큼 애무해 준 다음, 수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무지 서둘렀다.
나는 거짓말 안 하고 5분도 안 걸려서 머리 감고 샤워하고 나왔는데, 수민이는 내가 애무한 부분만 씻고 나왔다는데도 20분이 넘게 걸렸고,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화장을 해야 했다. 수민이는 계속 재잘대면서 자꾸 손을 멈추는 바람에, 학교 정문을 통과하도고 한참을 가야 하는 강의동 건물 앞에 거의 다 와서야 겨우 화장을 마치고 나를 보았다.
- 오빠, 나 예뻐요?
그때 나한테는 수민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쁠 때였고, 수민이가 좋다면 좋은 거고 수민이가 이쁘다면 이쁜 거였다. 그 즈음에 수민이 말에 아니라고 한 건... 음, 생각이 안 난다. 무조건. 무조건이었다.
수민이는 내가 아니라고 대답할 일이 없을 만큼 내 모든 걸 내 취향에 맞게 챙겨 주었었다. 방의 침대커버와 커튼, 러그 따위도 모두 수민이가 골라 주었고, 슬리퍼며, 거울이며... 방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전부 수민이와 함께 고른 것으로 바꾸었다. 이따금 수민이가 자기 취향대로 골라 온 것들도 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수민이 혼자 가서 산 내 옷이 사이즈는 물론, 디자인이나 색상 모두 만족스러웠을 정도였다.
화장도 나에게 맞추어 주었다. 보통 이십대 초반 여학생들은 화장을 진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수민이는 짙은 화장을 싫어하는 나 때문에 한 듯 안 한 듯 가볍게 화장하곤 했었다. 특히,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수민이 입술을 탐냈던 나 때문에 립스틱도 안 바르고, 립글로즈만 가끔 발랐었다. 립스틱을 발랐어도 나는 전혀 거리낌없이 빨아먹었을 테지만.
그런 사람이 예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예뻤다.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고 대답해야 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예뻤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수민이가 예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민이에게 맞추어 미의 기준을 바꿔서라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던 때였다.
- 응, 진짜 예뻐.
- 피이~, 맨날 예쁘대.
수민이는 예쁘다는 내 말에 온 얼굴에 웃음이 드러나는데도 못마땅한 척 입을 삐죽였다.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 크크크... 하지만 진짜 예뻤다. 한시간 전에 사정했는데도 바지 앞섶에 또 불룩한 텐트를 칠 정도로 예뻤다.
- 예쁘니까 예쁘다 그러지.
- 헤헤... 갈게요? 쪽~
- 어...?
- 어차피 뽀뽀해 달라고 할 거잖아요. 킥~
- 큭... 전화 해?
- 네에~
수민이는 기습적으로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뽀뽀 말고 키스를 했어야 했는데... 살짝 놀라서 키스할 타이밍을 놓쳤다.
차를 주차장 한쪽에 세워 놓고 학교를 천천히 구경했다. 그때 수민이네 학교에는 무슨 나무가 그렇게 많았는지, 나무밖에 생각이 안 난다. 사실은 수민이 생각밖에 없어서 학교 구경도 제대로 못 했다. 수민이는 그랬던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날은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수민이와 같이 올라가려고 기다는 동안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하품을 하다가... 졸다가... 참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다. 수민이랑 있으면 하루가 참 짧은데, 혼자 있으면 시간이 왜 그리 천천히 가는지...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긴 흘렀다.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또 도서관에서 신문, 잡지를 보다가... 졸다가...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열람실에서 나올 때쯤, 전화가 진동했다. 좀더 서둘러 나와 도서관 복도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
- 네...
- 오빠 !
- 응, 수민아.
- 수업 다 끝났어요. 헤헷~
- 그래? 음... 난 여기... 여기가 어디지?
- 치, 자기가 어딨는지도 몰라요? 킥킥...
- 아냐, 알아. 중앙도서관 옆에 주차장 있지? 그리로 와.
- 도서관? 우와~, 아직 안 갔어요?
- 후후후...
주차장에서 수민이를 기다렸다. 강의실 건물 앞에서 젊은 남자가 모는 승용차에 올라타는 여학생...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 더운 날씨에 수민이를 주차장까지 걷게 했다. 오전에 승용차에서 내려 뛰어가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 그냥 먼저 가지, 왜 기다렸어요...?
- 에~?
수민이는 아침에 헤어질 때와 똑같았다. 내가 기다린다는 말에 뛸 듯이 좋아하는 게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었는데, 막상 만나서는 귀에 걸린 입꼬리도 감추지 못하면서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수민이가 더울까봐 에어컨을 켜면서도 퉁명스러운 척 말했다.
- 그럼 내려. 나 먼저 갈게.
- 오빠...?
- 뭐, 같은 방향이니까 타든지... 난 혼자 가도 되는데.
- 오빠, 왜...? 혹시, 화... 났어요?
- 이런...? 화 안 났어. 쪽~ 수민이가 맘에 없는 소리 해서 오빠도 장난친 거야.
수민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화난 척을 더 했다가는 수민이를 또 울릴 것 같았다.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말하고 수민이의 볼에 뽀뽀해 주었다. 울상지었던 얼굴은 금새 풀렸지만 코는 벌써 빨갰고, 수민이는 또 입을 삐죽였다.
- 치, 오빤 맨날 나만 나쁜 애 만들구...
- 그러게, 왜 그랬어? 진짜 먼저 갔으면 좋았겠어?
- 그냥... 미안하니까 그렇죠.
- 뭐가 미안해. 오늘 스케줄도 없는데.
- 그래두...
- 어때? 같이 가니까 좋아, 싫어?
- 꼭 그렇게 확인하지 않으면 몰라요?
- 응, 몰라. 오빤 수민이가 말하면 그냥 그대로 다 믿어.
- 치~...
- 어떻게? 다음엔 오빠 먼저 가?
- 아니요, 같이 가서 좋아요. 오빠 먼저 갔으면 서운해서 울었을지도 몰라요. 됐어요?
- 그래, 무조건 솔직하게 말해. 알았어?
- 오빠, 그런 목소리로 말하면 무서운 거 알아요? 치~
- 아니야. 우리 이쁜 수민이한테 왜... 이리 와... 쪽~
- 헤헷~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나 오늘 용돈 받았는데...
- 어이구... 우리 애기 코묻은 돈으로 얻어 먹으라고?
- 아잇, 내가 무슨 코를 흘린다구~
역시... 삐졌던 수민이는 뽀뽀 한번에 풀렸다. 그렇게 서로 밉지 않게 툭탁거리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수민이는 그렇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걸 미안해 했다. 또, 내가 자기에게 돈 쓰는 걸 미안해 하는 수민이였다.
수민이는 내가 보기에도 참 알뜰한 아이였는데, 돈이 없어서 궁한 것과 돈이 있어도 검소한 것은 분명히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또,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해서 헤픈 씀씀이가 금새 검소해지는 것도 아니다. 수민이는 어쩔 수 없이 알뜰해진 게 아니라 원래 검소한 아이였다. 부모님도 검소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검소하지 않은데 자식이 검소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도 궁색하게 굴지는 않았다. 때로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값이나 커피값을 지불해 버리기도 했고, 예뻐 보여서 샀다며 불쑥 내 옷을 사들고 오기도 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예뻐서요... 예쁘잖아요... 하면서 웃어 주었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더 나무랄 수 없게 만드는, 수민이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수민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서, 집에 월급 가져다 드릴 때보다 용돈이 오히려 늘어났어도, 갑자기 씀씀이가 커지거나 헤퍼지지는 않았다. 입고 다니는 옷은 내가 처음 보는 브랜드로 바뀌었지만, 화려하지도 않았고 상표가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나 같은 사람 눈으로는 뭐가 특별한지 모를 정도로 은근히 고급스러울 뿐이었다.
나랑 데이트할 때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구두보다는 캐주얼화를 신었고, 내가 즐겨 입는 복장에 맞추어 털털한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나오기도 했다. 치마 입는 걸 좋아했지만, 예뻐 보이는 치장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편한 옷차림을 했던 수민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예쁘고 착했던 수민이였다.
목걸이나 귀걸이도 번쩍이게 하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사주셨다는 화려하지 않은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정도였고, 커플링을 맞추어 같이 끼면 어떻겠느냐고 한번인가 말했었지만, 내가 시계나 반지를 귀찮아하는 걸 알고는 다시는 조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얼리샵 같은 곳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늦추어지는 건 너무나 티가 났다.
- 오빠, 아침에 애들이 오빠 봤나 봐.
- 그래? 큰일 났네?
- 어머, 왜요?
- 걔들 눈 높아져서...
- 깔깔깔... 아이, 뭐예요...?
- 크크크... 그래, 애들이 뭐랬는데?
- 데리고 다니는 애 누구v, 큭큭...
- 애? 애~? 이것들이...
- 젊어 보이지도 않는데 애래. 그죠? 킥킥...
- 에? 수민이가 더 나빠, 씨이~
- 깔깔깔...
그렇게 웃으며 가는데, 앞에 가던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너무 바짝 붙어서는 바람에 추월도 못하고 버스 뒤에 서서 기다리는데, 길가에 있는 주얼리샵이 눈에 들어왔다. 수민이도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수민이가 평소 원하던 커플링인가 뭔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서, 버스가 출발하자 정류장을 조금 지나쳐 차를 세웠다.
- 어? 오빠...
- 응?
- 여기... 왜요?
- 내려 봐.
- ......
- 저기... 저기 구경하고 가자.
- 그거 본 거 아니예요, 뭐... 피이~
- 그래? 그럼 나만 들어간다?
- 에...?
- 피식~ 자...
- 치~
수민이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내미는 내 손을 잡으며 따라 들어왔다.
18금이나 14 금 도금 제품도 있긴 있었지만 나는 귀금속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괜한 욕심에 순금이나 순은으로 하고 싶었다. 순금은 비싸기도 했지만 순금을 하려면 아예 금은방에 가는 게 나았고, 주얼리샵에 그나마 순은은 있어서 은제품을 보여 달라고 했다.
- 오빠, 이거 어때요?
- 응, 이쁘네.
- 이건요?
- 응, 이뻐.
- 치, 다 이쁘대.
- 다 이쁘니까. 사장님, 다 이쁘죠?
- 호호호... 네.
- 거 봐.
- 치... 몰라, 안 골라.
- 싫으면 말든가. 고맙습니다. 잘 봤어요.
- 에? 오빠...
- 왜? 안 고른다며?
- 치~ 오빠 미워.
- 쿡쿡쿡...
사장인지 종업원인지 애매한, 나이도 사십대인지 오십대인지 애매한 여자는 옆에서 킥킥댔고, 수민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 입술을 깨문 채 찌푸린 눈을 흘기고 있었다.
- 아까 말했지?. 맘에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 오빠, 너무해.
- 내 맘대로 골라?
- ......
- 음... 3번에 5번. 세 번째 줄 다섯 번째 있는 거, 포장해 주세요.
- 아잇, 뭐야... 그렇게 사는 게 어딨어? 씨잉~
- 그러니까 수민이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응?
- 치~
수민이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진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들이 북적이는 매장에서 수민이는 자기에게 바짝 붙도록 날 잡아끌었다.
- 오빠, 이건 어때요?
- 음... 그것도 이쁘네.
- 아잇, 다 이쁜 건 없어. 다 이쁘면 다 살 거야. 이거 다 사 줄 거예요?
- 오호~, 수민이 센데? 이야...
수민이는 구슬이 연결된 모양의 목걸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쁘긴 했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속 장신구들 중에 예쁘지 않은 게 없었다. 캐릭터 디자인도 있었고, 종교적인 디자인도 있었고... 나는 그냥 평범한 기하학적 디자인을 원했는데.. 거 이상하게도, 고르다 보니 자꾸 화려한 디자인에 눈이 갔다.
그러다가 그 중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인, 모서리가 둥근 별 모양의 띠에, 안에는 또 다른 무늬가 들어 있고 자수정 같은 짙은 색 큐빅이 몇 개 박힌 펜던트였다.
- 이거 어때?
- 우와, 오빠가 골라 주는 거예요?
- 디자인이나 봐.
- 음... 괜찮아 보여요.
- 그래? 다행이네.
- 오빠, 귀걸이 해 봤어요?
- 안 해 봤지... 왜?
- 음... 오빠가 고른 거, 귀걸이도 이뻐요. 여기...
- 목걸이랑 똑같네?
- 그러니까 세트죠... 히힛~
- 맘에 들어? 그럼 이걸로 할까?
- ......
수민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 귀에 걸려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어이구, 그렇게도 좋을까...
그렇게 수민이에게는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선물해 주고, 나는 굵지 않은 체인에 수민이 것과 같은 디자인으로 펜던트만 하나 추가했다. 내가 카드를 긁어 결제하는 동안, 수민이는 거울을 보며, 하고 있던 귀걸이를 빼고 바로 새 귀걸이를 달았다. 그리고 목걸이...
- 수민이, 이리 온?
- 네?
- 내가 걸어 줄게.
평소에 수민이를 아기 취급하던 말투가 사람들 많은 데에서도 그냥 나왔다. 수민이의 목에 팔을 둘러 고리를 걸어 주는데, 옆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소란을 떨며 주얼리샵 처음 가 보는 놈 티를 팍팍 냈으니... 창피하거나 쑥스럽지는 않았지만, 신경은 좀 쓰였다.
수민이는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움츠렸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도 혀를 살짝 내밀어 깨물고 헤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민이의 긴 머리를 헤치고 목을 쓰다듬어 가면서 수민이를 감싸듯 내 팔에 가두고 목 뒤에서 고리를 걸었다. 일부러 천천히 손을 놀렸고, 고리를 걸고 나서는 수민이의 뒷목부터 천천히 손을 미끄러뜨려 어깨까지 쓰다듬었다. 수민이는 내 손길에 소름이 끼치는지 살짝 떨며 움츠렸다.
수민이는 마치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깜짝 선물로 받은 아이처럼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수민이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고 수민이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맞추는 게 무슨 나쁜 짓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 히잉~...
수민이는 또 살짝 떨며 앙탈하듯 콧소리를 냈다. 주인 아줌마가 분위기를 깨며 끼어들었다.
- 어머~, 너~무 잘 어울린다아~...
- 그래요? 후후... 가자, 수민아.
- 또 오실 거죠? 호호호...
- 네.
- 안녕히 가세요옹~
그 아줌마가 콧소리를 내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수민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조수석 문을 열어 수민이를 태우고, 괜히 주변 눈치를 보며 운전석에 탔다. 주얼리샵 앞은 모 여고 이름이 크게 쓰여진 버스정류장이었고, 보이는 남자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피식~ 한쪽 입술만 일그러지며 웃음이 나왔다. 누가 봤으면 썩소라고 할 만한 웃음이었다.
- 반지 끼고 싶댔는데 정작 반지는 안 해 줬네?
- 괜찮아요. 이게 더 좋아, 오빠랑 같이 하니까.
- 그래? 그럼 다행이고.
- 오빠...
- 응?
- 볼수록 이뻐요, 정말...
- 좋아?
- 그럼요. 누가 사 준 건데...
- 수민이가 좋으면 나도 좋아.
- 하아... 가슴이 막 뛰어.
- 어디, 얼마나 막 뛰나...
수민이의 가슴께로 손을 뻗었지만 만지지는 못했다. 수민이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막고 다른 손으로 찰싹 때렸다.
- 아이~ 또 응큼쟁이 되려고.
- 후후... 되긴 또 뭐가 돼? 벌써 응큼쟁인데...
- 치이~
- 맞잖아. 맨날 응큼쟁이라고 하면서 뭘... 내가 응큼쟁이라서 싫어? 응? 어때?
- 칫, 몰라요.
- 그나저나, 내 목걸이는 언제 걸어 줘?
- 아, 맞다...
- 자기 예쁘니까 내 건 신경도 안 쓰는구만? 치...
- 아이, 지금 해 줄게, 삐지지 마요. 응?
-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 눈 감구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요?
- 그럼 해 봐. 자...
수민이의 손에 목걸이 양쪽 고리를 쥐어 주고 나는 수민이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그리고 키스... 수민이의 예쁜 가슴도 쓰다듬었다.응큼쟁이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응큼한 짓 한번 덜 한다고 해서 내가 응큼쟁이 아닌 것도 아니고, 진작에 이미 응큼쟁이였는데, 뭐.
수민이 가슴은 수민이 말대로 심하게 콩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키스에 좀더 두근거렸을 수도 있었다. 수민이는 웅웅거리며 뭐라고 말하는 듯 반항했지만 금새 내가 원하는 걸 알아채고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밀어넣어 주는 내 혀를 빨면서 손끝으로 더듬어 고리를 걸었고, 다 걸고 나서도 내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고 한참동안 내 입술과 혀를 빨았다.
- 쪼옵~
- 하아... 오빠...
- 사랑해, 수민아.
- 나도 오빠... 사랑... 흑~
- 이런 바보, 또 울어?
- 흑~...
- 허허, 참...
좋으면 웃어야지, 왜 우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다. 나 같은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올렸다. 그 소리에 수민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금새 울상으로 바뀌었다. 뭐, 그래 봐야 남의 차를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었고 수민이만 혼자 제 발이 저려서 부끄러워한 거지만.
- 하잉~ 난 몰라... 언제 열었어요?
- 차 세울 때부터 열려 있었어. 몰랐어?
- 하앙~ 어떡해...
-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걸 몰랐단 말이야?
- 몰랐어요, 진짜...
- 허... 목걸이에 완전히 정신이 팔렸구나?
- 킥~ 헤헤...
배시시... 수민이가 혀를 살짝 깨물며 나를 보고 웃었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나도 그 순간, 수민이만큼 꿈꾸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수민이가 나를 보고 웃어 주었으니... 진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 자, 거울...
조수석 앞의 선바이저를 내려 주었다. 목걸이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황홀한 눈빛으로 어쩔 줄을 모르는 수민이 눈가엔 눈물이 번져 살짝 젖어 있었다.
- 무슨, 나르시스도 아니고, 차암~...
- 좋은 걸 어떡해?
- 그렇게 좋아?
- 네. 헤헤~...
- 결혼반지 해주면 아예 통곡을 하겠네...?
- 결혼반지 해줄 거예요?
- 아니. 수민이 울까 봐 못 해주겠는데?
- 치~... 훌쩍~
- 후후, 자, 뚝. 응? 좋은데 왜 울어?
- 오빤 이런 거 싫어하는데...
- 좀 어색하긴 한데... 익숙해지겠지, 뭐
- 그래서 그래요. 싫은데도 나 때문에 하는 거잖아.
- 어이구, 그게 눈물 날 일이야?
- 그래두...
- 알았으면 앞으로 잘 해. 크크크...
- 나, 오빠한테 잘 못해요? 히잉~
- 이런...? 그냥 하는 소리지.
- 치~...
수민이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밉지 않게 흘기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수민이을 또 당겨 안고 이마에 살짝 입맞추어 주었다. 수민이가 고개를 들어 내 입술을 찾았고, 또 한참 동안 수민이의 혀를 빨고 내 혀를 내주며 키스했다. 언제 빨아도 달콤하기만 했던 수민이의 입술과 혀...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커플 액세서리 하자는 소리를 두 번 다시 꺼내지 못하고, 얼마나 속만 태웠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했다. 액세서리 선물을 안 해줘서 미안한 게 아니라, 수민이가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말도 못 했던 마음고생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어쨌든 수민이는 진짜진짜 좋아했고, 그 목걸이와 귀걸이를 매일 하고 다녔다. 내가 보기엔 어머니께서 사주셨다는 다른 목걸이도 좋아 보였는데, 수민이는 내가 사준 게 더 예쁘다며 그것만 하고 다녔다.
- 애들이, 나 목걸이 이거밖에 없v... 킥킥...
- 다른 것도 하고 다니지, 왜?
- 이게 제일 좋은 걸?
- 그렇게 좋아?
- 오빠랑 똑같은 거 하고 있으니까...
- 후훗...
- 헤헤~...
그렇게 좋아하는 수민이를 볼 땐 흐뭇했지만 내 목에 걸려 있는 금속 이물질은 불편하기만 했다. 시계도 불편해서 안 차고 다니던 나에게 목걸이라는 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운 쇠사슬에 불과했다. 특히나 더운 여름에 땀이라도 나면 더 불편했다. 그나마 반지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반지는... 진짜 도저히 못 끼겠다.
그래도 수민이와 만나는 동안은 매일 걸고 다녔다. 수민이를 만날 때는 물론, 만나지 않는 날에도 항상 하고 다녔다. 수민이는 장신구 따위를 귀찮아하는 내가 자기와 똑같은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아했다. 단순히 그 이유 뿐이었다. 내가 그걸 걸고 다니는 걸 수민이가 좋아했다는 것 ! 나중엔 나도 익숙해져서 목걸이를 하지 않으면 좀 허전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민이는 거의 매일 아침 내 원룸에 들렀다. 그러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적어도 한 시간은 당겨야 했는데, 아침잠 한 시간을 손해보는 건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수민이는 거의 반년을 그렇게 다녔다. 그 반년 동안 나는 매일 수민이가 깨워서 일어났고, 수민이는 나를 깨울 때 내가 아는 가장 짜릿하고 황홀한 방법을 사용했다. 아침 발기로 바짝 일어선 그 녀석을 수민이의 부드러운 입술과 혀로...
수민이는 학교에 가는 시간이 항상 규칙적이었고, 나를 깨운 시각도 거의 일정했다. 매일 매일 같은 시각에 깨어나다 보니 그 시각이 되면 저절로 잠이 깰 정도가 되었고, 수민이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고, 수민이의 애무를 받고서야 깨어나는 척을 했다. 그때부터였나요? 내가 잘 때 홀딱 다 벗고 아무 것도 안 입고 잔 게...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황홀하게 나를 깨워 주고 일어나던 수민이가 시각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내 품에 파고들며 칭얼거렸다.
- 아~... 가기 싫어... 히잉~
- 수민이 안 가면 나야 좋지.
- 진짜, 오빠랑 그냥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 후후후...
- 나, 여기서 자면 학교 안 늦을 텐데...
- 나도 빨리 그랬으면 좋겠어.
- 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예요?
- 왜? 싫어? 그럼, 뭐... 쯧~, 딴 사람 찾아 봐야겠네?
놀리듯 말하면서 곁눈질로 수민이를 힐끗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수민이는 금새 코가 빨개지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 나... 그러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 하길...
- 흑~...
- 이런...? 그러게 왜 그런 소릴 해, 하길...? 에유, 바보...
- 흑~, 오빠... 장난인 줄 아는데... 흑~
- 아는데?
- 아는데도... 흑~, 그런 말 들으니까 막...
- 으이그... 이 바보, 정말... 킥킥킥...
- 훌쩍~
- 뚝~, 그만... 쪽~
- 훌쩍~
수민이는 눈을 꼭 감아 눈물을 짜내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마에 입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워서 안고 있는데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키스밖에... 수민이의 입술과 혀를 한참을 빨았다.
- 근데, 나 만나는 거 오빠네 집에서 알아요?
- 음... 우렁각시 하나 있다고 말은 해 놨어.
- 킥킥~ 우렁각시?
- 후후~ 우렁각시지, 뭐. 나 잘 때 오니까...
- 난 집에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주말에 외박할 땐 뭐라 그랬는데?
- 오빠 집에서 잔다고는 못하고, 친구 핑계 댔죠.
- 믿어 주셔?
- 그럼요. 믿어 주시지...
- 흠... 뭐, 잘 말씀드려 봐야지.
- 나, 한... 내년쯤에 엄마아빠한테 오빠 소개하고...
- 그리고?
- 4학년 때 약혼하고, 졸업하면서 결혼하고... 어때요?
- 졸업 전에 결혼하면 안 되고?
- 네...? 어...
- 후후... 농담이야.
- 아니, 안 될 건 없는 거 같아요.
- 진짜?
- 응.
- 흠... 결혼하면 수민이 안 먹여줘도 되겠다.
- 남자가 돼 갖구, 아내를 먹여 살리지 않겠다구요?
- 먹여 살리는 거 말구, 수민이가 맨날 먹는 거... 킥킥~
- 내가 맨날...? 어우, 오빠아~
- 아야야... 쪽~
- 어우, 정말... 치~
그제서야 알아들은 수민이가 주먹질을 했지만 콩콩 토닥이는 수준이었다. 나는 제법 아픈 척 엄살을 부리며 수민이를 끌어안았다. 쪽~ 뽀뽀 한 번에 화가 풀리는 단순한 수민이... 그런 수민이의 혀를 빨며 또 한참 키스하고 나서 수민이의 매끈한 아랫배를 만지며 귓가에 속삭였다. 옷 안으로 손을 넣어 쓰다듬자 수민이의 보드라운 음모가 손 끝에 간지럽게 스쳤다.
- 결혼하면 이 안에 그냥 다 뿜어 버릴 거야. 쪽~
- 하아... 오빠...
- 아기 생기게... 쫍~
- 아기...요? 하아~
- 그래, 우리 아기, 수민이 닮은 예쁜 아기가 나오겠지?
- 흐응... 떨려요. 생각만 해도...
- 근데 그러면 배가 이마안~해질 텐데 학교 다닐 수 있겠어?
- 이잉~, 배 나오는 건 싫은데...
- 아줌마 소리 듣겠다, 그지? 킥킥킥~
- 히잉~... 그거 상상해 버렸쪄. 어떡해잉~?
- 상상? 음...
- 아익~, 하지 마, 상상하지 맛~...
- 크크크... 쪼옥~
수민이와 나는 그런 대화를 하면서 김칫국을 아예 독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그런 공상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불행한 공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이다. 행복한 공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힐링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미래, 행복한 사랑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 어? 오빠 거, 작아졌다. 헤헤...
- 작아진 건 처음 봐?
- 킥킥~ 그건 아니구... 오빠 잘 때 몇 번 봤어요. 킥~
- 그래, 작으니까 어때?
- 음... 덜 징그러워요.
- 그래도 아직 징그럽다는 거네?
- 또 삐지려고?
- 몰라. 치. 난 수민이 온몸 어디든 다 예쁜데...
- 풋~ 사실, 작을 땐 귀여워요. 안 징그러.
- 흐흐흐...
- 어? 오빠, 그 웃음은...?
- 귀여울 때 키스해줘 봐.
- 아유, 정마알...
- 어서... 작고 부드러우니까 목도 안 찌르고 좋잖아.
수민이는 또 눈을 흘겼지만 금새 내려가 내 작아진 꼬추를 입에 넣었다. 그러나 그 귀엽던 놈은 수민이의 자극에 급격히 커져서 또 수민이의 입 안을 가득 채웠고, 나는 수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음했다. 잔뜩 흥분해서 수민이를 끌어당겼지만, 수민이가 진짜 늦어서 안된다는 바람에 더 욕심부리지 못하고 서둘러 수민이를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잘 참고 늦지 않게 수민이를 바래다 주지는 못했다. 수민이의 입과 혀로 잔뜩 흥분한 상태로 깨어나서 수민이를 쓰러뜨리고 옷을 벗기는 바람에 수민이가 학교에 못 가거나 늦게 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빼먹고 나를 탓하며 칭얼거렸으면서도 계속 같은 방법으로 깨운 걸 보면, 수민이도 은근히 내가 벗겨 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던가 생각할 뿐이다.
처음부터 애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섹스를 바란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 수민이가 와서 여느 때처럼 내 자지를 핥고 빨아서 나를 깨웠는데. 그렇게 수민이의 애무를 받다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며 아쉬워했었다.
- 오빠, 이제 가야 돼요.
- 아... 아쉽다.
- 훗~, 일어나세요~?
- 응...
- 근데 오빠... 어제, 차 몰고 왔어요?
- 차? 아, 어제 갖고 왔지, 참... 어떻게 알았어?
- 색깔도 같고... 인형도 똑같아서...
- 아, 그거 봤구나?
스키장 갈 때 아버지께 허락을 얻어 몰고 갔던 그 차였다. 그 전날, 프로젝트 의뢰를 받아 이천에 있는 모 회사에 가야 했었고, 서울 집에 들렀다가 거기서 바로 출발하면서 차를 가지고 갔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도로 갖다 놓지 못 하고 그냥 수원으로 몰고 왔었다. 수민이는 빛을 받으면 까딱거리는 인형을 대시보드 위에 놓아 주었었다.
- 잘 됐다. 수민아, 오빠가 태워다 줄게.
- 학교까지?
- 응.
- 와, 많이 안 걸어도 되겠다. 헤헤...
- 좋아?
- 좋죠. 갈아타는 시간도 아끼지, 걷는 거리도 줄지.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헤헤...
- 미안하긴 뭐가...? 자, 그럼...
- 아이, 안돼요.
- 왜? 시간 벌었잖아. 나 사랑해 주고 가.
- 아우... 오빠아~ 얘기가 왜 그렇게 가는데에~? 히잉...
- 후후후...
나는 수민이를 잡아끌어 눕혔다. 내가 수민이를 학교까지 태워 주면 적어도 한 시간쯤, 시외버스 내려서 또 버스 갈아타고 학교 가는 것보다는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그 아낀 시간만큼만 더 있다가 가라고 수민이를 졸랐고, 더 있다 가라는 얘기는 당연히...
수민이는 안 된다며 나를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 진작 그럴 것이지. 후후...
- 치, 애기 같애... 맨날 떼쓰고...
- 시간 아까우니까 그렇지. 실랑이할 시간에 사랑 나눴으면 벌써 출발했겠다.
- 쪽~ 그만... 이제 나한테만 집중해 줘요.
- 그거, 무지 야하게 들리는데? 후후... 쫍~
- 아... 오빠...
- 쫍~... 쫍~...
- 하아... 오빠, 나 사랑하죠?
- 그러엄~ 사랑하지, 수민이... 쫍~
- 나도 사랑해요... 아~ 오빠...
수민이는 그렇게 안 된다던 것과는 달리 내 품에서 금새 흥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민이가 만족할 만큼 애무해 준 다음, 수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무지 서둘렀다.
나는 거짓말 안 하고 5분도 안 걸려서 머리 감고 샤워하고 나왔는데, 수민이는 내가 애무한 부분만 씻고 나왔다는데도 20분이 넘게 걸렸고,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화장을 해야 했다. 수민이는 계속 재잘대면서 자꾸 손을 멈추는 바람에, 학교 정문을 통과하도고 한참을 가야 하는 강의동 건물 앞에 거의 다 와서야 겨우 화장을 마치고 나를 보았다.
- 오빠, 나 예뻐요?
그때 나한테는 수민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쁠 때였고, 수민이가 좋다면 좋은 거고 수민이가 이쁘다면 이쁜 거였다. 그 즈음에 수민이 말에 아니라고 한 건... 음, 생각이 안 난다. 무조건. 무조건이었다.
수민이는 내가 아니라고 대답할 일이 없을 만큼 내 모든 걸 내 취향에 맞게 챙겨 주었었다. 방의 침대커버와 커튼, 러그 따위도 모두 수민이가 골라 주었고, 슬리퍼며, 거울이며... 방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전부 수민이와 함께 고른 것으로 바꾸었다. 이따금 수민이가 자기 취향대로 골라 온 것들도 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수민이 혼자 가서 산 내 옷이 사이즈는 물론, 디자인이나 색상 모두 만족스러웠을 정도였다.
화장도 나에게 맞추어 주었다. 보통 이십대 초반 여학생들은 화장을 진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수민이는 짙은 화장을 싫어하는 나 때문에 한 듯 안 한 듯 가볍게 화장하곤 했었다. 특히,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수민이 입술을 탐냈던 나 때문에 립스틱도 안 바르고, 립글로즈만 가끔 발랐었다. 립스틱을 발랐어도 나는 전혀 거리낌없이 빨아먹었을 테지만.
그런 사람이 예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예뻤다.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고 대답해야 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예뻤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수민이가 예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민이에게 맞추어 미의 기준을 바꿔서라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던 때였다.
- 응, 진짜 예뻐.
- 피이~, 맨날 예쁘대.
수민이는 예쁘다는 내 말에 온 얼굴에 웃음이 드러나는데도 못마땅한 척 입을 삐죽였다.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 크크크... 하지만 진짜 예뻤다. 한시간 전에 사정했는데도 바지 앞섶에 또 불룩한 텐트를 칠 정도로 예뻤다.
- 예쁘니까 예쁘다 그러지.
- 헤헤... 갈게요? 쪽~
- 어...?
- 어차피 뽀뽀해 달라고 할 거잖아요. 킥~
- 큭... 전화 해?
- 네에~
수민이는 기습적으로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뽀뽀 말고 키스를 했어야 했는데... 살짝 놀라서 키스할 타이밍을 놓쳤다.
차를 주차장 한쪽에 세워 놓고 학교를 천천히 구경했다. 그때 수민이네 학교에는 무슨 나무가 그렇게 많았는지, 나무밖에 생각이 안 난다. 사실은 수민이 생각밖에 없어서 학교 구경도 제대로 못 했다. 수민이는 그랬던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날은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수민이와 같이 올라가려고 기다는 동안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하품을 하다가... 졸다가... 참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다. 수민이랑 있으면 하루가 참 짧은데, 혼자 있으면 시간이 왜 그리 천천히 가는지...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긴 흘렀다.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또 도서관에서 신문, 잡지를 보다가... 졸다가...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열람실에서 나올 때쯤, 전화가 진동했다. 좀더 서둘러 나와 도서관 복도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
- 네...
- 오빠 !
- 응, 수민아.
- 수업 다 끝났어요. 헤헷~
- 그래? 음... 난 여기... 여기가 어디지?
- 치, 자기가 어딨는지도 몰라요? 킥킥...
- 아냐, 알아. 중앙도서관 옆에 주차장 있지? 그리로 와.
- 도서관? 우와~, 아직 안 갔어요?
- 후후후...
주차장에서 수민이를 기다렸다. 강의실 건물 앞에서 젊은 남자가 모는 승용차에 올라타는 여학생...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 더운 날씨에 수민이를 주차장까지 걷게 했다. 오전에 승용차에서 내려 뛰어가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 그냥 먼저 가지, 왜 기다렸어요...?
- 에~?
수민이는 아침에 헤어질 때와 똑같았다. 내가 기다린다는 말에 뛸 듯이 좋아하는 게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었는데, 막상 만나서는 귀에 걸린 입꼬리도 감추지 못하면서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수민이가 더울까봐 에어컨을 켜면서도 퉁명스러운 척 말했다.
- 그럼 내려. 나 먼저 갈게.
- 오빠...?
- 뭐, 같은 방향이니까 타든지... 난 혼자 가도 되는데.
- 오빠, 왜...? 혹시, 화... 났어요?
- 이런...? 화 안 났어. 쪽~ 수민이가 맘에 없는 소리 해서 오빠도 장난친 거야.
수민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화난 척을 더 했다가는 수민이를 또 울릴 것 같았다.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말하고 수민이의 볼에 뽀뽀해 주었다. 울상지었던 얼굴은 금새 풀렸지만 코는 벌써 빨갰고, 수민이는 또 입을 삐죽였다.
- 치, 오빤 맨날 나만 나쁜 애 만들구...
- 그러게, 왜 그랬어? 진짜 먼저 갔으면 좋았겠어?
- 그냥... 미안하니까 그렇죠.
- 뭐가 미안해. 오늘 스케줄도 없는데.
- 그래두...
- 어때? 같이 가니까 좋아, 싫어?
- 꼭 그렇게 확인하지 않으면 몰라요?
- 응, 몰라. 오빤 수민이가 말하면 그냥 그대로 다 믿어.
- 치~...
- 어떻게? 다음엔 오빠 먼저 가?
- 아니요, 같이 가서 좋아요. 오빠 먼저 갔으면 서운해서 울었을지도 몰라요. 됐어요?
- 그래, 무조건 솔직하게 말해. 알았어?
- 오빠, 그런 목소리로 말하면 무서운 거 알아요? 치~
- 아니야. 우리 이쁜 수민이한테 왜... 이리 와... 쪽~
- 헤헷~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나 오늘 용돈 받았는데...
- 어이구... 우리 애기 코묻은 돈으로 얻어 먹으라고?
- 아잇, 내가 무슨 코를 흘린다구~
역시... 삐졌던 수민이는 뽀뽀 한번에 풀렸다. 그렇게 서로 밉지 않게 툭탁거리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수민이는 그렇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걸 미안해 했다. 또, 내가 자기에게 돈 쓰는 걸 미안해 하는 수민이였다.
수민이는 내가 보기에도 참 알뜰한 아이였는데, 돈이 없어서 궁한 것과 돈이 있어도 검소한 것은 분명히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또,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해서 헤픈 씀씀이가 금새 검소해지는 것도 아니다. 수민이는 어쩔 수 없이 알뜰해진 게 아니라 원래 검소한 아이였다. 부모님도 검소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검소하지 않은데 자식이 검소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도 궁색하게 굴지는 않았다. 때로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값이나 커피값을 지불해 버리기도 했고, 예뻐 보여서 샀다며 불쑥 내 옷을 사들고 오기도 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예뻐서요... 예쁘잖아요... 하면서 웃어 주었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더 나무랄 수 없게 만드는, 수민이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수민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서, 집에 월급 가져다 드릴 때보다 용돈이 오히려 늘어났어도, 갑자기 씀씀이가 커지거나 헤퍼지지는 않았다. 입고 다니는 옷은 내가 처음 보는 브랜드로 바뀌었지만, 화려하지도 않았고 상표가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나 같은 사람 눈으로는 뭐가 특별한지 모를 정도로 은근히 고급스러울 뿐이었다.
나랑 데이트할 때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구두보다는 캐주얼화를 신었고, 내가 즐겨 입는 복장에 맞추어 털털한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나오기도 했다. 치마 입는 걸 좋아했지만, 예뻐 보이는 치장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편한 옷차림을 했던 수민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예쁘고 착했던 수민이였다.
목걸이나 귀걸이도 번쩍이게 하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사주셨다는 화려하지 않은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정도였고, 커플링을 맞추어 같이 끼면 어떻겠느냐고 한번인가 말했었지만, 내가 시계나 반지를 귀찮아하는 걸 알고는 다시는 조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얼리샵 같은 곳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늦추어지는 건 너무나 티가 났다.
- 오빠, 아침에 애들이 오빠 봤나 봐.
- 그래? 큰일 났네?
- 어머, 왜요?
- 걔들 눈 높아져서...
- 깔깔깔... 아이, 뭐예요...?
- 크크크... 그래, 애들이 뭐랬는데?
- 데리고 다니는 애 누구v, 큭큭...
- 애? 애~? 이것들이...
- 젊어 보이지도 않는데 애래. 그죠? 킥킥...
- 에? 수민이가 더 나빠, 씨이~
- 깔깔깔...
그렇게 웃으며 가는데, 앞에 가던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너무 바짝 붙어서는 바람에 추월도 못하고 버스 뒤에 서서 기다리는데, 길가에 있는 주얼리샵이 눈에 들어왔다. 수민이도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수민이가 평소 원하던 커플링인가 뭔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서, 버스가 출발하자 정류장을 조금 지나쳐 차를 세웠다.
- 어? 오빠...
- 응?
- 여기... 왜요?
- 내려 봐.
- ......
- 저기... 저기 구경하고 가자.
- 그거 본 거 아니예요, 뭐... 피이~
- 그래? 그럼 나만 들어간다?
- 에...?
- 피식~ 자...
- 치~
수민이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내미는 내 손을 잡으며 따라 들어왔다.
18금이나 14 금 도금 제품도 있긴 있었지만 나는 귀금속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괜한 욕심에 순금이나 순은으로 하고 싶었다. 순금은 비싸기도 했지만 순금을 하려면 아예 금은방에 가는 게 나았고, 주얼리샵에 그나마 순은은 있어서 은제품을 보여 달라고 했다.
- 오빠, 이거 어때요?
- 응, 이쁘네.
- 이건요?
- 응, 이뻐.
- 치, 다 이쁘대.
- 다 이쁘니까. 사장님, 다 이쁘죠?
- 호호호... 네.
- 거 봐.
- 치... 몰라, 안 골라.
- 싫으면 말든가. 고맙습니다. 잘 봤어요.
- 에? 오빠...
- 왜? 안 고른다며?
- 치~ 오빠 미워.
- 쿡쿡쿡...
사장인지 종업원인지 애매한, 나이도 사십대인지 오십대인지 애매한 여자는 옆에서 킥킥댔고, 수민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 입술을 깨문 채 찌푸린 눈을 흘기고 있었다.
- 아까 말했지?. 맘에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 오빠, 너무해.
- 내 맘대로 골라?
- ......
- 음... 3번에 5번. 세 번째 줄 다섯 번째 있는 거, 포장해 주세요.
- 아잇, 뭐야... 그렇게 사는 게 어딨어? 씨잉~
- 그러니까 수민이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응?
- 치~
수민이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진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들이 북적이는 매장에서 수민이는 자기에게 바짝 붙도록 날 잡아끌었다.
- 오빠, 이건 어때요?
- 음... 그것도 이쁘네.
- 아잇, 다 이쁜 건 없어. 다 이쁘면 다 살 거야. 이거 다 사 줄 거예요?
- 오호~, 수민이 센데? 이야...
수민이는 구슬이 연결된 모양의 목걸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쁘긴 했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속 장신구들 중에 예쁘지 않은 게 없었다. 캐릭터 디자인도 있었고, 종교적인 디자인도 있었고... 나는 그냥 평범한 기하학적 디자인을 원했는데.. 거 이상하게도, 고르다 보니 자꾸 화려한 디자인에 눈이 갔다.
그러다가 그 중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인, 모서리가 둥근 별 모양의 띠에, 안에는 또 다른 무늬가 들어 있고 자수정 같은 짙은 색 큐빅이 몇 개 박힌 펜던트였다.
- 이거 어때?
- 우와, 오빠가 골라 주는 거예요?
- 디자인이나 봐.
- 음... 괜찮아 보여요.
- 그래? 다행이네.
- 오빠, 귀걸이 해 봤어요?
- 안 해 봤지... 왜?
- 음... 오빠가 고른 거, 귀걸이도 이뻐요. 여기...
- 목걸이랑 똑같네?
- 그러니까 세트죠... 히힛~
- 맘에 들어? 그럼 이걸로 할까?
- ......
수민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 귀에 걸려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어이구, 그렇게도 좋을까...
그렇게 수민이에게는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선물해 주고, 나는 굵지 않은 체인에 수민이 것과 같은 디자인으로 펜던트만 하나 추가했다. 내가 카드를 긁어 결제하는 동안, 수민이는 거울을 보며, 하고 있던 귀걸이를 빼고 바로 새 귀걸이를 달았다. 그리고 목걸이...
- 수민이, 이리 온?
- 네?
- 내가 걸어 줄게.
평소에 수민이를 아기 취급하던 말투가 사람들 많은 데에서도 그냥 나왔다. 수민이의 목에 팔을 둘러 고리를 걸어 주는데, 옆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소란을 떨며 주얼리샵 처음 가 보는 놈 티를 팍팍 냈으니... 창피하거나 쑥스럽지는 않았지만, 신경은 좀 쓰였다.
수민이는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움츠렸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도 혀를 살짝 내밀어 깨물고 헤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민이의 긴 머리를 헤치고 목을 쓰다듬어 가면서 수민이를 감싸듯 내 팔에 가두고 목 뒤에서 고리를 걸었다. 일부러 천천히 손을 놀렸고, 고리를 걸고 나서는 수민이의 뒷목부터 천천히 손을 미끄러뜨려 어깨까지 쓰다듬었다. 수민이는 내 손길에 소름이 끼치는지 살짝 떨며 움츠렸다.
수민이는 마치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깜짝 선물로 받은 아이처럼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수민이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고 수민이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맞추는 게 무슨 나쁜 짓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 히잉~...
수민이는 또 살짝 떨며 앙탈하듯 콧소리를 냈다. 주인 아줌마가 분위기를 깨며 끼어들었다.
- 어머~, 너~무 잘 어울린다아~...
- 그래요? 후후... 가자, 수민아.
- 또 오실 거죠? 호호호...
- 네.
- 안녕히 가세요옹~
그 아줌마가 콧소리를 내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수민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조수석 문을 열어 수민이를 태우고, 괜히 주변 눈치를 보며 운전석에 탔다. 주얼리샵 앞은 모 여고 이름이 크게 쓰여진 버스정류장이었고, 보이는 남자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피식~ 한쪽 입술만 일그러지며 웃음이 나왔다. 누가 봤으면 썩소라고 할 만한 웃음이었다.
- 반지 끼고 싶댔는데 정작 반지는 안 해 줬네?
- 괜찮아요. 이게 더 좋아, 오빠랑 같이 하니까.
- 그래? 그럼 다행이고.
- 오빠...
- 응?
- 볼수록 이뻐요, 정말...
- 좋아?
- 그럼요. 누가 사 준 건데...
- 수민이가 좋으면 나도 좋아.
- 하아... 가슴이 막 뛰어.
- 어디, 얼마나 막 뛰나...
수민이의 가슴께로 손을 뻗었지만 만지지는 못했다. 수민이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막고 다른 손으로 찰싹 때렸다.
- 아이~ 또 응큼쟁이 되려고.
- 후후... 되긴 또 뭐가 돼? 벌써 응큼쟁인데...
- 치이~
- 맞잖아. 맨날 응큼쟁이라고 하면서 뭘... 내가 응큼쟁이라서 싫어? 응? 어때?
- 칫, 몰라요.
- 그나저나, 내 목걸이는 언제 걸어 줘?
- 아, 맞다...
- 자기 예쁘니까 내 건 신경도 안 쓰는구만? 치...
- 아이, 지금 해 줄게, 삐지지 마요. 응?
-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 눈 감구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요?
- 그럼 해 봐. 자...
수민이의 손에 목걸이 양쪽 고리를 쥐어 주고 나는 수민이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그리고 키스... 수민이의 예쁜 가슴도 쓰다듬었다.응큼쟁이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응큼한 짓 한번 덜 한다고 해서 내가 응큼쟁이 아닌 것도 아니고, 진작에 이미 응큼쟁이였는데, 뭐.
수민이 가슴은 수민이 말대로 심하게 콩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키스에 좀더 두근거렸을 수도 있었다. 수민이는 웅웅거리며 뭐라고 말하는 듯 반항했지만 금새 내가 원하는 걸 알아채고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밀어넣어 주는 내 혀를 빨면서 손끝으로 더듬어 고리를 걸었고, 다 걸고 나서도 내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고 한참동안 내 입술과 혀를 빨았다.
- 쪼옵~
- 하아... 오빠...
- 사랑해, 수민아.
- 나도 오빠... 사랑... 흑~
- 이런 바보, 또 울어?
- 흑~...
- 허허, 참...
좋으면 웃어야지, 왜 우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다. 나 같은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올렸다. 그 소리에 수민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금새 울상으로 바뀌었다. 뭐, 그래 봐야 남의 차를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었고 수민이만 혼자 제 발이 저려서 부끄러워한 거지만.
- 하잉~ 난 몰라... 언제 열었어요?
- 차 세울 때부터 열려 있었어. 몰랐어?
- 하앙~ 어떡해...
-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걸 몰랐단 말이야?
- 몰랐어요, 진짜...
- 허... 목걸이에 완전히 정신이 팔렸구나?
- 킥~ 헤헤...
배시시... 수민이가 혀를 살짝 깨물며 나를 보고 웃었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나도 그 순간, 수민이만큼 꿈꾸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수민이가 나를 보고 웃어 주었으니... 진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 자, 거울...
조수석 앞의 선바이저를 내려 주었다. 목걸이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황홀한 눈빛으로 어쩔 줄을 모르는 수민이 눈가엔 눈물이 번져 살짝 젖어 있었다.
- 무슨, 나르시스도 아니고, 차암~...
- 좋은 걸 어떡해?
- 그렇게 좋아?
- 네. 헤헤~...
- 결혼반지 해주면 아예 통곡을 하겠네...?
- 결혼반지 해줄 거예요?
- 아니. 수민이 울까 봐 못 해주겠는데?
- 치~... 훌쩍~
- 후후, 자, 뚝. 응? 좋은데 왜 울어?
- 오빤 이런 거 싫어하는데...
- 좀 어색하긴 한데... 익숙해지겠지, 뭐
- 그래서 그래요. 싫은데도 나 때문에 하는 거잖아.
- 어이구, 그게 눈물 날 일이야?
- 그래두...
- 알았으면 앞으로 잘 해. 크크크...
- 나, 오빠한테 잘 못해요? 히잉~
- 이런...? 그냥 하는 소리지.
- 치~...
수민이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밉지 않게 흘기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수민이을 또 당겨 안고 이마에 살짝 입맞추어 주었다. 수민이가 고개를 들어 내 입술을 찾았고, 또 한참 동안 수민이의 혀를 빨고 내 혀를 내주며 키스했다. 언제 빨아도 달콤하기만 했던 수민이의 입술과 혀...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커플 액세서리 하자는 소리를 두 번 다시 꺼내지 못하고, 얼마나 속만 태웠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했다. 액세서리 선물을 안 해줘서 미안한 게 아니라, 수민이가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말도 못 했던 마음고생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어쨌든 수민이는 진짜진짜 좋아했고, 그 목걸이와 귀걸이를 매일 하고 다녔다. 내가 보기엔 어머니께서 사주셨다는 다른 목걸이도 좋아 보였는데, 수민이는 내가 사준 게 더 예쁘다며 그것만 하고 다녔다.
- 애들이, 나 목걸이 이거밖에 없v... 킥킥...
- 다른 것도 하고 다니지, 왜?
- 이게 제일 좋은 걸?
- 그렇게 좋아?
- 오빠랑 똑같은 거 하고 있으니까...
- 후훗...
- 헤헤~...
그렇게 좋아하는 수민이를 볼 땐 흐뭇했지만 내 목에 걸려 있는 금속 이물질은 불편하기만 했다. 시계도 불편해서 안 차고 다니던 나에게 목걸이라는 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운 쇠사슬에 불과했다. 특히나 더운 여름에 땀이라도 나면 더 불편했다. 그나마 반지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반지는... 진짜 도저히 못 끼겠다.
그래도 수민이와 만나는 동안은 매일 걸고 다녔다. 수민이를 만날 때는 물론, 만나지 않는 날에도 항상 하고 다녔다. 수민이는 장신구 따위를 귀찮아하는 내가 자기와 똑같은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아했다. 단순히 그 이유 뿐이었다. 내가 그걸 걸고 다니는 걸 수민이가 좋아했다는 것 ! 나중엔 나도 익숙해져서 목걸이를 하지 않으면 좀 허전하기도 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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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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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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