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달맞이꽃 15장
그 이후로, 수민이는 애정표현에 대담해졌다. 언제나 내가 먼저 집적거리고 흥분시켰지, 수민이가 나를 먼저 자극한 건 아침에 깨울 때밖에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언제든 스킨십을 시도했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사랑을 표현했다.
카페 같은 곳에서도 남들이 보든 말든 나에게 진하게 키스하기도 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도 나에게 기대어 내 팔을 끌어다 자신을 안게 했다. 안겨 있으면 내 팔을 쓰다듬었고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내 볼이나 입술에 입맞추었다. 남들의 시선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 괜찮아?
- 뭐가요?
- 후후... 내가 그럴 땐 짐승 취급하더니...
- 치, 그래서 싫다는 거예요, 뭐예요?
- 싫을 리가 있겠어?. 나야 좋지.
- 그러면서 뭘... 쪽~
- 아니, 짐승이라며? 아니다. 그냥 짐승 하지 뭐.
- 피이.. 오빠, 나 듣고 싶어요.
- 사랑해 수민아.
- 흐응~ 나도 오빠 사랑해요.
수민이는 말로, 행동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항상 말로도 사랑을 속삭이고 몸으로도 사랑을 나누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수민이를 안고 애무하고 삽입할 수 있었다. 아니, 나보다도 수민이가 먼저 원했고, 수민이가 원하면 해야만 했다. 그 무렵 수민이는 내 곁에 붙어 있으면서도 항상 내 손길을 원했다. 틈만 나면 수민이의 볼이며 이마에 입술을 대던 나였지만, 달라진 수민이는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아주 대담했다.
수민이의 가슴을 처음 만졌던 수민이네 집 건물 사이 틈에서도 섹스했었다. 어둠이 다 깔리지도 않은 어스름 저녁에 수민이가 재촉해서 후배위로 삽입했었다. 남들에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긴장감을 스릴있게 즐긴 게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걸 참지 못했던 수민이를 나도 말리지 못했을 뿐이다.
- 하아... 오빠... 응?
- 여기서?
- 응. 지금...
- 좀... 너무 밝잖아...
- 아이, 그래도... 후움~ 쪼옵~ 쭈웁~
수민이는 내가 수민이의 입술을 원했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내 입술을 원했고, 내 사랑을 원했다. 나는 원하기만 했었지만 수민이는 원하는 걸 그 즉시 얻어야만 했다. 한번은 내가 살던 원룸 건물 복도에서 잠깐이지만 스커트를 들추고 삽입한 적도 있었다. 물론, 수민이가 적극적으로 주도한 거였다. 결국 후다닥 뛰어들어와 침대까지 가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나를 눕히고 수민이가 덮쳤었다.
- 수민이 요즘 너무 밝히는데? 크크크...
- 치, 오빠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 진짜 그런 거야?
- 아이, 몰라... 부끄럽게..
- 후훗, 부끄럽다는 사람이 또 오빠 거 만지고 있어?
- 헤헤... 나, 안아 줘요.
- 또?
- 응... 또 하고, 또 해줘.
- 수민아, 요즘 왜 이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 일? 무슨 일?... 말만 하지 말고 어서요. 아이잉~...
걱정이 되어서 물었지만 수민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반문했고, 나는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민이는 불안해 보일 정도로 나를 갈구했다. 나는 그런 수민이를 걱정하면서도 흥분하면 걱정을 잊고 수민이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흥분이 진정되면 또 걱정하곤 했다.
수민이의 심리상태는 걱정스러웠지만, 계속 수민이에게 신경쓸 수는 없게 되었다. 선배와 함께 만든 작은 회사는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좀 알려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영업하러 방문했던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문의가 왔다. 어어~ 하는 사이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졌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 회사 저 회사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운전하면서 전화를 받고, 약속을 정하고... 진짜, 하루가 25시간이라도 모자랐다. 전화 응대할 직원을 새로 고용해야 했고 밤늦게까지 작업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모든 프로그램을 우리가 직접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선배나 내가 꼭 방문해서 요구사항을 듣고 발주하는 측과 일일이 협의해야 했다.
돈 버는 재미는 있었지만 정신없이 바빠졌고, 당연히 수민이와 만나는 날도 띄엄띄엄 줄어들었다. 수민이는 매일매일 나를 보고 싶어했지만 업무상 바빠서 어렵다고 하면 보고 싶다고 투정하고 칭얼거리다가도 쉬엄쉬엄 일하라고 말해 주었고, 회사가 바빠진 것에 대해 잘 됐다며 좋아해 주었다. 우리는 밤늦게 잠깐 통화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 네?
- 수민아.
- 오빠.... 우와... 오빠...
- 후후... 뭐가 우와야?
- 오빠랑 통화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오늘도 많이 바빴나 보네?
- 응. 지금 들어와서 씻고 누웠어.
- 밥은? 저녁은 먹었어?
- 미팅하면서 먹었어. 한 끼 겨우 먹었네, 오늘.
- 미팅? 그럼 또 술 먹었겠네? 이그... 맨날 술 먹고...
- 그럼 어떡해...? 빠질 수가 없는 미팅인데...
늦게 들어와서 그렇게 수민이와 통화를 하다가, 한번은 내가 전화기를 든 채 잠든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동아리에서 벌어진 일이며... 수민이는 한참 재잘재잘 떠드는데, 나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냥 잠든 거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전에 수민이에게 전화부터 했지만 수민이는 그때까지도 뾰로통, 전화를 받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수민이를 달래고 풀어주느라 오전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었다. 그날, 저녁엔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수민이를 만나 사랑해 주어야 했다.
- 하아...
- 좋았어?
- 응... 쪽~
- 후후... 이제 용서해 주는 거야?
- 치이~ 바부팅이 오빠...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사랑해 주면 안 돼?
- 아이, 수민이 삐지는 거 싫으니까 그러지.
- 헤헤... 사실은 버얼써 풀렸어요. 삐졌으면 아까 전화도 안 받았지.
- 쪽~ 그래. 그래야 우리 수민이지.
- 근데 어젠 그렇게 피곤했어요? 술도 안 먹었다며...
- 응, 어젠 좀 많이 피곤했어. 왜 그랬나 모르겠네.
- 그랬구나... 오빠 좀 쉬어 가면서 해요.
- 후후... 알았어.
휘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쁜데 쉬어 가면서 일할 수가 있나... 속으로만 말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하는 말에 반박하거나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해 주면 안 되는 거다. 특히, 다 벗고 껴안고 있을 때에는 더욱 더 그래야 한다.
......
따뜻했던 5월 초, 수민이네 가족이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수민이 아버님이 가족들에게 깜짝 선물로 준비했다가 출발하기 며칠 전에야 알려준 거였다. 수민이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나에게 전화했다. 깜짝 놀랐지만 누군 좋겠다며 부러움을 가득 담고 웃어 주었는데, 수민이는 툴툴거리며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수민이의 투정하는 목소리도 예뻤다. 여행 기간 동안 나를 못 본다는 이유로 심통이 난 거라서.
- 아빤 이런 걸 일주일도 안 남기고 알려주고...
- 그러니까 깜짝 선물이지. 잘 갔다 와. 재밌겠네.
- 어떻게 잘 갔다 와? 오빤 열흘 동안이나 나 안 봐도 괜찮아?
- 그럼 뭐라 그래? 가지 말라 그래?
- 히잉... 너무 길단 말이야.
- 아, 참... 학교는?
- 빠져야지, 뭐.
- 그게 더 걱정이네?
- 난 그건 하나도 걱정 안 돼. 오빠 못 보는 거만 아쉬워.
- 가서 놀다 보면 내 생각도 안 할 거면서.
- 씨잉~ 오빠, 미워...
- 크크크... 농담이야.
- 나, 외국 처음 가 보는 건데...
- 이것저것 많이 보고 와. 난 미국 언제 가 보나...?
- 진짜, 오빠도 같이 가면 좋겠어.
- 방법이 없잖아. 내가 간다 그래도 뭐, 같이 다닐 수도 없고.
- 미안해요, 나만...
- 미안하긴... 하나만 약속해. 아프지 않기.
- 네... 헤헷~
낯간지러웠지만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말로 수민이를 달래 주었다. 수민이는 열흘이나 나를 못 본다며 칭얼댔다. 그래도 나중엔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들뜬 설레임이 묻어났다. 그래도 나와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쉽다는 수민이의 말은 진심으로 들렸다.
수민이가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그저 그리워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통화도 한 번도 못 했다. 로밍이 비싸기도 했지만 gsm 니 cdma 니 방식이 다르다나 어떻다나, 잘 되지도 않을 때였다. 급히 통화할 일도 없었지만, 수민이가 보고 싶어도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며 허전하고 아쉬하는 게 전부였다.
수민이네 가족이 토요일에 출발해서 월요일에 돌아오는 바람에, 수민이를 다시 만난 건 3주만이었다. 만나자마자 차에서 한참 동안 키스를 하고 수민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다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쳐다보았다.
- 보고 싶었어, 수민아...
- 나도... 쪽~....
- 수민이가 없으니까 얼마나 허전했는지 몰라.
- 나도 내가 그렇게 오빠 보고 싶어하는지 처음 알았어.
- 후후... 미국 다녀오길 잘 한 거네?
- 알게 돼서?
- 응.
- 그건 하루도 안 돼서 알았는데, 쓸데없이 오래 헤어져 있었는 걸?
- 후후... 그런가?
- 이제 다시는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 후후....
수민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고는 내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런 수민이의 턱을 들어올려 다시 키스했고, 수민이는 내 혀를 간절함이 느껴지도록 빨았다.
- 자, 이제 가야지? 어디라 그랬지?
- 음... abcd 소극장이라고...
- 일단 대학로 가서 찾자...
수민이가 교양과목 숙제로 봐야 할 연극이 있어서 대학로로 가야 했다. 토요일 오후, 그 여유로운 시간에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즐거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서 가는데, 어딘들 즐겁지 않을까... 전철에서 내려서 수민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동물원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 가는 그 길...
- 그 노래 뭐예요? 되게 좋다..
- 이 노랠 모른단 말이야?
- 응... 헤헤~
- 동물원 노랜데... 혜화동이라고.
- 우와, 제목이 혜화동이예요? 이쪽이 혜화동이잖아요.
- 좀 옛날 노래이긴 한데... 난 그냥, 이런 노래가 좋아.
- 나도 오빠 흥얼거리는 거, 듣기 좋아요.
- 후후... 들어보면 수민이도 좋아하게 될 거야.
- 벌써 좋은 걸? 나중에 기타 치면서 불러줘요.
- 음... 자신 없는데?
- 그냥 해준다 그래야지... 치이~
- 연습해 볼게. 후후...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가사에 공감할 수 있는 노래였다. 나는 동물원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수민이는 그 노래들을 몰랐다. 새삼 세대차를 느꼈지만, 좋은 노래는 세대를 떠나서 좋은 거다.
수민이가 보려 했던 연극은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막이 올라서 우리는 다음 공연을 봐야 했다. 다음 공연은 두 시간 후에 있었다.
- 기다리는 동안 뭐 좀 먹을까?
- 오빠, 배고파요?
- 수민인? 점심 언제 먹었어?
- 아침 늦게 먹었어요...
- 그래? 나돈데... 음... 아, 저기 호프 있다.
- 오빠, 또 맥주?
- 500만 마실게, 배 부를만한 안주 시켜서 먹자.
- 그래요, 그럼...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나는 맥주를 꽤 많이 마셨다. 거기서 만난 두 사람 덕이었다. 개그맨 지망생이라고 해야 하나, 레크리에이션 강사라고 해야 하나...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던 분들이 있었는데, 소극장 앞에서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던 그 분들이, 우리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술집 안에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재미있게 해 주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에도 나와 눈이 마주쳐서 서로 고개만 까딱 인사했었는데, 홀 한가운데에서 웃기는 가사로 노래하던 그분이 갑자기 우리에게 호통을 쳤다.
- 거기, 좀 떨어져. 둘이 무슨 샴쌍둥이야? 딱 달라붙어서...
- 에? 킥킥킥...
나는 늘 하던 대로 수민이와 나란히 앉아서 맥주를 마시다가, 그분들의 공연을 보면서 수민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는데, 수민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나는 또 수민이의 머리에 뺨을 대고... 그냥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빈 속에 맥주를 마시며 알딸딸하게 취했던 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거기서 나 혼자만 몹쓸 놈이 되었고, 다른 손님들은 모두 손뼉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반응이 좋자 그분들은 좀더 나갔고, 나는 미녀를 잡고 있는 야수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납치 인질범이 되었다. 그래,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놔라... 크크크...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 수민이가 미녀라는데, 뭐...
- 거 봐, 도둑놈이라니까? 아가씨, 그런 남자랑 사귀지 마. 헤어져...
- 아이, 싫어요... 전 이 분이 좋아요.
- 뭐야? 스톡홀름 증후군이야? 거 봐, 위험하잖아. 빨리 떨어져.
- 위험해도 좋아요...
수민이가 웃으며 꼬박꼬박 대꾸해 주었지만 그분들은 우리 테이블에만 있지 않고 금새 또 다른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홀 안을 한바퀴 다 돌고는, 기타를 벗어 내려놓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 아깐 실례 많았습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 별 말씀을요. 아주 재미있었어요. 후후...
- 다행이네요. 두 분이 너무 예쁘셔서 눈에 띄어서 그랬어요.
- 하하, 고맙습니다. 혹시, 한 잔 하셔도 되나요?
- 어우, 당연히 되죠. 감사하죠...
두 분은 우리와 얘기하면서도 서로 자기 짝꿍 퍼포먼스는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보지도 말라며 티격태격 다투었다. 우리는 그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깔깔대고 웃었고,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두 분도 컨셉을 그렇게 앙숙으로 정했을 뿐, 항상 같이 다니는 콤비였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었다.
- 혹시 출장공연도 가능하면 나중에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 뭐, 미리 연락만 주세요.
- 지방 출장도 가시나요?
- 시간하고 돈이 문제겠죠?
- 하긴, 그렇겠네요... 하하...
그렇게 웃다가 그분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나와서 연극을 보러 갔는데, 나는 많이 취하진 않았지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는 되었다. 네 시부터 먹었으면 낮술...인가? 어쨌든 그분들과 같이 마시면서, 500cc만 마시려던 생각보다는 좀 꽤 먹었었다.
- 오빠, 연극 보다가 조는 거 아니예요?
- 크크... 나도 걱정돼...
그러나 나는 졸아도 상관없었다. 연극 감상 숙제는 수민이 몫이었지, 내 숙제는 아니었으니까... 크크크... 수민이 예상대로 나는 실컷 졸다가 나왔고, 코를 골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 아, 너무 졸았다, 그지?
- 치, 오빠가 졸았나? 그냥 잤지.
- 하하... 그런가? 미안...
- 아니예요. 오빠가 뭐가 미안해...
- 에이... 수민이, 삐졌구나?
- 진짜 아니예요... 난 오빠가 이렇게 같이 와준 것만도 좋아요.
- 수민이가 그것만으로도 좋아해줘서 나도 좋아.
- 헤~...
뭘 해도 예쁘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랑스러운 내 수민이였다. 다시 전철을 타고 수원까지 와서 내 원룸으로 향했다.
우리는 둘만의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신발도 벗기 전에 껴안고 키스부터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3주 동안 서로 나누지 못했던 정욕은 쉽게 불타올랐다.
- 흐음... 우움...
- 흠~... 흠~...
내 얼굴에 뿜어지는 수민이의 콧김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신발은 언제 벗었는지도 모르겠고, 수민이의 자켓은 문 바로 앞에, 치마는 방 한가운데에, 블라우스는 침대 앞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겉옷만 벗고 티셔츠와 바지는 입은 채, 그저 수민이의 입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입술을 떼고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민이의 옷을 벗겼다. 브라를 밀어올려 탐스러운 가슴을 빨아들이자 수민이는 내 머리를 껴안고 신음했다. 수민이의 온몸을 핥으며 내려가 팬티를 벗겼다. 벌써 젖어 있는 그곳... 살짝 벌리자 애액이 이미 흥건했다.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혀를 내밀어 갖다 댔다. 내 혀가 닿자 수민이가 몸부림쳤다.
- 하윽~
- ......
- 하아~... 오빠, 살살... 아흐윽~...
수민이의 살내음이 향긋했다. 한참을 애무하다가 고개를 들자 수민이도 몸을 일으켰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는 수민이 차례였다. 내가 눕자 수민이는 내 바지와 팬티를 같이 끌어내리고 귀두 끝에 키스했다. 꺼떡거리던 자지가 불끈, 아플 정도로 좀더 팽창했다.
입술만으로 가볍게 침을 묻히던 수민이는 평소처럼 빨아주는 대신 혀로 쪼듯 할짝거리며 애를 태웠다. 그것도 짜릿하긴 했지만 자지는 그렇게 짜릿한 것보다는 어딘가에 깊이 들어가 조여지는 걸 더 좋아하는 법이다. 수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씩 당겼다. 수민이는 이내 알아차리고 깊이 빨아들였다.
- 우움~ 쭈우웁~
- 하아... 수민아... 아~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수민이의 입술과 혀를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수민이의 입 안은 여전히 따뜻하고 촉촉했다. 그러나 블로우잡은 어딘가 아쉽다. 잠시 느끼다가 몸을 일으켜 수민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촉촉한 수민이 몸 속으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출렁거렸다. 구름이 뒤덮고 폭풍이 몰아쳤다. 부드러운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러쥐고, 꼬옥 껴안고 매달렸다.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솟구치다가, 파도에 밀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았다. 온 세상이 다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치 폭죽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불꽃이 번뜩였다. 수민이와 나도 그 불꽃처럼 폭발했다. 울컥~ 울컥~ 울컥~... 오빠... 수민아...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 오빠...
- ......
- 오빠...? 내 말 들려?
수민이의 말소리가 무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점점 다가오던 그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을 때에야 눈을 떴다. 나는 수민이를 꼭 껴안고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수민이는 껴안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 후우... 수민아.... 후우...
- 하아... 오빠, 이제 들려?
- 응? 응... 후후후...
- 킥, 오빠 많이 흥분했구나? 킥킥~
- 그럼~, 얼마만에 수민이 안은 건데...
- 쪽~ 이제 실컷 볼 텐데, 뭐.
- 사랑해... 사랑해, 수민아...
- 나도 사랑해. 오빠 사랑해..
- ......
- 수민인? 좋았어?
- 아이, 몰라요... 피이~
한참을 안고 있다가 수민이에게 어땠냐고 물었지만 수민이는 웃으며 내 가슴을 콩콩 두드리고는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콘돔을 쓰지 않은 게 생각났다. 절정 직전에 뽑아 수민이 입에 물려줄 생각도 못 했고, 그냥 짜릿하게 사정했다. 아니, 말 그대로 그냥 쌌다. 수민이 느낌이 어땠는지, 수민이를 황홀하게 해 주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영대와 인정씨 생각이 났다. 나도 저질러 놓고 나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수민이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수민이가 덮고 있는 얇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맨살의 감촉을 서로 느꼈다.
- 아까 진짜 짜릿했어.
- 그렇게 좋았어요?
- 응. 수민이는?
- 나두... 쪽~
- 그런데, 수민아.
- 네?
- 아까 있잖아... 그... 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수민이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 예쁜 얼굴을 보니 말하려던 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그저 입맞추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는데 수민이가 갑자기 내 코를 쥐고 흔들었다. 그래봐야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이를 악문 수민이 표정이 귀여울 뿐이었다.
- 이그~, 이 바부팅이 오빠...
- 앙냥냥... 아, 왜앵~?
- 지금 뽀뽀할 생각이 나요?
- 응?
- 아까 내 안에 뿜은 거 걱정돼서 그러죠?
- 어? 어떻게 알았어?
- 내가 오빠랑 지낸 게 얼만데...
- 근데... 괜찮을까?
- 치, 벌써 해놓고 걱정하면 뭐 해?
- 후우~...
- 많이... 걱정돼요?
- 수민인? 걱정 안 돼?
- 내가 오빠 아이 가지면 오빠는 어떨 것 같아요?
- 내 아이? 내... 아이라구...?
오빠 아이... 내 아이... 내 아이라고? 내가 아빠가 된다고? 가슴에서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마 나도 그때 수민이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거다. 그러나 수민이는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았다.
- 오빠, 나 책임질 거예요?
- 책임져야지. 임신하든, 안 하든.
- 진짜?
- 그러엄.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입맞추고 만지고 사랑하고... 그러겠어?
- 치~...
- 정말이야~
- 오빤... 내가 처음이예요?
- 처음?
- 그렇게 입맞추고 만지고 사랑한 거.
- 어? 어, 그...
- 치~, 쫌 섭섭하다... 수민이는 오빠가 첨이구 오빠밖에 모르는데.
- ......
- 오빠가 그렇게 한 사람 다 책임지려면... 저어기 중동 가야 되는 거 아니예요?
- 중동...?
- 응. 일부다처제 하는.
- ......
그리 힐난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수민이에게 떳떳하지 못했다. 수민이가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건 수민이였다. 그렇게 말하려고 수민이를 보는데 수민이가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 ......
- 오빠.
- 응?
- 괜찮아요.
- ......??
- 스물여덟살 되도록 여자 사귄 적 없다는 건, 매력 없는 남자라는 말밖에 안 돼요.
- 그렇게... 되나?
- 오빠, 수민이가 처음인 건 아니잖아요.
- 수민이가 처음이라면?
- 오빠가 처음이라고 하면... 슬프겠죠?
- 왜? 스물여덟에 여자 처음 만난 못난이라서?
- ......
수민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는 빤히 쳐다보았다.
- 다시 물어볼게요. 오빠, 처음 사귄 게 나예요?
- ......
- ......
- 미안해, 수민아...
- 킥킥... 아까 벌써 대답했어요. 아까 오빠, 말까지 더듬구... 킥킥킥...
- 쩝... 후우...
- 당연히 아니라야죠. 이렇게 멋진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 놔두겠어요? 쪽~
- ......
수민이가 입맞추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런 수민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 수민아.
- 네?
- 근데 왜 슬플 거라고 했어?
- 아니예요. 큭큭... 오빤 어디 가서 거짓말도 못 할 거야, 아마...
- 수민이한테 거짓말 하면 슬플 거라는 거야?
- ......
나는 알면서도 물었고, 수민이는 웃음을 싹 거두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닌데... 나도 거짓말 잘 하는데... 처음이 아니라도 뻔뻔하게 처음이라고 거짓말할 걸...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수민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때 오빠랑...
- 응?
- 나 오빠랑 처음...
- 수민이랑 처음 사랑 나눌 때?
- 응. 그때 난 무지 떨렸는데 오빤 전혀 긴장 안 해서 그때 벌써 알았어요.
- 그래서 서운했어?
- 아니, 그날은 아무 생각도 못했고... 나중엔 좀 서운했는데 잠깐이었어요.
- 그랬구나... 말하지 그랬어?
- 근데, 오빠... 나,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오빠 나이 되도록 경험 없는 게 바보지, 경험 있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 ......
- 오빠 설마 지금... 예전 애인 생각하는 거 아니죠?
- 아~니야. 수민이 생각밖에 없어. 진짜야...
- 킥킥....
- 어? 웃을 얘기가 아닌데?
- 웃긴 걸 어떡해... 깔깔깔...
- ......
혜진이 생각이 또 났다. 결혼하자는 말에 웃어버렸던 혜진이... 수민이도 그런 걸까... 그러나 수민이 얘기에 그 생각은 곧 달아났다.
- 남자는 첫사랑 못 잊는다던데...
- 내가 못 잊을 여자는 수민이지.
- 치, 내가 처음 아니라며 왜 나야?
- 수민이, 평생 내 옆에 있을 거잖아. 옆에 있는데 어떻게 잊어? 크크크..
그럴 때면 수민이는 응큼쟁이 오빠... 라고 하면서 내 볼을 잡고 흔들곤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지거나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킥킥대도 같이 웃지 않았다.
- ......
- 진짜야.
- ......
- 수민아...
- ......
- 그 얘기 그만 하자. 근데...
- ......
수민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다음 말에 또 입술을 깨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 수민이는 하나만 알면 돼. 지금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지?
- 나...
- 오빠 똑바로 보고... 다시, 누구라고?
- 수민이... 수민이요. 지수민.
- 그래, 수민이야. 그리고, 지금 오빠 품에 있는 사람도 수민이잖아. 그럼 됐지?
- ......
수민이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수민이... 그 당시, 나에겐 수민이가 전부였다. 내가 수민이를 사랑했고, 수민이는 나를 사랑했다. 그 순간 거기에 내가 있었고, 수민이가 있었다. 나는 그거면 됐고, 그게 전부였다. 수민이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고 믿었다.
수민이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수민이의 손이 가슴에서 목으로, 얼굴로...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 오빠...
- 응?
- 오빠 처음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오빠 마지막은 꼭...
- 그래, 수민이가 될 거야.
- 진짜지...?
- 왜? 싫어? 다른 여자 찾을까?
- ......
내 썰렁한 농담에 수민이는 또 울상을 지었고, 코가 빨개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저으며 또 내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그런 수민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 또 울어? 에이, 아무래도 딴 여자 찾아야 되겠네. 차암...
- 씨이~ 자꾸 그런 말 할 거예요, 정말?
- 바보... 쪽~ 오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 치이...
수민이는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였지만 내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곱게 안겨 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입맞추었다. 한참 동안 내 혀를 빨고 혀를 내주며 입맞추다가 내 품에서 살짝 물러나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눈가가 아직 빨갰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에는 웃음기까지 있었다. 갑자기... 왜지?
- 오빠.
- 응?
- 아까 걱정하던 건 이제 걱정 안 돼요?
- 아, 맞다... 하아~...
- 큭크크...
- 웃을 일이 아니잖아. 아우, 참...
- 오빠, 나 조금 있으면 또 고생해야 돼요....
- 고생?
- 아잇, 나, 달마다 아픈 거...
- 아~ 그거? 그런데, 그게 왜?
- 오빠도 임신주기 공부 좀 해요. 생리 전후에는 임신 안 되는 거예요.
- 그래? 그럼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 치~ 인제 마음이 좀 놓여요?
- 휘유~ 후후...
- 근데 될 수도 있어요. 가능성이 낮다 뿐이지.
- 에~?
- 킥킥킥... 거의 안 되니까 걱정 말아요. 킥~
수민이는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안심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여튼, 임신 걱정하지 않고 섹스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 것만 이해했을 뿐이다. 지금은 생리주기며, 배란일이며, 가임기, 정자의 수명... 오기노식 피임법까지 알지만.
- 오빤, 참 타이밍도 잘 맞춰...
- 응? 무슨 말이야?
- 나, 처음 했을 때에도 오빠 그냥 안에 했잖아요.
- 응, 근데?
- 치, 바보. 그때도 그거 시작하기 좀 전이었어요.
- 아... 그랬었지?
그때도, 사랑을 나누고 수민이 몸 안에 그냥 뿜었었다. 수민이의 처음을 그냥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임신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고, 대비하지도 않았던 섹스... 그리고 그때도 섹스하고 나서 며칠 후에 수민이는 월경을 시작했고, 생리통으로 힘들어했었다. 나는 참 무책임하고 멍청한 남자였다.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질러놓고 나중에 대책 없이 걱정만 하는...
- 음... 그렇구나... 그거 직전에는 임신이 안 된다 이거지?
- 어? 얘기가 그렇게 가면 안 되는데?
- 왜? 뭐가 안 돼?
- 나 그 시기 되면 오빠 무지 욕심 부리려고 그러죠? 치~
- 어? 어, 그게...
- 그리구 맨날 안에다 할 거구.
- 아니... 그래도 그냥 하는 게 더 좋잖아.
- 안 돼요. 안전한 날은 없어.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콘돔 없이 해보려고... 그러나 수민이는 손사래를 치며 나보고 임신주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다. 내가 임신주기 잘못 계산해서 안에 뿜으면 큰일이니까 무조건 콘돔을 쓰라고.
나도 수민이 말에 동감이었다. 수민이는 처음엔 콘돔을 쓰는 것에 대해 무지 걱정했지만 한번 사용해 보고는 전혀 거부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콘돔을 안 쓰더라도 절정의 순간에 수민이의 몸에서 그놈을 뽑아 수민이 입에 뿜어내는 것도 자주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짜릿했던 그 하루가 지나자, 참 힘든 날이 닥쳤다. 수민이의 그 월례행사가 제 날짜에 시작되지 않았던 것이다. 생리주기가 28일로 정확해서 매번 같은 요일에 달거리를 시작했던 수민이는, 제 날짜에 소식이 없자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 오빠... 나 어떡해? 흑~
- 후우... 수민아...
아침마다 짜릿하게 사랑을 나누던 그 시간에, 그날은 수민이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나도 수민이만큼 당황했고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
그 이후로, 수민이는 애정표현에 대담해졌다. 언제나 내가 먼저 집적거리고 흥분시켰지, 수민이가 나를 먼저 자극한 건 아침에 깨울 때밖에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언제든 스킨십을 시도했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사랑을 표현했다.
카페 같은 곳에서도 남들이 보든 말든 나에게 진하게 키스하기도 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도 나에게 기대어 내 팔을 끌어다 자신을 안게 했다. 안겨 있으면 내 팔을 쓰다듬었고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내 볼이나 입술에 입맞추었다. 남들의 시선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 괜찮아?
- 뭐가요?
- 후후... 내가 그럴 땐 짐승 취급하더니...
- 치, 그래서 싫다는 거예요, 뭐예요?
- 싫을 리가 있겠어?. 나야 좋지.
- 그러면서 뭘... 쪽~
- 아니, 짐승이라며? 아니다. 그냥 짐승 하지 뭐.
- 피이.. 오빠, 나 듣고 싶어요.
- 사랑해 수민아.
- 흐응~ 나도 오빠 사랑해요.
수민이는 말로, 행동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항상 말로도 사랑을 속삭이고 몸으로도 사랑을 나누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수민이를 안고 애무하고 삽입할 수 있었다. 아니, 나보다도 수민이가 먼저 원했고, 수민이가 원하면 해야만 했다. 그 무렵 수민이는 내 곁에 붙어 있으면서도 항상 내 손길을 원했다. 틈만 나면 수민이의 볼이며 이마에 입술을 대던 나였지만, 달라진 수민이는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아주 대담했다.
수민이의 가슴을 처음 만졌던 수민이네 집 건물 사이 틈에서도 섹스했었다. 어둠이 다 깔리지도 않은 어스름 저녁에 수민이가 재촉해서 후배위로 삽입했었다. 남들에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긴장감을 스릴있게 즐긴 게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걸 참지 못했던 수민이를 나도 말리지 못했을 뿐이다.
- 하아... 오빠... 응?
- 여기서?
- 응. 지금...
- 좀... 너무 밝잖아...
- 아이, 그래도... 후움~ 쪼옵~ 쭈웁~
수민이는 내가 수민이의 입술을 원했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내 입술을 원했고, 내 사랑을 원했다. 나는 원하기만 했었지만 수민이는 원하는 걸 그 즉시 얻어야만 했다. 한번은 내가 살던 원룸 건물 복도에서 잠깐이지만 스커트를 들추고 삽입한 적도 있었다. 물론, 수민이가 적극적으로 주도한 거였다. 결국 후다닥 뛰어들어와 침대까지 가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나를 눕히고 수민이가 덮쳤었다.
- 수민이 요즘 너무 밝히는데? 크크크...
- 치, 오빠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 진짜 그런 거야?
- 아이, 몰라... 부끄럽게..
- 후훗, 부끄럽다는 사람이 또 오빠 거 만지고 있어?
- 헤헤... 나, 안아 줘요.
- 또?
- 응... 또 하고, 또 해줘.
- 수민아, 요즘 왜 이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 일? 무슨 일?... 말만 하지 말고 어서요. 아이잉~...
걱정이 되어서 물었지만 수민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반문했고, 나는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민이는 불안해 보일 정도로 나를 갈구했다. 나는 그런 수민이를 걱정하면서도 흥분하면 걱정을 잊고 수민이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흥분이 진정되면 또 걱정하곤 했다.
수민이의 심리상태는 걱정스러웠지만, 계속 수민이에게 신경쓸 수는 없게 되었다. 선배와 함께 만든 작은 회사는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좀 알려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영업하러 방문했던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문의가 왔다. 어어~ 하는 사이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졌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 회사 저 회사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운전하면서 전화를 받고, 약속을 정하고... 진짜, 하루가 25시간이라도 모자랐다. 전화 응대할 직원을 새로 고용해야 했고 밤늦게까지 작업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모든 프로그램을 우리가 직접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선배나 내가 꼭 방문해서 요구사항을 듣고 발주하는 측과 일일이 협의해야 했다.
돈 버는 재미는 있었지만 정신없이 바빠졌고, 당연히 수민이와 만나는 날도 띄엄띄엄 줄어들었다. 수민이는 매일매일 나를 보고 싶어했지만 업무상 바빠서 어렵다고 하면 보고 싶다고 투정하고 칭얼거리다가도 쉬엄쉬엄 일하라고 말해 주었고, 회사가 바빠진 것에 대해 잘 됐다며 좋아해 주었다. 우리는 밤늦게 잠깐 통화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 네?
- 수민아.
- 오빠.... 우와... 오빠...
- 후후... 뭐가 우와야?
- 오빠랑 통화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오늘도 많이 바빴나 보네?
- 응. 지금 들어와서 씻고 누웠어.
- 밥은? 저녁은 먹었어?
- 미팅하면서 먹었어. 한 끼 겨우 먹었네, 오늘.
- 미팅? 그럼 또 술 먹었겠네? 이그... 맨날 술 먹고...
- 그럼 어떡해...? 빠질 수가 없는 미팅인데...
늦게 들어와서 그렇게 수민이와 통화를 하다가, 한번은 내가 전화기를 든 채 잠든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동아리에서 벌어진 일이며... 수민이는 한참 재잘재잘 떠드는데, 나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냥 잠든 거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전에 수민이에게 전화부터 했지만 수민이는 그때까지도 뾰로통, 전화를 받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수민이를 달래고 풀어주느라 오전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었다. 그날, 저녁엔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수민이를 만나 사랑해 주어야 했다.
- 하아...
- 좋았어?
- 응... 쪽~
- 후후... 이제 용서해 주는 거야?
- 치이~ 바부팅이 오빠...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사랑해 주면 안 돼?
- 아이, 수민이 삐지는 거 싫으니까 그러지.
- 헤헤... 사실은 버얼써 풀렸어요. 삐졌으면 아까 전화도 안 받았지.
- 쪽~ 그래. 그래야 우리 수민이지.
- 근데 어젠 그렇게 피곤했어요? 술도 안 먹었다며...
- 응, 어젠 좀 많이 피곤했어. 왜 그랬나 모르겠네.
- 그랬구나... 오빠 좀 쉬어 가면서 해요.
- 후후... 알았어.
휘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쁜데 쉬어 가면서 일할 수가 있나... 속으로만 말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하는 말에 반박하거나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해 주면 안 되는 거다. 특히, 다 벗고 껴안고 있을 때에는 더욱 더 그래야 한다.
......
따뜻했던 5월 초, 수민이네 가족이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수민이 아버님이 가족들에게 깜짝 선물로 준비했다가 출발하기 며칠 전에야 알려준 거였다. 수민이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나에게 전화했다. 깜짝 놀랐지만 누군 좋겠다며 부러움을 가득 담고 웃어 주었는데, 수민이는 툴툴거리며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수민이의 투정하는 목소리도 예뻤다. 여행 기간 동안 나를 못 본다는 이유로 심통이 난 거라서.
- 아빤 이런 걸 일주일도 안 남기고 알려주고...
- 그러니까 깜짝 선물이지. 잘 갔다 와. 재밌겠네.
- 어떻게 잘 갔다 와? 오빤 열흘 동안이나 나 안 봐도 괜찮아?
- 그럼 뭐라 그래? 가지 말라 그래?
- 히잉... 너무 길단 말이야.
- 아, 참... 학교는?
- 빠져야지, 뭐.
- 그게 더 걱정이네?
- 난 그건 하나도 걱정 안 돼. 오빠 못 보는 거만 아쉬워.
- 가서 놀다 보면 내 생각도 안 할 거면서.
- 씨잉~ 오빠, 미워...
- 크크크... 농담이야.
- 나, 외국 처음 가 보는 건데...
- 이것저것 많이 보고 와. 난 미국 언제 가 보나...?
- 진짜, 오빠도 같이 가면 좋겠어.
- 방법이 없잖아. 내가 간다 그래도 뭐, 같이 다닐 수도 없고.
- 미안해요, 나만...
- 미안하긴... 하나만 약속해. 아프지 않기.
- 네... 헤헷~
낯간지러웠지만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말로 수민이를 달래 주었다. 수민이는 열흘이나 나를 못 본다며 칭얼댔다. 그래도 나중엔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들뜬 설레임이 묻어났다. 그래도 나와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쉽다는 수민이의 말은 진심으로 들렸다.
수민이가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그저 그리워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통화도 한 번도 못 했다. 로밍이 비싸기도 했지만 gsm 니 cdma 니 방식이 다르다나 어떻다나, 잘 되지도 않을 때였다. 급히 통화할 일도 없었지만, 수민이가 보고 싶어도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며 허전하고 아쉬하는 게 전부였다.
수민이네 가족이 토요일에 출발해서 월요일에 돌아오는 바람에, 수민이를 다시 만난 건 3주만이었다. 만나자마자 차에서 한참 동안 키스를 하고 수민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다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쳐다보았다.
- 보고 싶었어, 수민아...
- 나도... 쪽~....
- 수민이가 없으니까 얼마나 허전했는지 몰라.
- 나도 내가 그렇게 오빠 보고 싶어하는지 처음 알았어.
- 후후... 미국 다녀오길 잘 한 거네?
- 알게 돼서?
- 응.
- 그건 하루도 안 돼서 알았는데, 쓸데없이 오래 헤어져 있었는 걸?
- 후후... 그런가?
- 이제 다시는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 후후....
수민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고는 내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런 수민이의 턱을 들어올려 다시 키스했고, 수민이는 내 혀를 간절함이 느껴지도록 빨았다.
- 자, 이제 가야지? 어디라 그랬지?
- 음... abcd 소극장이라고...
- 일단 대학로 가서 찾자...
수민이가 교양과목 숙제로 봐야 할 연극이 있어서 대학로로 가야 했다. 토요일 오후, 그 여유로운 시간에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즐거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서 가는데, 어딘들 즐겁지 않을까... 전철에서 내려서 수민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동물원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 가는 그 길...
- 그 노래 뭐예요? 되게 좋다..
- 이 노랠 모른단 말이야?
- 응... 헤헤~
- 동물원 노랜데... 혜화동이라고.
- 우와, 제목이 혜화동이예요? 이쪽이 혜화동이잖아요.
- 좀 옛날 노래이긴 한데... 난 그냥, 이런 노래가 좋아.
- 나도 오빠 흥얼거리는 거, 듣기 좋아요.
- 후후... 들어보면 수민이도 좋아하게 될 거야.
- 벌써 좋은 걸? 나중에 기타 치면서 불러줘요.
- 음... 자신 없는데?
- 그냥 해준다 그래야지... 치이~
- 연습해 볼게. 후후...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가사에 공감할 수 있는 노래였다. 나는 동물원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수민이는 그 노래들을 몰랐다. 새삼 세대차를 느꼈지만, 좋은 노래는 세대를 떠나서 좋은 거다.
수민이가 보려 했던 연극은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막이 올라서 우리는 다음 공연을 봐야 했다. 다음 공연은 두 시간 후에 있었다.
- 기다리는 동안 뭐 좀 먹을까?
- 오빠, 배고파요?
- 수민인? 점심 언제 먹었어?
- 아침 늦게 먹었어요...
- 그래? 나돈데... 음... 아, 저기 호프 있다.
- 오빠, 또 맥주?
- 500만 마실게, 배 부를만한 안주 시켜서 먹자.
- 그래요, 그럼...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나는 맥주를 꽤 많이 마셨다. 거기서 만난 두 사람 덕이었다. 개그맨 지망생이라고 해야 하나, 레크리에이션 강사라고 해야 하나...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던 분들이 있었는데, 소극장 앞에서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던 그 분들이, 우리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술집 안에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재미있게 해 주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에도 나와 눈이 마주쳐서 서로 고개만 까딱 인사했었는데, 홀 한가운데에서 웃기는 가사로 노래하던 그분이 갑자기 우리에게 호통을 쳤다.
- 거기, 좀 떨어져. 둘이 무슨 샴쌍둥이야? 딱 달라붙어서...
- 에? 킥킥킥...
나는 늘 하던 대로 수민이와 나란히 앉아서 맥주를 마시다가, 그분들의 공연을 보면서 수민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는데, 수민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나는 또 수민이의 머리에 뺨을 대고... 그냥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빈 속에 맥주를 마시며 알딸딸하게 취했던 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거기서 나 혼자만 몹쓸 놈이 되었고, 다른 손님들은 모두 손뼉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반응이 좋자 그분들은 좀더 나갔고, 나는 미녀를 잡고 있는 야수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납치 인질범이 되었다. 그래,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놔라... 크크크...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 수민이가 미녀라는데, 뭐...
- 거 봐, 도둑놈이라니까? 아가씨, 그런 남자랑 사귀지 마. 헤어져...
- 아이, 싫어요... 전 이 분이 좋아요.
- 뭐야? 스톡홀름 증후군이야? 거 봐, 위험하잖아. 빨리 떨어져.
- 위험해도 좋아요...
수민이가 웃으며 꼬박꼬박 대꾸해 주었지만 그분들은 우리 테이블에만 있지 않고 금새 또 다른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홀 안을 한바퀴 다 돌고는, 기타를 벗어 내려놓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 아깐 실례 많았습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 별 말씀을요. 아주 재미있었어요. 후후...
- 다행이네요. 두 분이 너무 예쁘셔서 눈에 띄어서 그랬어요.
- 하하, 고맙습니다. 혹시, 한 잔 하셔도 되나요?
- 어우, 당연히 되죠. 감사하죠...
두 분은 우리와 얘기하면서도 서로 자기 짝꿍 퍼포먼스는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보지도 말라며 티격태격 다투었다. 우리는 그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깔깔대고 웃었고,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두 분도 컨셉을 그렇게 앙숙으로 정했을 뿐, 항상 같이 다니는 콤비였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었다.
- 혹시 출장공연도 가능하면 나중에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 뭐, 미리 연락만 주세요.
- 지방 출장도 가시나요?
- 시간하고 돈이 문제겠죠?
- 하긴, 그렇겠네요... 하하...
그렇게 웃다가 그분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나와서 연극을 보러 갔는데, 나는 많이 취하진 않았지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는 되었다. 네 시부터 먹었으면 낮술...인가? 어쨌든 그분들과 같이 마시면서, 500cc만 마시려던 생각보다는 좀 꽤 먹었었다.
- 오빠, 연극 보다가 조는 거 아니예요?
- 크크... 나도 걱정돼...
그러나 나는 졸아도 상관없었다. 연극 감상 숙제는 수민이 몫이었지, 내 숙제는 아니었으니까... 크크크... 수민이 예상대로 나는 실컷 졸다가 나왔고, 코를 골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 아, 너무 졸았다, 그지?
- 치, 오빠가 졸았나? 그냥 잤지.
- 하하... 그런가? 미안...
- 아니예요. 오빠가 뭐가 미안해...
- 에이... 수민이, 삐졌구나?
- 진짜 아니예요... 난 오빠가 이렇게 같이 와준 것만도 좋아요.
- 수민이가 그것만으로도 좋아해줘서 나도 좋아.
- 헤~...
뭘 해도 예쁘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랑스러운 내 수민이였다. 다시 전철을 타고 수원까지 와서 내 원룸으로 향했다.
우리는 둘만의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신발도 벗기 전에 껴안고 키스부터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3주 동안 서로 나누지 못했던 정욕은 쉽게 불타올랐다.
- 흐음... 우움...
- 흠~... 흠~...
내 얼굴에 뿜어지는 수민이의 콧김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신발은 언제 벗었는지도 모르겠고, 수민이의 자켓은 문 바로 앞에, 치마는 방 한가운데에, 블라우스는 침대 앞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겉옷만 벗고 티셔츠와 바지는 입은 채, 그저 수민이의 입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입술을 떼고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민이의 옷을 벗겼다. 브라를 밀어올려 탐스러운 가슴을 빨아들이자 수민이는 내 머리를 껴안고 신음했다. 수민이의 온몸을 핥으며 내려가 팬티를 벗겼다. 벌써 젖어 있는 그곳... 살짝 벌리자 애액이 이미 흥건했다.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혀를 내밀어 갖다 댔다. 내 혀가 닿자 수민이가 몸부림쳤다.
- 하윽~
- ......
- 하아~... 오빠, 살살... 아흐윽~...
수민이의 살내음이 향긋했다. 한참을 애무하다가 고개를 들자 수민이도 몸을 일으켰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는 수민이 차례였다. 내가 눕자 수민이는 내 바지와 팬티를 같이 끌어내리고 귀두 끝에 키스했다. 꺼떡거리던 자지가 불끈, 아플 정도로 좀더 팽창했다.
입술만으로 가볍게 침을 묻히던 수민이는 평소처럼 빨아주는 대신 혀로 쪼듯 할짝거리며 애를 태웠다. 그것도 짜릿하긴 했지만 자지는 그렇게 짜릿한 것보다는 어딘가에 깊이 들어가 조여지는 걸 더 좋아하는 법이다. 수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씩 당겼다. 수민이는 이내 알아차리고 깊이 빨아들였다.
- 우움~ 쭈우웁~
- 하아... 수민아... 아~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수민이의 입술과 혀를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수민이의 입 안은 여전히 따뜻하고 촉촉했다. 그러나 블로우잡은 어딘가 아쉽다. 잠시 느끼다가 몸을 일으켜 수민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촉촉한 수민이 몸 속으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출렁거렸다. 구름이 뒤덮고 폭풍이 몰아쳤다. 부드러운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러쥐고, 꼬옥 껴안고 매달렸다.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솟구치다가, 파도에 밀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았다. 온 세상이 다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치 폭죽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불꽃이 번뜩였다. 수민이와 나도 그 불꽃처럼 폭발했다. 울컥~ 울컥~ 울컥~... 오빠... 수민아...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 오빠...
- ......
- 오빠...? 내 말 들려?
수민이의 말소리가 무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점점 다가오던 그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을 때에야 눈을 떴다. 나는 수민이를 꼭 껴안고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수민이는 껴안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 후우... 수민아.... 후우...
- 하아... 오빠, 이제 들려?
- 응? 응... 후후후...
- 킥, 오빠 많이 흥분했구나? 킥킥~
- 그럼~, 얼마만에 수민이 안은 건데...
- 쪽~ 이제 실컷 볼 텐데, 뭐.
- 사랑해... 사랑해, 수민아...
- 나도 사랑해. 오빠 사랑해..
- ......
- 수민인? 좋았어?
- 아이, 몰라요... 피이~
한참을 안고 있다가 수민이에게 어땠냐고 물었지만 수민이는 웃으며 내 가슴을 콩콩 두드리고는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콘돔을 쓰지 않은 게 생각났다. 절정 직전에 뽑아 수민이 입에 물려줄 생각도 못 했고, 그냥 짜릿하게 사정했다. 아니, 말 그대로 그냥 쌌다. 수민이 느낌이 어땠는지, 수민이를 황홀하게 해 주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영대와 인정씨 생각이 났다. 나도 저질러 놓고 나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수민이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수민이가 덮고 있는 얇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맨살의 감촉을 서로 느꼈다.
- 아까 진짜 짜릿했어.
- 그렇게 좋았어요?
- 응. 수민이는?
- 나두... 쪽~
- 그런데, 수민아.
- 네?
- 아까 있잖아... 그... 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수민이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 예쁜 얼굴을 보니 말하려던 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그저 입맞추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는데 수민이가 갑자기 내 코를 쥐고 흔들었다. 그래봐야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이를 악문 수민이 표정이 귀여울 뿐이었다.
- 이그~, 이 바부팅이 오빠...
- 앙냥냥... 아, 왜앵~?
- 지금 뽀뽀할 생각이 나요?
- 응?
- 아까 내 안에 뿜은 거 걱정돼서 그러죠?
- 어? 어떻게 알았어?
- 내가 오빠랑 지낸 게 얼만데...
- 근데... 괜찮을까?
- 치, 벌써 해놓고 걱정하면 뭐 해?
- 후우~...
- 많이... 걱정돼요?
- 수민인? 걱정 안 돼?
- 내가 오빠 아이 가지면 오빠는 어떨 것 같아요?
- 내 아이? 내... 아이라구...?
오빠 아이... 내 아이... 내 아이라고? 내가 아빠가 된다고? 가슴에서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마 나도 그때 수민이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거다. 그러나 수민이는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았다.
- 오빠, 나 책임질 거예요?
- 책임져야지. 임신하든, 안 하든.
- 진짜?
- 그러엄.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입맞추고 만지고 사랑하고... 그러겠어?
- 치~...
- 정말이야~
- 오빤... 내가 처음이예요?
- 처음?
- 그렇게 입맞추고 만지고 사랑한 거.
- 어? 어, 그...
- 치~, 쫌 섭섭하다... 수민이는 오빠가 첨이구 오빠밖에 모르는데.
- ......
- 오빠가 그렇게 한 사람 다 책임지려면... 저어기 중동 가야 되는 거 아니예요?
- 중동...?
- 응. 일부다처제 하는.
- ......
그리 힐난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수민이에게 떳떳하지 못했다. 수민이가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건 수민이였다. 그렇게 말하려고 수민이를 보는데 수민이가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 ......
- 오빠.
- 응?
- 괜찮아요.
- ......??
- 스물여덟살 되도록 여자 사귄 적 없다는 건, 매력 없는 남자라는 말밖에 안 돼요.
- 그렇게... 되나?
- 오빠, 수민이가 처음인 건 아니잖아요.
- 수민이가 처음이라면?
- 오빠가 처음이라고 하면... 슬프겠죠?
- 왜? 스물여덟에 여자 처음 만난 못난이라서?
- ......
수민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는 빤히 쳐다보았다.
- 다시 물어볼게요. 오빠, 처음 사귄 게 나예요?
- ......
- ......
- 미안해, 수민아...
- 킥킥... 아까 벌써 대답했어요. 아까 오빠, 말까지 더듬구... 킥킥킥...
- 쩝... 후우...
- 당연히 아니라야죠. 이렇게 멋진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 놔두겠어요? 쪽~
- ......
수민이가 입맞추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런 수민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 수민아.
- 네?
- 근데 왜 슬플 거라고 했어?
- 아니예요. 큭큭... 오빤 어디 가서 거짓말도 못 할 거야, 아마...
- 수민이한테 거짓말 하면 슬플 거라는 거야?
- ......
나는 알면서도 물었고, 수민이는 웃음을 싹 거두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닌데... 나도 거짓말 잘 하는데... 처음이 아니라도 뻔뻔하게 처음이라고 거짓말할 걸...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수민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때 오빠랑...
- 응?
- 나 오빠랑 처음...
- 수민이랑 처음 사랑 나눌 때?
- 응. 그때 난 무지 떨렸는데 오빤 전혀 긴장 안 해서 그때 벌써 알았어요.
- 그래서 서운했어?
- 아니, 그날은 아무 생각도 못했고... 나중엔 좀 서운했는데 잠깐이었어요.
- 그랬구나... 말하지 그랬어?
- 근데, 오빠... 나,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오빠 나이 되도록 경험 없는 게 바보지, 경험 있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 ......
- 오빠 설마 지금... 예전 애인 생각하는 거 아니죠?
- 아~니야. 수민이 생각밖에 없어. 진짜야...
- 킥킥....
- 어? 웃을 얘기가 아닌데?
- 웃긴 걸 어떡해... 깔깔깔...
- ......
혜진이 생각이 또 났다. 결혼하자는 말에 웃어버렸던 혜진이... 수민이도 그런 걸까... 그러나 수민이 얘기에 그 생각은 곧 달아났다.
- 남자는 첫사랑 못 잊는다던데...
- 내가 못 잊을 여자는 수민이지.
- 치, 내가 처음 아니라며 왜 나야?
- 수민이, 평생 내 옆에 있을 거잖아. 옆에 있는데 어떻게 잊어? 크크크..
그럴 때면 수민이는 응큼쟁이 오빠... 라고 하면서 내 볼을 잡고 흔들곤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지거나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킥킥대도 같이 웃지 않았다.
- ......
- 진짜야.
- ......
- 수민아...
- ......
- 그 얘기 그만 하자. 근데...
- ......
수민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다음 말에 또 입술을 깨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 수민이는 하나만 알면 돼. 지금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지?
- 나...
- 오빠 똑바로 보고... 다시, 누구라고?
- 수민이... 수민이요. 지수민.
- 그래, 수민이야. 그리고, 지금 오빠 품에 있는 사람도 수민이잖아. 그럼 됐지?
- ......
수민이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수민이... 그 당시, 나에겐 수민이가 전부였다. 내가 수민이를 사랑했고, 수민이는 나를 사랑했다. 그 순간 거기에 내가 있었고, 수민이가 있었다. 나는 그거면 됐고, 그게 전부였다. 수민이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고 믿었다.
수민이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수민이의 손이 가슴에서 목으로, 얼굴로...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 오빠...
- 응?
- 오빠 처음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오빠 마지막은 꼭...
- 그래, 수민이가 될 거야.
- 진짜지...?
- 왜? 싫어? 다른 여자 찾을까?
- ......
내 썰렁한 농담에 수민이는 또 울상을 지었고, 코가 빨개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저으며 또 내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그런 수민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 또 울어? 에이, 아무래도 딴 여자 찾아야 되겠네. 차암...
- 씨이~ 자꾸 그런 말 할 거예요, 정말?
- 바보... 쪽~ 오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 치이...
수민이는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였지만 내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곱게 안겨 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입맞추었다. 한참 동안 내 혀를 빨고 혀를 내주며 입맞추다가 내 품에서 살짝 물러나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눈가가 아직 빨갰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에는 웃음기까지 있었다. 갑자기... 왜지?
- 오빠.
- 응?
- 아까 걱정하던 건 이제 걱정 안 돼요?
- 아, 맞다... 하아~...
- 큭크크...
- 웃을 일이 아니잖아. 아우, 참...
- 오빠, 나 조금 있으면 또 고생해야 돼요....
- 고생?
- 아잇, 나, 달마다 아픈 거...
- 아~ 그거? 그런데, 그게 왜?
- 오빠도 임신주기 공부 좀 해요. 생리 전후에는 임신 안 되는 거예요.
- 그래? 그럼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 치~ 인제 마음이 좀 놓여요?
- 휘유~ 후후...
- 근데 될 수도 있어요. 가능성이 낮다 뿐이지.
- 에~?
- 킥킥킥... 거의 안 되니까 걱정 말아요. 킥~
수민이는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안심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여튼, 임신 걱정하지 않고 섹스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 것만 이해했을 뿐이다. 지금은 생리주기며, 배란일이며, 가임기, 정자의 수명... 오기노식 피임법까지 알지만.
- 오빤, 참 타이밍도 잘 맞춰...
- 응? 무슨 말이야?
- 나, 처음 했을 때에도 오빠 그냥 안에 했잖아요.
- 응, 근데?
- 치, 바보. 그때도 그거 시작하기 좀 전이었어요.
- 아... 그랬었지?
그때도, 사랑을 나누고 수민이 몸 안에 그냥 뿜었었다. 수민이의 처음을 그냥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임신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고, 대비하지도 않았던 섹스... 그리고 그때도 섹스하고 나서 며칠 후에 수민이는 월경을 시작했고, 생리통으로 힘들어했었다. 나는 참 무책임하고 멍청한 남자였다.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질러놓고 나중에 대책 없이 걱정만 하는...
- 음... 그렇구나... 그거 직전에는 임신이 안 된다 이거지?
- 어? 얘기가 그렇게 가면 안 되는데?
- 왜? 뭐가 안 돼?
- 나 그 시기 되면 오빠 무지 욕심 부리려고 그러죠? 치~
- 어? 어, 그게...
- 그리구 맨날 안에다 할 거구.
- 아니... 그래도 그냥 하는 게 더 좋잖아.
- 안 돼요. 안전한 날은 없어.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콘돔 없이 해보려고... 그러나 수민이는 손사래를 치며 나보고 임신주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다. 내가 임신주기 잘못 계산해서 안에 뿜으면 큰일이니까 무조건 콘돔을 쓰라고.
나도 수민이 말에 동감이었다. 수민이는 처음엔 콘돔을 쓰는 것에 대해 무지 걱정했지만 한번 사용해 보고는 전혀 거부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콘돔을 안 쓰더라도 절정의 순간에 수민이의 몸에서 그놈을 뽑아 수민이 입에 뿜어내는 것도 자주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짜릿했던 그 하루가 지나자, 참 힘든 날이 닥쳤다. 수민이의 그 월례행사가 제 날짜에 시작되지 않았던 것이다. 생리주기가 28일로 정확해서 매번 같은 요일에 달거리를 시작했던 수민이는, 제 날짜에 소식이 없자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 오빠... 나 어떡해? 흑~
- 후우... 수민아...
아침마다 짜릿하게 사랑을 나누던 그 시간에, 그날은 수민이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나도 수민이만큼 당황했고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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