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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5 990회 0건


아파트 하면 현관을 열자마자 거실이 있고, 거실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 화장실이 배치되는 형태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들어가 본 모든 아파트는 거의 그런 구조였다. 그러나 수영의 집은 현관 앞에 기다란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방3개와 화장실이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 거실과 부엌이 조그맣게 있었다.

희주를 안고 집을 구경하는데 희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구경했다. 이제는 갓난이도 아니고 해서 안고 있는 것이 어렵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단지 어색하다. 3개의 방 중 하나는 희주를 위한 공간으로 각종 놀이감이 있었고, 아이는 그 방에 들어가자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바닥에 발이 닿자 뒤뚱거리면서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원목 나무에 바퀴가 달린 것으로 자동차나 마차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여보..식사하세요..”

“..응..”

“어머~ 우리 희주. 그거 아빠에게 주는 거야? 어서 받아요. 희주가 제일 아끼는 거예요..”

“응? 응...고마워. 희주야..”

“희주. 맘마 먹자~”

수영은 희주를 번쩍 안아들고 주방으로 갔다. 뒤 늦게 장난감을 들고 따라갔다. 희주가 준 장난감을 내려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말 가지고 가기도 난처하다. 정말 준 것인지도 의심스러운데다가 가져가도 쓸데가 없는 까닭이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맛있네..”

“많이 드세요..”

뚝배기 안에서 뽀글뽀글 소리까지 내면서 아직도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와 가지런하게 담겨있는 밑반찬들이 전형적인 가정식 백반이었고, 맛이 깔끔하다.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는,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수영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부부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누나들이나 보라. 상미. 슬기 누나들이랑 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굉장히 안정감이 있어 원래 있을 자리에 있는 편안함이다.

“설거지 도와줄게..”

“정말요? 그럼..”

지금까지 수영의 성격으로 봐서 괜찮다고 할 줄 알았다. 맛있게 먹고 그냥 물러나기 어색해 인사치레로 한마디 했는데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고무장갑을 끼워 준다. 내 입으로 한 말도 있고 집에서도 가끔 하는 것이라 조금은 의아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냥 싱크대 앞에 섰다.

“희주도 엎어주세요..”

“어?”

수영은 웃으면서 희주를 등에 업히고는 넓은 포대기를 가져다가 둘둘 말았다. 고무장갑에 거품이 잔뜩 묻어 있던 터라 팔을 넓게 벌리고 수영에게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희주가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려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수영은 싱크대에 등을 대고 앉아서 올려다보며 야릇하게 웃다가 바짝 붙어 앉으며 다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한 마리 뱀처럼 타고 올라와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가랑이 사이를 지나 앞섶을 건드리며 희롱했다.

“봐도 되죠?”

“.....응...”

이미 똘똘이는 ‘스탠드 업’ 상태에 있었다. 학교에서 수영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차 안에서 그녀의 냄새를 맡는 동안에도 또 살며시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 그녀의 손을 피부가 느끼면서 몸은 기억을 되찾았다.

“아...그리웠어요..”

‘나도...’

수영은 아예 내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떨어져 내린 바지가 수영의 허벅지 위로 떨어져 내리고 팬티는 무릎과 무릎 사이에 기다란 다리를 만들면서 걸쳐졌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똘똘이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꿀꺽..

“설거지..안 해요?”

“으응..할거야..”

“그동안 얘...심심하겠다. 그죠?”

“...아마도..”

“그럼..조금만 놀아줘도 좋겠네요?”

“..응....”

똘똘이 머리에 입술의 감촉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데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혀와 입술이 강하게 조이면서 휘감겼다. 많은 입술을 알고 있었고,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어도 수영의 입이 단연 으뜸이다. 아니 수영의 입뿐이 아니다. 성기능만 본다면 그녀는 두려울 정도였다.

“쭙..줍..”

덜그덕..덜그덕..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래쪽이 신경 쓰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신을 조금이라도 분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혀에 따라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싶었고,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거칠게 쑤시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으음...”

똘똘이 머리만을 집중적으로 빨아 먹다가 자극이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면 어느새 떨어져 기둥을 타고 내려가 구슬이나 주머니, 또는 그 밑으로 파고들어 가랑이 사이를 핥는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자극이 올라와 힘을 풀고 사정을 해야 갰다고 느꼈다가도 파정하지 못하고 애꿎은 그릇만 움켜잡았다.

“음...”

완벽한 조절. 완전히 장악 당했다. 나는 수영을 잘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둘이서 또는 수영의 항문에 약을 넣고 제한을 둔 상태에서의 수영과 자유로운 그녀는 달랐다. 스스로 오럴을 즐기는 것이나 그 페로몬은 같았으나 기술과 여유는 내 위에 있었다.

“설거지 다 했어요?”

“으응..아직..”

“기분 좋아요?”

“응..”

“역시..당신은 특별해..”

“뭐가?”

“절대 조급해 하지 않아..약점을 보이지 않아..”

“.........”

칭찬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이유 없는 칭찬이다. 그래서 그녀를 내려다 봤다. 말을 하면서 똘똘이에게서 입을 떼게 되어 미친소가 안정을 찾아 갔다. 그녀는 단지 그녀의 침으로 반짝이는 똘똘이를 쓰다듬고 있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 올려다봤다.

“내 입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고 싶었어..”

“참았어요?”

“..아니. 참지는 않았어..네가 싸게 하지 않은 거 아냐?”

“맞아요. 하지만 당신도 조급하지는 않았죠?”

“...좋았으니까..”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남자와 관계를 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나보다는 많을 거다. 아니 그녀의 나이와 매력. 그리고 그 독특한 기질을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할거라고 본다.

“전요...당신이 제 입을 거칠게 쑤셔 주기를 바랬어요..”

“......”

“당신을 갖고 싶었어요..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었어요..”

“.......”

“예전에도...오늘도...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당신은..”

“.........”

그녀의 말은 너무 생뚱맞고 상황에 맞지 않았다. 나는. 최소한 똘똘이는 그녀의 기술과 의지에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미친소가 떼로 몰려다니며 입구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주머니로 돌아가는 감각에 휩쓸려 정신이 아찔한 쾌감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조종되지 않았다고?

“음...”

잠깐의 대화와 그녀의 말에 대한 생각으로 완전히 진정되자 그녀의 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시 느껴 봐도 똘똘이는 그녀를 거스를 수 없었다. 아무리 엉덩이에 힘을 주고 PC근을 수축해도 수영은 미친소를 정확하게 폭발 직전까지 끌고 올라갔다가 입술을 띄었다.

‘여기서 억지로 그녀 입에다 싸기를 바란다는 건가?’

그런 의미를 갖고 내려다보자 마침 그녀는 똘똘이 머리만을 살짝 물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자 내 생각이 맞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손 안에 다 들어올 것 같이 작은 얼굴을 잡고 허리를 밀어 넣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복부에 닿았고, 똘똘이는 깊고 좁은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갔다.

“으음..”

내 다리 사이에 놓인 입을 아래입처럼 똘똘이로 치댔다. 민감한 머리에 목젖이 스치고 지나갔다. 엉덩이를 잡은 수영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머니를 쥐어짠다. 자극이 똘똘이 머리에 달린 센서의 역치를 어렵지 않게 돌파했고, 그녀의 입에 대고 미친소를 뿜어냈다.

“먹지 마..”

“아아...”

수영은 기둥과 주머니를 잡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려는 듯 흔들었다. 물총처럼 날아가는 덩어리와 함께 특유의 냄새가 넓게 확산했다. 입이 작아서 그런지 그 안에 미친소가 가득 싸였고, 수영은 내 말에 삼키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로 흘러넘치기 시작하자 양 손으로 그 액체를 받아냈다.

그녀는 고개를 바짝 들고는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한쪽에 매달려 있는 키친 타월을 뜯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목젖이 꿈틀거릴 때마다 입 안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힘겨워 보였다.

“뱉어..”

“..어어..”

“먹을 거야?”

“..어어..”

“너도 내 마음대로는 조종되지 않아...”

꿀꺽..꿀꺽...

“그래서 당신이 더 좋아요..”

“......”

‘이해할 수 있는 너는 너가 아니겠지..’

내 생애 가장 독특한 설거지를 끝내고 베란다 티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셨다. 희주는 잠들어 수영이 방에다 누여 놓고 나왔다. 어느새 석양이 지고 도시는 회색빛 천연색에 물들었다. 회색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어도 일반적인 회색은 아니었다. 수십. 수천가지 색깔을 포함하고 있는 회색빛이었다.

“나..희주 아빠야?”

“...제 희망이에요..”

“그럼..너의 남편이고?”

“아니요...저의 주인이세요..”

“같은 말 아냐?”

일본에서는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머니들이 ‘우리 주인양반’이라고 표현한다. 아버지가 모아 둔 소설에서는 ‘주인’이 다른 의미로도 쓰였지만 문화와 정서의 차이로 정확한 의미가 와 닿지는 않았다.

“영어가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husband와 master. 사전적 의미로 husband는 남편. 정부. 뚜쟁이다. master는 영주. 주인. 스승. 달인. 정복자. 등이 있다. 그 이외에 다른 의미가 더 있는지는 몰라도 대략 그랬다. 분명한 것은 남편보다 주인이라는 말이 더 폭넓은 ‘지배와 소유’의 의미가 강했다.

“그런 정도로 내가 의미가 있을까?”

“....저는 있다고 믿고 있어요..”

‘무엇이?’

그녀에게 믿음을 주었을까?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청소부는 성자가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일부분을 보고 성자라고 믿었고, 본의 아니게 성자가 되어 버린 이야기다. 지금 수영은 나를 자신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you"ve got mail~

[재석아. 여기 HT 호텔 커피숍인데..지금 빨리 좀 와줘..]

핸드폰 메시지. 보내는 사람이 임의로 지워져 있는 메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랫입 모습만 알게 된 사람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최소한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가야해요?”

“응...아무래도...”

“다음에 또 오실 거죠?”

“...응...”

택시를 탔다. 빨리 오라는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호기심이 더 강했다. 물론 사진을 보내는 사람과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일 확률이 더 높았다.

번호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커피숍 안을 둘러봤다. 지금 불러낸 것이 장난이 아니라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누나?’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누나를 찾았다. 아니 누나가 나를 찾았다. 누나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앞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다. 누나가 만나고 있는 그가 누군지. 호기심과 함께 아련한 생채기가 났다.

‘나도 참 재수 없는 놈이네...’

어제 밤에는 작은누나의 금지를 더럽혔고, 지금까지 수영에게 똘똘이를 물리다가. 누군지 모르는 그러나 음란한 사진의 주인이라고 예상되는 여자를 만나러 와 놓고는 누나와 남자를 보며 질투하는 꼴이 아무리 ‘나’라도 역겹다.

누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상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누나 역시 나를 맞이하려는 듯 일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앉은 그 놈이 누나를 붙잡는다. 어딘지 강압적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다가갔다.

“누나!”

“재석아~”

“..........”

“당신...그...검사?”

“너 이사람 알아?”

“누나야 말로 어떻게 알아?”

“..............”

누나와 함께 있던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고, 또 기억해 내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상황에서 그 검사는 너무나 뜬금없었다. 누나 역시 내가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얼굴에 가감 없이 드러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가는 그와 내 뺨을 때리고 항의하던 나에게 검사는 그래도 된다며 오히려 뻔뻔하게 나왔던 그가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누나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걱정 마 누나..”

“..응...”

누나를 안정시키는 동안 나는 나대로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하나씩 풀어가자고 생각했다. 우선 도망나간 검사 이외에 나간사람이 없다는 것을 상기하고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

커피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한 번도 궁금한 적은 없었지만 답은 알 것 같다. 그것은 혼자 앉아 있는 미모의 여자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묘하게도 지금 뛰쳐나간 검사와 같은 직업이라 금방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녀는 얼마 전 사건에서 내 담당검사였다.

‘우연일까?’

여자의 허리 밑쪽 사진이 왔을 때.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이거나 누군가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슬기누나 말고는 그럴 사람이 없었고, 확인 결과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온 문자에는 ‘재석’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없었다. 그러니 같은 사람이 보낸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수도 있다.

메시지를 받고 온 호텔 커피숍에는 누나가 남자 검사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안면 있는 여검사를 봤다. 사진은 몰라도 오늘 온 문자는 누나 아니면 여검사가 보낸 것일 수 있다. 여검사가 누나인 것처럼 가장하고 보냈는데, 자기 번호가 찍히면 들통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가능성 없지도 않았다. 또 그렇다면 번호를 없앤 이유도 설명이 된다. 만약 누나가 도와달라고 보낸 거라면. 누나는 그 와중에 왜 번호를 지웠는지가 설명되지 않았다.

“재석아..이제 집에 가..”

“괜찮아?”

“응..고마워. 어서 가자..”

안정을 찾은 누나를 데리고 나가다가 여검사를 돌아 봤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하려다가 그대로 쳐다본다. 최소한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연이 너무 많다. 우연이 두 번만 되도 필연이라고 했다. 내가 남자 검사를 알게 된 것, 또 누나가 그를 알게 된 것, 내가 여 검사를 알게 된 것, 그 각각이 우연이라고 해도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필연이다.


그날 이후 현주누나는 어딘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두기로 하고 나는 나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 변호사 아줌마를 통해 여 검사를 만났다. 우리 둘 모두 알고 있는 장소, HT 호텔 커피숍이었다.

“저를 보자고요?”

“...그저께 봤었죠? 여기서..”

“그래서요?”

“............”

과민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부녀와 간통이나 하는 사람이라 싫었다면 굳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줌마 말로는 별다른 말없이 만나겠다고 했다는데 굉장히 딱딱했다. 또한 말하는 폼과는 달리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초등학교 때 지수 때문에 싸우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녀와 같은 눈빛을 하는 애들도 더러 있었다. 그건 겁을 먹은 눈이다. 불량배에게 붙잡힌 소녀들이 보여 줄만한 표정이다. 그녀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내가 불륜의 경력이 있다고 해도 강간이나 폭행죄도 아니고 호텔 커피숍에서 뭘 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전..단지..명수씨를 따라왔을 뿐이에요..”

“명수씨? 아...그 검사요?”

“그래요. 제 애인이에요.”

‘또.. 나를 치죄했던 두 검사가 우연히도 연인 있었다?’

“그..검사님은 왜 우리 누나를 만난건지 아세요?”

“...........그 여자..그러니까 당신 누나에게 안 물어봤어요?”

“네..그 날 이후 굉장히 무서워하고 있어서..”

“왜요? 제가 알아본 걸로는 매일같이 꽃바구니를 보냈고..며칠 전에는 다이아반지까지 샀는데..”

작은 누나 말로는 누나가 어떤 검사랑 연애를 한다고 했었다. 이것이 전부 우연이라면 그건 정말로 인연일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아니라면, 위험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위기 감지센서가 요란하게 경고했다.

‘그래서 누나가 무서워하고 있는 거구나..’

“혹시...검사님이 제 사건을 맡은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네? 아....”

그녀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걸로 대답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량배를 만난 소녀처럼 떨던 껍질을 벗어버리고 차분하고 냉정한 눈동자로 생각에 잠겼다.

“명수씨. 아니 박명수 검사를 언제 만났었죠? 그저께 처음 본거 같지는 않던데?”

“...저에게도 정보를 줄 건가요?”

“...약속 할게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수상한 도둑 사건을 이야기해야 했고, 이어서 박명수가 찾아온 것과 취조실 안에서의 일을 모두 전했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돼요. 박명수 검사는 작년에 특검팀에 있었어요. 그가 절도 같은 일에 관심을 보였을 리가..”

“특검팀이라는 건 뭐죠?”

“그건 특별검사 제도를 말하는 거예요. 수사 자체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때에 도입하는 제도로, 검찰의 고위간부가 수사의 대상이 되거나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위공직자가 수사 대상이 됐을 때 실시해요.”

“박명수씨는 누구를 수사했나요?”

“작년에 떠들썩했었죠?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요.”

“아...”

나는 나대로 말하면서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도둑이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그들은 뭔가를 찾고 있다.

‘장부..’

비자금과 관련된 거라고는 장부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태워 없앴다.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없는데 그들이 계속 그것을 찾는다면 일이 어렵게 되었다. 장부가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려지면 박명수 행동으로 봐서 내 머리라도 해부하려고 할 것 같다.

“뭔가 짐작 가는 일 있나요?”

“아니요...”

박명수의 일은 이유를 찾은 듯 했다. 그는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 여자 나에게 꽤나 호의적이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이 여자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왜 나에게 호의적일까?

그녀는 내 담당검사였다. 그런데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건 중의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성적인 부분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음부 사진을 보냈다. 또 누나가 위급할 때 도움을 주었다. 만나자는 제안에 선뜻 나왔고,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말이 되나?’


====================


1. 명수를 정리하고 동백나무를 찾아 오려다보니 새로운 인물을 넣게 되었는데, 이것이 글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2. 다음편 연재 날짜를 미리 고지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날때마다 틈틈이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일주일에 한편은 꼭 쓰려고 하니 일주일마다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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