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아, 차돌아 [제49부]
윤지는 차돌 이를 한동안 뚫어질듯 바라본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장식된 갸름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점차 어두움으로 짙어간다.
바라보는 그녀의 초롱 한 눈빛이 아롱거리는 걸로 보아 눈물이 맺힌 것을 알 수 있다.
윤지의 입에서 처량한 목소리가 차돌이의 귀를 울린다.
[선배님......선배님은 좋겠어요.
우리학교에서 제일 예쁘다는 언니들과 또 아름다운 외국 여자의 축복을 받으니......
그렇지만.......저.....이 꽃 받아주실래요.]
윤지는 손을 내민다.
두 손에 한 아름 안긴 꽃송이가 차돌이의 가슴팍에 머물며 그 꽃에서 향기로운 진한 향기가 코 속으로 밀려든다.
[아니. 그럼 이 꽃 나 주려고 가져온 거야........]
차돌 이는 설마 했다.
짓궂게 장난이나 치고 몹쓸 짓까지 한 자기에게 꽃을 주려고 왔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는가.
차돌 이는 냉큼 빼앗다시피 꽃을 든다.
[물론 받아야지.......암 받고말고.......후후후.......
그렇다면 오늘은 나와 자리를 같이 해도 괜찮다 이 말이지, 좋아, 후후후.................]
차돌이의 요사모사한 말에 윤지는 당황스럽다.
저렇게 예쁜 여자들과 자기는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돌이가 농담으로 하는 말 같지만 자리를 함께하자고 권하니 순간 어찌할 바를 못한다.
[아니에요. 난 예쁘지도 못하고..선배님과 어울릴 자격도 없어요.]
슬픈 듯 처량하게 외치는 목소리 같다.
자괴감에 젖어 통분하여 괴로운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작은 목소리였다.
차돌 이는 장난 끼가 다시 발동했다.
차돌 이는 윤지의 귓가에 낮게 소곤거린다.
[넌 저애들보다 더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잖아..그것이면 돼. 히히히..]
[뭐라고요, 정말........]
윤지는 차돌이가 다시 놀리는 듯 말하자 불 큰 화를 낸다.
윤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간다.
그러나 그 손은 차돌이의 손에 잡혀버린다.
[후후후.....봐, 넌 용기가 있잖아......
널 사랑할 수 없지만 싫지는 않아.........
저 애들도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줄 수가 없거든.....
그러니 저애들과 넌 동수야. 나만 믿고 따라와.......]
차돌 이는 윤지를 이끌고 일행에게 간다.
윤지는 차돌이의 힘에 이끌려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남모르게 떠올리며 그리워했던 얼굴이었다.
이제 그 사람과 아무런 약속도 받아내지 못하면 내 마음은 추억 속에 묻어져 갈 뿐이다.
윤지는 그러기가 싫었다.
맺어지던 그렇지 않던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이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억지로 끌려가면서도 마음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차돌 이는 간단히 윤지를 소개시키고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일행은 서로 차돌 이와 기념사진을 남길 목적으로 쉬 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차돌이가 졸업 복을 반납하고 언젠가 현영 이와 같이 왔고 알렌에게 한국을 소개시켜준 토속 집으로 온 것은 두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이였다.
토속 집엔 손님이라곤 없었다.
홀 가운데 음식이 가득 차려져있고 그 음식들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돌이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증을 나타내자 현영이가 재빨리 나서서 설명해준다.
[오빠의 졸업이라 아빠에게 억지를 부렸어.
오빠가 싫어하리라 여겼지만 한 번 봐 줘...오빠는 또 이틀 후면 가잖아.
그러니 오늘은 아무소리 말고 우리의 정성이라 생각하고 즐겨줘. 그렇게 해 줄 거지...]
[그래도 이건 너무 호화판인데........]
더 이상 차돌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치를 싫어하지만 오늘 같은 날 까지 그녀들의 성의를 저버리기엔 마음이 불편했고
또 이상하게도 그렇게 싫지도 않았다.
[호호. 오빠 승낙한 거야. 호호.......]
일행이 자리에서 앉는다.
차돌이가 가운데 앉자 서로 옆에 앉으려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차돌 이는 일행에게 자리를 정해준다.
우선 윤지를 배려하여 자기 오른쪽 옆에 그리고 알렌을 왼쪽에 앉게 한다.
일화와 미지 현영을 맞은편에 앉게 하곤 자리를 앉는다.
일화와 미지는 어제 같이 밤을 보낸 터라 군말이 없는데.....현영 이는 입이 한발이나 나온다.
차돌 이는 내일은 자기와 같이 있어준다는 차돌이의 말에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하더니 알렌과 윤지를 자청해서 앉히고 있다.
알렌은 염치를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을 수 있어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알렌은 현영에게 감사의 키스를 볼에다 해주기도 한다.
실로 개방적인 성품이 아닐 수 없다.
윤지는 얼굴에 가득 홍조를 담고 할 수없이 지정된 자리에 착석한다.
그러나 일행들을 마주 쳐다보지도 못한다.
실로 어울리기도 힘든 언니들이 아닌가..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생긴 것까지 자기가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미녀들과 같이 자리를 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히고 숨이 답답해 올 뿐이다.
윤지는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돌이의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 안달하는지.....차돌 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기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도 않은데 웬일인지 차돌이의 말을 구슬리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곤 이상하게 생각했다.
여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들과 인사만 나눠도 앙칼진 고양이처럼 변하고 절교를 하는 시국인데 이렇게 무엇 하나 빠질 데 없는 여자들이 어떻게 하면 차돌이의 환심을 살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자. 희한한 일이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드니 윤지의 마음속에도 오기가 솟아오른다.
나도 여자인데 왜 이런 여자에게 기죽을 이유가 있는가하고.....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윤지는 느끼지도 못하고 차돌이의 늪 속으로 점점 발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일행이 동동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즐거워한다.
술이 조금 거나하게 취해진 일행들은 미리 준비한 이벤트인지 밴드를 불러 마치 자기가 가수인 냥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켜간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즐거움에 지친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이미 대기시켜둔 차에 각자를 태운다.
차돌 이는 일화와 미지에게 다가가 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귓속말로 뭐라 속닥인다.
모녀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한 달이면 전처럼 자라.....
하여간 다음에 왔을 때 내 방에 당신들 모습이 있길 기대해......
물론 당신들뿐이 아냐.
저기 현영이도 그럴 거야........
난 욱 박 지르고 싶지 않아 당신들이 결정해.......]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차돌이가 기분이 상해 목소리가 커져 들었으나 그 말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차돌 이는 기사에게 출발할 것을 지시한다.
곧 일화와 미지를 태운차가 집을 빠져나간다.
차돌 이는 다시 현영 이가 탄 차로 간다.
[우리 집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오늘 널 작살내고 싶어....]
현영의 귀에 빠르게 그리고 거역하지 못할 인상을 지으며 말하고는 자기가 탈 차로 향한다.
[정말. 그래도 돼........참말이지........]
현영 이는 다리를 팔짝뛰며 좋아한다.
돌아서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들뜬 소리로 되묻는다.
[그래.......내가 늦으면 형수랑 이야기하고 있어.
그리고 이것 가져가고......]
차돌 이가 언제 왔는지 손에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있다.
들고 온 꽃다발이랑 또 모두가 개별적으로 준비한 선물을 현영이 차에 싣는다.
현영 이는 얼굴에 온통 화색이다.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같이 있고 싶어도 그의 주변에 자기혼자가 아니니 속 알이만 했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마치 그가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와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얼 말하는 건지는 현영도 안다.
섹스를 하겠다는 말이다.
오늘 무참하게 당하더라도 그와 있을 수 있다는 게 무지하게 좋았다.
이미 그에게 순결을 주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입에서 환한 미소가 지워지지가 않는다.
[어서 가.......]
차돌 이는 그런 현영 이를 보며 난감해하는 야릇한 미소를 지어준다.
현영 이를 보내고 그는 윤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알렌이 타고 있는 차로 간다.
알렌은 이렇게 헤어지는 가 울상을 짓고 있다가 차돌이가 자기가 타고 있는 차에 윤지를 태우더니 자기도 탄다.
알렌은 그가 차에 오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비록 윤지가 동승했지만 크게 문제 삼지도 않는다.
원체 개방된 나라에서 살았고 또한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애정을 표시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괴성을 지르며 박수까지 치며 즐거워한다.
[어디에서 묵어,
괜찮다면 우리 둘에게 커피한잔 줄 수 있겠지...
그런다면 보답으로 내가 알렌을 죽여줄 수도 있는데.........]
요란법석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며 차돌 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커피를 대접할 수 있느냐며 묻는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뿌리칠 수 없는 말로 그녀를 유혹한다.
[예스, 예스......]
알렌은 차돌 이와 같이 있고 또 안길 수 있다는 말에 얼굴 가득 기쁨을 나타낸다.
옆에 윤지가 있어도 불시에 차돌 이를 안으며 양 볼에 키스를 하는 등 애정을 표시한다.
윤지로서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차돌이가 영어로 알렌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애써 그 말을 못 들은 척, 이해 못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윤지야, 그래도 되겠지. 커피정도는 마실 수 있지 않겠어.]
차돌 이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윤지를 바라본다.
빙그레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아마 두 얼굴을 가진 자의 가면이니라.
[네, 그렇게 해요,]
윤지는 고개를 숙인다.
차돌이가 알렌에게 하는 말 중 마지막 말은 섹스이야기다.
그걸 모르는 윤지가 아니고 그걸 알면서도 허락하고 말았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윤지는 달아오르는 볼을 차돌 이에게 보일 수 없어 고개를 숙인 것이다.
[후후후. 요 런, 앙큼한 아가씨 내 말뜻을 다 알고 있잖아. 하하.........]
차돌이가 그런 윤지의 머리에 가볍게 알밤을 놓는다.
윤지는 더욱 고개를 숙여버린다.
모른척한 것이 들통 나버려 더욱 부끄러웠다.
[쳇, 내가 뭐 알렌 같은 줄 아나봐..........]
고개를 숙이면서도 새침하게 중얼거리는 윤지다.
[그래 알았어. 이 부드러운 아가씨야 누가 뭐라 했어...하하하....]
차돌 이는 그런 윤지를 보며 앙천대소를 터뜨리고 만다.
그만큼 윤지의 모습이 귀여웠고 예뻤기 때문이다.
[또...또..........]
[하하하...................]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xx호텔에 도착한다.
세 사람은 곧바로 승강기로 다가가 승강기가 열리자 몸을 들이민다.
호텔 종업원이나 손님들이 알렌의 늘씬한 몸매에 넋을 빼앗긴 듯 쳐다보고 있는 것을 뒤로하고 세 사람은 특실에 숙소를 정하고 있는 알렌의 방으로 들어간다.
.
.
커피를 마시고 알렌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겨운지 샤워를 해야겠다며 욕실로 들어간다.
윤지는 알렌이 사라지자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것을 물어 본다
[선배.....선배는 이렇게 많은 여자를 사랑하고도 뒤가 켕기지 않은 철면피인가요.]
윤지가 제법 대담해졌다.
지금까지 본 현상을 말로 설명할 수 없도록 혼란스러웠고 무어가 있어 모든 여자들이 그에게 목 메 다는지 궁금했다.
[어......그렇게 보였어, 후후후.......
윤지는 날 몰라. 내가 얼마나 냉정한지........
난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핍박하질 않아...
그 여자들은 그저 내 옆에 있고 싶어서 있는 거야.....
윤지는 착하니 그런 걸 모를 거야....후후후.......]
[그래도 여자와 자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윤지는 차돌이도 여자들도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여자를 안고도 무책임하게 보이는 차돌이가 얄미워진다.
그러나 차돌 이는 윤지의 말을 흘려듣는다.
[후후. 꼭 너 같은 철딱서니 없는 소리다....
자...... 나에 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윤지는 어때....
애인은 있어.... 아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애인이랄 수는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윤지도 숨기지 않는다.
차돌이의 말에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
[후후후...그럴 나이지. 아니 너무 늦었어.
윤지처럼 아직 순결을 가진 여자가 너무도 귀한 시절이니. 후후후...
누굴까. 궁금해지는데............나도 아는 사람이야.]
차돌 이는 윤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녀가 마치 천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천사의 굴곡이 그의 마음을 숱하게 일렁이게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져 있었고 또한 비밀스런 무엇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천사는 그것도 부족하여 의상이라는 허울까지 덮어쓰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천사를 천당에서 끌어내려 악마의 불꽃에 빠트리고 싶은 사탄의 마음이 불연 듯 솟아난다.
옷 속에 감춰진 풍만한 가슴을 짓이겨버리고 싶어진다.
다리사이 보지와 항문에 자신의 자지를 한껏 박아 고통과 수치에 울게 하고 싶어진다.
티 없이 순결하며 고독 에서 자신을 지키는 그녀를 무참하게 발가벗겨놓고 자그맣고 예쁜 입으로 하루 종일 더러운 오물로 범벅이 된 자지를 물고 빨게 하고 싶어진다.
악마가 머릿속에서 그를 괴롭힌다.
차돌 이는 악마의 모습을 감춘다.
순진한 천사의 탈을 훔쳐내어 그것을 얼굴에 덮는다.
[그래요, 선배도 잘 아는 사람인데. 그 사람 너무 못됐어요.
선배님이 한번 때려줄래요,]
윤지가 차돌 이를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해준다.
차돌이도 평소와 다른 용기 있는 윤지의 행동이 이상한지 마주 쳐다본다.
치렁치렁한 머리가 자꾸 눈앞을 가리는지 연신 머리칼을 어깨 뒤로 제키는 윤지가 눈빛을 빛내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약간 붉게 물든 볼이 더욱 윤지를 청순하게 해 준다.
큰 눈을 제외하면 별로 예쁜 것은 없지만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윤지다.
그런 윤지가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고 한다.
사 못 궁금해진다.
[누굴까..나도 안다면..........그나저나 내가 아니라니 서운하지만 하하하..]
[쳇, 누구긴 바보같이...치 이........]
윤지가 고개를 숙인다.
[어랍 쇼, 윤지야.....넌 그러면 안 돼.
난 솔직히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차돌 이는 그제 서야 윤지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 도둑을 알았다.
손을 저어며 절대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며 그렇게 되면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듯 선하지 않는가.
한순간 그녀를 짓이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초롱 한 그녀의 눈빛을 대한 그는 그녀만은 나라는 악마의 소굴에 드는 것을 만류하고 싶었다.
[치 이. 언제는 날 힘들게 해놓고 그렇게 즐거워하더니.......
남자란 전부 도둑인가 봐, 확실해 그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윤지다.
지금 차돌이가 얼마만큼 자기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모르고 있다.
악마가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그 탈을 쓰고는 순진한척하는 자기에게 넋을 잃고 스스로 소굴로 들어가는 것인 줄 모르고 있다.
그저 마음이 원하고 그걸 전하고 싶은 순결한 마음으로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윤지야......]
차돌 이는 어이가 없어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더 이상 그녀를 방관할 수 없다 생각했다.
[윤지야,
너의 순수한 마음을 왜 내게 주려고 하니.....
허긴 사람이 단 한순간이라도 사랑을 느끼게 되면 자기의 모든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야.
오직 그 사랑만이 우선하니까......
그때는 이 세상의 어떤 음악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했어.
허나 윤지는 그런 사랑을 나에게 줘선 안 돼....
그러면 윤지의 다음날은 온통 캄캄한 밤처럼 어둠침침해질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난 윤지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내 자신을 속이지 못해...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들도 나의 영상과 그림자만 ?아 다니는 허수아비야.
난 그 여자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거든....
오로지 난 내 옆에 알랑거리는 여자들 마음대로 해버리는 폭군에 가까운 지독하게 나쁜
사람이란 말이야.
윤지가 내 옆에 절대 있어선 안 돼.]
차돌 이는 진심으로 윤지가 자기에게 구속되는 걸 원치 않았다.
물론 한때의 성적욕심에 지나칠 정도의 장난도 했지만 이 순간 윤지만은 아픔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는 악마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주고 물러나길 바랐다.
[그럼 선배는 왜 내게 그런 짓 한 거야.
여잘 희롱한다는 건 욕심이 난다는 건 마음에 있다는 것 아니야.]
윤지는 철없는 사랑에 정신을 잃은 것인가.
남자들의 장난과 호기심이 자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믿은 것 같다.
그러나 차돌이의 대답은 윤지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만다.
[맞아, 난 널 망가뜨리고 싶었어.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가지야.
그렇지만 윤지야.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들은 어마한 환경 속에서 자란 천도복숭아 같은 아이야.
내가 달려들어 씹어 먹고 버려도 얼마든지 새롭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여자들이야.
넌 그렇지 못하잖아...
난 더 이상 말 않겠어.
분명한건 난 이미 마음을 누구에겐가 줘 버린 껍데기뿐인 남자야.
그 여자의 허락 없인 먼 훗날 누구도 내 옆에 있질 못해...
지금은 가슴속에 품고 만날 날만 기다리는 신세지만 언젠가 난 그 여자를 위해
그 여자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사람이란 말이야.]
차돌 이는 다시 윤지를 타이른다.
[그럼, 선배 곁에 있는 여자 모두 그걸 알고 있어.
그러고도 선배 곁에 있고 싶어 해........]
윤지는 궁금했다.
과연 차돌이의 여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그러고도 같이 있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후후후. 계집애 끈질기기는.......그래 모두 다 알고 있어.
내 한마디면 아마 학교에 발가벗고 나오라 해도 모두 그렇게 할 거야.
난 그런 여자 아니면 곁에 두지도 않아....
어때. 무섭지 난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
요,,,,,, 바보 맹꽁이 같은 보드라운 아가씨야...하하하...]
[..............................]
윤지는 말이 없다.
긴 침묵에 들어간 듯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기에......
인간이란 세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도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욕구의 육체화요 그 덩어리에 불과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불행과 결핍, 그리고 곤궁의 해결 이외에는 별로 추구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생활하는 것에는 급하게 이뤄지는 요구에 시달리며 새로이 전개되는 삶의 고통으로 시달린다.
그래서 다른 면에서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종족의 보존하고 번식을 위한 성욕이 아니던가.
고달픈 삶을 살기위해 불안한 발길을 옮기면서 조심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바람직하지 못한 무수한 현실과 부딪치고 그와 싸우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간인 것을.......
또한 인생은 무엇인가.
암초와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바다나 다름없다.
폭풍우와 파도 등 거친 바람을 맞으면서 그걸 피하기 위해 좌우를 두루 살피면서 간신히 몸을 피해나가는 부평초 같은 것이 아니던가.
자기의 재능과 노력으로 그 모든 것을 그럭저럭 피해나간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풍파에 피할 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지경에 다다르며 결국 죽음이라는 난파 속으로 함몰되고 만다.
죽음만이 모든 고통과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을.....
그런 이 세상 인간이 고달프고 인생이 비참해지더라도 풍파에 몸을 던지는 것이 우매한 사람이 아니던가,
이건 용기도 아닌 본능이며 내 삶의 자유다.
내가가진 꿈이 하나의 물거품이 되더라도 진실을 감추고 산다면 너무나 서글플 것이다.
자유로워지자. 그리하여 힘든 이 세상 나름대로 보람을 안고가자.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해지자.
끝없이 이어지는 온갖 잡념이 그녀의 뇌리 속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부추기고 있다.
윤지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이때 문소리가 들리며 알렌이 커다란 타 올로 몸을 가리고 욕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지 않고 뭔가 사색에 잠겨있는 윤지가 보고는 얄미운지 싸늘한 눈길을 던져주고는 차돌 이에게 달려들어 두 손으로 목을 감는다.
치렁치렁한 금발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가리듯이 펼쳐진다.
알렌이 차돌이의 입에 키스를 하려하지만 차돌이가 알렌을 밀쳐내며 눈을 부라린다.
[알렌, 많이 건방졌어. 이 여자는 나의 손님이야.......
그런데 어디서 건방지게 이 여자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어.]
알렌은 차돌이가 화를 내자 금 새 눈물이 도는 듯 커다란 눈에 물기를 머금으며 고개를 숙이고 만다.
차돌이가 얄밉다.
자기를 위해서 머나먼 이국땅에 홀로 생활하는데 자기를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꾸지람을 하다니.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도 생각난다.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윤지도 더 이상 있기가 민망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인사를 하곤 방을 나간다.
[바래다 주고와도 그렇게 하고 있으면 두 번 다시 날 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거야...]
차돌 이는 위로는커녕 도리어 불쾌한 듯 소리치며 나가버린다.
사실 윤지를 바래다줄 시간도 되었고 알렌을 다잡기 위한 수법이었다.
망아지처럼 날뛰는 그녀를 온순하게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피곤한일이 눈을 보듯 뻔 하기에 꼬투리만 잡으면 호통 치며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다.
이런 마음을 알리도 없는 알렌은 슬픔에 금방 소리 내어 울어버린다.
그러나 울음도 잠시 알렌은 번개같이 화장대 앞으로 달려가 화장을 시작한다.
50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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