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런 년입니다
왕자지 밤바다 저
세월은 동지섣달 저수지 얼음장 쩡쩡 갈라지듯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갈라지며 무섭게 10년을 달려왔습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어려운 집안 입 하나 줄이자고 신랑 얼굴도 안보고 시집 와서 농사 일 시작하고 이듬 해 경운기 몰다가 논두렁에 쳐 박혀 죽은 남편 덕에 신랑 잡아먹은 년 되어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다가 남편 죽은 지 6개월 후에 그나마 손 귀한 집에 아들 하나 낳아주고 좀 사람대접 받는 가 싶었더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 한 돌을 나흘 남기고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고열로 세상 떠나가 버린 뒤로 남편 잡아먹고 그도 모자라 아들까지 잡아먹은 아귀 같은 년이 되어 저주 받은 10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초롱초롱 오이꽃 위에 빛나는 이슬 같던 우리 아들의 눈빛은 나의 안식이었고 방실방실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내 눈 속에 들어와 있었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 보내고나니 날 아들 잡아먹은 귀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고 나에게 돌을 던지든 똥바가지를 뒤집어 씌우든 난 그저 죄진 년이었습니다.
난 죄 많은 년입니다.
아들 죽고 1년을 돼지처럼 살았습니다. 개처럼 먹었고 소처럼 일했습니다. 그리고 폐병으로 피를 토하는 내게 시어머닌 옷가지 몇 벌 보자기에 싸서 미친개 ?아내듯이 ?아내고 칼바람 맞는 내 등 뒤로 소금을 뿌려대었습니다.
시골 버스 터미널 대합실 설날을 몇 일 안 남긴 겨울 밤 콘크리트 바닥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내 몸을 서서히 얼려가고 있었습니다. 난 거기서 그렇게 한 많은 인생을 마치고 먼저 간 우리 신랑, 귀여운 우리 아들 만나러 저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 목숨은 참으로 질기더군요.
죽지 않으니 또 살게 되는 게 이 보잘 것 없는 년 명줄이어서 누군가 빵 한 조각 던져주니 기를 쓰고 먹고 살려고 애를 쓰게 되더군요. 죽고 싶었는데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그리운 남편 자식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서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이승에서 붙잡아 메는 이 거미줄 같은 생명줄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내 질기디 질긴 생명줄 파리 목숨보다 못 한 거지만 지난 10년 기를 쓰고 살았습니다. 남편 잡아먹은 년. 아들 잡아먹은 년. 버러지보다 못 한 이 년의 목숨이지만 기를 쓰고 살아서 세상에 먼지 만큼이라도 좋은 일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더군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년이고 제일 죄 많은 년인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시장에서 쓰레기 줍고 새벽 부둣가에서 생선 다듬고 막노동해서 작은 국밥집을 하나 열었습니다. 돈 벌어서 무엇에 쓰랴....... 내 산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면 그만이지...... 지나 가던 거지들은 다 불러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씩 먹여 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네들 아침 저녁으로 밥 한 사발씩 가져다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 덕에 시장 구석의 국밥집에 밤이면 온 동네 거지들이 다 몰려 왔고 가게 구석에 합판 하나 깔아놓고 자던 내 잠자리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난 가게 바닥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불쌍한 자식들. 엄마 아버지한테도 버림 받고 집도 절도 없이 시장 구석에서 떨며 자는 그 애들이 불쌍해서 하나라도 더 가게 안에 들여서 재울 수 있으면 재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하루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저는 15살 먹은 만득이 녀석이 피투성이가 되어 밤늦게 가게에 찾아 왔습니다. 동네 애들에게 두들겨 맞고 온 게 틀림없었는데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그 녀석 물 데워 깨끗이 씻겨주고 국밥 한 그릇 말아주었습니다.
밥을 먹이고 구석 합판 위 잠자리에 그 녀석을 재우고 그 아래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려는데 굳이 아래 내려와 내 옆에서 자겠다고 보채는 녀석이 하도 불쌍해서 나도 침상 위로 올라가 그 녀석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피곤한 내 몸뚱이는 언제나 등을 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만득이 녀석이 내 품 속을 파고들며 젖가슴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불쌍한 녀석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리웠으면.......
만득이 녀석은 조물락 조물락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을 내 바지 고쟁이 속으로 넣어 사타구니를 쓰다듬더니 이내 팬티 고무줄을 당기고 그 속으로 한 손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곤 내 보지 검불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기를 쓰고 손가락을 내 가랑이사이로 밀어 넣으려 했습니다.
그 녀석 손을 잡아채서 도대체 어린 놈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칠 수도 있지만, 몸도 성치 않은 15살 먹은 어린 녀석이 떠돌이로 세상 돌아 댕기며 살았어도 그래도 그것 만은 배웠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이 오히려 들었습니다.
어려서 말랑말랑한 엄마젖이나 빨 던 기억은 있을까? 덕지덕지 얼굴에 때칠을 하고 다니는 녀석을 누가 한번 안아주기나 했을까? 배고픈 줄만 알았지 그 맘 속에 여자 한번 안아보고 싶어하는 맘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는데.......
“만득아, 만지고 싶니?”
“네에”
고개도 못 들고 개미 소리만 하게 대답하는 그 녀석에게 나는 속 고쟁이를 벗고 팬티마저 벗어 던지고 만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가랑이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만지고 싶으면 실컷 만져보렴.”
남편 잡아먹고 아들까지 잡아먹은 이 년의 몸둥아리는 이미 그 겨울날 얼어붙은 대합실에서 버려진 몸둥아리였는데 뭐 누구라도 그저 이 몸둥아리 한번 만져보겠다면 못 내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깨끗지도 못 한 이 년의 보지를 한참이나 주물럭대던 만득이 녀석이 자꾸 몸을 움직여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엎드리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만득이 녀석이 내 속이나 알고 저러는 걸까? 이 년 몸둥아리는 시장 바닥 쓰레기보다 못한 몸둥아린데 그래도 저렇게 이 년 추잡한 살구멍 속에 고추 한번 넣어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 한번 못 줄 것도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만득아, 하고 싶어?”
“네에”
신랑 죽고 근 8년을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 년 몸둥이에 보지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못 쓰게 망가진 이 사지육신 중에 뭐라도 다른 사람에게 줄게 있다면 다 줘버리기로 했습니다.
가랑이를 쩍 벌리고 사타구니 가운데로 만득이를 무릎 꿇게 하고나서 그 녀석 고추를 붙잡아 내 살 속에 파묻어 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 년 보지는 썩어버리지 않고 어린 놈 단단한 고추가 들어오니 그것도 보지라고 물이 흘러나오더군요.
그래, 가랑이 찢어진 살집 속에 니 어린 고추 박아 넣고 마음 속 먼지 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면 니 맘껏 박아 넣으렴. 내 몸은 이미 버려진 몸인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네게 쓸모가 있으면 실컷 박아보려므나.
소아마비로 저는 한 다리 땜에 기우뚱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자지를 내 보지에 박아넣으려는 녀석이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내 두 다리로 그 녀석 허리를 휘감아 잡고 녀석이 보지 구멍에 잘 쑤셔 넣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 잡아 먹은 이 년 자궁 속에 죽은 아들을 다시 넣어 품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득이 녀석 자지 끝이 내 자궁 깊숙이까지 들어와 잘 박히도록 엉덩이를 끌어 잡아당겨 주었습니다.
다 마치고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으로 누운 만득이 녀석 자지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밑물을 했습니다. 이 못쓸 년의 보지는 그래도 그날까지 매달 달걸이는 어김없이 찾아온지라 혹시나 싶어 밑물을 해서 씻어냈지요.
그리곤 침상에 올라와 만득이 녀석에게 사과 하나 깍아 먹이며 그 녀석 얼굴을 쳐다 보니, 볼이 벌겋게 되어서 달아 있는 녀석 얼굴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좋아?”
“네에”
그렇게 좋아하는 만득이 녀석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나게 좋았습니다.
“만득아, 너랑 나랑은 이제 아주 깊은 사이가 된 거니까. 앞으론 나를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부르렴.”
“정말요?”
그렇게 만득이 녀석을 아들처럼 대해주며 먹이고 재우고 때론 용돈도 주고 설득해서 얼마 안 있어 만득이 녀석은 재활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자동차 수리기술을 배우며 요즘도 가끔 나에게 휴가를 내어 찾아오곤 합니다.
“엄마 보지에 박고 싶었지?”
“네에”
날 찾아오면 어김없이 녀석은 내 보지를 탐했고 나는 허물없이 만득이에게 내 보지를 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득이 녀석에게 내 보지를 처음 내어주었던 것이 2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이후로 나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생겼습니다.
상처 받은 아이들 그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지 못 하는데, 국밥 한 그릇으로 배고픈 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사랑에 굶주린 그 가슴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내 몸이라도 다 주고 그 맘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어쩌다가 아이 하나 데리고 자는 날이 있으면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는데, 차차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일 주일에 서너 번이던 것이,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내 보지를 내어 주어야 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동네 2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매일 하나씩 불러서 먹이고 씻기고 밤이면 내 보지를 내어주는 일이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고 보니 본격적으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아예 불임 수술을 하고 왔습니다.
생리를 하는 몇 일 동안 아이들에게 보지를 내어주는 걸 쉬어야 하는 것도 아쉬워서 피임약을 먹으며 생리도 아예 몇 달에 한번만 하도록 조절해가며 난 열심히도 동네 거지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습니다.
시장 국밥집 30촉 노란 전기다마 불빛 아래 치마를 들춰 올리고 허연 가랑이를 벌리고선 동네 아이들에게 보지를 실컷 박아대도록 다 주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박아주던 걸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아침이건 대낮이건 아이들이 오기만 하면 얼른 문 걸어 잠그고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내 보지를 벌려 주었습니다.
“엄마 나 왔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찾아와서 나를 부르곤 했는데, 난 한 녀석 한 녀석 모두 내 아들 같아서 얼른 불러들여 품에 안아주고 국밥 한 그릇 먹이곤 얼른 치마를 들춰 주었습니다. 그리고 맘껏 하고 싶은 대로 내 보지를 입으로 빨아대든 손으로 벌리고 쑤시든 자지를 박아대든 내 버려두었습니다.
다만 일이 끝나면 난 그 아이들에게 꼭 한 가지 다짐을 받곤 했지요.
“우리 아들, 이제 걸벵이 짓 안 하는 거야. 알았지? 담에 오면 나랑 약속하자. 재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난 아이들이 내게로 다시 찾아오길 기다려서 설득하고 설득해서 2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재활원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에 자칭 왕초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9살 먹은 그 아이의 이름은 두식이였는데 그냥 애나 어른이나 그 아이를 ‘두시기 두시기’ 그렇게 불렀습니다.
두식이는 나한테 와서 국밥 한 그릇을 얻어 먹어도 돈을 내고 먹는 손님 보다 더 큰 소리를 치며 밥을 얻어 먹었고 내가 집어 주는 용돈 몇 푼을 당연히 받아가는 자릿세인 것처럼 받아다가 오락실에서 다 써버리곤 했습니다.
때때론 아침 장사도 하기도 전에 찾아와서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르기도 일쑤였지요. 난 그래도 그 아이의 심성은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가 그 아일 그렇게 만든 것이지 그 아이는 처음부터 그런 나쁜 심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식이는 피해자이지 가해자는 절대 아니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그럴수록 그 아이에게 더욱 잘 해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마음에 작은 불꽃 하나라도 피워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천원 줄 걸 그 아이에게 2천원 주고 밥 먹을 때 반찬 하나라도 더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를 설득해서 가게에 재우고 내 몸도 주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두식이는 거지 아이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는 시장 뒤 창고 건물에서만 잠을 자고 절대로 우리 가게에서 자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일 동안 두식이가 시장에 안 나타나길래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두식이가 아파서 창고에 그냥 쳐 박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다말고 국밥하고 반찬을 쟁반에 담아 싸가지고 그 창고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고 한쪽 구석 먼지에 찌든 이불 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열이 나서 펄펄 끓고 있었고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목소리는 쉬어서 말도 제대로 하질 못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두식이에게 국밥을 말아서 몇 숟가락 먹이고 나서 시장 약국에서 약을 지어와 먹여주고는 가게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마치고 깨끗한 수건 몇 개를 물에 적셔서 들고 얼른 다시 두식이에게 찾아갔습니다.
찬 수건으로 두식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열이 나는 몸을 식혀 주려고 윗옷을 벗기고 온몸을 찬 수건으로 문질러 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눈가에 젖어드는 눈물.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두식이의 눈물을 보고 나는 두식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불쌍한 녀석.
“두식아, 힘들지?”
내 말에 두식이는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꼬옥 두식이를 안아 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식이의 그 마음에 내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가게로 돌아오지 않고 두식이 옆에 누워 두식이를 끌어안고 그 찬 바람 이는 창고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다 깨어진 창문으로 휘휘 들어오는 찬바람을 내가 다 막아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쪼무라기 걸벵이 아이들은 이미 초저녁에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찢어진 담요를 끌어다 덮고 자고 있었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두식이를 품 안에 끌어안고 자다가 손으로 두식이의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열은 다행이도 다 내린 것 같았고 낮에 심하게 하던 기침도 많이 가라 앉은 듯 숨을 고르게 쉬며 내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옆에 자고 있는 두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젖가슴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이는 자고 있는 듯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두식아, 자니? 자아, 만져 봐바.”
난 두식이가 안 자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젖가슴 위에 집어 넣은 두식이의 손을 내 손으로 붙잡고 두식이가 맘껏 이 년의 그나마 쓸모 있을 것 같은 젖가슴을 주무르도록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자는 척하던 두식이는 주물주물 내 젖가슴을 주물렀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두식이의 다른 한쪽 손을 끌어다가 내 팬티 속 사타구니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너 안 자는구나? 여기도 만져볼래?”
두식이는 한 손으로 내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내 보지를 주무르다가 손가락 하나를 보지 구멍으로 쑤우욱 집어 넣었습니다.
“너 여자 보지구멍 처음 만져보니?”
두식이는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우리 두식이, 아줌마 보지에 자지 넣어볼래?”
두식이는 고개를 두 번이나 빠르게 끄덕끄덕 거렸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 봐바”
나는 두식이를 똑바로 누이고 두식이의 바지를 벗겨 내렸습니다. 그리고 팬티를 벗기고 나니 빳빳하게 치솟은 두식이의 자지가 천장을 향해 꼿꼿이 치솟아 올라와 있는 것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에 실루엣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두식이의 자지 구석구석을 다 닦아내어주고 그 녀석의 꽤나 볼품 있게 큰 자지를 손으로 거머쥐었습니다. 서 너 번 손으로 꼭 잡고 위 아래로 흔들어 준 다음에 창고 안의 다른 조무래기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지 살펴 보면서 두식이의 자지를 입에 물었습니다.
그 전에도 다른 아이들의 자지를 입으로 수도 없이 빨아준 적이 있었지만 두식이의 자지는 그 크기가 어른 자지이상으로 크고 우람해서 입 속에 들어온 두식이의 자지는 내 입을 꽉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나는 8년 전 이미 저승으로 간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온 것처럼 정성껏 두식이 녀석의 자지를 빨아주었습니다. 동그란 귀두 대가리를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쭉쭉 입 속으로 빨아주다가 자지 밑둥아래까지 완전히 좆대를 내 목구멍 속으로 넘겨서 빨아주었습니다.
자지를 입 속에서 쭈우욱 훑어내어 꺼내어 보니 회색빛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거리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치마를 들춰 올리고 두식이 위로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고 오줌을 누듯이 쪼구려 앉아 내 가운데 갈라진 보지살 속으로 두식이의 자지를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짚고 두식이가 내 젖가슴을 잘 주무를 수 있도록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위 아래로 흔들어댔습니다.
나는 달빛 아래 방아를 찧는 새색시처럼 엉덩이로 철썩쿵 철썩쿵 방아를 찍어내려 두식이 자지를 보지에 박아주었고 크고 우람한 두식이의 자지는 내 찢어진 보지 속을 들락거리며 찌걱찌걱 소리를 냈습니다.
두식이의 자지 끝이 내 뱃속 저 깊숙이까지 쳐 박히도록 보지를 박아대었습니다. 그러면서 두식이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증오와 미움이 조금이라도 녹아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박은 뒤에 두식이가 사정을 하고 난 것 같아서 나는 보지에서 자지를 뽑아낸 다음 수건으로 두식이 자지를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두식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젖가슴을 다 드러내어 두식이에게 만지도록 해주고 치마 속으로도 한손을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아, 앞으론 나한테 엄마라고 그래.”
두식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으로 들어가렴.”
그날 밤 두식이는 아무런 대답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두식이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나한테 찾아와 밥을 얻어 먹어도 예전처럼 행패는 부리지 않았습니다. 돈을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식이는 매일 밤이면 밤마다 나에게 찾아와 내 보지를 탐했습니다. 한번 길을 내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을 했는지 매일 밤 우리 가게는 두식이의 독차지로 다른 아이들은 가게에 얼씬도 못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매번 밤마다 일을 마치고 내가 두식이에게 재활원이야기를 꺼내면 버럭 소리를 지를 뿐이었고 다만 두식이는 나의 몸을 탐하는 일에만 점점 더 열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나를 자기 마누라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못난 국밥집 엄마를 그렇게 원하고 있었고 사랑 한번 받으려고 늘 가게 앞을 기웃기웃 거렸지만 두식이가 거의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다른 아이들을 내?아 버렸습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아예 양동이에 국밥을 말아 시장 어귀 공터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그때 그때 마다 상황이 되면 한 녀석씩 불러서 공중화장실에 가서 내가 아이들 자지도 빨아주고 내 보지에 박을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두식이 녀석의 성적인 행동은 거의 변태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포르노 사진집을 가지고 와서 그 포르노 사진에 나온 대로 그대로 온갖 변태적인 자세로 섹스를 하자고 요구를 했고 성행위를 하면서 오줌을 갈기는 짓이나 때론 나를 묶어 놓고 때리는 짓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난 두식이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이 몸둥아리는 쓰레기 보다 못 한 몸둥아린데 무엇인들 못 해주겠나 싶어서 두식이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었지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언젠가 두식이가 내 맘을 알아주고 변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그렇게 온갖 변태적인 짓을 다 당하고도 두식이에게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에 들어가 보라는 설득을 항상 했습니다.
그런 두식이의 행패가 한 달 두 달 세 달 계속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두식이가 가게 앞에서 안 보이고 어딘가 간 것 같기에 멀찌감치에서 서성대던 아이를 하나 불러 얼른 국밥 한 그릇 먹이고 보내려 했습니다.
12살 먹은 성현이라는 아인데 그 동네 거지 아이들 중에는 제일 어린 아이였지만, 곱고 귀한 집 아이처럼 생긴 녀석이 나를 늘 “엄마, 엄마”하며 너무나 잘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밥 한 그릇 먹이고 천 원짜리 한 장 손에 쥐어주고 보내려는데 그날따라 이 아이가 “엄마, 나 딱 한번만 얼른 엄마하고 하면 안 돼?”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몇 달 동안 두식이가 나를 붙잡고 안 놔주는 통에 아이들이 모두들 나한테 한번 안기고 싶어서 목이 말아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때 언제 두식이나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차마 성현이한테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럼 얼른 들어와. 빨랑 하고 가야 된다. 알았지?”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가게 안으로 성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얼른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발을 내린 다음에 침상에 올라가 후다닥 팬티를 벗은 뒤에 치마를 들춰 올렸습니다.
“성현아, 얼릉 와. 빨리해야 돼. 두식이 형이 언제 올지 모르거든.”
성현이는 잽싸게 바지하고 팬티를 벗고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자지를 들어대는데, 이 녀석도 긴장을 했는지 고추가 서지를 않고 말랑말랑거리기만 했습니다.
“성현아, 어떻하니. 고추가 잘 안 서? 그럼 일루와바 엄마가 빨아줄게.”
급한 마음에 얼른 하고 성현이를 보낼 생각에 침상에서 내려와 침상 옆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성현이의 자지를 빨아주고 있었는데, 우리 가게 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면 문발을 쳤더라도 그 틈으로 보이는 가게 안은 침상 위에 있는 사람은 안 보이지만 침상 옆으로 내려오면 가게 문발을 친 틈으로 그 모습이 보이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 두식이가 돌아와서 내가 누군가 침상 위에 있는 아이의 자지를 빨아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지요.
“야, 문 열어!”
두식이는 가게 문밖에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성현이의 바지를 입혀주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두식이가 미친개처럼 씩씩거리고 서 있었고 내 뒤엔 성현이가 겁먹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니네들 모 한거야?”
그날 두식이는 뜯어 말리는 내 앞에서 성현이를 개 패듯 패서 질질 끌고 창고로 갔고 나는 뜯어 말리다가 두식이가 밀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국솥을 엎지르며 오른 팔 전체에 화상을 입어서 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두식이의 행패는 몹시도 난폭해져서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부엌의 식칼을 내 목에 들이대며 “다신 다른 놈들한테 니 보지 까발리면 죽여버린다”고 엄포를 놓았고,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가게 문을 닫고 내 옷을 벗겨 놓고 때리거나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한 차례씩 두식이가 행패를 부려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이 끝나면 두식이에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식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릴 때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마구마구 부시고 소리치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부숴진 물건은 다시 사면 되고 더러워진 집기들은 씻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두식이가 나를 때리면 어차피 죽은 목숨같은 이 년의 팔자 그냥 맞으면 그만이고 내 보지에 온갖 변태스러운 짓을 다할지라도 그냥 참아내면 지나가는 일이었습니다.
가게 수리비만 한 달 수입의 삼분의 일이 들어갔습니다. 내 몸에는 멍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지요. 밤이면 두식이는 내 보지 속에 살아 있는 낙지를 통째로 집어넣기도 하고 깔때기로 보지를 벌리고 산 미꾸라지를 보지 속에 넣기도 하고 어느 날인가는 아주 굵은 살아 있는 장어 한 마리를 가져와 뻘뻘 뛰는 그 산 장어를 내 보지 속에 머리부터 반 이상 집어넣고 그걸 즐기기도 했습니다. 나를 노끈으로 묶어 놓고 허리띠로 때리는 건 예사였고 촛불을 켜서 촛농을 내 알몸 위에 떨어뜨리며 희열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슨 짓인 들 못 받아주겠습니까?
하지만 술에 취해 창고에 굶주려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찾아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은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두식이가 술에 취해 창고에 아이들을 소집시키고 마치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시키듯이 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때리면서 술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러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창고로 달려가 두식이를 뜯어 말리는 것이 내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두식이는 술에 취해 창고로 가서 아이들을 소집시켰습니다. 나는 후다닥 창고로 달려갔지요.
그간 망가진 가게 고치느라 돈 들어가서 아이들 국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 했는데 아이들은 술 취한 두식이 앞에 잡혀온 강아지들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두식아, 또 왜 그러니. 좀 참아라.”
나는 아이들을 감싸 안으며 창고에서 얼른 애들을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식이가 냅다 소주병을 벽에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데도 못 가! 너희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
나도 아이들도 두식이의 눈빛이 이미 보통 눈빛이 아니란 걸 감지하고 그만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지요.
“야, 이 아줌마가 니들 엄마냐?”
혀 꼬부라진 말투로 두식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새끼들이, 세상에 지 엄마하고 좆까는 새끼들이 어디 있어? 씨발 놈들아!”
그러면서 두식이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여잔 내 마누라야. 알아?”
술에 취해 이미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 해 비틀거리며 두식이는 또 말했습니다.
“내 마누라가 니네들 엄마면, 니네들은 내 자식들이네? 푸하하하...... 그럼 야 새끼들아 나 한테 아버지라고 한번 불러봐라 새끼들아.......”
그러면서 아이들한테 다가가 한 명 한 명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자기한테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침을 튀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다가 성현이 앞에 가서 성현이의 턱을 붙잡아 올리고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막내 성현이는 눈을 부릅뜨고 “안 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두식이는 거의 눈이 뒤집혀서 성현이를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얼른 달려가 두식이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어어! 이거 누구야. 내 마누라네. 왜 자식이 맞는 거 보니 마음이 아픈가 보지?”
그러더니 두식이는 나를 뒤에서 잡아채어 바닥에 내동댕이를 쳤습니다. 그리곤 천천히 바지 허리띠를 풀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이, 마누라 우리 아이들 앞에서 한번 재미나게 놀아볼까?”
난 두식이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란 걸 깨닫고 일어나 도망치려 했으나 술 취한 두식이 녀석의 기운이 장사여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두식이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내 몸 위에 올라와 내 옷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옷을 벗겼습니다. 나는 소리 소리 지르면서 “두식아 이러지마. 이러면 안 돼”라고 두식이에게 말했지만 두식인 이미 내 팬티까지 벗겨내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술에 취한 두식이 녀석의 기운이 얼마나 센지 양쪽으로 한 팔씩 잡혀 있는 나는 밑에서 버둥대기만 할 뿐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두식이는 아랫도리를 이미 다 벗어던지고 자지를 덜렁거리며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사타구니로 내 사타구니를 눌러대며 자기 자지를 내 보지 위에 이리저리 문질러대면서 좆끝을 내 보지 구멍 속으로 집어넣으려 안간 힘을 썼습니다.
나는 버둥대면서 고개를 돌려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았습니다. 호기심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울고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막내 성현이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두식이 형 나쁜 새끼!”라고 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죄 많은 이 년
남편 잡아 먹고 아들도 잡아 먹은 이 년
이 더러운 몸둥아리
이미 8년 전에 버스 대합실 얼음장같던 바닥에 다 버리고 왔는데
이렇게 여기에서 더 짓밟히고 있구나.
이 년 보지구녕에 강제로 자지 한번 더 쑤셔박는다고 어찌되겠는가마는
불쌍한 저 새끼들 이 년이 이렇게 강제로 폭행당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
이걸 어찌할꼬.
이걸 어찌할꼬.
난 그저 한번 그렇게 당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이 엄마처럼 생각하는 내가 그 아이들 반짝거리는 눈앞에서 그토록 짓밟히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가슴 아팠습니다.
두식이의 자지가 내 보지구멍을 찾아들어가 쉴 새 없이 내 보지를 쑤셔대고 있었습니다. 넋이 나간 년처럼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체념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옷가지 몇 벌 달랑 챙겨 소금 세례 받으며 쫓겨나던 날에도 이렇게 안 울었는데...... 기구한 이 년의 팔자, 내 몸이야 여기서 더 망가질 게 뭐 있으랴마는 내 자식 같은 저 놈들 마음에 못 하나 더 박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져 내렸습니다.
울고 울고 또 울고 강처럼 울었습니다.
헐떡거리던 두식이가 내 몸에서 떨어져 벌러덩 뒤로 눕고 나서야 나는 부스스 일어나 찢어진 옷으로 알몸을 가리고 구석에 있는 아이들에게 걸어가서 아주 활짝 웃어 보여주었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이빨을 드러내며 아주 활짝 웃으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괜찮아. 너희들 울지 마. 이거 봐바. 엄마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날 이후 두식이는 그 동네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두식이를 본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 무얼 하는지 소식도 못 들었습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가게에 불러 국밥을 먹이고 용돈도 주고 밤이면 한 녀석씩 데리고 자면서 이 년 보지 속에 아이들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 시장 걸벵이 아이들은 이제 다 재활원으로 들어갔고 새로 타 지방에서 굴러들어온 경찬이 민식이 귀엽고 이쁜 성태 만이 밤마다 나에 찾아오곤 합니다.
아이들이 몇 명 없으니 남는 게 시간이라 나는 다른 일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을 찾아가 쌀도 가져다 드리고 김치도 담궈 드리고 밥도 지어주고 가끔 가다 용돈도 조금씩 드리고 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에겐 한 달에 한 두 번씩 찾아가 목욕도 시켜 드리고 어르신들을 정성껏 이 년 보지로 외로움을 달래드리곤 합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이 쓸모없는 몸둥이 뿐인데 이 몸둥이로 어르신네들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드릴 수 있으면 뭐든지 다 해드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기운이 있으신 할아버지에겐 이 년 보지에 맘껏 박으시라고 가랑이 쩍 벌리고 밑에 누워서 해드리고, 기운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그저 누워 계시기만 하라고 하고 이 년이 위에 올라가 할아버지 자지 위에 올라타고 박아드리지요.
자지에 힘이 없으신 어르신들은 “아버지, 이렇게 하면 여기에 힘이 잘 들어가여. 내가 올 때마다 빨아 드릴게요.” 그러면서 찾아 가 뵐 때마다 열심히도 어르신들 자지를 빨아드리고 옵니다.
그도 아니고 누워서만 지내시는 노인네들에겐 몸이 냉하시다니 할아버지 이불 속에 알몸으로 들어가서 얼마 동안이고 이 년 보잘 것 없는 몸둥이로 할아버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고 오지요.
어르신 중엔 내덕에 회춘하셨다며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중절모를 쓰시고는 생전 안 하시던 외출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는 노인회관에 가셔서 국밥집 딸내미 자랑을 실컷 늘어 놓으신 후에 우리 국밥집에 오셔서 국밥 한 그릇 맛있게 드시고 밥값대신 고맙다며 이 년 엉덩이를 툭툭툭 쳐주시고 가시는 그 뒷모습이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사의 모습이지요.
어제는 재활원에서 있는 만득이가 휴가를 받아 다녀갔습니다. 키도 훤칠하게 커졌고 18살이 된 만득이는 이제 총각이 다 된 것 같았습니다. 얼굴에 흐르던 때국물은 어디로 다 갔는지 없어지고 여드름이 대신 자리를 잡았더군요.
“엄마, 힘들지 않아요?”
이젠 오히려 나를 대신 걱정해주는 녀석이 어찌 그리 대견스러운지....... 대답대신 그냥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올 가을 재활원에서 졸업하면 자동차 수리 정비소에 취직해서 이 하잘 것 없는 년을 엄마라고 용돈도 주겠다네요.
기특한 내 아들.
전 어제 밤이 새도록 우리 아들 자지 위에서 보지를 박아주었지요.
전 이런 년입니다.
왕자지 밤바다 저
세월은 동지섣달 저수지 얼음장 쩡쩡 갈라지듯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갈라지며 무섭게 10년을 달려왔습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어려운 집안 입 하나 줄이자고 신랑 얼굴도 안보고 시집 와서 농사 일 시작하고 이듬 해 경운기 몰다가 논두렁에 쳐 박혀 죽은 남편 덕에 신랑 잡아먹은 년 되어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다가 남편 죽은 지 6개월 후에 그나마 손 귀한 집에 아들 하나 낳아주고 좀 사람대접 받는 가 싶었더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 한 돌을 나흘 남기고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고열로 세상 떠나가 버린 뒤로 남편 잡아먹고 그도 모자라 아들까지 잡아먹은 아귀 같은 년이 되어 저주 받은 10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초롱초롱 오이꽃 위에 빛나는 이슬 같던 우리 아들의 눈빛은 나의 안식이었고 방실방실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내 눈 속에 들어와 있었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 보내고나니 날 아들 잡아먹은 귀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고 나에게 돌을 던지든 똥바가지를 뒤집어 씌우든 난 그저 죄진 년이었습니다.
난 죄 많은 년입니다.
아들 죽고 1년을 돼지처럼 살았습니다. 개처럼 먹었고 소처럼 일했습니다. 그리고 폐병으로 피를 토하는 내게 시어머닌 옷가지 몇 벌 보자기에 싸서 미친개 ?아내듯이 ?아내고 칼바람 맞는 내 등 뒤로 소금을 뿌려대었습니다.
시골 버스 터미널 대합실 설날을 몇 일 안 남긴 겨울 밤 콘크리트 바닥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내 몸을 서서히 얼려가고 있었습니다. 난 거기서 그렇게 한 많은 인생을 마치고 먼저 간 우리 신랑, 귀여운 우리 아들 만나러 저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 목숨은 참으로 질기더군요.
죽지 않으니 또 살게 되는 게 이 보잘 것 없는 년 명줄이어서 누군가 빵 한 조각 던져주니 기를 쓰고 먹고 살려고 애를 쓰게 되더군요. 죽고 싶었는데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그리운 남편 자식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서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이승에서 붙잡아 메는 이 거미줄 같은 생명줄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내 질기디 질긴 생명줄 파리 목숨보다 못 한 거지만 지난 10년 기를 쓰고 살았습니다. 남편 잡아먹은 년. 아들 잡아먹은 년. 버러지보다 못 한 이 년의 목숨이지만 기를 쓰고 살아서 세상에 먼지 만큼이라도 좋은 일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더군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년이고 제일 죄 많은 년인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시장에서 쓰레기 줍고 새벽 부둣가에서 생선 다듬고 막노동해서 작은 국밥집을 하나 열었습니다. 돈 벌어서 무엇에 쓰랴....... 내 산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면 그만이지...... 지나 가던 거지들은 다 불러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씩 먹여 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네들 아침 저녁으로 밥 한 사발씩 가져다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 덕에 시장 구석의 국밥집에 밤이면 온 동네 거지들이 다 몰려 왔고 가게 구석에 합판 하나 깔아놓고 자던 내 잠자리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난 가게 바닥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불쌍한 자식들. 엄마 아버지한테도 버림 받고 집도 절도 없이 시장 구석에서 떨며 자는 그 애들이 불쌍해서 하나라도 더 가게 안에 들여서 재울 수 있으면 재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하루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저는 15살 먹은 만득이 녀석이 피투성이가 되어 밤늦게 가게에 찾아 왔습니다. 동네 애들에게 두들겨 맞고 온 게 틀림없었는데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그 녀석 물 데워 깨끗이 씻겨주고 국밥 한 그릇 말아주었습니다.
밥을 먹이고 구석 합판 위 잠자리에 그 녀석을 재우고 그 아래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려는데 굳이 아래 내려와 내 옆에서 자겠다고 보채는 녀석이 하도 불쌍해서 나도 침상 위로 올라가 그 녀석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피곤한 내 몸뚱이는 언제나 등을 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만득이 녀석이 내 품 속을 파고들며 젖가슴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불쌍한 녀석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리웠으면.......
만득이 녀석은 조물락 조물락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을 내 바지 고쟁이 속으로 넣어 사타구니를 쓰다듬더니 이내 팬티 고무줄을 당기고 그 속으로 한 손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곤 내 보지 검불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기를 쓰고 손가락을 내 가랑이사이로 밀어 넣으려 했습니다.
그 녀석 손을 잡아채서 도대체 어린 놈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칠 수도 있지만, 몸도 성치 않은 15살 먹은 어린 녀석이 떠돌이로 세상 돌아 댕기며 살았어도 그래도 그것 만은 배웠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이 오히려 들었습니다.
어려서 말랑말랑한 엄마젖이나 빨 던 기억은 있을까? 덕지덕지 얼굴에 때칠을 하고 다니는 녀석을 누가 한번 안아주기나 했을까? 배고픈 줄만 알았지 그 맘 속에 여자 한번 안아보고 싶어하는 맘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는데.......
“만득아, 만지고 싶니?”
“네에”
고개도 못 들고 개미 소리만 하게 대답하는 그 녀석에게 나는 속 고쟁이를 벗고 팬티마저 벗어 던지고 만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가랑이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만지고 싶으면 실컷 만져보렴.”
남편 잡아먹고 아들까지 잡아먹은 이 년의 몸둥아리는 이미 그 겨울날 얼어붙은 대합실에서 버려진 몸둥아리였는데 뭐 누구라도 그저 이 몸둥아리 한번 만져보겠다면 못 내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깨끗지도 못 한 이 년의 보지를 한참이나 주물럭대던 만득이 녀석이 자꾸 몸을 움직여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엎드리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만득이 녀석이 내 속이나 알고 저러는 걸까? 이 년 몸둥아리는 시장 바닥 쓰레기보다 못한 몸둥아린데 그래도 저렇게 이 년 추잡한 살구멍 속에 고추 한번 넣어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 한번 못 줄 것도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만득아, 하고 싶어?”
“네에”
신랑 죽고 근 8년을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 년 몸둥이에 보지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못 쓰게 망가진 이 사지육신 중에 뭐라도 다른 사람에게 줄게 있다면 다 줘버리기로 했습니다.
가랑이를 쩍 벌리고 사타구니 가운데로 만득이를 무릎 꿇게 하고나서 그 녀석 고추를 붙잡아 내 살 속에 파묻어 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 년 보지는 썩어버리지 않고 어린 놈 단단한 고추가 들어오니 그것도 보지라고 물이 흘러나오더군요.
그래, 가랑이 찢어진 살집 속에 니 어린 고추 박아 넣고 마음 속 먼지 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면 니 맘껏 박아 넣으렴. 내 몸은 이미 버려진 몸인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네게 쓸모가 있으면 실컷 박아보려므나.
소아마비로 저는 한 다리 땜에 기우뚱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자지를 내 보지에 박아넣으려는 녀석이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내 두 다리로 그 녀석 허리를 휘감아 잡고 녀석이 보지 구멍에 잘 쑤셔 넣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 잡아 먹은 이 년 자궁 속에 죽은 아들을 다시 넣어 품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득이 녀석 자지 끝이 내 자궁 깊숙이까지 들어와 잘 박히도록 엉덩이를 끌어 잡아당겨 주었습니다.
다 마치고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으로 누운 만득이 녀석 자지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밑물을 했습니다. 이 못쓸 년의 보지는 그래도 그날까지 매달 달걸이는 어김없이 찾아온지라 혹시나 싶어 밑물을 해서 씻어냈지요.
그리곤 침상에 올라와 만득이 녀석에게 사과 하나 깍아 먹이며 그 녀석 얼굴을 쳐다 보니, 볼이 벌겋게 되어서 달아 있는 녀석 얼굴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좋아?”
“네에”
그렇게 좋아하는 만득이 녀석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나게 좋았습니다.
“만득아, 너랑 나랑은 이제 아주 깊은 사이가 된 거니까. 앞으론 나를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부르렴.”
“정말요?”
그렇게 만득이 녀석을 아들처럼 대해주며 먹이고 재우고 때론 용돈도 주고 설득해서 얼마 안 있어 만득이 녀석은 재활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자동차 수리기술을 배우며 요즘도 가끔 나에게 휴가를 내어 찾아오곤 합니다.
“엄마 보지에 박고 싶었지?”
“네에”
날 찾아오면 어김없이 녀석은 내 보지를 탐했고 나는 허물없이 만득이에게 내 보지를 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득이 녀석에게 내 보지를 처음 내어주었던 것이 2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이후로 나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생겼습니다.
상처 받은 아이들 그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지 못 하는데, 국밥 한 그릇으로 배고픈 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사랑에 굶주린 그 가슴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내 몸이라도 다 주고 그 맘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어쩌다가 아이 하나 데리고 자는 날이 있으면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는데, 차차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일 주일에 서너 번이던 것이,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내 보지를 내어 주어야 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동네 2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매일 하나씩 불러서 먹이고 씻기고 밤이면 내 보지를 내어주는 일이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고 보니 본격적으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아예 불임 수술을 하고 왔습니다.
생리를 하는 몇 일 동안 아이들에게 보지를 내어주는 걸 쉬어야 하는 것도 아쉬워서 피임약을 먹으며 생리도 아예 몇 달에 한번만 하도록 조절해가며 난 열심히도 동네 거지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습니다.
시장 국밥집 30촉 노란 전기다마 불빛 아래 치마를 들춰 올리고 허연 가랑이를 벌리고선 동네 아이들에게 보지를 실컷 박아대도록 다 주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박아주던 걸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아침이건 대낮이건 아이들이 오기만 하면 얼른 문 걸어 잠그고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내 보지를 벌려 주었습니다.
“엄마 나 왔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찾아와서 나를 부르곤 했는데, 난 한 녀석 한 녀석 모두 내 아들 같아서 얼른 불러들여 품에 안아주고 국밥 한 그릇 먹이곤 얼른 치마를 들춰 주었습니다. 그리고 맘껏 하고 싶은 대로 내 보지를 입으로 빨아대든 손으로 벌리고 쑤시든 자지를 박아대든 내 버려두었습니다.
다만 일이 끝나면 난 그 아이들에게 꼭 한 가지 다짐을 받곤 했지요.
“우리 아들, 이제 걸벵이 짓 안 하는 거야. 알았지? 담에 오면 나랑 약속하자. 재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난 아이들이 내게로 다시 찾아오길 기다려서 설득하고 설득해서 2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재활원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에 자칭 왕초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9살 먹은 그 아이의 이름은 두식이였는데 그냥 애나 어른이나 그 아이를 ‘두시기 두시기’ 그렇게 불렀습니다.
두식이는 나한테 와서 국밥 한 그릇을 얻어 먹어도 돈을 내고 먹는 손님 보다 더 큰 소리를 치며 밥을 얻어 먹었고 내가 집어 주는 용돈 몇 푼을 당연히 받아가는 자릿세인 것처럼 받아다가 오락실에서 다 써버리곤 했습니다.
때때론 아침 장사도 하기도 전에 찾아와서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르기도 일쑤였지요. 난 그래도 그 아이의 심성은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가 그 아일 그렇게 만든 것이지 그 아이는 처음부터 그런 나쁜 심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식이는 피해자이지 가해자는 절대 아니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그럴수록 그 아이에게 더욱 잘 해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마음에 작은 불꽃 하나라도 피워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천원 줄 걸 그 아이에게 2천원 주고 밥 먹을 때 반찬 하나라도 더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를 설득해서 가게에 재우고 내 몸도 주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두식이는 거지 아이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는 시장 뒤 창고 건물에서만 잠을 자고 절대로 우리 가게에서 자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일 동안 두식이가 시장에 안 나타나길래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두식이가 아파서 창고에 그냥 쳐 박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다말고 국밥하고 반찬을 쟁반에 담아 싸가지고 그 창고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고 한쪽 구석 먼지에 찌든 이불 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열이 나서 펄펄 끓고 있었고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목소리는 쉬어서 말도 제대로 하질 못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두식이에게 국밥을 말아서 몇 숟가락 먹이고 나서 시장 약국에서 약을 지어와 먹여주고는 가게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마치고 깨끗한 수건 몇 개를 물에 적셔서 들고 얼른 다시 두식이에게 찾아갔습니다.
찬 수건으로 두식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열이 나는 몸을 식혀 주려고 윗옷을 벗기고 온몸을 찬 수건으로 문질러 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눈가에 젖어드는 눈물.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두식이의 눈물을 보고 나는 두식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불쌍한 녀석.
“두식아, 힘들지?”
내 말에 두식이는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꼬옥 두식이를 안아 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식이의 그 마음에 내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가게로 돌아오지 않고 두식이 옆에 누워 두식이를 끌어안고 그 찬 바람 이는 창고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다 깨어진 창문으로 휘휘 들어오는 찬바람을 내가 다 막아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쪼무라기 걸벵이 아이들은 이미 초저녁에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찢어진 담요를 끌어다 덮고 자고 있었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두식이를 품 안에 끌어안고 자다가 손으로 두식이의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열은 다행이도 다 내린 것 같았고 낮에 심하게 하던 기침도 많이 가라 앉은 듯 숨을 고르게 쉬며 내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옆에 자고 있는 두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젖가슴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이는 자고 있는 듯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두식아, 자니? 자아, 만져 봐바.”
난 두식이가 안 자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젖가슴 위에 집어 넣은 두식이의 손을 내 손으로 붙잡고 두식이가 맘껏 이 년의 그나마 쓸모 있을 것 같은 젖가슴을 주무르도록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자는 척하던 두식이는 주물주물 내 젖가슴을 주물렀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두식이의 다른 한쪽 손을 끌어다가 내 팬티 속 사타구니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너 안 자는구나? 여기도 만져볼래?”
두식이는 한 손으로 내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내 보지를 주무르다가 손가락 하나를 보지 구멍으로 쑤우욱 집어 넣었습니다.
“너 여자 보지구멍 처음 만져보니?”
두식이는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우리 두식이, 아줌마 보지에 자지 넣어볼래?”
두식이는 고개를 두 번이나 빠르게 끄덕끄덕 거렸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 봐바”
나는 두식이를 똑바로 누이고 두식이의 바지를 벗겨 내렸습니다. 그리고 팬티를 벗기고 나니 빳빳하게 치솟은 두식이의 자지가 천장을 향해 꼿꼿이 치솟아 올라와 있는 것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에 실루엣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두식이의 자지 구석구석을 다 닦아내어주고 그 녀석의 꽤나 볼품 있게 큰 자지를 손으로 거머쥐었습니다. 서 너 번 손으로 꼭 잡고 위 아래로 흔들어 준 다음에 창고 안의 다른 조무래기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지 살펴 보면서 두식이의 자지를 입에 물었습니다.
그 전에도 다른 아이들의 자지를 입으로 수도 없이 빨아준 적이 있었지만 두식이의 자지는 그 크기가 어른 자지이상으로 크고 우람해서 입 속에 들어온 두식이의 자지는 내 입을 꽉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나는 8년 전 이미 저승으로 간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온 것처럼 정성껏 두식이 녀석의 자지를 빨아주었습니다. 동그란 귀두 대가리를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쭉쭉 입 속으로 빨아주다가 자지 밑둥아래까지 완전히 좆대를 내 목구멍 속으로 넘겨서 빨아주었습니다.
자지를 입 속에서 쭈우욱 훑어내어 꺼내어 보니 회색빛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거리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치마를 들춰 올리고 두식이 위로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고 오줌을 누듯이 쪼구려 앉아 내 가운데 갈라진 보지살 속으로 두식이의 자지를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짚고 두식이가 내 젖가슴을 잘 주무를 수 있도록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위 아래로 흔들어댔습니다.
나는 달빛 아래 방아를 찧는 새색시처럼 엉덩이로 철썩쿵 철썩쿵 방아를 찍어내려 두식이 자지를 보지에 박아주었고 크고 우람한 두식이의 자지는 내 찢어진 보지 속을 들락거리며 찌걱찌걱 소리를 냈습니다.
두식이의 자지 끝이 내 뱃속 저 깊숙이까지 쳐 박히도록 보지를 박아대었습니다. 그러면서 두식이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증오와 미움이 조금이라도 녹아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박은 뒤에 두식이가 사정을 하고 난 것 같아서 나는 보지에서 자지를 뽑아낸 다음 수건으로 두식이 자지를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두식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젖가슴을 다 드러내어 두식이에게 만지도록 해주고 치마 속으로도 한손을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아, 앞으론 나한테 엄마라고 그래.”
두식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으로 들어가렴.”
그날 밤 두식이는 아무런 대답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두식이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나한테 찾아와 밥을 얻어 먹어도 예전처럼 행패는 부리지 않았습니다. 돈을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식이는 매일 밤이면 밤마다 나에게 찾아와 내 보지를 탐했습니다. 한번 길을 내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을 했는지 매일 밤 우리 가게는 두식이의 독차지로 다른 아이들은 가게에 얼씬도 못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매번 밤마다 일을 마치고 내가 두식이에게 재활원이야기를 꺼내면 버럭 소리를 지를 뿐이었고 다만 두식이는 나의 몸을 탐하는 일에만 점점 더 열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나를 자기 마누라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못난 국밥집 엄마를 그렇게 원하고 있었고 사랑 한번 받으려고 늘 가게 앞을 기웃기웃 거렸지만 두식이가 거의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다른 아이들을 내?아 버렸습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아예 양동이에 국밥을 말아 시장 어귀 공터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그때 그때 마다 상황이 되면 한 녀석씩 불러서 공중화장실에 가서 내가 아이들 자지도 빨아주고 내 보지에 박을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두식이 녀석의 성적인 행동은 거의 변태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포르노 사진집을 가지고 와서 그 포르노 사진에 나온 대로 그대로 온갖 변태적인 자세로 섹스를 하자고 요구를 했고 성행위를 하면서 오줌을 갈기는 짓이나 때론 나를 묶어 놓고 때리는 짓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난 두식이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이 몸둥아리는 쓰레기 보다 못 한 몸둥아린데 무엇인들 못 해주겠나 싶어서 두식이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었지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언젠가 두식이가 내 맘을 알아주고 변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그렇게 온갖 변태적인 짓을 다 당하고도 두식이에게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에 들어가 보라는 설득을 항상 했습니다.
그런 두식이의 행패가 한 달 두 달 세 달 계속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두식이가 가게 앞에서 안 보이고 어딘가 간 것 같기에 멀찌감치에서 서성대던 아이를 하나 불러 얼른 국밥 한 그릇 먹이고 보내려 했습니다.
12살 먹은 성현이라는 아인데 그 동네 거지 아이들 중에는 제일 어린 아이였지만, 곱고 귀한 집 아이처럼 생긴 녀석이 나를 늘 “엄마, 엄마”하며 너무나 잘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밥 한 그릇 먹이고 천 원짜리 한 장 손에 쥐어주고 보내려는데 그날따라 이 아이가 “엄마, 나 딱 한번만 얼른 엄마하고 하면 안 돼?”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몇 달 동안 두식이가 나를 붙잡고 안 놔주는 통에 아이들이 모두들 나한테 한번 안기고 싶어서 목이 말아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때 언제 두식이나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차마 성현이한테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럼 얼른 들어와. 빨랑 하고 가야 된다. 알았지?”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가게 안으로 성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얼른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발을 내린 다음에 침상에 올라가 후다닥 팬티를 벗은 뒤에 치마를 들춰 올렸습니다.
“성현아, 얼릉 와. 빨리해야 돼. 두식이 형이 언제 올지 모르거든.”
성현이는 잽싸게 바지하고 팬티를 벗고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자지를 들어대는데, 이 녀석도 긴장을 했는지 고추가 서지를 않고 말랑말랑거리기만 했습니다.
“성현아, 어떻하니. 고추가 잘 안 서? 그럼 일루와바 엄마가 빨아줄게.”
급한 마음에 얼른 하고 성현이를 보낼 생각에 침상에서 내려와 침상 옆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성현이의 자지를 빨아주고 있었는데, 우리 가게 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면 문발을 쳤더라도 그 틈으로 보이는 가게 안은 침상 위에 있는 사람은 안 보이지만 침상 옆으로 내려오면 가게 문발을 친 틈으로 그 모습이 보이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 두식이가 돌아와서 내가 누군가 침상 위에 있는 아이의 자지를 빨아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지요.
“야, 문 열어!”
두식이는 가게 문밖에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성현이의 바지를 입혀주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두식이가 미친개처럼 씩씩거리고 서 있었고 내 뒤엔 성현이가 겁먹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니네들 모 한거야?”
그날 두식이는 뜯어 말리는 내 앞에서 성현이를 개 패듯 패서 질질 끌고 창고로 갔고 나는 뜯어 말리다가 두식이가 밀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국솥을 엎지르며 오른 팔 전체에 화상을 입어서 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두식이의 행패는 몹시도 난폭해져서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부엌의 식칼을 내 목에 들이대며 “다신 다른 놈들한테 니 보지 까발리면 죽여버린다”고 엄포를 놓았고,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가게 문을 닫고 내 옷을 벗겨 놓고 때리거나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한 차례씩 두식이가 행패를 부려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이 끝나면 두식이에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식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릴 때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마구마구 부시고 소리치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부숴진 물건은 다시 사면 되고 더러워진 집기들은 씻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두식이가 나를 때리면 어차피 죽은 목숨같은 이 년의 팔자 그냥 맞으면 그만이고 내 보지에 온갖 변태스러운 짓을 다할지라도 그냥 참아내면 지나가는 일이었습니다.
가게 수리비만 한 달 수입의 삼분의 일이 들어갔습니다. 내 몸에는 멍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지요. 밤이면 두식이는 내 보지 속에 살아 있는 낙지를 통째로 집어넣기도 하고 깔때기로 보지를 벌리고 산 미꾸라지를 보지 속에 넣기도 하고 어느 날인가는 아주 굵은 살아 있는 장어 한 마리를 가져와 뻘뻘 뛰는 그 산 장어를 내 보지 속에 머리부터 반 이상 집어넣고 그걸 즐기기도 했습니다. 나를 노끈으로 묶어 놓고 허리띠로 때리는 건 예사였고 촛불을 켜서 촛농을 내 알몸 위에 떨어뜨리며 희열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슨 짓인 들 못 받아주겠습니까?
하지만 술에 취해 창고에 굶주려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찾아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은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두식이가 술에 취해 창고에 아이들을 소집시키고 마치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시키듯이 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때리면서 술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러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창고로 달려가 두식이를 뜯어 말리는 것이 내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두식이는 술에 취해 창고로 가서 아이들을 소집시켰습니다. 나는 후다닥 창고로 달려갔지요.
그간 망가진 가게 고치느라 돈 들어가서 아이들 국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 했는데 아이들은 술 취한 두식이 앞에 잡혀온 강아지들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두식아, 또 왜 그러니. 좀 참아라.”
나는 아이들을 감싸 안으며 창고에서 얼른 애들을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식이가 냅다 소주병을 벽에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데도 못 가! 너희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
나도 아이들도 두식이의 눈빛이 이미 보통 눈빛이 아니란 걸 감지하고 그만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지요.
“야, 이 아줌마가 니들 엄마냐?”
혀 꼬부라진 말투로 두식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새끼들이, 세상에 지 엄마하고 좆까는 새끼들이 어디 있어? 씨발 놈들아!”
그러면서 두식이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여잔 내 마누라야. 알아?”
술에 취해 이미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 해 비틀거리며 두식이는 또 말했습니다.
“내 마누라가 니네들 엄마면, 니네들은 내 자식들이네? 푸하하하...... 그럼 야 새끼들아 나 한테 아버지라고 한번 불러봐라 새끼들아.......”
그러면서 아이들한테 다가가 한 명 한 명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자기한테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침을 튀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다가 성현이 앞에 가서 성현이의 턱을 붙잡아 올리고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막내 성현이는 눈을 부릅뜨고 “안 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두식이는 거의 눈이 뒤집혀서 성현이를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얼른 달려가 두식이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어어! 이거 누구야. 내 마누라네. 왜 자식이 맞는 거 보니 마음이 아픈가 보지?”
그러더니 두식이는 나를 뒤에서 잡아채어 바닥에 내동댕이를 쳤습니다. 그리곤 천천히 바지 허리띠를 풀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이, 마누라 우리 아이들 앞에서 한번 재미나게 놀아볼까?”
난 두식이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란 걸 깨닫고 일어나 도망치려 했으나 술 취한 두식이 녀석의 기운이 장사여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두식이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내 몸 위에 올라와 내 옷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옷을 벗겼습니다. 나는 소리 소리 지르면서 “두식아 이러지마. 이러면 안 돼”라고 두식이에게 말했지만 두식인 이미 내 팬티까지 벗겨내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술에 취한 두식이 녀석의 기운이 얼마나 센지 양쪽으로 한 팔씩 잡혀 있는 나는 밑에서 버둥대기만 할 뿐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두식이는 아랫도리를 이미 다 벗어던지고 자지를 덜렁거리며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사타구니로 내 사타구니를 눌러대며 자기 자지를 내 보지 위에 이리저리 문질러대면서 좆끝을 내 보지 구멍 속으로 집어넣으려 안간 힘을 썼습니다.
나는 버둥대면서 고개를 돌려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았습니다. 호기심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울고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막내 성현이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두식이 형 나쁜 새끼!”라고 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죄 많은 이 년
남편 잡아 먹고 아들도 잡아 먹은 이 년
이 더러운 몸둥아리
이미 8년 전에 버스 대합실 얼음장같던 바닥에 다 버리고 왔는데
이렇게 여기에서 더 짓밟히고 있구나.
이 년 보지구녕에 강제로 자지 한번 더 쑤셔박는다고 어찌되겠는가마는
불쌍한 저 새끼들 이 년이 이렇게 강제로 폭행당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
이걸 어찌할꼬.
이걸 어찌할꼬.
난 그저 한번 그렇게 당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이 엄마처럼 생각하는 내가 그 아이들 반짝거리는 눈앞에서 그토록 짓밟히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가슴 아팠습니다.
두식이의 자지가 내 보지구멍을 찾아들어가 쉴 새 없이 내 보지를 쑤셔대고 있었습니다. 넋이 나간 년처럼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체념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옷가지 몇 벌 달랑 챙겨 소금 세례 받으며 쫓겨나던 날에도 이렇게 안 울었는데...... 기구한 이 년의 팔자, 내 몸이야 여기서 더 망가질 게 뭐 있으랴마는 내 자식 같은 저 놈들 마음에 못 하나 더 박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져 내렸습니다.
울고 울고 또 울고 강처럼 울었습니다.
헐떡거리던 두식이가 내 몸에서 떨어져 벌러덩 뒤로 눕고 나서야 나는 부스스 일어나 찢어진 옷으로 알몸을 가리고 구석에 있는 아이들에게 걸어가서 아주 활짝 웃어 보여주었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이빨을 드러내며 아주 활짝 웃으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괜찮아. 너희들 울지 마. 이거 봐바. 엄마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날 이후 두식이는 그 동네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두식이를 본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 무얼 하는지 소식도 못 들었습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가게에 불러 국밥을 먹이고 용돈도 주고 밤이면 한 녀석씩 데리고 자면서 이 년 보지 속에 아이들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 시장 걸벵이 아이들은 이제 다 재활원으로 들어갔고 새로 타 지방에서 굴러들어온 경찬이 민식이 귀엽고 이쁜 성태 만이 밤마다 나에 찾아오곤 합니다.
아이들이 몇 명 없으니 남는 게 시간이라 나는 다른 일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을 찾아가 쌀도 가져다 드리고 김치도 담궈 드리고 밥도 지어주고 가끔 가다 용돈도 조금씩 드리고 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에겐 한 달에 한 두 번씩 찾아가 목욕도 시켜 드리고 어르신들을 정성껏 이 년 보지로 외로움을 달래드리곤 합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이 쓸모없는 몸둥이 뿐인데 이 몸둥이로 어르신네들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드릴 수 있으면 뭐든지 다 해드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기운이 있으신 할아버지에겐 이 년 보지에 맘껏 박으시라고 가랑이 쩍 벌리고 밑에 누워서 해드리고, 기운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그저 누워 계시기만 하라고 하고 이 년이 위에 올라가 할아버지 자지 위에 올라타고 박아드리지요.
자지에 힘이 없으신 어르신들은 “아버지, 이렇게 하면 여기에 힘이 잘 들어가여. 내가 올 때마다 빨아 드릴게요.” 그러면서 찾아 가 뵐 때마다 열심히도 어르신들 자지를 빨아드리고 옵니다.
그도 아니고 누워서만 지내시는 노인네들에겐 몸이 냉하시다니 할아버지 이불 속에 알몸으로 들어가서 얼마 동안이고 이 년 보잘 것 없는 몸둥이로 할아버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고 오지요.
어르신 중엔 내덕에 회춘하셨다며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중절모를 쓰시고는 생전 안 하시던 외출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는 노인회관에 가셔서 국밥집 딸내미 자랑을 실컷 늘어 놓으신 후에 우리 국밥집에 오셔서 국밥 한 그릇 맛있게 드시고 밥값대신 고맙다며 이 년 엉덩이를 툭툭툭 쳐주시고 가시는 그 뒷모습이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사의 모습이지요.
어제는 재활원에서 있는 만득이가 휴가를 받아 다녀갔습니다. 키도 훤칠하게 커졌고 18살이 된 만득이는 이제 총각이 다 된 것 같았습니다. 얼굴에 흐르던 때국물은 어디로 다 갔는지 없어지고 여드름이 대신 자리를 잡았더군요.
“엄마, 힘들지 않아요?”
이젠 오히려 나를 대신 걱정해주는 녀석이 어찌 그리 대견스러운지....... 대답대신 그냥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올 가을 재활원에서 졸업하면 자동차 수리 정비소에 취직해서 이 하잘 것 없는 년을 엄마라고 용돈도 주겠다네요.
기특한 내 아들.
전 어제 밤이 새도록 우리 아들 자지 위에서 보지를 박아주었지요.
전 이런 년입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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