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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30 708회 0건
[7부]

다음날 아침. 유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1층 아빠방으로 향했다.
아빠가 깨지 않게 조심 조심 문을 열고 들어간 유리는 곤히 잠들어있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만큼 죽은듯이 잠들어있는 아빠의 모습. 유리는 천천히 손을 가져가 아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런데 그때 유리의 눈에 아빠의 손에 조그만 액자 하나가 잡혀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그 액자를 아빠 손에서 빼내어 그 안의 사진을 봤다.

"......"

사진의 주인공을 확인한 유리의 얼굴은 곧바로 굳어졌다. 그 사진 안에는 어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 생긋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리의 얼굴이 굳어진건 단지 액자에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이 넣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유일하게 아빠에게 여자로서 사랑을 받아본 여인이라는데 있었다. 유리는 사진속 주인공을 바라보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놓아줘. 19년이나 혼자서 독차지했으면 된거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아빠를 놓아주지 않을거야? ...이젠 내 차례란 말이야."

유리는 원망어린 눈길로 사진속 여인을 노려보았다.

"...엄마. 아직은 아빠 맘속에 엄마만이 들어있을지 몰라. 하지만 두고봐... 반드시 아빠를 내껄로 만들고 말테니까."

유리는 사진속의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곤 액자를 침대옆 탁자에 올려두었다. 유리는 그러곤 침대로 올라가 아빠옆에 앉아 아빠를 바라봤다. 울다가 잤는지 자다가 울었는지 태현의 눈가엔 눈물 자욱이 어려있었고 그걸본 유리의 눈빛에 질투의 감정이 잔뜩 실려버렸다.

"바보같아. 8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잊지 못하는거야...? 바로옆에 이렇게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는 여자가 있는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유리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가 태현의 입술에 맞췄다. 약간 벌어져 있는 그의 입술 사이로는 따스한 숨결이 세어나오고 있었고 유리는 살며시 혀를 내밀어 그의 벌어진 입술사이로 밀어넣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공기가 혀를 감싸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유리는 조금더 혀를 밀어넣었고 곧, 가만히 잠들어 있는 아빠의 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만 아빠의 혀를 자신의 혀끝으로 느껴보았다가 금방 혀를 아빠의 입속에서 빼어냈다. 혀라는게 신체중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빠가 깰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유리는 흘러내리려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살며시 아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볏다. 양입술로 아빠의 입술을 꼬옥 물어보기도 하고 아빠의 두툼한 입술사이로 자신의 입술을 밀어넣어 보기도 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감촉과 두근거리는 심장 고동소리에 유리는 짜릿한 흥분이 밀려오는걸 느꼇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키스로는 유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그냥 이렇게 아빠의 입술을 느끼기만 하는것도 너무나 즐거운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런거 보다는 차라리 아빠에게 이름을 한번 불리는게 유리로서는 더욱 행복한 느낌이었다. 왜냐면 그 목소리 속에서는 이런 육체적 느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랑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리는 손으로 문질러서 얼굴을 잠시 마사지 해서 긴장됐던 얼굴 근육을 풀고는 얼굴에서 어두웠던 표정을 실끝만큼도 남겨놓지 않으며 활짝 웃음 지었다. 그에게는 항상 이렇게 이쁜모습, 환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리는 화사한 미소를 얼굴에 담뿍 담은 모습 그대로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얼른 일어나세요~~! 나 학교 가야된단 말이야~~."
"으...응..."

유리가 흔들었지만 태현은 여전히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오히려 유리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더욱 잠에 골아떨어졌다.

"아이참~. 벌써 아침이란 말이야~~. 딸이 시험치는날 정도는 아빠가 아침 차려줘~!"
"으...응...5분만 더..."

하지만 여전히 태현은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유리는 그러자 입가에 한줄기 미소를 달며 아빠를 마구 간질기 시작했다.

"이래도~? 이래도 안일어날꺼야~? 에잇~! 에잇~!"
"으...으하하...아아. 하지마~하지마~간지러~~하하."

마구 간질어오는 유리 때문에 결국 태현은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일어날께~일어나~~."

태현은 몸을 일으켯고, 유리는 그런 태현을 깜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손가락 두개를 펴들어 브이를 그려보였다.

"내가 이겼지롱~~."

태현은 그런 유리의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잤어~?"
"응~~. 잘잤어. 아빠두 잘잤어?"
"응~~. 참, 그런데 몇시야?"
"응...이제 여섯시."
"...여섯시?"

태현은 약간의 황당함을 담은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조금 이른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태현의 말에 유리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피이...! 딸이 시험치는날 정도는 아빠가 아침을 차려줘."

유리의 말에 태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빠가 맛있게 아침 차려줄게. 사실 얼마전에 현석 아저씨한테 하나 배워둔게 있거든. 기대해~~."
"응~~. 나 무~지 기대할께~~."

유리는 활짝 웃으며 태현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자~~. 그럼 이제 아침뽀뽀. 아니, 모닝키스시간~~."

유리는 그러며 천천히 입술을 태현에게 가져갔고 태현은 자신이 방금 자다 일어났다는 사실이 떠올라 움찔 놀라며 자신의 입을 가리며 말했다.

"저, 유리야. 지금 아빠 입에서 냄새나니까. 나중에 학교갈때 하자. 알았지?"

아빠의 말에 유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 입에서 냄새나도 나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자~자~. 얼른 손치워 주세요~~."

애교어린 유리의 목소리에 태현은 어쩔 수 없이 손을 치워주었다. 유리는 입술을 가져가 부드럽게 아빠의 입술에 키스를했다. 태현은 유리가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어루만지는 불편한 느낌에 인상이 찌푸려지려 했지만 그래도 딸앞에서 대놓고 그럴순 없었다. 태현은 눈을 감으며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유리역시 눈을 꼬옥 내려감으며 아빠의 목을 감싸안았다. 역시 단지 자신만 몰래하는 키스보다 지금 이렇게 아빠와 같이하는 키스가 더욱 달콤하고 황홀한 느낌이었다.
유리는 한동안 그렇게 아빠에게 키스를하곤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태현은 몽롱해져있는 유리의 눈빛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지어주었다.

"좋았니?"
"...응..."

부드러운 아빠의 목소리에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는 유리는 지금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아빠 사랑해..."
"응--. 아빠도 우리 유리 사랑해--."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는 천천히 자신의 목을 감고있는 유리의 팔을 풀려했다.

"...싫어!!"

그러자 갑자기 유리가 고함을 지르며 태현을 힘껏 끌어안았고, 태현은 깜짝 놀라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한편 대책없이 아빠를 끌어안은 유리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빠와의 키스에 도취되어버려 그만 자제력을 잠깐 잃었던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가 자신을 떼어내려 하자 순간적으로 아빠에게 거부받는 느낌이 들어버려 그렇게 고함을 지른 것이다. 유리는 주책없는 자신을 속으로 탓하며 한편으론 이상황을 모면할 길을 급히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너무나 당황스런 상황이라서 이렇다할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안. 아빠가 좀 매너 없었지? 키스하고 나면 이렇게 한번 꼬옥 안아줘야 되는데."

그런데 그때 태현이 유리의 등을 쓸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는 아빠의 그런 목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은 이걸로 변명을 삼으면 될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한번, 유리는 유리는 아빠의 따뜻한 마음씨에 가슴이 녹아내리는것만 같았다.

"아빠가 이렇는데 내가 어떻게 아빠에게 빠져버리지 않을수가 있겠어."

유리는 속으로 그렇게 속삭이곤 짐짓 삐진 목소리로 말했다.

"치이~. 진짜 매너없었어. 그냥 키스만 해주고 매정하게 버려버리는 아빠가 어딧어?"
"하하~~. 미안~미안. 대신 오늘 아침엔 아빠가 정말로 맛있게 아침 차려줄게~."

태현의 말에 유리는 포옹을 풀곤 배시시 웃었다.

"정말이지~~? 나 무지 기대할거야~?"
"응~~."

유리는 아빠의 대답을 들으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럼 난 내방으로 가서 오늘 치는 과목 마저 정리할게."
"그래~. 화이팅이야~~."
"응~~. 아빠두 화이팅~~."

유리는 깜찍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곤 방을 나갔다. 유리의 모습이 사라지고, 태현은 그대로 풀썩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침부터 정신없었군."

태현은 천천히 손으로 입술을 더듬었다. 거기엔 아직까지도 한없이 부드럽던 딸의 입술의 느낌이 머물러 있는듯 했다. 그리고 침대에는 녀석의 향기가 아직 맡아져오고... 태현은 유리와 했던 키스의 감촉을 떠올렸다. 딸과 키스를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론 너무나 불편했지만, 단지 입술이 부대끼는 그 촉감만으로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아."

그때 태현은 문득 자신이 입술을 더듬으며 딸과의 키스를 떠올리고 있었던걸 깨닫곤 자조어린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나는."

자신은 유리의 알몸을 보더라도, 설령 그녀의 가슴을 만지거나 오늘처럼 키스를 하더라도 이상한 마음이 들어서는 안되는, 그녀의 아빠다. 태현은 씁쓸한 얼굴로 침대밑에 숨겨놓았던 담배를 꺼내어 한개피 피워물었다. 너무나 오랜시간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다보니 이제는 자신의 딸에게서조차 이상한 느낌을 느끼게 되어버렸나보다.
태현은 사진이 밑으로 가도록 엎어져 있는, 아내의 사진이 든 액자를 집어들었다. 생긋이 웃고 있는 아내는 8년째 그모습 그대로이지만, 자신은 그 세월동안 너무나 초라해져 버렸다. 태현은 문득 수천명의 조직원들을 거느릴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태현은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두려울것이 없었던 그 시절의 자신과 비교해서 이렇게 초라함을 느끼고 있는것일까. 아니면 저 사진속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서 이렇게 초라함을 느끼고 있는것일까. 하지만 어떤것이 되었든지간에. 지금은 고작 오늘 레스토랑에서 쓰일 음식 재료를 사러갈 생각과 딸의 응석을 받아주며 고민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것은 똑같았다.





그날 밤. 어제는 유리가 집으로 돌아갔을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낮에 전화를 했기때문에 일찍 집으로 갔지만 원래 레스토랑에서 퇴근은 10시에 하기때문에(그때 현석도 같이 퇴근하며, 그 이후에 레스토랑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칵테일 바로 쓴다.) 태현은 미안한 마음으로 현석에게 오늘까지만 좀 일찍 가겠노라고 했다. 물론 현석은 괜찮다고 그랬지만 자신이 빠져서 두배로 힘들 현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미안하다 현석아."
"아니에요~. 뭘 이런거 가지고. 그런데, 오늘도 유리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습니까?"
"아니. 오늘은 어제 못받은 빚을 받을 일이 있어서."
"예? 빚이요?"
"응. 그런게 있어. 그럼, 수고해라-."
"예~. 여긴 걱정 마십쇼~."

태현은 레스토랑을 나서며 시계를 보았다. 9시.

"녀석이 와있을려나..."

태현은 어젯밤 유리에게 몹쓸짓을 했던 5인방중 아직 그 죄값을 치루지 못한 녀석에게 어제의 빚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어제 그 당시만 해도 그녀석들을 모두 ?어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화가 많이 풀려서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짓 못하게 녀석의 손가락만 분질러 놓을 생각이었다. 어제 녀석의 친구들이 갈비뼈까지 부러진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형량(?)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빠당 빠당~~. 부르르릉~~~. 빠당 빠당~~. 부릉 부릉~. 빠아아앙--.

태현이 갈림길에 도달했을때, 거기엔 폭주족들로 보이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들 십수명이 갈림길 입구에 진을치고 있었다. 태현은 젊은녀석들이 인생을 낭비하는 그런 모습들에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일단은 이곳으로 온 목적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나쳐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은, 양쪽 모두 높은 담이 주욱 이어져있는 모양새였다. 태현은 골목길 안의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읽었으나 태연한 발걸음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대략 어제 사건이 있었던 부근에 다달았을때쯤. 태현은 어제의 그 녀석이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복수심에서라도 친구들 몇명쯤은 끌고와 반항 할 줄 알았던 태현은 의외라는 얼굴로 남자에게 말했다.

"호오-. 정말로 혼자서 왔군?"

태현의 말에 남자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곤 피식 웃었다.

"그럴리가 있냐 병신아."

남자의 말에 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자는 주먹을 쥔채 태현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한번 펴들어 보여주고는 뒤를 보며 소리를 쳤다.

"야! 다나와! 입구에 있는 애들보고도 오라고 그래!"

남자의 외침에 골목 모퉁이뒤에 숨어있었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태현이 세어보니 모두 열세명이다. 그리고 이어서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골목길을 울리며 입구에 있었던 폭주족들이 몰려왔다. 모두 열일곱명. 태현은 피식 웃었다.

"병신새끼. 웃음이 나오냐?"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사실 저 남자는 서울내 최대 규모의 폭주족 클럽 짱의 친동생이었다. 태현은 마치 씹어뱉듯이 말하는 남자의 말에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지금 그의 표정은 도저히 건장한 사내들 서른한명에게 둘러싸인 남자의 표정 치고는 너무나 태연했다.

"야. 근데 저새끼 짭새나 뭐 그런거 아니지?"
"병신아. 아냐."

남자의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너무나 여유로운 태현의 태도에 의심이든듯 남자에게 물었고 남자는 귀찮은듯 대꾸했다. 하지만 그역시도 저런 태현의 태도에 일말의 불안이 드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우----."

태현은 깊게 한번 담배를 빨아들여 내뱉은뒤 담배를 천천히 길가에 놔두었다.

"이 담배불이 꺼지기 전에 너희 모두를 쓰러뜨려주지. 뭐하나? 덤벼라."

태현은 도발적인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고 그의 그런 말에 화가 치민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야아~! 죽여~!!"

남자의 신호에 맞춰 나머지 서른명의 남자들 역시 일시에 괴성을 지르며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태현은 가장 앞서 달려온 주동자 남자가 날리는 주먹을 가볍게 피하곤 날아온 팔을 잡아서 뒤로 꺽어버린뒤 냅다 그를 차버렸다. 남자는 팔이 꺽일때 뼈가 부러져 버렸는지 팔을 부여잡으며 나뒹굴었고, 일단은 태현의 시선속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태현은 달려가 벽을 한번 딛고 높이 뛰어올라 달려온 남자들중 한명을 냅다 차버렸고, 착지와 동시에 하단 돌려차기로 다른 남자의 정강이를 찍어버렸다. 그리고 연속된 태현의 동작으로 그의 주먹에 얻어맞은 다른 두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몰래 뒤로 달려든 한 남자가 이어서 태현의 뒤차기로 목이 꺽여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명이나 바닥에 나뒹굴게 되자 폭주족 사내들의 눈에 일순간 두려움이 스쳤다.

"씨...씨발...존나..."
"...괴물아냐 저새끼..."

태현은 주춤거리며 서로 먼저 달려들길 망설이는 사내들에게 피식 웃음지으며 말했다.

"야. 아직 25대1이야. 얼른 덤벼. 담배불 꺼질라."

태현의 도발에 사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다시 일시에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제,제기랄 아직 우리가 훨씬 많아!"
"그래 씨발! 죽여!!"

태현은 여유로운 표정 그대로 다시 달려든 남자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차고 때리고 꺽고 밟고...스물 다섯명의 남자들은 곧 금세 인간이 얻어맞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방법으로 태현에게 얻어맞았고, 불과 몇분이 지나지 않아 골목길에는 서른한명의 남자들이 나뒹굴게 되었다.
태현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들을 가로질러, 두려움에 덜덜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걸어갔다.

"이봐. 아직 난 너에게 어제의 빚을 받지 못했어."
"으...으...한번만...제발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느긋한 태현의 음성이 오히려 더 두렵게 들린것일까. 남자는 무릎을 꿇으며 애걸했다. 태현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남자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봐. 사내가 세상에 태어났을때 우는건 딱 세 번이다. 그게 언제인지 아냐?"
"모...모릅니다. 요,용서 해주세요..."

태현은 쭈그리고 앉아 남자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모르면 잘들어. 이제부터 말해줄테니까. 먼저. 처음은, 태어났을때."
"예,예에."
"따라해."
"예,예. 태,태어났을때.."
"좋아. 두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부..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세번째는, 모시던 두목이 돌아가셨을때."
"모시던 두목이...예?"

따악~!

남자는 태현에게 얻어맞은 정수리를 감싸며 급히 대답했다.

"모,모시던 두목이 돌아가셨을때!"
"좋아."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제의 빚은 네 친구들 서른명이 대신 갚은걸로 해주겠다. 뭐, 너도 일단은 팔이 부러졌으니 어느정도는 빚을 갚은거니까."
"가,감사합니다!"

남자는 살았다는 기쁨에 얼굴이 환해지며 연신 태현에게 굽신거렸다.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해."
"예?"
"어제 내가 조금만이라도 더 늦게 갔었다면 너희 다섯은 모두 그자리에서 내손에 죽었을거야."

조금만이라도 더 늦게 갔었다면...태현이 조금더 늦게 어제의 현장에 도착했다면 아마 남자와 네친구들은 유리의 옷을 벗기고 일을 치루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남자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태현은 남자의 사죄에 피식 웃으며 뒤돌아서 걸어가 길가에 놔두었던 담배를 집어들었다.

"이런, 벌써 불이 꺼져버렸군. 나도 역시 한물 간건가."

남자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태현의 뒷모습에 대고 급히 외쳐물었다.

"저어! 존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태현은 아무런 대꾸없이 담배 꽁초를 던져 버리고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기만 했다. 입에 담배를 다시 하나 피워 물면서. 남자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서서히 작아져 가는 태현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친구 한명이 기어와 남자에게 고통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크윽...저사람 어쩌면 "그"일지도 몰라."
"...그라니."
"...정태현. 8년전에 잠적한 암흑가의 보스."
"...너 설마 검은 목요일의 그 정태현을 말하는거야?"
"그래."
"하지만 그는 8년전에 혼자서 흑살파를 전멸시키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던데? 그때가 목요일이고 전멸된게 흑살파라서 검은 목요일의 정태현이라고 불리는거고..."
"...아마 아닐꺼야. 내가 아는형이...크윽...이거 존나 아프네...아무튼 내가 아는형이 그때 당시에 태현파 초빠리로 있었는데, 그때 피투성이가 되서 들어온 정태현을 직접 봤데. 그리고 불곰 심현석이 부축해서 어디론가 가는것도 봤고. 너도 알지? 불곰도 정태현이랑 같이 사라진거."
"...으음...알지. 그래도 설마 저사람이 정태현일까?"
"...병신아. 혼자서 서른한명을 해치웠는데 그럼 정태현 말고 그런 괴물이 누가 있겠어?"
"하긴...어쩌면 저사람이 정말 그일지도 모르겠군. 그건 그렇고 너 괜찮냐?"
"어...난 그렇게 심한편은 아니야. 팔만 빠졌거든...다른애들은 코뼈 나가고 광대뼈 내려앉고 난리가 아니다."

남자는 피식 웃었다.

"오늘 와줘서 고맙다."
"괜찮아 병신아. 우리가 아무리 병신이라도 친구사이 아니냐."
"낄낄...그래. 우리가 병신이라서 다행이야."

골목길에는 때아닌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물론, 금세 그 웃음소리는 바닥에 붙어있던 다른 남자들의 험악한 욕설들에 묻혀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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