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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날씨가 덥다 싶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시간은 오전 5시 30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어제 고민거리들 때문에 늦게 잤기 때문이다. 어제는 더워서 창문을 연 채 잤는데 새벽에 비가 내려서 기온이 내려갔는지 몸이 조금 으슬으슬 했다. 갑자기 날씨가 바뀐 탓에 피곤했다. 피곤한 몸을 일으키니 전신이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침에 고생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제의 일과, 갑작스런 날씨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일기예보에서는 일단 비가 안 내린다고 했지만, 역시 믿을게 못되는 모양이다. 특히 장마철의 일기예보는 더더욱 신용이 안 간다.
뻣뻣한 몸을 움직여 방을 나섰다. 거실과 부엌이 눈에 보인다. 식탁 옆의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냈다.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선반 위에서 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시원한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 정말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웬만하면 학교를 쉬고 싶다. 이럴 때면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드라마 같은 곳이면 좋겠다. 드라마 속에서는 감기만 걸려도 쉽게 학교를 빠지니까. 하긴, 현실에서도 빠질 수는 있다. 다만 그 다음 몰려오는 후폭풍이 무서울 뿐이다.
“으, 추워.”
6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춥다. 이제 곧 여름이라고 방심한 틈을 타 뒤통수를 때린 듯한 날씨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몸을 덥히고자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욕실에 샤워기를 틀고는 잠시 기다렸다. 따뜻한 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이다. 그 잠시 동안 칫솔을 집어 들어 치약을 짰다. 입안에 넣으려는 순간 다시 꺼내 세면대에 내려놨다. 아직 밥을 먹지 않은 것을 깜빡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조심스레 손을 대보니 따뜻한 물이다. 샤워기를 들고는 몸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를 묻혀 닦고, 대략 20분 정도 샤워를 한 것 같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욕실 밖으로 나오자 아까보다 더 공기가 으슬으슬했다. 이래서 난 샤워를 하고 나서 밖에 나올 때가 가장 싫다. 춥다. 아니, 샤워기 물을 잠그는 순간부터가 싫다. 그래서 가끔은 다 씻은 다음에도 한동안 물을 틀어놓고 몸에 뿌리는 경우도 있다. 수도세가 아까워서 그러는 일은 자주 없지만.
몸을 대충 말리고 나서는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불고기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주에 재워놓았던 것이 생각나서 김치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다. 누나는 불고기를 특히 좋아한다. 나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누나한테는 미치지 못한다. 아마 불고기 냄새를 맡으면 화가 나 있는 누나라도 아침을 먹으러 나올 것이다. 그럼 조금이라도 대화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누나에게 갔다.
“누나 밥 먹어.”
“나 오늘 밥 안 먹을 거야. 먼저 먹고 가.”
“오늘 불고기 했는데, 먹자.”
“……싫어.”
아침이라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화가 난 상태 그대로인 듯 차가운 말투였다. 다음 날 불고기를 준비하고 아침잠을 깨우며 자연스럽게 화 풀어주기 작전은 실패했다. 평소 같으면 화나는 일이 있어도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풀려 있었는데 오늘은 아침 자체를 거부하니 어쩔 수가 없다. 불고기인데.
“그럼 나 먼저 먹을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때 누나는 화가 조금 누그러진 상태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누나와 아침을 먹고,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나에게 억지라도 부리며 밥을 먹게 했어야했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진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관련된 일에는 상황판단력이 흐려진다. 이때의 나는 누나의 감정을 냉정히 읽지 못하고, 그때그때 보이는 누나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물론, 지금의 나도 그런 상황이 되면 어쩔 줄 모르겠지만.
결국 혼자서 식사를 끝내고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양치를 하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는 마지막으로 누나의 방에 들렀다.
“누나, 나 학교 갔다 올게.”
“…….”
대답은 없었다.
현재 시간은 7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만큼 출발시간도 늦었다. 원래 지금이면 학교에 도착해있을 시간인데. 물론 등교시간은 7시 40분까지이기에 이보다 늦게 가도 학교에는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다. 하지만 나는 보통 15분 정도 걸려 학교에 도착한다. 걸음이 느린 탓도 있지만, 등교하는 데 여유가 있다 보니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일, 심각하지 않은 일, 재미있는 일, 재미없는 일, 슬픈 일, 슬프지 않은 일, 시답잖은 일,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사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기보단, 생각을 하다 보니 걸음이 느려진다고 보는 게 맞다. 한 번은 고민이 너무 심해서 고민에 몰두하다보니 걸음을 거의 멈추다시피 하고 골몰한 적도 있다.
교문을 지나, 교정을 지나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확실히 오늘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것을 느꼈다. 3층에 도착해 어느 정도 걷자 교실에 도착했다. 과연 오늘 평소보다 늦게 왔더니 등교한 녀석들이 꽤 있다. 자거나, 공부하거나, 친구와 떠들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심결에 교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 찾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랐지만, 놀랄 타이밍을 놓쳐서 평소처럼 있었다. 사람들이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내가 리액션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리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지금도.
“별로, 아무도 안 찾았어.”
“그래? 히히.”
내 뒤에서 말을 건 사람은 지은이였다. 학교에서 나에게 말을 걸만한 사람은 성진이 녀석과 지은이 밖에 없다.
“안녕.”
“응.”
지은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 일단 가방 놓고 올게.”
“그래.”
내 자리에 가방을 놓고, 지은이 서있는 교실 문으로 왔다.
“갈까.”
“응.”
어디로 가자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은의 말에 그냥 대답했다. 지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계단을 내려가 교정을 걷고 있었다.
“어제, 집에 잘 들어갔어?”
“응.”
“갑자기 누나가 돌아와서, 미안.”
“아냐, 괜찮아. 오히려 조금 재미있었어. 한발 늦었으면 들켰겠다, 이런 생각하니까 두근두근거리던데.”
그렇게 말하며 지은이 웃었다. 사실 오늘 학교에서 지은을 보면 어제 누나한테 들켰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은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말하기가 어렵다. 어차피 누나에게 들킨 것은 지은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뿐이고, 그때 했었던 행위는 아마 누나는 상상도 못할 테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누나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더니,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졌다. 누군가가 내 생각을 읽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럽다.
“맞다, 운하야 우리 기말고사가 언제야?”
“흠, 오늘이 13일이니까, 3주 정도 남았으려나.”
“중간고사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서 기말고사네.”
“응.”
시간은 그렇다. 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이 되고 얼마 안 돼서 가을이 오고, 가을이 되고 얼마 안 돼서 겨울이 올 것이다. 해가 가고, 또 다음해가 오고. 10년이 지나고, 다시 또 10년이 지나고.
아직은 까마득하지만, 쏜살같은 속도로 시간이 지나 지금의 철없는 내가 아니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멍청한 생각을 몇 시간씩이나 하면서 하릴없이 일상을 보내지도 못할 것이다. 언젠가 어른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미래가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사실은 그런 날이 오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뭐, 그건 언젠가의 얘기다.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내게 가능한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기다리면 된다.
“기말고사 공부하기 싫다.”
“응.”
아마 전국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싫을 것이다.
“공부 많이 했어?”
“음, 아직 이제 시작해야지.”
사실 나는 시험기간에 몰아서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다. 평소에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또 다음에 배울 것을 예습하다보면 어느새 시험 치는 날이 되어있고, 평상시처럼 시험을 친다. 중학교 때까지는 놀다가 시험기간에 닥쳐서야 공부를 하는 보통의 학생이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목표를 잡고 나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언제쯤 공부 시작할 건데?”
“글쎄. 모르겠어.”
“다음주?”
“음, 사실, 나 원래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평소부터 계속 해놔.”
“아, 그래? 잘됐다.”
잘됐다니? 하고 묻기도 전에,
“그럼 나랑 같이 공부하자.”
“어디서? 그보다 나는 야자 안 하잖아.”
“괜찮아, 이제 나도 안 할 거니까.”
“그래도 돼? 선생님이 허락해주실까?”
“상관없어. 허락 안 해주셔도 난 안 해.”
“좋아. 그럼 어디서 할까?”
“우리 집이나 운하네 집.”
“우리 집은 누나가 있는데.”
“그럼 우리 집. 그리고 누나 있으면 어때. 그냥 가서 공부하는데.”
그건 그렇다. 누나가 있어도 딱히 문제되 건 없다.
“근데, 너네 집에 가면 부모님 계시지?”
“아니, 아빠는 체육관 하느라 늦게 들어오고, 엄마도 요즘 일이 바쁘셔.”
그렇다면, 지은이네 집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다가 자연스럽게 집으로 찾아가게 된 거지?
“아, 이제 40분 거의 다됐다. 교실로 들어가자.”
지은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학교 건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지은이와 함께 있다 보면, 휩쓸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싫은 느낌은 아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다시 계단을 올라 계단을 걸었다. 지은이는 몸이 날씬해선지 운동을 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무척 가볍다. 그 밝은 성격에 어울리는 경쾌한 걸음걸이다.
“지은아 같이 가.”
근육통 때문에 움직이는 게 괴롭다. 반층은 앞서가던 지은이가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오늘 몸 상태 안 좋아 보여.”
“조금 안 좋아.”
“왜?”
너 때문이야.
지은이와 계단을 함께 올라가니, 어느새 3층에 도착했다. 우리 반인 3학년 3반 앞에 섰다.
“아 맞다. 지은아. 이따가 점심시간에 할 말 있으니까. 잠시 시간 좀 내줘.”
“응? 응.”
지은의 대답을 듣고 교실로 들어갔다. 이제 곧 담임이 지각체크를 시작한다. 지각체크에 걸리면 그 사람은 그날 청소당번이다. 만약에 지각한 인원이 적으면 당일 지각한 사람과 전날 지각한 사람을 합쳐 청소를 시킨다. 무조건 지각하지 않는 게 좋다. 수업시간은 8시 10분부터인데, 왜 40분부터 지각체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 담임만 그런다. 그러나, 담임도 그다지 시간을 엄수하는 편은 아니라서, 50분이 다되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성진이 녀석이다. 이제 곧 담임 선생님이 오실 텐데 뭐하는 거야.
“운하야.”
“왜.”
“솔직히 말해봐.”
“뭘?”
“지은이랑 사귀냐?”
“아니.”
“진짜?”
“응.”
“진짜로?”
이 녀석 왜 이리 끈질기게 물어오는 거지. 평소에는 붙을 때와 떨어질 때를 잘 구분하는 녀석인데, 오늘 따라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아니, 같이 붙어다니는 게 커플처럼 보였거든.”
“그런가?”
“응.”
“지은이가 그렇게 웃는 것도 처음 봤고.”
“그런가.”
하긴, 그러고 보면 지은이는 자주 웃는 얼굴을 보이는 여자애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표정인 채로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으면 눈매가 치켜 올라가 있어 조금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 말투도 여자애치고는 무뚝뚝한 편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주도해서 떠드는 쪽이 아니라, 조용히 대답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첫인상도 그런 느낌이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새 그런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잊어버렸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 2일 밖에 안됐는데도, 벌써 그 첫인상이 기억 속에 잊혀졌다.
“그나저나 넌 날 엿보고 있던 거냐?”
“아니, 그냥 창밖을 보니까 보이더라고. 참 좋은 그림이었어. 하하.”
여자애들이 호들갑을 떨만한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성진이 녀석.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떠들고 다니지 마. 죽여 버릴 거야.”
“하하, 알았어.”
나의 위협을 가볍게 웃음으로 넘겨버리고 성진이 녀석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내 짝꿍이 아직 안 왔다. 하긴, 지각이 잦은 애니까. 알아서 올 것이다.
우리 반은 매달 제비뽑기를 통해 자리를 바꾼다. 운에 따라 원하는 자리, 원하지 않는 자리에 앉게 된다. 원하는 상대, 또는 원하지 않는 상대와 앉게 된다는 소리다. 사실 성진이 녀석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어쩌다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되어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짝꿍도 마찬가지로 제비뽑기를 통해 어쩌다 보니 같이 앉게 되었다. 이름은 박은미. 체구가 작고 귀엽게 생긴 여자애다. 이 애도 나처럼 조용한 편이라 짝꿍이 된 지 3주일 정도가 됐지만, 별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뭐, 원래 나는 대부분의 녀석들과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 편이니, 비율적으로 본다면 그나마 대화를 많이 한 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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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도 의식하지 못한 게 있는데,
소설속의 시간은 3일밖에 지나지 않았더군요...
요즘 젊은이들은 참 진도 빨라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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