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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을 넘은 것은 누나 쪽이었다 - 2부6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06 805회 0건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올리려고 했는데

도중에 시험이 있었네요

이제 꾸준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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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진 것 같아.”

오늘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는데, 옆에서 은미가 말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현재의 나는 분명히 며칠 전의 나보다 확실히 밝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티가 나는 걸까.

“그래?”
“응.”

조금은 멋쩍게 묻자, 은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지금 모습이 더 낫다는 뜻이야.”

은미가 혹시나 하며 덧붙였다. 나는 은미의 말에 조금 안심했다. 내 머릿속을 휘몰아치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나는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을 싫어한다. 고민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들키면 나는 그 사람에 한해서 한없이 조심스럽고 약해진다. 나는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싫다.

“고마워.”
“아니야.”

은미에게 감사를 표했다.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단순히 좋은 말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다. 은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가방에 필기도구와 책을 모두 정리하고 어깨에 멨다. 오늘 든 과목은 다른 날보다 책들이 두꺼워서 가방이 묵직하다. 평소의 몸상태라면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운 가방으로 끝날 테지만, 오늘은 조금 괴롭다. 어제 다쳤던 곳이 눌려서 괴롭기 때문이다. 어제 누나에게 밀려 넘어졌을 때, 그 당시에는 등이 아팠지만, 오늘 일어나보니 어깨가 아팠다. 아니, 차라리 오늘 아침까지는 괜찮았다. 며칠 있으면 사라질 가벼운 고통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어깨에 신경이 갔다. 한 번씩 어깨를 스트레칭 해주다가 어느 순간 고통이 심해졌다. 그렇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왜 그래? 아파?”
“아니, 그냥 조금 뻐근해서.”

어깨 통증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자, 은미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갈 준비 다 됐어?”
“응.”

지은이가 어느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물었다. 짐을 다 챙겼나보다.

“갈까?”
“응.”

내 물음에 지은이가 대답했다.

“안녕.”
“응.”

이제 보충과 야자를 해야 할 은미에게 인사를 하고는 지은이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교실을 나가기 전에 성진이 녀석이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하곤 같이 흔들어주었다. 지은이도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근데 좀 아까 은미랑 무슨 얘기했어?”
“응? 그냥 별 얘기 안 했는데.”
“그래?”
“응.”

내 머리도 별거 아닌 이야기라고 판단했나보다. 지은이의 물음을 듣고 은미와의 대화를 돌이켜보다가, 잠시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별거 아닌 무슨 얘기?”
“그냥. 내가 밝아진 것 같대.”
“그렇구나.”
“왜, 갑자기?”
“아니야.”

지은이가 대답을 회피한다. 혹시나 질투하는 걸까? 다른 여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에 조금 질투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은이가 귀엽게 느껴졌다.

“혹시 질투한 거야?”

대답은 없었다. 대신 지은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지은이는 얼굴이 쉽게 빨개진다. 나 같은 경우는 웬만하면 얼굴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얼굴 피부의 두께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걸까?

잠시 대화가 오가지 않은 채 걸었다. 학교 건물에서 나와 교정을 걸었다. 지은이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교문을 지날 즈음이었다.

“운하야, 혹시 그거 알아?”
“뭔데?”

지은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게 뭔지 모른다.

“너, 인기 많은 거.”
“어, 내가?”
“응.”

금시초문이다. 조금 어리둥절했다.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별로 없는 내가 인기라는 게 있을 수가 있나?

“내가?”
“정말이야. 우리 반에도 몇 명 너를 좋아하던 애가 있어.”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들었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인기가 있었다니. 한 번도 그런 낌새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은미도 너를 좋아할 걸.”
“그것도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들은 거야?”
“아니, 내 감.”

지은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은미에게 그런 낌새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에 지은이의 말이 사실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나는 여자 친구가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주말에 데이트, 어디로 갈까?”
“어제 고민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 가고 싶은 곳이 많아서 한 군데만 고르질 못하겠어.”

지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고민했다.

“그럼, 놀이공원은 어때?”
“놀이공원?”
“응. 어제 한번 찾아봤는데,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래, 그러자.”

지은이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사실 데이트 얘기가 나올 때부터 놀이공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은이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려고 했지만, 딱히 원하는 곳이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나도 일단 첫 데이트라서 기합을 많이 넣고 계획하기는 했지만, 놀이공원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이다. 지은이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놀이공원으로 결정.”
“응.”
“어제 계산을 해보니까, 돈은 교통비랑 입장권까지 해서 2만원이면 될 것 같아. 괜찮겠어?”
“2만원밖에 안 드는 거야?”
“입장료 할인권이 있거든. 아마 오히려 돈이 조금 남을 거야.”
“그래.”

또래의 남자놈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 환장하는 모습들을 보며, 바보 같다고 속으로 비웃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비웃을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연인과 함께 있으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계획하면서 함께 걷는다. 아마도 지은이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분을 알게 되기까지 지금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니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내가 도시락 싸올게.”

지은이가 냉큼 말했다. 지은이가 사먹자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싸오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내가 싸오려고 했는데.”
“도시락은 여자가 싸야 되는 거야.”
“음……. 내가 싸오면 안 될까?”
“안 돼.”
“귀찮을 텐데.”
“괜찮아. 안 귀찮을 거야.”

사실 귀찮고 안 귀찮고의 문제를 떠나서, 단순히 내가 도시락을 싸고 싶었다. 내가 직접 싼 도시락을 지은이가 먹고 맛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면, 각자 서로에게 도시락을 싸주면 어때?”
“그래.”

내 요구를 받아들이는 지은이의 표정은 별로 탐탁지 않아보였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다. 그 표정이 또 꽤 귀여웠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연다.

“나, 요리 못해서 왠지 비교될 것 같은데.”
“괜찮아.”
“내 요리가 더 맛없어도 괜찮다고?”
“응.”
“너무해.”
“하하하.”

도시락이 비교될 것 같아서 그런 표정을 지었구나. 지은이는 표정이 무척 다양하다. 지은이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좀 더 조용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눈매가 조금 치켜올라가 무표정인 채로 있으면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나에겐 특히 더 대하기 힘든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내가 제멋대로 편견을 가진 것이고, 사실 지은이는 보기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고, 그 감정의 표현도 역동적이다.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거침없이 전달하기도 한다.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는 것에 서투른 나와는 다르다. 감정이 살아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도 감정을 남에게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내 감정을 알리고 싶은 것은 아주 가끔이고, 기본적으로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

지은이의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 지은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오늘은 데이트 얘기 때문에 들떠서 그런지 지은이네 아파트 단지까지의 시간이라든가 거리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도착해버렸다.

“오늘도 집에 아무도 없을 텐데 올래?”
“그래.”

그렇게 지은이네 집에 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지은이네 집 특유의 냄새가 느껴진다. 집이란 것은 저마다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살고 있는 사람과 생활이 다르니 다양한 냄새가 밴다. 보통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냄새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지은이네 집의 냄새는 벌써 적응을 했다. 그렇다기보다는 적응이 필요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처음부터 별로 싫지 않은 냄새였다. 집에 화초 같은 게 많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 화초에 물 좀 줄게. 아빠한테 부탁 받았거든.”
“너도 화초 기를 줄 아는 거야?”
“조금.”

지은이가 화분들이 늘어서있는 베란다로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못 느꼈던 나무와 꽃 냄새가 은은하다. 그리곤 물뿌리개를 집어 화초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서 있다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지은이를 지켜보았다.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를 텐데 알고 있나보다.

지은이는 아름답다. 모델 같은 몸매. 찰랑찰랑한 검은 머릿결.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생기발랄한 눈동자.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지은이의 아름다움은 가만히 있을 때 발휘되지 않는다. 웃고, 우는 등 감정을 표현할 때야말로 진정한 지은이의 매력을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지은이가 물을 주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래도 화초의 종류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나도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앞에 세 쌍의 슬리퍼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쌍 골라 신었다. 지은이가 신은 것 까지 해서 네 쌍인 걸 보니, 4인 가족이 다 이곳에 출입하는 모양이다. 내가 신은 것은 아마도 지은이의 아버지의 슬리퍼라고 추측이 된다.

“여기 있는 식물들 이름 다 알고 있어?”
“다는 아니고, 그냥 몇 가지만 알고 있어. 아빠가 하도 읊어대니까, 저절로 외워지더라. 이건 압테니아. 이건 오색쇠비름채송화. 이건 페페로미아 푸테올라타, 이건 구즈마니아.”
“이름이 어렵다.”
“그래서 못 외워.”

지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귀엽다. 그나저나 화초이름이 참 어렵구나. 특히 페페로미아 어쩌구하는 녀석은 벌써부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으려고 한다.

“식물마다 물 양이나 날짜가 다르지 않아?”
“응.”
“그럼 얼마나 줘야하는 지 다 알고 있는 거야?”
“식물들마다 물의 양이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줘도 괜찮아. 그 중에 선인장처럼 물이 거의 필요 없는 거랑, 아니면 저기 있는 것처럼 물을 자주 많이 줘야하는 식물만 구분할 줄 알면 그렇게 복잡하진 않아.”
“그렇구나.”

지은이는 별거 아니라고 말했지만, 역시 어려워 보인다. 지은이가 물을 주고 있는 화초에서 눈을 돌려, 물을 주는 지은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최근에 의식하게 된 건데 나는 지은이를 말없이 쳐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은이가 하는 행동을 무심코 바라보고 만다. 지금처럼.

“뭐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무슨 눈?”
“느끼한 눈.”

조금 충격이다. 내 눈길이 그렇게 느끼하게 느껴졌나?

“내 눈이 느끼해?”
“응.”

거울이 보고 싶어졌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다.

“난 그냥 쳐다본 건데.”
“그냥 느끼해.”
“알았어. 그럼 안 볼게.”

화초로 눈을 돌렸다. 이게 페페로미아 뭐라고 했더라? 물뿌리개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속 봐도 돼.”

지은이가 조용히 말했다. 지은이의 얼굴은 조금 붉어져있었다. 그 말을 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나보다.

“지은아. 그거 알아?”
“뭔데?”
“너, 너무 귀여워.”

지은이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내가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는 순간이다. 말한 순간에는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되돌아볼수록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이제 물 다 줬어.”

지은이가 말하며 거실로 나간다. 나도 따라 나왔다.

“쿠키 먹을래?”
“응.”

지은이의 말에 선뜻 대답했다. 어제 먹었던 쿠기가 아주 맛있었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살이 찔까봐 걱정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본래 나는 식욕이 많지 않은 편인데, 저 정도면 집에 가져가서도 먹고 싶다.

“주스랑 우유 뭐가 좋아?”
“우유.”

키가 크고 싶은 이유도 있고, 역시 단 과자 종류는 우유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지은이가 쟁반에 담아온 쿠키를 집어 한입 베어 먹었다. 초코 쿠키다. 새로운 시도를 한 건지 어제와는 또 다른 맛이다. 나쁘지 않다. 언젠가 지은이의 동생을 볼 기회가 있으면 한번 쿠키 만드는 법을 물어보고 싶다. 누나에게 해주면 분명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해야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아니, 그냥. 나도 쿠키를 만들어서 누나한테 만들어줄까 생각 중이야. 누나는 단 걸 좋아하니까 좋아할 것 같아.”

잠시 지은이가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래?”
“운하 너는 누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애. 아까 얘기할 때도 누나 얘기 많이 한 거 알아?”
“내가 그랬어?”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누나는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니까. 하나 뿐인 가족이자, 이상이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는 주의해서 자제하는 편이 낫겠다. 지은이 앞에서 누나 얘기를 자주 하는 건 역시 조금 그렇겠지.

“괜찮아. 왜 그런지 아니까.”

지은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난 그런 모습까지 좋아한 거니까.”

문득, 눈물이 났다. 순식간에 눈시울이 아릿하더니 볼을 타고 뭔가 흘러내리는 것이 간지러웠다.

난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싫어한다. 3년 전 내가 한없이 약하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 약한 것을 경멸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가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3년 전부터 나를 약하게 보이게 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했다. 그 이후로는 누나조차 내가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버렸다.

“운하야, 내가 무슨 잘못했어?

지은이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더니 당황해서는 어쩔 줄을 모른다.

“괜찮아 지은아. 그냥 갑자기 눈이 이상해졌나봐.”
“정말 괜찮아?”
“응.”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눈물을 닦아냈다. 지은이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정말 괜찮아. 가끔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어. 병인가봐.”

이런 식으로 말해봤자 안 믿겠지? 역시 안 믿는 눈치다.

지은이가 전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게 이런 소리인가보다. 아까부터 계속 보아온 똑같은 얼굴임에 분명한데, 무언가 달라진 게 없는 게 분명한데, 지은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은아 나 네가 더 좋아졌어.”
“뭐야, 갑자기.”

지은이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 모습이 아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거 조금 위험하다. 지은이에게 키스하고 싶어졌다.

“키스해도 돼?”

말하는 것은 질문의 형식을 띄었지만, 이미 몸은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지은이가 거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홍조를 띈 얼굴로 눈을 감았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천천히 입술을 떨어뜨렸다.

“아.”

지은이가 탄성을 냈다.

“왜 그래?”
“아니야.”
“혹시 아쉬워?”
“아니야.”
“아쉬운 거구나.”
“아니라니까.”

사실 나도 아쉽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도중에 멈췄다. 만약에 입술과 입술이 닿은 상태에서 더 진행했으면, 멈추지 못했을 테니까. 분명 야한 기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기분이 되고 싶지 않다. 좀 더 지금의 애틋한 기분인 채로 있고 싶다.

그때였다.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은이가 키가 더 작아지고 나이가 어려진다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생김새였다. 조금 치켜올라간 눈매나,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이 지은이와 많이 닮았다. 만약에 다른 곳에서 마주치게 되어도 지은이의 동생이란 것을 바로 알게 되지 않았을까.

“왔어?”
“응, 언니.”
“학원은 어떻게 하고?”
“이제 시험도 있으니까, 한 달 쉬고 방학하고 나면 다니기로 했어.”

유은이라고 했던가. 웃으면서 지은이에게 인사를 하는 동생.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동생이 시선을 돌려 지은이를 바라본다. 지은이가 나를 소개한다.

“아, 저, 이운하라고 해. 운하야, 내 동생. 전에 말했지. 유은이라고 해.”
“안녕.”
“안녕하세요!”

지은이 동생은 내 어색한 인사를 웃는 얼굴로 받아주었다. 어쩐지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의도가 있는 듯한 미소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이런 표현은 미안하지만, 지은이 동생의 미소는 뭔가 음흉해보였다. 그러면서 입을 연다.

“이 오빠가 그 오빠구나.”
“무슨?”
“언니가, 윽, 읍읍!”

지은이 동생이 뭔가 말하려는데 지은이 잽싸게 막았다. 한 손으로는 동생의 몸을 잡고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있다.

“읍, 읍!”
“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지은이가 웃으면서 동생의 숨통을 막고 있다. 동생의 키는 대략 160 정도로 보였다. 지은이에게 붙잡혀있으니 매우 왜소하게 느껴졌다. 보이는 그대로 힘도 차이가 나는지 동생은 지은이에게 빠져나올 엄두도 못 내는 모양이다. 하긴, 나도 지은이에게 힘으로 상대가 안 되니까. 생각해보면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지은이가 동생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그리고는 무언가 속삭인다.

“너, 쓸데없는 소리하면 없애버릴 거야.”

지은이는 속삭이려고 한 것 같지만 다 들렸다. 조금 무서웠다. 동생이 입이 막힌 채로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지은이가 결박을 풀었다. 푸하, 하고 동생이 산소를 들이마신다.

“오빠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유은이 너!”
“헤헤, 언니랑 이쁘게 사귀세요.”
“이게!”

그렇게 말하고 자기 방으로 냉큼 도망친다. 지은이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지은이 동생도 나와 지은이가 사귀는 것을 알고 있구나. 지은이가 말했겠지. 혹시 지은이의 부모님도 알고 계실까?

“동생이 성격이 참 밝네.”
“너무 밝아서 가끔 문제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은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사이가 정말 좋은 자매다. 쿠키 조각을 넣고 우유를 전부 마셨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가볼게.”
“어, 벌써?”
“응. 동생도 왔으니까.”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사실 지은이의 동생이 있는 곳에서 지은이와 함께 있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

“집에 가서 전화할게.”
“응.”

아까 학교에서 지은이의 핸드폰 번호를 듣고 외워두었다. 지금에서야 지은이의 번호를 알게 된 것은 내가 핸드폰이 없어서 지은이의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아쉬워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 표정이다. 가방을 다시 등에 메고 현광에 벗어둔 신발을 신었다.

“배웅할게.”

지은이가 따라 나오려고 신발을 신는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안녕.”

현관문을 나올 때 지은이 동생이 현관까지 나와서 웃으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데이트까지 3일 남았네. 기대된다.”
“나도.”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면서 한 말에 지은이가 동조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고, 복도를 걸어 나왔다. 햇빛이 여전히 강렬한 여름의 오후다. 아파트 단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면 초등학생들이 학교가 끝나고 열심히 밖을 돌아다니며 놀 시간이지만, 최근의 초등학생들은 PC방에서 놀거나 집에서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은 모양이다.

“내일 봐, 지은아.”
“응.”
“그건 무슨 표정이야?”
“헤어지는 게 아쉬운 표정.”

지은이가 무언가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쉬운 표정이라는 거지. 그 모습이 또 귀엽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키스했다.

“또 아쉬운 표정이네.”
“응.”
“데이트 하는 날에 제대로 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다시 가볍게 키스했다. 지은이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운하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색기가 있어.”

지은이가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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