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amaja의 근친상간 시리즈 11
제 목 :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나의 성적환상의 소스와 흥분의 스위치는 여전히 오빠다. 상당히 자상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비교적 왕성한 성생활을 하며 오르가즘에 오르는데 별 문제가 없는데 사실인즉 그 원천이 바로 오빠인 것이다.
남편과 섹스를 할때마다 결정적 순간에는 나 와 섹스를 하는 남자가 남편이 아닌 바로 오빠라고 생각을 해야 크라이막스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을때도 자위행위를 자주하는 편인데 눈을 척 감고 한손으로 이미 발기가된 젖꼭지를 비틀고 다른 한손으로 음핵를 얼르면서 나는 그 손이 오빠 의 손이라 생각하며 흥분의 사다리를 탄다. 바이브레이터로 내 뜨겁고 질퍽한 보지를 쑤시면서 그건 오빠의 딱딱한 남근이 된다. 그러면 매번 최상의 오르가즘의 벼락을 맞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가 집을 나갔고 그래서 엄마가 늦게까지 일을 하셔서 오빠와 나는 늘상 같이 지냈다. 돈이 없으니 빈민가를 전전했는데 거기 사는 애들은 우리와 놀려고 하지않았다.
우리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방법은 흑백 TV를 보거나 모노폴리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언제 부턴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성기를 만지는게 그중 재미있는 소일거리가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오빠는 부쩍 내 몸에 관심을 갖는것 같았다. 내가 반바지 차림이거나 팬티 바람으로 집안을 서성이면 오빠가 한창 커지고 있는 내 가슴이나 엉덩이를 의미있게 쳐다보며 얼굴이 벌게지는걸 내가 알아차렸다. 난 오빠의 나에 대한 그런 관심이 너무 좋고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몸을 더욱 노출시키곤 하였다.
샤워를 한후 일부러 벌거벗은 채로 그의 방 앞을 지나가고 브라자도 안한 채 젖을 털렁대며 서성이고 기회만 생기면 가슴이나 사타구니를 그의 몸에 슬쩍 대곤 하는 그런 식이었다.
오빠는 그럴때마다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특히 불룩해진 바지 앞을 내가 노려 보면 황당해 하며 몸을 돌리곤 하였다. 어렸을땐 아무때나 서로의 성기를 만졌었건만 조금 크니 자기가 한살이라도 더 먹은 오빠라고 동생인 나한테 체면을 지키려는거겠 지만 난 그게 불만이었다.
난 그때에도 유일한 친구가 오빠였고 그에게만 관심이 갔지 다른 남자애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처녀딱지를 떼어도 당연히 오빠가 그 상대여야 한다는게 나의 자연스럽고도 확고한 생각이었다.
엣날처럼 스스럼 없이 서로를 애무했으면 하는 나의 꿈이 의외로 빨리 다가 왔다. 오빠가 몸이 안좋다고 학교를 빠졌던 어느날 나는 그가 걱정이 되어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빠 방이 2층 맨 오른쪽이었었는데 내가 그날 스니커를 신어 층계를 오르는 소리를 못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일찍 오리라 생각을 안해서인지 문이 살짝 열려있는 상태에서 그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문앞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오빠 아니 남자가 겁나게 큰 자지를 세워 놓고 자위행위 하는 장면을 난생 처음으로 목격했던 것이다. 그가 빨가 벗은체 침대에 똑바로 누어 잔뜩 골이난 두툼한 자지를 오른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침을 한번 꼴깍 삼킨다음 주저없이 그에게로 가 침대에 걸터 앉으며 그의 손을 치우고 내 손으로 그의 발기물을 꽉 잡았다. 그의 육봉이 꿈틀하며 내 손안에서 용트림을 했다.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에서 가랑이 사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오빠의 저항이 없음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고 오빠의 자지를 입으로 빨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일찍부터 도색잡지 등을 무차별 섭렵해온 내가 남자들이 자지를 빨아주면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이 몰랐겠는가. 머리를 숙여 헬멧같이 생긴 진홍빛 귀두를 혀로 핥았다.
그의 자지가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꼭 벨벳 같았다. 나는 오빠의 당당하게 잘 생긴 남근을 보물 다루듯 하며 혀로 몸통 전체를 위 아래로 핥았다. 오빠의 신음소리가 나를 기쁘게 했다. 그의 방망이 전체를 입안 깊숙히 넣어 보았다. 목젖까지 닿아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빨기 시작하자 오빠가 자기 손으로 자지의 밑둥을 잡고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기 자지를 내 입에서 빼내며 정액을 공중에 쏴댔다. 진주같은 그의 정액 줄기가 공중으로 솟다가 침대위로 떨어졌고 일부는 내 얼굴과 팔뚝에 낙하 했다. 잠시후 오빠가 나를 끌어 안으며
"나도 너한테 똑같이 즐겁게 해주고 싶다"
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어 그가 내 몸을 애무하며 옷을 벗기는 것을 흥분에 떨며 즐겼다. 오빠가 한창 봉오리 지고 있는 내 젖을 빨고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보지를 만져줄 때 나는 너무 흥분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마침내 그가 내 다릿사이로 내려가 간절히 기다리던 내 보지를 혀로 핥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으로 만질때 보다 훨씬 감촉이 좋았다. 그의 혀가 구멍을 몇번 드나들었다가 음핵을 간질이자 나는 참지를 못하고 그의 머리를 잡아 내 보지에 비비며 크라이막스에 오르고 말았다.
그 날의 그 첫 경험 이후 오빠와 나는 매일 밤 서로의 몸을 손으로 애무하 고 성기를 빨아주며 오르가즘에 올랐다. 그렇게 흥분 하는 속에서도 오빠는 내가 임신이 되면 안된다고 절대로 삽입은 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대단한 참을성이었다. 그러길 6 개월쯤 지났나 어느날 오빠가 약국에서 사왔다고 콘돔을 내놓아 내가 그걸 오빠한테 씌어주고 처음으로 진짜 삽입을 하였다.
그 느낌은 애무에 의한 오르가즘보다 몇배 더 강하고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즐거웠던 성생활은 오빠가 대학에 입학하여 타지로 떠나기 전까지 근 1년간 계속 되었다.
오빠는 대학에 들어가 동급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서로 만나 보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나도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지고 그와 나눈 섹스의 기억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더 강하고 선명하게 다가 온다.
New York, N.Y.
제 목 :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나의 성적환상의 소스와 흥분의 스위치는 여전히 오빠다. 상당히 자상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비교적 왕성한 성생활을 하며 오르가즘에 오르는데 별 문제가 없는데 사실인즉 그 원천이 바로 오빠인 것이다.
남편과 섹스를 할때마다 결정적 순간에는 나 와 섹스를 하는 남자가 남편이 아닌 바로 오빠라고 생각을 해야 크라이막스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을때도 자위행위를 자주하는 편인데 눈을 척 감고 한손으로 이미 발기가된 젖꼭지를 비틀고 다른 한손으로 음핵를 얼르면서 나는 그 손이 오빠 의 손이라 생각하며 흥분의 사다리를 탄다. 바이브레이터로 내 뜨겁고 질퍽한 보지를 쑤시면서 그건 오빠의 딱딱한 남근이 된다. 그러면 매번 최상의 오르가즘의 벼락을 맞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가 집을 나갔고 그래서 엄마가 늦게까지 일을 하셔서 오빠와 나는 늘상 같이 지냈다. 돈이 없으니 빈민가를 전전했는데 거기 사는 애들은 우리와 놀려고 하지않았다.
우리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방법은 흑백 TV를 보거나 모노폴리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언제 부턴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성기를 만지는게 그중 재미있는 소일거리가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오빠는 부쩍 내 몸에 관심을 갖는것 같았다. 내가 반바지 차림이거나 팬티 바람으로 집안을 서성이면 오빠가 한창 커지고 있는 내 가슴이나 엉덩이를 의미있게 쳐다보며 얼굴이 벌게지는걸 내가 알아차렸다. 난 오빠의 나에 대한 그런 관심이 너무 좋고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몸을 더욱 노출시키곤 하였다.
샤워를 한후 일부러 벌거벗은 채로 그의 방 앞을 지나가고 브라자도 안한 채 젖을 털렁대며 서성이고 기회만 생기면 가슴이나 사타구니를 그의 몸에 슬쩍 대곤 하는 그런 식이었다.
오빠는 그럴때마다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특히 불룩해진 바지 앞을 내가 노려 보면 황당해 하며 몸을 돌리곤 하였다. 어렸을땐 아무때나 서로의 성기를 만졌었건만 조금 크니 자기가 한살이라도 더 먹은 오빠라고 동생인 나한테 체면을 지키려는거겠 지만 난 그게 불만이었다.
난 그때에도 유일한 친구가 오빠였고 그에게만 관심이 갔지 다른 남자애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처녀딱지를 떼어도 당연히 오빠가 그 상대여야 한다는게 나의 자연스럽고도 확고한 생각이었다.
엣날처럼 스스럼 없이 서로를 애무했으면 하는 나의 꿈이 의외로 빨리 다가 왔다. 오빠가 몸이 안좋다고 학교를 빠졌던 어느날 나는 그가 걱정이 되어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빠 방이 2층 맨 오른쪽이었었는데 내가 그날 스니커를 신어 층계를 오르는 소리를 못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일찍 오리라 생각을 안해서인지 문이 살짝 열려있는 상태에서 그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문앞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오빠 아니 남자가 겁나게 큰 자지를 세워 놓고 자위행위 하는 장면을 난생 처음으로 목격했던 것이다. 그가 빨가 벗은체 침대에 똑바로 누어 잔뜩 골이난 두툼한 자지를 오른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침을 한번 꼴깍 삼킨다음 주저없이 그에게로 가 침대에 걸터 앉으며 그의 손을 치우고 내 손으로 그의 발기물을 꽉 잡았다. 그의 육봉이 꿈틀하며 내 손안에서 용트림을 했다.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에서 가랑이 사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오빠의 저항이 없음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고 오빠의 자지를 입으로 빨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일찍부터 도색잡지 등을 무차별 섭렵해온 내가 남자들이 자지를 빨아주면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이 몰랐겠는가. 머리를 숙여 헬멧같이 생긴 진홍빛 귀두를 혀로 핥았다.
그의 자지가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꼭 벨벳 같았다. 나는 오빠의 당당하게 잘 생긴 남근을 보물 다루듯 하며 혀로 몸통 전체를 위 아래로 핥았다. 오빠의 신음소리가 나를 기쁘게 했다. 그의 방망이 전체를 입안 깊숙히 넣어 보았다. 목젖까지 닿아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빨기 시작하자 오빠가 자기 손으로 자지의 밑둥을 잡고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기 자지를 내 입에서 빼내며 정액을 공중에 쏴댔다. 진주같은 그의 정액 줄기가 공중으로 솟다가 침대위로 떨어졌고 일부는 내 얼굴과 팔뚝에 낙하 했다. 잠시후 오빠가 나를 끌어 안으며
"나도 너한테 똑같이 즐겁게 해주고 싶다"
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어 그가 내 몸을 애무하며 옷을 벗기는 것을 흥분에 떨며 즐겼다. 오빠가 한창 봉오리 지고 있는 내 젖을 빨고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보지를 만져줄 때 나는 너무 흥분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마침내 그가 내 다릿사이로 내려가 간절히 기다리던 내 보지를 혀로 핥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으로 만질때 보다 훨씬 감촉이 좋았다. 그의 혀가 구멍을 몇번 드나들었다가 음핵을 간질이자 나는 참지를 못하고 그의 머리를 잡아 내 보지에 비비며 크라이막스에 오르고 말았다.
그 날의 그 첫 경험 이후 오빠와 나는 매일 밤 서로의 몸을 손으로 애무하 고 성기를 빨아주며 오르가즘에 올랐다. 그렇게 흥분 하는 속에서도 오빠는 내가 임신이 되면 안된다고 절대로 삽입은 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대단한 참을성이었다. 그러길 6 개월쯤 지났나 어느날 오빠가 약국에서 사왔다고 콘돔을 내놓아 내가 그걸 오빠한테 씌어주고 처음으로 진짜 삽입을 하였다.
그 느낌은 애무에 의한 오르가즘보다 몇배 더 강하고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즐거웠던 성생활은 오빠가 대학에 입학하여 타지로 떠나기 전까지 근 1년간 계속 되었다.
오빠는 대학에 들어가 동급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서로 만나 보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나도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지고 그와 나눈 섹스의 기억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더 강하고 선명하게 다가 온다.
New York, N.Y.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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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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