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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6:51 805회 0건
젖은 마당에 눕다
(아빤 정말 몰랐을까?)


젖은 마당에 눕다 <上>

내겐 풀지 못한 미스터리 하나가 있다.
나로선 풀 수 없는, 아니 풀려선 절대로 안 될 은밀한 비밀 하나가 밀봉된 채로 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내가 갓 결혼하여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지금은 이혼한 남자, 김서방과 처음으로 싸움을 벌이고 친정으로 가버린 그 때였다.
싸움의 원인은 김서방의 옷을 빨다가 호주머니 속에서 떨어진 조그만 쪽지 하나 때문이었는데 거기엔 내가 모르는 여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그게 어디 그냥 넘길 일이던가?
이제 겨우 신혼 석 달째인데...
남들은 깨가 쏟아지네 무르팍이 까지네 하던 그때가 아니던가?
그런데 김서방은 무르팍은커녕 그 좆만한 굼벵이를 일 주일에 한번 구경시켜줄까 말까였다. 그것도 술이 잔뜩 취해와선 몇 번 끄적거리다 찍 싸버리는 천하의 부실공사를...

이렇게 말한다하여 내가 밝히는 축에 속하는 여자는 절대로 아니다.
무엇이든 간에 기본이란 게 있지 않은가?
비록 시골에서 태어난 숙맥이지만 정보가 발달한 요즘 남성의 기본 조건을 모르고 결혼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때 내 나이 스물 여섯이었으니 들은 거 못 들을 거 다 듣고 나선 시집이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자마자 쪽지를 내밀며 "이년이 대체 누구냐?" 바락바락 악을 썼다.
처음은 모른다고 빡빡 우기더니 넥타이를 잡고 달려들자 뻔뻔스럽게도 "그래! 옛 애인이다, 왜? 옛 여자 좀 만난 게 죄냐!"며 오히려 큰소리치는 거였다.
끝까지 우기든지, 아니면 적당히 돌려대며 나를 달래어도 될까말까인데 오히려 큰소리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져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당장 친정으로 오는 시골 막차를 타버린 거다.
옷가지 하나 안 챙기고... 그런데 더욱 가관인 건 나를 데리러 온 그가 내가 잠시 바람 쐬러 없는 사이에 와선 내 옷가방만 놔두고 팽 가버린 거였다.
가방 속엔 건방지게도 이런 쪽지까지 들어 있었다.

"나는 결백하다. 쓸데없는 오해로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 푹 쉬다가 마음이 바뀌면 돌아 오라. 용서하마!"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뭐, 쓸데없는 오해? 용서하마?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너무 심했던 건 아닐까 후회하고 있던 나였지만 더는 기대할 게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 일로 부모님들이 걱정할까봐 "김서방이 출장 가서 잠시 들렀어요! 그 사이 며칠 쉬게요..."라 둘러댔는데......

그런데 이 사실을 아빠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김서방의 승용차인 거 같아 불러 세웠더니 그냥 가버리더란 말을 했다.
그날 밤 나는 이실직고를 해야 했다.
내 눈물을 본 엄마는 함께 훌쩍거렸고 아빠는 담배만 끔벅끔벅 피더니 다음날 농약 사러 나가는 길에 김서방을 만나봐야겠다 했다.
말렸지만 아빠는 기어코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섰다.
불효자식이란 이런 걸 거다.
그날 나는 종일을 울었다.
저녁 느지막 아빠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 돌아왔다.
김서방이 아닌 시아버지이신 사돈과 한잔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김서방이 날 데리러 올 거라 했지만...

다음날 김서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날도......
엄마는 자꾸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라 했다.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악을 썼다. 그런 날이 열흘이나 이어졌다.
나는 이제 그에 대한 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건 아빠도 그랬던 거 같다.
아빠는 벌써 며칠 째 마을 구판장에서 술로 울분을 달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엄마만 안절부절하며 날 달래다가 다그치다가 결국 손수 김서방을 만나야겠다고 시내로 나가기에 이르렀는데...

하필이면 그날 종일 비가 양동이로 쏟아 붓더니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가 잠겨 버렸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강 건너 이모집에서 자고 온다고 전화가 왔다.
김서방은 만났는지 어땠는지 말이 없었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빠는 그날도 만취하여 돌아오실 모양이었다.
비는 계속하여 내리고...
그 만큼 내 울분만 점점 커가고...
추녀 밑에 괴는 빗방울만큼 내 눈물도 냇물을 이루어 어두운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러다 잠이든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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