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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를 꿈꾸며(개정)2 - 19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6:19 686회 0건
"그래..... 정욱이가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정말로 새파란 녀석이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속상해서 원......"

어머니 제사가 끝나고 나자 간만에 모인 식구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때쯤 윤혜가 얼마전에 정욱과 만난 일을 거론하며 험담을 하기 시작하였다.간략히 요약을 하면은 자신들이 남편을 소몰 듯이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괴롭힌다는 정욱의 발언을 놓고 그들은 분을 삭히지 못한 듯 하였다. 하지만은 여기 모인 사람들 전부다 이들 자매와 같지만은 않아 보였다.

"너희들, 한번쯤 깊히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
"뭔 소리야 큰 오빠?"
"나쁜 감정이라던가 자존심같은 것은 접어두고 한번 정욱이가 한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그말이야."

다들 어리둥절해 하며 뭐가 뭔지 몰라 갈피를 못잡을 때 서진이 나섰다. 아무래도 이 참에 자신도 한마디 뭐라고 해야 하겠기에........

"이를 테면은 정욱이 한 말에 대해서 너희 서방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확인을 해본다던가...... 어이!! 뭐라고 말들좀 해봐. 매제들....."
"................."

서진이 자신들을 지명을 하자 양선기, 김선중, 원정수 이들 3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런 남편들의 모습에 윤혜, 윤채, 윤미 3자매들은 다급해 하며 그들을 재촉했다.

"뭐라고 말을 해봐요?. 어서..... 왜 그렇게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요?."
"당신..... 표정이 왜 그래요? 예?"
"어서요!!"
"너희들 나서지 말고 그냥 지켜봐. 이보게들..... 이 참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은 해봐. 그렇게 겁먹지 말고....... 아!! 우리들 자네들 보고 비웃거나 손가락질 같은 거 않할테니까 안심하고......"

서진은 그들을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면서 대화를 계속 진행 시켜나갔다. 서서히 효력이 발생하였는지 먼저 맏사위인 김선중이 입을 열었다.

"솔찍히 말씀 드려서 장인 어른 돌아가실 때 유언장 발표났을 때 너무나도 의외였긴 하였지만은 저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않떨어진다고 해도..... 아니 두 처남들처럼 회사에서 ?겨난다고해도 상관없었어요."
"여보?"

너무나도 의외인 남편의 대답에 윤혜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어조로 외친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김선중의 대답을 간략히 요약을 하면은 이러하였다. 처음 자신이 회사에 입사를 하고 난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느끼고 그만둘까 생각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때에 자신이 회장의 눈에 들어서 윤혜랑 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으로 일사천리 진행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회사내의 최고직에 있는 상관이 자신을 사위로 삼기까지 하고 신뢰를 하는데 그것을 뿌리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한 부인에게 못난 남편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하였다.
회장의 사위라는 주변의 경의로운 시선과 기대 때문에 생각과 행동이 일치될 수가 없었다

"회사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어디 대학가 근처에 조그만한 등산 용품 매장 하나 차려서 등반 회원 모집을 하고 내가 그들을 인솔을 하면서 산 사나이가 되는 것 이것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그렇게 내 뱉고 난후 김선중을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면서 윤혜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한동안 집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서윤이 원정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음이 자신의 차례인 것을 직감한 원정수는 잠시 윤채를 물그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건설 현장 소장으로 지내는 것이 제 체질입니다.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고 탁상 공론이나 하는 거 정말로 고문입니다. 경영권이니 뭐니하는 건 내겐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야."

원정수의 경우는 아주 간략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더는 할말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천정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은 양선기...... 양선기는 그저 평범한 화이트 칼라이고 싶다고.....
때되면은 승진하고 월급 더 받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으면은 그뿐일뿐 그 이상을 원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고 하였다. 누구누구처럼 전무 이사, 회장이라는 자리는 너무나도 어울리지도 않고 과분하다는 말도 덧붙여서.......
한동안 집안에는 적막감만 맴돌았다. 어처구니 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충격을 받아서 어찌할지 몰라하는 3자매들...... 그런 아내들의 눈치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 남편들......
그러다가 그런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서윤이었다.

"이만..... 너희들 돌아가보는 거 어때. 돌아가서.... 못다한 얘기...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거야. 어떤가."
"그, 그게.... 좋겠네요. 오빠...."

먼저 윤혜가 대답하였다. 그래도 이들 자매들 중에서 윤혜가 가장 이성적인거 같았다. 아직도 충격에 가시지 않은 듯 하면서도 그래도 침착하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은 말이다. 윤혜가 그렇게 말하자 동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괜찮을까. 부부싸움 나는 거 아냐?"

동생 내외들이 탄 차가 줄줄이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서진은 걱정스럽다는 듯 한마디 하였다.

"언젠가는 부H혔어야 할 일이야. 오히려 잘된거지 뭐. 이 참에 치맛바람에 놀아나지 않게끔 각성하였으면 좋겠어."

서윤의 말에 서진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은.......

"그 말, 매제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거 같은데........"

치맛바람이 저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매제들 그냥 평범한 집안 여자랑 결혼하고 지냈다면은.....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텐데...."
"윤혜, 윤채, 윤미 걔들이 결혼할때쯤에 우리집안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어. 자수성가한 사업체 굴리고 있는 약간 있어 보이는 집안일뿐이었어."
"듣고보니 그렇네."

일명 사위 자식 패밀리라고 하는 양선기, 김선중, 원정수 이들 3명은 자신들 아버지 생존시 그렇게까지 의식할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서진이나 서윤도 이들이 그렇게 야심이 없는 그저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은 아버지 생존시 이들을 어느정도 경계했던 것은 여동생들의 입김때문이었다. 윤혜, 윤채, 윤미 이들 3자매가 수시로 아버지 곁에서 아양떨면서 사위들에게 후한 점수 주게끔 공작?을 폈고 그로 인해서 향후 경영권, 유산 상속에서 어떤 돌발 변수로 작용할지 장담할수 없었기에 경쟁관계로 탈바꿈한 것이다. 즉 주변의 상황이나 이해관계로 인해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종의 희생양이랄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형이랑 툭 터 놓고 얘기한게 참 오랜만이네"
"술 한잔 할래요."
"그거 좋지."

서진의 제안에 서윤이 흔쾌히 응하며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말도 않돼요!!"

안으로 들어가던 중에 갑자기 집안에서 들려오는 쩌렁 쩌렁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서진과 서윤은 의아해하였다.

"??"
"뭐, 뭐야?."
"이 목소리.... 제수씨? 같은데......"

서윤이 그렇게 지적하자 서진은 형의 말이 맞다고 여기고 아무래도 뭔가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왜들 그래....요?"

서윤과 서진이 안으로 들어와보니 부엌에서 김미혜와 정유민이 서로 마주한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과관인 것이 서진의 부인인 정유민의 모습이 예전엔 볼수 없었던 뭔 일에 화가 잔뜩 났는지 눈에 불을 켜고 김미혜를 노려보고 있었고 김미혜는 그런 동서의 시선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 부절 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 두사람의 모습에 한동안 할말을 잃던 서윤과 서진, 그러다가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서진이었다.

"당신..... 아니, 형수님 이 사람 왜그러는 거예요? 예?"

집사람에게 물어보려다가 차마 그럴수 없어서 형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정유민의 모습은 서진 자신에게 너무나도 의외의 모습이었고 다가가기 겁이 났었다.

"당신.... 뭔 일 있었어? 왜들 그래."
"저, 저..... 그게..... 동서.....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김미혜는 남편의 물음에 답하려다가 다시 정유민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하지만은 곧 들려오는 정유민의 대답은 그의 심기가 어떠한지 알수 있을 정도로 살기가 잔뜩 배여 있었다.

"아까 한 말 다시 해봐요!! 뭐가 어쩌고 어째요!!"
"여보? 왜 그러는 거야. 진정하고 차근 차근 이유를 말해봐. 아니..... 형수님 뭣 때문에 이 사람 이러는 거예요. 말씀해보세요. 예?"
"그, 그게..... 저어...."

동서랑 남편 시동생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며 김미혜는 말을 꺼냈다.

"그, 그럴수가!!! 그게 사실이야? 정말로...."
"내 눈으로 분명히 봤어요. 진짜에요."

아내의 말에 형수의 말에 서윤과 서진은 경악을 감출지 못하였다. 김미혜가 한 말은 정욱에 관한 것이었다. 정욱이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윤비서랑 놀아난게 분명하다고..... 그리고 얼마전에 자신이 외출했다가 윤비서랑 마주쳤는데 그때 산부인과에서 그녀가 나오던 중이었다고... 남산만하게 배가 불러 오른 상태였다고 하였다.

"그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까 거의 5개월 다돼간다고 그러데요. 세상에....... 하여간에 이젠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아버지 애인까지...... 나참....."

상황 설명을 하면서 김미혜는 정욱에 대한 자신의 않좋은 감정까지 덧붙여 가면서 그렇게 씹어댔다.
김미혜의 말은 서윤과 서진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아버지 애인이었던 윤비서가 지금 임신중이라는 것과 정욱이 한 짓이 분명한 것 같다는 그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억지 부리지 말아요"

듣다 못한 정유민이 나섰다. 그런 동서의 모습에 김미혜는 더는 뭐라 말 못하고 남편과 시동생에게로 향하였다.

"설겆이 하다가 그 얘기를 하니까 동서가 저러는 거 있죠? 동서..... 왜 그러는 거야."
"형수님은 가만 계세요. 여보, 흥분하지 말고 마음 가라 앉히고..... 예기를 해봐. 자, 진정하고......"

일단은 형수인 김미혜의 말이 너무나도 뜻밖이고 충격적이긴 하지만은 아내의 반응 역시 심상치가 않기에 서진은 우선 그녀를 달랬다. 한참 동안 흥분해 있는 아내를 달랜후 서진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물었고 정유민은 설명을 하였다. 얼마전에 자신이 정욱의 집에 찾아가서 알게 된 것을 그리고 진희와 나눴던 얘기들이랑 김미혜의 말처럼 정욱이 진희랑 놀아나서 그런 것이 아닌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유복자라고 못박으며.......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도련님이 그런 짓을 할거라고 생각하다니..... 형님. 미쳤어요. 어떻게 된거 아니에요"
"아니.... 동서.... 듣자 듣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미쳤냐니..... 그리고 그 윤비서가 밴 자식이 돌아가신 아버님 자식이라고 어떻게 확신을 해. 아!! 가만.... 그러고 보니?"

말하던 중 김미혜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무릅을 탁 치며 외쳤다.

"그렇군. 그 윤비서 그년이 나한테 애 밴 사실을 들키니까 연막 작전을 쓴거야. 그래."
"연막작전이라니....."

서윤이 의아해하며 아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도련님이랑 윤비서가 작당을 해서 동서 불러다 놓고 돌아가신 아버님 자식으로 오인하게끔 농간을 부린거 아니겠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그럴리 없어요."

김미혜의 말을 듣던 정유민이 더는 격한 감정을 참기 어려웠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정유민의 외침, 정욱이 일 벌린것이고 사고 친거 맞다는 김미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그날 자신들의 시어머니 제삿날의 뒤끝이 껄끄럽게 매듭지어졌다. 더 나아가서 김미혜는 어쩌면은 현재 한집에서 동거중인 아버지 후처인 이준기 딸이랑 정욱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일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내놓자 정유민은 끝내 이성을 잃고 김미혜에게 달려들었다. 한동안 머리 끄뎅이 붙잡고 격한 싸움을 하는 두 여자를 말리느라고 서윤과 서진은 크게 곤욕을 치뤘다..

"제수씨는 어때 괜찮아?"
"응, 이제 진정했어."
"제수씨 저렇게 흥분한거 나도 처음봐."

그 말에 서진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금전에 자신이 목격한 아내의 흥분된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저기, 형"
"응?"
"어떻게 생각해. 형수님 얘기랑 저사람 얘기..... 어느쪽이 맞을까?"
"그게........"

서진의 물음에 서윤은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얘기를 종합해봤을땐 아버지 애인이었던 윤비서가 현재 임신중이라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하지만은 문제는 그 뱃속의 아이가 누구 자식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형수님이 말한 것은 이렇다 할 근거 없는 추측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

서진과 서윤은 애써 좋은 방향으로 정유민의 말대로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의 유복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선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윤비서를 아주 가까이 하였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안다. 재혼을 하고 난 이후에도 후처랑 같이 한 이불속에서 뒹굴었던 만큼 그런 추측은 당연하며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왜 여태까지 그 사실을 정욱이나 윤비서는 전혀 자신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일은 아니라고 해도 애써 숨겨둘 필요까진 없는 일일텐데...... 김미혜의 말대로 정욱이 윤비서랑 일을 벌려서 생긴 씨앗이라고 가정한다면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은 아주 가능성이 없는 추측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윤비서는 얼마후 회사를 그만 둔 상태이고 계속 정욱이랑 한집에서 지내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계모도 같이......
윤비서는 정욱보다 한 살 아래, 계모는 정욱보다 3살위...... 그런 그들끼리 한집에서 같이 지낸다면은.....

"아휴, 그만두자. 우선은...... 그 얘기는 일간 정욱이 만나서 얘기 해보자."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그나저나 이거 도데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정말....."

서진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듯 하였다. 일단은 윤비서의 뱃속의 아이가 돌아가신 아버지 자식이라고 가정한다면은 자신에게는........

"연달아서 20년 간격으로 동생이라니......."

이제 자신의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접어든다. 그런 자신에게 또 다시 동생이 생긴다니 생각만 해도 기가 찰뿐이다.
하지만은 그 반대인...... 형수의 말대로 그렇게 정욱이 일을 벌려서 생긴거라면은.....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생각하면은 할수록 미묘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너, 그만 가봐라. 제수씨도 저런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서윤은 우거지 상을 하는 동생이 안스러운지 그렇게 권하였다.

"그래. 나 이만 가볼게. 형. 아!! 그리고....."
"뭔데?"

서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직한 어조로 서윤에게 말하였다.

"일단 그 문제는 내가 정욱이랑 얘기를 해서 알아보도록 할게."
"니가 하겠다고?"

갑자기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에 서윤은 잠시 의아해 하였지만은 아무래도 형제들 중에서 자신은 정욱에게 다가가긴 좀 뭣한 위치요 관계가 아닌가. 그런만큼 상대적으로 얼굴 붉힐 만한 일이 덜한 서진이 나서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알았어."
"고마워. 형, 그리고 진상이 밝혀질때까지 어느 누구한테도 이 일이 발설되지 않아야 해. 알겠지."
"음........ 그러는 것이 좋겠지"

어느쪽이 맞는지 틀렸는지 간에 소문나서는 별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엔 서윤도 동의하였다. 그렇기에 동생의 말에 수긍하였다.
그렇게 서진은 형에게 몇가지 당부를 하고 난후 서윤의 집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동안 서진은 한동안 아내와 얘기를 하지 않았다. 조금전에 극도로 흥분하며 고래 고래 소리치며 형수랑 머리끄뎅이를 붙잡고 싸우기까지 하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을 한후 서진은 딸 하영이 잠든 것을 확인을 한후 아내를 서재로 불러들였다. 생각같아서는 밤도 늦었으니까 내일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만은 급한 마음에 그렇게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그쯤해서 정유민은 상당히 안정을 되찾은 상태이다. 하지만은 얘기중에도 항상 김미혜가 한 말에 대해서 분을 삭히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정욱이 집에 찾아갔었고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윤비서에게 직접 자초지종을 들었던 거고......"
"예. 당신 복직 시켜준것에 대해서 인사라도 드릴려고요."
"윤비서 임신한 것은 확실한거야?"

남편의 물음에 정유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진은 답답한 심기를 반영하 듯 언성을 높였다.

"그럼!! 왜, 얘기를 하지 않은 거야. 당신 말대로 윤비서가 아버지 자식을 가진게 맞다면은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은 나한테는 얘기를 했어야지 않그래."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왠지...."
"왠지? 뭣 때문에........"
"그 일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니, 아주버님이나 아가씨들도 그렇고..... 그 일로 인해서 도련님이랑 다시 않좋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만......"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현상 유지를 위해서 쉬쉬하였다? 그런거야. 엉!!"

그렇게 격한 어조로 한마디 하고는 서진은 서재를 뛰쳐나왔다. 한동안 정유민은 서재에 홀로 지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썼다. 잠시후 정유민은 서재를 나왔다. 나와보니 거실에는 서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술잔만 연신 기울이고 있었다. 정유민은 다가가서 그만 마시고들어가 보라고 말하려다가 남편이 표정을 보고는 차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진은 밤새도록 잠 않자고 술을 들이키면서 홀로 지샜다. 세벽이 될 무렵 아침을 짓기 위해서 일어난 정유민이 아직도 거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남편을 보고 놀라며 들어가보라고 하였지만은 서진은 전혀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정유민은 아침을 지으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준비를 하였다. 얼마후 딸 하영이 일어날때쯤 되자 서진은 그제서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침 식사 시간에 태연한 표정으로 식사에 임하였다. 정유민은 밤새 한잠도 않잔 남편이 걱정이 되었지만은 차마 입밖에 말을 내뱉진 못하였다. 딸아이의 시선이 의식되는 터라 표정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귀울였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다 마찬후 서진은 출근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회사 쉬시는 것이 어때요?"
"..........."

아내의 권유에 서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유민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불안해 하며 미안한 마음에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을 하며 문밖까지 나선 정유민, 그러다가 그제서야 서진은 한동안 닫혔던 말문을 열었다.

"어제 내가 경솔한거 같았어. 미안해."
"미, 미안하긴요. 제가.... "
"아니, 생각해보니까 어쩌면은 당신 말대로 일지 몰라. 당신이 제대로 본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서진은 자신의 차에 탄후 서둘러 회사로 향하였다. 어젯밤 서진은 깊히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는 아내가 자신에게 비밀로 붙이고 쉬쉬했던 일에 대해서 배신감까지 들었지만은 그것도 잠시... 시간이지나고 나자 이성과 냉정을 되찾으면서 아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고 다방면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어느정도 답이 나올수 있었다. 이날 이때까지 배다른 동생 정욱에 대한 자신과 형들 여동생들의 않좋은 감정과 태도를 떠올렸고 그것을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아내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그녀인데...... 또다른 배다른 동생의 출현에 대해서 남편인 자신과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일까.
형제간의 사소로운 일로 인해 주먹 다짐에서부터 법정에서 소송까지 가고 별이 별 추태를 다 부렸던 것을 떠올린다면은 그런 불편한 관계가 다시 순환 반복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진은 아내가 윤비서의 임신 사실을 비밀로 붙인 것에 대해서 어느정도 납득을 할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정욱한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윤비서와 정욱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어떻게 그 일을 거론하며 꺼내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였다. 강제적으로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서로간에 대화 및 협상이란 것으로 해결해 나가기도 뭣하니까 말이다.
아니, 정작 자신들 스스로가 마땅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으이그..... 정말로 답답하다. 답답해. 아버지 왜 벌써 돌아가셨어요!!"

머릿속이 복잡해진 서진은 참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외쳤다. 물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다. 사실 이런 일이라면은 아버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정욱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실력 행사는 물론 권위와 위엄, 그리고 자상함을 다 갖춘 분이니까.
그리고 아내 말대로 윤비서의 아이가 아버지 자식이라면은 그 또한 아버지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분은 지금 세상에 없고...... 자신들이 그 일들을 다 떠짊어져야 한다니. 속으로 답답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제1 단계 순조롭게 진행중, 제 2단계 오늘부로 시행할 것-

인터넷으로 온 메일의 내용을 바라보며 정욱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제빨리 삭제를 하고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게끔 일련의 작업들을 병행하면서.....

"아직까지 저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거 같고..... 순조롭긴 하지만은 이게 언제까지 갈까."

항상 그게 걱정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저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다. 언제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고 그에 걸맞게 조직적으로 대항을 한다면은....... 물론 그에 따른 준비는 되어 있지만은 자신이 유리하게 전개된다는 보장은 할수 없다. 그야말로 외로운 싸움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생에 한판 승부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욱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로 향하였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제서야 뭔가 생각이 났는지 정욱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진희씨. 미안한데..... 나, 오늘 늦을거 같아요. 예.... 예....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도록 해요. 알았어요. 알았어. 너무 늦지 않을테니까 안심해요. 몸조리 잘하고......"

마지막 말을 하면서 정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 순간 진희 외에 다른 누군가를 떠올렸으니까. 아직 본적도 없는 그 누군가를.......
그 생각만 하면은 항상 마음이 즐거워지고 따뜻해지는 것이다. 왜 그런지 정욱 자신도 잘 모르지만은......

"회장님 벌써 퇴근하십니까?"

나서던 도중 정욱은 이준기 부회장과 마주쳤다. 벌써 퇴근하느냐고 묻는 그의 표정은 왠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예. 따로 약속도 있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볼려고요."
"그러세요."
"그럼 이만......."

그렇게 짤막한 인사를 건내며 정욱은 발길을 돌렸다. 그런 정욱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이준기는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 이럴려고 나 이 자리에 앉힌거지!!"

저 새파란 놈은 근래에 들어 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이전처럼 날밤 새어가면서 강행군하던 때와는 달리 요즘들어선 저녁 6시 퇴근 시간을 꼭 맞춘다. 물론 일찍 퇴근하는 만큼 회장이 처리해야 할 업무상의 공백을 부회장인 이준기가 그만큼 전부다 떠맡게 되었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은 이거 너무 하잖아."

과거 야근에 철야 근무를 밥먹듯이 하던 그 새파란 녀석을 떠올리며 준기는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그 철부지 어린 놈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던 통에 자신들 역시 형식적으로 눈치 보여서 퇴근 못하고 야근에 철야 근무를 덩달아서 따라 해야 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니 자못 대조를 이루었다.

"그래. 참자. 참아.... 어린 놈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그럴려고 부회장 된거잖아. 않그래."

스스로 그렇게 위안을 하면서 준기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이준기의 표정이 순간 흠칫하며 굳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면서 상대방과 대화를하였다.

"응. 확실해. 알았어. 일단은 한번 추적할수 있는데까지 해보도록...... 그래도 않된다면은.... 할수 없지. 수고해. 그럼....."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준기는 자신의 사무실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는 자신의 책상에 다가가서 주먹을 쥐면서 힘껏 내리쳤다. 쾅.......하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도데체 어떤 녀석이야. 어떤 놈이 이 짓거리를 하는 거야!!"

이걸로 해서 10개째, 스위스 은행에 개설해 놓은 비밀 계좌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없어진 돈만도 달러로 8200만 달러에 이른다. 비자금들을 해외로 빼돌려서 예치 시켜 놓은 것이니 만큼 상당 기간 동안 찾아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서 감쪽같이 그들 계좌들이 해지 된 것이다.
처음 한번 두 번은 몇몇 은행들간의 합병 및 전산망 통합 작업으로 인해서 장기간 찾아가지 않은 휴먼 계좌들이 소실 되어서 그렇다고 여겼지만은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그들 비자금들이 빼돌려지는 것이다.

"이 참에 주변을 한번 점검해봐야 겠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자신이 해외에 개설해 놓은 자금 현황에 대해서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몇몇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준기는 이를 갈았다. 만일에 자신의 혹시나 하는 짐작이 맞다면은 결단코 그들을 가만 두지 않겠노라고 다짐의 다짐을 하면서......

퇴근후 정욱이 들른 곳은 한영혜의 집이었다. 간만에 다시 찾아온 귀한 손님을 한영혜는 열과 성의를 다해서 정성껏 모셨다. 전번 방문때에는 하마터면은 자신을 덮칠뻔 했었지만은 지금은 이제 당당한 정식으로 연인으로 확정된 미래를 만들어가는 연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두 연인이 지금 도란 도란 다정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처음 얘기는 자신들이 첫 성인물을 접하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보던 느낌이나 감상 소감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첫사랑이나 첫경험에 대한 고백을 주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한영혜는 첫사랑의 경험을 털어 놓았다. 물론 그런적은 없지만은 이런 경우 만들어서라도 얘기를 해야 하는 만큼 그럴싸하게 꾸며대느라 여간 고생한게 아니었다. 차라리 첫경험을 한적이 언제였는지를 말한다면은 어려울거 없지만은 그런 말을 함부로 생각없이 주절거릴정도로 한영혜는 골빈 여자는 아니었다.

"음.... 정말로 대답 하기 곤란하네요. 회장님."
"그렇게 눈치볼 것 없이 솔찍하게 말해봐요."

정욱의 재촉에 한영혜는 할수 없이 대답을 하여야 하는 궁지에 내몰렸다. 정욱이 물어 본 것은 만일 한영혜 자신이 사춘기인 고등학교 다닐때에 정욱과 만났다면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거였다. 한영혜가 고등 학교 다닐때쯤이라면은 정욱의 나이는 12, 3살 정도...... 한창 피어오를 사춘기의 여고생이 갖 초등학교 졸업한 꼬마에게 이성적인 감정이나 사랑이 싹틀수 있을까 말까 이것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며 어떻게 대답을 할지 여과를 하면서 짜맞춰가며 한영혜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나이의 회장님을 제가 만났다면은....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어렵다고 봐요."
"당연히 그렇겠죠. 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들간의 인연이란게 있으니까 어쩌면은 그때 당신이랑 나랑 만났다면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발전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물어본거예요."

그 말에 한영혜의 얼굴이 붉어진다. 너무 부끄러워 어쩔수 없는 양

"회장님. 저 물어볼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봐요."
"회장님은 저의 어디가 좋으신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정욱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쑥스러운 듯 부끄러운 듯 천천히 입을 뗐다

"저번에 이곳에서 한비서에게 하마터면은 몹쓸짓을 할뻔 한적 기억하나요"

그러자 한영혜가 당혹해 하며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몹쓸짓이라니요. 당치도 않아요.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않하기에요. 알죠"
"알았어요. 그 일 있고 난 다음날 처음 당신이랑 마주쳤을 때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어떻게요?"
"그런일이 있었는데 전혀 미워하지도 않고 원망도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정욱, 하지만은 한영혜는 더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대충 뒷말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짐작은 가니까 말이다. 아마도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들인 자리에서 용서를 빌 때 자신이 발휘한 연기력에 감동을 받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 이것이 아닐까.

"이럴줄 알았으면은 연기자의 길로 계속 가는 건데....."

고등학교 졸업 하고 나서 연기 학원을 다니는데 어느 기획사 매니저를 사칭하는 인간에게 속아서 러브 호텔로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면은 아직도 이가 갈렸다. 나중에 알게됐지만은 그 기획사라는 곳은 명함만 있을뿐 존재하지도 않았고 자신외에도 많은 연기지망생들이 그 놈에게 농락을 당했고 더러는 임신까지 한 애도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한영혜는 연기의 연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어쨌던 자신의 연기 실력이 지금 이 순간 최고조에 다다르고 효력을 발휘하는데 대해서 속으로 의기양양하는 중이었다.

"저도..... 실은 그때부터 회장님을 존경하기 시작하였어요."
"나를요?"

한영혜의 말에 정욱은 뜻밖인 듯 의아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능숙하게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 거만하지 않은..... 스스로를 낮출줄 잘 아시고..... 그리고 따뜻하신 모습이 정말로.... 그때 저, 그 모습을 보고 회장님을 사모를...."
"나를 그렇게까지 봐주다니. 정말로 고마워요. 한비서."

정욱은 그런 한영혜의 손을 잡으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영혜는 잠시 의문에 잠겼다.

"내가 어디 잘못 건드렸나?"

다시 조금전에 자신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한영혜는 정욱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

"당신이 보는 것만큼 전 그렇게 대단하진 않아요. 뭐든 다 가졌다고 해서 그게 전부 다는 아니니까요."
"회장님, 그게 아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 아버지를 따라갈려면은 한창 멀었어요.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것은 살아 생전에 아버지는 도저히 뛰어 넘을수 없는 벽이었다, 이거예요. 그런데 내가 지금 그분 뒤를 이으려니..... 스스로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하다고 느껴지네요."
"그렇지 않아요. 회장님 시간이 지나면은 차차 나아지실 거예요. 너무 그렇게 힘겨워하지 마세요. 돌아가신 이전 회장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거예요."

그 말에 정욱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야 조그만한 다 쓰러져가는 창고에서 지금의 회사를 만들어서 이렇게 키웠죠. 기초부터 탄탄하게 많은 시행 착오부터 그리고 성공을 하면서 그렇게 되신거죠. 하지만은 나는 그게 아니에요. 언제나....... 아버지가 일으켜 세운거 이러다가 실수해서 말아 먹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면서 뭔가 일 터질까봐서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지금의 나는 정말로....."

정욱의 말을 듣고서 한영혜는 지금 그의 심기가 어떤지 알수가 있었다. 불안, 초조, 그리고 두려움에 언제가 몸서리 치는 그의 모습이 지금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 그럼 시작...."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한영혜는 정욱의 곁에 다가갔다. 이런때 자신이 곁에서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 주겠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한영혜가 정욱의 두 손을 잡자 정욱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였다. 한동안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지내다 한영혜가 정욱의 머리를 살며시 끌어 않았다. 정욱은 자의반 타의반의 심정으로 그렇게 그녀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힘들고 두려우면은 언제나 말씀하세요. 도움이 못되더라도...... 뭐든지 회장님께 힘이 될 수 있게 보태고 싶어요."
"고마워요. 한비서."

정욱은 그녀의 품속에서 볼을 비벼대며 그렇게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양 감격의 어조로 외쳤다.
얼마후 정욱은 한영혜의 집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까지 마중나온후 그를 떠나 보내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수절 과부가 따로 없군. 그나저나 언제쯤 일을 벌이실려나....."

이쯤 되면은 어느정도 정이 통하고 감정이 무르 익었을때가 된 만큼 혼전 섹스에 이를때도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진전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상대를 오랜 시간 지켜봐온 한영혜이기에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이렇게 지지부진 하는 것이 애가 탈 지경이다.

"아무래도 결혼 전에는 기대하지 않는게 좋겠어. 그래. 참자 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스스로 그렇게 위안을 하면서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와의 섹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저 철부지와 더는 끊어질수 없는 끈끈한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 외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아직 섹스나 이성 경험이 전무한 어린 놈이기에 만일 미리 그 일을 벌인다면은 나중에 뭔 일이 있어도 책임감 때문에 쉽사리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 의해서이다. 물론 벌어질수 있는 일이란 것은 회장의 형인 강서진의 공작?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아무런 조짐이 없어보이지만은 그래도 안심할수 없었다.
그 외에도 자신이 처녀가 아니란 점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은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않된다. 왜냐하면은 이때까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은 그는 여자 경험이 전무하며 아직 아다라고 하였다. 그런 그이기에 한영혜 자신이 처녀 아니면은 걸레인지 여부를 따질만큼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애숭이라고 판단되었고 더 나아가서 비서실로 오기 전에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았었기에 문제될게 없었다.

"가만? 아!! 그렇지."

순간 뭔가 생각이 났는지 한영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한 차장님. 저예요. 일전에 말씀하시던거 있죠. 조만간 자리를 만들 수 있을거 같아요. 예, 예, 물론이죠. 그렇게 아시고 차장님도 준비해두세요. 예."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를 상대로 전략과 술수가 여기 저기에서 난무하며 꽃을 피우는 하루였다.

"어서와 오빠."
"아직않자고 있었어?"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보니 자신을 맞이하는 것은 정미였다. 정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미는 황급히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보면서 정욱은 심정이 묘하였다.

"오빠 들어오는 것 보려고......"
"너무 늦었어. 그만 들어가서 자."

정욱은 그렇게 딱딱하게 지나가는 어조로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정욱의 뒷모습을 정미는 무척 섭섭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한테는 정말로 않됐지만은...... 나도 이럴 수밖에 없어."

정욱 역시 정미가 이 늦은 시간까지 왜 기다렸는지 잘 안다. 하지만은 알면서 정욱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 만큼 그리고 그 대상과 정미와 연관이 있었기에 더는 이대로 자신과 정미와의 관계를 방치할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진희는 잠들어 있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녀는 한동안 뜬눈으로 지샜는지 잠옷도 입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정욱은 대충 씻은후 옷을 갈아입고 그녀의 곁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살며시 그녀의 불러오른 배를 감싸 안았다.

"그나저나 넌 언제쯤 나올거니?"

이미 5개월을 넘긴 상태, 아직 아기가 나올려면은 멀었지만은 그래도 기다리기 지루한지 정욱이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진희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는 그날, 자신에게 붙어있던 막내라는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다. 아울러 이때까지 혼자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것에서도 해방이 될것이라는 기대도 하면서......
이런 저런 동상이몽이 교차하는 가운데 진희가 잠결에 정욱쪽으로 돌아누웠다. 정욱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잠을 청하였다. 얼마후 방안에는 적막과 고요속에서 두 사람의 코고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그런 그곳을 조심스레 방문을 열면서 안을 살펴보는 또다른 시선이 있었다. 조금 열어 젖힌 문틈으로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더니 잠시후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기가 막혀서 정말로......."

서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두 남녀를 바라보면서 기가 찬 듯 말을 잇지 못하였다. 휴일날 아침, 아내에게는 등산 하러 간다고 속이곤 몰래 집을 나와서 정욱의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해가 막 뜰 무렵 문이 열리고는 안에서 두 남녀가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서진은 순간 기절할뻔 하였다.
두 사람은 서진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동생,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연인.....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배가 불러오른 모습, 영락없는 임산부의 모습 그 자체였다. 형수와 아내의 얘기를 듣고 혹시나 했지만은 결과는 역시나였다. 어지러운 심중을 수습을 하면서 서진은 그들의 뒤를 몰래 따랐다.
복장은 등산복이었지만은 그들은 등산은 하지 않고 근처 공원과 한적한 산길을 거닐면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임산부인 그녀를 동생인 깊히 배려해서 그런 듯 하였다. 한시간 넘게 이곳 저곳을 거닐면서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곧 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본 서진은 난감하였다.

"형수님 말대로.....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하지만은......."

방금전 본 진희와 정욱의 모습, 너무나도 다정해 보이고 서로를 위해주는 그 모습, 그것을 보면서 서진은 형수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쉽사리 떨칠수 없었다. 그만큼 정욱과 진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정말로..... 미치겠네."

서진은 머릴 쥐어뜯으면서 소리쳤다. 진희가 임신중인 아이가 누구 자식을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복자? 아니면은 정욱의... 생각같아서는 직접 들어가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속시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들어가? 아니, 아니야. 그러는 것보단......."

애써 자신을 다독거리면서 서진은 마음을 가라 앉혔다. 지금은 아무래도 그 문제를 가지고 따지거나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여기면서..... 그리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에 신중하게 처신하기로 하였다.
일단은 정욱과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돌이킬수 없는 깊은 골이 패이는 것은 자신도 원하지 않았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자, 진희씨 들어요."
"고맙습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정미는 진희를 위해서 물냉면을 만들어서 식탁에 내놓는 정미의 호의에 진희는 깊히 감사를 하였다.

"사모님은요?"
"희준 오빠..... 아, 아니.... 누구 좀 만나러 나갔어요."

진희에게 언니의 사생활을 그렇게 세세하게 말한다는 것이 좀 그렇기에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건 그렇고..... 많이 불러올랐네요. 불편하지 않아요?"

정미는 진희의 배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하였다. 그러자 진희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였다

"이전보단 좀 거동하는데 이래 저래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에요.하지만은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건지.... 생각해보셨어요"
"..........."

이번에는 정미의 물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일들.... 사실 지금의 진희에겐 그 방면에 대해선 무계획이나 마찬가지니까.

"진희씨, 오빠 사랑해요?"
"정미씨 그건......."

진희는 정미의 물음에 그야말로 난감해하였다. 점심 먹자고 불러 내 놓고는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거론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으니 말이다. 하지만은 그런 그녀의 심중을 아랑곳 않은채 정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오빠랑 진희씨, 둘다 잘돼었으면은 좋겠어요. 차차리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요"
"무슨 말씀을........"
"뱃속의 아이 오빠 자식으로 만들면은........ 그러는 것이 좋을거 같은데......"
"??"

정미의 설명은 이러하였다. 진희와 정욱, 둘이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리고 태어날 아이는 정욱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여러 사실들은 절대 비밀로 붙이면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뱃속의 아기에게 아버지가 생기는 것이고..... 그리고 진희씨도 마음에 있는 상대랑 결혼을 하는 것이니까 일석 이조가 아닌가요"

순진무구한 정미의 말에 진희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그랬으면은 얼마나 좋을까요?"

정미의 말대로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 할수 있는 일이라면은 시행할수 있다면은 진작에 추진되었을 일들이다. 하지만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미씨 저 생각해줘서 그런 소리 하는 것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은 불가능해요. 절대로......"
"어떻게요?"
"제가 회장님이랑 결혼하려면은 저와 회장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해요. 그리고..... 뱃속의 아기의 내력도 말이죠."

현실적으로 자신과 정욱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욱의 형내외와 누나 내외들 그리고 회사에서도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인물들도 상당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욱의 형수 정유민, 그리고 언젠가 산부인과 근처에서 마주친 큰형수 김미혜가 있다. 그들이 알게 된 만큼 조만간 아니, 이미 모두들 다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정욱과 결혼을 추진한다?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다. 정욱이 원한다고 해도 진희 자신이 받아들일수 없었다.

"감정대로만 행동할수 없어요. 현실에서 저나 회장님은 자유로울수 없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진희의 말에 정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며 말없이 젓가락질을 하였다. 기껏 생각해줘가면서 말한건데 도리어 이 사람의 아픈데를 건드렸다고 생각을 하니 후회막급이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 진희는 냉면을 먹으면서 정미를 주시하였다.

"대리만족인가요......."

조금전에 정미가 한 말들..... 세상 물정과 이런 저런 기타 이해관계에 대한 무지라고 여기며 그렇게 생각을 하였지만은 가만 생각을 해보니 이렇게 살펴보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러다가 진희는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자신과 정욱을 이어줌으로 해서 그에 따른 심리적인 보상을 받으려는 대리만족의 욕구..... 지금 정미가 그렇지 않을까 정미는 서류상으로 정욱의 이모이다. 물론 정욱의 아버지가 죽음으로 해서 그 연결 고리가 끊어졌지만은 그래도 유교 윤리사회에서는 그런 포괄적인 친족관계는 존속되고 항상 효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애초부터 정욱과 맺어졌으면은 하는 바램은 일찍감찌 접어두고 진희를 정욱에게 이어주려고 한다면은..... 아버지의 연인이지만은 그래도 형식적인 서류상의 혈족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조금? 모험?심리를 발휘한다면은 가능할지 모른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등떠민 것이라면은..........
그렇게 진희랑 정욱이 맺어진다면은 정욱을 사랑하는 정미로써는 옆에서 연인의 행복을 이루었다는 그리고 이루어질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많이 괴로우시겠네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희는 그런 정미가 불쌍하였다. 얼마나 속앓이를 하였을까. 그리고 괴로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만 하였는지.....정미의 기분을 은연중에 느끼게 되자 진희는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리고 아울러 지금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해서도 착잡함을 감출수 없었다. 이렇다 할 정해진 것은 없지만은 아이를 낳고 난후에 정욱이 원한다면은 자신의 몸을 허락할 생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지만은 대책없이 일만 벌린다는 생각을 떨칠수 없었다. 그렇게 감정대로 기분대로만 행동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수 있을까. 그리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수 있는지 장담할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밤 정욱의 품에 안겨 잠들때는 그런 생각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은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자 노력을 하였지만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진희와 정미가 이렇게 앞날을 두고 괴로워하며 지내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도 두 남녀가 서로의 미래를 놓고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야반 도주 말고는 오빠는 전혀 생각할줄 아는게 없나요?"
"야반 도주, 야반 도주하는데......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라면은 뭐예요. 도데체....."

오늘 희준으로부터 정선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같이 결혼식 올리며 살자는 제의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정선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죄인도 아닌데 남몰래 도망가서 숨어 지내자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은..... 나, 너의 아버지한테 허락 받을 자신도 없어. 그리고......"
"않좋은 감정도 그대로이겠고요."

정선의 그 말에 희준은 아무런 답변을 못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은 내심 인정을 하면서......
그런 희준을 보면서 정선도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물론 그녀 자신도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희준과의 사이는 좀처럼 이전처럼 되돌아 가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희준 역시 자존심이 무척 강한 만큼 스스로 숙이며 그 밑에 들어갈 타입은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래도 그렇지.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내키지 않겠지만은 현재로써는 이 방법 말고는 없어."
"그럼 좀더 두고 봤다가........."
"소용없어. 좀더 기다린다고 해서 너의 아버지가 날 인정할거 같아. 천만에......"

그리고는 희준은 정선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한 몇 년동안 숨어 지내다가 아이 몇 명 낳고 나면은 그때 찾아 뵌다면은..... 어쩔수 없어서라도 우리 두사람 받아들이실거야. 그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희준의말에 정선은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자신은 상처한 몸이다. 그리고 자식하나 두지 않은 상태이고....... 형식적으로 자식이라고 할만한 대상이 여럿 있지만은 별로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런 만큼 희준과 같이 따로 살림을 차린다고 해서 뭐랄 사람은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 사항이니까.
하지만은 남몰래 숨어지낸다는 것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물론 희준과 아버지와의 사이를 생각한다면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은.......

"하지만은 왠지 그것만은......."
"혹시 정미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러면은 정미도 같이......."
"아, 아니 정미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희준은 잠시 생각하였다. 여동생을 두고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은 그럼 뭐란 말인가. 그러다가 희준은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혹시..... 아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희준의 말에 정선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희준은 정선이 뭣 때문에 머뭇거렸는지 알거같았다.
아마도 정선이 사라진다면은 정욱과 준기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이때까지 정욱이 준기와 이어지고 손을잡을수 있었던 이유가 정선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던가.

"왠만하면은 그런거 접어두도록 해. 않그래도 그 녀석 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던데....."
"무슨 소리예요?"

잠시 정선의 눈치를 살피던 희준은 이내 결심한 듯 사실을 털어 놓기로 하였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선의 결심이 굳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럴수가...... !!"

자신과 희준이 다시 만난 것 자체가 정욱이 벌인 일이었다는 것과 지금 정욱이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 낼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희준으로부터 듣게 된 정선의 심정은 그야 말로 충격 그자체였다.

"그건 그렇다 쳐도..... 그 애가 아버지를 몰아내려고 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요?"

다른건 몰라도 그건 좀처럼 인정할수 없다는 듯 정선이 반박을 하였다. 하지만은 희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설명을 하였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녀석이라면은 너의 아버지가 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본다는 것은 말이 않돼. 좀더 심하게 말을 해볼까. 너의 아버지 조만간의 다음 아니 최종 목표가 뭐라고 생각을 하니."
"뭔 소리예요?"
"너, 설마 너의 아버지가 부회장직에 만족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정선은 희준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대충 감이 잡혔다.
부회장으로 만족못한다면은 그럼 뭐란 말인가. 그 보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데 그 말은.........

"그럴수가......."
"사실이 그래. 그 녀석도 어쩔수 없어서라도 너의 아버지 내보내야 하겠기에 그러는 거겠지."
"그래서...... 나랑 오빠를 이렇게......."

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답하자 그제서야 정선은 현실을 직시할수 있을거 같았다.

"내가 니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 그 얘기니?"

이 자리에 없는 정욱에게 정선은 그렇게 외치며 속으로 외쳤다.

-"한 차장님. 도데체 뭔 말씀을 하는 거예요?"-
-"회장님. 이 이상은 않됩니다. 이 부회장 언젠가는 회장님 자리를 차지할겁니다. 그걸 두고만 보실겁니까?"-
-"저, 저기....... 저어......."-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실만도 합니다. 저도 이 부회장쪽 사람이라고 여기실테니까요. 하지만은 그전에 저는 이 회사의 일원입니다. 원칙과 공정성이 결여되어 가는 이 상황에서 가만 있을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나선겁니다. 회장님.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늑대같은 놈!!"

준기는 이를 부득 부득 갈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칙과 공정성이 결여되어 가는 이 상황을 더는 보고 있을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저 놈의 오늘날의 직책은 원칙과 공정성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소리인가. 그런거 따졌다면은 저 놈은 오늘 이 자리에 있을수가 없었다.

-"이럴 필요 없어요. 한차장님. 저, 이 부회장에게 딴 마음 같은 것 먹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큰형이랑 화해시키고 두분이서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고 확신한다면은 저 물러날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이준기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순진한 놈 같으니...... 어린놈이라 어쩔수 없구만"

저 놈 생각이 그랬다니..... 서윤과 자신이 화해를 하고 둘이서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 너무나도 순진 가련한 구상이 아닐수 없었기에 준기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저를 의심하실수 있겠지만은 이건 진심입니다. 회장님, 도움이 필요하다면은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도와드리겠습니다."-
-"미스 한..... 말인데........"-
-"아!! 회장님. 영혜랑 이번 일과는 상관없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제가 한 말이 심기거슬렸다면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은..... 영혜는.... 그 불편한 심기를 그 아이에게만 내비치지 말아주십시오. 그 아인 회장님을 너무나도....."-

탁, 더는 듣기 뭣한지 준기는 오디오를 껐다.

"수고했네. 정말로 고생 많군."
"과찬입니다."

옆에 서 있는 음침한 얼굴의 사내가 준기의 격려에 무뚝뚝한 어조로 답한다. 그러자 준기는 주머니에서 얇은 봉투 하나를 꺼내 건내주며 말하였다.

"앞으로도 더 수고해주게."
"감사합니다."

사내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는 준기에게 넙쭉 인사를 건낸후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준기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였다.

"이 개자식!! 이날 이때까지 지놈 키워준게 누군데......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해."

근래에 들어서 발생한 해외 은행에 예치된 거액의 비밀 계좌의 실종으로 인해서 준기는 그 원인이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단정짓고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 뒷조사를 하였다. 한영성 차장은 그중 한사람이다. 준기쪽의 실세인데다가 몇몇 기밀 사항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를 빼 놓을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들어 한영성 차장이 비서실의 한영혜와 자주 만난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과거 그를 비서실로 발령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의심을 품고 뒷조사를 하였다.
결국 오늘 흥신소 직원이 도청 내역이 담긴 테이프를 건내주면서 모든 정황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자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한영성이 차지하려는 거란 것을.......

"배은망덕한 자식..... 내가 너를 그냥 두면은 사람이 아니다."

이를 갈면서 준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삐리리릭~~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준기의 행동은 제동이 걸렸다.

"여보세요. 응, 그래 무슨 일이야."

순간 준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두손은 부들 부들 떨리기까지 하였다.

"아, 알았어. 한번 뒤를 조사를...... 그래. 부탁해. 수고해주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고는 준기는 황급히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 벌컥 연거푸 마시기를 여러차례..... 그러다 잠시후 준기는 안정을 되찾았다.

"전부, 다...... 꿀꺽을 해!! 내 이놈을 그냥....."

말은 그렇게 했지만은 직접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아직 현실 감각이 남아 있는 그였기에 침착할수 있었다. 지금 내뱉은 말은 단지 분을 삭히기 위한 것일뿐....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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