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나랑 사귀자!”
맹세하건데, 정말로 슬픈 맹세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물론 고백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인관계가 넓어본 적이 없다. 기껏 학교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 몇. 학교에서도 그다지 대화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방과후에는 거의 접점이 없다. 대인관계가 짧은 만큼, 이성과 대화를 해본 적도 많지 않다. 또한, 좀 전에도 말했듯이 이 지은이라는 여학생과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화를 몇 번 나눠본 적도 없는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고백.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날 놀리려는 심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리는 게 아니라면. 진심이라면, 내가 이 애의 말을 받아주지 않으면 분명 실례일 것이다. 하지만, 날 놀리고 싶은 것이라면. 진지한 대답은 웃음거리가 되겠지.
그래서 진심이든 장난이든 상관없이 이 애의 고백을 받아줄 말을 떠올렸다.
“싫어.”
조금 직설적이었나.
“왜?”
왜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고, 솔직히 말하면 지은이라는 여자애는, 수준급의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매가 날카로워서 지금처럼 무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매력으로 느낄 수도 있다. 피부도 하얗고 깨끗하다. 검고 긴 머리카락도 윤기가 흐른다. 교복 위로만 보이는 몸매만 해도 상당히 잘빠졌다. 게다가 가슴 사이즈도 평균치를 가뿐히 넘는 듯하고. 굳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뽑으라면,
“넌 너무 키가 커.”
“네가 작은 거잖아!”
아, 나 상처입었다.
“그리고 난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더 좋아.”
“그리고?”
지은은 나를 추궁하듯 물었다. 더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그걸론 납득 못해!”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등에서부터 느껴졌다. 벽이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지은이 따라붙고 뒷걸음질 치고, 따라붙고를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벽에 부딪힌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조금쯤 강격하게 나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고백해 준 건 기쁘지만, 난 아직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도 자신도 없다.
“내가 널 납득시켜야 하는 이유가 뭐지?”
“…….”
“내가 널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런 이유로는 부족해?”
“부족해. 겨우 그 정도로. 겨우 그 정도로…….”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 따위 없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 말에 지은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지은에게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다른 녀석들과 떠들고 있는 성진이 녀석이 보였다. 성진이 녀석이 교실에 들어온 나를 발견했는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이쪽은 흔들지 않았다.
“뭐하다 왔어?”
“맞는 줄 알았어.”
“뭐?”
무서웠다.
학교의 정식 수업 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보충과 야간 자율 학습을 신청한 학생들만이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나는 당연히 그런 것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널널한 학교로 지원한 거니까.
그래서 4시 35분. 나는 집에 도착했다.
내 방문을 열고 침대에 가방을 던져 넣은 다음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려보곤 한다. 대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리지만.
역시, 라고 할까.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나른한 게, 점점 눈이 감겼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는 6월의 따뜻한 날씨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
나는 이상하게 3, 4월보다는 6월이 더 졸리다. 그건 어쩌면 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반항하고, 반발심을 같는 성격. 3, 4월은 많은 사람들이 춘곤증에 시달리니까, 그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는 것이다. 그리곤 6월이 되면 반발하는 것에 지쳐 곧잘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6월은 졸리기만 한 게 아니라, 방금처럼 한심한 생각이 자주 들게 만든다. 물론 1년 12개월 365일 쓸데없는 생각뿐이긴 하지만 6월에는 특히 심하다. 한심한 생각 빈도를 분수로 나타내면 1년을 1로 봤을 때 그 중 8/10이 6월 달에 편중되어 있을 정도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정말로 한심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한심스런 날이었다. 나는 한심스런 나를 무척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어제오늘의 나도 무척이나 부끄럽다. 그리고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는 나도 부끄럽다. 한심하다.
“으윽, 으윽.”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나른한 몸을 일으키며 부엌 쪽을 바라보자 누나가 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잠이 퍼뜩 깼다. 소파에서 일어나 얼른 누나를 향해 달렸다.
“누나 괜찮아?”
“응. 으음…….”
비틀거리는 누나를 부축했다. 누나는 고개를 숙인 채 고통의 신음을 흘리고 있다.
“누나. 어디 아파? 머리가 아파?”
“음. 아냐. 괜찮아. 으윽.”
전혀 괜찮지 않은 찡그린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는 누나.
“그냥.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많이 먹었더니 머리가 아푸네.”
“아, 그래.”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통과 숟가락을 내밀어 보여주는 누나. 맥이 빠졌다. 누나를 부축하던 팔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꺅!”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누나. 누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원망스런 눈빛을 보냈다.
“너무해.”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사람을 걱정시켜놓은 다음 하는 말이 아이스크림 때문이라니. 물론 나도 바보다. 숟가락과 아이스크림 통을 눈치도 못 채다니.
아까부터 한심한 생각에 한심한 짓거리에.
“그보다 누나, 오늘은 왜 이리 일찍 왔어?”
“무슨 소리야. 벌써 9시인데.”
“9시?”
시계를 보자 정말로 정각 9시였다. 베란다 쪽을 바라보자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밥 먹을래?”
시계를 보면서 또 다시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무렵, 누나가 말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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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진행이 왜이리 더뎌.
얼른 하지.
맹세하건데, 정말로 슬픈 맹세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물론 고백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인관계가 넓어본 적이 없다. 기껏 학교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 몇. 학교에서도 그다지 대화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방과후에는 거의 접점이 없다. 대인관계가 짧은 만큼, 이성과 대화를 해본 적도 많지 않다. 또한, 좀 전에도 말했듯이 이 지은이라는 여학생과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화를 몇 번 나눠본 적도 없는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고백.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날 놀리려는 심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리는 게 아니라면. 진심이라면, 내가 이 애의 말을 받아주지 않으면 분명 실례일 것이다. 하지만, 날 놀리고 싶은 것이라면. 진지한 대답은 웃음거리가 되겠지.
그래서 진심이든 장난이든 상관없이 이 애의 고백을 받아줄 말을 떠올렸다.
“싫어.”
조금 직설적이었나.
“왜?”
왜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고, 솔직히 말하면 지은이라는 여자애는, 수준급의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매가 날카로워서 지금처럼 무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매력으로 느낄 수도 있다. 피부도 하얗고 깨끗하다. 검고 긴 머리카락도 윤기가 흐른다. 교복 위로만 보이는 몸매만 해도 상당히 잘빠졌다. 게다가 가슴 사이즈도 평균치를 가뿐히 넘는 듯하고. 굳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뽑으라면,
“넌 너무 키가 커.”
“네가 작은 거잖아!”
아, 나 상처입었다.
“그리고 난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더 좋아.”
“그리고?”
지은은 나를 추궁하듯 물었다. 더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그걸론 납득 못해!”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등에서부터 느껴졌다. 벽이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지은이 따라붙고 뒷걸음질 치고, 따라붙고를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벽에 부딪힌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조금쯤 강격하게 나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고백해 준 건 기쁘지만, 난 아직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도 자신도 없다.
“내가 널 납득시켜야 하는 이유가 뭐지?”
“…….”
“내가 널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런 이유로는 부족해?”
“부족해. 겨우 그 정도로. 겨우 그 정도로…….”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 따위 없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 말에 지은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지은에게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다른 녀석들과 떠들고 있는 성진이 녀석이 보였다. 성진이 녀석이 교실에 들어온 나를 발견했는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이쪽은 흔들지 않았다.
“뭐하다 왔어?”
“맞는 줄 알았어.”
“뭐?”
무서웠다.
학교의 정식 수업 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보충과 야간 자율 학습을 신청한 학생들만이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나는 당연히 그런 것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널널한 학교로 지원한 거니까.
그래서 4시 35분. 나는 집에 도착했다.
내 방문을 열고 침대에 가방을 던져 넣은 다음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려보곤 한다. 대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리지만.
역시, 라고 할까.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나른한 게, 점점 눈이 감겼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는 6월의 따뜻한 날씨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
나는 이상하게 3, 4월보다는 6월이 더 졸리다. 그건 어쩌면 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반항하고, 반발심을 같는 성격. 3, 4월은 많은 사람들이 춘곤증에 시달리니까, 그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는 것이다. 그리곤 6월이 되면 반발하는 것에 지쳐 곧잘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6월은 졸리기만 한 게 아니라, 방금처럼 한심한 생각이 자주 들게 만든다. 물론 1년 12개월 365일 쓸데없는 생각뿐이긴 하지만 6월에는 특히 심하다. 한심한 생각 빈도를 분수로 나타내면 1년을 1로 봤을 때 그 중 8/10이 6월 달에 편중되어 있을 정도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정말로 한심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한심스런 날이었다. 나는 한심스런 나를 무척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어제오늘의 나도 무척이나 부끄럽다. 그리고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는 나도 부끄럽다. 한심하다.
“으윽, 으윽.”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나른한 몸을 일으키며 부엌 쪽을 바라보자 누나가 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잠이 퍼뜩 깼다. 소파에서 일어나 얼른 누나를 향해 달렸다.
“누나 괜찮아?”
“응. 으음…….”
비틀거리는 누나를 부축했다. 누나는 고개를 숙인 채 고통의 신음을 흘리고 있다.
“누나. 어디 아파? 머리가 아파?”
“음. 아냐. 괜찮아. 으윽.”
전혀 괜찮지 않은 찡그린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는 누나.
“그냥.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많이 먹었더니 머리가 아푸네.”
“아, 그래.”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통과 숟가락을 내밀어 보여주는 누나. 맥이 빠졌다. 누나를 부축하던 팔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꺅!”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누나. 누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원망스런 눈빛을 보냈다.
“너무해.”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사람을 걱정시켜놓은 다음 하는 말이 아이스크림 때문이라니. 물론 나도 바보다. 숟가락과 아이스크림 통을 눈치도 못 채다니.
아까부터 한심한 생각에 한심한 짓거리에.
“그보다 누나, 오늘은 왜 이리 일찍 왔어?”
“무슨 소리야. 벌써 9시인데.”
“9시?”
시계를 보자 정말로 정각 9시였다. 베란다 쪽을 바라보자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밥 먹을래?”
시계를 보면서 또 다시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무렵, 누나가 말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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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진행이 왜이리 더뎌.
얼른 하지.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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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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