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터 벨트라... 미국 포르노에 자주 출몰하는 그 기묘한 의복이 마치 성수 새엄마를 위해 발명된 것 같았다. 포르노의 서양 여배우들이 입을 때는 유치해 보이더니... 문고리를 잡고 선 그녀의 반투명한 원피스에 내비치는 복잡한 천조각과 끈들을 보자, 바지 속에서 자지가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마치, 이렇게 입으면 되겠냐고 물어보는 듯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원피스 자락을 찰랑이며 몸을 돌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준비 상태로 볼 때, 그녀는 성대한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택시를 타고 올 때부터 분명히 그녀가 섹스를 요구할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어쩌면, 내 데이트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그녀는 나와의 육체적 유희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탁자 위의 반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홀짝 하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수 새엄마는 유진이 새벽 한 시 쯤은 되어야 귀가할 거라고 했지만, 워낙 돌출적인 계집애라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어, 마음이 조금은 조급해져 있었다.
올라오기 전에 그녀가 나를 유혹하며 했던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내게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그 날의 데이트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냈다고 내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트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다시 ‘미미’로 돌아가 버린 게 더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주인님’이라는 세 글자가 ‘오늘 하라는 대로 잘 했으니 상을 주세요...’라는 의미로 들렸다.
‘뭐... 한 번에 다 되겠어? 쩝.’
그녀가 원하는 상을 주기 위해, 안방으로 따라 들어갔지만 원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주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의 위안을 받기 위해 피학적 쾌락을 원할 테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소위, 보편적인... 애정이 넘치는 행위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안방에 들어간 내가 ‘침대에 누워요.’라고 했을 때, 그녀의 도발적인 두 눈에 잠시 실망이 깃드는 걸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내가 ‘기어와서 바지를 벗겨, 미미..’ 이렇게 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옷을 벗고 침대로 다가가자 그녀가 고르고 골라 침대 머리맡 테이블에 준비해 둔 묘한 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풋!’
아마, 아마추어인 나를 위해 가장 초보적인 것만을 선택해 추천한 듯... 개목걸이와 가죽 채찍... 일부러 까칠하게 처리한 듯한 굵은 빨랫줄처럼 보이는 로프... 그리고 조그만 혹이 달린 걸 제외하면 내 아랫도리랑 똑같이 생긴 막대기... 본드처럼 생긴 튜브 하나... 근데 메추리알 같이 생긴 저것들은 또 뭐냐... 이런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흐흐흐......’
척 보기만 해도 그녀의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개목걸이를 한 다음 이것저것 내 명령에 따르다가, 시원찮아 채찍으로 몇 대 맞을 것이다. 그리고도 시원찮아 야단을 맞은 후, 벌을 받아야 한다며 끈으로 묶이고... 막대기랑 메추리알로 성기나 항문을 고문당한 다음 흥분한 나의 삽입을 받아들이는 순서려니...
하지만 나는 조용히 침대에 기어올라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웠다. 그리고, 나를 힐끗 쳐다보고 반대쪽으로 돌아가 버린 그녀의 고개를 손으로 당긴 다음, 향긋한 체취를 맡으며 부드러운 뺨의 피부를 내 입술로 스쳐 주었다. 반투명한 원피스 천에 덮여 있는 유방은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하게 주물러 주었다.
그 다음은 식순에 의해 허벅지로.... 부드러운 스타킹에 둘러싸인 허벅지 안쪽의 탄력을 한 옹큼씩 쥐어주며 점점 위로 올라갔다. 가터벨트의 끈과 고리가 손목 근처에서 느껴졌다. 탄성이 좋은 석유 화학 섬유의 발달로 인해 지금은 성욕을 자극하는 패션으로 전락해버린 이 길다랗고 납작한 끈... 중세 유럽 작가가 쓴 도색 소설을 몰래 보다, 가터벨트 그림을 보고 무척이나 흥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책 지문에 언급된 가터벨트가 그림의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 하다, 결국 유미 누나한테 물어보고 말았다.
“누나.. 혹시 가터벨트가 뭔지 알아?”
대답은 알 밤 하나... 하지만 원래 존재 목적이 뭔지를 알자, 백과사전을 들고 유미 누나에게 다시 따지러 갔었다. 얼굴이 빨개졌던 누나... 그저 조금 서툴고 청순한 성욕만이 있던 그 시절... 유미 누나에게 어떻게 한 번 가터벨트를 입혀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던 기억...
삼각형으로 보이는 팬티의 아래쪽 꼭지점 언저리에 손가락을 집중했다. 양쪽의 볼록한 융기 사이로 길게 패인 금의 윤곽을 찾아 위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말랑말랑한 그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자 드디어 찾았다는 듯 자지가 빳빳이 일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까지는 그저 시체처럼 묵묵히 누워 있던 성수 새엄마의 눈 끝도 파르르 떨렸다. 더 작업을 하려면 아무래도 거추장스러운 원피스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일으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일으켰다.
“저는...”
그녀가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저 정성껏 차려 입은 파티용 의상이 아무 쓸모없이 다시 벗겨져야 하는 것에 대한 반항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파티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해는 하지만 오늘은 내 의지대로 하자는 뜻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그러면, 그런 장면에서 대개는 반항하지 못하고 주인공의 뜻대로 따르는 법인데...
“다르게 해 줘요....”
“...”
“오래 기다렸는데.... 주인님... 응?”
갑자기 확 밀려오는 짜증... 그건 평소 영화도 보지 않는 그녀의 무지 때문은 아니었다. 한 번만 은은한 관계를 해보자는 내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그녀의 이기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특별한 남자로 여기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그녀 사이에 다른 누구와는 다른 라뽀(rapports, 대충 기본적인 유대감이라는 의미. 저자 주)가 있는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내가 ‘잡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뭇 사내들... 그녀에게 굴욕적인 섹스를 강요하며 천한 성욕을 충족시키는 못된 녀석들이라 여기고 있는 그 ‘잡놈들’하고 똑 같이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나도 그 많은 ‘잡놈들’ 중 하나일 뿐, 그녀에게 더 이상이 아닌 것이다. 그걸 원한다면...
“채찍 가지고 와, 미미!”
엉금엉금 기어가 테이블의 채찍을 줍는 그녀의 음란한 엉덩이를 보면서, 일어나 섰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걸 입으로 물고 다시 기어오는 건 뭔가? 나를 가르치려는 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만족해서 웃기라도 할 것이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표정으로 그녀는 내게 기어와 턱을 치들었다. 이런 표정은 배운 걸까? 아니면 타고난 걸까? 잔인해지고 싶은 욕구에 불을 지르는 저 표정...
먼지털이처럼 생긴 채찍을 손으로 잡고 가볍게 그녀의 등을 후려쳤다. ‘짜악!’ 소리와 함께, ‘흑!’하는 그녀의 작은 비명... 너무 세게 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낭창거려서 세기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빨아.”
덜렁거리고 있던 기둥을 그녀가 감아쥐었다. 전기처럼 짜르르 쾌감이 밀려 왔다. 그녀가 눈을 감더니, 혀를 내밀어 그 끝으로 귀두 끝을 핥았다. 내게 새디스트의 역할을 하게 해 놓고, 그걸 즐기고 있는 그녀의 얌체 같은 심성이 얄미웠다.
‘쫘악!’
“흑!”
“빨기나 잘해! 오버하지 말고...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그녀가 다급하게 귀두를 입술 사이에 머금었다. 역시...! 정말 죽이는 솜씨다. 흉폭해지고 싶은 욕구... 그녀의 자극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건가?
“열중 쉬어!”
내가 이거 무슨 짓?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손을 뒤로 하고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민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금새 사라졌다. 에라, 모르겠다. 손으로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을 한옹큼 움켜 쥐었다. 오늘만 맘껏 괴롭혀 주자.
“입 떼면 각오해!”
꽉 죄여 오는 입술... 오물조물하면서도 물렁거리는 입 속의 그 무엇... 처음에는 그녀의 머리만을 앞뒤로 움직여 그 오묘한 구조물을 맛봤지만, 조금 후에는 내 허리까지 앞뒤로 퉁기며 그녀의 목구멍을 유린하고 있었다. 나는 뭉텅뭉텅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그녀는 숨길이 막히는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열중 쉬어 자세를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견뎌보려 하더니...
“헉! 헉! 헉! ...”
목을 돌려 내 자지에서 벗어나면서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괴롭게 숨을 헐떡 거렸다. 진짜 그럴까? 이건 성행위가 아니라 그냥 폭력일 뿐인데... 이런 고통에서도 성적인 흥분을 느낄까? ‘쫘악!’
“입 떼지 말라니까...!”
“다시 할게요, 주인님!”
역시 느낀다. 허리를 다시 세우고 허둥지둥 자지를 물어 오는 그녀의 눈이 정염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더 달라붙는 듯한 그녀의 입술과 혀...! 요란하게 쩝쩝거리는 소리...
“됐어 그만. 이제 벗어. 전부 다.”
아 저런...! 벗겨진 그녀의 등에 길게 난 붉은 줄 몇 가닥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저렇게 빨개질 정도면 꽤 아팠을 텐데... 몸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그녀가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로프로 묶어줄까? 아니... 그러다가 자국 남을 텐데... 그게 안 없어지고 성수 아빠가 볼 때까지 남아 있으면 안될 테니까...
“엎드려. 엉덩이 쳐들고... 옳지.”
으윽! 같은 여자 몸인데도 왜 이 여자만 이런 몸매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그 뒷 자태는 공자님이라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허리에서 항아리처럼 퍼지는 엉덩이, 그 사이 깊게 패여 가는 고랑의 곡선... 그냥 내 기둥을 꽂아버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테이블에 가서 모조 성기를 들고 왔다. 색깔 한 번 촌스럽네. 게다가 스위치를 넣으니, 조잡하게 안쪽에서 불까지 켜졌다. 징징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르르 떨면서, 꿈틀거리는 좆 같은 녀석...
“흐응.....!”
그녀를 별로 만진 적이 없는데, 적갈색의 꽃잎이 벌써 맑은 액체로 젖어 있었다. 거기에 징징거리는 녀석을 대 주니, 그녀가 신음을 흘리며 항문을 바짝 오무렸다. 녀석의 뱀대가리 같은 머리를 치골 아래에서 구멍 사이의 거리를 왕복시켜 주었다.
“좋아?”
“네.”
“어떻게 해 줄까?”
“너...넣어 주세요.”
아아~~ 하고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꽃잎을 팽팽하게 벌리며 녀석의 머리가 그 사이로 사라졌다. 저항이 만만찮을 텐데도 전혀 문제 없다는 듯 힘 있게 불끈 거리는 그 녀석... 조그마한 뿔은... 아하...! 요놈은 음핵 담당. 그 괘씸한 작은 막대가 나보다 더 나은 듯 했다. 성수 새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 보면...
“... 하아.... 하아... 하아...”
“나 말고 주인님이 몇 명이야?”
대답 없이 신음만 흘리자 자시 ‘짝!’하고 엉덩이를 채찍으로 두들겨 주었다. 그게 신호라는 듯 더 증폭되는 신음소리...
“대답해!”
“흐으... 흐으... 모... 몰라요... 흐으...”
모르다니! 쳇! 그 말이 내겐 셀 수 없이 많다는 말처럼 들렸다. 막대를 타고 흐르는 샘물을 손가락으로 뒤쪽 구멍으로 떠서 날랐다. 금새 매끈거리는 뒤쪽 구멍을 검지로 밀자 몸 쪽으로 밀려 후퇴하더니,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자 드디어 입을 벌리고 말았다. 동시에 등줄기의 길다란 융기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휘어졌다.
“흐억~~! 아아~~! 주... 주인님! 아아~~!”
쫄깃거리는 괄약근이 손가락 주위를 애워 쌌다. 엄청 조이는구나. 뒷구멍까지 손가락으로 마찰시켜주자 경험이 많은 그녀도 그런 자극에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침대에 입을 묻고 으으응~~! 하더니 호흡을 딱 멈췄다. 손에 쥐고 있는 막대에 강한 저항이 느껴지고, 괄약근은 손가락을 밀어내려 있는 힘껏 조여 왔다. 한 동안 그러고 있더니, 다시 시작되는 신음소리...
“흐윽... 흐윽... 흐윽...”
막대를 빼내고 그녀의 엉덩이 바로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게 빠져나간 빈자리가 허전한 듯 헤프게 열려있는 꽃잎을 막대만큼 딱딱해진 좆 머리로 문질러 주었다. 허리를 밀자 다시 한 번 팽팽히 벌어지며 불기둥을 집어 삼키는 연한 꽃잎...
‘짝!’
“으윽...!”
“힘 줘.”
항문이 움찔거리며, 보짓살이 기둥을 조여 왔다. 그녀가 허리를 꿈틀대며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느리지만 껍질을 벗기겠다는 듯 강한 압력... 아득한 늪 속에 빠져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를 쥐어 그녀의 움직임을 멈춰 두고 내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한 꽃잎이 허리를 밀면 움푹 함몰되었다가, 빼면 놓치기 싫다는 듯 기둥을 따라오고, 한 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허연 거품이 이는 액체가 기둥의 길이를 따라 질펀하게 묻어 나왔다. 밀려오는 쾌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빨라지고, 퍽퍽하며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커졌다.
“내가 누구야?”
“흐응... 흐응... 주인님... 흐응...”
“너는, 미미야?”
“흐응... 흐응... 주인님 강아지... 흐응...”
소유욕의 충족에 의한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체위를 바꿔 내가 주저앉고 그녀를 내 위로 올렸다. 그녀가 몸 중심에 내 기둥을 꽂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마치 남자의 성욕 충족을 위해 태어난 짐승처럼 보였다. 아... 그러네. 성수 아빠한테 이 여자는... 그런 의미려니... 훈련 받은 애완 동물.
“남편이 알아? 나랑 이러는 거?”
“흐응... 몰라요... 아아... 아아...”
“성수랑 이러는 건?”
“몰라요... 아아... 아아...”
성수의 친엄마는 어땠을까?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남편의 구속이 싫어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 여자도 마찬가지일테고... 사람이 아니라 진짜 애완동물이면, 버려진 고양이처럼 스스로 먹이를 구하며 살 텐데...
뭔가 막연한 희망이 들었다. 이 여자는 남편에게 완전히 정신적으로 복종하는 건 아니다. 성수와 나랑 이럴 수 있는 걸 보면...다만 혼자 먹이를 구하며 사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울 뿐이다.
탄탄한 엉덩이 살을 두 손으로 움켜 쥐었다. 침대의 탄력을 이용해 허리를 쳐 올리기 시작했다. 내 움직임에 그녀가 완벽하게 호응해 왔다. 퍽! 퍽! 하는 소리가 시계로 재지도 않는데 정확한 간격을 두고 울려 퍼졌다.
“흐응~~ 흐응~~ 아~~ 주인님~~ 아아~~”
밀려 올라오는 쾌감으로 꽉 찬 뭔가가 최대한 부풀어 올랐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 자연히 내 얼굴도 찡그려지고 입에서 으윽!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터질 것 같다...!
“아아~~! 아아~~! 아아~~!”
“으읏~~!”
불꽃이 터니는 걸 보는 순간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닫혔던 문이 열리며, 그녀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몸에서 나간 정액이 그녀의 머리끝까지 퍼지는 듯 한 기분...
집에 도착할 때 쯤엔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식구들이 다 자고 있을 테니, 벨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기분 나쁜 ‘텅!’하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현관문을 최대한 조용히 열고... 뭔가 빠진 듯 한데... 유미 누나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유미 누나의 방을 살폈다. 불빛이 문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깨어 있었다면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나왔을 텐데...
“누나 자?”
“.......”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에도... 어딜 간 걸까? 운동화를 신고 나갔으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텐데...
다시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 밤에 야산 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테니... 놀이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으슥하기는 놀이터도 마찬가지였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줄지어진 벤치 하나에 두 사람의 컴컴한 그림자가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괜한 실례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며 멀리 우회했다. 벤치의 뒤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저 얼굴만 확인할 만큼만 가면 되니...
“미안해요, 오빠.”
유미 누나의 목소리였다. 그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진규 군? 아... 맞네. 이 밤에 여기까지 찾아온 건 다시 만나고 싶어서겠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잘 해봐, 진규 형.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유미 누나의 마음이 내 쪽으로 향해 있더라도, 그리고 내 감정이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더라도, 어떻게든 진규 군과 유미 누나의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되면 사실을 밝혀서라도...’
유미 누나는 아직 자신과 내가 같은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집착을 가질 수 있는 건, 한 핏줄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남매끼리 가질 수 있는 육체적 관계의 한계를 이미 넘어버렸으니...
이성으로서 유미 누나와 내게는 미래가 없었다. 유미 누나에게 나처럼 난잡한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을 갖추라고 강요하는 건, 나가서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을 테니... 그녀의 미래는 진규 군한테 있는 것이다. 누나가 진실을 죽을 때까지 모르는 채 그와 결혼해 살던가, 아니면 나와의 육체 관계를 그냥 헤프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먼 훗날이 되었을 때 진실을 알게 되는 게 가장 좋은 길이었다.
‘텅!’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에 ‘끼익’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유미 누나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수호, 자니?”
눈을 감았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침대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그녀의 채취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자는 척... 그녀의 차가운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입술에 그녀의 차가운 입술이 잠깐 붙었다 떨어졌다. 다시 멀어져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 조심스러운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눈을 뜨고 어두운 천정을 쳐다 보았다.
‘휴.... 난감하네...’
그 키스로 진규 군이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진규 군에 돌아가게 하려면...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해. 누나에게... 그것도 멀지 않은 미래에...
송년회라는 문화가 우리나라 뿐 만은 아닐 테지만, 유독 거창하게 치르는 나라 중의 하나인 건 분명했다. 송년회가 없으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 사실일 것이다. 우리 집도 그 경제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고자, 고기 집에서 거창하게 송년회를 치루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직장인들의 긴장이 다 풀어져 있었지만, 아빠의 간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엄마의 억지로 고기만 우적우적 씹었다. 고기를 먹는데 술을 못먹다니...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가 ‘간성 혼수’였기 때문에, 엄마의 걱정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귀가한 후, 어린 것들만 부족한 알콜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집을 나왔다.
광식 군과 우리 자매, 그리고 나... 진규 군 한 명이 빠진 공백이 크긴 컸다. 몇 개월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그가 그 동안 행사 때마다 거의 우리 식구처럼 참여했기 때문...
[여보세요?]
[오빠, 나!]
[유진이구나. 이 밤에 웬일이니?]
[나 오늘 방학했어.]
[그래... 근데 그게 왜?]
[글구 성적표 나왔거든.]
[오... 그래? 이번에는 어떠니?]
[호호호. 나 우등생이야, 오빠.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해.]
[몇 등이나 했는데 그래?]
[짠~! 15등.]
[위에서?]
[아니... 헤헤. 아래에서...]
[어이구, 우등생이십니다. 아래 열 네 명이나 있고...]
[오빠, 약속지켜야지.]
[뭐? 뽀뽀?]
[응... 입술에... 히히.]
[알았어. 월요일에 오면 해줄게.]
[지금은 안 돼?]
[오빠가 지금 역사적인 송년 모임에 참여 중이거든? 그러니 그런 사소한 일은 나중에 해.]
[오빠네 식구끼리?]
[응.]
[유미 언니도 있어?]
[그래.]
[나두 나가면 안돼?]
안돼... 하려다 말았다. 성수가 부탁했으니... 근데 이 계집애가 진짜 날 남자로 생각하는 걸까? 그러면 키스는 영 곤란한데...
[그래 와라.]
[히히. 갈게. 어디야?]
[대신 나하고 약속 하나 해라.]
[뭔데?]
[새엄마한테 다녀오겠습니다... 늦더라도 오늘 중으로 꼭 귀가하겠습니다... 하고 와.]
[......]
[그냥 집에 있던가.]
[알았어. 하면 되잖아. 체~~!!]
얘는 밝다. 내가 아는 세상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얘다. 그런 얘한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어른들이 잘못이지. 얘한테 어떻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냐.... 성수야. 얘랑 얘 새엄마 사이에 뭔가 애틋한 정이라도 있어야지... 새엄마보다는 김 유미를 더 좋아하는 얜데... 그냥 새엄마랑 단 둘이 무인도에 보내 버릴까? 크크크.
팔랑팔랑하는 하얀 성적표를 의기양양하게 유진이 들고 나올 때 쯤, 우리는 벌써 3차는 어디 갈까하고 의논(?)하던 중이었다. 붙임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계집애가 처음 보는 광식 군하고 선미 누나와 친해지는 데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포상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유진이 정말 대단하다. 볼 때 마다 일취월장하네.”
유미 누나의 칭찬에 유진이 내게 바짝 붙어 속삭였다.
“일치얼짱? 좋은 말이지 오빠?”
세상에... 일취월장도 모르는 애가 어떻게 반에서 25등을 한다는 말인가?
“응, 얼짱하고 똑같이 일치한다는 뜻이니까 좋은 말이지. 아얏!”
“호호호호! 과외선생님치고는 형편없다.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배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유진아. 그냥 세상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이면 되지. 무식한 게 행복한 거지, 유식한 게 행복한 건 아니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총명해. 못된 학교 교육만 좀 덜 받았을 뿐이지... 나도 유진에게 속삭여 주었다.
“뽀뽀해 줄까?”
“지금?”
“응, 지금.”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상 받는 거니까 축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거지.”
“몰라, 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뽀뽀는 다음에 해 주기로 하고, 대신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재잘거리는 유진... 집만 벗어나면 이렇게 밝아지는데... 얘 성격이 원래 이런데... 집에 보관해 놓은 고급 양주를 올해 내로 꼭 소진해야한다고 우기는 선미 누나 때문에 3차는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유미 누나는 썩 내키지 않아하는 듯 했지만...
“나, 유진이 데려다 주고 갈게.”
“어머, 오빠 나도 가고 싶어.”
“그냥 가. 술 마시러 가는 건데...”
“그래도... 그냥 앉아있기만 할게.”
“그래, 수호야. 같이 데려가자.”
“안 돼, 누나.”
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오늘 들어온다고 새엄마랑 약속했잖아...”
“......”
표정이 좋지 않은 유진을 데리고 택시를 타러 갔다.
“됐어, 오빠. 그냥 나 혼자 갈게.”
“괜찮아. 데려다 줄게...”
“걱정 마, 딴 데 새지 않을 거야. 나 약속한 거는 지켜...”
“너 감시하러 따라가는 거 아니야. 밤이라 그렇지.”
“호호호, 밤엔 내가 제일 무섭지. 맨날 혼자 다니는데 뭐...”
극구 혼자 가겠다고 해서, 택시만 태워 보냈다. 약속은 지킨다는 그 애 말은 신뢰성이 있었다. 너무 솔직한게 탈이지,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얘는 아니니까...
[삐리리리~~~]
[여보세요?]
[수호니?]
[아, 선생... 아니, 은혜 누나?]
[응, 잘 있었어?]
[네. 가신 일은 잘 됐어요?]
[응, 잘 됐어. 그것도 너무...]
[축하해요.]
[덕분에 시간이 별루 없는데, 얼굴 한 번 보여줄래?]
[그래요. 저도 누나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요.]
[호호호... 아부는...]
유학 가면 만나기 힘들 테니, 어쩌면 다음에 만나는 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착각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원피스 자락을 찰랑이며 몸을 돌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준비 상태로 볼 때, 그녀는 성대한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택시를 타고 올 때부터 분명히 그녀가 섹스를 요구할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어쩌면, 내 데이트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그녀는 나와의 육체적 유희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탁자 위의 반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홀짝 하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수 새엄마는 유진이 새벽 한 시 쯤은 되어야 귀가할 거라고 했지만, 워낙 돌출적인 계집애라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어, 마음이 조금은 조급해져 있었다.
올라오기 전에 그녀가 나를 유혹하며 했던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내게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그 날의 데이트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냈다고 내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트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다시 ‘미미’로 돌아가 버린 게 더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주인님’이라는 세 글자가 ‘오늘 하라는 대로 잘 했으니 상을 주세요...’라는 의미로 들렸다.
‘뭐... 한 번에 다 되겠어? 쩝.’
그녀가 원하는 상을 주기 위해, 안방으로 따라 들어갔지만 원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주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의 위안을 받기 위해 피학적 쾌락을 원할 테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소위, 보편적인... 애정이 넘치는 행위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안방에 들어간 내가 ‘침대에 누워요.’라고 했을 때, 그녀의 도발적인 두 눈에 잠시 실망이 깃드는 걸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내가 ‘기어와서 바지를 벗겨, 미미..’ 이렇게 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옷을 벗고 침대로 다가가자 그녀가 고르고 골라 침대 머리맡 테이블에 준비해 둔 묘한 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풋!’
아마, 아마추어인 나를 위해 가장 초보적인 것만을 선택해 추천한 듯... 개목걸이와 가죽 채찍... 일부러 까칠하게 처리한 듯한 굵은 빨랫줄처럼 보이는 로프... 그리고 조그만 혹이 달린 걸 제외하면 내 아랫도리랑 똑같이 생긴 막대기... 본드처럼 생긴 튜브 하나... 근데 메추리알 같이 생긴 저것들은 또 뭐냐... 이런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흐흐흐......’
척 보기만 해도 그녀의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개목걸이를 한 다음 이것저것 내 명령에 따르다가, 시원찮아 채찍으로 몇 대 맞을 것이다. 그리고도 시원찮아 야단을 맞은 후, 벌을 받아야 한다며 끈으로 묶이고... 막대기랑 메추리알로 성기나 항문을 고문당한 다음 흥분한 나의 삽입을 받아들이는 순서려니...
하지만 나는 조용히 침대에 기어올라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웠다. 그리고, 나를 힐끗 쳐다보고 반대쪽으로 돌아가 버린 그녀의 고개를 손으로 당긴 다음, 향긋한 체취를 맡으며 부드러운 뺨의 피부를 내 입술로 스쳐 주었다. 반투명한 원피스 천에 덮여 있는 유방은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하게 주물러 주었다.
그 다음은 식순에 의해 허벅지로.... 부드러운 스타킹에 둘러싸인 허벅지 안쪽의 탄력을 한 옹큼씩 쥐어주며 점점 위로 올라갔다. 가터벨트의 끈과 고리가 손목 근처에서 느껴졌다. 탄성이 좋은 석유 화학 섬유의 발달로 인해 지금은 성욕을 자극하는 패션으로 전락해버린 이 길다랗고 납작한 끈... 중세 유럽 작가가 쓴 도색 소설을 몰래 보다, 가터벨트 그림을 보고 무척이나 흥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책 지문에 언급된 가터벨트가 그림의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 하다, 결국 유미 누나한테 물어보고 말았다.
“누나.. 혹시 가터벨트가 뭔지 알아?”
대답은 알 밤 하나... 하지만 원래 존재 목적이 뭔지를 알자, 백과사전을 들고 유미 누나에게 다시 따지러 갔었다. 얼굴이 빨개졌던 누나... 그저 조금 서툴고 청순한 성욕만이 있던 그 시절... 유미 누나에게 어떻게 한 번 가터벨트를 입혀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던 기억...
삼각형으로 보이는 팬티의 아래쪽 꼭지점 언저리에 손가락을 집중했다. 양쪽의 볼록한 융기 사이로 길게 패인 금의 윤곽을 찾아 위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말랑말랑한 그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자 드디어 찾았다는 듯 자지가 빳빳이 일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까지는 그저 시체처럼 묵묵히 누워 있던 성수 새엄마의 눈 끝도 파르르 떨렸다. 더 작업을 하려면 아무래도 거추장스러운 원피스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일으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일으켰다.
“저는...”
그녀가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저 정성껏 차려 입은 파티용 의상이 아무 쓸모없이 다시 벗겨져야 하는 것에 대한 반항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파티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해는 하지만 오늘은 내 의지대로 하자는 뜻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그러면, 그런 장면에서 대개는 반항하지 못하고 주인공의 뜻대로 따르는 법인데...
“다르게 해 줘요....”
“...”
“오래 기다렸는데.... 주인님... 응?”
갑자기 확 밀려오는 짜증... 그건 평소 영화도 보지 않는 그녀의 무지 때문은 아니었다. 한 번만 은은한 관계를 해보자는 내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그녀의 이기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특별한 남자로 여기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그녀 사이에 다른 누구와는 다른 라뽀(rapports, 대충 기본적인 유대감이라는 의미. 저자 주)가 있는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내가 ‘잡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뭇 사내들... 그녀에게 굴욕적인 섹스를 강요하며 천한 성욕을 충족시키는 못된 녀석들이라 여기고 있는 그 ‘잡놈들’하고 똑 같이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나도 그 많은 ‘잡놈들’ 중 하나일 뿐, 그녀에게 더 이상이 아닌 것이다. 그걸 원한다면...
“채찍 가지고 와, 미미!”
엉금엉금 기어가 테이블의 채찍을 줍는 그녀의 음란한 엉덩이를 보면서, 일어나 섰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걸 입으로 물고 다시 기어오는 건 뭔가? 나를 가르치려는 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만족해서 웃기라도 할 것이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표정으로 그녀는 내게 기어와 턱을 치들었다. 이런 표정은 배운 걸까? 아니면 타고난 걸까? 잔인해지고 싶은 욕구에 불을 지르는 저 표정...
먼지털이처럼 생긴 채찍을 손으로 잡고 가볍게 그녀의 등을 후려쳤다. ‘짜악!’ 소리와 함께, ‘흑!’하는 그녀의 작은 비명... 너무 세게 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낭창거려서 세기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빨아.”
덜렁거리고 있던 기둥을 그녀가 감아쥐었다. 전기처럼 짜르르 쾌감이 밀려 왔다. 그녀가 눈을 감더니, 혀를 내밀어 그 끝으로 귀두 끝을 핥았다. 내게 새디스트의 역할을 하게 해 놓고, 그걸 즐기고 있는 그녀의 얌체 같은 심성이 얄미웠다.
‘쫘악!’
“흑!”
“빨기나 잘해! 오버하지 말고...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그녀가 다급하게 귀두를 입술 사이에 머금었다. 역시...! 정말 죽이는 솜씨다. 흉폭해지고 싶은 욕구... 그녀의 자극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건가?
“열중 쉬어!”
내가 이거 무슨 짓?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손을 뒤로 하고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민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금새 사라졌다. 에라, 모르겠다. 손으로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을 한옹큼 움켜 쥐었다. 오늘만 맘껏 괴롭혀 주자.
“입 떼면 각오해!”
꽉 죄여 오는 입술... 오물조물하면서도 물렁거리는 입 속의 그 무엇... 처음에는 그녀의 머리만을 앞뒤로 움직여 그 오묘한 구조물을 맛봤지만, 조금 후에는 내 허리까지 앞뒤로 퉁기며 그녀의 목구멍을 유린하고 있었다. 나는 뭉텅뭉텅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그녀는 숨길이 막히는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열중 쉬어 자세를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견뎌보려 하더니...
“헉! 헉! 헉! ...”
목을 돌려 내 자지에서 벗어나면서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괴롭게 숨을 헐떡 거렸다. 진짜 그럴까? 이건 성행위가 아니라 그냥 폭력일 뿐인데... 이런 고통에서도 성적인 흥분을 느낄까? ‘쫘악!’
“입 떼지 말라니까...!”
“다시 할게요, 주인님!”
역시 느낀다. 허리를 다시 세우고 허둥지둥 자지를 물어 오는 그녀의 눈이 정염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더 달라붙는 듯한 그녀의 입술과 혀...! 요란하게 쩝쩝거리는 소리...
“됐어 그만. 이제 벗어. 전부 다.”
아 저런...! 벗겨진 그녀의 등에 길게 난 붉은 줄 몇 가닥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저렇게 빨개질 정도면 꽤 아팠을 텐데... 몸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그녀가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로프로 묶어줄까? 아니... 그러다가 자국 남을 텐데... 그게 안 없어지고 성수 아빠가 볼 때까지 남아 있으면 안될 테니까...
“엎드려. 엉덩이 쳐들고... 옳지.”
으윽! 같은 여자 몸인데도 왜 이 여자만 이런 몸매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그 뒷 자태는 공자님이라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허리에서 항아리처럼 퍼지는 엉덩이, 그 사이 깊게 패여 가는 고랑의 곡선... 그냥 내 기둥을 꽂아버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테이블에 가서 모조 성기를 들고 왔다. 색깔 한 번 촌스럽네. 게다가 스위치를 넣으니, 조잡하게 안쪽에서 불까지 켜졌다. 징징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르르 떨면서, 꿈틀거리는 좆 같은 녀석...
“흐응.....!”
그녀를 별로 만진 적이 없는데, 적갈색의 꽃잎이 벌써 맑은 액체로 젖어 있었다. 거기에 징징거리는 녀석을 대 주니, 그녀가 신음을 흘리며 항문을 바짝 오무렸다. 녀석의 뱀대가리 같은 머리를 치골 아래에서 구멍 사이의 거리를 왕복시켜 주었다.
“좋아?”
“네.”
“어떻게 해 줄까?”
“너...넣어 주세요.”
아아~~ 하고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꽃잎을 팽팽하게 벌리며 녀석의 머리가 그 사이로 사라졌다. 저항이 만만찮을 텐데도 전혀 문제 없다는 듯 힘 있게 불끈 거리는 그 녀석... 조그마한 뿔은... 아하...! 요놈은 음핵 담당. 그 괘씸한 작은 막대가 나보다 더 나은 듯 했다. 성수 새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 보면...
“... 하아.... 하아... 하아...”
“나 말고 주인님이 몇 명이야?”
대답 없이 신음만 흘리자 자시 ‘짝!’하고 엉덩이를 채찍으로 두들겨 주었다. 그게 신호라는 듯 더 증폭되는 신음소리...
“대답해!”
“흐으... 흐으... 모... 몰라요... 흐으...”
모르다니! 쳇! 그 말이 내겐 셀 수 없이 많다는 말처럼 들렸다. 막대를 타고 흐르는 샘물을 손가락으로 뒤쪽 구멍으로 떠서 날랐다. 금새 매끈거리는 뒤쪽 구멍을 검지로 밀자 몸 쪽으로 밀려 후퇴하더니,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자 드디어 입을 벌리고 말았다. 동시에 등줄기의 길다란 융기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휘어졌다.
“흐억~~! 아아~~! 주... 주인님! 아아~~!”
쫄깃거리는 괄약근이 손가락 주위를 애워 쌌다. 엄청 조이는구나. 뒷구멍까지 손가락으로 마찰시켜주자 경험이 많은 그녀도 그런 자극에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침대에 입을 묻고 으으응~~! 하더니 호흡을 딱 멈췄다. 손에 쥐고 있는 막대에 강한 저항이 느껴지고, 괄약근은 손가락을 밀어내려 있는 힘껏 조여 왔다. 한 동안 그러고 있더니, 다시 시작되는 신음소리...
“흐윽... 흐윽... 흐윽...”
막대를 빼내고 그녀의 엉덩이 바로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게 빠져나간 빈자리가 허전한 듯 헤프게 열려있는 꽃잎을 막대만큼 딱딱해진 좆 머리로 문질러 주었다. 허리를 밀자 다시 한 번 팽팽히 벌어지며 불기둥을 집어 삼키는 연한 꽃잎...
‘짝!’
“으윽...!”
“힘 줘.”
항문이 움찔거리며, 보짓살이 기둥을 조여 왔다. 그녀가 허리를 꿈틀대며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느리지만 껍질을 벗기겠다는 듯 강한 압력... 아득한 늪 속에 빠져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를 쥐어 그녀의 움직임을 멈춰 두고 내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한 꽃잎이 허리를 밀면 움푹 함몰되었다가, 빼면 놓치기 싫다는 듯 기둥을 따라오고, 한 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허연 거품이 이는 액체가 기둥의 길이를 따라 질펀하게 묻어 나왔다. 밀려오는 쾌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빨라지고, 퍽퍽하며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커졌다.
“내가 누구야?”
“흐응... 흐응... 주인님... 흐응...”
“너는, 미미야?”
“흐응... 흐응... 주인님 강아지... 흐응...”
소유욕의 충족에 의한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체위를 바꿔 내가 주저앉고 그녀를 내 위로 올렸다. 그녀가 몸 중심에 내 기둥을 꽂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마치 남자의 성욕 충족을 위해 태어난 짐승처럼 보였다. 아... 그러네. 성수 아빠한테 이 여자는... 그런 의미려니... 훈련 받은 애완 동물.
“남편이 알아? 나랑 이러는 거?”
“흐응... 몰라요... 아아... 아아...”
“성수랑 이러는 건?”
“몰라요... 아아... 아아...”
성수의 친엄마는 어땠을까?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남편의 구속이 싫어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 여자도 마찬가지일테고... 사람이 아니라 진짜 애완동물이면, 버려진 고양이처럼 스스로 먹이를 구하며 살 텐데...
뭔가 막연한 희망이 들었다. 이 여자는 남편에게 완전히 정신적으로 복종하는 건 아니다. 성수와 나랑 이럴 수 있는 걸 보면...다만 혼자 먹이를 구하며 사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울 뿐이다.
탄탄한 엉덩이 살을 두 손으로 움켜 쥐었다. 침대의 탄력을 이용해 허리를 쳐 올리기 시작했다. 내 움직임에 그녀가 완벽하게 호응해 왔다. 퍽! 퍽! 하는 소리가 시계로 재지도 않는데 정확한 간격을 두고 울려 퍼졌다.
“흐응~~ 흐응~~ 아~~ 주인님~~ 아아~~”
밀려 올라오는 쾌감으로 꽉 찬 뭔가가 최대한 부풀어 올랐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 자연히 내 얼굴도 찡그려지고 입에서 으윽!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터질 것 같다...!
“아아~~! 아아~~! 아아~~!”
“으읏~~!”
불꽃이 터니는 걸 보는 순간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닫혔던 문이 열리며, 그녀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몸에서 나간 정액이 그녀의 머리끝까지 퍼지는 듯 한 기분...
집에 도착할 때 쯤엔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식구들이 다 자고 있을 테니, 벨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기분 나쁜 ‘텅!’하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현관문을 최대한 조용히 열고... 뭔가 빠진 듯 한데... 유미 누나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유미 누나의 방을 살폈다. 불빛이 문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깨어 있었다면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나왔을 텐데...
“누나 자?”
“.......”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에도... 어딜 간 걸까? 운동화를 신고 나갔으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텐데...
다시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 밤에 야산 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테니... 놀이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으슥하기는 놀이터도 마찬가지였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줄지어진 벤치 하나에 두 사람의 컴컴한 그림자가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괜한 실례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며 멀리 우회했다. 벤치의 뒤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저 얼굴만 확인할 만큼만 가면 되니...
“미안해요, 오빠.”
유미 누나의 목소리였다. 그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진규 군? 아... 맞네. 이 밤에 여기까지 찾아온 건 다시 만나고 싶어서겠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잘 해봐, 진규 형.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유미 누나의 마음이 내 쪽으로 향해 있더라도, 그리고 내 감정이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더라도, 어떻게든 진규 군과 유미 누나의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되면 사실을 밝혀서라도...’
유미 누나는 아직 자신과 내가 같은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집착을 가질 수 있는 건, 한 핏줄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남매끼리 가질 수 있는 육체적 관계의 한계를 이미 넘어버렸으니...
이성으로서 유미 누나와 내게는 미래가 없었다. 유미 누나에게 나처럼 난잡한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을 갖추라고 강요하는 건, 나가서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을 테니... 그녀의 미래는 진규 군한테 있는 것이다. 누나가 진실을 죽을 때까지 모르는 채 그와 결혼해 살던가, 아니면 나와의 육체 관계를 그냥 헤프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먼 훗날이 되었을 때 진실을 알게 되는 게 가장 좋은 길이었다.
‘텅!’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에 ‘끼익’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유미 누나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수호, 자니?”
눈을 감았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침대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그녀의 채취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자는 척... 그녀의 차가운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입술에 그녀의 차가운 입술이 잠깐 붙었다 떨어졌다. 다시 멀어져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 조심스러운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눈을 뜨고 어두운 천정을 쳐다 보았다.
‘휴.... 난감하네...’
그 키스로 진규 군이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진규 군에 돌아가게 하려면...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해. 누나에게... 그것도 멀지 않은 미래에...
송년회라는 문화가 우리나라 뿐 만은 아닐 테지만, 유독 거창하게 치르는 나라 중의 하나인 건 분명했다. 송년회가 없으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 사실일 것이다. 우리 집도 그 경제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고자, 고기 집에서 거창하게 송년회를 치루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직장인들의 긴장이 다 풀어져 있었지만, 아빠의 간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엄마의 억지로 고기만 우적우적 씹었다. 고기를 먹는데 술을 못먹다니...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가 ‘간성 혼수’였기 때문에, 엄마의 걱정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귀가한 후, 어린 것들만 부족한 알콜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집을 나왔다.
광식 군과 우리 자매, 그리고 나... 진규 군 한 명이 빠진 공백이 크긴 컸다. 몇 개월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그가 그 동안 행사 때마다 거의 우리 식구처럼 참여했기 때문...
[여보세요?]
[오빠, 나!]
[유진이구나. 이 밤에 웬일이니?]
[나 오늘 방학했어.]
[그래... 근데 그게 왜?]
[글구 성적표 나왔거든.]
[오... 그래? 이번에는 어떠니?]
[호호호. 나 우등생이야, 오빠.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해.]
[몇 등이나 했는데 그래?]
[짠~! 15등.]
[위에서?]
[아니... 헤헤. 아래에서...]
[어이구, 우등생이십니다. 아래 열 네 명이나 있고...]
[오빠, 약속지켜야지.]
[뭐? 뽀뽀?]
[응... 입술에... 히히.]
[알았어. 월요일에 오면 해줄게.]
[지금은 안 돼?]
[오빠가 지금 역사적인 송년 모임에 참여 중이거든? 그러니 그런 사소한 일은 나중에 해.]
[오빠네 식구끼리?]
[응.]
[유미 언니도 있어?]
[그래.]
[나두 나가면 안돼?]
안돼... 하려다 말았다. 성수가 부탁했으니... 근데 이 계집애가 진짜 날 남자로 생각하는 걸까? 그러면 키스는 영 곤란한데...
[그래 와라.]
[히히. 갈게. 어디야?]
[대신 나하고 약속 하나 해라.]
[뭔데?]
[새엄마한테 다녀오겠습니다... 늦더라도 오늘 중으로 꼭 귀가하겠습니다... 하고 와.]
[......]
[그냥 집에 있던가.]
[알았어. 하면 되잖아. 체~~!!]
얘는 밝다. 내가 아는 세상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얘다. 그런 얘한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어른들이 잘못이지. 얘한테 어떻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냐.... 성수야. 얘랑 얘 새엄마 사이에 뭔가 애틋한 정이라도 있어야지... 새엄마보다는 김 유미를 더 좋아하는 얜데... 그냥 새엄마랑 단 둘이 무인도에 보내 버릴까? 크크크.
팔랑팔랑하는 하얀 성적표를 의기양양하게 유진이 들고 나올 때 쯤, 우리는 벌써 3차는 어디 갈까하고 의논(?)하던 중이었다. 붙임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계집애가 처음 보는 광식 군하고 선미 누나와 친해지는 데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포상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유진이 정말 대단하다. 볼 때 마다 일취월장하네.”
유미 누나의 칭찬에 유진이 내게 바짝 붙어 속삭였다.
“일치얼짱? 좋은 말이지 오빠?”
세상에... 일취월장도 모르는 애가 어떻게 반에서 25등을 한다는 말인가?
“응, 얼짱하고 똑같이 일치한다는 뜻이니까 좋은 말이지. 아얏!”
“호호호호! 과외선생님치고는 형편없다.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배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유진아. 그냥 세상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이면 되지. 무식한 게 행복한 거지, 유식한 게 행복한 건 아니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총명해. 못된 학교 교육만 좀 덜 받았을 뿐이지... 나도 유진에게 속삭여 주었다.
“뽀뽀해 줄까?”
“지금?”
“응, 지금.”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상 받는 거니까 축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거지.”
“몰라, 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뽀뽀는 다음에 해 주기로 하고, 대신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재잘거리는 유진... 집만 벗어나면 이렇게 밝아지는데... 얘 성격이 원래 이런데... 집에 보관해 놓은 고급 양주를 올해 내로 꼭 소진해야한다고 우기는 선미 누나 때문에 3차는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유미 누나는 썩 내키지 않아하는 듯 했지만...
“나, 유진이 데려다 주고 갈게.”
“어머, 오빠 나도 가고 싶어.”
“그냥 가. 술 마시러 가는 건데...”
“그래도... 그냥 앉아있기만 할게.”
“그래, 수호야. 같이 데려가자.”
“안 돼, 누나.”
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오늘 들어온다고 새엄마랑 약속했잖아...”
“......”
표정이 좋지 않은 유진을 데리고 택시를 타러 갔다.
“됐어, 오빠. 그냥 나 혼자 갈게.”
“괜찮아. 데려다 줄게...”
“걱정 마, 딴 데 새지 않을 거야. 나 약속한 거는 지켜...”
“너 감시하러 따라가는 거 아니야. 밤이라 그렇지.”
“호호호, 밤엔 내가 제일 무섭지. 맨날 혼자 다니는데 뭐...”
극구 혼자 가겠다고 해서, 택시만 태워 보냈다. 약속은 지킨다는 그 애 말은 신뢰성이 있었다. 너무 솔직한게 탈이지,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얘는 아니니까...
[삐리리리~~~]
[여보세요?]
[수호니?]
[아, 선생... 아니, 은혜 누나?]
[응, 잘 있었어?]
[네. 가신 일은 잘 됐어요?]
[응, 잘 됐어. 그것도 너무...]
[축하해요.]
[덕분에 시간이 별루 없는데, 얼굴 한 번 보여줄래?]
[그래요. 저도 누나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요.]
[호호호... 아부는...]
유학 가면 만나기 힘들 테니, 어쩌면 다음에 만나는 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착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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