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아직 가지 못했습니다.
휴가 전에 일이 몰려 그렇습니다.
요즘 일부러 일에 몰두하려 애쓰고 있어 더 짬이 없습니다.
좀 사정이 좋아지면 자주 올리겠습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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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부터 카페의 전망이 좋은 창 가 자리에 죽치고 있었다. 대형 쇼윈도 너머로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과 오가는 사람들 말고는 별달리 볼만한 게 없었지만, 그런 자리를 가지고 있는 카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 거리에 서있어야 했을 테니까...
커피만 훌쩍거리고 있다가, 종업원이 나를 힐끔힐끔 하며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맥주를 몇 병 주문했다. 초저녁부터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겠지만, 내 신경은 온통 쇼윈도 너머의 ‘글래머’라는 단란주점의 입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석이 형의 정보에 의하면, 주철식이 주소영의 동생이 맞으며, 그는 최근에 이 구역 몇몇 업소의 경비를 책임지는 과장으로 승진하여 있었다. 그리고, 이 구역의 아지트가 바로 그 ‘글래머’라는 단란주점이었다.
“과장이면 그리 높은 자리는 아니네?” 하는 내 질문에 중석이 형이 피식 웃었었다. 처남이라면 부장 자리 쯤은 줘야 하는 것 아닌 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일반 회사의 과장하고는 달라. 그 아래에 팀장, 그 아래에는 조장을 맡는 대리가 있는데, 조장 한 명이 조그만 업소 서너개를 관리하니까... 그리고 하청업체도 몇 개 있어... 하청업체 사장이라도, 본사 대리한테는 꼼짝 못 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지니 컨설팅은 밤 세계의 대기업이었고, 내가 가담한 전쟁은 다른 대기업을 합병하는 과정이었다. 그 회사는 몇 개의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 지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인수 합병이 끝나면, 합병된 구역의 업소와 경영 카운슬링 계약을 맺었다. 즉, 업소의 경영자는 그냥 업소를 개업한 사람일 뿐이고, 운영, 경비, 인력 조달, 보급, 판매의 일체를 카운슬링 회사가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입은 경영자와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다.
“만약 사장이 카운슬링 계약을 안 하려고 하면?”
“가끔 직접 경영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돼. 손님 끊기고 양아치들에게 몇 번 시달리고 나면, 스스로 찾아와서 계약하겠다고 하니까... 물론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서울의 그 많은 업소가 다 그렇게 해?”
“전부는 아니고... 중요한 목은 다 그렇게 해. 나머지는 내버려 두거나, 하청 주거나...”
“참 나, 그냥 기업하고 똑 같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들여다 보면 내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곤 하지만...”
주철식이 새로 맡게 된 그 구역은 원래 이번에 합병된 다른 회사의 구역이었다. 그리고 합병 과정에서 공훈이 커서, 한 계단을 건너 과장으로 승진된 것이다.
밤이 깊어 가는데도 주철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모르고 있었지만, 뻔한 규격의 덩치들과 함께 다닐 테니 찾기는 쉬울 터... 에이, 출근을 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그냥 업소에 들어가 ‘주 과장님 좀 뵙시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가 그를 찾아갔다는 보고가, 임실장의 귀에 들어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자신의 처남을 찾은 이유를 당연히 궁금해 할 것이고...
“실례지만...”
“아.,.. 맥주 두 병만 더 주세요.”
자리를 비워달라는 종업원의 채근인 줄 알고, 맥주부터 주문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테이블 옆에서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흰 셔츠의 종업원이 아니고, 검은 양복의 깍두기... 이십 대 후반 정도에, 깍두기치고는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맞네. 얘들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와 봤더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그가 빙그레 웃었다.
“나 기억 못하지?”
“누구시죠?”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보니 어디선가 본 듯도 하고...
“그날 루루 갈 때 같은 차에 타고 갔잖나?”
“아... 그때 그... 철식이 조...”
그랬다. 루루라는 룸살롱을 습격할 때, 뒷문을 담당하도록 되어있었던 철식이 조의 조장이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는 성공한 것이다. 그 때는 새벽이고 어두운 승합차 내부에서 봤기 때문에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지니 컨설팅의 주철식 과장이라고 하네.”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 했다. 나 원...! 그 철식이가 주철식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성수 새엄마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승진하셨네요?”
“하하, 그때 무사히 마쳐서 그 차에 같이 탔던 직원들 전부 승진했지. 그게 다 수호 씨 덕분이야.”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 날 이후로 김 수호라는 이름 모르는 직원이 없을 걸? 그런데 여기 와서 VIP 명단을 봤더니 거기 있더구만.”
성수와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을 때, VIP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나저나, 얼굴이 팔려서 큰일이네. VIP 명단에 사진까지 붙어 유통되었을 텐데...
“그럼 이 카페도 회사가 관리하는 겁니까?”
“여기는 그냥 재료납품하고, 얘들만 배치해 놓은 정도지. 그런데 누구 기다리나? 아니면, 내가 오늘 자리를 좀 마련하고 싶은데...”
당신 기다리고 있었죠... 그를 만나기 위해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린 게 허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그가 스스로 내 앞으로 찾아온 게 다행이었다.
“사실은... 주 과장님 뵈러 왔어요.”
“나를? 아 그럼, 사무실로 올 것이지. 아니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주과장 좀 봅시다 하시면 될 것을... 아무튼 영광일세.”
“그게... 주과장님 찾아온 걸 회사에서 몰랐으면 해서요.”
“......”
“유진이 어머니 일로 왔습니다.”
그의 안색이 변했다. 내 맥주잔을 집어 들고 마시는 그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역력했다. 역시... 성수 새엄마는 여행을 간 게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뭐든 하고 있다는 게, 이제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으로 볼 때,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얼굴이 조금 전처럼 다시 환하게 펴졌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그냥 우연히 만난 것으로 하지. 누구 기다리고 있었던 걸로... 그래야 얘들이 의심하지 않으니까... 조금 전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다음에 조용히 연락하던지... 연락처 하나 주게.”
내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갈무리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떠들썩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럼 이거, 다음에 근처에 오시면 꼭 한 번 들러 줘! 하하하! 나한테 보답할 기회는 줘야지! 야, 일루 와 봐! 이 자리는 내가 계산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누구 기다리신다니까, 여기 계시는 동안에는 실례하는 일 없도록 해.”
그가 나간 후, 30분 쯤 더 있다가 카페에서 나왔다. 방관자에 불과한 나에게 그가 조직의 내부를 얼마나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유진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밤에는 유미 누나는 유진의 차지였고, 자연히 누나와 나는 남매 사이로 돌아가야 했다. 그 날도 유미 누나와 공부를 마친 유진이 선미누나의 방에서 자고 가기로 해서, 누나의 보드라운 피부를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밤에는 유진이 누나 방 대신 나를 찾았다. 표정도 사뭇 진지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일 있지?”
"그 여자라니?“
“새엄마 말야.”
“일은 무슨 일...”
하지만,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눈치가 빠른 얘라서, 처음에 불확실할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말부터,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까지, 유진은 내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유진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1년 동안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니까.
“근데 너 언제부터 새엄마한테 관심이 그렇게 많아? 예전처럼 그저 그런가 보다 하지 않구...”
“오빠가 그랬잖아? 그 여자가 내 가족이라고...”
“......”
“알았어. 오빠가 말해주지 않아도 돼. 아빠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
“유진아!”
방에서 나가려는 유진을 돌려 세웠다. 납치를 당한 후부터 유진도 알았을 것이다.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를 파며 살 수는 없다는 것... 조용히 있어도 세상 사람들이 펴 놓은 그물망에 그녀 자신이 어떻게든 얽혀 있다는 것... 이제 자신의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 그리고 혹시, 다른 이유도 있을 지도 몰랐다. 전에는 그저 한 집에 사는 여자로만 여겼던 새엄마에 대해 유진이 이제 다른 의미를 두고 있을 지도...
“그러면 안 돼. 새엄마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너도 그러는 건 바라지 않잖아?”
“내가... 그냥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알아. 하지만, 너 나 믿지? 내가 너한테 그 일 있었을 때 했던 만큼은 새엄마한테도 할 수 있어. 무슨 뜻인지 알지?”
“오빠는 믿지만... 이건 오빠보다는 내 일이야. 오빠한테는 그냥 친구네 엄마 일이지만... 나한테는...”
“......”
“가족 일이잖아. 우리 가족.”
다른 상황이었으면, 훨씬 대견해진 유진을 껴안고 뽀뽀라도 퍼부어 줬어야 맞았다. 유진이 겪은 위기가 그 애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게 틀림없었다. 당당하게 ‘알 권리’를 주장하는 그 얘에게 뭐라도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그 알권리를 자신의 아빠에게 가서 주장할 테니까...
그래서, 내가 짐작하고 있던 경과와 함께 유진의 외삼촌, 즉, 새엄마의 동생인 주철식을 만났던 일까지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효과있을 것 같지 않은 당부를 곁들였다.
“유진이 너는 그냥 잠자코 있으면 돼. 어떻게든 일이 풀릴 테니까.”
유진도 별로 신뢰성 있어 보이지 않는 짧은 대답을 남겼다. “알았어.”
하지만 역시, 누가 봐도 그 문제의 당사자는 내가 아니었고,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의 가족사에 쓸모없는 참견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참견의 이유를 ‘피해자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으로만 달기는 어려웠다. 그건 그저 내 천성일 뿐이었다.
어쩌면 고등학교 때 박은혜 선생님에 대한 성수의 보복을 말린 것부터 주제 넘는 참견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때는 분명히 내가 옳았다. 대학교에 와서 했던, ‘주제 넘는 참견’의 결과는 끔찍했다. 유미 누나의 출생에 관한 사실이 누나 자신에게 전해지는 걸 막은 것부터가, 시간이 철철 남아 넘치는 느슨한 대학생활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정의의 실현과는 관계없는 주제 넘는 참견이었을 것이다. 유미 누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했던 그 참견의 결과는... 아직도 나를 다른 핏줄로 여기고 있는 유미 누나와 목숨을 잃은 진규 형이었다.
스키장에서의 광식 군의 일만 해도 그랬다. 광식 군과 혜린이 같이 있는 방에 쳐들어가려는 나를 선미 누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미 선미 누나와 광식 군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는 대신, 여전히 참견하고 있었다. 유진의 일에 ‘참견’해서 결과가 괜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용기백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부탁했던 성수의 말이 내 자신에게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내가 참견하는 이유를 누구에게도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성수 새엄마의 동생, 주철식에게도...
대낮인데도 그의 얼굴은 술 기운에 벌개져 있었다. 아마 고민을 많이 한 듯...
“내가 만나자고 한 건, 충고 한마디 하기 위해서야.”
“......”
“수호 씨가 왜 그렇게 적극적인지는 모르지만, 나설 이유는 없어. 이건 우리 식구의 문제일 뿐이니까... 앞으로는 관심 가지지 말라고 얘기하러 나왔네. 그게 수호 씨나, 수호 씨 가족을 위해서나 좋을 거야.”
짧은 말을 마치고 휑~하니 사라지는 주철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성수 가족의 일에 참견해야 하는 논리적인 핑계를 찾아보았다. 분명히 이유가 없는데도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주 소영이라는 여자는 나를 몇 번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몇 번 육체관계를 가졌던 여자, 과외를 해주고 있는 유진의 새엄마, 그리고 친한 친구인 성수의 새엄마이자 짝사랑... 역시...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참을 수 없이 불끈거리는 이유는 뭘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방관하고 있던 나 자신에 대해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닌데...
[어떻게 됐어? 오빠?]
아무 소득 없었다는 내 말을 듣고 전화기 건너 유진도 말이 없었다.
주철식으로부터 정보를 캐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하지만, 성수의 정기 휴가가 코 앞이라 애가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성수 새엄마가 그 전에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것 저것 재 봤던 나에 비교하면, 유진은 그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외형만 여자이고 소녀일 뿐, 그 애의 성격은 성수의 판박이, 아니 어쩌면, 성수보다 훨씬 집요하고 저돌적이었다. 사실 유진이 그녀의 새엄마를 마치 소 닭 보듯 했었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새엄마의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건 예상 외였다. 그녀 역시 휴가를 나온 성수가 본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새엄마를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제 반항의 시기를 넘어서는 나이라서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지...
[오빠, 나...]
[유진이?]
[새엄마 있는 데 알았어.]
[정말? 어딘데?]
[지금 그 앞에 와있는데, 혼자서는 못들어 가겠어.]
[어딘데?]
[가평...]
대중교통이 모두 끊긴 시간이라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탔다. 총알택시가 그렇게 느리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그 동안에도 유진과 계속해서 통화하고 있었다. 새엄마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유진이 주철식에게 쓴 방법은 내가 삼촌의 입을 막기 위해 쓴 방법하고 같았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계집애가 실제 칼로 손목을 그은 것이다. 그리고, 협박까지...
‘오빠가 군대에서 나오면 가만 둘 줄 아세요? 오빠가 막 나가면 아빠도 못 말려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이 어린 새 조카의 자해 소동만으로 주철식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임 실장의 부인으로서의 주 소영의 역할을 끝내려 결정하고 있었고, 주철식도 친누나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회사처럼 ‘사직서’를 쓰고 퇴직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기에, 그녀는 아마 형식적인 이혼 절차를 밟고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었다. 아직도 쓸모가 많은 그녀의 육체와 섹스 기술이 필요한 다른 어느 곳... 절대 혼자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임 실장의 아내로 있던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싫던 좋던 회사의 치부를 낱낱이 알게 되었을 테니...
“유진아.”
“오빠 여기...”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 있던 유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가로등 불빛에 비친 유진의 입술이 추위 때문인지 퍼렇게 보였다. 그녀의 뒤로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아스팔트가 50여 미터쯤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그 끝을 지니 연수원의 정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4층짜리 건물은 불이 모두 꺼진 채, 어두운 밤 하늘을 파고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저기야?”
“응. 저 안에 있긴 한데... 어딘지는 몰라.”
“가자.”
“정문으로?”
“그럴 수는 없지.”
연수원은 관광 철에 손님이나 받는 곳인 줄 알았더니... 그 연수원이 아마 조직원들을 훈련시키는 곳 쯤일 것이다. 조폭 양성소를 당당하게 연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담벼락을 빙 돌아 만만해 보이는 높이를 찾아 보았다. 가로등도 없고, 랜턴도 켤 수 없어 숲길을 걷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결국 유진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만큼 낮은 담장을 찾아냈다.
요행히 여기서 성수 새엄마를 빼낸다고 해도, 그 다음은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 없는 행동이었다. 거기에서 탈출 한다고 해도, 성수 아버지의 양해가 없는 한, 새엄마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그간 누차 경고한 대로 나 또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해꼬지를 가할 지 알 수 없는 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오로지 방법은 쥐도 새도 모르게 빼내서 회사의 손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나 숨겨 두는 것이었다. 누가 그녀를 빼냈는지 모르도록... 그래야만, 나도, 유진도, 주철식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분명 언제까지 숨겨둘 수는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담장 안쪽에도 컴컴하긴 마찬가지였다. 들어가 보니, 커다란 본 건물에 90도로 놓여 있는 2층짜리 건물도 하나... 정문 쪽 경비실 하나... 어디 하나 불이 켜진 곳이 없이, 느낌만으로는 완벽히 빈 건물이었다. 한 동안 숨을 죽이고, 인기척이 있나 살펴 보았지만,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마당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해?”
“글쎄다...”
굴욕적인 결혼 생활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성수 새엄마의 무기력은 그저 그녀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어이없어 보이는 부부 생활, 갈등 뿐이 가정 생활에서 탈출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먹고 살기 윤택하기 때문에 견디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활이 그녀에게는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선택일 뿐이었다. 벗어날 수 없으니, 순응하지 못하면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 뿐이었다. 성수의 친엄마처럼...
“유진이, 너. 여기서 기다리다 내가 30분 내에 오지 않으면 전화해서 경찰을 불러. 알았지?”
사무실 용도로 쓰일 것 같은 2층짜리 건물을 택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 창문 하나하나 열어보며, 잠겨져 있지 않은 것을 찾았다. 다행히 반대쪽 측면에 있는 간이 창문이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려 있었다.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히 창문을 열고, 길다란 복도의 한 쪽 끝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심장이 망치질을 하듯 두근거렸다. 복도의 온기로 볼 때, 난방을 하고 있으니, 빈 건물은 아닌 것이다.
방 하나하나 인기척을 확인하며, 중앙을 향했다. 그제서야 어느 방에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건물 현관문 바로 안쪽에 붙어 있는 경비실... 누군가 TV를 켜 놓은 듯 점점 다가갈수록 박수소리, 웃음소리...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그 방의 문이 확 열리고, 방에서 새어나온 불빛에 복도가 밝아졌다. 재빨리 내 옆에 있던 문짝에 바짝 붙었다. 방에서 누군가 복도로 모습을 나타냈다. 사내가 둘...
“갔다 오마.”
“형님, 오늘은 별당 아씨 건드리면 안 돼요.”
“알았어, 임마!”
“진짜 조심하세요. 아침에 본사에서 상태 점검하러 온댔어요. 생채기 하나라도 있으면 좆 되는 거 아시죠?”
“알았다니까, 자식아! 니가 조장이야?”
문이 쾅 하고 닫히고 사내 둘이 현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 진짜, 새가슴이야. 어유, 어디다 쓸까?”
“우리도 저만 할 때 저랬잖아요. 군기가 바짝 들어가지고... 하하하.”
새소리를 본 뜬 요란한 현관문 경보기가 울어댔다. 방에 최소한 하나, 복도에 둘... 현관문을 열고 나선 사내들의 모습이 마당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연이어 랜턴의 불빛이 커지며 흔들거렸다. 아마 본관을 향하는 듯... 나는 복도를 다시 거슬러가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흔들거리는 랜턴의 불빛이 본관의 입구 안쪽으로 사라지자, 나도 그들을 따라 어두운 마당을 가로 질렀다. 다행히 잠겨져 있지 않은 본관의 입구... 중앙 홀에 서서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철창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4층... 좌측 복도가 쇠창살로 막혀 있었지만, 그 아래 쪽문이 조금 전 사람들이 들어갔다는 걸 알려주듯, 빼곰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스위치를 켠 듯, 그 쪽 복도 전체가 밝아졌다. 모서리에 숨어 얼굴만으로 복도를 관찰했다.
“우리 오늘도 별당 아씨 문안 한 번 드려야지?”
“하하, 제가 그 맛에 이런 시골 구석에 박혀 있어도 꾹 참는다니까요.”
“오늘은 살살 다뤄라.”
“걱정 마세요, 형님. 제가 데려올까요?”
사내 하나는 건물 앞쪽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뒤쪽으로 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후에 뒤쪽 방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다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고개를 푹 숙인 슬립 차림의 여자, 별당아씨가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췌해 보이기는 했지만, 살아서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사내와 성수 새엄마가 조금 전 다른 사내가 들어간 건물 앞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당장 들어가서 이것들을 쓱싹 해치우고 튈까? 복면이라도 하고 왔으면 좋았을 걸... 조심조심 복도를 걸어가 그들이 들어간 방 바로 앞까지 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거기 서 있을 수는 없으니, 그 방에 바로 연달아 있는 다른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이거?’
마치 작은 관람석처럼 의자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가 향하는 곳에는 커다란 유리가 있고, 그 유리를 통해 조금 전 그들이 들어갔던 방의 광경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게 반사유리라는 걸 알아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그렇지. 이 방은 관람석이다. 저 방은... 공연장이고... 여기서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이다. 저 방에서는 변태스러운 성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유리를 통해 보이는 건넌방의 모습은 내 짐작이 맞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 쪽 구석의 침대만 아니면, 영락없는 고문실이었다. 형틀 같은 것... 쇠사슬 같은 것들이 벽에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조그마한 테이블이 방 가운데... 그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조금 전 들어간 사내 하나가 앉아 두 발을 테이블 위에 올린 채, 곤봉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우리 기다렸지, 이쁜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아... 스피커가 있구나. 역시... 관람을 하려면 소리도 리얼하게 들려야 할 테니까... 성수 새엄마가 다른 사내의 손에 밀려 테이블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무표정함이 그 날과 같은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앉아 있던 사내가 곤봉으로 테이블을 탁 탁 두드렸다.
[여기 턱 붙여.]
성수 새엄마의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지더니 턱이 테이블 끝에 닿았다. 다른 사내가 그녀의 두 손을 등 뒤로 당겼다. 그의 손에 언제 가져온 건 지 은색의 수갑이 번쩍거렸다.
[야! 그거 하지 마. 자국 남아.[
[이 정도만 하죠? 괜찮던데...]
[다음에 해, 다음에. 내일 점검 끝나면...]
[에이, 씨팔. 점검 같은 거 뭐하러 오나 몰라. 할 일 없으면 자빠져 잠이나 잘 것이지...]
[이쁜이, 오늘은 간단히 끝낼 테니까, 너도 주의해. 행여나 몸에 기쓰 하나라도 남으면 내일 점검 끝나고 무슨 꼴 당할지 알지?]
[이년이 꼬아 바치지 않을까요?]
[안 그럴 거야. 그랬다간 지 상품 가치가 떨어질 테니까... 그렇지, 이쁜아? 어디 섬 구석에서 몸 팔고 싶지는 않지? 흐흐흐.]
[똑 바로 열중 쉬어 하고 있어! 손 풀었다간 알지?]
사내가 손가락으로 뺨을 토닥거리자, 성수 새엄마의 옆 얼굴에서 눈이 질끈 감기는 게 보였다. 내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건 분노 때문이었다. 저 새끼들을 그냥 두고 가야 하나... 여전히 성수 새엄마는 턱 끝을 테이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사내 둘 다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저 망할 것들이...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당장 쳐들어가서 응징해야 하나, 아니면 꾹 참고 기회를 기다려야 하나.
[어유, 이 년 엉덩이는 언제 봐도 죽음이야. 형님, 이 년 나가면 무슨 재미로 살죠?]
성수 새엄마 뒤쪽의 사내가 슬립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흥분했는지 발가벗은 그의 사타구니에는 좆기둥이 벌써 천정 쪽으로 세워져 있었다. 짝 소리와 함께 성수 새엄마의 하얀 엉덩이가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야, 새끼야! 손찌검하지 말라니까! 너 진짜 뒈질라고 환장했어?]
[아.. 이 정도는 괜찮다니까요?]
[그냥 조용히 좆대나 쑤셔 박아 새끼야! 딴 데 손대지 말고! 아니면 겨 나가고!]
[아.. 알았어요, 형님. 에이씨!]
뒤쪽 사내가 성수 새엄마의 팬티를 벗기는 사이, 앞쪽 사내도 옷을 다 벗은 채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좆대를 그녀의 눈 앞에서 쥐고 흔들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 이쁜이, 그 동안 배운 솜씨 좀 발휘해 봐. 알았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광경에 아마 내가 경계를 소홀히 한 듯 했다. 아니면, 유진의 잠입 기술이 좋았던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그녀가 내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당을 질러가는 사내들과 내 모습을 보고 따라 온 듯... 유진을 보고 놀라는 것보다,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녀의 입을 막는 게 먼저였다. 유진의 시선은 유리 너머의 광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애를 만난 이후로 그렇게 커진 눈을 본 적도, 그렇게 충격을 받은 모습도 처음이었다.
“앉아... 소리내지 말고... 조용히...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입을 막은 손을 떼어 주었다.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유진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건넌방의 불빛과 그 불빛 속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으... 좋다!]
어느 새 사내의 거무튀튀한 좆 기둥이 성수 새엄마의 붉은 입술을 벌리고 들어가 있었다. 사내는 목을 뒤로 젖힌 채, 성수 새엄마의 머리채를 한쪽 손으로 휘어잡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좆대가 입 속으로 진입할 때마다 성수 새엄마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뒤쪽의 사내도 준비가 다 된 듯, 여자의 엉덩이를 눌러 벌린 채 좆 끝을 중심에 맞추고 있었다.
[아, 뻑뻑하네.]
[멍청한 새끼, 침이라도 좀 발라라.]
[힘 빼 이년아! 너만 힘들잖아. 힘 못빼? 가만 있어 봐, 이년을...]
사내가 한 쪽에 놓여 있던 곤봉을 움켜 쥐었다. 그러더니 그 끝으로 성수 새엄마의 음부를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하여튼 변태 새끼!]
[이걸로 길 내 놓을라구, 크크크.]
18세 미만은 미성년자... 이런 등식을 인정하지는 않는 나였지만, 그런 광경만큼은 도저히 유진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시선은 유리쪽에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유진에게 쏠려 있었다. 곁눈질로 본 유진의 가슴이 마치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에 서려 있던 경악은 어느새 표독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으윽!]
유리 너머에서 성수 새엄마의 뾰족한 비명이 들리는 것과 유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 거의 동시였다. 나도 재빨리 일어서서 유진의 몸뚱이를 꽉 끌어안았다. 유진이 빠져 나가려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제발 유진아!
“조용... 조용해... 뭐하러 왔는지 잊었어?”
[야 임마! 침 좀 바르라니까 깨물릴 뻔 했잖아!]
“이익....!” 유진이 주먹을 움켜 쥐었다.
[형님, 이 년 좀 봐. 막대기가 지 서방인 줄 아나 봐. 하하 나 원, 막대기에다 질질 싸 놓는 것 좀 봐. 웃기는 년이네 이거?]
사내가 곤봉을 거칠게 밀어 넣을 때마다, 성수 새엄마의 몸이 움찔 거렸다. 하지만, 그걸 떼어내지 못하는 그녀... 반항은 고사하고 입이 막혀 신음마저 낼 수도 없었다.
유진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머리를 내 어깨에 묻더니 파커를 이빨로 베어 물었다. 내 옆구리쪽 파커를 움켜진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내가 곤봉 대신 자신의 좆대를 성수 새엄마의 몸 속에 찔러 넣었다.
[아! 금방 매끈해지네. 으...씨발, 감촉 죽인다.]
나도, 그리고 내 어깨 너머로 유진도 짐승 둘이 성수 새엄마의 몸뚱이를 유린하는 장면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 보았지만, 가슴 속은 분노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성수 새엄마의 음부를 쑤시고 있는 사내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그녀의 머리가 춤을 추듯 율동적으로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을 들락거리는 또 하나의 기둥... 아무도 모르게 성수 새엄마만을 구해 가려던 내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저히 저것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이제는 자세를 바꿔 그녀가 천정을 보고 누웠다. 아래쪽의 사내는 그녀의 발 목을 쥐고 연신 허리를 쑤시고 있고, 머리 쪽의 사내는 바닥을 향해 떨구어진 그녀의 머리에 허리를 바짝 대고 여전히 입에 좆을 박은 채 대접 같은 유방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쪽쪽 빨아 봐, 이쁜아! 너도 좋지? 흥분돼 미치겠지? 옳지, 옳지 좋다.]
[아! 벌써 나올라구 하네. 오래 갖구 놀아야 하는데...]
성수 새엄마의 손이 단단한 테이블 바닥을 움켜 쥐려는 게, 흥분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이 주먹으로 내 가슴을 팡팡 두드리기 시작했다. 질끈 다문 유진의 입술 사이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으으.... 으어...”
그녀를 강하게 끌어 안고, 머리를 당겨 어깨에 다시 파묻었다. 더 보여줄 수는 없어... 다시 한 번 그들이 있는 방의 구조와 집기의 위치를 머리 속에 새겨 둔 후, 유진을 끌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시작되는 곳, 조명 스위치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내가 신호하며 스위치를 죄다 내리는 거야, 알았지?”
유진를 거기 두고 나는 그들이 추잡한 짓을 벌이고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유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 불이 꺼짐과 동시에 재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내들이 미처 내 모습을 발견하기 전에 조금 전에 봐두었던 전등 스위치를 내리자, 복도에 이어 방 전체도 암흑 속에 빠졌다. 그리고, 전등이 꺼지기 직전에 위치를 확인해 두었던 쇠파이프를 움켜 쥐었다.
“뭐야, 이거!”
“누구야! 윽!”
성수 새엄마는 누워 있을 테니... 머리가 있을 만한 위치에 닥치는 대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파이프가 단단한 두개골에 부딪쳐 생기는 진동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분명 머리 두개를 맞췄지만 멈추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는 다시 스위치를 올려, 상태를 확인했다. 알몸으로 나동그라져 있는 사내 둘... 테이블 위에 다리를 헤프게 벌린 채 아까와 같은 자세로 누워 있는 성수 새엄마...
내가 사내들을 결박하고, 눈을 가리는 동안 유진이 새엄마의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우리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끝냈다. 그 사이에 사내들이 정신을 차리고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재갈 때문에 끙끙거리는 소리만 날 뿐... 유진에게 가자는 뜻으로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유진은... 그냥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에 성수새엄마의 음부를 쑤셨던 그 곤봉이 어느새 유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동그라져 있는 사내들 곁으로 다가가는 유진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가혹한 응징... 결박당해 움츠리기조차 어려운 두 개의 고깃덩어리에 유진의 곤봉이 수도 없이 내리꽂혔다. 저러다 죽이지... 유진을 말리자 아직도 풀리지 못한 그녀의 분노가 방에 가득 차 있는 집기들에게 돌려졌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새엄마를 등에 업고 마당으로 나온 후, 조금 전 침입했던 담장 아래까지 갔다.
“정문으로 나가면 안 돼?”
“안 돼. 아마 CCTV 같은 거 있을 거야. 여기서 좀 기다릴래?”
2층 짜리 사무실 건물로 다시 향한 것은 내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이렇게 둘이 와서 대담하게 사람을 빼갈 거라고 상상하겠는가? 경비실에 누워 있는 친구도 공평하게 혜택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다른 어느 조직이 떼거리로 쳐들어온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성수 새엄마 방에서 가져온 머플러를 얼굴에 칭칭 동여 맸다.
휴가 전에 일이 몰려 그렇습니다.
요즘 일부러 일에 몰두하려 애쓰고 있어 더 짬이 없습니다.
좀 사정이 좋아지면 자주 올리겠습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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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부터 카페의 전망이 좋은 창 가 자리에 죽치고 있었다. 대형 쇼윈도 너머로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과 오가는 사람들 말고는 별달리 볼만한 게 없었지만, 그런 자리를 가지고 있는 카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 거리에 서있어야 했을 테니까...
커피만 훌쩍거리고 있다가, 종업원이 나를 힐끔힐끔 하며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맥주를 몇 병 주문했다. 초저녁부터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겠지만, 내 신경은 온통 쇼윈도 너머의 ‘글래머’라는 단란주점의 입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석이 형의 정보에 의하면, 주철식이 주소영의 동생이 맞으며, 그는 최근에 이 구역 몇몇 업소의 경비를 책임지는 과장으로 승진하여 있었다. 그리고, 이 구역의 아지트가 바로 그 ‘글래머’라는 단란주점이었다.
“과장이면 그리 높은 자리는 아니네?” 하는 내 질문에 중석이 형이 피식 웃었었다. 처남이라면 부장 자리 쯤은 줘야 하는 것 아닌 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일반 회사의 과장하고는 달라. 그 아래에 팀장, 그 아래에는 조장을 맡는 대리가 있는데, 조장 한 명이 조그만 업소 서너개를 관리하니까... 그리고 하청업체도 몇 개 있어... 하청업체 사장이라도, 본사 대리한테는 꼼짝 못 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지니 컨설팅은 밤 세계의 대기업이었고, 내가 가담한 전쟁은 다른 대기업을 합병하는 과정이었다. 그 회사는 몇 개의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 지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인수 합병이 끝나면, 합병된 구역의 업소와 경영 카운슬링 계약을 맺었다. 즉, 업소의 경영자는 그냥 업소를 개업한 사람일 뿐이고, 운영, 경비, 인력 조달, 보급, 판매의 일체를 카운슬링 회사가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입은 경영자와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다.
“만약 사장이 카운슬링 계약을 안 하려고 하면?”
“가끔 직접 경영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돼. 손님 끊기고 양아치들에게 몇 번 시달리고 나면, 스스로 찾아와서 계약하겠다고 하니까... 물론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서울의 그 많은 업소가 다 그렇게 해?”
“전부는 아니고... 중요한 목은 다 그렇게 해. 나머지는 내버려 두거나, 하청 주거나...”
“참 나, 그냥 기업하고 똑 같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들여다 보면 내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곤 하지만...”
주철식이 새로 맡게 된 그 구역은 원래 이번에 합병된 다른 회사의 구역이었다. 그리고 합병 과정에서 공훈이 커서, 한 계단을 건너 과장으로 승진된 것이다.
밤이 깊어 가는데도 주철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모르고 있었지만, 뻔한 규격의 덩치들과 함께 다닐 테니 찾기는 쉬울 터... 에이, 출근을 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그냥 업소에 들어가 ‘주 과장님 좀 뵙시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가 그를 찾아갔다는 보고가, 임실장의 귀에 들어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자신의 처남을 찾은 이유를 당연히 궁금해 할 것이고...
“실례지만...”
“아.,.. 맥주 두 병만 더 주세요.”
자리를 비워달라는 종업원의 채근인 줄 알고, 맥주부터 주문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테이블 옆에서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흰 셔츠의 종업원이 아니고, 검은 양복의 깍두기... 이십 대 후반 정도에, 깍두기치고는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맞네. 얘들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와 봤더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그가 빙그레 웃었다.
“나 기억 못하지?”
“누구시죠?”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보니 어디선가 본 듯도 하고...
“그날 루루 갈 때 같은 차에 타고 갔잖나?”
“아... 그때 그... 철식이 조...”
그랬다. 루루라는 룸살롱을 습격할 때, 뒷문을 담당하도록 되어있었던 철식이 조의 조장이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는 성공한 것이다. 그 때는 새벽이고 어두운 승합차 내부에서 봤기 때문에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지니 컨설팅의 주철식 과장이라고 하네.”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 했다. 나 원...! 그 철식이가 주철식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성수 새엄마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승진하셨네요?”
“하하, 그때 무사히 마쳐서 그 차에 같이 탔던 직원들 전부 승진했지. 그게 다 수호 씨 덕분이야.”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 날 이후로 김 수호라는 이름 모르는 직원이 없을 걸? 그런데 여기 와서 VIP 명단을 봤더니 거기 있더구만.”
성수와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을 때, VIP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나저나, 얼굴이 팔려서 큰일이네. VIP 명단에 사진까지 붙어 유통되었을 텐데...
“그럼 이 카페도 회사가 관리하는 겁니까?”
“여기는 그냥 재료납품하고, 얘들만 배치해 놓은 정도지. 그런데 누구 기다리나? 아니면, 내가 오늘 자리를 좀 마련하고 싶은데...”
당신 기다리고 있었죠... 그를 만나기 위해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린 게 허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그가 스스로 내 앞으로 찾아온 게 다행이었다.
“사실은... 주 과장님 뵈러 왔어요.”
“나를? 아 그럼, 사무실로 올 것이지. 아니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주과장 좀 봅시다 하시면 될 것을... 아무튼 영광일세.”
“그게... 주과장님 찾아온 걸 회사에서 몰랐으면 해서요.”
“......”
“유진이 어머니 일로 왔습니다.”
그의 안색이 변했다. 내 맥주잔을 집어 들고 마시는 그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역력했다. 역시... 성수 새엄마는 여행을 간 게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뭐든 하고 있다는 게, 이제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으로 볼 때,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얼굴이 조금 전처럼 다시 환하게 펴졌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그냥 우연히 만난 것으로 하지. 누구 기다리고 있었던 걸로... 그래야 얘들이 의심하지 않으니까... 조금 전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다음에 조용히 연락하던지... 연락처 하나 주게.”
내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갈무리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떠들썩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럼 이거, 다음에 근처에 오시면 꼭 한 번 들러 줘! 하하하! 나한테 보답할 기회는 줘야지! 야, 일루 와 봐! 이 자리는 내가 계산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누구 기다리신다니까, 여기 계시는 동안에는 실례하는 일 없도록 해.”
그가 나간 후, 30분 쯤 더 있다가 카페에서 나왔다. 방관자에 불과한 나에게 그가 조직의 내부를 얼마나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유진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밤에는 유미 누나는 유진의 차지였고, 자연히 누나와 나는 남매 사이로 돌아가야 했다. 그 날도 유미 누나와 공부를 마친 유진이 선미누나의 방에서 자고 가기로 해서, 누나의 보드라운 피부를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밤에는 유진이 누나 방 대신 나를 찾았다. 표정도 사뭇 진지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일 있지?”
"그 여자라니?“
“새엄마 말야.”
“일은 무슨 일...”
하지만,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눈치가 빠른 얘라서, 처음에 불확실할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말부터,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까지, 유진은 내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유진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1년 동안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니까.
“근데 너 언제부터 새엄마한테 관심이 그렇게 많아? 예전처럼 그저 그런가 보다 하지 않구...”
“오빠가 그랬잖아? 그 여자가 내 가족이라고...”
“......”
“알았어. 오빠가 말해주지 않아도 돼. 아빠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
“유진아!”
방에서 나가려는 유진을 돌려 세웠다. 납치를 당한 후부터 유진도 알았을 것이다.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를 파며 살 수는 없다는 것... 조용히 있어도 세상 사람들이 펴 놓은 그물망에 그녀 자신이 어떻게든 얽혀 있다는 것... 이제 자신의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 그리고 혹시, 다른 이유도 있을 지도 몰랐다. 전에는 그저 한 집에 사는 여자로만 여겼던 새엄마에 대해 유진이 이제 다른 의미를 두고 있을 지도...
“그러면 안 돼. 새엄마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너도 그러는 건 바라지 않잖아?”
“내가... 그냥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알아. 하지만, 너 나 믿지? 내가 너한테 그 일 있었을 때 했던 만큼은 새엄마한테도 할 수 있어. 무슨 뜻인지 알지?”
“오빠는 믿지만... 이건 오빠보다는 내 일이야. 오빠한테는 그냥 친구네 엄마 일이지만... 나한테는...”
“......”
“가족 일이잖아. 우리 가족.”
다른 상황이었으면, 훨씬 대견해진 유진을 껴안고 뽀뽀라도 퍼부어 줬어야 맞았다. 유진이 겪은 위기가 그 애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게 틀림없었다. 당당하게 ‘알 권리’를 주장하는 그 얘에게 뭐라도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그 알권리를 자신의 아빠에게 가서 주장할 테니까...
그래서, 내가 짐작하고 있던 경과와 함께 유진의 외삼촌, 즉, 새엄마의 동생인 주철식을 만났던 일까지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효과있을 것 같지 않은 당부를 곁들였다.
“유진이 너는 그냥 잠자코 있으면 돼. 어떻게든 일이 풀릴 테니까.”
유진도 별로 신뢰성 있어 보이지 않는 짧은 대답을 남겼다. “알았어.”
하지만 역시, 누가 봐도 그 문제의 당사자는 내가 아니었고,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의 가족사에 쓸모없는 참견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참견의 이유를 ‘피해자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으로만 달기는 어려웠다. 그건 그저 내 천성일 뿐이었다.
어쩌면 고등학교 때 박은혜 선생님에 대한 성수의 보복을 말린 것부터 주제 넘는 참견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때는 분명히 내가 옳았다. 대학교에 와서 했던, ‘주제 넘는 참견’의 결과는 끔찍했다. 유미 누나의 출생에 관한 사실이 누나 자신에게 전해지는 걸 막은 것부터가, 시간이 철철 남아 넘치는 느슨한 대학생활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정의의 실현과는 관계없는 주제 넘는 참견이었을 것이다. 유미 누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했던 그 참견의 결과는... 아직도 나를 다른 핏줄로 여기고 있는 유미 누나와 목숨을 잃은 진규 형이었다.
스키장에서의 광식 군의 일만 해도 그랬다. 광식 군과 혜린이 같이 있는 방에 쳐들어가려는 나를 선미 누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미 선미 누나와 광식 군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는 대신, 여전히 참견하고 있었다. 유진의 일에 ‘참견’해서 결과가 괜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용기백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부탁했던 성수의 말이 내 자신에게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내가 참견하는 이유를 누구에게도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성수 새엄마의 동생, 주철식에게도...
대낮인데도 그의 얼굴은 술 기운에 벌개져 있었다. 아마 고민을 많이 한 듯...
“내가 만나자고 한 건, 충고 한마디 하기 위해서야.”
“......”
“수호 씨가 왜 그렇게 적극적인지는 모르지만, 나설 이유는 없어. 이건 우리 식구의 문제일 뿐이니까... 앞으로는 관심 가지지 말라고 얘기하러 나왔네. 그게 수호 씨나, 수호 씨 가족을 위해서나 좋을 거야.”
짧은 말을 마치고 휑~하니 사라지는 주철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성수 가족의 일에 참견해야 하는 논리적인 핑계를 찾아보았다. 분명히 이유가 없는데도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주 소영이라는 여자는 나를 몇 번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몇 번 육체관계를 가졌던 여자, 과외를 해주고 있는 유진의 새엄마, 그리고 친한 친구인 성수의 새엄마이자 짝사랑... 역시...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참을 수 없이 불끈거리는 이유는 뭘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방관하고 있던 나 자신에 대해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닌데...
[어떻게 됐어? 오빠?]
아무 소득 없었다는 내 말을 듣고 전화기 건너 유진도 말이 없었다.
주철식으로부터 정보를 캐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하지만, 성수의 정기 휴가가 코 앞이라 애가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성수 새엄마가 그 전에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것 저것 재 봤던 나에 비교하면, 유진은 그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외형만 여자이고 소녀일 뿐, 그 애의 성격은 성수의 판박이, 아니 어쩌면, 성수보다 훨씬 집요하고 저돌적이었다. 사실 유진이 그녀의 새엄마를 마치 소 닭 보듯 했었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새엄마의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건 예상 외였다. 그녀 역시 휴가를 나온 성수가 본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새엄마를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제 반항의 시기를 넘어서는 나이라서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지...
[오빠, 나...]
[유진이?]
[새엄마 있는 데 알았어.]
[정말? 어딘데?]
[지금 그 앞에 와있는데, 혼자서는 못들어 가겠어.]
[어딘데?]
[가평...]
대중교통이 모두 끊긴 시간이라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탔다. 총알택시가 그렇게 느리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그 동안에도 유진과 계속해서 통화하고 있었다. 새엄마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유진이 주철식에게 쓴 방법은 내가 삼촌의 입을 막기 위해 쓴 방법하고 같았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계집애가 실제 칼로 손목을 그은 것이다. 그리고, 협박까지...
‘오빠가 군대에서 나오면 가만 둘 줄 아세요? 오빠가 막 나가면 아빠도 못 말려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이 어린 새 조카의 자해 소동만으로 주철식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임 실장의 부인으로서의 주 소영의 역할을 끝내려 결정하고 있었고, 주철식도 친누나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회사처럼 ‘사직서’를 쓰고 퇴직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기에, 그녀는 아마 형식적인 이혼 절차를 밟고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었다. 아직도 쓸모가 많은 그녀의 육체와 섹스 기술이 필요한 다른 어느 곳... 절대 혼자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임 실장의 아내로 있던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싫던 좋던 회사의 치부를 낱낱이 알게 되었을 테니...
“유진아.”
“오빠 여기...”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 있던 유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가로등 불빛에 비친 유진의 입술이 추위 때문인지 퍼렇게 보였다. 그녀의 뒤로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아스팔트가 50여 미터쯤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그 끝을 지니 연수원의 정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4층짜리 건물은 불이 모두 꺼진 채, 어두운 밤 하늘을 파고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저기야?”
“응. 저 안에 있긴 한데... 어딘지는 몰라.”
“가자.”
“정문으로?”
“그럴 수는 없지.”
연수원은 관광 철에 손님이나 받는 곳인 줄 알았더니... 그 연수원이 아마 조직원들을 훈련시키는 곳 쯤일 것이다. 조폭 양성소를 당당하게 연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담벼락을 빙 돌아 만만해 보이는 높이를 찾아 보았다. 가로등도 없고, 랜턴도 켤 수 없어 숲길을 걷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결국 유진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만큼 낮은 담장을 찾아냈다.
요행히 여기서 성수 새엄마를 빼낸다고 해도, 그 다음은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 없는 행동이었다. 거기에서 탈출 한다고 해도, 성수 아버지의 양해가 없는 한, 새엄마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그간 누차 경고한 대로 나 또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해꼬지를 가할 지 알 수 없는 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오로지 방법은 쥐도 새도 모르게 빼내서 회사의 손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나 숨겨 두는 것이었다. 누가 그녀를 빼냈는지 모르도록... 그래야만, 나도, 유진도, 주철식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분명 언제까지 숨겨둘 수는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담장 안쪽에도 컴컴하긴 마찬가지였다. 들어가 보니, 커다란 본 건물에 90도로 놓여 있는 2층짜리 건물도 하나... 정문 쪽 경비실 하나... 어디 하나 불이 켜진 곳이 없이, 느낌만으로는 완벽히 빈 건물이었다. 한 동안 숨을 죽이고, 인기척이 있나 살펴 보았지만,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마당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해?”
“글쎄다...”
굴욕적인 결혼 생활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성수 새엄마의 무기력은 그저 그녀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어이없어 보이는 부부 생활, 갈등 뿐이 가정 생활에서 탈출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먹고 살기 윤택하기 때문에 견디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활이 그녀에게는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선택일 뿐이었다. 벗어날 수 없으니, 순응하지 못하면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 뿐이었다. 성수의 친엄마처럼...
“유진이, 너. 여기서 기다리다 내가 30분 내에 오지 않으면 전화해서 경찰을 불러. 알았지?”
사무실 용도로 쓰일 것 같은 2층짜리 건물을 택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 창문 하나하나 열어보며, 잠겨져 있지 않은 것을 찾았다. 다행히 반대쪽 측면에 있는 간이 창문이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려 있었다.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히 창문을 열고, 길다란 복도의 한 쪽 끝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심장이 망치질을 하듯 두근거렸다. 복도의 온기로 볼 때, 난방을 하고 있으니, 빈 건물은 아닌 것이다.
방 하나하나 인기척을 확인하며, 중앙을 향했다. 그제서야 어느 방에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건물 현관문 바로 안쪽에 붙어 있는 경비실... 누군가 TV를 켜 놓은 듯 점점 다가갈수록 박수소리, 웃음소리...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그 방의 문이 확 열리고, 방에서 새어나온 불빛에 복도가 밝아졌다. 재빨리 내 옆에 있던 문짝에 바짝 붙었다. 방에서 누군가 복도로 모습을 나타냈다. 사내가 둘...
“갔다 오마.”
“형님, 오늘은 별당 아씨 건드리면 안 돼요.”
“알았어, 임마!”
“진짜 조심하세요. 아침에 본사에서 상태 점검하러 온댔어요. 생채기 하나라도 있으면 좆 되는 거 아시죠?”
“알았다니까, 자식아! 니가 조장이야?”
문이 쾅 하고 닫히고 사내 둘이 현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 진짜, 새가슴이야. 어유, 어디다 쓸까?”
“우리도 저만 할 때 저랬잖아요. 군기가 바짝 들어가지고... 하하하.”
새소리를 본 뜬 요란한 현관문 경보기가 울어댔다. 방에 최소한 하나, 복도에 둘... 현관문을 열고 나선 사내들의 모습이 마당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연이어 랜턴의 불빛이 커지며 흔들거렸다. 아마 본관을 향하는 듯... 나는 복도를 다시 거슬러가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흔들거리는 랜턴의 불빛이 본관의 입구 안쪽으로 사라지자, 나도 그들을 따라 어두운 마당을 가로 질렀다. 다행히 잠겨져 있지 않은 본관의 입구... 중앙 홀에 서서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철창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4층... 좌측 복도가 쇠창살로 막혀 있었지만, 그 아래 쪽문이 조금 전 사람들이 들어갔다는 걸 알려주듯, 빼곰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스위치를 켠 듯, 그 쪽 복도 전체가 밝아졌다. 모서리에 숨어 얼굴만으로 복도를 관찰했다.
“우리 오늘도 별당 아씨 문안 한 번 드려야지?”
“하하, 제가 그 맛에 이런 시골 구석에 박혀 있어도 꾹 참는다니까요.”
“오늘은 살살 다뤄라.”
“걱정 마세요, 형님. 제가 데려올까요?”
사내 하나는 건물 앞쪽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뒤쪽으로 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후에 뒤쪽 방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다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고개를 푹 숙인 슬립 차림의 여자, 별당아씨가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췌해 보이기는 했지만, 살아서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사내와 성수 새엄마가 조금 전 다른 사내가 들어간 건물 앞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당장 들어가서 이것들을 쓱싹 해치우고 튈까? 복면이라도 하고 왔으면 좋았을 걸... 조심조심 복도를 걸어가 그들이 들어간 방 바로 앞까지 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거기 서 있을 수는 없으니, 그 방에 바로 연달아 있는 다른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이거?’
마치 작은 관람석처럼 의자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가 향하는 곳에는 커다란 유리가 있고, 그 유리를 통해 조금 전 그들이 들어갔던 방의 광경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게 반사유리라는 걸 알아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그렇지. 이 방은 관람석이다. 저 방은... 공연장이고... 여기서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이다. 저 방에서는 변태스러운 성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유리를 통해 보이는 건넌방의 모습은 내 짐작이 맞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 쪽 구석의 침대만 아니면, 영락없는 고문실이었다. 형틀 같은 것... 쇠사슬 같은 것들이 벽에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조그마한 테이블이 방 가운데... 그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조금 전 들어간 사내 하나가 앉아 두 발을 테이블 위에 올린 채, 곤봉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우리 기다렸지, 이쁜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아... 스피커가 있구나. 역시... 관람을 하려면 소리도 리얼하게 들려야 할 테니까... 성수 새엄마가 다른 사내의 손에 밀려 테이블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무표정함이 그 날과 같은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앉아 있던 사내가 곤봉으로 테이블을 탁 탁 두드렸다.
[여기 턱 붙여.]
성수 새엄마의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지더니 턱이 테이블 끝에 닿았다. 다른 사내가 그녀의 두 손을 등 뒤로 당겼다. 그의 손에 언제 가져온 건 지 은색의 수갑이 번쩍거렸다.
[야! 그거 하지 마. 자국 남아.[
[이 정도만 하죠? 괜찮던데...]
[다음에 해, 다음에. 내일 점검 끝나면...]
[에이, 씨팔. 점검 같은 거 뭐하러 오나 몰라. 할 일 없으면 자빠져 잠이나 잘 것이지...]
[이쁜이, 오늘은 간단히 끝낼 테니까, 너도 주의해. 행여나 몸에 기쓰 하나라도 남으면 내일 점검 끝나고 무슨 꼴 당할지 알지?]
[이년이 꼬아 바치지 않을까요?]
[안 그럴 거야. 그랬다간 지 상품 가치가 떨어질 테니까... 그렇지, 이쁜아? 어디 섬 구석에서 몸 팔고 싶지는 않지? 흐흐흐.]
[똑 바로 열중 쉬어 하고 있어! 손 풀었다간 알지?]
사내가 손가락으로 뺨을 토닥거리자, 성수 새엄마의 옆 얼굴에서 눈이 질끈 감기는 게 보였다. 내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건 분노 때문이었다. 저 새끼들을 그냥 두고 가야 하나... 여전히 성수 새엄마는 턱 끝을 테이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사내 둘 다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저 망할 것들이...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당장 쳐들어가서 응징해야 하나, 아니면 꾹 참고 기회를 기다려야 하나.
[어유, 이 년 엉덩이는 언제 봐도 죽음이야. 형님, 이 년 나가면 무슨 재미로 살죠?]
성수 새엄마 뒤쪽의 사내가 슬립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흥분했는지 발가벗은 그의 사타구니에는 좆기둥이 벌써 천정 쪽으로 세워져 있었다. 짝 소리와 함께 성수 새엄마의 하얀 엉덩이가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야, 새끼야! 손찌검하지 말라니까! 너 진짜 뒈질라고 환장했어?]
[아.. 이 정도는 괜찮다니까요?]
[그냥 조용히 좆대나 쑤셔 박아 새끼야! 딴 데 손대지 말고! 아니면 겨 나가고!]
[아.. 알았어요, 형님. 에이씨!]
뒤쪽 사내가 성수 새엄마의 팬티를 벗기는 사이, 앞쪽 사내도 옷을 다 벗은 채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좆대를 그녀의 눈 앞에서 쥐고 흔들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 이쁜이, 그 동안 배운 솜씨 좀 발휘해 봐. 알았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광경에 아마 내가 경계를 소홀히 한 듯 했다. 아니면, 유진의 잠입 기술이 좋았던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그녀가 내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당을 질러가는 사내들과 내 모습을 보고 따라 온 듯... 유진을 보고 놀라는 것보다,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녀의 입을 막는 게 먼저였다. 유진의 시선은 유리 너머의 광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애를 만난 이후로 그렇게 커진 눈을 본 적도, 그렇게 충격을 받은 모습도 처음이었다.
“앉아... 소리내지 말고... 조용히...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입을 막은 손을 떼어 주었다.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유진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건넌방의 불빛과 그 불빛 속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으... 좋다!]
어느 새 사내의 거무튀튀한 좆 기둥이 성수 새엄마의 붉은 입술을 벌리고 들어가 있었다. 사내는 목을 뒤로 젖힌 채, 성수 새엄마의 머리채를 한쪽 손으로 휘어잡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좆대가 입 속으로 진입할 때마다 성수 새엄마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뒤쪽의 사내도 준비가 다 된 듯, 여자의 엉덩이를 눌러 벌린 채 좆 끝을 중심에 맞추고 있었다.
[아, 뻑뻑하네.]
[멍청한 새끼, 침이라도 좀 발라라.]
[힘 빼 이년아! 너만 힘들잖아. 힘 못빼? 가만 있어 봐, 이년을...]
사내가 한 쪽에 놓여 있던 곤봉을 움켜 쥐었다. 그러더니 그 끝으로 성수 새엄마의 음부를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하여튼 변태 새끼!]
[이걸로 길 내 놓을라구, 크크크.]
18세 미만은 미성년자... 이런 등식을 인정하지는 않는 나였지만, 그런 광경만큼은 도저히 유진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시선은 유리쪽에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유진에게 쏠려 있었다. 곁눈질로 본 유진의 가슴이 마치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에 서려 있던 경악은 어느새 표독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으윽!]
유리 너머에서 성수 새엄마의 뾰족한 비명이 들리는 것과 유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 거의 동시였다. 나도 재빨리 일어서서 유진의 몸뚱이를 꽉 끌어안았다. 유진이 빠져 나가려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제발 유진아!
“조용... 조용해... 뭐하러 왔는지 잊었어?”
[야 임마! 침 좀 바르라니까 깨물릴 뻔 했잖아!]
“이익....!” 유진이 주먹을 움켜 쥐었다.
[형님, 이 년 좀 봐. 막대기가 지 서방인 줄 아나 봐. 하하 나 원, 막대기에다 질질 싸 놓는 것 좀 봐. 웃기는 년이네 이거?]
사내가 곤봉을 거칠게 밀어 넣을 때마다, 성수 새엄마의 몸이 움찔 거렸다. 하지만, 그걸 떼어내지 못하는 그녀... 반항은 고사하고 입이 막혀 신음마저 낼 수도 없었다.
유진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머리를 내 어깨에 묻더니 파커를 이빨로 베어 물었다. 내 옆구리쪽 파커를 움켜진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내가 곤봉 대신 자신의 좆대를 성수 새엄마의 몸 속에 찔러 넣었다.
[아! 금방 매끈해지네. 으...씨발, 감촉 죽인다.]
나도, 그리고 내 어깨 너머로 유진도 짐승 둘이 성수 새엄마의 몸뚱이를 유린하는 장면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 보았지만, 가슴 속은 분노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성수 새엄마의 음부를 쑤시고 있는 사내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그녀의 머리가 춤을 추듯 율동적으로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을 들락거리는 또 하나의 기둥... 아무도 모르게 성수 새엄마만을 구해 가려던 내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저히 저것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이제는 자세를 바꿔 그녀가 천정을 보고 누웠다. 아래쪽의 사내는 그녀의 발 목을 쥐고 연신 허리를 쑤시고 있고, 머리 쪽의 사내는 바닥을 향해 떨구어진 그녀의 머리에 허리를 바짝 대고 여전히 입에 좆을 박은 채 대접 같은 유방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쪽쪽 빨아 봐, 이쁜아! 너도 좋지? 흥분돼 미치겠지? 옳지, 옳지 좋다.]
[아! 벌써 나올라구 하네. 오래 갖구 놀아야 하는데...]
성수 새엄마의 손이 단단한 테이블 바닥을 움켜 쥐려는 게, 흥분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이 주먹으로 내 가슴을 팡팡 두드리기 시작했다. 질끈 다문 유진의 입술 사이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으으.... 으어...”
그녀를 강하게 끌어 안고, 머리를 당겨 어깨에 다시 파묻었다. 더 보여줄 수는 없어... 다시 한 번 그들이 있는 방의 구조와 집기의 위치를 머리 속에 새겨 둔 후, 유진을 끌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시작되는 곳, 조명 스위치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내가 신호하며 스위치를 죄다 내리는 거야, 알았지?”
유진를 거기 두고 나는 그들이 추잡한 짓을 벌이고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유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 불이 꺼짐과 동시에 재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내들이 미처 내 모습을 발견하기 전에 조금 전에 봐두었던 전등 스위치를 내리자, 복도에 이어 방 전체도 암흑 속에 빠졌다. 그리고, 전등이 꺼지기 직전에 위치를 확인해 두었던 쇠파이프를 움켜 쥐었다.
“뭐야, 이거!”
“누구야! 윽!”
성수 새엄마는 누워 있을 테니... 머리가 있을 만한 위치에 닥치는 대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파이프가 단단한 두개골에 부딪쳐 생기는 진동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분명 머리 두개를 맞췄지만 멈추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는 다시 스위치를 올려, 상태를 확인했다. 알몸으로 나동그라져 있는 사내 둘... 테이블 위에 다리를 헤프게 벌린 채 아까와 같은 자세로 누워 있는 성수 새엄마...
내가 사내들을 결박하고, 눈을 가리는 동안 유진이 새엄마의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우리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끝냈다. 그 사이에 사내들이 정신을 차리고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재갈 때문에 끙끙거리는 소리만 날 뿐... 유진에게 가자는 뜻으로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유진은... 그냥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에 성수새엄마의 음부를 쑤셨던 그 곤봉이 어느새 유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동그라져 있는 사내들 곁으로 다가가는 유진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가혹한 응징... 결박당해 움츠리기조차 어려운 두 개의 고깃덩어리에 유진의 곤봉이 수도 없이 내리꽂혔다. 저러다 죽이지... 유진을 말리자 아직도 풀리지 못한 그녀의 분노가 방에 가득 차 있는 집기들에게 돌려졌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새엄마를 등에 업고 마당으로 나온 후, 조금 전 침입했던 담장 아래까지 갔다.
“정문으로 나가면 안 돼?”
“안 돼. 아마 CCTV 같은 거 있을 거야. 여기서 좀 기다릴래?”
2층 짜리 사무실 건물로 다시 향한 것은 내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이렇게 둘이 와서 대담하게 사람을 빼갈 거라고 상상하겠는가? 경비실에 누워 있는 친구도 공평하게 혜택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다른 어느 조직이 떼거리로 쳐들어온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성수 새엄마 방에서 가져온 머플러를 얼굴에 칭칭 동여 맸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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