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父情)(22부)
7개월 후. 12월.
그동안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보호해야할 여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즉, 나만 바라보고 나의 사랑을 생명의 양식처럼 여기는 여인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수는 어느덧 5명이 된 것이다. 나의 여인들의 구성은 이랬다.
첫번째 나의 여인은, 항상 내곁을 지키며 나의 영혼까지도 사랑하는 여인, 즉 나의 조강지처 유경인이다. 애를 순산하고 난 이후부터 경인이는 음란함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짜투리 시간이 생기기만 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터질듯 부푼 젖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고는 자신의 치마끈을 홀라당 풀어 헤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보상이라도 받아내려는듯 격정적인 몸짓으로 나를 원했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몸을 떨어대는 섹스의 화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평상시 경인이는 나에게 너무나 헌신적인 여인이었다.
두번째 나의 여인은, 다름아닌 송진선이다. 그녀 또한 경인이와 모녀지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일 같이 나의 좆을 경인이와 나눠가지며 온 신경을 거기에 몰입한 채 밤이 오기만 기다리는 음탕한 색녀가 되어있었다.
어떤 날은 내가 내려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지, 그새를 못참고 이층으로 올라와서는 문틈 사이로 우리의 섹스 장면을 훔쳐보며 질액으로 질척거리는 보지를 손가락으로 쑤셔박다가 거기서 절정에 올라 기절한 적도 있었다. 마침 내가 그 모습을 발견해서 황급히 안고 내려왔기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으면 수습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을 맞을뻔 하기도 했다.
또 진선은 불쑥불쑥 학교로 찾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 처지가 어떤지 살펴보지도 않은채, 학교 근처에 와서는 무작정 삐삐를 쳐서 수업중인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근처의 여관으로 나를 데리고 갔지만 방안으로 끌려간 나는 별다른 저항을 못한채 그녀의 처분만 기다렸다.
다급해진 진선은 허겁지겁 나를 밀쳐서 침대에 눕히고는 마구잡이로 옷을 벗기더니, 아무런 애무도 하지 않은채 미처 발기하지도 못한 나의 좆을 몇 번 손으로 왕복시키고는 그 놈이 조금 부풀어오를양 여겨지면 그대로 자신의 질 안으로 좆을 쑤셔박은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한마디로 진선은 맹목적으로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세번째 나의 여인은, 꽃으로 비유하면 봄날의 화사한 장미꽃 같은 여인이다. 바로 경인이의 산부인과 주치의이자 아름답고 풍만한 몸을 가진 김선경이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첫번째를 나에게 바친 선경은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선경은 자신이 먼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무작정 내가 하잖대로 따랐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부당하고 치욕적으로 여겨질 만한 나의 요구에도 못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응해왔다.
나는 이런 선경을 안을 때면 "왜 남자들이 여인을 가학적으로 정복하고자 하는지. 또 그런 여인을 짐승처럼 다루며 자신의 끝없는 파렴치한 욕구를 풀고자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잠자리에서 만큼은 앞의 두 여인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선경의 인격을 완전히 배제한채 그녀를 다루었다. 그녀의 어떠한 처지도 감안하지 않은채, 선경에게 나의 정복욕을 맘껏 풀고 있었다.
하루는 중간고사 시험 때 일이었다. 밤새워 피곤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섹스에 대한 자극이 격하게 올라 왔다. 오전 1시간만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시험을 치루었고, 내일은 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모처럼 술 한잔하고 가자는 친구의 제안도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고는 곧장 선경에게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선군!"
"어쩐 일로? 나 지금 진료중인데...! 급한일이야?"
"지금 급해! 무슨 말인지 알겠제? 지금 집으로 갈거니까, 너도 빨리 집으로 와 알겠제?"
"알았어. 가 있어."
선경은 진료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보다 먼저 자신의 집에 와있었고, 그런 그녀를 나는 다짜고짜 짖이겨 나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 어떤 날은, 졸업반이라 수업이 별로 없어서 일찍부터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게 되었고, 일찍 마신 술이라 그런지 친구들과도 일찍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술기운도 오르고, 술 취한채로 일찍 집에 들어가기도 뭣하고 해서 선경의 집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선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야근을 하고 있는 선경이 전화를 받았고, 왜 퇴근도 안하고 그러냐는 나의 물음에, 급하게 찾아온 산모 때문에 대기 중이라 퇴근을 못한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택시를 탔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갔고, 그녀 혼자 있는 진료실에서 깜짝놀라는 선경을 안았던 적도 있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간호사의 방문을 염려하며 치루는 진료실에서의 섹스는 너무도 스릴있고 자극적이라 나에게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가지게 했다. 나는 어쩔줄 몰라하는 선경을 임산부들이 진료받기 위해 눕는 자그마한 배드에 눕혀놓고는 그녀를 마음껏 유린해 나갔고, 그녀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채 거침없이 지쳐들어오는 나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주었다.
마침내 인터폰이 울렸고, 선경은 질안에 나의 좆을 꼽은 채 인터폰을 받았다. 우리의 스릴 넘치는 섹스는 애가 나올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그칠 수 있었다. 이처럼 선경에게서 나는 가학적인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세 사람은 누구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미모와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소유함으로 해서 나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고 있었다. 나는 이들 모두를 사랑했다. 이들 모두는 나의 역사이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어쩌다 내가 그들 앞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으면, 그들은 나에게.
"군! 그런 표정 짖지마. 당신 얼굴에 그늘이 지면 내 가슴에는 피멍이 들어. 나와 있을때 만이라도 나를 위해 웃어줘!"
라고 하며 나를 염려하였고, 또 그들 앞에서 밝게 웃으면 덩달아 자신도 나에게 동화되어 한없이 행복해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 뿐만아니었다. 내가 책임져야할 여인이 두 명이 더 있다.
그 두 명의 여인 중 한명은 바로, 2개월 전 하늘에서 나에게로 보내준 선물, 즉 나와 경인이의 분신 "연희"를 말하는 것이다. 연희는 2개월 전 맑은 대낮에 내 품으로 날아온 천사였다.
아침을 챙겨먹고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경인이가 갑자기.
"오빠...아무래도...애가 나오려나 봐!...아까부터...규칙적인 간격으로...통증이 느껴져!!"
그랬다. 경인이는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나? 이거 큰일 났군! 경인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돼지? 뭐 뭐를...챙기면 돼나? 좀전에 출근하신 장모님을 부를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그래서 준비해야할 것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경인이에게 물어봤다.
"응...됐어...으음...가져갈 건 저 가방에 미리 다 넣어뒀으니까...저 가방만 가지고 가면 돼!...오빠가 따로 준비할 건 없어. 우선...병원에 연락해서...담당의사에게...사실대로 얘기하고 어떻게 할 지 여쭤봐...그런 다음 엄마한테 연락해줘!!"
"알았다. 많이 아프나?"
"지금은 참을만 해."
애를 처음 낳아보는 건 나와 마찬가지인데도 경인인 침착했다. 나에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정확히 지시 해주었다. 이런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나는 학교를 하루 재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경인이의 말대로 병원과 장모에게 연락하였고, 그런 후 재빨리 병원으로 차를 몰아갔다.
병원에 당도하고 보니, 경인이의 주치의인 선경은 현관 입구까지 우리를 아니 경인이를 마중나와 있었고, 그녀는 우리가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걸어오는 선경의 배에서, 그녀 자신도 몇 달 후면 이렇게 분만실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알듯 모를듯 미소를 던지며 반달 모양의 웃음 가득한 그녀의 눈에 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선경의 안내를 받으며 분만실로 이동했고, 우리가 도착한 지 30분 가량 흐른 다음 진선이 분만실에 당도했다. 분만실로 이동한 경인은 3시간 여의 진통 끝에, 시계가 막 정오를 넘어가려는 순간. 3.2kg의 건강한 여아를 생산해냈고, 탯줄을 끊은 그 아인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 후 곧바로 수유실로 옮겨졌다.
"어쩜...공주님이 엄마를 닮았는지...눈도 크고 아주 맑아요...!!"
"아기야! 안녕. 아빠야...!!"
연희는 수유실로 옮겨질 때,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느낌은 이루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흥분시켰다. 엄마를 닮았음인지 유난히 큰 눈은 신기한 세상이 어리둥절 했는지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첫인사를 건네는 낯선이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 볼을 타고 기쁨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렇게 잠시 동안의 대면 만으로도 연희의 존재감은 나를 가득 메워버렸다.
"후후후...어제 밤에 목욕을 한게 정말 잘한 것같다! 이정도면 태어나는 아기가 나를 잘봐 주겠지!"라는 자족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 오기 전 아침에도 나는 가볍게 샤워를 했었다.
태어난 지 한달 쯤 지나고 난 다음. 즉 지난달 연희는, 부산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한연희"라는 예쁜 이름을 선물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연희는 우리 부부와 우리 가정의 기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마지막 나의 여인은, 한달 전에 완전히 내 것이 된 손혜지가 그 주인공이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이제 막 삼 칠일을 넘긴 연희를 경인이와 함께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삐가 울리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순간 그 번호가 혜지의 집 전화번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얘가 무슨 일 있나? 왜 갑자기 삐삐를 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오빠! 어디서 온 거야?"
"으...응...아니다...그냥 친구...!"
경인이는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순간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인이는.
"그래...! 무슨 급한 일이지? 오빠! 이제 행구기만 하면되니까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어서 전화해봐!"
"그래 알았다. 마무리 부탁한다!"
나는 목욕 마무리를 경인이에게 부탁하고는 침실로 올라왔고, 거기서 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르릉...때르르르릉..."
"여보세요...오빠?"
"그래...나다...웬일로 삐삐를 다치고 그러냐?"
"으응...학교 마치고 집인데...토요일 오후 혼자서 집에 있으려니까...너무...심심하지 뭐야...! 방안에서 이리 저리 뒹굴거리려니 좀이 쑤시고 말야...그래서 오빠 생각이 나지 뭐야...오빠 제발 나 좀 구제해줘요...헤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나는 지금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빠...왜...안돼...?"
"으응...지금 애기 목욕시키는 중이었거든...! 이를 어쩐다!"
"그래!...그럼 안되겠네!...할 수 없지. 뭐...!"
혜지는 목욕 중이라는 나의 말에 실망했는지, 잔뜩 풀죽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불러내기를 포기하였는지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나는 황급히 그녀를 제지하며.
"잠깐만!...그럼. 조금만 집에서 기다려 봐라. 모처럼 예쁜 동생의 부탁인데, 없는 시간도 짜내봐야 안되겠나! 지금 바로 집 앞으로 갈거니까. 전화하면 나와라...알겠제!"
"호호호...와! 신난다...알았어...기다릴께...전화끊어...오빠 빨리와...나중에 봐!"
혜지는 내가 만날 것을 약속하자 시무룩한 목소리에서 금방 신난 목소리로 바뀌더니, 환호성과 함께 마냥 즐거워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끊자 나도 전화를 끊었고, 연희가 목욕하고 있는 1층 욕실로 내려가서 경인이에게, 오랜만에 친구가 보자고 해서 나가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경인이의 알았다는 대답에, 옷을 갈아입고는 곧장 집을 나섰다.
"오빠...여기...!"
차를 몰아 혜지 집 앞에 도착하니, 그녀는 이미 집 앞에 나와 있었고, 내 차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자신 앞에 차가 멈추어서자 차 문을 열고는 익숙하게 조수석에 앉는 것이었다.
"왜? 벌써 나와 있냐? 내가 전화하면 나오지는...!! 여기 안전벨트!!"
조수석에 앉는 혜지에게 안전벨트를 메어주며, 일찍 내려온 그녀를 나무랐다.
"호호호...기다리기...너무 지루해서 말야!...그래서 일찍 내려온 거야! 오빠가 이해해주라...으응!!"
"하하하하...그렇게 이 오빠가 보고 싶더나? 아침에도 봤잖아?"
"그럼요...! 너무 너무 심심해서, 너무 너무 보고팠어요."
혜지는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과장된 몸짓과 함께 팔짱을 꼈고, 팔짱을 낀 내 어깨로는 풋풋한 혜지의 젖가슴의 감촉이 뭉클거리며 느껴지고 있었다.
"오빠...고마워! 아기보느라 불철주야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나를 구제해 줘서 말야."
"고맙기는 우리 혜지가 부르는데 오빠가 안 올 수가 있나! 없는 시간도 쪼개 가면서라도 와야지 안되겠나?...하하하하!"
"호호호호...그래서 혜지는 오빠가 제일 좋아! 혜지 맘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오빠가 말야!"
"하하하...그렇제...?"
연신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혜지에게 나는, 자화자찬을 해가며 분위기를 띠웠고, 그녀도 거기에 호응해왔다.
"그런데 혜지야!"
"왜?"
"우리 어디갈까? 어디를 가야지 너의 심심함을 잘 달래 줬다고 소문나겠노? 어디가 좋겠노?"
"으응...오빠 기다리며 생각해봤거든. 오빠 우리 놀이동산 가자. 어때?"
"뭐라!!...놀...이...동...산...?? 니 놀이기구 잘타나...!?"
놀이동산에 가자는 혜지의 제안에 평소 놀이기구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던 나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면서 그녀에게 재차 물어봤고.
"호호호...그래. 왜? 오빤 놀이기구 타는 거 안좋아해? 아니면 무서워서 못 타?"
"아니...그게...아니라...그냥...그렇지뭐...!!"
"호호호호...! 덩치는 커다란 사람이! 겁은 왜 이렇게 많아. 어떻게 놀이기구도 못 타? 덩치가 아깝다. 오빠 나만 믿어! 오늘은 나만 믿고 가자...응! 남자가 뭐 그래?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서 놀이공원으로 출발해라."
나의 불안한 표정을 읽은 혜지는 재밌다는듯 개구장이 같은 앙증맞은 웃음을 띠면서 장난끼어린 목소리로 계속해서 나를 졸랐다. 나는 하는 수 없었다.
"알았다...가면...가면 될 거 아니가...!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와...호...신난다. 오빠 출발!!"
장난치듯 놀려대며 반협박하듯 애원하는 혜지의 성화에 마침내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승낙에 그녀는 환호성을 질렀고, 곧이어 나에게 출발을 알렸다. 나는 혜지의 명령에 억지 춘향이 되어 차를 출발시켰다.
1시간 쯤 차를 몰고갔더니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주차시킨 후 매표소로 향했고, 줄을 서서 매표를 했다. 매표도 혜지의 억지가 통했다. 혜지는 나로 하여금 기어이 자유이용권을 사게 만들었다.
혜지는 차에서 내린 이후 줄곧 팔짱을 풀지 않았다. 어깨에 착 달라붙은 채 마냥 신나하며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팔짱을 낀 채 놀이공원으로 입장할 수 밖에 없었고, 혜지는 마치 수사관이 범인을 체포한 것처럼 나를 끌고 갔다. 우리는 누가봐도 기묘한 모습으로 입장하였다.
"오빠! 우리 저거 타자!"
"혜지야...저거? 보기만해도 어지럽다. 나 못탄다. 제발 나 좀 살려도. 정 타고 싶으면 니 혼자타라."
혜지는 처음부터 강력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그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혜지의 완강한 태도에 나 어찌 버티겠는가. 나는 오뉴월에 개 끌리듯 억지로 그것을 탈 수 밖에 없었다.
"호호호...오빠...긴장 풀어! 별거 아니야...! 꼭 잡고만 있어!"
"알았다...! 아악...!"
놀이기구는 후들후들 떨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드디어 무심한 놀이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놀이기구는 어느 새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전보호대를 꽉 움켜지고는 아둥바둥 거리기 시작했고,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빠르기에 와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떡 벌린채 놀이기구에 온 몸을 맞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놈이 이딴 걸 만들었어. 내 눈에 띄이기만 해라. 죽여버릴 거다."라는 생각과 함께 입밖으로 침을 질질 흘러나왔다. 흘러내리는 침을 닦을 겨를도 없었다. 이미 정신은 내 몸 밖으로 유체이탈한 상태였고, 온 몸에는 힘이 빠져서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덜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호호호...꺄아악...야아아...! 오빠...너무 신난다!"
혜지는 나와는 다르게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과 더불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놀이기구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오빠...이거 너무 재밌다. 우리 한 번 더 타자. 으응!"
놀이기구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출 때 쯤. 혜지는 똑같은 놀이기구를 탈것을 제안했다.
"우욱...! 난 싫다...타려면 니나 타라...! 아침에 먹은 게 올라 올라한다...!"
"피...! 오빤...겁장이 바보. 같이 타지는. 할 수 없지 뭐. 그럼 오빠는 저기 벤취에서 나 타는 거 보고 있어. 난 한 번 더 탈래!"
혜지의 제안에 나는 얼굴빛이 새 하얗게 변하며 정색을 했고,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오는 발걸음을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했으며, 급기야 오전에 먹은게 올라오려고 하는지 구역질이 났다. 나의 상태를 지켜보던 혜지는 나와 같이 타는 걸 포기했는지, 더이상 나를 보채지 않았고, 저 혼자 신나게 놀이기구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연속해서 두 번이나 더 탔고, 다음 놀이기구로 나를 끌고 갔다.
"오빠...별로 안 무서운 저기 있는 바이킹이나 타자. 저 정도는 탈 수 있겠지?"
"오! 마이 갓! 이게 누굴 죽이려고 그러나! 우우...저기봐. 사람들이 거꾸로 메달리는 것 좀 봐!"
"혜지야...나 몸이...너무 안좋거든...그래서 부탁인데...더 약한 걸로...타면 안돼겠나?"
"여기야...저것보다 더 약한 것도 있어? 어디에? 오빤 뭘 타자는 거야?"
"으응...예를 들자면...저기...!"
"뜸들이지 말고. 어서 얘기해봐."
"그러니까...우리...저기있는...회전목마나...대관람차라든지...하는 거...있제...오빤...그런거...좋아해!"
"아유! 쪽팔려라. 쥐구멍이 어디있지?"
"호호호호...! 정말이야. 저런 걸 좋아해?"
"으...응!"
비참했다.
"나는 역시 놀이기구를 타러 오는게 아니었어. 아마 여기 온 사람 중에서 최고의 겁쟁이는 나 일거야!"
"오빤. 그런건 초등학생도 재미없어서 안탄단 말야. 어이구! 덩치값 좀 해! 덩치는 산만해서 곰도 때려잡을 정도로 보이면서...! 덩치가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나...도저히...바이킹은...못탈 것 같다!"
너무나 창피했다. 이런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혜지는.
"안돼! 그딴 건 나중에 타기로 하고 정 탈게 없으면 모를까. 귀한 시간을 그걸로 낭비할 수는 없어! 이렇게 겁많은 오빠랑 놀이기구를 다시 타러 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오늘은 내가 타고 싶은 것 먼저 탈거니까. 오빤 무조건 따라와! 알겠지? 그리고 나만 믿어! 설마 내가 오빨 잡아먹기야 하겠어? 나만 믿어라니까. 이 동생을 안믿고 누굴 믿겠어. 하하하하!"
혜지는 일언지하에 나의 말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말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고, 그녀의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눌려 도살장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혜지는 놀이기구를 10개 정도를 더 탔다. 그것도 각 놀이기구당 무조건 두 세번씩 연속해서 탔으며, 무조건 자신의 옆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현기증과 고소공포증을 동시에 호소하는 나를 아랑곳하지않고 혼자서 신나게 탔다.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한선군 인생 미처 피지도 못하고 놀이기구에서 끝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허술하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타고있는 의자도 조금씩 조금씩 들썩였고, 안전바는 헐거워 연방 풀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놀이기구에 실린 나의 몸은 이미 내것이 아니었다.
무슨 놀이기구가 그렇게 많은지. "이런게 다 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거기에는 혜지를 위해 준비된 탈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나는 무사히 버텼다. 하지만, 마지막 놀이기구를 타고난 다음, 속에 있는 내용물이 올라오려고 했다. 그래서 입을 막으며 화장실로 뛰었고, 혜지는 내가 왜그러는지 영문도 모른채 나를 따라 달려오더니, 무턱대고 남자화장실 안까지 들어왔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급히 주저앉으며.
"우웨엑...우웩...으으으...으윽...!"
"오빠 괜찮아! 내가 심했나! 다 토했어? 미안! 난 이런줄 도 모르고. 하지만 더 타고 싶었는데!"
"기집애.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겁도 없냐! 못타는 게 없어요. 뭐? 더 타고 싶다고, 안돼...차라리 나를 죽여라...절대 안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감히 발설할 수는 없었다.
"웨엑...우우욱...!"
더이상 올라올 것이 없는데도 나는 일부러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안되겠네! 이러다가 사람하나 잡겠네! 아쉽지만 우리 그만 서울로 가자."
"오! 신이시어...감사합니다...! 혜지야...잘 생각했다...여기서 중단해준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란 생각이 들었다. 난 총알 맞은 군인처럼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혜지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혜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발걸음을 주차장 쪽으로 옮겨갔다. 비틀거리며 주차장에 당도해서는 곧바로 차에 올라 탔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곧바로 차를 출발 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서 멍하니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속은 괜찮아?"
"조금 낫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오빠. 그리고 고마워! 오빠 아니었으면 토요일 오후 하릴없이 방청소나 하고 있어야 했잖아!"
"그래도...!"
"호호호! 오늘 정말 즐거웠어! 여긴,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단체로 한 번 와본 것 같은데, 생각이 잘 안나네! 나도 여긴 두 번째 밖에 안돼."
"너! 놀이기구 억수로 잘타대! 무슨 여자가 그렇게 겁이 없냐?"
"내가 잘탄다구? 아냐. 나도 조금은 무서웠어! 그런데 이런 기회도 쉽지는 않고 해서 일부러 안무서운척 했던거야...! 헤헤헤!"
"그렇나...!"
"그치만, 오빤 너무 겁이 많아! 남자가 뭐그래?! 도대체 내가 무서워할 틈도 안주고 말야!"
"미안하다. 그래도 아까는 정말 죽는줄 알았다! 다시는 안오고 싶었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해는 져서 서편으로 넘어갔고, 울렁거리던 속도 차츰 진정이 되어갔다. 그래서 차의 시동을 걸었고,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라 도로는 빈틈없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주차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꽉막힌 도로에서 내가 정체와 시름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혜지는 지루했던지 아니면 피곤해서인지 어느새 잠이들어있었다. 약간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후후후...이처럼 귀여운 얼굴을 가진 애가 놀이기구를 그처럼 신나게 탔는지 신기하단 말야!"라는 생각에 나는 미소 짓고 있었고, 긴장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언제 도착할 지 모를 길을 하염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22부(끝)
7개월 후. 12월.
그동안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보호해야할 여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즉, 나만 바라보고 나의 사랑을 생명의 양식처럼 여기는 여인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수는 어느덧 5명이 된 것이다. 나의 여인들의 구성은 이랬다.
첫번째 나의 여인은, 항상 내곁을 지키며 나의 영혼까지도 사랑하는 여인, 즉 나의 조강지처 유경인이다. 애를 순산하고 난 이후부터 경인이는 음란함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짜투리 시간이 생기기만 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터질듯 부푼 젖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고는 자신의 치마끈을 홀라당 풀어 헤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보상이라도 받아내려는듯 격정적인 몸짓으로 나를 원했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몸을 떨어대는 섹스의 화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평상시 경인이는 나에게 너무나 헌신적인 여인이었다.
두번째 나의 여인은, 다름아닌 송진선이다. 그녀 또한 경인이와 모녀지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일 같이 나의 좆을 경인이와 나눠가지며 온 신경을 거기에 몰입한 채 밤이 오기만 기다리는 음탕한 색녀가 되어있었다.
어떤 날은 내가 내려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지, 그새를 못참고 이층으로 올라와서는 문틈 사이로 우리의 섹스 장면을 훔쳐보며 질액으로 질척거리는 보지를 손가락으로 쑤셔박다가 거기서 절정에 올라 기절한 적도 있었다. 마침 내가 그 모습을 발견해서 황급히 안고 내려왔기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으면 수습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을 맞을뻔 하기도 했다.
또 진선은 불쑥불쑥 학교로 찾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 처지가 어떤지 살펴보지도 않은채, 학교 근처에 와서는 무작정 삐삐를 쳐서 수업중인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근처의 여관으로 나를 데리고 갔지만 방안으로 끌려간 나는 별다른 저항을 못한채 그녀의 처분만 기다렸다.
다급해진 진선은 허겁지겁 나를 밀쳐서 침대에 눕히고는 마구잡이로 옷을 벗기더니, 아무런 애무도 하지 않은채 미처 발기하지도 못한 나의 좆을 몇 번 손으로 왕복시키고는 그 놈이 조금 부풀어오를양 여겨지면 그대로 자신의 질 안으로 좆을 쑤셔박은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한마디로 진선은 맹목적으로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세번째 나의 여인은, 꽃으로 비유하면 봄날의 화사한 장미꽃 같은 여인이다. 바로 경인이의 산부인과 주치의이자 아름답고 풍만한 몸을 가진 김선경이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첫번째를 나에게 바친 선경은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선경은 자신이 먼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무작정 내가 하잖대로 따랐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부당하고 치욕적으로 여겨질 만한 나의 요구에도 못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응해왔다.
나는 이런 선경을 안을 때면 "왜 남자들이 여인을 가학적으로 정복하고자 하는지. 또 그런 여인을 짐승처럼 다루며 자신의 끝없는 파렴치한 욕구를 풀고자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잠자리에서 만큼은 앞의 두 여인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선경의 인격을 완전히 배제한채 그녀를 다루었다. 그녀의 어떠한 처지도 감안하지 않은채, 선경에게 나의 정복욕을 맘껏 풀고 있었다.
하루는 중간고사 시험 때 일이었다. 밤새워 피곤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섹스에 대한 자극이 격하게 올라 왔다. 오전 1시간만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시험을 치루었고, 내일은 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모처럼 술 한잔하고 가자는 친구의 제안도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고는 곧장 선경에게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선군!"
"어쩐 일로? 나 지금 진료중인데...! 급한일이야?"
"지금 급해! 무슨 말인지 알겠제? 지금 집으로 갈거니까, 너도 빨리 집으로 와 알겠제?"
"알았어. 가 있어."
선경은 진료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보다 먼저 자신의 집에 와있었고, 그런 그녀를 나는 다짜고짜 짖이겨 나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 어떤 날은, 졸업반이라 수업이 별로 없어서 일찍부터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게 되었고, 일찍 마신 술이라 그런지 친구들과도 일찍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술기운도 오르고, 술 취한채로 일찍 집에 들어가기도 뭣하고 해서 선경의 집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선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야근을 하고 있는 선경이 전화를 받았고, 왜 퇴근도 안하고 그러냐는 나의 물음에, 급하게 찾아온 산모 때문에 대기 중이라 퇴근을 못한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택시를 탔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갔고, 그녀 혼자 있는 진료실에서 깜짝놀라는 선경을 안았던 적도 있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간호사의 방문을 염려하며 치루는 진료실에서의 섹스는 너무도 스릴있고 자극적이라 나에게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가지게 했다. 나는 어쩔줄 몰라하는 선경을 임산부들이 진료받기 위해 눕는 자그마한 배드에 눕혀놓고는 그녀를 마음껏 유린해 나갔고, 그녀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채 거침없이 지쳐들어오는 나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주었다.
마침내 인터폰이 울렸고, 선경은 질안에 나의 좆을 꼽은 채 인터폰을 받았다. 우리의 스릴 넘치는 섹스는 애가 나올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그칠 수 있었다. 이처럼 선경에게서 나는 가학적인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세 사람은 누구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미모와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소유함으로 해서 나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고 있었다. 나는 이들 모두를 사랑했다. 이들 모두는 나의 역사이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어쩌다 내가 그들 앞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으면, 그들은 나에게.
"군! 그런 표정 짖지마. 당신 얼굴에 그늘이 지면 내 가슴에는 피멍이 들어. 나와 있을때 만이라도 나를 위해 웃어줘!"
라고 하며 나를 염려하였고, 또 그들 앞에서 밝게 웃으면 덩달아 자신도 나에게 동화되어 한없이 행복해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 뿐만아니었다. 내가 책임져야할 여인이 두 명이 더 있다.
그 두 명의 여인 중 한명은 바로, 2개월 전 하늘에서 나에게로 보내준 선물, 즉 나와 경인이의 분신 "연희"를 말하는 것이다. 연희는 2개월 전 맑은 대낮에 내 품으로 날아온 천사였다.
아침을 챙겨먹고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경인이가 갑자기.
"오빠...아무래도...애가 나오려나 봐!...아까부터...규칙적인 간격으로...통증이 느껴져!!"
그랬다. 경인이는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나? 이거 큰일 났군! 경인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돼지? 뭐 뭐를...챙기면 돼나? 좀전에 출근하신 장모님을 부를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그래서 준비해야할 것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경인이에게 물어봤다.
"응...됐어...으음...가져갈 건 저 가방에 미리 다 넣어뒀으니까...저 가방만 가지고 가면 돼!...오빠가 따로 준비할 건 없어. 우선...병원에 연락해서...담당의사에게...사실대로 얘기하고 어떻게 할 지 여쭤봐...그런 다음 엄마한테 연락해줘!!"
"알았다. 많이 아프나?"
"지금은 참을만 해."
애를 처음 낳아보는 건 나와 마찬가지인데도 경인인 침착했다. 나에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정확히 지시 해주었다. 이런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나는 학교를 하루 재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경인이의 말대로 병원과 장모에게 연락하였고, 그런 후 재빨리 병원으로 차를 몰아갔다.
병원에 당도하고 보니, 경인이의 주치의인 선경은 현관 입구까지 우리를 아니 경인이를 마중나와 있었고, 그녀는 우리가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걸어오는 선경의 배에서, 그녀 자신도 몇 달 후면 이렇게 분만실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알듯 모를듯 미소를 던지며 반달 모양의 웃음 가득한 그녀의 눈에 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선경의 안내를 받으며 분만실로 이동했고, 우리가 도착한 지 30분 가량 흐른 다음 진선이 분만실에 당도했다. 분만실로 이동한 경인은 3시간 여의 진통 끝에, 시계가 막 정오를 넘어가려는 순간. 3.2kg의 건강한 여아를 생산해냈고, 탯줄을 끊은 그 아인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 후 곧바로 수유실로 옮겨졌다.
"어쩜...공주님이 엄마를 닮았는지...눈도 크고 아주 맑아요...!!"
"아기야! 안녕. 아빠야...!!"
연희는 수유실로 옮겨질 때,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느낌은 이루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흥분시켰다. 엄마를 닮았음인지 유난히 큰 눈은 신기한 세상이 어리둥절 했는지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첫인사를 건네는 낯선이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 볼을 타고 기쁨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렇게 잠시 동안의 대면 만으로도 연희의 존재감은 나를 가득 메워버렸다.
"후후후...어제 밤에 목욕을 한게 정말 잘한 것같다! 이정도면 태어나는 아기가 나를 잘봐 주겠지!"라는 자족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 오기 전 아침에도 나는 가볍게 샤워를 했었다.
태어난 지 한달 쯤 지나고 난 다음. 즉 지난달 연희는, 부산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한연희"라는 예쁜 이름을 선물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연희는 우리 부부와 우리 가정의 기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마지막 나의 여인은, 한달 전에 완전히 내 것이 된 손혜지가 그 주인공이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이제 막 삼 칠일을 넘긴 연희를 경인이와 함께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삐가 울리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순간 그 번호가 혜지의 집 전화번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얘가 무슨 일 있나? 왜 갑자기 삐삐를 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오빠! 어디서 온 거야?"
"으...응...아니다...그냥 친구...!"
경인이는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순간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인이는.
"그래...! 무슨 급한 일이지? 오빠! 이제 행구기만 하면되니까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어서 전화해봐!"
"그래 알았다. 마무리 부탁한다!"
나는 목욕 마무리를 경인이에게 부탁하고는 침실로 올라왔고, 거기서 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르릉...때르르르릉..."
"여보세요...오빠?"
"그래...나다...웬일로 삐삐를 다치고 그러냐?"
"으응...학교 마치고 집인데...토요일 오후 혼자서 집에 있으려니까...너무...심심하지 뭐야...! 방안에서 이리 저리 뒹굴거리려니 좀이 쑤시고 말야...그래서 오빠 생각이 나지 뭐야...오빠 제발 나 좀 구제해줘요...헤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나는 지금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빠...왜...안돼...?"
"으응...지금 애기 목욕시키는 중이었거든...! 이를 어쩐다!"
"그래!...그럼 안되겠네!...할 수 없지. 뭐...!"
혜지는 목욕 중이라는 나의 말에 실망했는지, 잔뜩 풀죽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불러내기를 포기하였는지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나는 황급히 그녀를 제지하며.
"잠깐만!...그럼. 조금만 집에서 기다려 봐라. 모처럼 예쁜 동생의 부탁인데, 없는 시간도 짜내봐야 안되겠나! 지금 바로 집 앞으로 갈거니까. 전화하면 나와라...알겠제!"
"호호호...와! 신난다...알았어...기다릴께...전화끊어...오빠 빨리와...나중에 봐!"
혜지는 내가 만날 것을 약속하자 시무룩한 목소리에서 금방 신난 목소리로 바뀌더니, 환호성과 함께 마냥 즐거워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끊자 나도 전화를 끊었고, 연희가 목욕하고 있는 1층 욕실로 내려가서 경인이에게, 오랜만에 친구가 보자고 해서 나가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경인이의 알았다는 대답에, 옷을 갈아입고는 곧장 집을 나섰다.
"오빠...여기...!"
차를 몰아 혜지 집 앞에 도착하니, 그녀는 이미 집 앞에 나와 있었고, 내 차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자신 앞에 차가 멈추어서자 차 문을 열고는 익숙하게 조수석에 앉는 것이었다.
"왜? 벌써 나와 있냐? 내가 전화하면 나오지는...!! 여기 안전벨트!!"
조수석에 앉는 혜지에게 안전벨트를 메어주며, 일찍 내려온 그녀를 나무랐다.
"호호호...기다리기...너무 지루해서 말야!...그래서 일찍 내려온 거야! 오빠가 이해해주라...으응!!"
"하하하하...그렇게 이 오빠가 보고 싶더나? 아침에도 봤잖아?"
"그럼요...! 너무 너무 심심해서, 너무 너무 보고팠어요."
혜지는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과장된 몸짓과 함께 팔짱을 꼈고, 팔짱을 낀 내 어깨로는 풋풋한 혜지의 젖가슴의 감촉이 뭉클거리며 느껴지고 있었다.
"오빠...고마워! 아기보느라 불철주야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나를 구제해 줘서 말야."
"고맙기는 우리 혜지가 부르는데 오빠가 안 올 수가 있나! 없는 시간도 쪼개 가면서라도 와야지 안되겠나?...하하하하!"
"호호호호...그래서 혜지는 오빠가 제일 좋아! 혜지 맘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오빠가 말야!"
"하하하...그렇제...?"
연신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혜지에게 나는, 자화자찬을 해가며 분위기를 띠웠고, 그녀도 거기에 호응해왔다.
"그런데 혜지야!"
"왜?"
"우리 어디갈까? 어디를 가야지 너의 심심함을 잘 달래 줬다고 소문나겠노? 어디가 좋겠노?"
"으응...오빠 기다리며 생각해봤거든. 오빠 우리 놀이동산 가자. 어때?"
"뭐라!!...놀...이...동...산...?? 니 놀이기구 잘타나...!?"
놀이동산에 가자는 혜지의 제안에 평소 놀이기구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던 나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면서 그녀에게 재차 물어봤고.
"호호호...그래. 왜? 오빤 놀이기구 타는 거 안좋아해? 아니면 무서워서 못 타?"
"아니...그게...아니라...그냥...그렇지뭐...!!"
"호호호호...! 덩치는 커다란 사람이! 겁은 왜 이렇게 많아. 어떻게 놀이기구도 못 타? 덩치가 아깝다. 오빠 나만 믿어! 오늘은 나만 믿고 가자...응! 남자가 뭐 그래?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서 놀이공원으로 출발해라."
나의 불안한 표정을 읽은 혜지는 재밌다는듯 개구장이 같은 앙증맞은 웃음을 띠면서 장난끼어린 목소리로 계속해서 나를 졸랐다. 나는 하는 수 없었다.
"알았다...가면...가면 될 거 아니가...!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와...호...신난다. 오빠 출발!!"
장난치듯 놀려대며 반협박하듯 애원하는 혜지의 성화에 마침내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승낙에 그녀는 환호성을 질렀고, 곧이어 나에게 출발을 알렸다. 나는 혜지의 명령에 억지 춘향이 되어 차를 출발시켰다.
1시간 쯤 차를 몰고갔더니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주차시킨 후 매표소로 향했고, 줄을 서서 매표를 했다. 매표도 혜지의 억지가 통했다. 혜지는 나로 하여금 기어이 자유이용권을 사게 만들었다.
혜지는 차에서 내린 이후 줄곧 팔짱을 풀지 않았다. 어깨에 착 달라붙은 채 마냥 신나하며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팔짱을 낀 채 놀이공원으로 입장할 수 밖에 없었고, 혜지는 마치 수사관이 범인을 체포한 것처럼 나를 끌고 갔다. 우리는 누가봐도 기묘한 모습으로 입장하였다.
"오빠! 우리 저거 타자!"
"혜지야...저거? 보기만해도 어지럽다. 나 못탄다. 제발 나 좀 살려도. 정 타고 싶으면 니 혼자타라."
혜지는 처음부터 강력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그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혜지의 완강한 태도에 나 어찌 버티겠는가. 나는 오뉴월에 개 끌리듯 억지로 그것을 탈 수 밖에 없었다.
"호호호...오빠...긴장 풀어! 별거 아니야...! 꼭 잡고만 있어!"
"알았다...! 아악...!"
놀이기구는 후들후들 떨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드디어 무심한 놀이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놀이기구는 어느 새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전보호대를 꽉 움켜지고는 아둥바둥 거리기 시작했고,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빠르기에 와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떡 벌린채 놀이기구에 온 몸을 맞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놈이 이딴 걸 만들었어. 내 눈에 띄이기만 해라. 죽여버릴 거다."라는 생각과 함께 입밖으로 침을 질질 흘러나왔다. 흘러내리는 침을 닦을 겨를도 없었다. 이미 정신은 내 몸 밖으로 유체이탈한 상태였고, 온 몸에는 힘이 빠져서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덜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호호호...꺄아악...야아아...! 오빠...너무 신난다!"
혜지는 나와는 다르게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과 더불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놀이기구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오빠...이거 너무 재밌다. 우리 한 번 더 타자. 으응!"
놀이기구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출 때 쯤. 혜지는 똑같은 놀이기구를 탈것을 제안했다.
"우욱...! 난 싫다...타려면 니나 타라...! 아침에 먹은 게 올라 올라한다...!"
"피...! 오빤...겁장이 바보. 같이 타지는. 할 수 없지 뭐. 그럼 오빠는 저기 벤취에서 나 타는 거 보고 있어. 난 한 번 더 탈래!"
혜지의 제안에 나는 얼굴빛이 새 하얗게 변하며 정색을 했고,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오는 발걸음을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했으며, 급기야 오전에 먹은게 올라오려고 하는지 구역질이 났다. 나의 상태를 지켜보던 혜지는 나와 같이 타는 걸 포기했는지, 더이상 나를 보채지 않았고, 저 혼자 신나게 놀이기구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연속해서 두 번이나 더 탔고, 다음 놀이기구로 나를 끌고 갔다.
"오빠...별로 안 무서운 저기 있는 바이킹이나 타자. 저 정도는 탈 수 있겠지?"
"오! 마이 갓! 이게 누굴 죽이려고 그러나! 우우...저기봐. 사람들이 거꾸로 메달리는 것 좀 봐!"
"혜지야...나 몸이...너무 안좋거든...그래서 부탁인데...더 약한 걸로...타면 안돼겠나?"
"여기야...저것보다 더 약한 것도 있어? 어디에? 오빤 뭘 타자는 거야?"
"으응...예를 들자면...저기...!"
"뜸들이지 말고. 어서 얘기해봐."
"그러니까...우리...저기있는...회전목마나...대관람차라든지...하는 거...있제...오빤...그런거...좋아해!"
"아유! 쪽팔려라. 쥐구멍이 어디있지?"
"호호호호...! 정말이야. 저런 걸 좋아해?"
"으...응!"
비참했다.
"나는 역시 놀이기구를 타러 오는게 아니었어. 아마 여기 온 사람 중에서 최고의 겁쟁이는 나 일거야!"
"오빤. 그런건 초등학생도 재미없어서 안탄단 말야. 어이구! 덩치값 좀 해! 덩치는 산만해서 곰도 때려잡을 정도로 보이면서...! 덩치가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나...도저히...바이킹은...못탈 것 같다!"
너무나 창피했다. 이런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혜지는.
"안돼! 그딴 건 나중에 타기로 하고 정 탈게 없으면 모를까. 귀한 시간을 그걸로 낭비할 수는 없어! 이렇게 겁많은 오빠랑 놀이기구를 다시 타러 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오늘은 내가 타고 싶은 것 먼저 탈거니까. 오빤 무조건 따라와! 알겠지? 그리고 나만 믿어! 설마 내가 오빨 잡아먹기야 하겠어? 나만 믿어라니까. 이 동생을 안믿고 누굴 믿겠어. 하하하하!"
혜지는 일언지하에 나의 말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말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고, 그녀의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눌려 도살장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혜지는 놀이기구를 10개 정도를 더 탔다. 그것도 각 놀이기구당 무조건 두 세번씩 연속해서 탔으며, 무조건 자신의 옆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현기증과 고소공포증을 동시에 호소하는 나를 아랑곳하지않고 혼자서 신나게 탔다.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한선군 인생 미처 피지도 못하고 놀이기구에서 끝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허술하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타고있는 의자도 조금씩 조금씩 들썩였고, 안전바는 헐거워 연방 풀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놀이기구에 실린 나의 몸은 이미 내것이 아니었다.
무슨 놀이기구가 그렇게 많은지. "이런게 다 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거기에는 혜지를 위해 준비된 탈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나는 무사히 버텼다. 하지만, 마지막 놀이기구를 타고난 다음, 속에 있는 내용물이 올라오려고 했다. 그래서 입을 막으며 화장실로 뛰었고, 혜지는 내가 왜그러는지 영문도 모른채 나를 따라 달려오더니, 무턱대고 남자화장실 안까지 들어왔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급히 주저앉으며.
"우웨엑...우웩...으으으...으윽...!"
"오빠 괜찮아! 내가 심했나! 다 토했어? 미안! 난 이런줄 도 모르고. 하지만 더 타고 싶었는데!"
"기집애.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겁도 없냐! 못타는 게 없어요. 뭐? 더 타고 싶다고, 안돼...차라리 나를 죽여라...절대 안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감히 발설할 수는 없었다.
"웨엑...우우욱...!"
더이상 올라올 것이 없는데도 나는 일부러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안되겠네! 이러다가 사람하나 잡겠네! 아쉽지만 우리 그만 서울로 가자."
"오! 신이시어...감사합니다...! 혜지야...잘 생각했다...여기서 중단해준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란 생각이 들었다. 난 총알 맞은 군인처럼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혜지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혜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발걸음을 주차장 쪽으로 옮겨갔다. 비틀거리며 주차장에 당도해서는 곧바로 차에 올라 탔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곧바로 차를 출발 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서 멍하니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속은 괜찮아?"
"조금 낫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오빠. 그리고 고마워! 오빠 아니었으면 토요일 오후 하릴없이 방청소나 하고 있어야 했잖아!"
"그래도...!"
"호호호! 오늘 정말 즐거웠어! 여긴,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단체로 한 번 와본 것 같은데, 생각이 잘 안나네! 나도 여긴 두 번째 밖에 안돼."
"너! 놀이기구 억수로 잘타대! 무슨 여자가 그렇게 겁이 없냐?"
"내가 잘탄다구? 아냐. 나도 조금은 무서웠어! 그런데 이런 기회도 쉽지는 않고 해서 일부러 안무서운척 했던거야...! 헤헤헤!"
"그렇나...!"
"그치만, 오빤 너무 겁이 많아! 남자가 뭐그래?! 도대체 내가 무서워할 틈도 안주고 말야!"
"미안하다. 그래도 아까는 정말 죽는줄 알았다! 다시는 안오고 싶었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해는 져서 서편으로 넘어갔고, 울렁거리던 속도 차츰 진정이 되어갔다. 그래서 차의 시동을 걸었고,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라 도로는 빈틈없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주차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꽉막힌 도로에서 내가 정체와 시름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혜지는 지루했던지 아니면 피곤해서인지 어느새 잠이들어있었다. 약간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후후후...이처럼 귀여운 얼굴을 가진 애가 놀이기구를 그처럼 신나게 탔는지 신기하단 말야!"라는 생각에 나는 미소 짓고 있었고, 긴장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언제 도착할 지 모를 길을 하염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22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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