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원하지 않는 만남의 시작.
소현이 떠나고 나서 1주일 지났다. 그동안 소라랑 하늘은 여전히 얼굴마지치기 무섭게 소리 없는 신경전을 치르고 있고 난 둘이 친해지길 기대하며 열심히 꼬맹이를 달래 봤지만 나온 결론은 ‘시간이 해결 해 주겠지’ 하는 무책임한 것 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책임으로 일을 해결하려니까 내 성생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었다. 왜냐면 소라의 감시의 눈이 스토커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뭐. 일주일 밖에 안 지났고 일주일 전에 소현이랑 지겹게 많이 한 덕에 한 동안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섹스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을 시기가 올 것이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에서 자위라도 해서 풀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꼬맹이가 미워졌다.
그리고 오늘. 방과 후. 하늘이랑 귀가하는 길에 소라가 다시 끼어들어왔다.
“진이 오빠. 오늘도 수고 했어.”
“응 소라도 수고.”
소라는 밟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지만 내 옆에 있는 하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 팔을 끌어안으며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라고 해봐야 선생님 흉보기 친구이야기로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아서 반쯤은 흘리며 하늘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참동안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라가 자기 주제 이외의 이야기를 큰소리로 외쳐 대었다.
“오빠! 오빠! 여기봐! 아탄 A. R. T. A. N 의 켄이 있어. 와~~ 스포츠카 쩐다. 쩔어.”
ARTAN 의 켄 이라면 그 촌스러운 본명을 가진 ‘전’ 캐리의 애인으로 현제 연예계 최고의 인기가수로 여겨지는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왜 지금 귀가하느라 학생들이 몰리는 이 시간에 저런 곳에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소라가 잘못 본 걸로 생각하고 여학생 3명에 둘러 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는 대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단 차는 상판이 오픈이 가능 하지만 2인승이고 경차의 크기로 나의 짧은 견식으론 엔진출력이 별로라 스포츠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차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단순하게 봐선 옷 잘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충 메이커만 두르고 코디 센스가 없고 생긴 것도 지극히 평범해서 연예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일단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아주 단정하고 멋지게 다듬어져 있으며 검은색의 정장 같은 모양의 의상은 지극히 유행을 선도한다는 느낌을 주며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간결하고 쓸 때 없이 넓은 부분이 없는 얼굴은 샘이 날 것은 미남이었으며 그 얼굴에 떠오른 자연스러운 미소는 남자인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였다.“저 사람이 덕판인가.”
“덕판?”
“음~ 덕판은 또 뭐야?”
하늘과 소라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의문을 느끼며 말해왔고 난 그 의문을 무심결에 해결해 주었다.
“캐리가 전에 사귀던 남자야. 켄인지 덕판인지. 저 사람이.”
“우와! 언니 대단해.”
“정말 선배랑.”
“뭐 옛날이야기야. 지금은 단순한 원수지 뭐.”
“아쉽네. 저런 형부라면 용돈도 많이 줄 것 같은데.”
소라의 말에 난 잠시 웃었고 하늘이도 내 웃음에 동조했다. 소라는 그런 하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눈빛을 보냈고 난 소라를 억지로 돌려 새워서 그 상태를 없애버리고 하늘이가 사는 아파트로 계속 향하도록 손짓을 했다.
“사인 받을 생각 없으면 어서 가자.”
하지만 날 감시한다고 최근 몇 일간 불쾌한 감정을 끌어안고 아파트로 동행한 것에 한계가 왔는지 퉁명스럽게 말해왔다.
“난 그 아파트 까지 안 따라갈래. 사인 받고 혼자 집에 갈래. 둘이서 가던지 말던지.”
소라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선 왼지 잘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내 표정이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활짝 꽃이 만개하듯 활짝 미소를 지어 버렸다.
이 표정에 하늘이도 동조 했지만 일단 소라가 본다면 좋지 못한 상황으로 다시 이어질 것인데 오늘 행운이 깃드는 날인지 소라는 우리를 보지 않고 덕판 쪽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떨어져간 소라 대신 새로운 방해자가 소라를 교차해 지나쳐선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은 나쁜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애써 알리기 위해 아주 다정다감한 표정을 지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우리 앞 까지 다가와선 차분한 음성으로 말해왔다.
“안녕.”
“네~~ 안녕하세요.”
난 얼떨결에 대답했고 하늘은 불안한 눈동자로 고개만 끄덕였다.
“경계 하지 마.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그저 제의를 하기 위해 온 거야.”
남자는 조금 과장된 억양을 썩어가며 말하는 말하자면 무대위의 연예인 같은 말투를 사용했고 그것에 더 위협을 느꼈는지 하늘은 내 손을 살며시 쥐어오고 있었다.
“하하 미안. 초면인데 자기소개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난 ARTAN, GN-GIRL, 이인한 등을 거느린 KEG 직원이야. 뭐 지금하고 있는 일은 스카우터지만 사실은 회사 임원이지.”
일단 자기 소계를 해오는 상대에게 자기 소계를 해주는 것이 예의란 생각이 들어서 난 입을 열었다.
“전 ‘성진‘이고 옆에 여자애는”
난 잠시 이 말을 낮선 사람에게 해도 될까 생각하다. 결심하고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제 여자친구인 ‘박하늘’ 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하늘이에게서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쥐고 몸을 살짝 기대어 왔다.
“와~ 예쁜 여자친구인걸.”
이 남자의 칭찬에 미소를 짓고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는 하늘이와 눈을 한번 맞추고 다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근데 용무가 뭐죠.”
일단 스카우터라고 했으니 스카웃 하려고 왔다는 예상을 하고 질문했고 남자는 재미없게도 예상대로 말해왔다.
“최근에 이 근처를 가다가 괜찮은 아이가 있다는 회사 직원이야기를 들어서 왔거든 근데 이 학교 대단하네. 여기 앉아 있다가 너희 둘 까지 3명을 확인했거든.”
첫 번째는 아마도 캐리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고 남자는 그 예상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근데 너희 앞에 왔던 여자애는 이미 기획사 연습생이더라구.”
“혹시 켄이랑 안 싸웠어요.”
“뭐 싸운 것 까지는 아니고 켄이란 것을 들통 나게 해서 여자들이 붙게 만들고 가버리긴 했어. 근데 아는 사이야.”
난 대답하지 않았고 남자도 대답을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본론을 꺼내놓았다.
“너희 둘 우리 기획사에 와 보지 않을래. 뜰 수 있는 재능만 있다면 명성과 돈은 쉽게 쥘 수 있을 거야. 시도해 보지 않겠니. 인생에 대변혁을 불러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우리 기획사엔 최고의 서포터를 할 수 있는 돈도 인력도 있어. 뭐 일단 구경이라도 해보지 않을래.”
다른 스카우터도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 했다. 사실 캐리가 덕판과 모르는 사이이며 내가 조금 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 장황한 이야기에 넘어가서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 내 상황에서 나온 결론 거부였다.
“싫어요.”
이는 하늘이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딱 잘라 말해 버리는 나의 대답에 살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나 사기꾼으로 보이는 거야.”
이 남자의 경험상 아까처럼 말하면 10이면 10이 따라 왔었는지 우리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명함을 꺼내서 각각 건네주었다.
“봤지 나 정말 기획사 임원이야. 자 어떻게 할래.”
명함은 분명했고 난 애초부터 이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덕판이 동행중이라.)그러니까 전혀 오해도가 없었기 때문에 판단을 번복할 이유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볼게요.”
“아! 저기 잠시만 차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 들어 주지 않을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그걸로 해도 좋아.”
“그럼.”
난 남자의 반응에 살짝 놀라있는 소라의 팔을 잡아당겨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먼가를 또 말해 왔고 난 그것을 무시하며 걸어서 곧 켄이 소라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곳을 지나치고 하늘이가 말을 걸어올 때 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진아 이제 천천히 가자 안 따라와.”
“응 그래. 미안.”
“아냐”
“오늘은 소라도 없으니까 어디 갔다가 갈까.”
“응”
“어디 갈까.”
“음~~~ 하하 케이크 뷔페 번화가에 생긴 거 알아.”
“케이크 뷔페?”
난 아주 짧은 순간 ‘소라를 데려갔으면 좋아 했겠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요즘 귀찮게 굴어서 밉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해주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고 하늘이는 그런 내 생각을 캐치해 내었다.
“소라 건 포장해 가고.”
“응.”
난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잡고 있던 손을 끌어 당겨 팔짱을 끼게 했다.
“갈까.”
미소로 답하는 그녀.
우리는 택시를 타고 병원근처 번화가로 가서 사람, 옷, 음식 구경을 한참 하다가 해가 기울기 시작 할 때쯤 하늘이가 말한 케이크 뷔페점이 있는 25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아 여기 새 건물인가.”
“1년쯤 지났을 거야.”
“결혼식장, 뷔페, 레스토랑, 한식당, 쇼핑몰, 학원, 극장 아파트 없는 게. 없구나.”
“여기 그거도 있어.”
“어떤 거?”
“J&K기획 사무실, 연습장, 숙소, 녹음실 까지 다 있다던데. 듣기로는 이 건물 기획사 거라 하더라.”
“캐리가 오는 곳이 여기구나.”
“캐리 언니 요즘. 프로젝트에 오디션 보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었데.”
“처음에는 무난하게 뽑힌다고 좋아 했는데. 기획사 사장이 요즘 일반적인 댄스 걸그룹이 너무 많다고 무산시키고 다른 컨셉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더라.”
“음~ 캐리 언니 많이 실망했겠다.”
“하하 말도 마. 그날 가만있는 나를 얼마나 괴롭히던지. 죽는 줄 알았어.”
“하하 그래도 풀은 죽지 않아서 다행이네.”
“응. 새로 만든 프로젝트가 비쥬얼 밴드 5~6인 구성이라 하던데. 요즘 열심히 기타를 배운다고 하더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보컬 이렇게 구성된 밴드로 걸 그룹으로 만든다. 재미있겠다.”
어떤 상상을 했는지 그녀의 눈빛이 빛나 보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끼며 난 미소 지으며 알고 있는 것을 더 말해 주었다.
“일단 드럼하고 키보드 구했다고 하더라. 나머지 베이스 1명, 기타 2명, 보컬 1명은 지금 오픈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해.”
“기대는 대는데 실력보단 외모를 따지다 보면 다 모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치 나도 그게 문제란 생각이 들어.”
“어 가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 나왔다. 하지만 그 중엔 연예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우리와 3명의 남녀가 그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가서 각자의 행선지를 눌러 데었다.
“하늘아 이 엘리베이터로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까?”
“아니 기획사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더라. 주차장도 별도로 되어있어서 도찰이 쉽지가 안타고 인터넷에선 철통 요새라고 부르는 걸.”
우리의 대화 사이로 팅~ 하는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우리 목적지에 도착해 팅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나와서 식당, 카페 사이를 걸어갔다. 알고 보니 요 바로 위층이 극장이고 아래가 쇼핑몰이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쇼핑과 극장구경이 끝나면 오는 먹자골목인 샘이다.
“번화가 속 번화가라 해야 할까.”
“응. 그렇지 한 건물 안에 다 있으니까.”
“10층 이지. 창가가 있는 가게면 좋겠다.”
“응 창가 있어. 전망도 좋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4인용 이지만 일반적인 식당의 것 보다 작은 테이블이 7개에 있는 작은 규모지만 일곱 가지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벽과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커튼 그리고 귀여운 인형들이 즐비한 여성스러운 귀여움이 묻어나는 독특한 장소였다.
“아~ 예쁜 곳이구나.”
“그치.”
“저 쪽으로 가자.”
손님은 7개중 5개를 채우고 있었지만 내가 원한 창가 쪽은 아직 비어있었다. 난 그 장소로 가 앉은 후.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도심 속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10층은 도심 속에서 따지면 그다지 높은 건 아니었지만 이 근처는 아직 높은 건물이 몇 개 없다보니 멀리까지 아주 잘 보였다.
“하늘이 사는 아파트 보인다.”
“어디 응 보이네.
우리는 한참을 웃으며 우리가 아는 장소 찾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선불을 받으러 온 종업원을 잠시 무시하는 꼴이 되어 버렸고 난 그것을 사과하고 2인분 돈을 꺼내 놓으며 종업원의 설명을 들었다.
“차와 케이크, 물은 셀프로 이용 하셔야 되고요 상식이상으로 케이크를 남겨버리시는 분은 벌금 30,000원을 내셔야 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종업원의 아주 상양한 설명이 끝나고 그녀가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을 때. 난 의문을 꺼내 놓았다.
“상식이상이라.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음~ 몰라. 이~~~ 만큼 일려나.”
하늘이가 그렇게 말하며 과장스럽게 그 만큼의 음식을 팔로 표현했고 난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다가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가자 케이크 골라야지.”
케이크는 12가지로 다양했지만 차는 홍차, 녹차, 원두커피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하늘이가 종류별로 4개 내가 중복되지 않게 6개를 가져 와서 다 먹어본 감상은 다 독특한 향과 맛이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즐거웠고 케이크는 맛있어서 어느새 하늘이는 소라가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라 일부로 사인 받으러 간 거 아닐까.”
“모르겠어. 요즘 심술이 나서 너에게 그러지 착한 아이인 걸.”
“그치 소라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여동생하고 싶고.”
“응 그래. 어떻게 알았어.”
하늘은 자기 생각을 알아 버린 것이 부끄러운지 수줍게 말해왔고 나는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설명을 해줬다.
“전에 네가 그랬잖아. 네 어머니가 임신 했을 때 좋아 했다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거야.”
역시나 그 기억은 씁쓸한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 졌다.
“그~ 이야기도 했었지. 근데~ 아까 그 스카우터 혹시 소라를 스카우트하려고 하지 않을까.”
“소라. 눈이 댕그라니 귀엽기는 하지. 하지만 아직 어린데다. 들어간다면 캐리가 있는 J&K에 들어가지 거기에 왜 가겠어.”
“그렇겠네.”
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누나의 선물인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 습관처럼 대어 버려서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인데 하늘인 이 행동이 신경 쓰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시계 꼭 차고 다니네.”
“으~응. 예뻐서.”
난 아주 잠깐 하늘이가 누나와 결부되는 물건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하늘이는 이것이 내 졸업선물로 보내온 거란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구경해도 돼. 남자가 차고 다니는 거 같지 않게 작고 예쁘네.”
난 그녀에게 시계를 풀어줬고 그녀의 팔목과 내 팔목이 거의 일치하는지 조절 없이 차버렸다.
“그거 알아 나 어릴 때부터 몸에 달라붙는 거 엄청 싫어하는 거.”
그러고 보니 하늘이가 시계나 목걸이 귀걸이를 하는 걸을 한번 도 본적이 없었다.
“근데 이 시계는 왼지 느낌이 좋은데.”
그녀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싶은 것일 거다. 그 마음은 고맙고 행복했지만 역시나 누나가 준 선물이란 이유 때문에 절대 줄 수는 없었고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대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풀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자”
“응”
우리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한 상태로 케이크만 먹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계를 주지 않는다는 것에 섭섭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가고 우리 접시가 비워 졌을 때. 하늘이의 목소리로 침묵이 깨어 졌다.
“더 안 먹어.”
“많이 먹었어. 차도 많이 마시고. 이만하면 충분해. 넌.”
“나도.”
“그럼 갈까.”
우리는 일어났다. 매장을 나갈 때. 하늘이는 온전한 모양의 딸기가 올려져 있는 케이크를 사서 내 손에 건네주었다.
“진이 이모네 식구에게 주는 선물.”
“고마워.”
우리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 겸해서 식당을 둘러보고 한 층 내려가서 손을 잡은 채로 쇼핑몰을 더 구경했다. 역시 하늘이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어느 순간 밝은 표정으로 예쁜 옷이 보이자 눈빛을 빛내며 구경하기도 하고 나에게 어울리겠다며 옷을 내 가슴에 대어 보기도 했으며 귀를 뚫어 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여자들의 쇼핑은 사든 안사든 오래 걸렸고 어느새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아. 7:50 이네. 그만 가자.”
“응. 그래.”
하늘과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밖은 어두워 졌고 번화가답게 낮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버스 정류소 까지 걸어갔고 버스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를 향했다. 그리고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눴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응. 갈게.”
일단 인사를 했지만 나도 그녀도 아쉬웠다. 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아마 그녀는 키스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섹스는 무리였고 언제 그녀의 부모님이 나올지 알 수 없어서 키스도 힘들어 보였다.
우린 서로를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며 한참 동안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있지~ 키스 하고 싶어.”
“으응 나도.”
사실은 다 하고 싶었다. 귀엽고 야들야들한 하늘이의 몸을 맨살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역시나 힘들어 보였다. 불청객이 끼어들어왔다.
“하늘아.”
이번엔 그녀의 검사 아버지 인지 중년 남자 목소리다. 난 서둘러 그에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성진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너 구나 하늘이 남자친구라는 예쁜 남자란 아이가.”
그녀의 아버지는 검사라는 직종에 맞게 단정한 차림의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벌로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남 앞에 굴림 하는 카리스마와 중후한 멋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네. 잘 부탁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연상시킬 정도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난 이 눈빛이 검사로서의 눈빛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늘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음~ 미안.”
미안 이라고 말했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이다.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엔 감정이 실려 있었다.
“정말 수진선배랑 많이 닮았구나.”
어머니를 아는 사람을 또 한 사람 만난다는 것이 나에게는 슬프면서도 기쁜 일이었나 보다 내 얼굴엔 미소가 흐르지만 내 마음은 낮게 가라앉았다.
“제 어머니를 잘 아세요.”
“잘 알지. 넌 잘 모르는 건가 보구나.”
“예. 불행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은 알뿐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죠.”
하늘의 아버지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검사출신이다 보니 아버지의 보도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알고 있고 내 표정과 목소리에서 나오는 감정을 캐치해 나도 그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 것 같았다.
“그래 몹시 불행한 일이었지.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해. 그녀는 너 때문에 더 빨리 삶은 놓아 버리지 않은 거야.”
그의 말은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거란 뜻이다. 비록 원하지 않은 임신이지만 자신의 배에서 자라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죽지 않기를 바랐기에 자신 또한 자살이란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내가 그녀의 삶의 족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고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너무 미안해서 몹시 가슴이 아파왔다.
“미안 울려 버렸구나. 하늘아 손수건 좀 빌려 주지 그래.”
“예.”
이 순간 눈물은 참기 힘들었다. 난 눈물을 줄줄 흘러대다가 나도 모르게 부녀를 따라서 그들의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늘이 집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집인 만큼 커다란 평수를 자랑하기는 했지만 아주 깔끔하게 그림이나 장식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난 이 집안의 분위기가 하늘이 성경과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어느새 멈추어 버린 눈물이 흘렀던 곳을 어루만졌다.
“이제 좀 괜찮은 거냐.”
내 맞은편에 앉은 하늘의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예”
“미안 하구나. 네가 하늘이랑 사귄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도 있고 하니 사실 난 네가 삐뚤어진 아이가 아닐까 의심을 했었거든. 그래서 한번 쯤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까. 선배 생각이 너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까지 해 버렸구나.”
“어머니와 친 하셨나 봐요.”
그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지. 내가 아닌 먼 곳을 응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네 어머니를 좋아 했었다. 뭐 짝사랑에 불과 했고 계기는 잡지모델을 하던 그녀의 팬이 되어 버린 것부터 시작하지만 분명히 네 어머니는 나의 첫사랑 이었지.”
이런 이야기를 저렇게 생긴 남자 입에서 듣는 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하고 우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거짓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어느새 차를 가지고 와서 내 옆에 앉아 있는 하늘이도 마찬가지 인지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네 어머니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여자였다. 강하고 멋지고 영리하고 자상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으며 사람 부릴 줄도 알았지. 한마디로 완벽한 여성상이라고 할까. 어머니 상이라고 할까. 그런 멋진 분이었다. 그런 여성이었기에 따르는 후배도 많았고 연심을 품은 늑대들도 많았지. 물론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 했지 하지만 그 접근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어.”
그는 그 때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우린 저 얼굴에도 저런 미소가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근데 그것을 성공한 사람이 있었지 남들처럼 데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접근해서 평범하게 정을 쌓고 자기 자신의 불행한 집안사를 이용해 동정을 불러일으켜 그녀의 마음을 획득해 버린 성필성이란. 남자.”
“근데. 아버지도 같은 대학에 다녔어요.”
“응 그래. 그는 수진 선배랑 동급생 이었지. 뭐 군대 갔다 와서 대학에 들어 온 거라. 나이차이가 나는 동급생이지만. 사실 그도 멋진 남자기는 하지 눈매가 매섭고 말수가 적어서 큰 인기는 없었지만 성적도 좋고 의리도 있었거든.”
“그래요.”
“하늘아 진이네 이모님 오시라고 한거 어떻게 됐냐.”
“오신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그는 내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하늘이에게 이모를 부르라고 시킨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검사라는 직업의 남자가 할 판단치고는 너무 동적이었다. 그냥 택시를 태워 보내면 될 것인데 말이다.
그는 그 뒤로도 많은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데. 그는 자기 짝사랑을 낚아가 버린 성필성 즉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난 그의 가정이 냉담한 이유를 그의 짝사랑에서 찾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모가 올 때. 까지 난 그녀의 방에서 시간을 때웠다.(그녀의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방은 거실과는 다르게 또래의 여자아이들 같은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귀여운 핑크빛 방이었다. 인형이 있고 귀여운 프릴이 달린 커튼이 있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순수연예 소설과 순정만화들이 가득했다.
“어때.”
“예쁜 방인데.”
“고마워.”
그녀는 미소 지었고 책만 보면 꺼내 보는 버릇을 발휘해서 책장으로 가서 그녀의 애장서를 허락도 없이 꺼내서 펼쳐서 잠시 잃어 보았다. 내용은 흔하디흔한 슬픈 연예소설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문체가 간결하고 배경이 독특했다. 제목은 보라색천사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잃어 보지 않는 것이라 구미가 당겼고 난 나를 왼지 슬픈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하늘이에게 말했다.
“빌려줄래.”
“응”
그녀는 대답하고 나서 별 말이 없었다. 난 그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지만 그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완 생각이 틀렸다.
“진아. 뭐든 나에게 말해 줄래. 무엇이든 난 들어주고 싶어. 내 슬픔이든 분노든 난 알고 싶어.”
“미안. 지금 말고 다음에 이야기 해 줄게. 나 오늘.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미안해.”
“응 그래.”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웃음 지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주었다.
“조금 있으면 네 생일 인거 알아.”
“아~ 다음주구나.”
“그 전 날에 우리끼리만 놀러가지 않을래. 그 날 개교기념일이기도 하거든.”
하지만 이번 달 용돈은 오늘 거의 바닥이 났다. 경비를 어디서 조달하라는 건지 막막해 졌다.
“미안하지만 나 경비가 부족한데.”
“경비라면 걱정 마. 이게 있으니까.”
그녀는 저번 주에 소현에게서 받아서 건네주었던 봉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뭐 돈이 라도 받은 거야.”
“돈을 기분 나쁘게 어떻게 받아.”
아마 그럴 것이다. 공식적으로 사귀는 남자를 빌려준 후. 받은 선물이 돈이라면 기분 나쁘기 짝이 없을 것이다.(일방적인 선물이라고 해도.)
봉투 속에는 하늘이는 타지도 못하는 놀이동산 놀이기구 하루 무한 이용권과 호텔 레스토랑 특식 이용권 그리고 숙박하려면 하루에 수백만원을 써야 한다는 VIP룸 이용권이 들어가 있었다.
소현이 떠나고 나서 1주일 지났다. 그동안 소라랑 하늘은 여전히 얼굴마지치기 무섭게 소리 없는 신경전을 치르고 있고 난 둘이 친해지길 기대하며 열심히 꼬맹이를 달래 봤지만 나온 결론은 ‘시간이 해결 해 주겠지’ 하는 무책임한 것 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책임으로 일을 해결하려니까 내 성생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었다. 왜냐면 소라의 감시의 눈이 스토커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뭐. 일주일 밖에 안 지났고 일주일 전에 소현이랑 지겹게 많이 한 덕에 한 동안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섹스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을 시기가 올 것이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에서 자위라도 해서 풀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꼬맹이가 미워졌다.
그리고 오늘. 방과 후. 하늘이랑 귀가하는 길에 소라가 다시 끼어들어왔다.
“진이 오빠. 오늘도 수고 했어.”
“응 소라도 수고.”
소라는 밟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지만 내 옆에 있는 하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 팔을 끌어안으며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라고 해봐야 선생님 흉보기 친구이야기로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아서 반쯤은 흘리며 하늘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참동안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라가 자기 주제 이외의 이야기를 큰소리로 외쳐 대었다.
“오빠! 오빠! 여기봐! 아탄 A. R. T. A. N 의 켄이 있어. 와~~ 스포츠카 쩐다. 쩔어.”
ARTAN 의 켄 이라면 그 촌스러운 본명을 가진 ‘전’ 캐리의 애인으로 현제 연예계 최고의 인기가수로 여겨지는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왜 지금 귀가하느라 학생들이 몰리는 이 시간에 저런 곳에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소라가 잘못 본 걸로 생각하고 여학생 3명에 둘러 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는 대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단 차는 상판이 오픈이 가능 하지만 2인승이고 경차의 크기로 나의 짧은 견식으론 엔진출력이 별로라 스포츠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차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단순하게 봐선 옷 잘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충 메이커만 두르고 코디 센스가 없고 생긴 것도 지극히 평범해서 연예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일단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아주 단정하고 멋지게 다듬어져 있으며 검은색의 정장 같은 모양의 의상은 지극히 유행을 선도한다는 느낌을 주며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간결하고 쓸 때 없이 넓은 부분이 없는 얼굴은 샘이 날 것은 미남이었으며 그 얼굴에 떠오른 자연스러운 미소는 남자인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였다.“저 사람이 덕판인가.”
“덕판?”
“음~ 덕판은 또 뭐야?”
하늘과 소라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의문을 느끼며 말해왔고 난 그 의문을 무심결에 해결해 주었다.
“캐리가 전에 사귀던 남자야. 켄인지 덕판인지. 저 사람이.”
“우와! 언니 대단해.”
“정말 선배랑.”
“뭐 옛날이야기야. 지금은 단순한 원수지 뭐.”
“아쉽네. 저런 형부라면 용돈도 많이 줄 것 같은데.”
소라의 말에 난 잠시 웃었고 하늘이도 내 웃음에 동조했다. 소라는 그런 하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눈빛을 보냈고 난 소라를 억지로 돌려 새워서 그 상태를 없애버리고 하늘이가 사는 아파트로 계속 향하도록 손짓을 했다.
“사인 받을 생각 없으면 어서 가자.”
하지만 날 감시한다고 최근 몇 일간 불쾌한 감정을 끌어안고 아파트로 동행한 것에 한계가 왔는지 퉁명스럽게 말해왔다.
“난 그 아파트 까지 안 따라갈래. 사인 받고 혼자 집에 갈래. 둘이서 가던지 말던지.”
소라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선 왼지 잘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내 표정이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활짝 꽃이 만개하듯 활짝 미소를 지어 버렸다.
이 표정에 하늘이도 동조 했지만 일단 소라가 본다면 좋지 못한 상황으로 다시 이어질 것인데 오늘 행운이 깃드는 날인지 소라는 우리를 보지 않고 덕판 쪽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떨어져간 소라 대신 새로운 방해자가 소라를 교차해 지나쳐선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은 나쁜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애써 알리기 위해 아주 다정다감한 표정을 지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우리 앞 까지 다가와선 차분한 음성으로 말해왔다.
“안녕.”
“네~~ 안녕하세요.”
난 얼떨결에 대답했고 하늘은 불안한 눈동자로 고개만 끄덕였다.
“경계 하지 마.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그저 제의를 하기 위해 온 거야.”
남자는 조금 과장된 억양을 썩어가며 말하는 말하자면 무대위의 연예인 같은 말투를 사용했고 그것에 더 위협을 느꼈는지 하늘은 내 손을 살며시 쥐어오고 있었다.
“하하 미안. 초면인데 자기소개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난 ARTAN, GN-GIRL, 이인한 등을 거느린 KEG 직원이야. 뭐 지금하고 있는 일은 스카우터지만 사실은 회사 임원이지.”
일단 자기 소계를 해오는 상대에게 자기 소계를 해주는 것이 예의란 생각이 들어서 난 입을 열었다.
“전 ‘성진‘이고 옆에 여자애는”
난 잠시 이 말을 낮선 사람에게 해도 될까 생각하다. 결심하고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제 여자친구인 ‘박하늘’ 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하늘이에게서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쥐고 몸을 살짝 기대어 왔다.
“와~ 예쁜 여자친구인걸.”
이 남자의 칭찬에 미소를 짓고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는 하늘이와 눈을 한번 맞추고 다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근데 용무가 뭐죠.”
일단 스카우터라고 했으니 스카웃 하려고 왔다는 예상을 하고 질문했고 남자는 재미없게도 예상대로 말해왔다.
“최근에 이 근처를 가다가 괜찮은 아이가 있다는 회사 직원이야기를 들어서 왔거든 근데 이 학교 대단하네. 여기 앉아 있다가 너희 둘 까지 3명을 확인했거든.”
첫 번째는 아마도 캐리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고 남자는 그 예상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근데 너희 앞에 왔던 여자애는 이미 기획사 연습생이더라구.”
“혹시 켄이랑 안 싸웠어요.”
“뭐 싸운 것 까지는 아니고 켄이란 것을 들통 나게 해서 여자들이 붙게 만들고 가버리긴 했어. 근데 아는 사이야.”
난 대답하지 않았고 남자도 대답을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본론을 꺼내놓았다.
“너희 둘 우리 기획사에 와 보지 않을래. 뜰 수 있는 재능만 있다면 명성과 돈은 쉽게 쥘 수 있을 거야. 시도해 보지 않겠니. 인생에 대변혁을 불러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우리 기획사엔 최고의 서포터를 할 수 있는 돈도 인력도 있어. 뭐 일단 구경이라도 해보지 않을래.”
다른 스카우터도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 했다. 사실 캐리가 덕판과 모르는 사이이며 내가 조금 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 장황한 이야기에 넘어가서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 내 상황에서 나온 결론 거부였다.
“싫어요.”
이는 하늘이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딱 잘라 말해 버리는 나의 대답에 살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나 사기꾼으로 보이는 거야.”
이 남자의 경험상 아까처럼 말하면 10이면 10이 따라 왔었는지 우리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명함을 꺼내서 각각 건네주었다.
“봤지 나 정말 기획사 임원이야. 자 어떻게 할래.”
명함은 분명했고 난 애초부터 이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덕판이 동행중이라.)그러니까 전혀 오해도가 없었기 때문에 판단을 번복할 이유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볼게요.”
“아! 저기 잠시만 차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 들어 주지 않을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그걸로 해도 좋아.”
“그럼.”
난 남자의 반응에 살짝 놀라있는 소라의 팔을 잡아당겨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먼가를 또 말해 왔고 난 그것을 무시하며 걸어서 곧 켄이 소라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곳을 지나치고 하늘이가 말을 걸어올 때 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진아 이제 천천히 가자 안 따라와.”
“응 그래. 미안.”
“아냐”
“오늘은 소라도 없으니까 어디 갔다가 갈까.”
“응”
“어디 갈까.”
“음~~~ 하하 케이크 뷔페 번화가에 생긴 거 알아.”
“케이크 뷔페?”
난 아주 짧은 순간 ‘소라를 데려갔으면 좋아 했겠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요즘 귀찮게 굴어서 밉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해주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고 하늘이는 그런 내 생각을 캐치해 내었다.
“소라 건 포장해 가고.”
“응.”
난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잡고 있던 손을 끌어 당겨 팔짱을 끼게 했다.
“갈까.”
미소로 답하는 그녀.
우리는 택시를 타고 병원근처 번화가로 가서 사람, 옷, 음식 구경을 한참 하다가 해가 기울기 시작 할 때쯤 하늘이가 말한 케이크 뷔페점이 있는 25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아 여기 새 건물인가.”
“1년쯤 지났을 거야.”
“결혼식장, 뷔페, 레스토랑, 한식당, 쇼핑몰, 학원, 극장 아파트 없는 게. 없구나.”
“여기 그거도 있어.”
“어떤 거?”
“J&K기획 사무실, 연습장, 숙소, 녹음실 까지 다 있다던데. 듣기로는 이 건물 기획사 거라 하더라.”
“캐리가 오는 곳이 여기구나.”
“캐리 언니 요즘. 프로젝트에 오디션 보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었데.”
“처음에는 무난하게 뽑힌다고 좋아 했는데. 기획사 사장이 요즘 일반적인 댄스 걸그룹이 너무 많다고 무산시키고 다른 컨셉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더라.”
“음~ 캐리 언니 많이 실망했겠다.”
“하하 말도 마. 그날 가만있는 나를 얼마나 괴롭히던지. 죽는 줄 알았어.”
“하하 그래도 풀은 죽지 않아서 다행이네.”
“응. 새로 만든 프로젝트가 비쥬얼 밴드 5~6인 구성이라 하던데. 요즘 열심히 기타를 배운다고 하더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보컬 이렇게 구성된 밴드로 걸 그룹으로 만든다. 재미있겠다.”
어떤 상상을 했는지 그녀의 눈빛이 빛나 보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끼며 난 미소 지으며 알고 있는 것을 더 말해 주었다.
“일단 드럼하고 키보드 구했다고 하더라. 나머지 베이스 1명, 기타 2명, 보컬 1명은 지금 오픈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해.”
“기대는 대는데 실력보단 외모를 따지다 보면 다 모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치 나도 그게 문제란 생각이 들어.”
“어 가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 나왔다. 하지만 그 중엔 연예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우리와 3명의 남녀가 그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가서 각자의 행선지를 눌러 데었다.
“하늘아 이 엘리베이터로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까?”
“아니 기획사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더라. 주차장도 별도로 되어있어서 도찰이 쉽지가 안타고 인터넷에선 철통 요새라고 부르는 걸.”
우리의 대화 사이로 팅~ 하는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우리 목적지에 도착해 팅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나와서 식당, 카페 사이를 걸어갔다. 알고 보니 요 바로 위층이 극장이고 아래가 쇼핑몰이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쇼핑과 극장구경이 끝나면 오는 먹자골목인 샘이다.
“번화가 속 번화가라 해야 할까.”
“응. 그렇지 한 건물 안에 다 있으니까.”
“10층 이지. 창가가 있는 가게면 좋겠다.”
“응 창가 있어. 전망도 좋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4인용 이지만 일반적인 식당의 것 보다 작은 테이블이 7개에 있는 작은 규모지만 일곱 가지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벽과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커튼 그리고 귀여운 인형들이 즐비한 여성스러운 귀여움이 묻어나는 독특한 장소였다.
“아~ 예쁜 곳이구나.”
“그치.”
“저 쪽으로 가자.”
손님은 7개중 5개를 채우고 있었지만 내가 원한 창가 쪽은 아직 비어있었다. 난 그 장소로 가 앉은 후.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도심 속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10층은 도심 속에서 따지면 그다지 높은 건 아니었지만 이 근처는 아직 높은 건물이 몇 개 없다보니 멀리까지 아주 잘 보였다.
“하늘이 사는 아파트 보인다.”
“어디 응 보이네.
우리는 한참을 웃으며 우리가 아는 장소 찾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선불을 받으러 온 종업원을 잠시 무시하는 꼴이 되어 버렸고 난 그것을 사과하고 2인분 돈을 꺼내 놓으며 종업원의 설명을 들었다.
“차와 케이크, 물은 셀프로 이용 하셔야 되고요 상식이상으로 케이크를 남겨버리시는 분은 벌금 30,000원을 내셔야 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종업원의 아주 상양한 설명이 끝나고 그녀가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을 때. 난 의문을 꺼내 놓았다.
“상식이상이라.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음~ 몰라. 이~~~ 만큼 일려나.”
하늘이가 그렇게 말하며 과장스럽게 그 만큼의 음식을 팔로 표현했고 난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다가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가자 케이크 골라야지.”
케이크는 12가지로 다양했지만 차는 홍차, 녹차, 원두커피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하늘이가 종류별로 4개 내가 중복되지 않게 6개를 가져 와서 다 먹어본 감상은 다 독특한 향과 맛이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즐거웠고 케이크는 맛있어서 어느새 하늘이는 소라가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라 일부로 사인 받으러 간 거 아닐까.”
“모르겠어. 요즘 심술이 나서 너에게 그러지 착한 아이인 걸.”
“그치 소라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여동생하고 싶고.”
“응 그래. 어떻게 알았어.”
하늘은 자기 생각을 알아 버린 것이 부끄러운지 수줍게 말해왔고 나는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설명을 해줬다.
“전에 네가 그랬잖아. 네 어머니가 임신 했을 때 좋아 했다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거야.”
역시나 그 기억은 씁쓸한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 졌다.
“그~ 이야기도 했었지. 근데~ 아까 그 스카우터 혹시 소라를 스카우트하려고 하지 않을까.”
“소라. 눈이 댕그라니 귀엽기는 하지. 하지만 아직 어린데다. 들어간다면 캐리가 있는 J&K에 들어가지 거기에 왜 가겠어.”
“그렇겠네.”
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누나의 선물인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 습관처럼 대어 버려서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인데 하늘인 이 행동이 신경 쓰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시계 꼭 차고 다니네.”
“으~응. 예뻐서.”
난 아주 잠깐 하늘이가 누나와 결부되는 물건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하늘이는 이것이 내 졸업선물로 보내온 거란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구경해도 돼. 남자가 차고 다니는 거 같지 않게 작고 예쁘네.”
난 그녀에게 시계를 풀어줬고 그녀의 팔목과 내 팔목이 거의 일치하는지 조절 없이 차버렸다.
“그거 알아 나 어릴 때부터 몸에 달라붙는 거 엄청 싫어하는 거.”
그러고 보니 하늘이가 시계나 목걸이 귀걸이를 하는 걸을 한번 도 본적이 없었다.
“근데 이 시계는 왼지 느낌이 좋은데.”
그녀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싶은 것일 거다. 그 마음은 고맙고 행복했지만 역시나 누나가 준 선물이란 이유 때문에 절대 줄 수는 없었고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대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풀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자”
“응”
우리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한 상태로 케이크만 먹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계를 주지 않는다는 것에 섭섭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가고 우리 접시가 비워 졌을 때. 하늘이의 목소리로 침묵이 깨어 졌다.
“더 안 먹어.”
“많이 먹었어. 차도 많이 마시고. 이만하면 충분해. 넌.”
“나도.”
“그럼 갈까.”
우리는 일어났다. 매장을 나갈 때. 하늘이는 온전한 모양의 딸기가 올려져 있는 케이크를 사서 내 손에 건네주었다.
“진이 이모네 식구에게 주는 선물.”
“고마워.”
우리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 겸해서 식당을 둘러보고 한 층 내려가서 손을 잡은 채로 쇼핑몰을 더 구경했다. 역시 하늘이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어느 순간 밝은 표정으로 예쁜 옷이 보이자 눈빛을 빛내며 구경하기도 하고 나에게 어울리겠다며 옷을 내 가슴에 대어 보기도 했으며 귀를 뚫어 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여자들의 쇼핑은 사든 안사든 오래 걸렸고 어느새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아. 7:50 이네. 그만 가자.”
“응. 그래.”
하늘과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밖은 어두워 졌고 번화가답게 낮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버스 정류소 까지 걸어갔고 버스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를 향했다. 그리고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눴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응. 갈게.”
일단 인사를 했지만 나도 그녀도 아쉬웠다. 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아마 그녀는 키스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섹스는 무리였고 언제 그녀의 부모님이 나올지 알 수 없어서 키스도 힘들어 보였다.
우린 서로를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며 한참 동안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있지~ 키스 하고 싶어.”
“으응 나도.”
사실은 다 하고 싶었다. 귀엽고 야들야들한 하늘이의 몸을 맨살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역시나 힘들어 보였다. 불청객이 끼어들어왔다.
“하늘아.”
이번엔 그녀의 검사 아버지 인지 중년 남자 목소리다. 난 서둘러 그에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성진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너 구나 하늘이 남자친구라는 예쁜 남자란 아이가.”
그녀의 아버지는 검사라는 직종에 맞게 단정한 차림의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벌로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남 앞에 굴림 하는 카리스마와 중후한 멋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네. 잘 부탁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연상시킬 정도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난 이 눈빛이 검사로서의 눈빛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늘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음~ 미안.”
미안 이라고 말했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이다.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엔 감정이 실려 있었다.
“정말 수진선배랑 많이 닮았구나.”
어머니를 아는 사람을 또 한 사람 만난다는 것이 나에게는 슬프면서도 기쁜 일이었나 보다 내 얼굴엔 미소가 흐르지만 내 마음은 낮게 가라앉았다.
“제 어머니를 잘 아세요.”
“잘 알지. 넌 잘 모르는 건가 보구나.”
“예. 불행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은 알뿐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죠.”
하늘의 아버지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검사출신이다 보니 아버지의 보도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알고 있고 내 표정과 목소리에서 나오는 감정을 캐치해 나도 그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 것 같았다.
“그래 몹시 불행한 일이었지.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해. 그녀는 너 때문에 더 빨리 삶은 놓아 버리지 않은 거야.”
그의 말은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 거란 뜻이다. 비록 원하지 않은 임신이지만 자신의 배에서 자라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죽지 않기를 바랐기에 자신 또한 자살이란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내가 그녀의 삶의 족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고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너무 미안해서 몹시 가슴이 아파왔다.
“미안 울려 버렸구나. 하늘아 손수건 좀 빌려 주지 그래.”
“예.”
이 순간 눈물은 참기 힘들었다. 난 눈물을 줄줄 흘러대다가 나도 모르게 부녀를 따라서 그들의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늘이 집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집인 만큼 커다란 평수를 자랑하기는 했지만 아주 깔끔하게 그림이나 장식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난 이 집안의 분위기가 하늘이 성경과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어느새 멈추어 버린 눈물이 흘렀던 곳을 어루만졌다.
“이제 좀 괜찮은 거냐.”
내 맞은편에 앉은 하늘의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예”
“미안 하구나. 네가 하늘이랑 사귄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도 있고 하니 사실 난 네가 삐뚤어진 아이가 아닐까 의심을 했었거든. 그래서 한번 쯤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까. 선배 생각이 너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까지 해 버렸구나.”
“어머니와 친 하셨나 봐요.”
그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지. 내가 아닌 먼 곳을 응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네 어머니를 좋아 했었다. 뭐 짝사랑에 불과 했고 계기는 잡지모델을 하던 그녀의 팬이 되어 버린 것부터 시작하지만 분명히 네 어머니는 나의 첫사랑 이었지.”
이런 이야기를 저렇게 생긴 남자 입에서 듣는 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하고 우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거짓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어느새 차를 가지고 와서 내 옆에 앉아 있는 하늘이도 마찬가지 인지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네 어머니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여자였다. 강하고 멋지고 영리하고 자상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으며 사람 부릴 줄도 알았지. 한마디로 완벽한 여성상이라고 할까. 어머니 상이라고 할까. 그런 멋진 분이었다. 그런 여성이었기에 따르는 후배도 많았고 연심을 품은 늑대들도 많았지. 물론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 했지 하지만 그 접근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어.”
그는 그 때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우린 저 얼굴에도 저런 미소가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근데 그것을 성공한 사람이 있었지 남들처럼 데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접근해서 평범하게 정을 쌓고 자기 자신의 불행한 집안사를 이용해 동정을 불러일으켜 그녀의 마음을 획득해 버린 성필성이란. 남자.”
“근데. 아버지도 같은 대학에 다녔어요.”
“응 그래. 그는 수진 선배랑 동급생 이었지. 뭐 군대 갔다 와서 대학에 들어 온 거라. 나이차이가 나는 동급생이지만. 사실 그도 멋진 남자기는 하지 눈매가 매섭고 말수가 적어서 큰 인기는 없었지만 성적도 좋고 의리도 있었거든.”
“그래요.”
“하늘아 진이네 이모님 오시라고 한거 어떻게 됐냐.”
“오신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그는 내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하늘이에게 이모를 부르라고 시킨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검사라는 직업의 남자가 할 판단치고는 너무 동적이었다. 그냥 택시를 태워 보내면 될 것인데 말이다.
그는 그 뒤로도 많은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데. 그는 자기 짝사랑을 낚아가 버린 성필성 즉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난 그의 가정이 냉담한 이유를 그의 짝사랑에서 찾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모가 올 때. 까지 난 그녀의 방에서 시간을 때웠다.(그녀의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방은 거실과는 다르게 또래의 여자아이들 같은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귀여운 핑크빛 방이었다. 인형이 있고 귀여운 프릴이 달린 커튼이 있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순수연예 소설과 순정만화들이 가득했다.
“어때.”
“예쁜 방인데.”
“고마워.”
그녀는 미소 지었고 책만 보면 꺼내 보는 버릇을 발휘해서 책장으로 가서 그녀의 애장서를 허락도 없이 꺼내서 펼쳐서 잠시 잃어 보았다. 내용은 흔하디흔한 슬픈 연예소설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문체가 간결하고 배경이 독특했다. 제목은 보라색천사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잃어 보지 않는 것이라 구미가 당겼고 난 나를 왼지 슬픈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하늘이에게 말했다.
“빌려줄래.”
“응”
그녀는 대답하고 나서 별 말이 없었다. 난 그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지만 그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완 생각이 틀렸다.
“진아. 뭐든 나에게 말해 줄래. 무엇이든 난 들어주고 싶어. 내 슬픔이든 분노든 난 알고 싶어.”
“미안. 지금 말고 다음에 이야기 해 줄게. 나 오늘.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미안해.”
“응 그래.”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웃음 지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주었다.
“조금 있으면 네 생일 인거 알아.”
“아~ 다음주구나.”
“그 전 날에 우리끼리만 놀러가지 않을래. 그 날 개교기념일이기도 하거든.”
하지만 이번 달 용돈은 오늘 거의 바닥이 났다. 경비를 어디서 조달하라는 건지 막막해 졌다.
“미안하지만 나 경비가 부족한데.”
“경비라면 걱정 마. 이게 있으니까.”
그녀는 저번 주에 소현에게서 받아서 건네주었던 봉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뭐 돈이 라도 받은 거야.”
“돈을 기분 나쁘게 어떻게 받아.”
아마 그럴 것이다. 공식적으로 사귀는 남자를 빌려준 후. 받은 선물이 돈이라면 기분 나쁘기 짝이 없을 것이다.(일방적인 선물이라고 해도.)
봉투 속에는 하늘이는 타지도 못하는 놀이동산 놀이기구 하루 무한 이용권과 호텔 레스토랑 특식 이용권 그리고 숙박하려면 하루에 수백만원을 써야 한다는 VIP룸 이용권이 들어가 있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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