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거울 속 행복.
비에 완전히 젖어버린 상태로 집까지 힘겹게 걸어왔다. 하늘이의 도무지 받아드릴 수 없는 이별통보와 그녀가 실수로 내게 알려 버린. 누나가 임신을 했었단 사실이 너무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눌러서 몇 번이나 주저 앉아버릴 것 같은 것을 꾹 참고 걸어서 겨우 인터폰을 눌렀고 비 맞고 온 것에 잔소리를 하는 누나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너 뭐야 왜 비를 맞고 다녀. 정말.”
-철컥-
누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듯했다. 나는 그런 다정한 그녀에게 임신이라는 굴레를 쉬워서 외국으로 가게 만든 거다. 그리고 만일 아이를 지원다면 천주교인으로서 교리를 저버리는 것에 대해서 배덕감과 한 인간이자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자로서 느낄 상상하기 힘든 상실감에 힘들어했을 것이고 아이를 낮았다면 역시 근친상간 임신이란 치유되기 힘든 배덕감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죄를 짓는 걸까. 내 출생으로부터 시작하는 죄가 어머니에서 누나로 이어져 버렸다. 난 정말 저주 받은 아이가 아닐까. 그 미치광이의 자식으로서 정말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몹시 괴롭고 우울했다.
“야~~~ 진아~”
누나는 힘없이 빗길을 걸어오는 내 모습이 답답했었는지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 우산을 쉬워줬다. 이미 다 젖어 버려 불필요한 행동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녀의 호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즐겁게 받아드려야 할 것 같아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뭐야 진짜.”
짜증을 내는 누나는 스스로 할 거라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내 머리를 말려주다가 갑자기 그만 두고 여전히 짜증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니다 감기 걸리기 전에 뜨거운 물로 목욕이나 해라.”
그렇게 말하고 나를 등 떠밀어서 1층 욕실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말해왔다.
“따듯한 물에 푹 담그고 있어.”
나는 그녀의 다정함에 더욱 죄스러움을 느끼며 불쾌하기 짝이 없게 몸에 달라붙는 옷들을 벗느라 고생을 하고 겨우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욕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리고 전기로 작동하는 순간온수기를 틀어서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욕조 3분의 1정도 찾을 때. 여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으로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옷 가져다 놨어.”
계속 말을 하지 않으면 누나가 걱정할 것 같아 나는 짖은 파란색 시트 붙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 너머로 힘겹게 대답했다.
“고마워.”
“아냐.”
누나는 어떤 말을 하려는지 바로 나가지 않았고 나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늘이 만나러 간 거야.”
“응.”
힘겨운 내 대답. 그리고 슬픈 듯이 들리는 누나의 목소리.
“잘 안되었나 보구나.”
“응”
“내가 만나 봐줘?”
하늘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나가 대신 가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한숨 썩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래. 일단 따듯한 물에 담그고 있어. 기분 좋아 질 거야. 이야기는 저녁 먹고 2층 거실에서 하자.”
“응. 누나.”
여닫이문 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나에게 임신에 관해서 이야기 꺼내야 하는 건지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이 좋은 건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물이 넘치는 것을 뒤늦게 발견 하곤 기구를 끄고 물속으로 몸을 푹 담갔다. 따듯한 아니 조금 뜨거운 온기가 비에 젖어 내려갔던 내 체온을 갑자기 끌어 올리는 덕에 살갗이 살짝 따끔거리고 얼굴을 붉게 상기시켰다
얼굴이 따끈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뭔가 싫은 기분이 들었지만 누나의 말이 생각이 나서 조금 참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자세로 20분쯤 있다가 물속에서 나와서 샤워솔로 거품을 내 몸에 문지르고 순간온수기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서 몸에 묻은 거품을 흘려내어 버린 후. 머리를 샴푸로 감고 얼굴과 목을 비누로 문질러서 씻어 내었다 그리고 다시 따듯한 물속으로 들어가서 10분 쯤 있다가 이를 닦고 치실을 하고 마지막으로 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대충 뒷정리를 한 다음 나와서 물기를 잘 닦고 누나가 가져다 놓은 옷 바구니에서 팬티를 꺼내 입고 검은색 스키니진과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체크무늬가 있는 셔츠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와서 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역시나 누나와 나만 하는 식사 도중에 불안해진 하늘이와 연과 그녀가 말한 누나 임신에 대한 것들이 생각나서 도무지 내가 뭘 먹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결국 다 먹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고 내 모습을 보고 누가가 물어왔다.
“왜? 밥맛없어.”
누나가 고개를 한쪽 기울이고 물어왔지만 난 대답하지 못하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먹어둬. 혈당이 낮으면 좋은 생각도 안 떠오르고 기분도 더 나빠져.”
난 누나의 말을 듣고 숟가락을 들었지만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미안.”
누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잠시 관찰하다가 짧게 한숨을 쉰후 입을 열었다.
“그래. 먼저 올라가 있어.”
나는 내 그릇과 수저만 챙겨서 싱크대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의자를 밀어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난 소파에 푹 눌러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언제 임신 했었던 걸까.’ 잠시 기억의 고리들을 끌어다 연결하기를 반복했다. 4년 쯤 지난 일이라 희미했기 때문에 연결고리들이 완전한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오래 거렸기에.
“진아.”
내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그 연결된 이야기를 답으로 만들어 말로 해 버렸다.
“하늘이가 그러더라 누나가 임신을 했었다고.”
나는 이 말을 바로 한 것에 후회 하면서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옆에 앉는 누나는 대답을 바로 해주지 않고 되물어 왔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야.”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왼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답했다.
“하늘이가 내 말에 반응해서 충동적으로 말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불안한 눈동자로 누나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고집스러운 인상의 옆모습만 보여주며 침묵했다. 그 대신 TV를 틀어서 그 침묵을 메워 놓았다.
[성가현 사건의 용의자인 이모씨의 첫 공판이 다음주 화요일에 있다고 합니다. 증인으로 월드스타 서태혁 그리고 이번 사건의 주 피해자인 성가현 본명 성진이 참석 한다고 합니다. 일단 증거를 다 잡은 상황이라 공갈협박 금품갈취 미수 그리고 성진과 故진수진 가족에 대한 명예회손 혐의 입증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낯짝을 옷으로 가리고 있는 이길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순간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난 우리들의 침묵을 깨 버렸다.
“누나. 꺼줘.”
“응.”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길지도 않았고 다른 것이 대신하지도 않았다. 누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놓아 줬다.
“맞아. 나 임신 했었어. 아이에게 미안 했지만 수술 받았어.”
누나의 목소리는 책을 읽는 것처럼 덤덤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난 도무지 덤덤할 수 없었다.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었던 누나가 너무 가엽고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아이에게 너무 큰 죄책감이 느껴졌다. 턱과 안면근육이 떨려 왔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몹시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그런 거지.”
누나는 나 때문에 아이를 지우는 아픔을. 정말 하기 싫은 결정을 했기 때문인지 나에게 화가 난 것처럼. 아까와 같은 자세로 나를 외면하며 대답해 왔다.
“잊어버려.”
누나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게 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나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누나는 잊어버린 거야.”
“그래.”
감정이 없는 목소리. 아버지가 보여주는 그런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다른 난 누나와 같은 정신력 따위 없었다. 슬프고 괴로워 눈물을 흘리며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흐~~~ 미안해. 나 때문이야. 흐~~”
나는 죄스러운 마음에 소파에 팔을 디디고 고개를 숙여서 가죽 소파위에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것이 점점 많아져 낮은 방향으로 그것이 흐를 때쯤 따듯한 손이 다가와 눈물 범벅이로 엉망진창인 내 얼굴을 들어올려 시선이 마주쳐 지는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누나의 눈동자 역시 슬픈 빛을 뛰고 있었지만 나처럼 촉촉하지 않았고 대신 나를 위로 하려는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만 해. 그만 울어 응. 언제까지 울보라고 듣고 싶은 거야 진이는. 누나는 괜찮으니까. 책임감 안 느껴도 돼. 그만 잊어버려.”
“하지만. 흐흐흐윽!”
난 더 오열했고 누나는 나를 끌어당겨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정말 그만 울라니까.”
정말 한참을 울었다. 누나는 내가 울음을 그치자 2층 욕실로 보내서 얼굴을 씻게 하고 자기는 나 때문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소파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욕실 문을 수건을 들고 나온 나는 그녀에게 어색하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누나는 내 어색한 말에 미소 지어주며 자기 옆 자리를 손으로 소리 내어 때렸다. 옆으로 오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하나를 물어왔다.
“하늘이는?”
순간 어머님이 하늘이를 되리고 집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떠올라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해를 하는 것 같아.”
“뭐에?”
그렇게 물어온 누나는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심각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살짝 흔들곤 다시 말했다.
“똑바로 아니라고 했어야지.”
역시 한숨 썩힌 나의 대답.
“하늘이가 임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럴 정신이 없었어.”
이번엔 누나도 한숨을 쉰다.
“하~~~ 정말. 진이도 참~~ 내가 한번 만나봐야 하겠네.”
“그래줄래.”
“응. 그래야지 뭐. 내일 아침에 갔다 올게.”
“고마워.”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난황을 격어야 했다. 하늘이의 휴대폰은 전화 안 받는 선을 지나서 전원을 꺼놓은 상태가 되어 있었고 누나랑 부랴부랴 차를 몰고 아파트에 가서는 어머님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겨우 전화번호를 알아서 걸어본 아버님은 뉴질랜드로 여행을 간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딸을 울리지 않았으면 하네. 아버지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 사랑스런 딸임은 변함이 없어. 우는 하늘이를 보고 있으니 정말 자네 찾아가서 때려주고 싶었네.”
왜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일까. 나도 그녀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어서 공항으로 가봐. 내가 알기로는 10:30 비행기니까 아직 1시간 남았네. 아슬아슬 하니까 빨리 출발해.”
“1시간! 감사합니다. 아버님.”
“응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차를 직접 몰려고 운전자 쪽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누나가 막아서며 말했다.
“시간 별로 없잖아 내가 운전할게.”
누나는 방금 내 운전 실력을 보고 그렇게 결론지은 것 같았다.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 그거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응.”
곧 누나가 운전석에 타고 내가 조수석에 탄 후 차가 출발했다. 누나가 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 실력은 주장등지에서 20년 정도 일한 사람 같아서 놀라웠고 딱지 끈길 것을 각오하고 속도를 내고 달리는 솜씨는 외국에서 카레이서로 활동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8개월 몰아본 거 확실해 누나?”
누나는 운전에 너무 집중해서 다른 여유가 없는 나와는 다르게 아주 여유롭게 답해주었다.
“독일 대학교 동기가 가르쳐 주더라.”
“진짜 잘하네.”
“그래 보여.”
“응”
누나 입에서 나온 ‘독일’ 이란 말에서 내가 아직까지 누나의 외국생활에 대해서 거의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동안 자기연민에 휩싸여 나의 불행. 나로 인해서 내 주변 사람이 격고 있는 불행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오랜만에 만난 누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있었었다.
“독일에 있었구나.”
“응.”
“뭐 했어?”
“아버지가 회사를 승계 받기를 바라셔서. 독일. 하이델베르크라는 이름의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재학 중이야.”
내가 모르는 누나의 일이라. 생각하니 왼지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랬구나.”
“진이는 진학 안하고 싶어.”
털북숭이는 음악학과 진학해보라고 했지만 공부하곤 인연이 없는지 사양했었다.
“별로.”
“내 생각엔 있지.”
누나는 운전 때문인지. 말 꺼내기 어렵기 때문인지 말을 잠시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이었다.
“누나는 진이가 연예계에 다시 가는 것이 어렵다면 아무거나 공부 했으면 좋겠어. 음악도 좋고 정 싫으면 다른 거라도 했으면 해.”
누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식으로 돌파구 아니 도망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유학으로 외국에라도 간다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보다 하늘이가 급했다.
“생각해 볼게.”
“천천히 생각해. 힘겹겠지만 연예인 생활 다시 하는 거나 다 버리고 유학 가는 것. 어느 쪽도 누나는 응원 할 거니까.”
역시 우리 누나는 사랑스러운 나의 영원한 편이란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응 고마워.”
누나는 미소를 약간 보여준 후. 시간을 확인하고 조금 더 속력을 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27분 거리였고 시간은 33분 남아있었다. 공항 안에서 헤매지만 않으면 하늘이를 잡을 수 있는 시간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시간이 내 의지를 무시하고 빨리 간다고 욕하고 제발 항공기가 연착하기를 하느님께 바라는 도리어 신벌 받을 기도를 올렸다.
“하늘아.”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듯이 이름을 불러본다. 역시 대답 할리 없는 그녀.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다음 다시 기도를 올렸다.
“성모 마리아님.”
그 때 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난 다 도착한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차는 인도를 인접해서 가다가 인도 한바퀴를 약간 부딪치며 서버렸다. 나는 왜 그런가 해서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누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말해왔다.
“미안. 누나가 빈혈이 있어서. 운전은 네가 해.”
내가 기억하기로는 누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병원신세를 진일은 나와는 다르게 운동 경기를 하다가 골절상을 입어서 정형외과에 이틀 있었던 것과 나와 같이 사고를 당했던 그 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빈혈이란 누나의 말에 신경 쓰면서도 별일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어서 바꾸자.”
“응.”
나는 바로 일어나 차에서 나왔지만 누나는 힘겹게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왔고 차에 나와서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깐 별 생각 없던 나를 원망하며 달려가 누나를 부축하고는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진짜 괜찮은 거야.”
하지만 누나는 내 부축을 손을 흔들어 풀게 하고는 혼자 걸어가며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자. 하늘이 놓치면 어떻게.”
누나의 창백한 얼굴이 너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하늘이가 급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또 누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란 내 고정관념을 내 사고를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응. 알았어.”
나는 내 안전벨트를 매고 기아를 바꾸고 악살을 밟아서 차를 다시 전진시켰다. 그리고 10분쯤 몰고 가다가 누나가 창에 머리를 대고 있는 것을 얼핏 보고는 누나를 불러 보았다.
“누나.”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짧게 누나를 획 돌아보고 목소리를 크게 해서 물어 보았다.
“괜찮아 누나.”
대답은 여전히 없었기에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나. 왜 그래.”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나는 불안한 생각에 결국 차를 인도가로 새웠고 차가 서자말자 바로 누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누나.”
라고 부르며 누나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나의 몸은 힘없이 나에게 쓸러져 왔고 난 누나의 머리가 단단한 부위에 부딪칠 것을 반사적으로 막은 후. 그녀의 창백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보았다.
“왜 그래.”
대답 없는 상태인 누나를 보자 순간 나도 휘청할 것 같았다.
“누나”
혹시 누나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나까지 정신을 놓아버리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악물어 정신을 바로 새워놓고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다.
일단 누나가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보려고 코 바로 아래 손을 가져다 대어 따듯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사슴을 쓸어내리곤 바로 하늘이를 잡으러 공항으로 향하는 것을 포기하고 네비게이션으로 병원을 찾아 차를 돌렸다.
병원은 제법 먼 곳에 있었다. U턴을 해서 하늘이가 비행기를 타는 시간인 10:30이 다되어서야 5층짜리 병원을 찾아서 겨우 누나를 응급실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성가현씨.”
응급실 한쪽에서 주사를 맞고 링거를 꽂고 아까에 비하면 혈색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창백해 보이는 얼굴로 누워있는 여전히 천사 같은 미모의 누나를 걱정스러운 마음(중간 중간 떠나 버린 것 같은 하늘이에 대한 생각도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응급실에 그다지 와본 적은 없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깔끔해 보이는 스타일 여의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고는 예의상 인사를 보냈다.
“예 안녕하세요.”
“민지수 라고 해요. 실물이 더 낮네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나와 누나를 번갈아 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누님도 아름다우시네요.”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울하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길게 늘어졌다.
“예~~”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그녀의 대답에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누나가 잘해줘요. 정말 좋은 누나죠.”
“예. 누님이 자상하실 것 같네요.”
“예.”
그녀가 그렇게 말하지만 사람들의 누나에 대한 첫인상은 대부분 ‘차갑고 도도한 여자 전형’ 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아마도 그녀는 의식 없는 누나만 봤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잠시 후 여의사는 간호사가 가져온 파란색 철을 건네받고는 아까와는 다르게 사무적인 목소리로 나에게 누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는 별 것 아니길 빌며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누나를 뒤로 하고 여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여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본래 의사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전에 의사들의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 중에 주인공 여의사의 병명이 바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어서 어떤 증상이 있고 잘못하면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간 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
“일단 골수이식센터에 의뢰는 했습니다. 근데.”
‘근데’ 라고 하고 그녀는 말을 잠시 끊었다. ‘무슨 악취미’ 하느냐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겨우 참았고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미 누님의 명단이 있었어요. 몇 일전에 의뢰를 했다는데 등록된 사람 중에 이식 가능한 기증 예정자가 없었답니다.”
“예!”
도무지 예상해보거나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누나는 머리도 좋았지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을 적도로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이며 꾸준히 운동을 하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였다. 작을 때부터 골골거리던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드시 장수할 것 같은 여자이지 백혈병 따위에 걸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 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난 여의사의 진단을 곧바로 믿지 못하고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누나를 멍하게 바라 볼 뿐이었다.
비에 완전히 젖어버린 상태로 집까지 힘겹게 걸어왔다. 하늘이의 도무지 받아드릴 수 없는 이별통보와 그녀가 실수로 내게 알려 버린. 누나가 임신을 했었단 사실이 너무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눌러서 몇 번이나 주저 앉아버릴 것 같은 것을 꾹 참고 걸어서 겨우 인터폰을 눌렀고 비 맞고 온 것에 잔소리를 하는 누나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너 뭐야 왜 비를 맞고 다녀. 정말.”
-철컥-
누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듯했다. 나는 그런 다정한 그녀에게 임신이라는 굴레를 쉬워서 외국으로 가게 만든 거다. 그리고 만일 아이를 지원다면 천주교인으로서 교리를 저버리는 것에 대해서 배덕감과 한 인간이자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자로서 느낄 상상하기 힘든 상실감에 힘들어했을 것이고 아이를 낮았다면 역시 근친상간 임신이란 치유되기 힘든 배덕감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죄를 짓는 걸까. 내 출생으로부터 시작하는 죄가 어머니에서 누나로 이어져 버렸다. 난 정말 저주 받은 아이가 아닐까. 그 미치광이의 자식으로서 정말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몹시 괴롭고 우울했다.
“야~~~ 진아~”
누나는 힘없이 빗길을 걸어오는 내 모습이 답답했었는지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 우산을 쉬워줬다. 이미 다 젖어 버려 불필요한 행동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녀의 호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즐겁게 받아드려야 할 것 같아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뭐야 진짜.”
짜증을 내는 누나는 스스로 할 거라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내 머리를 말려주다가 갑자기 그만 두고 여전히 짜증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니다 감기 걸리기 전에 뜨거운 물로 목욕이나 해라.”
그렇게 말하고 나를 등 떠밀어서 1층 욕실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말해왔다.
“따듯한 물에 푹 담그고 있어.”
나는 그녀의 다정함에 더욱 죄스러움을 느끼며 불쾌하기 짝이 없게 몸에 달라붙는 옷들을 벗느라 고생을 하고 겨우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욕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리고 전기로 작동하는 순간온수기를 틀어서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욕조 3분의 1정도 찾을 때. 여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으로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옷 가져다 놨어.”
계속 말을 하지 않으면 누나가 걱정할 것 같아 나는 짖은 파란색 시트 붙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 너머로 힘겹게 대답했다.
“고마워.”
“아냐.”
누나는 어떤 말을 하려는지 바로 나가지 않았고 나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늘이 만나러 간 거야.”
“응.”
힘겨운 내 대답. 그리고 슬픈 듯이 들리는 누나의 목소리.
“잘 안되었나 보구나.”
“응”
“내가 만나 봐줘?”
하늘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나가 대신 가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한숨 썩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래. 일단 따듯한 물에 담그고 있어. 기분 좋아 질 거야. 이야기는 저녁 먹고 2층 거실에서 하자.”
“응. 누나.”
여닫이문 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나에게 임신에 관해서 이야기 꺼내야 하는 건지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이 좋은 건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물이 넘치는 것을 뒤늦게 발견 하곤 기구를 끄고 물속으로 몸을 푹 담갔다. 따듯한 아니 조금 뜨거운 온기가 비에 젖어 내려갔던 내 체온을 갑자기 끌어 올리는 덕에 살갗이 살짝 따끔거리고 얼굴을 붉게 상기시켰다
얼굴이 따끈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뭔가 싫은 기분이 들었지만 누나의 말이 생각이 나서 조금 참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자세로 20분쯤 있다가 물속에서 나와서 샤워솔로 거품을 내 몸에 문지르고 순간온수기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서 몸에 묻은 거품을 흘려내어 버린 후. 머리를 샴푸로 감고 얼굴과 목을 비누로 문질러서 씻어 내었다 그리고 다시 따듯한 물속으로 들어가서 10분 쯤 있다가 이를 닦고 치실을 하고 마지막으로 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대충 뒷정리를 한 다음 나와서 물기를 잘 닦고 누나가 가져다 놓은 옷 바구니에서 팬티를 꺼내 입고 검은색 스키니진과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체크무늬가 있는 셔츠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와서 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역시나 누나와 나만 하는 식사 도중에 불안해진 하늘이와 연과 그녀가 말한 누나 임신에 대한 것들이 생각나서 도무지 내가 뭘 먹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결국 다 먹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고 내 모습을 보고 누가가 물어왔다.
“왜? 밥맛없어.”
누나가 고개를 한쪽 기울이고 물어왔지만 난 대답하지 못하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먹어둬. 혈당이 낮으면 좋은 생각도 안 떠오르고 기분도 더 나빠져.”
난 누나의 말을 듣고 숟가락을 들었지만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미안.”
누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잠시 관찰하다가 짧게 한숨을 쉰후 입을 열었다.
“그래. 먼저 올라가 있어.”
나는 내 그릇과 수저만 챙겨서 싱크대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의자를 밀어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난 소파에 푹 눌러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언제 임신 했었던 걸까.’ 잠시 기억의 고리들을 끌어다 연결하기를 반복했다. 4년 쯤 지난 일이라 희미했기 때문에 연결고리들이 완전한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오래 거렸기에.
“진아.”
내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그 연결된 이야기를 답으로 만들어 말로 해 버렸다.
“하늘이가 그러더라 누나가 임신을 했었다고.”
나는 이 말을 바로 한 것에 후회 하면서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옆에 앉는 누나는 대답을 바로 해주지 않고 되물어 왔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야.”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왼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답했다.
“하늘이가 내 말에 반응해서 충동적으로 말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불안한 눈동자로 누나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고집스러운 인상의 옆모습만 보여주며 침묵했다. 그 대신 TV를 틀어서 그 침묵을 메워 놓았다.
[성가현 사건의 용의자인 이모씨의 첫 공판이 다음주 화요일에 있다고 합니다. 증인으로 월드스타 서태혁 그리고 이번 사건의 주 피해자인 성가현 본명 성진이 참석 한다고 합니다. 일단 증거를 다 잡은 상황이라 공갈협박 금품갈취 미수 그리고 성진과 故진수진 가족에 대한 명예회손 혐의 입증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낯짝을 옷으로 가리고 있는 이길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순간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난 우리들의 침묵을 깨 버렸다.
“누나. 꺼줘.”
“응.”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길지도 않았고 다른 것이 대신하지도 않았다. 누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놓아 줬다.
“맞아. 나 임신 했었어. 아이에게 미안 했지만 수술 받았어.”
누나의 목소리는 책을 읽는 것처럼 덤덤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난 도무지 덤덤할 수 없었다.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었던 누나가 너무 가엽고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아이에게 너무 큰 죄책감이 느껴졌다. 턱과 안면근육이 떨려 왔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몹시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그런 거지.”
누나는 나 때문에 아이를 지우는 아픔을. 정말 하기 싫은 결정을 했기 때문인지 나에게 화가 난 것처럼. 아까와 같은 자세로 나를 외면하며 대답해 왔다.
“잊어버려.”
누나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게 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나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누나는 잊어버린 거야.”
“그래.”
감정이 없는 목소리. 아버지가 보여주는 그런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다른 난 누나와 같은 정신력 따위 없었다. 슬프고 괴로워 눈물을 흘리며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흐~~~ 미안해. 나 때문이야. 흐~~”
나는 죄스러운 마음에 소파에 팔을 디디고 고개를 숙여서 가죽 소파위에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것이 점점 많아져 낮은 방향으로 그것이 흐를 때쯤 따듯한 손이 다가와 눈물 범벅이로 엉망진창인 내 얼굴을 들어올려 시선이 마주쳐 지는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누나의 눈동자 역시 슬픈 빛을 뛰고 있었지만 나처럼 촉촉하지 않았고 대신 나를 위로 하려는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만 해. 그만 울어 응. 언제까지 울보라고 듣고 싶은 거야 진이는. 누나는 괜찮으니까. 책임감 안 느껴도 돼. 그만 잊어버려.”
“하지만. 흐흐흐윽!”
난 더 오열했고 누나는 나를 끌어당겨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정말 그만 울라니까.”
정말 한참을 울었다. 누나는 내가 울음을 그치자 2층 욕실로 보내서 얼굴을 씻게 하고 자기는 나 때문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소파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욕실 문을 수건을 들고 나온 나는 그녀에게 어색하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누나는 내 어색한 말에 미소 지어주며 자기 옆 자리를 손으로 소리 내어 때렸다. 옆으로 오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하나를 물어왔다.
“하늘이는?”
순간 어머님이 하늘이를 되리고 집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떠올라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해를 하는 것 같아.”
“뭐에?”
그렇게 물어온 누나는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심각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살짝 흔들곤 다시 말했다.
“똑바로 아니라고 했어야지.”
역시 한숨 썩힌 나의 대답.
“하늘이가 임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럴 정신이 없었어.”
이번엔 누나도 한숨을 쉰다.
“하~~~ 정말. 진이도 참~~ 내가 한번 만나봐야 하겠네.”
“그래줄래.”
“응. 그래야지 뭐. 내일 아침에 갔다 올게.”
“고마워.”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난황을 격어야 했다. 하늘이의 휴대폰은 전화 안 받는 선을 지나서 전원을 꺼놓은 상태가 되어 있었고 누나랑 부랴부랴 차를 몰고 아파트에 가서는 어머님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겨우 전화번호를 알아서 걸어본 아버님은 뉴질랜드로 여행을 간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딸을 울리지 않았으면 하네. 아버지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 사랑스런 딸임은 변함이 없어. 우는 하늘이를 보고 있으니 정말 자네 찾아가서 때려주고 싶었네.”
왜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일까. 나도 그녀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어서 공항으로 가봐. 내가 알기로는 10:30 비행기니까 아직 1시간 남았네. 아슬아슬 하니까 빨리 출발해.”
“1시간! 감사합니다. 아버님.”
“응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차를 직접 몰려고 운전자 쪽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누나가 막아서며 말했다.
“시간 별로 없잖아 내가 운전할게.”
누나는 방금 내 운전 실력을 보고 그렇게 결론지은 것 같았다.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 그거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응.”
곧 누나가 운전석에 타고 내가 조수석에 탄 후 차가 출발했다. 누나가 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 실력은 주장등지에서 20년 정도 일한 사람 같아서 놀라웠고 딱지 끈길 것을 각오하고 속도를 내고 달리는 솜씨는 외국에서 카레이서로 활동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8개월 몰아본 거 확실해 누나?”
누나는 운전에 너무 집중해서 다른 여유가 없는 나와는 다르게 아주 여유롭게 답해주었다.
“독일 대학교 동기가 가르쳐 주더라.”
“진짜 잘하네.”
“그래 보여.”
“응”
누나 입에서 나온 ‘독일’ 이란 말에서 내가 아직까지 누나의 외국생활에 대해서 거의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동안 자기연민에 휩싸여 나의 불행. 나로 인해서 내 주변 사람이 격고 있는 불행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오랜만에 만난 누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있었었다.
“독일에 있었구나.”
“응.”
“뭐 했어?”
“아버지가 회사를 승계 받기를 바라셔서. 독일. 하이델베르크라는 이름의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재학 중이야.”
내가 모르는 누나의 일이라. 생각하니 왼지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랬구나.”
“진이는 진학 안하고 싶어.”
털북숭이는 음악학과 진학해보라고 했지만 공부하곤 인연이 없는지 사양했었다.
“별로.”
“내 생각엔 있지.”
누나는 운전 때문인지. 말 꺼내기 어렵기 때문인지 말을 잠시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이었다.
“누나는 진이가 연예계에 다시 가는 것이 어렵다면 아무거나 공부 했으면 좋겠어. 음악도 좋고 정 싫으면 다른 거라도 했으면 해.”
누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식으로 돌파구 아니 도망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유학으로 외국에라도 간다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보다 하늘이가 급했다.
“생각해 볼게.”
“천천히 생각해. 힘겹겠지만 연예인 생활 다시 하는 거나 다 버리고 유학 가는 것. 어느 쪽도 누나는 응원 할 거니까.”
역시 우리 누나는 사랑스러운 나의 영원한 편이란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응 고마워.”
누나는 미소를 약간 보여준 후. 시간을 확인하고 조금 더 속력을 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27분 거리였고 시간은 33분 남아있었다. 공항 안에서 헤매지만 않으면 하늘이를 잡을 수 있는 시간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시간이 내 의지를 무시하고 빨리 간다고 욕하고 제발 항공기가 연착하기를 하느님께 바라는 도리어 신벌 받을 기도를 올렸다.
“하늘아.”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듯이 이름을 불러본다. 역시 대답 할리 없는 그녀.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다음 다시 기도를 올렸다.
“성모 마리아님.”
그 때 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난 다 도착한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차는 인도를 인접해서 가다가 인도 한바퀴를 약간 부딪치며 서버렸다. 나는 왜 그런가 해서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누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말해왔다.
“미안. 누나가 빈혈이 있어서. 운전은 네가 해.”
내가 기억하기로는 누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병원신세를 진일은 나와는 다르게 운동 경기를 하다가 골절상을 입어서 정형외과에 이틀 있었던 것과 나와 같이 사고를 당했던 그 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빈혈이란 누나의 말에 신경 쓰면서도 별일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어서 바꾸자.”
“응.”
나는 바로 일어나 차에서 나왔지만 누나는 힘겹게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왔고 차에 나와서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깐 별 생각 없던 나를 원망하며 달려가 누나를 부축하고는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진짜 괜찮은 거야.”
하지만 누나는 내 부축을 손을 흔들어 풀게 하고는 혼자 걸어가며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자. 하늘이 놓치면 어떻게.”
누나의 창백한 얼굴이 너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하늘이가 급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또 누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란 내 고정관념을 내 사고를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응. 알았어.”
나는 내 안전벨트를 매고 기아를 바꾸고 악살을 밟아서 차를 다시 전진시켰다. 그리고 10분쯤 몰고 가다가 누나가 창에 머리를 대고 있는 것을 얼핏 보고는 누나를 불러 보았다.
“누나.”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짧게 누나를 획 돌아보고 목소리를 크게 해서 물어 보았다.
“괜찮아 누나.”
대답은 여전히 없었기에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나. 왜 그래.”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나는 불안한 생각에 결국 차를 인도가로 새웠고 차가 서자말자 바로 누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누나.”
라고 부르며 누나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나의 몸은 힘없이 나에게 쓸러져 왔고 난 누나의 머리가 단단한 부위에 부딪칠 것을 반사적으로 막은 후. 그녀의 창백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보았다.
“왜 그래.”
대답 없는 상태인 누나를 보자 순간 나도 휘청할 것 같았다.
“누나”
혹시 누나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나까지 정신을 놓아버리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악물어 정신을 바로 새워놓고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다.
일단 누나가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보려고 코 바로 아래 손을 가져다 대어 따듯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사슴을 쓸어내리곤 바로 하늘이를 잡으러 공항으로 향하는 것을 포기하고 네비게이션으로 병원을 찾아 차를 돌렸다.
병원은 제법 먼 곳에 있었다. U턴을 해서 하늘이가 비행기를 타는 시간인 10:30이 다되어서야 5층짜리 병원을 찾아서 겨우 누나를 응급실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성가현씨.”
응급실 한쪽에서 주사를 맞고 링거를 꽂고 아까에 비하면 혈색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창백해 보이는 얼굴로 누워있는 여전히 천사 같은 미모의 누나를 걱정스러운 마음(중간 중간 떠나 버린 것 같은 하늘이에 대한 생각도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응급실에 그다지 와본 적은 없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깔끔해 보이는 스타일 여의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고는 예의상 인사를 보냈다.
“예 안녕하세요.”
“민지수 라고 해요. 실물이 더 낮네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나와 누나를 번갈아 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누님도 아름다우시네요.”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울하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길게 늘어졌다.
“예~~”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그녀의 대답에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누나가 잘해줘요. 정말 좋은 누나죠.”
“예. 누님이 자상하실 것 같네요.”
“예.”
그녀가 그렇게 말하지만 사람들의 누나에 대한 첫인상은 대부분 ‘차갑고 도도한 여자 전형’ 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아마도 그녀는 의식 없는 누나만 봤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잠시 후 여의사는 간호사가 가져온 파란색 철을 건네받고는 아까와는 다르게 사무적인 목소리로 나에게 누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는 별 것 아니길 빌며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누나를 뒤로 하고 여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여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본래 의사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전에 의사들의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 중에 주인공 여의사의 병명이 바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어서 어떤 증상이 있고 잘못하면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간 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
“일단 골수이식센터에 의뢰는 했습니다. 근데.”
‘근데’ 라고 하고 그녀는 말을 잠시 끊었다. ‘무슨 악취미’ 하느냐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겨우 참았고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미 누님의 명단이 있었어요. 몇 일전에 의뢰를 했다는데 등록된 사람 중에 이식 가능한 기증 예정자가 없었답니다.”
“예!”
도무지 예상해보거나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누나는 머리도 좋았지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을 적도로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이며 꾸준히 운동을 하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였다. 작을 때부터 골골거리던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드시 장수할 것 같은 여자이지 백혈병 따위에 걸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 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난 여의사의 진단을 곧바로 믿지 못하고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누나를 멍하게 바라 볼 뿐이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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