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징검다리.
나는 누나의 병을 먼저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랑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누나를 그의 지인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이동시키지 위해 환자수송차를 타고 온. 그의 표정은 평소 강하고 냉정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는 도무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나에게 인상을 좀 쓴 후. 누나를 차에 태우고 나와 승차감 제로에 가까운 침대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 울고. 병원 도착하면 바로 골수 검사 하자.”
“예”
나는 울먹거리며 대답했고 그는 눈물을 참기 힘들어하는 내가 마음에 안든지 혀를 찼다.
아버지의 지인이 있다는 병원은 암 연구와 치료를 하는 대단위 시설을 가진 초대형 종합병원이었다. 도심에서 약간 외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하철도 바로 연결되어 있고 인근 도시와 가까운 덕분인지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누나는 시기를 다투는 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가 문 바로 옆에 있는 침대이동용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그 많은 인파들 틈으로 들어갔고 나는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아버지와 이 병원 간호사와 아버지의 지인인 의사 옆에 최대한 붙어서 사각에 들어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단체로 건강검진을 왔는지 홍수 같은 인파의 물결 때문에 빨리 지나갈 수가 없었고 그 덕분에 몇 명인가 나를 알 보는 사람을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는 사람, 동행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나를 지적하며 이야기 하는 사람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들 중 누구도 내 이름을 크게 부르거나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단체로 다니는 여학생 팬들의 경우 그와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당장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단지 내 얼굴이 팔려 버렸으니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누나는 약 때문에 전혀 깰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아서 여전히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고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으로 지인의 말만 듣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말게. 예전 보다는 골수이식이 쉬워. 후유증도 덜 하고.”
아버지는 층을 표시하는 LED전광판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썩어가며 말했다.
“문제는 조혈모세포 제공자를 찾는 거군.”
“그렇지.”
“검사하는 곳은 어디에 있나.”
“3층에 있어. 입원실은 11층이네. 내리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미리 대기 하고 있던 간호사가 누나의 이동식 침대를 끌고 1인용 병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누나가 있을 병실은 핑크빛이 도는 벽지에 대형액정TV, 커다란 냉장고, 옷걸이, 옷장, 서랍장, 뭔가 좋아 보이는 환자용 침대, 접이씩 그리고 5인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 미리 도착한 이모와 그녀의 두 딸이 앉아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자 일어서서 다가왔다.
“형부.” 우울한 목소리의 이모.
“안녕하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마이페이스로 보이고 싶은 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밝은 목소리의 캐리.
“반. 안녕하세요.” 아버지를 어려워해서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려다. 어색하게 말을 바꾸는 소라.
이모식구의 인사를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받아줬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불러서 힘 좋아 보이는 간호보조사와 함께 의식 없는 누나를 병실침대로 옮기고 내가 간호사에게 이불을 받아서 누나에게 덮어주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처제도 검사 받아줘. 캐리도”
아버지의 말에 기다렸다는 식으로 이모가 답했다.
“벌써 했어요. 캐리, 소라도 했고요.”
“고마워.”
“고맙긴요. 가희는 형부 딸이기도 하지만 제 조카딸이잖아요.”
아버지는 이모의 말에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렇지.”
“제공자 찾을 거예요.”
“그래야지. 동서는.”
“지방에 세미나를 가서요. 저녁 늦게나. 올 것 같아요.”
둘의 말을 들으며 난 의자를 가져와 침대 곁에 앉아서 여전히 잠들어 있는 누나의 예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성모마리아님 골수 맞는 사람 찾게 해주세요.’ 라고 속으로 빌었다.
“병원은 잘 돼.”
“성형외과는 제법 잘 되는데 정신과는 뭐 그렇죠. 그래서 요즘은 다시 종합병원에 들어갈까 하는 말이 오가고 있어요.”
“그래.”
아버지는 그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해왔다.
“가자.”
“예.”
“처제 부탁해.”
“알겠어요.”
검사는 피를 조금 뽑는 것만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상병리과를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은 후 아버지는 나에게 담당의사 상담에 동행할 건지 물었고 나는 당연히 그를 따라는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같은 층에 있는 혈액암부 김익곤 부장실로 이동했다.
김익곤 선생은 부장이란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젊은 사람이었다. 대충 잡아도 30대 중반으로 키가 크고 깔끔한 스타일에 납작한 안경이 어울리는 얼굴이 긴 남자였다. 그는 아버지와 내가 들어오자 직접 편안해 보이는 의자 두개 끌어와서 자기 테이블 옆에 놓아주고 자기자리에 앉으며 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따님의 유전형이 특별한 케이스라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더 의문을 느끼게 만드는 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 잠깐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버릇인지 필기구 통에서 볼펜을 하나 잡더니 빙그르르 돌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이런 유형이 발견된 건. 2년 이 처음이었는데. 극히 드뭅니다. 이런 유전형은 일종의 돌연변위라고 불러도 될 만큼 달라서 형제도 소수점 이하 확률로 나옵니다. 2년 전 그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전 세계 제공자를 찾다가 올해 초에 사망 했습니다.”
사망 이란 단어가 주는 충격은 나에게도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컸다. 난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동자를 떨며 숨을 죽였고 아버지는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웠다.
“그럼 이식 할 수없다는 말입니까.”
의사는 안경을 고쳐 잡고는 의자를 약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사망한 네덜란드 사람은 제공자를 찾았습니다. 다만 환자가 너무 쇠약해저서 이식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죠.”
누나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아버지보다 앞서서 물었다.
“몇 명에 한명이죠.”
의사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기도는 하는 자세를 취하며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일반적인 예는 20만 1 이지만 이 경우 2000만의 1 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등록되어 있는 공여자가 22만명이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등록된 공여자는 1800만명이란 것을 이전 병원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캄캄해지는 것 같았고 그런 걸 모르는 아버지는 특유의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국제 네트워크 없습니까. 그걸로 찾으면 안 됩니까.”
“있습니다. 20,237,561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과 일치하는 것을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의사는 다시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다. 아버지는 흥분해서 고개를 좌우로 휘두르다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는 다시 물었다.
“줄기세포 연구하고 있잖습니까. 그걸로 안 되나요.”
“연구 중에 있습니다. 아직은 문제가 많은 분야라서 적어도 5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가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고 나는 이 쓸데없는 행동을 많이 하는 이 남자가 남의 불행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나 벌떡 일어나 버렸다. 곧 지나친 생각이란 것이 떠올라서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은 후. 생각 난 것을 물었다.
“단일 민족일 때는 2만의 1 이라면서요. 줄어들지 않나요.”
“이런 경우 그런 식으로 줄지는 않아요. 통계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1000만분의 1은 나와야 할 겁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를 살며시 감싸 쥐며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만 의사 양반의 책상을 손으로 치면서 말했다.
“그럼 이식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길게 6개월 정돕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보며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6개월이라니 30살도 안된. 그렇게 아름다운 누나가. 다정스런 누나가. 자신을 희생해서 까지 나를 살게 하려했던 누나가’ 왜? 6개월이란 너무나도 짧은 선고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충동적으로 일어나 창을 내려다보았고 찬란한 너무도 아름다운 도심의 야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야경에 저주했다. ‘누나는 죽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왜 돌아가야 하는 거지. 왜 야밤의 도심을 돌아다니는 저들은 가볍게 놀고자 하는 거지. 왜 저들의 인생의 무게는 가벼운 거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동안 지겹도록 흘려버린 눈물은 마르지도 않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누나가 누워 있는 병실이었고 시간은 아직 자정을 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주일 쯤 이렇게 누나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현실이고 뭐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상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저 누나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으면 하고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제발. 누나를 구해주세요.”
역시나 그들은 답을 주지시 않았고 난.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없는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를 한번 쳐다보고는 어느새 자리를 비우고 떠나버린 이모식구들이 있던 소파를 바라본 후 모기소리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독일에 가 버릴 생각이었을 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아이니까.”
아버지의 감정이 썩히지 않은 목소리가 알려준 이야기에 또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이 옥죄여오는 고통에 언제쯤 말라버릴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시아를 가렸고 아버지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잔소리를 해왔다.
“그만 좀 울어. 사내 녀석이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냐. 네 누나 걱정시키지 마라.”
난 그의 말에 눈물을 닦으며 이불 옆으로 살짝 나와 있는 누나의 가녀린 손을 살며시 감아쥐었다.
그 때. 문이 노크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가 대답을 해줬다.
“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간호사였다. 그녀는 자고 있는 누나를 의식해서 인지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고 아버지는 조용히 일어나 간호사를 따라나섰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같이 가려 했지만 누나가 혹시 깨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와선 여전히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할머니가 오셨다가 가셨다.”
순간 독일계 미국인 할머니인 에반젤린 할머니를 떠올린 난 바보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는 어제 미국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아니었다.
“어떻게 우리가 병원에 있는지 알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양반이 그러더라. 널 되려가겠다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한 난 겨우 그날 밤 내 병실에 와서 울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파렴치하고 저주 받을 고깃덩어리를 낳은 그 마녀가 무엇 때문에 나를 되려간다는 건지. 아니 그전에 나를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치밀어서 병실이란 것도 잊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뭐라고요! 뭐 때문에요. 이제 와서 왜? 아니. 그런 생각도 하기 싫어요. 절대 싫어요. 절대로.”
난 말을 하다가 누나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는 점점 목소리를 줄였고 아버지는 내가 흥분한 것에 잔소리를 하지 않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내일 다시 온다고 했다. 알아서 해라.”
나는 고개를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 안 봐요. 그런 노인 따위.”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난. 어금니를 꽉 깨물며 화를 삭였다.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누나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언제 잠이 들었을까?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던 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희미하게 보이는 누나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혹시나 해서 손목을 잠아서 심장박동 상태를 체크하고 이마에 살며시 손을 가져가 보았다. 결과는 별 이상 없음. 난 내 행동이 괜한 짓이란 생각을 뒤 늦게 하며 다음으로 아버지를 찾아보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 있었는데 고개가 너무 불안하게 꺾여있었다.
“아버지.”
가까이 다가가서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곤했는지 일어나지 않았고 난 용기가 나지 않아 감히 그의 머리를 똑바로 하지 못하고 맞은 편 소파에 앉은 후.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깊게 폐인 감겨진 눈 주름진 피부 그리고 듬성듬성 쏟아있는 검은 수염. 그의 나이 이제 54세 거의 14년 동안 반려자 없는 생활을 해온 그이기 때문일까? 잠든 그의 모습은 몹시 외롭고 지쳐보였다.
그리고 내가 그를 심하게 미워했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하게 나에게 보려주려고 만든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 가신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와 있는 보고서는 두 번이나 나를 완전히 파괴할 뻔 했었고 그가 늘 보여주는 냉대는 나를 몹시 외롭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미움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도 그 일에 대한 것을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고 이 사태를 만든 것에 강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다시는 나를 보려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래서 난 그가 모르게 그를 용서를 했다.
“몇 시지?”
그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난 내 생각이 들키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는 쓸 때 없는 생각을 하며 누나가 준 손목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3시요.”
“가희는?”
나는 침대 쪽을 바라본 후.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요.”
“그래.”
그는 역시 고개가 아픈지 목을 돌려보다가 다시 눈을 감은 후 입을 열었다.
“진아.”
“예”
“내가 밉지.”
의외의 질문에 잠깐 내 마음이 동요되어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밉겠지. 너와 네 엄마를 못 만나게 한 것도 나고 복수심에 그 보고서를 만들어 너에게 보여줘 버린 것도 나니까. 밉지 않다면 이상한 거겠지.”
그는 조용하게 한숨을 심호흡을 했고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있는 그를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날 약을 먹은 너를 업고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널 미워했을까 에 대해서.”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고 다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질투였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 엄마는 그 곳에서 돌아온 후로 모든 남자를 두려워했다. 나 조차도.”
그의 마지막 목소리 속엔 깊은 아픔이 쓰며들어 있었다. 납치 중에 욕을 당한 어머니는 아버지조차도 그 파렴치한과 같은 그저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로 보였었나 보다. 내 짧은 인생경험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다가올지 상상이 가서 내 앞에 앉은 아버지가 몹시 가엽게 보였다.
“그래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엄마는 너만 용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세상 모든 남자들을 다 원망했지만 너만은 용서를 받은 거라고. 목숨같이 사랑한 나는 용서받지 못했는데 왜 너만 용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난 그게 몹시 싫었던 것 같다. 네가 단순히 그놈의 아들이란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내 상심 때문에 엄마에게 너를 되려다 주지 않고 너에게 보고서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회는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다.”
인간으로써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나에게 말해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침묵을 지켰고 난 처음 본 아버지의 일면에 살짝 미소를 지은 후. 진심을 담아 말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눈을 뜨며 대답했다.
“바보구나 너.”
다음 날. 아침 보조침대에서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낯익은 목소리들의 대화가 들렷다. 먼저 아버지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리고.
“독일에서 죽으려고 한거야.”
그리고 누나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녜요. 그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누나의 말은 말도 안 돼는 거다. 맞은 조혈모 공여자가 국제네트워크에 등록이 안 되어 있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영리한 누나가 모를 리 없었다. 누나의 말에 화가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러 버렸다.
“거짓말 마. 병을 숨기고. 또 나를 때어놓고 가버리려고 그런 거잖아. 그것도 영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그래. 이젠 나에게 기대면 안 돼. 아버지도 있잖아.”
또 한심하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동그란 눈으로 한참 동안 보고 있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해왔다.
“미안해. 진아. 그리고 미안해요 아버지.”·
나는 살며시 다가가 고개 숙인 그녀의 손을 잡았고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학교문제는 내가 처리해 둘 거니까. 병이 나을 때 까지는 한국에 있어라.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살게 할 거니까.”
누나의 힘없는 대답.
“예.”
1시간 후.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혼자 누나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 누나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불안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누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내 눈치를 살피다가 받지 않고 끊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왜? 그래.”
의문에 찬 내가 물었지만 누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식으로 누나가 내게 필요한 것을 사오라고 시켰고 나는 의문을 느끼면서 구입할 목록을 체크해서 적고 안경과 모자로 얼굴을 대충 가리고 병원매장으로 향했다.
병원내의 매장은 브랜드 편의점이었는데 동내 슈퍼정도의 크기로 만화와 책도 있었다. 난 체크한 물품과 내가 먹을 만한 샌드위치와 우유를 바구니에 담아 들고 누나가 읽을 만한 책이 없나싶어 찾아보다가 3명의 여고생과 눈을 마주쳐 버렸고 난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계산을 하고 나왔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를 알아본 것인지 여고생들이 따라와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가현 오빠.”
난 못 들은 척 하고 가려고 했지만 그 아이들 중 한명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저희 오빠 팬클럽 회원인데요. 회원들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돌아서기는 했지만 난 두려웠기에 한마디 밖에 할 수없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부모님을 고를 수 없잖아요. 오빠에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요. 팬클럽 회원들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미안해요. 그만 가볼게요.”
나는 그녀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서서 그녀들이 ?아 올까봐 뛰다시피 달려가서 아슬아슬 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일단 안심한 난 그녀들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현제 내가 음악을 할 수 없는 건 내 잘못의 유무가 아니고 내 친부에 대한 나의 혐오와 분노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악기를 들고 예전처럼 즐겁게 노래할 수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짖고 현실로 돌아온 난 내 여자둘이 웅성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알아보고 말들이 오고가는 것 같았다.
“가현 맞지”
“진짜.”
“자살 시도 했다더니 멀쩡하잖아.”
“기획사 조작 아냐.”
“에이 그런 일 있으면 나라도 그러겠다. 조작은.”
“모르지.”
“진짜 예쁘게 생기긴 했네. 피부도 좋고. 진짜 여자아이 같잖아.”
“진짜 국민남동생 소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한주그룹에 남자라곤 사위뿐이라며. 물려받는 거. 아냐. 정말 축복 받은 아이네.”
그 여자들의 대화는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지 아주 작았지만 내가 귀가 예민한 음악가라 그런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난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그런 집안 돈이라면 10원짜리 하나도 안 받을 거예요.”
그리고 때 마침 열리는 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빠른 걸음으로 누나의 1인 병실을 노크 없이 확 열어버렸다.
누나는 영어는 아닌 것 같은 어떤 나라말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깜짝
놀란 표정을 잠시 보이다가 뭐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애써 냉정한 척 하는 것을 표를 내며 말해왔다.
“독일 친구야.”
나는 누나가 왜 그러나 싶었지만 남자친구인가 싶어서 물어보지 않았다. 진짜 남자친구라면 왼지 질투가 날 것 같아서.
“그래.”
“사왔어.”
“응 여기.”
난 물건들이 들어있는 비밀봉지를 침대 위에 올려주고 의자에 앉았다. 누나는 비밀봉지를 뒤져서 당장 필요한 것만 빼고는 나에게 서랍에 넣어달라고 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난 애써 미소 지어 주었고 누나도 그 미소에 답을 주었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답했다.
“예.”
“예.”
우리의 대답 소리에 반응해서 문이 열렸고 점심이 든 카트를 끌고 온 간호보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식사 왔습니다.”
50이 넘어 보이는 아줌마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지 우리들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만 보이며 각각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부착되어 있는 식탁을 빼고 돌려서 식사모드로 만들어 준 후에 그 위에 조촐하기 짝이 없는 음식이 든 식판을 올렸다. 그리고 작은 요구르트를 1개 올려주고 덤으로 나에게 1개를 더 주고는 말해왔다.
“이 간호사 말대로 정말 예쁜 남매네요. 혹시 TV에 나와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지인을 통해 병원 직원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나보다. 간호사 그냥 예쁜 남매라고만 이야기 한 걸로 봐서는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럼 병원식이라 싱겁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아줌마가 나가고 누나가 물어왔다.
“같이 먹기엔 너무 적네. 진이는 어쩔래. 밖에 나가서 먹고 올래.”
나는 누나가 확인했던 비밀봉지 말고 다른 비늘을 열어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사왔어.”
누나는 해맑게 미소 지어 주었다.
“잘 했어. 근데 그걸로 되겠어.”
포장지를 뜯은 후. 한입 물고 말했다.
“응. 충분해.”
우리는 별 말 없이 음식을 먹었다. 둘 다 빨리 먹는 편은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식사 중에 독일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어느새 음식이 다 없어졌을 쯤 해서 누나가 무거운 질문을 해왔다.
“하늘이는?”
순간 독일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로 즐거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으 응. 갔겠지.”
내 말더듬에 누나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전화는?”
“안 해봤어.”
“왜?”
“하~”
내가 생각한 대답은 거절당할 것 같아서였지만 그게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누나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그냥 여행이잖아. 돌아오면 이야기 해봐. 나도 거들어 줄게.”
“응.”
공기가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일어나서 누나의 식판을 들어올렸다.
“이거 가져다 놓고 올게.”
“응”
누나의 대답을 듣고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고 나처럼 식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따라 가서 바퀴 달린 커다란 식판수납장에 가지고 온 것을 밀어 넣고는 돌아오다 보인 TV가 있는 휴게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하늘이 사진이 또렷하게 보이는 단축키에 바로 위에 손가락을 위치 시켰다. 하지만 그날 나를 거부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망설인 난 그만 휴대폰 화면이 검은색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길게 나오는 한숨. 그리고 아픈 가슴. 세상이 또 다시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의 결별 통보에 누나의 병이 한꺼번에 나에게 들이닥쳐서는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정말 저주 받은 것처럼. 내 인생은 너무 굴곡이 많았다. 겨우 19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힘들다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이 힘든 일이 다가올까. 몹시 두렵고 서러웠다.
“흐흐흑~”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하하하”
내 주변 사람들은 TV에서 하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무 서러운 난 그 상황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들리는 그 웃음소리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어느새 도무지 참을 수 없어진 난 벌떡 일어나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비상계단 쪽으로 이동하려다가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동을 중단해 버렸다.
“지애야.”
난 지애의 이름만 불렀지만 그 곳에는 눈에 안 뛰려고 모자에 스카프, 안경으로 자신을 숨긴 탑걸즈 전 멤버(재랑 까지)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를 동생으로 생각해서 자주 괴롭힌 다고 말하고 다니는 하이윈디걸즈의 아연과 엘레네가 그리고 이들을 대동하고 온 것 같은 나의 주 매니저인 이미영과 태혁형이 있었다.
이런 구성이다. 보니 잘못 하면 이 병원에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진료실이 아니라 입원실이 있는 층이라서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그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빨리 이동할 필요가 있었고 역시 눈치가 빠른 매니저가 제일먼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왔다.
“자 인사는 나중에 하고 눈에 뛰기 전에 병실로 들어갑시다. 가현군 1인 실이죠.”
“예.”
나는 어리둥절하며 대답했고 이 사람들이 다들 내 눈가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를 따라 오라며 손짓을 했다.
“여기로 다들 오세요.”
이들 중 몇 명은 누나도 저번에 본적이 있었다. 못 본 사람은 매니저와 지애 그리고 아연과 재랑 정도였는데 그 전에 본 사람들처럼 오늘 처음 본 그녀들도 누나의 미모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정말 예쁘셔서 놀랐어요.” 누나를 노골적으로 보고 있는 아연.
“어디 모델이 활동이라도 하셨어요.” 안경을 들어 초점을 확인해 보며 감정을 하는(연예계 관계자로서의 버릇) 매니저.
“역시 가현이 누님이시네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는 재랑.
“안녕하세요.” 내 친부의 일 때문일까. 누나 대하는 것이 영 어색해 보이는 지애.
이들의 인사에 누나는 최고의 상양함이 묻어나는 미소로 인사를 해줬고 우리는 전원 소파에 둘러앉았다. 그들의 목적은 캐리의 부축임 때문에 조혈모세포 공여자로 등록하려고 온 것이었고 이미 그 일을 끝마친 상태로서 가기 전에 인사를 하고 가려고 왔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무척 고마워서 살짝 울어버렸고 그런 나를 태혁형이 토닥거리며 누나의 병세를 작게 물어 왔고 난 누나의 눈치를 보며 우울하게 대답해 주었다.
“누나 것이 특별해서. 1000만분의 1정도라고 해요.”
“이식이외의 방법은 없고?”
“예. 이식하지 않으면 반년도 힘들다고.”
태혁형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간단하게 말해왔다.
“너 방송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해. 나도 도와 줄 거니까. 용기내서 해봐.”
난 순간 내 처지를 생각 했지만 바로 차 버리고 좋은 생각이고 지금 으로선 최선임을 인정하며 대답했다.
“해볼게요.”
내 대답에 태혁형이 내 머리를 안고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동료들이 다들 한마디 씩 거들었다.
“나도 도와줄게.”
“나도.”
“나도.”
그들의 들뜬 목소리에 나를 누르고 있던 한 가지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누나의 병을 먼저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랑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누나를 그의 지인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이동시키지 위해 환자수송차를 타고 온. 그의 표정은 평소 강하고 냉정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는 도무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나에게 인상을 좀 쓴 후. 누나를 차에 태우고 나와 승차감 제로에 가까운 침대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 울고. 병원 도착하면 바로 골수 검사 하자.”
“예”
나는 울먹거리며 대답했고 그는 눈물을 참기 힘들어하는 내가 마음에 안든지 혀를 찼다.
아버지의 지인이 있다는 병원은 암 연구와 치료를 하는 대단위 시설을 가진 초대형 종합병원이었다. 도심에서 약간 외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하철도 바로 연결되어 있고 인근 도시와 가까운 덕분인지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누나는 시기를 다투는 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가 문 바로 옆에 있는 침대이동용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그 많은 인파들 틈으로 들어갔고 나는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아버지와 이 병원 간호사와 아버지의 지인인 의사 옆에 최대한 붙어서 사각에 들어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단체로 건강검진을 왔는지 홍수 같은 인파의 물결 때문에 빨리 지나갈 수가 없었고 그 덕분에 몇 명인가 나를 알 보는 사람을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는 사람, 동행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나를 지적하며 이야기 하는 사람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들 중 누구도 내 이름을 크게 부르거나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단체로 다니는 여학생 팬들의 경우 그와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당장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단지 내 얼굴이 팔려 버렸으니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누나는 약 때문에 전혀 깰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아서 여전히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고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으로 지인의 말만 듣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말게. 예전 보다는 골수이식이 쉬워. 후유증도 덜 하고.”
아버지는 층을 표시하는 LED전광판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썩어가며 말했다.
“문제는 조혈모세포 제공자를 찾는 거군.”
“그렇지.”
“검사하는 곳은 어디에 있나.”
“3층에 있어. 입원실은 11층이네. 내리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미리 대기 하고 있던 간호사가 누나의 이동식 침대를 끌고 1인용 병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누나가 있을 병실은 핑크빛이 도는 벽지에 대형액정TV, 커다란 냉장고, 옷걸이, 옷장, 서랍장, 뭔가 좋아 보이는 환자용 침대, 접이씩 그리고 5인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 미리 도착한 이모와 그녀의 두 딸이 앉아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자 일어서서 다가왔다.
“형부.” 우울한 목소리의 이모.
“안녕하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마이페이스로 보이고 싶은 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밝은 목소리의 캐리.
“반. 안녕하세요.” 아버지를 어려워해서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려다. 어색하게 말을 바꾸는 소라.
이모식구의 인사를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받아줬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불러서 힘 좋아 보이는 간호보조사와 함께 의식 없는 누나를 병실침대로 옮기고 내가 간호사에게 이불을 받아서 누나에게 덮어주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처제도 검사 받아줘. 캐리도”
아버지의 말에 기다렸다는 식으로 이모가 답했다.
“벌써 했어요. 캐리, 소라도 했고요.”
“고마워.”
“고맙긴요. 가희는 형부 딸이기도 하지만 제 조카딸이잖아요.”
아버지는 이모의 말에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렇지.”
“제공자 찾을 거예요.”
“그래야지. 동서는.”
“지방에 세미나를 가서요. 저녁 늦게나. 올 것 같아요.”
둘의 말을 들으며 난 의자를 가져와 침대 곁에 앉아서 여전히 잠들어 있는 누나의 예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성모마리아님 골수 맞는 사람 찾게 해주세요.’ 라고 속으로 빌었다.
“병원은 잘 돼.”
“성형외과는 제법 잘 되는데 정신과는 뭐 그렇죠. 그래서 요즘은 다시 종합병원에 들어갈까 하는 말이 오가고 있어요.”
“그래.”
아버지는 그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해왔다.
“가자.”
“예.”
“처제 부탁해.”
“알겠어요.”
검사는 피를 조금 뽑는 것만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상병리과를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은 후 아버지는 나에게 담당의사 상담에 동행할 건지 물었고 나는 당연히 그를 따라는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같은 층에 있는 혈액암부 김익곤 부장실로 이동했다.
김익곤 선생은 부장이란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젊은 사람이었다. 대충 잡아도 30대 중반으로 키가 크고 깔끔한 스타일에 납작한 안경이 어울리는 얼굴이 긴 남자였다. 그는 아버지와 내가 들어오자 직접 편안해 보이는 의자 두개 끌어와서 자기 테이블 옆에 놓아주고 자기자리에 앉으며 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따님의 유전형이 특별한 케이스라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더 의문을 느끼게 만드는 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 잠깐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버릇인지 필기구 통에서 볼펜을 하나 잡더니 빙그르르 돌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이런 유형이 발견된 건. 2년 이 처음이었는데. 극히 드뭅니다. 이런 유전형은 일종의 돌연변위라고 불러도 될 만큼 달라서 형제도 소수점 이하 확률로 나옵니다. 2년 전 그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전 세계 제공자를 찾다가 올해 초에 사망 했습니다.”
사망 이란 단어가 주는 충격은 나에게도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컸다. 난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동자를 떨며 숨을 죽였고 아버지는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웠다.
“그럼 이식 할 수없다는 말입니까.”
의사는 안경을 고쳐 잡고는 의자를 약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사망한 네덜란드 사람은 제공자를 찾았습니다. 다만 환자가 너무 쇠약해저서 이식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죠.”
누나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아버지보다 앞서서 물었다.
“몇 명에 한명이죠.”
의사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기도는 하는 자세를 취하며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일반적인 예는 20만 1 이지만 이 경우 2000만의 1 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등록되어 있는 공여자가 22만명이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등록된 공여자는 1800만명이란 것을 이전 병원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캄캄해지는 것 같았고 그런 걸 모르는 아버지는 특유의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국제 네트워크 없습니까. 그걸로 찾으면 안 됩니까.”
“있습니다. 20,237,561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과 일치하는 것을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의사는 다시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다. 아버지는 흥분해서 고개를 좌우로 휘두르다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는 다시 물었다.
“줄기세포 연구하고 있잖습니까. 그걸로 안 되나요.”
“연구 중에 있습니다. 아직은 문제가 많은 분야라서 적어도 5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가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고 나는 이 쓸데없는 행동을 많이 하는 이 남자가 남의 불행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나 벌떡 일어나 버렸다. 곧 지나친 생각이란 것이 떠올라서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은 후. 생각 난 것을 물었다.
“단일 민족일 때는 2만의 1 이라면서요. 줄어들지 않나요.”
“이런 경우 그런 식으로 줄지는 않아요. 통계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1000만분의 1은 나와야 할 겁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를 살며시 감싸 쥐며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만 의사 양반의 책상을 손으로 치면서 말했다.
“그럼 이식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길게 6개월 정돕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보며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6개월이라니 30살도 안된. 그렇게 아름다운 누나가. 다정스런 누나가. 자신을 희생해서 까지 나를 살게 하려했던 누나가’ 왜? 6개월이란 너무나도 짧은 선고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충동적으로 일어나 창을 내려다보았고 찬란한 너무도 아름다운 도심의 야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야경에 저주했다. ‘누나는 죽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왜 돌아가야 하는 거지. 왜 야밤의 도심을 돌아다니는 저들은 가볍게 놀고자 하는 거지. 왜 저들의 인생의 무게는 가벼운 거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동안 지겹도록 흘려버린 눈물은 마르지도 않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누나가 누워 있는 병실이었고 시간은 아직 자정을 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주일 쯤 이렇게 누나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현실이고 뭐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상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저 누나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으면 하고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제발. 누나를 구해주세요.”
역시나 그들은 답을 주지시 않았고 난.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없는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를 한번 쳐다보고는 어느새 자리를 비우고 떠나버린 이모식구들이 있던 소파를 바라본 후 모기소리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독일에 가 버릴 생각이었을 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아이니까.”
아버지의 감정이 썩히지 않은 목소리가 알려준 이야기에 또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이 옥죄여오는 고통에 언제쯤 말라버릴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시아를 가렸고 아버지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잔소리를 해왔다.
“그만 좀 울어. 사내 녀석이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냐. 네 누나 걱정시키지 마라.”
난 그의 말에 눈물을 닦으며 이불 옆으로 살짝 나와 있는 누나의 가녀린 손을 살며시 감아쥐었다.
그 때. 문이 노크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가 대답을 해줬다.
“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간호사였다. 그녀는 자고 있는 누나를 의식해서 인지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고 아버지는 조용히 일어나 간호사를 따라나섰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같이 가려 했지만 누나가 혹시 깨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와선 여전히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할머니가 오셨다가 가셨다.”
순간 독일계 미국인 할머니인 에반젤린 할머니를 떠올린 난 바보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는 어제 미국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아니었다.
“어떻게 우리가 병원에 있는지 알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양반이 그러더라. 널 되려가겠다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한 난 겨우 그날 밤 내 병실에 와서 울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파렴치하고 저주 받을 고깃덩어리를 낳은 그 마녀가 무엇 때문에 나를 되려간다는 건지. 아니 그전에 나를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치밀어서 병실이란 것도 잊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뭐라고요! 뭐 때문에요. 이제 와서 왜? 아니. 그런 생각도 하기 싫어요. 절대 싫어요. 절대로.”
난 말을 하다가 누나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는 점점 목소리를 줄였고 아버지는 내가 흥분한 것에 잔소리를 하지 않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내일 다시 온다고 했다. 알아서 해라.”
나는 고개를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 안 봐요. 그런 노인 따위.”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난. 어금니를 꽉 깨물며 화를 삭였다.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누나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언제 잠이 들었을까?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던 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희미하게 보이는 누나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혹시나 해서 손목을 잠아서 심장박동 상태를 체크하고 이마에 살며시 손을 가져가 보았다. 결과는 별 이상 없음. 난 내 행동이 괜한 짓이란 생각을 뒤 늦게 하며 다음으로 아버지를 찾아보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 있었는데 고개가 너무 불안하게 꺾여있었다.
“아버지.”
가까이 다가가서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곤했는지 일어나지 않았고 난 용기가 나지 않아 감히 그의 머리를 똑바로 하지 못하고 맞은 편 소파에 앉은 후.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깊게 폐인 감겨진 눈 주름진 피부 그리고 듬성듬성 쏟아있는 검은 수염. 그의 나이 이제 54세 거의 14년 동안 반려자 없는 생활을 해온 그이기 때문일까? 잠든 그의 모습은 몹시 외롭고 지쳐보였다.
그리고 내가 그를 심하게 미워했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하게 나에게 보려주려고 만든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 가신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와 있는 보고서는 두 번이나 나를 완전히 파괴할 뻔 했었고 그가 늘 보여주는 냉대는 나를 몹시 외롭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미움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도 그 일에 대한 것을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고 이 사태를 만든 것에 강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다시는 나를 보려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래서 난 그가 모르게 그를 용서를 했다.
“몇 시지?”
그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난 내 생각이 들키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는 쓸 때 없는 생각을 하며 누나가 준 손목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3시요.”
“가희는?”
나는 침대 쪽을 바라본 후.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요.”
“그래.”
그는 역시 고개가 아픈지 목을 돌려보다가 다시 눈을 감은 후 입을 열었다.
“진아.”
“예”
“내가 밉지.”
의외의 질문에 잠깐 내 마음이 동요되어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밉겠지. 너와 네 엄마를 못 만나게 한 것도 나고 복수심에 그 보고서를 만들어 너에게 보여줘 버린 것도 나니까. 밉지 않다면 이상한 거겠지.”
그는 조용하게 한숨을 심호흡을 했고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있는 그를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날 약을 먹은 너를 업고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널 미워했을까 에 대해서.”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고 다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질투였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 엄마는 그 곳에서 돌아온 후로 모든 남자를 두려워했다. 나 조차도.”
그의 마지막 목소리 속엔 깊은 아픔이 쓰며들어 있었다. 납치 중에 욕을 당한 어머니는 아버지조차도 그 파렴치한과 같은 그저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로 보였었나 보다. 내 짧은 인생경험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다가올지 상상이 가서 내 앞에 앉은 아버지가 몹시 가엽게 보였다.
“그래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엄마는 너만 용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세상 모든 남자들을 다 원망했지만 너만은 용서를 받은 거라고. 목숨같이 사랑한 나는 용서받지 못했는데 왜 너만 용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난 그게 몹시 싫었던 것 같다. 네가 단순히 그놈의 아들이란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내 상심 때문에 엄마에게 너를 되려다 주지 않고 너에게 보고서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회는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다.”
인간으로써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나에게 말해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침묵을 지켰고 난 처음 본 아버지의 일면에 살짝 미소를 지은 후. 진심을 담아 말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눈을 뜨며 대답했다.
“바보구나 너.”
다음 날. 아침 보조침대에서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낯익은 목소리들의 대화가 들렷다. 먼저 아버지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리고.
“독일에서 죽으려고 한거야.”
그리고 누나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녜요. 그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누나의 말은 말도 안 돼는 거다. 맞은 조혈모 공여자가 국제네트워크에 등록이 안 되어 있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영리한 누나가 모를 리 없었다. 누나의 말에 화가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러 버렸다.
“거짓말 마. 병을 숨기고. 또 나를 때어놓고 가버리려고 그런 거잖아. 그것도 영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그래. 이젠 나에게 기대면 안 돼. 아버지도 있잖아.”
또 한심하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동그란 눈으로 한참 동안 보고 있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해왔다.
“미안해. 진아. 그리고 미안해요 아버지.”·
나는 살며시 다가가 고개 숙인 그녀의 손을 잡았고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학교문제는 내가 처리해 둘 거니까. 병이 나을 때 까지는 한국에 있어라.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살게 할 거니까.”
누나의 힘없는 대답.
“예.”
1시간 후.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혼자 누나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 누나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불안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누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내 눈치를 살피다가 받지 않고 끊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왜? 그래.”
의문에 찬 내가 물었지만 누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식으로 누나가 내게 필요한 것을 사오라고 시켰고 나는 의문을 느끼면서 구입할 목록을 체크해서 적고 안경과 모자로 얼굴을 대충 가리고 병원매장으로 향했다.
병원내의 매장은 브랜드 편의점이었는데 동내 슈퍼정도의 크기로 만화와 책도 있었다. 난 체크한 물품과 내가 먹을 만한 샌드위치와 우유를 바구니에 담아 들고 누나가 읽을 만한 책이 없나싶어 찾아보다가 3명의 여고생과 눈을 마주쳐 버렸고 난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계산을 하고 나왔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를 알아본 것인지 여고생들이 따라와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가현 오빠.”
난 못 들은 척 하고 가려고 했지만 그 아이들 중 한명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저희 오빠 팬클럽 회원인데요. 회원들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돌아서기는 했지만 난 두려웠기에 한마디 밖에 할 수없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부모님을 고를 수 없잖아요. 오빠에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요. 팬클럽 회원들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미안해요. 그만 가볼게요.”
나는 그녀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서서 그녀들이 ?아 올까봐 뛰다시피 달려가서 아슬아슬 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일단 안심한 난 그녀들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현제 내가 음악을 할 수 없는 건 내 잘못의 유무가 아니고 내 친부에 대한 나의 혐오와 분노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악기를 들고 예전처럼 즐겁게 노래할 수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짖고 현실로 돌아온 난 내 여자둘이 웅성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알아보고 말들이 오고가는 것 같았다.
“가현 맞지”
“진짜.”
“자살 시도 했다더니 멀쩡하잖아.”
“기획사 조작 아냐.”
“에이 그런 일 있으면 나라도 그러겠다. 조작은.”
“모르지.”
“진짜 예쁘게 생기긴 했네. 피부도 좋고. 진짜 여자아이 같잖아.”
“진짜 국민남동생 소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한주그룹에 남자라곤 사위뿐이라며. 물려받는 거. 아냐. 정말 축복 받은 아이네.”
그 여자들의 대화는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지 아주 작았지만 내가 귀가 예민한 음악가라 그런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난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그런 집안 돈이라면 10원짜리 하나도 안 받을 거예요.”
그리고 때 마침 열리는 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빠른 걸음으로 누나의 1인 병실을 노크 없이 확 열어버렸다.
누나는 영어는 아닌 것 같은 어떤 나라말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깜짝
놀란 표정을 잠시 보이다가 뭐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애써 냉정한 척 하는 것을 표를 내며 말해왔다.
“독일 친구야.”
나는 누나가 왜 그러나 싶었지만 남자친구인가 싶어서 물어보지 않았다. 진짜 남자친구라면 왼지 질투가 날 것 같아서.
“그래.”
“사왔어.”
“응 여기.”
난 물건들이 들어있는 비밀봉지를 침대 위에 올려주고 의자에 앉았다. 누나는 비밀봉지를 뒤져서 당장 필요한 것만 빼고는 나에게 서랍에 넣어달라고 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난 애써 미소 지어 주었고 누나도 그 미소에 답을 주었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답했다.
“예.”
“예.”
우리의 대답 소리에 반응해서 문이 열렸고 점심이 든 카트를 끌고 온 간호보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식사 왔습니다.”
50이 넘어 보이는 아줌마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지 우리들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만 보이며 각각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부착되어 있는 식탁을 빼고 돌려서 식사모드로 만들어 준 후에 그 위에 조촐하기 짝이 없는 음식이 든 식판을 올렸다. 그리고 작은 요구르트를 1개 올려주고 덤으로 나에게 1개를 더 주고는 말해왔다.
“이 간호사 말대로 정말 예쁜 남매네요. 혹시 TV에 나와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지인을 통해 병원 직원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나보다. 간호사 그냥 예쁜 남매라고만 이야기 한 걸로 봐서는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럼 병원식이라 싱겁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아줌마가 나가고 누나가 물어왔다.
“같이 먹기엔 너무 적네. 진이는 어쩔래. 밖에 나가서 먹고 올래.”
나는 누나가 확인했던 비밀봉지 말고 다른 비늘을 열어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사왔어.”
누나는 해맑게 미소 지어 주었다.
“잘 했어. 근데 그걸로 되겠어.”
포장지를 뜯은 후. 한입 물고 말했다.
“응. 충분해.”
우리는 별 말 없이 음식을 먹었다. 둘 다 빨리 먹는 편은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식사 중에 독일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어느새 음식이 다 없어졌을 쯤 해서 누나가 무거운 질문을 해왔다.
“하늘이는?”
순간 독일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로 즐거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으 응. 갔겠지.”
내 말더듬에 누나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전화는?”
“안 해봤어.”
“왜?”
“하~”
내가 생각한 대답은 거절당할 것 같아서였지만 그게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누나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그냥 여행이잖아. 돌아오면 이야기 해봐. 나도 거들어 줄게.”
“응.”
공기가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일어나서 누나의 식판을 들어올렸다.
“이거 가져다 놓고 올게.”
“응”
누나의 대답을 듣고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고 나처럼 식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따라 가서 바퀴 달린 커다란 식판수납장에 가지고 온 것을 밀어 넣고는 돌아오다 보인 TV가 있는 휴게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하늘이 사진이 또렷하게 보이는 단축키에 바로 위에 손가락을 위치 시켰다. 하지만 그날 나를 거부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망설인 난 그만 휴대폰 화면이 검은색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길게 나오는 한숨. 그리고 아픈 가슴. 세상이 또 다시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의 결별 통보에 누나의 병이 한꺼번에 나에게 들이닥쳐서는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정말 저주 받은 것처럼. 내 인생은 너무 굴곡이 많았다. 겨우 19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힘들다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이 힘든 일이 다가올까. 몹시 두렵고 서러웠다.
“흐흐흑~”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하하하”
내 주변 사람들은 TV에서 하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무 서러운 난 그 상황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들리는 그 웃음소리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어느새 도무지 참을 수 없어진 난 벌떡 일어나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비상계단 쪽으로 이동하려다가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동을 중단해 버렸다.
“지애야.”
난 지애의 이름만 불렀지만 그 곳에는 눈에 안 뛰려고 모자에 스카프, 안경으로 자신을 숨긴 탑걸즈 전 멤버(재랑 까지)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를 동생으로 생각해서 자주 괴롭힌 다고 말하고 다니는 하이윈디걸즈의 아연과 엘레네가 그리고 이들을 대동하고 온 것 같은 나의 주 매니저인 이미영과 태혁형이 있었다.
이런 구성이다. 보니 잘못 하면 이 병원에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진료실이 아니라 입원실이 있는 층이라서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그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빨리 이동할 필요가 있었고 역시 눈치가 빠른 매니저가 제일먼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왔다.
“자 인사는 나중에 하고 눈에 뛰기 전에 병실로 들어갑시다. 가현군 1인 실이죠.”
“예.”
나는 어리둥절하며 대답했고 이 사람들이 다들 내 눈가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를 따라 오라며 손짓을 했다.
“여기로 다들 오세요.”
이들 중 몇 명은 누나도 저번에 본적이 있었다. 못 본 사람은 매니저와 지애 그리고 아연과 재랑 정도였는데 그 전에 본 사람들처럼 오늘 처음 본 그녀들도 누나의 미모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정말 예쁘셔서 놀랐어요.” 누나를 노골적으로 보고 있는 아연.
“어디 모델이 활동이라도 하셨어요.” 안경을 들어 초점을 확인해 보며 감정을 하는(연예계 관계자로서의 버릇) 매니저.
“역시 가현이 누님이시네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는 재랑.
“안녕하세요.” 내 친부의 일 때문일까. 누나 대하는 것이 영 어색해 보이는 지애.
이들의 인사에 누나는 최고의 상양함이 묻어나는 미소로 인사를 해줬고 우리는 전원 소파에 둘러앉았다. 그들의 목적은 캐리의 부축임 때문에 조혈모세포 공여자로 등록하려고 온 것이었고 이미 그 일을 끝마친 상태로서 가기 전에 인사를 하고 가려고 왔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무척 고마워서 살짝 울어버렸고 그런 나를 태혁형이 토닥거리며 누나의 병세를 작게 물어 왔고 난 누나의 눈치를 보며 우울하게 대답해 주었다.
“누나 것이 특별해서. 1000만분의 1정도라고 해요.”
“이식이외의 방법은 없고?”
“예. 이식하지 않으면 반년도 힘들다고.”
태혁형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간단하게 말해왔다.
“너 방송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해. 나도 도와 줄 거니까. 용기내서 해봐.”
난 순간 내 처지를 생각 했지만 바로 차 버리고 좋은 생각이고 지금 으로선 최선임을 인정하며 대답했다.
“해볼게요.”
내 대답에 태혁형이 내 머리를 안고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동료들이 다들 한마디 씩 거들었다.
“나도 도와줄게.”
“나도.”
“나도.”
그들의 들뜬 목소리에 나를 누르고 있던 한 가지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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