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시절
3부
“ 오빠… 오빠 좀 일어나봐… ”
“ 으…… 음, 누, 누구…?
곤히 자던 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잠이 덜 깬 눈으로 고개만 살짝 들었다.
거기에는 언제 왔는지 나의 사촌여동생인 희숙이가 서 있었다. 희숙이의 손에는 먹을 것을 싼 듯한 보자기를 들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심부름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 너… 희… 희숙이 아니니? ”
“ 오빠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그지? ”
“ 으응, 그래 그렇지…. ”
“ 오빠… 이거… ”
“ 어, 미안해… ”
난 그런 희숙이를 올려다보며 몸을 일으키고는 우선 희숙이가 들고 온 것을 받아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자 희숙이는 무거웠던지 손목을 주무르며 나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러고 보니 희숙이도 그 동안 정말 몰라보게 커 버렸다. 그리고 동생 경희 못지않게 어린 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모습이었다. 이젠 키도 제법 커 보이고 앞가슴도 봉긋하고 솟아 오른 게 성숙한 처녀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난 잠결에 그런 희숙이의 모습에 반갑기도 하고 새삼 놀랍기도 했다.
희숙이가 경희보다는 세 살이나 위였으니 꽃에 비유를 하면 경희가 갓 피어난 그런 예쁜 꽃이라면 희숙이는 이제 만개한 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잠시 그런 희숙이를 쳐다보고만 있는데 역시나 나의 따가운 시선은 어딘지 부담스럽고 부끄러운지 이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동생 경희를 찾는다. 그 때 마침 경희도 어느 정도 방정리가 됐던지 희숙이의 목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 아까 이모가 늦을 거라더니… 빨리 왔네! 잘 갔다 왔어? ”
“ 응, 아까 저녁때 왔잖아… ”
“ 응… ”
그러면서 다시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안 그래도 나, 오빠소식 무척 궁금했었는데… 엄마가 며칠 전에 그러더라고 이젠 오빠제대가 얼마 안 남았을 거라고… 근데 오늘 읍내 나갔다 오니… 엄마가 오빠 왔다고… ”
“ 응, 그렇구나…… ”
“ 야 너희들 진짜… 정말 몰라보게 많이 컸구나… 몰라보겠다. ”
나란히 앉아 친한 친구처럼 다정하게 얘기중인 두 여자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둘은 이종사촌지간이기 전에 둘도 없는 친구이다. 경희가 18살, 희숙이는 21살이다. 세살차이가 난다. 경희가 처음엔 언니, 혹은 희숙언니, 희숙언니 하며 따랐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둘 사이의 호칭은 사라지고 지금처럼 친구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 때부터 희숙이도 언니 대접을 꼭 바라지 않았었다.
“ 헤헤헤… 오빠는 그럼 우리가 여태까지 어린애로만 남아 있을 줄 알았어? ”
“ 그래도 솔직히 너희들 보니 남자로서 많이 당황스러운데… 하하하…”
“ 오빠도 정말 몰라보게 많이 변했어, 안 그래? 경희야? 진짜 남자같고 의젓하고… 호호호… ”
“ 응… 너어, 그래서 우리 오빠 보러 왔구나? ”
“ 얘는……”
경희가 자신의 친오빠에게 쏠리는 희숙이의 시선을 의식한 듯 괜히 질투 섞인 말을 하였다. 희숙이도 어릴 때부터 사촌오빠인 나를 잘 따랐고 좋아 했었다. 그런 걸 경희도 잘 알기에 일부러 핀잔으로 하는 말이었다.
“ 참, 이거…… 엄마가 오빠 먹으라고 했나 봐… ”
희숙이는 경희의 말에 나를 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가져온 보자기를 열었다. 그 속엔 먹을 게 든 냄비와 다른 것들이 싸여 있었다. 희숙이가 냄비부터 건네주자 경희가 받아서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 속엔 이모가 언제 장만했는지 먹음직스런 닭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 오빠, 우리 엄마한테 어떻게 한 거야. 우리 경수오빤 집에 오면 이런 거 구경도 못하는데… ”
“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러실 거야… ”
“ 엄마가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또 저녁 먹으러 올라오지 않을 거 같다고… 이거라도 요기하게 갖다 주래… 우리 엄마는 친자식인 우리들보다 오빠를 더 위한다니까… ”
“ ……… ”
이모는 언니인 우리 엄마를 무척 좋아했다. 엄마를 많이 닮은 우리만 보면 또 언니생각이 나고 그래서 우리에게 유난히 잘해 주시는 것이었다.
“ 아무튼 잘됐다. 희숙아, 우리 같이 먹자… ”
“ 네 오빠도… 많이 드세요. ”
우리 세 사람은 희숙이가 가져온 삶은 닭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희숙이가 다리를 뜯어서 나에게 주었다. 들에 풀어놓고 키운 닭이라서 살이 쫀득쫀득 하고 기름기가 ‘짜르르’ 입에 솔솔 녹는 것이었다. 난 경희가 뜯어주는 다리하나를 받아 한입 베어 먹었다. 그러다가 나는 절로 술 한 잔이 생각났다.
“ 맛있다. 이럴 땐 소주 한 잔 정도는 해야 되는데… ”
여긴 가게도 없으니 갑자기 술을 구할 수도 없다. 내가 그럴 수 없는 줄 알면서 아쉬운 듯 그렇게 말을 하자 경희가 말했다.
“ 오빠, 한 병 있긴 있는데… ”
“ 응? 그럼, 어서 가져와… 같이 먹게… ”
경희의 말에 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난 진짜 아무런 생각 없이 말했다. 처음에는 집에, 그것도 한참 비워 두었던 집에 술 같은 게 왜 있는지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난 희숙이에게서 들을 수가 있었다.
경희가 술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 간 동안 희숙이가 나에게 살짝 말해 주었다.
“ 이런 얘기 오빠한테 해줘도 돼… ”
“ 뭔데? 말해봐… ”
“ 오빠, 쟤 있잖아… 여기 와서… 혼자 소주도 가끔 먹고 그랬다… 가끔… 오빠나 부모님 생각날 때… 진짜 많이 외로웠나봐… ”
“ ………… ”
난 경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나의 뇌리엔 눈물을 흘리면서 소주를 들이마시는 경희의 안타까운 모습이 그려졌고 이내 나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경희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어린 여자애의 몸으로 혼자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오빠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리 했나 봐… 오빠 이젠 다른 데 갈 생각 말고 경희한테 잘 해줘요? 네? 정말 불쌍해요. ”
“ 응, 알았어…… ”
그 때 경희가 소주랑 잔으로 쓸 작은 그릇들을 챙겨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앉으며 그 중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 오빠 이거… ”
“ 응… ”
그러면서 경희가 나에게 술을 부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경희의 모습에 목이 매여 술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받아 놓고만 있는데 희숙이가 물었다.
“ 오빠, 이제 여기 눌러 살 거지? 또 나가지 않을 거지? ”
“ 그럼, 이젠 우리 경희랑 같이 있을 거야… ”
“ 오빠… 고마워. ”
그러면서 난 옆에 앉은 경희의 손을 꼭 잡았다.
“ 정말? 경희는 이제 좋겠다. 이렇게 듬직한 오빠와 같이 있어서… ”
분위기가 이상하게 빠지려고 하자 희숙이가 분위기를 바꿀려 했다.
“ 야, 기분이다… 오빠, 우리들도 한 잔 주면 안 돼? ”
“ 안 되긴 잠깐만… 기다려… ”
난 그렇게 대답하며 경희가 부어준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먼저 희숙이에게 잔을 내밀었다. 적지 않은 양의 술이었지만 희숙이는 잘도 받아마셨다.
“ 크윽! 쓰다…”
그리고 다음엔 희숙이보다 조금 작게 경희에게도 따라 주었다.
“ 경희야, 이제 오빠는 너만을 위해 열심히 살 거야. 앞으론 아무 걱정하지마… ”
그렇게 경희와 희숙이도 기분 좋게 가볍게 한잔씩 하였다. 하지만 이내 표시가 났다. 희숙이는 전혀 술을 못 먹는지 이내 두 볼이 붉그스럼하게 변했다. 나중에 이모가 알고 얘들에게 술 먹였다고 뭐라 한다 해도 맛있는 고기를 앞에 두고 한잔씩 안 할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나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경희와 희숙이는 술에 먹어서 인지 금세 얼굴들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고 그 붉어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나도 오래간만에 먹는 술이라 그런지 얼마 먹지 않은 거 같은데 그나하게 취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희숙이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며 집으로 올라가려고 엉덩이를 들었다.
“ 잠깐만, 경희야 너도 따라 같이 올라가라. 난 혼자 있어도 돼… ”
“ 응, 그래 경희야 같이 가자… ”
안 그래도 두 남매만 단둘이 자기엔 남의 이목도 있고 해서 밤엔 반드시 경희를 이모네 집에 올려 보내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침 희숙이랑 같이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에 서운함을 느꼈는지 경희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모 집으로 다시 올라가는 게 싫은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친오빠의 품을 느끼며 같이 자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싫어, 오빠. 나 그냥 여기 오빠랑 같이 있을래… ”
“ 그래? 그래도 여기는 밤에 무서울 텐데? ”
“ 이젠 오빠가 있는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싫다고 하는 경희를 억지로 보내지도 못하고 희숙이만 올려 보냈다.
희숙이가 가고 나자 이내 어두컴컴해졌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내리 앉는 어둠에 뒤로 하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술기운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경희와 같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시골에서의 밤은 어둠이 내림과 동시에 너무도 적막하였다.
난 경희가 준비를 해주는 이부자리에 몸을 뉘었다. 경희도 조금 거리를 두고 옆에 누웠다.
자려고 누웠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자 옆에 누운 경희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경희는 그전부터 나를 향해,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누워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한동안 어색한 기분이 감돌았다.
긴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성숙한 남녀가 단둘이 누워 가만히 있기에 어색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든,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 같이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
“ 아잉, 싫어… 나 오빠랑 있을래……… ”
“ 경희야 그러지 말고 내일부터라도 올라가? ”
“ 싫어! ”
“ 젠장, 너 이렇게 오빠 말 안 들으면… 오빠 진짜 화낸다. ”
“ 오빠! 그러지마… ”
경희가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애써 웃어 보였다.
“ 오빤 욕을 해도 재밌어… ”
“ 미안하다, 경희야 밖에서 욕만 배웠나 보다. ”
“ 아냐, 오빠… 나 사실 그런 오빠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내가 잘못하면 가끔 나한테도 험한 욕도 하곤 했잖아… ”
“ 어떻게 했는데?
“ 오빠도 참 기억 않나? …… 씨…발…년… 하며……”
“ 아니 내가? ”
동생에게 욕을 한다는 건 무슨 이유를 제쳐 두고서라도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착한 동생에게 그랬을 리 없다. 설사 그랬더라도 그렇게 심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진짜 속마음은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오빠의 순수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 내가 진짜 그랬어? ”
“ 으응… ”
“ 몰라… 난 전혀 기억이 없는데… ”
“ 호호호, 오빠는… ”
“ 경희야 이리 옆으로 가까이 올래… ”
그러자 경희가 미적미적 몸을 움직여 더욱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나는 손으로 경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4부에서 계속됩니다.
3부
“ 오빠… 오빠 좀 일어나봐… ”
“ 으…… 음, 누, 누구…?
곤히 자던 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잠이 덜 깬 눈으로 고개만 살짝 들었다.
거기에는 언제 왔는지 나의 사촌여동생인 희숙이가 서 있었다. 희숙이의 손에는 먹을 것을 싼 듯한 보자기를 들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심부름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 너… 희… 희숙이 아니니? ”
“ 오빠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그지? ”
“ 으응, 그래 그렇지…. ”
“ 오빠… 이거… ”
“ 어, 미안해… ”
난 그런 희숙이를 올려다보며 몸을 일으키고는 우선 희숙이가 들고 온 것을 받아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자 희숙이는 무거웠던지 손목을 주무르며 나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러고 보니 희숙이도 그 동안 정말 몰라보게 커 버렸다. 그리고 동생 경희 못지않게 어린 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모습이었다. 이젠 키도 제법 커 보이고 앞가슴도 봉긋하고 솟아 오른 게 성숙한 처녀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난 잠결에 그런 희숙이의 모습에 반갑기도 하고 새삼 놀랍기도 했다.
희숙이가 경희보다는 세 살이나 위였으니 꽃에 비유를 하면 경희가 갓 피어난 그런 예쁜 꽃이라면 희숙이는 이제 만개한 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잠시 그런 희숙이를 쳐다보고만 있는데 역시나 나의 따가운 시선은 어딘지 부담스럽고 부끄러운지 이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동생 경희를 찾는다. 그 때 마침 경희도 어느 정도 방정리가 됐던지 희숙이의 목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 아까 이모가 늦을 거라더니… 빨리 왔네! 잘 갔다 왔어? ”
“ 응, 아까 저녁때 왔잖아… ”
“ 응… ”
그러면서 다시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안 그래도 나, 오빠소식 무척 궁금했었는데… 엄마가 며칠 전에 그러더라고 이젠 오빠제대가 얼마 안 남았을 거라고… 근데 오늘 읍내 나갔다 오니… 엄마가 오빠 왔다고… ”
“ 응, 그렇구나…… ”
“ 야 너희들 진짜… 정말 몰라보게 많이 컸구나… 몰라보겠다. ”
나란히 앉아 친한 친구처럼 다정하게 얘기중인 두 여자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둘은 이종사촌지간이기 전에 둘도 없는 친구이다. 경희가 18살, 희숙이는 21살이다. 세살차이가 난다. 경희가 처음엔 언니, 혹은 희숙언니, 희숙언니 하며 따랐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둘 사이의 호칭은 사라지고 지금처럼 친구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 때부터 희숙이도 언니 대접을 꼭 바라지 않았었다.
“ 헤헤헤… 오빠는 그럼 우리가 여태까지 어린애로만 남아 있을 줄 알았어? ”
“ 그래도 솔직히 너희들 보니 남자로서 많이 당황스러운데… 하하하…”
“ 오빠도 정말 몰라보게 많이 변했어, 안 그래? 경희야? 진짜 남자같고 의젓하고… 호호호… ”
“ 응… 너어, 그래서 우리 오빠 보러 왔구나? ”
“ 얘는……”
경희가 자신의 친오빠에게 쏠리는 희숙이의 시선을 의식한 듯 괜히 질투 섞인 말을 하였다. 희숙이도 어릴 때부터 사촌오빠인 나를 잘 따랐고 좋아 했었다. 그런 걸 경희도 잘 알기에 일부러 핀잔으로 하는 말이었다.
“ 참, 이거…… 엄마가 오빠 먹으라고 했나 봐… ”
희숙이는 경희의 말에 나를 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가져온 보자기를 열었다. 그 속엔 먹을 게 든 냄비와 다른 것들이 싸여 있었다. 희숙이가 냄비부터 건네주자 경희가 받아서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 속엔 이모가 언제 장만했는지 먹음직스런 닭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 오빠, 우리 엄마한테 어떻게 한 거야. 우리 경수오빤 집에 오면 이런 거 구경도 못하는데… ”
“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러실 거야… ”
“ 엄마가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또 저녁 먹으러 올라오지 않을 거 같다고… 이거라도 요기하게 갖다 주래… 우리 엄마는 친자식인 우리들보다 오빠를 더 위한다니까… ”
“ ……… ”
이모는 언니인 우리 엄마를 무척 좋아했다. 엄마를 많이 닮은 우리만 보면 또 언니생각이 나고 그래서 우리에게 유난히 잘해 주시는 것이었다.
“ 아무튼 잘됐다. 희숙아, 우리 같이 먹자… ”
“ 네 오빠도… 많이 드세요. ”
우리 세 사람은 희숙이가 가져온 삶은 닭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희숙이가 다리를 뜯어서 나에게 주었다. 들에 풀어놓고 키운 닭이라서 살이 쫀득쫀득 하고 기름기가 ‘짜르르’ 입에 솔솔 녹는 것이었다. 난 경희가 뜯어주는 다리하나를 받아 한입 베어 먹었다. 그러다가 나는 절로 술 한 잔이 생각났다.
“ 맛있다. 이럴 땐 소주 한 잔 정도는 해야 되는데… ”
여긴 가게도 없으니 갑자기 술을 구할 수도 없다. 내가 그럴 수 없는 줄 알면서 아쉬운 듯 그렇게 말을 하자 경희가 말했다.
“ 오빠, 한 병 있긴 있는데… ”
“ 응? 그럼, 어서 가져와… 같이 먹게… ”
경희의 말에 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난 진짜 아무런 생각 없이 말했다. 처음에는 집에, 그것도 한참 비워 두었던 집에 술 같은 게 왜 있는지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난 희숙이에게서 들을 수가 있었다.
경희가 술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 간 동안 희숙이가 나에게 살짝 말해 주었다.
“ 이런 얘기 오빠한테 해줘도 돼… ”
“ 뭔데? 말해봐… ”
“ 오빠, 쟤 있잖아… 여기 와서… 혼자 소주도 가끔 먹고 그랬다… 가끔… 오빠나 부모님 생각날 때… 진짜 많이 외로웠나봐… ”
“ ………… ”
난 경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나의 뇌리엔 눈물을 흘리면서 소주를 들이마시는 경희의 안타까운 모습이 그려졌고 이내 나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경희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어린 여자애의 몸으로 혼자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오빠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리 했나 봐… 오빠 이젠 다른 데 갈 생각 말고 경희한테 잘 해줘요? 네? 정말 불쌍해요. ”
“ 응, 알았어…… ”
그 때 경희가 소주랑 잔으로 쓸 작은 그릇들을 챙겨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앉으며 그 중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 오빠 이거… ”
“ 응… ”
그러면서 경희가 나에게 술을 부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경희의 모습에 목이 매여 술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받아 놓고만 있는데 희숙이가 물었다.
“ 오빠, 이제 여기 눌러 살 거지? 또 나가지 않을 거지? ”
“ 그럼, 이젠 우리 경희랑 같이 있을 거야… ”
“ 오빠… 고마워. ”
그러면서 난 옆에 앉은 경희의 손을 꼭 잡았다.
“ 정말? 경희는 이제 좋겠다. 이렇게 듬직한 오빠와 같이 있어서… ”
분위기가 이상하게 빠지려고 하자 희숙이가 분위기를 바꿀려 했다.
“ 야, 기분이다… 오빠, 우리들도 한 잔 주면 안 돼? ”
“ 안 되긴 잠깐만… 기다려… ”
난 그렇게 대답하며 경희가 부어준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먼저 희숙이에게 잔을 내밀었다. 적지 않은 양의 술이었지만 희숙이는 잘도 받아마셨다.
“ 크윽! 쓰다…”
그리고 다음엔 희숙이보다 조금 작게 경희에게도 따라 주었다.
“ 경희야, 이제 오빠는 너만을 위해 열심히 살 거야. 앞으론 아무 걱정하지마… ”
그렇게 경희와 희숙이도 기분 좋게 가볍게 한잔씩 하였다. 하지만 이내 표시가 났다. 희숙이는 전혀 술을 못 먹는지 이내 두 볼이 붉그스럼하게 변했다. 나중에 이모가 알고 얘들에게 술 먹였다고 뭐라 한다 해도 맛있는 고기를 앞에 두고 한잔씩 안 할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나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경희와 희숙이는 술에 먹어서 인지 금세 얼굴들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고 그 붉어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나도 오래간만에 먹는 술이라 그런지 얼마 먹지 않은 거 같은데 그나하게 취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희숙이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며 집으로 올라가려고 엉덩이를 들었다.
“ 잠깐만, 경희야 너도 따라 같이 올라가라. 난 혼자 있어도 돼… ”
“ 응, 그래 경희야 같이 가자… ”
안 그래도 두 남매만 단둘이 자기엔 남의 이목도 있고 해서 밤엔 반드시 경희를 이모네 집에 올려 보내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침 희숙이랑 같이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에 서운함을 느꼈는지 경희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모 집으로 다시 올라가는 게 싫은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친오빠의 품을 느끼며 같이 자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싫어, 오빠. 나 그냥 여기 오빠랑 같이 있을래… ”
“ 그래? 그래도 여기는 밤에 무서울 텐데? ”
“ 이젠 오빠가 있는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싫다고 하는 경희를 억지로 보내지도 못하고 희숙이만 올려 보냈다.
희숙이가 가고 나자 이내 어두컴컴해졌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내리 앉는 어둠에 뒤로 하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술기운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경희와 같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시골에서의 밤은 어둠이 내림과 동시에 너무도 적막하였다.
난 경희가 준비를 해주는 이부자리에 몸을 뉘었다. 경희도 조금 거리를 두고 옆에 누웠다.
자려고 누웠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자 옆에 누운 경희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경희는 그전부터 나를 향해,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누워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한동안 어색한 기분이 감돌았다.
긴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성숙한 남녀가 단둘이 누워 가만히 있기에 어색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든,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 같이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
“ 아잉, 싫어… 나 오빠랑 있을래……… ”
“ 경희야 그러지 말고 내일부터라도 올라가? ”
“ 싫어! ”
“ 젠장, 너 이렇게 오빠 말 안 들으면… 오빠 진짜 화낸다. ”
“ 오빠! 그러지마… ”
경희가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애써 웃어 보였다.
“ 오빤 욕을 해도 재밌어… ”
“ 미안하다, 경희야 밖에서 욕만 배웠나 보다. ”
“ 아냐, 오빠… 나 사실 그런 오빠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내가 잘못하면 가끔 나한테도 험한 욕도 하곤 했잖아… ”
“ 어떻게 했는데?
“ 오빠도 참 기억 않나? …… 씨…발…년… 하며……”
“ 아니 내가? ”
동생에게 욕을 한다는 건 무슨 이유를 제쳐 두고서라도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착한 동생에게 그랬을 리 없다. 설사 그랬더라도 그렇게 심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진짜 속마음은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오빠의 순수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 내가 진짜 그랬어? ”
“ 으응… ”
“ 몰라… 난 전혀 기억이 없는데… ”
“ 호호호, 오빠는… ”
“ 경희야 이리 옆으로 가까이 올래… ”
그러자 경희가 미적미적 몸을 움직여 더욱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나는 손으로 경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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