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아, 차돌아 [제148부]
바람이 멈춘 뒤에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노래하는 새 때문에 산이 고요한 것을 안다.
사람은 고요함속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나기 전에는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날 때 사람은 고요함을 발견한다 했다.
차돌 이는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무얼 생각하는 것일까....
무얼 느꼈기에 저토록 심오한 말을 뇌까리고 있는 것일까....
차돌 이는 지금자기가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그렇게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허전하고 허무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젊어 모르던 일을 나이 들어 깨우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차돌 이는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이고 인간이 해야 할 행동이 아니란 것을.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기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의 긴 목을 꺾을 수도 없었다.
혼자 괴로워하고 참아야했으며 그들에게 항상 자신감 있는 행동을 해야 했고 그렇게 사는 자기의 위선적인 행동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와 준 모든 이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었다.
진정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일본 속담이 생각난다.
달을 위해서 구름이 있고 꽃을 위해서 바람이 있다.
상부상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받기만 했지 그들에게 무얼 주었는가.
늙고 시들고 병들면 한줌도 안 되는 고달픈 인생을 추억으로 삼고 흐느끼고 괴로워할 일인데 무엇이 아쉬워 그토록 목 메이며 천륜을 어기면서까지 살아야했단 말인가.
나 때문에 상대방이 받을 고통은 왜 헤아리지 못했던가......
이젠 어쩌란 말인가.
사랑이란 허울아래 그 사랑을 위하여 한평생 살아온 게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그런 고통을 준 것 같은 조물주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몰랐던 괴로움이 나이가 들고 세상을 잊을 즈음 이런 생각이 왜 나의 뇌리에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것인가.
왜 나에게 사랑을 하게 만들고 그 사랑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 못할 괴로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걸 잊으려 아무리 발광해도 순간은 잊혀 져도 다시금 떠오르는 얄미운 생각에 차돌 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픈 마음을 혼자 추슬러야 했다.
그걸 숨기기 위해 더욱 처절한 밤의 행락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돌 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복이 자기를 괴롭혔다는 생각에 요즘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지나친 밤의 섹스에 몸을 탕진하고 결과는 창백한 피부와 쏙 들어간 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차돌 이를 한 결 같이 지켜주는 무엇이 있었다.
누나의 사랑도 모두의 사랑도 아닌 또 다른 사랑이었다.
바로 금수인 사신의 자식인 백왕과 홍 왕 이었다.
사신이 자기를 위하여 시신마저 남기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었고 백왕과 홍 왕은 자기의 명을 받아 여러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면서도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있었다.
지금 차돌이의 오른손에는 하얗고 붉은 두 마리의 아주 작은 뱀이 또 아리를 틀듯이 팔목을 감고 있었다.
그들도 차돌이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긴 혀를 빼가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
차돌 이는 하루하루가 말라갔다.
말라가는 와중에도 밤의 행위는 더욱 적극적이고 변태로 이어졌으며 긴긴밤 만족하는 일이 없는지 더욱 광폭하고 문란해졌다.
식사는 멀리하고 술을 원했으며 누구의 잔소리도 적으로 느낄 만큼 냉정하게 대꾸했으며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하는 난폭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잠이 들라치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부르며 산란한 몸짓을 수도 없이 하는 이상자로 변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마음이 죽은 것이다.
중국의 노자가 한 말이다.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자기를 잃으면 아무른 소용이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닌가.....
차돌 이는 잃고 있었다.
모든 것에 자신도 희망도 없이 보였다.
누나를 보기 두려웠고 자식들 대하기 역시 두려워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성장하여 결혼을 한 자식도 또 얼마 후면 가정을 꾸릴 자식들이 수두룩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할 말이 무엇이며 해줄 말이 무엇인가.
내가 과연 그 아이에게 남길 말은 있는가......
모든 것이 회의적이다.
누가 자기를 보는 시선은 징그러운 뱀을 대하듯 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사람들 만나길 기피하였고, 혼자 있기를 원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다시피 한 선의 수련을 중단한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지금 차돌 이는 널따란 바위위에 앉아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흰머리는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덮은 지 오래였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눈 꼬리에 주름이 그득하다.
흐 리 멍 텅한 눈동자는 물길과 함께 떠다나는 작은 나무 잎사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수심에 가득 찬 여러 개의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가득 근심을 얼굴에 담고 그런 차돌 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일화와 지란이 그리고 순덕이.....
세 사람보다 덜하지만 그런 모습을 닮아가는 많은 여인들이 산속 골짜기 물 흐르는 작은 계곡에서 한 남자를 응시하며 슬픔에 잠겨있었다.
일부는 격정을 견디다 못해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차돌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오직 물위에 떠다니는 잎사귀에 두 눈의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차돌아, 제발 차돌아..........]
슬프도록 시린 선영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깬다.
[아........누나, 봐....저 잎사귀 너무 외로워 보이지 않아.....
저렇게 떠다니다 결국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섞고 말겠지. 그지 누나........]
차돌 이는 음성이 들리는 곳 선영 이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어주고는 다시 좀 전에 두던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는 나뭇잎사귀의 외로움이 자기로 비유하고 있는 듯 했다.
사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았다.
언젠가 죽을 몸이고 그 세월이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아웅 바둥 살아왔는지.....모든 것에 지쳤다.
[차돌아....제발.....우리가 어떻게 해야. 네가 밝아지겠니.....
가르쳐 다오. 우린 뭐든 할 테니.........
네가 이러면 우린 어쩌란 말이야....이 바보야........흑흑...]
선영이의 음성은 급기야 떨리고 빨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만 차돌 이에게 달려가 안기고 만다.
선영 이는 어찌하던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차돌 이를 치유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어찌 선영 이에게만 국한되겠는가,
모두의 기둥이고 우상이며 낭군이 아닌가.
차돌이가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여자들이다.
모두는 깊은 우수에 젖어 자기 자신을 회복하지 못하는 차돌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차돌이의 병은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선영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약한 차돌이의 모습에서 너무나 힘들고 깊은 시름에 젖어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가 나약한 동물이다.
너무나도 쉽게 절망하고 좌절하고, 작은 실패에도 기운을 잃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지만 차돌 이는 틀리길 바랐다.
차돌 이는 진정 우리의 마음을 모르고 있을까,
도전과 용기, 패기,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의 언어들이 우리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허무와 좌절, 그리고 슬픈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패배감에 젖어있으면 자기나 우리 모두 이 험난한 세상을, 인생을 어찌 살아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누구보다 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아닌가.
희망과 패기 그리고 정열로 불타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한 가지 일에도 모든 정열을 쏟아 넣던 그.
모든 험난한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잡초의 생명력을 가진 그.
거친 파도와 폭풍우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바닷가 바위 같은 늠름한 모습이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맹세하며 서로의 마음과 눈빛을 주고받지 않았는가.
그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를 않았는가.
그런 그가 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무엇이 그를 이토록 나약한 인간으로 돌려놓았단 말인가.
차돌아...제발 일어나다오. 용기를 가지고 너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살펴다오.
차돌아. 힘을 내. 제발......
선영 이는 속으로 한없이 한 없이 빌고 또 빌었다.
[누나, 배고프다 집에 가자........]
선영이의 깊은 사색을 깨는 차돌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른 기운도 없고 목소리가 메말라있어도 정감이 깃든 소리다.
그제 서야 선영 이는 정신을 수습하곤 차돌 이를 향해 베 시시 웃어준다.
[그래, 그러자...집으로 가자꾸나....]
선영 이는 그 옛날 누나로 돌아갔다.
다정다감하고 오로지 차돌이만 생각하고 염려하는 어릴 때 누나로 돌아갔다.
차돌이도 그런 누나에게 방긋 웃어주며 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던 차돌이가 몸을 기우뚱하더니 스르르 무너지듯 쓰러진다.
차돌이가 지금껏 심 적을 짓누르는 고통에 기절한 것이다.
[아 앗. 차돌아. 여보..여보................]
차돌이가 힘없이 옆으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지고 선영이의 다급한 목소리ㅏ가 울려 퍼지자 주위의 모든 여자들이 앞 다투어 차돌 이를 부르며 달려든다.
이미 정신이 혼미하여 쓰러진 차돌이의 몸은 물먹은 솜방망이처럼 축 늘어져있다.
여자들은 각기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차돌 이를 부축하는 등 소란을 피운다.
그 와중에 무랑이가 차돌 이를 덥석 업고는 내달린다.
그리고 무랑이의 힘을 덜어주고 동작을 빨리 유도하기위해 주위의 여자들은 차돌이의 엉덩이를 받치는 등 하여 급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얼마나 그렇게 치달려 왔는지 모른다.
무랑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주렁주렁 맺혀있고 그 땀방울은 떨어져 그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차돌 이를 업을 기운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오직 기를 수련하고 단련한 무랑이었기에 그나마 차돌 이를 이렇게까지 옮길 수가 있었다.
무랑의 발걸음이 늦어지고 그의 입에서 단내가 나며 그 역시도 지쳐 쓰러지려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죽을힘을 다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장님......대장님.........]
구원의 목소리였다.
세상에 이처럼 반갑고 희망에 찬 소리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달려온 네 명의 청년들이 무랑 이에게서 차돌 이를 넘겨받아 들쳐 업고는 손살 같이 산 아래로 치달린다.
그리고 그 뒤를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는 일련의 여자들의 행렬이 있었고 다만 그 자리에서 풀 석 주저앉아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무랑이 혼자만 움직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아무도 무랑 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무랑은 산 모서리로 돌아가는 일행이 모두 사라지자 뒤로 훌러덩 누워 버린다.
그리고 커다란 두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오빠..............여보.......제발 기운차려..........]
무랑이 역시 오로지 차돌이 생각뿐이었다.
그의 인생이 자기의 인생이라고 살아온 무랑이었으니 말은 하지 않아도 무너지는 가슴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무랑이 슬퍼하고 있는데 그의 손을 잡아주는 또 다른 부드러운 손이 있었다.
[힘들었지, 이제 가자..너만 그런 게 아냐. 우리 모두 참고 있어..........]
양양이었다.
양양도 차돌 이를 따라가다 무랑을 생각한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어디에도 무랑은 없었다.
그렇다.
무랑은 차돌 이를 업고 오며 모든 기운을 소진한 체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급히 발길을 돌려 오던 길로 올라가니 무랑이가 뒤로 넘어지듯 드러눕지 않는가.
얼마나 피곤하고 고되었으면 아무도 할 수없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그의 얼굴에서 비 오듯 떨어지는 땀도 보았고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의 찡그린 얼굴도 보았다.
그런 그를 두고 내려왔다니....내 마음에 사랑이 차돌 이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자매 같은 그의 여자에게도 품고 있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를 잊고 내려오다니.... 양양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모든 미안한마음을 그를 잡는 손에 싣고 전달한 것이다.
[그래요, 언니.......그이는 괜찮겠지요.]
그녀는 오직 차돌이의 안위뿐이었다.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야.
그까짓 아픔도 툴툴 털고 일어나실 거야.........
우린 보지 않았어, 그분의 생명은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양양은 무랑 이를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맞아요, 언니 그이는 예전처럼 우리에게 올 거 에요. 그래요, 난 확신해요....
하지만 언니 자꾸만 슬퍼요...나도 모르게.......
그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너무나 슬퍼요...흑..흑........]
무랑은 양양의 품에 무너지듯 쓰러지며 흐느끼고 만다.
그의 마음은 오직 차돌 이에게 있었고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속마음을 토하며 한없이 흐느끼며 운다.
차돌이가 실의에 젖어 심한 고독에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고 그것을 보면서도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다는 게 마음을 찢어놓았던 것이다.
무랑이도 차돌이의 여자들도 가족들도,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가 알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혼자만의 어둠속에서 마음을 달래고 삭이다보면 그리고 무기력한 자신을 돌아보면..한없이 괴로워지고 나약해지게 만드는 것이 고독이 아닌가.
차라리 공포에 괴로워한다면 모두가 함께 슬기롭게 견뎌낼 수 있으련만........고독이란 것은 오로지 혼자만이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무랑 이는 고독이 차돌 이를 덮친 것에 괴로워하며 두려운 것이다.
[나도 그래. 동생..........흑.......]
선영이도 기어이 소리를 내어 울고 만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두 여자는 서로 부등 켜 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야 일어났다.
.
.
차돌이가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지금 그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스럽고 온화했으며 미소까지 머금고 있어 자상해 보이고도 있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난 후였다.
차돌이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의사가 왔고 의사는 차돌 이를 진단하고는 별일이 아니라며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심적으로 오는 피로감에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이라 했다.
의사가 돌아가고 모두는 안도의 숨을 쉰다.
무엇이 차돌 이를 저토록 허무를 안겨주고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을 가지게 했을까..
사실 차돌 이는 근래 몇 년 사이에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었다.
자기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던 도 희도 윤지의 어머니 양여사도.....그리고 마음을 나누던 친구 대찬이도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나타낼 수 없었다.
자기를 지켜보며 사는 많은 여자들에게 오직 희망이 자기의 웃음이고 포옹인데 그런 마음을
토출할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면 그것들을 가슴속에 끄집어내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괴로워했으며 그들의 외로운 길에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짓누르는 것은 또 있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주름살이 가득한 피부. 나이가 들어 운신조차 편하지 않는 육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아직도 자기주위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세월의 무상함을 따지기 이전에 면목이 없었다.
저렇게 늙었는데.....저렇게 힘들어하며 오직 내가 좋아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에게 봉사해가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도 저런 힘든 몸으로 내가 무얼 원하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불속이라도 마다않을 그런 용기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과연 나는 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언젠가는....언젠가는 이가 아니다.
이제 조금 후가 맞을 것이다.
조금 후엔 저들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 역시도 가겠지만 나를 위하여 나와 같이 죽기를 바라면서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아서 지독한 호강 속에 먼저 간 사람들을 잊고 재미난 삶을 살다니........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지고 그리워지고 보고파지고 진정사랑해주고 싶다.
차돌 이는 지난날 그 사람들과 같이했던 향수를 못 잊어 했고 그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심한 죄책감으로 다가와 이젠 남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수척해지고 말라가고 피폐해졌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괴로웠다.
마치 자신이 이 땅위에 버려진 먼지처럼 아니면 망망대해에 버려진 조각배 같았다.
모든 것에서 자기는 버려졌고 혼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향해 수없이 마음을 띄워 보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심한우울증으로 온 것이다. 마음깊이 외로운 고독이 깊이 숨어 든 것이다.
고독이란 놈은 자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고통과 두려움을 가슴가득 안겨주었다.
무서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급기야 그는 정신쇠약으로 졸도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차돌이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이집에 아무도 없었다.
거칠고 고집 세고 강해보였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집의 여자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
아집이 강해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은 해보아야 속이 시원한, 강한 성격으로 이상하게 보인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마저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린 이집의 여자들이었다.
낮의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아했으며 밤의 지독한 변태로 이루어지는 정사도 이젠 숙달되었고 좋아한다.
모든 것이 차돌 이와 함께라면 죽어도 후회 없을 정도로 좋아진 몸들이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부처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더라도 꽃은 사랑해도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 했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성이라 했다.
아름다움에 더욱 강한 집착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고 본성이라 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집착이고 그것은 미움도 따른다.
그래서 사랑에는 미움도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미움에도 받아들이는 헌신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미움은 하나이고 같은 마음 인 것이다.
사랑에만 집착해서도 안 되고 미움을 멀리해서도 안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 미움을 받아들여야한다.
억지로 무얼 사랑해서는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미움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영원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집의 모든 여자는 이미 승리자가 되어있었다.
눈빛이 그걸 말해주고 쓰다듬는 손길이 그걸 전해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랑이 가미된 진정한 행복은 무수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피어오른다 했다.
아직도 그들에게 주어질 고난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149부에 계속
힘 주신님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쩌겠어요. 이보다 더한 수모도 참고 성질 죽여가면서 완결까지 올리려 했으니....
이 글 150부로 마칩니다.
모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련지....
건강하세요.
바람이 멈춘 뒤에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노래하는 새 때문에 산이 고요한 것을 안다.
사람은 고요함속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나기 전에는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날 때 사람은 고요함을 발견한다 했다.
차돌 이는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무얼 생각하는 것일까....
무얼 느꼈기에 저토록 심오한 말을 뇌까리고 있는 것일까....
차돌 이는 지금자기가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그렇게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허전하고 허무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젊어 모르던 일을 나이 들어 깨우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차돌 이는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이고 인간이 해야 할 행동이 아니란 것을.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기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의 긴 목을 꺾을 수도 없었다.
혼자 괴로워하고 참아야했으며 그들에게 항상 자신감 있는 행동을 해야 했고 그렇게 사는 자기의 위선적인 행동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와 준 모든 이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었다.
진정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일본 속담이 생각난다.
달을 위해서 구름이 있고 꽃을 위해서 바람이 있다.
상부상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받기만 했지 그들에게 무얼 주었는가.
늙고 시들고 병들면 한줌도 안 되는 고달픈 인생을 추억으로 삼고 흐느끼고 괴로워할 일인데 무엇이 아쉬워 그토록 목 메이며 천륜을 어기면서까지 살아야했단 말인가.
나 때문에 상대방이 받을 고통은 왜 헤아리지 못했던가......
이젠 어쩌란 말인가.
사랑이란 허울아래 그 사랑을 위하여 한평생 살아온 게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그런 고통을 준 것 같은 조물주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몰랐던 괴로움이 나이가 들고 세상을 잊을 즈음 이런 생각이 왜 나의 뇌리에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것인가.
왜 나에게 사랑을 하게 만들고 그 사랑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 못할 괴로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걸 잊으려 아무리 발광해도 순간은 잊혀 져도 다시금 떠오르는 얄미운 생각에 차돌 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픈 마음을 혼자 추슬러야 했다.
그걸 숨기기 위해 더욱 처절한 밤의 행락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돌 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복이 자기를 괴롭혔다는 생각에 요즘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지나친 밤의 섹스에 몸을 탕진하고 결과는 창백한 피부와 쏙 들어간 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차돌 이를 한 결 같이 지켜주는 무엇이 있었다.
누나의 사랑도 모두의 사랑도 아닌 또 다른 사랑이었다.
바로 금수인 사신의 자식인 백왕과 홍 왕 이었다.
사신이 자기를 위하여 시신마저 남기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었고 백왕과 홍 왕은 자기의 명을 받아 여러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면서도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있었다.
지금 차돌이의 오른손에는 하얗고 붉은 두 마리의 아주 작은 뱀이 또 아리를 틀듯이 팔목을 감고 있었다.
그들도 차돌이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긴 혀를 빼가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
차돌 이는 하루하루가 말라갔다.
말라가는 와중에도 밤의 행위는 더욱 적극적이고 변태로 이어졌으며 긴긴밤 만족하는 일이 없는지 더욱 광폭하고 문란해졌다.
식사는 멀리하고 술을 원했으며 누구의 잔소리도 적으로 느낄 만큼 냉정하게 대꾸했으며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하는 난폭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잠이 들라치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부르며 산란한 몸짓을 수도 없이 하는 이상자로 변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마음이 죽은 것이다.
중국의 노자가 한 말이다.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자기를 잃으면 아무른 소용이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닌가.....
차돌 이는 잃고 있었다.
모든 것에 자신도 희망도 없이 보였다.
누나를 보기 두려웠고 자식들 대하기 역시 두려워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성장하여 결혼을 한 자식도 또 얼마 후면 가정을 꾸릴 자식들이 수두룩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할 말이 무엇이며 해줄 말이 무엇인가.
내가 과연 그 아이에게 남길 말은 있는가......
모든 것이 회의적이다.
누가 자기를 보는 시선은 징그러운 뱀을 대하듯 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사람들 만나길 기피하였고, 혼자 있기를 원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다시피 한 선의 수련을 중단한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지금 차돌 이는 널따란 바위위에 앉아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흰머리는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덮은 지 오래였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눈 꼬리에 주름이 그득하다.
흐 리 멍 텅한 눈동자는 물길과 함께 떠다나는 작은 나무 잎사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수심에 가득 찬 여러 개의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가득 근심을 얼굴에 담고 그런 차돌 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일화와 지란이 그리고 순덕이.....
세 사람보다 덜하지만 그런 모습을 닮아가는 많은 여인들이 산속 골짜기 물 흐르는 작은 계곡에서 한 남자를 응시하며 슬픔에 잠겨있었다.
일부는 격정을 견디다 못해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차돌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오직 물위에 떠다니는 잎사귀에 두 눈의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차돌아, 제발 차돌아..........]
슬프도록 시린 선영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깬다.
[아........누나, 봐....저 잎사귀 너무 외로워 보이지 않아.....
저렇게 떠다니다 결국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섞고 말겠지. 그지 누나........]
차돌 이는 음성이 들리는 곳 선영 이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어주고는 다시 좀 전에 두던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는 나뭇잎사귀의 외로움이 자기로 비유하고 있는 듯 했다.
사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았다.
언젠가 죽을 몸이고 그 세월이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아웅 바둥 살아왔는지.....모든 것에 지쳤다.
[차돌아....제발.....우리가 어떻게 해야. 네가 밝아지겠니.....
가르쳐 다오. 우린 뭐든 할 테니.........
네가 이러면 우린 어쩌란 말이야....이 바보야........흑흑...]
선영이의 음성은 급기야 떨리고 빨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만 차돌 이에게 달려가 안기고 만다.
선영 이는 어찌하던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차돌 이를 치유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어찌 선영 이에게만 국한되겠는가,
모두의 기둥이고 우상이며 낭군이 아닌가.
차돌이가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여자들이다.
모두는 깊은 우수에 젖어 자기 자신을 회복하지 못하는 차돌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차돌이의 병은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선영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약한 차돌이의 모습에서 너무나 힘들고 깊은 시름에 젖어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가 나약한 동물이다.
너무나도 쉽게 절망하고 좌절하고, 작은 실패에도 기운을 잃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지만 차돌 이는 틀리길 바랐다.
차돌 이는 진정 우리의 마음을 모르고 있을까,
도전과 용기, 패기,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의 언어들이 우리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허무와 좌절, 그리고 슬픈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패배감에 젖어있으면 자기나 우리 모두 이 험난한 세상을, 인생을 어찌 살아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누구보다 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아닌가.
희망과 패기 그리고 정열로 불타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한 가지 일에도 모든 정열을 쏟아 넣던 그.
모든 험난한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잡초의 생명력을 가진 그.
거친 파도와 폭풍우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바닷가 바위 같은 늠름한 모습이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맹세하며 서로의 마음과 눈빛을 주고받지 않았는가.
그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를 않았는가.
그런 그가 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무엇이 그를 이토록 나약한 인간으로 돌려놓았단 말인가.
차돌아...제발 일어나다오. 용기를 가지고 너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살펴다오.
차돌아. 힘을 내. 제발......
선영 이는 속으로 한없이 한 없이 빌고 또 빌었다.
[누나, 배고프다 집에 가자........]
선영이의 깊은 사색을 깨는 차돌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른 기운도 없고 목소리가 메말라있어도 정감이 깃든 소리다.
그제 서야 선영 이는 정신을 수습하곤 차돌 이를 향해 베 시시 웃어준다.
[그래, 그러자...집으로 가자꾸나....]
선영 이는 그 옛날 누나로 돌아갔다.
다정다감하고 오로지 차돌이만 생각하고 염려하는 어릴 때 누나로 돌아갔다.
차돌이도 그런 누나에게 방긋 웃어주며 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던 차돌이가 몸을 기우뚱하더니 스르르 무너지듯 쓰러진다.
차돌이가 지금껏 심 적을 짓누르는 고통에 기절한 것이다.
[아 앗. 차돌아. 여보..여보................]
차돌이가 힘없이 옆으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지고 선영이의 다급한 목소리ㅏ가 울려 퍼지자 주위의 모든 여자들이 앞 다투어 차돌 이를 부르며 달려든다.
이미 정신이 혼미하여 쓰러진 차돌이의 몸은 물먹은 솜방망이처럼 축 늘어져있다.
여자들은 각기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차돌 이를 부축하는 등 소란을 피운다.
그 와중에 무랑이가 차돌 이를 덥석 업고는 내달린다.
그리고 무랑이의 힘을 덜어주고 동작을 빨리 유도하기위해 주위의 여자들은 차돌이의 엉덩이를 받치는 등 하여 급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얼마나 그렇게 치달려 왔는지 모른다.
무랑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주렁주렁 맺혀있고 그 땀방울은 떨어져 그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차돌 이를 업을 기운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오직 기를 수련하고 단련한 무랑이었기에 그나마 차돌 이를 이렇게까지 옮길 수가 있었다.
무랑의 발걸음이 늦어지고 그의 입에서 단내가 나며 그 역시도 지쳐 쓰러지려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죽을힘을 다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장님......대장님.........]
구원의 목소리였다.
세상에 이처럼 반갑고 희망에 찬 소리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달려온 네 명의 청년들이 무랑 이에게서 차돌 이를 넘겨받아 들쳐 업고는 손살 같이 산 아래로 치달린다.
그리고 그 뒤를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는 일련의 여자들의 행렬이 있었고 다만 그 자리에서 풀 석 주저앉아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무랑이 혼자만 움직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아무도 무랑 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무랑은 산 모서리로 돌아가는 일행이 모두 사라지자 뒤로 훌러덩 누워 버린다.
그리고 커다란 두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오빠..............여보.......제발 기운차려..........]
무랑이 역시 오로지 차돌이 생각뿐이었다.
그의 인생이 자기의 인생이라고 살아온 무랑이었으니 말은 하지 않아도 무너지는 가슴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무랑이 슬퍼하고 있는데 그의 손을 잡아주는 또 다른 부드러운 손이 있었다.
[힘들었지, 이제 가자..너만 그런 게 아냐. 우리 모두 참고 있어..........]
양양이었다.
양양도 차돌 이를 따라가다 무랑을 생각한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어디에도 무랑은 없었다.
그렇다.
무랑은 차돌 이를 업고 오며 모든 기운을 소진한 체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급히 발길을 돌려 오던 길로 올라가니 무랑이가 뒤로 넘어지듯 드러눕지 않는가.
얼마나 피곤하고 고되었으면 아무도 할 수없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그의 얼굴에서 비 오듯 떨어지는 땀도 보았고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의 찡그린 얼굴도 보았다.
그런 그를 두고 내려왔다니....내 마음에 사랑이 차돌 이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자매 같은 그의 여자에게도 품고 있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를 잊고 내려오다니.... 양양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모든 미안한마음을 그를 잡는 손에 싣고 전달한 것이다.
[그래요, 언니.......그이는 괜찮겠지요.]
그녀는 오직 차돌이의 안위뿐이었다.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야.
그까짓 아픔도 툴툴 털고 일어나실 거야.........
우린 보지 않았어, 그분의 생명은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양양은 무랑 이를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맞아요, 언니 그이는 예전처럼 우리에게 올 거 에요. 그래요, 난 확신해요....
하지만 언니 자꾸만 슬퍼요...나도 모르게.......
그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너무나 슬퍼요...흑..흑........]
무랑은 양양의 품에 무너지듯 쓰러지며 흐느끼고 만다.
그의 마음은 오직 차돌 이에게 있었고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속마음을 토하며 한없이 흐느끼며 운다.
차돌이가 실의에 젖어 심한 고독에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고 그것을 보면서도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다는 게 마음을 찢어놓았던 것이다.
무랑이도 차돌이의 여자들도 가족들도,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가 알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혼자만의 어둠속에서 마음을 달래고 삭이다보면 그리고 무기력한 자신을 돌아보면..한없이 괴로워지고 나약해지게 만드는 것이 고독이 아닌가.
차라리 공포에 괴로워한다면 모두가 함께 슬기롭게 견뎌낼 수 있으련만........고독이란 것은 오로지 혼자만이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무랑 이는 고독이 차돌 이를 덮친 것에 괴로워하며 두려운 것이다.
[나도 그래. 동생..........흑.......]
선영이도 기어이 소리를 내어 울고 만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두 여자는 서로 부등 켜 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야 일어났다.
.
.
차돌이가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지금 그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스럽고 온화했으며 미소까지 머금고 있어 자상해 보이고도 있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난 후였다.
차돌이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의사가 왔고 의사는 차돌 이를 진단하고는 별일이 아니라며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심적으로 오는 피로감에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이라 했다.
의사가 돌아가고 모두는 안도의 숨을 쉰다.
무엇이 차돌 이를 저토록 허무를 안겨주고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을 가지게 했을까..
사실 차돌 이는 근래 몇 년 사이에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었다.
자기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던 도 희도 윤지의 어머니 양여사도.....그리고 마음을 나누던 친구 대찬이도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나타낼 수 없었다.
자기를 지켜보며 사는 많은 여자들에게 오직 희망이 자기의 웃음이고 포옹인데 그런 마음을
토출할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면 그것들을 가슴속에 끄집어내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괴로워했으며 그들의 외로운 길에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짓누르는 것은 또 있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주름살이 가득한 피부. 나이가 들어 운신조차 편하지 않는 육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아직도 자기주위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세월의 무상함을 따지기 이전에 면목이 없었다.
저렇게 늙었는데.....저렇게 힘들어하며 오직 내가 좋아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에게 봉사해가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도 저런 힘든 몸으로 내가 무얼 원하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불속이라도 마다않을 그런 용기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과연 나는 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언젠가는....언젠가는 이가 아니다.
이제 조금 후가 맞을 것이다.
조금 후엔 저들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 역시도 가겠지만 나를 위하여 나와 같이 죽기를 바라면서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아서 지독한 호강 속에 먼저 간 사람들을 잊고 재미난 삶을 살다니........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지고 그리워지고 보고파지고 진정사랑해주고 싶다.
차돌 이는 지난날 그 사람들과 같이했던 향수를 못 잊어 했고 그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심한 죄책감으로 다가와 이젠 남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수척해지고 말라가고 피폐해졌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괴로웠다.
마치 자신이 이 땅위에 버려진 먼지처럼 아니면 망망대해에 버려진 조각배 같았다.
모든 것에서 자기는 버려졌고 혼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향해 수없이 마음을 띄워 보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심한우울증으로 온 것이다. 마음깊이 외로운 고독이 깊이 숨어 든 것이다.
고독이란 놈은 자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고통과 두려움을 가슴가득 안겨주었다.
무서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급기야 그는 정신쇠약으로 졸도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차돌이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이집에 아무도 없었다.
거칠고 고집 세고 강해보였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집의 여자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
아집이 강해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은 해보아야 속이 시원한, 강한 성격으로 이상하게 보인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마저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린 이집의 여자들이었다.
낮의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아했으며 밤의 지독한 변태로 이루어지는 정사도 이젠 숙달되었고 좋아한다.
모든 것이 차돌 이와 함께라면 죽어도 후회 없을 정도로 좋아진 몸들이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부처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더라도 꽃은 사랑해도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 했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성이라 했다.
아름다움에 더욱 강한 집착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고 본성이라 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집착이고 그것은 미움도 따른다.
그래서 사랑에는 미움도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미움에도 받아들이는 헌신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미움은 하나이고 같은 마음 인 것이다.
사랑에만 집착해서도 안 되고 미움을 멀리해서도 안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 미움을 받아들여야한다.
억지로 무얼 사랑해서는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미움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영원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집의 모든 여자는 이미 승리자가 되어있었다.
눈빛이 그걸 말해주고 쓰다듬는 손길이 그걸 전해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랑이 가미된 진정한 행복은 무수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피어오른다 했다.
아직도 그들에게 주어질 고난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149부에 계속
힘 주신님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쩌겠어요. 이보다 더한 수모도 참고 성질 죽여가면서 완결까지 올리려 했으니....
이 글 150부로 마칩니다.
모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련지....
건강하세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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