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는 보지속이 터지는 쾌감에 베개를 끌어안고 꿈틀거린다. 우람한 페니스가 보지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땀방울이 맺힌 살갗이 부딪는 소리. 보지 속의 자지가 진퇴하며 흘리는 거친 호흡. 침대가 흔들리고 정희는 안간힘을 쓰며 연달아 신음을 터트린다.
“하 으. 으 으. 하 아. 미, 미치겠어.”
“찌걱. 찌걱. 쩌 걱.........”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드나들 때마다 끈적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깊이 박혀진 상태에서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붉게 달아오른 눈빛으로 뒤를 돌아 본 그녀가 침대에 팔을 지탱하고 둔부를 들어 올린다.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깊이 박아 넣었다.
“하 악~! 너, 너무해. 하 으........”
“왜 싫어?”
“아니, 아니 너무 좋아. 하 앙........”
정희는 페니스가 치골까지 잇닿는 옅은 통증과 함께 지지러지는 쾌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좋을 만큼 격렬한 쾌감에 그녀는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다시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밀려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펌프질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보지 속에서 뿌연 진액이 삐져나왔다.
“하 으. 으 앙. 으 으. 어떡해........”
두부처럼 흔들리는 정희의 둔부, 흔들거리는 젖가슴, 엉덩이와 하복부가 부딪는 소리, 그리고 숨 막힐 듯이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짐승이 교미를 하는 모습이었다. 땀방울이 흥건하게 맺히고 동민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격렬한 엑스터시에 빠져든 정희도 현기증마저 느꼈다. 보지 속에 박힌 페니스를 쑥 뽑아내고 동민이 침대위에 벌렁 누웠다. 한창 쾌감의 늪에 빠졌던 그녀가 신음을 터트린다.
“하 으! 난 몰라. 안 돼.”
입술을 깨문 정희가 동민의 허벅지를 타고 앉았다. 그녀는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 위로 치솟은 페니스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본다. 그녀는 힘줄까지 솟아 용솟음치는 자지를 움켜쥐고 보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람한 페니스가 그녀의 보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는 다급하게 둔부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앉으며 허리를 비튼다.
“도, 동민아. 주, 죽겠어. 아 하, 난 몰라.”
앞뒤로 허리를 흔드는 정희는 탕녀처럼 요염한 눈빛으로 동민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발가벗은 몸이 흔들릴 때마다 보지 속에 갇힌 자지가 갈피를 못 잡고 휘말린다.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린다. 엉덩이를 들어 올린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 내린다. 보지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 자지가 치골까지 잇닿는다. 순간 그녀가 동민의 가슴에 손바닥을 짚고 바들바들 떤다.
“하 앗! 난 몰라. 너무 깊어........”
“찌걱. 찌걱. 쩌 억..........”
보지속의 진액이 윤활유처럼 끈적끈적한 소리를 흘려내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허리를 뒤튼다. 정희는 죽어도 좋을 만큼 쾌감을 느껴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멎을 것 같은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스스로 몸을 치솟았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보지 속에 박힌 자지가 짓이겨진다. 거친 숨을 내뱉는 동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침대 머리에 등을 대고 앉았다.
“아 항, 주, 죽겠어. 조금만........”
동민은 목덜미를 끌어안는 정희를 허벅지위에 앉혔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앉은 자세이다. 여전히 골반을 들어 올리며 비트는 정희가 묘한 눈빛으로 눈을 흘긴다. 자지가 박힌 보지 속이 뜨거운 열탕으로 변한다.
“하 으. 아 하.........”
“헛. 아흐......”
“찌 걱, 찌그덕. 찌걱.........”
땀방울과 진액이 밀리는 소리. 살갗 부딪는 소리. 공란의 몸짓이 이어진다. 정희가 자신의 젖가슴을 쥐고 동민의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동민이 젖꼭지를 잘근거리며 씹는다. 정희가 별안간 동민을 밀어붙이며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린다.
“하 윽~!”
“허 억!”
동시에 신음을 터트린 동민이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알몸을 부둥켜안고 급히 숨을 들이 마신다. 보지 속에서 흘러나온 오르가즘의 진액이 페니스를 감싸고 절정에 도달한 페니스에서 용암 같은 분비물이 분수처럼 쏘아져 나온다. 정희는 뜨거운 액체가 자궁 속까지 스며드는 또 다른 엑스터시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자웅처럼 한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는 동민은 어린아이처럼 정희의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그들은 보지 속에 박힌 자지를, 자지를 감싸고 있는 보지에서 일어나는 나머지 성감까지 음미한다. 나른함에 젖은 정희가 쓰러지듯이 동민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옆에 누웠다.
광란에 뒤이어 오는 적막감. 그것이 어쩌면 환희인지도 모른다. 남자나 여자나 성교 후에 오는 나른함과 아늑함에서 또 다른 욕망에 젖는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고독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고독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침묵을 지키던 정희가 읊조리듯이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떡하니?”
“임신........!?”
“난, 내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더 행복해지고 싶어.”
“그건, 살아온 인생을 후회한다는 말인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과거를 잊고 싶어. 동민이 너, 나하고 살래?”
“이모가 그럴 수 있어!?”
“음! 가능하다면.........”
정희의 말을 들은 동민은 곰곰이 생각한다. 동민도 정희에게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연약한 정희에게 연빈의 정을 느낀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을 수는 없다. 사람에게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한다. 상황에 따라서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그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문득 동민은 애잔하게 생각하는 정희에게 마지막 참회의 기회를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녀가 진정 과거를 후회하는 인간의 애정이 남아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침을 꿀꺽 삼킨 동민이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민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가 마주보며 가슴을 파고든다.
“나, 어떡하니?”
“왜.......!?”
“네가 너무 좋아.”
“내가 그렇게 좋아? 섹스 때문에?”
곱게 눈을 흘긴 정희가 동민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마치 작품을 감상하듯이 빤히 쳐다본다. 동민이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정에 이끌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눈썹이 가늘게 떨리던 그녀가 종알거린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네 옆에 있으면 편해.”
“그게 진심이야?”
“응!”
“내 진심을 말해 줄까?”
“말해 봐.”
동민이 소리 없이 숨을 내쉬었다.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동민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잘못하면 계획이 틀어지고 집안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고 어차피 닥쳐야 할 일들이었다. 이를 깨물어 결심을 한 동민이 입을 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아버지 회사를 인수 받을 거야. 그것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어머니는.......!?”
정희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그녀는 내심 후회스러웠던 지난일이 떠올려졌다. 동민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는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물론 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저지른 일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종용대로 결혼을 하고 언니의 뜻에 따라 이혼을 하고 보니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정말 동민이 좋았고 다시는 언니의 인생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동민이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뚫어지게 정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정희는 동민의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설마 동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연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소름이 돋은 정희는 침대모포를 끌어 당겨 앞가슴을 가렸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동민이 말을 이었다.
“난,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 가셨는지 알고 있어.”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계획적으로 이모한테 접근했어.”
“뭐라고........! 네가 어떻게?”
“이모가 싫은 건 아니야. 그렇지만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을 수 없어.”
동민은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모니터 전원을 켜고 좌판을 두들긴다. 마우스로 클릭을 하며 화면을 조정하니 영상이 펼쳐졌다. 바로 전에 정희가 동민의 방으로 들어와서 정사를 펼치는 장면이었다. 발가벗은 남녀가 하나가 되어 뒹구는 끈끈한 장면들이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정희가 하얗게 질리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네가 어떻게.......”
“이것을 가족이나 주변에 유포시키면 어떻게 될까?”
“도, 동민아. 아. 안 돼........”
“안 된다고.”
“너, 넌 악마야. 어떻게 이럴 수가.......”
기겁을 한 정희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동민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이렇도록 동민이 잔인할 줄은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욱이나 아직 경제력이 없는 그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녀 스스로 동민의 방을 찾아와 불륜의 정사를 벌였다고 식구들이 안다면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이 초래 될 것은 뻔하다. 그리고 회사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동민은 얼음처럼 찬 미소를 흘렸다.
“내가 악마라고! 나보다 더 독한 악마를 보여줄까.”
동민이 다른 아이콘을 클릭하고 화면을 조정했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영상에는 명희가 잠 옷차림으로 동민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발가벗은 두 남녀가 말없이 하나가 되어 정사를 펼친다. 표정 변화 없이 동민이 희죽 웃었다.
“당신 언니는 나를 이용하려고 내 방까지 찾아 왔어.”
“언니가, 그럴 수가.......!”
“그뿐인 줄 알아.......”
동민은 호텔에서 도청했던 CD를 컴퓨터에 넣어 작동시켰다. 벌거벗은 알몸으로 명희가 체격이 우람 한 남자와 엉키어 정사를 갖는 영상. 남자 가슴에 깔린 명희의 모습을 보는 정희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화면을 정지시키고 동민이 돌아섰다.
“너희들이 내 어머니도 이렇게 만들었지?”
“아, 아니야! 나는 아니야. 언니 말을 듣고 호텔까지 데리고 갔을 뿐이야.”
“아니라고! 너희들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할까?”
“도, 동민아! 그러지 마.”
사색이 된 정희가 침대위에서 넘어지듯이 내려왔다. 앞가슴을 감추고 있던 모포가 미끄러져 내려가고 그녀는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자신의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는 동민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나도 언니가 이제는 지겨워. 넌 그래도 날 사랑스럽다고 했잖아. 내가 싫어.”
“난 이모가 싫지는 않아. 하지만 어머님을 잊을 수는 없어. 어머님이 어떻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나도 잘 몰라. 절벽에서 차가 미끄러졌다는 것 밖에.”
“모른다고! 그게 진심이야?”
정희가 동민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였다. 동민은 조금 전까지 만해도 성욕을 참지 못하던 그녀가 측은해 보였다. 정희의 눈동자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나중에, 나중에 들은 말인데 형부는 절벽으로 미끄러지는 운전석에서 튀어 나왔다고 그랬어. 모두 언니와 형부가 꾸민 짓이야. 난 정말 후회스러워.”
“그 말이 진실이지.......!?”
“날 믿어 줘. 난 더 이상 언니 꼭두각시가 아니야. 여기서 멀지 않아 독립해 나갈 거야.”
동민은 더 이상 정희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이 약한 정희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민은 무릎을 꿇고 있는 정희의 어깨를 껴안아 일으켜 세웠다. 울먹이는 정희가 쓰러지듯이 동민의 가슴에 안겼다. 동민은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가서 눕혔다. 침대 모포를 끌어 당겨 그녀와 자신의 몸을 덮은 동민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인생이 무엇인지 회한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흐느끼듯이 울먹이던 그녀가 동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를 껴안은 동민이 어깨를 토닥였다. 격렬한 정사와 감정어린 순간이 지나고 침대등불이 가물거리는 침묵이 이어졌다. 동민이 그녀를 바라보니 눈물로 얼룩진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정희가 눈을 뜬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동민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화들짝 놀라 침대위에서 내려왔다. 지난밤이 꿈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동민을 내려다보다가 모포를 당겨 덮어 주었다.
조심스럽게 동민의 방을 나서던 그녀는 기겁을 했다. 세면장에서 나오던 명희가 버티고 서서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정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침착해야한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태연하게 세면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명희가 차갑게 쏘아붙인다.
“넌 새벽부터 동민이 방에는 왜 들어갔니?”
“음! 복사용지가 모자라서.”
“밤새도록 일했단 말이야?”
“아니 자고 일찍 일어났어.”
명희는 아무래도 정희의 모습이 미심쩍었다. 잠결에 소변을 보고 나오던 그녀도 놀랜 것이다. 어쩌면 도독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동민과 정사를 했던 명희는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잠옷을 걸친 정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확증이 없는데 정희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박 이사한테 시집이나 가!”
“나더러 늙은 홀아비에게 기라고! 동생을 생각하는 말이야?”
정희는 회사 내의 박 이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상처한지 이년이 지나고 자식은 외국유학을 가서 혼자 사는 육십이 가까운 남자였다. 명희가 몇 번 권하던 남자였다. 어처구니없는 정희는 표독스럽게 바라보는 명희를 조금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명희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정희의 또 다른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명희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돈다.
“그럼 네 처지에 총각한테 시집갈래.”
“내 처지가 어때서!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마.”
“상관 말라고!? 지금까지 네가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살긴! 언니 말대로 살다가 이 모양이라는 걸 몰라.”
“너 말 다했니?”
“이제는 언니 꼭두각시가 아니니, 말하고 싶지 않아.”
정희는 정색을 하고 이층 계단을 올라갔다. 화가 치민 명희는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정희의 뒷모습을 본다. 성질을 참지 못하는 명희는 파르르 떨다가 동민의 방문을 노려본다. 한동안 파랗게 질려 있던 명희가 안방 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간다. 잠들어 있던 동민이 여자들의 높은 언성에 눈을 뜨고 있었다. 한 숨을 길게 내쉰 동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고 호텔에서 도청한 카메라에서 인화한 사진들을 꺼냈다. 침대에서 발가벗은 남자와 명희가 엉키어 있는 정사장면들이다. 좌판을 두들겨 만들어 낸 메모를 프린트로 뽑아낸다. 사진들과 메모를 넣고 봉함을 한 각봉투를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아침 식탁을 마주한 식구들 사이에는 냉랭함이 깃들었다. 다만 명희는 오늘따라 유난히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친절함을 과시한다. 정희는 동민의 표정을 살피느라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항상 철없는 소녀처럼 재잘거리던 경미조차 시큰둥하게 식사를 하다가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집안의 황제처럼 군림하는 지성국은 이따금 기침을 하다가 통증을 느끼고 가슴을 두드린다.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선 동민은 퀵서비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캠퍼스로 향했다. 동민이 퀵서비스로 보낸 각봉투는 친전으로 아버지에게 보낸 것이다. 지성국이 퀵서비스 배달을 받은 시간은 점심식사 시간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물품 제조 회사 사장과 미팅 약속이 있어 사장실을 나서는 지성국에게 비서가 배달된 물건을 전달했다.
각봉투를 받아든 지성국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발신자의 이름도 없는 봉투 겉면에는 붉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무심코 봉투를 뜯었던 지성국은 책상을 짚고 현기증을 느꼈다. 책상을 짚고 서 있던 그는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발가벗은 명희와 낯선 남자가 침대위에 엉키어 있는 사진을 보는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진과 함께 있는 메모를 펴 들었다.
[당신의 아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는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요즘 당신의 아내가 임원진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겠지요. 차후 연락하겠으니 더 필요한 사진들이 있으면 말씀 하십시오. 그럼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메모를 읽는 지성국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문득 죽은 전처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자신의 욕망으로 시작 된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명희를 만나고부터 시작된 일들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명희에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에는 핏발이 섰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비서실의 인터폰을 누른 그는 소파 옆의 탁자 서랍에서 약병을 꺼내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 움큼 꺼내 입속으로 털어 넣는다. 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들어선다. 지성국이 처갓집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심복이다. 지성국의 파리한 얼굴빛을 보고 강 실장이 급하게 다가온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음! 조금........! 오늘 미팅 다음으로 연기하도록 해.”
“네. 왜 그러신데요?”
“나중에 말할게. 지금 병원부터 다녀와야겠어.”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지성국을 강 실장이 부축한다. 지성국은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강 실장이 부축하고 나오는 지성국을 보고 비서실에 있던 두 여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도 지성국은 여비서들에게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병원으로 간 지성국은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임시병실에서 처방된 링거액을 맞았다. 침상에 누워 지난 시간과 앞으로 대처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남다른 욕망으로 살아왔기에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지만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건강이 문제이고 회사의 앞날에 대한 애착심은 포기 할 수가 없었다.
지성국이 병실에 있는 시간에 동민은 박 기사로부터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성국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회사에 잠시 들려 강 실장에게 모종의 지시를 하고 그는 곧장 집으로 퇴근했다. 그를 마지 한 것은 동민과 가정부였다. 가정부가 있어서인지 명희는 외출해서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을 때 뒤늦게 이층에서 정희와 경미가 내려 와서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예전과 달리 전혀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던 지성국은 가정부에게 와인을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 동민은 자신의 방에서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심각하게 긴장하고 있는 동민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에 길게 숨을 들이킨다. 지성국이 천천히 와인을 두 잔째 마실 때 현관문이 열리고 명희가 들어섰다. 지성국이 외인을 마시는 모습에 명희는 깜짝 놀란다.
“아니, 여보! 건강에도 안 좋은데 왠 술을 마시세요?”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해.”
냉랭한 표정을 한 지성국이 명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들었던 잔의 와인을 마신다. 왠지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함을 느끼며 명희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서 지성국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걸터앉은 지성국은 옷을 갈아입는 명희를 뚫어지게 노려본다.
“어디 다녀 온 거야?”
“늦어서 미안해요. 동창들 만났어요.”
사실 박 이사와 식사를 하고 온 명희는 지성국의 물음에 뜨끔했다.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이 된 명희가 셔츠와 스커트로 갈아입는다. 지성국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회사에서 받았던 메모를 생각하는 지성국은 그녀가 어떤 놈의 품에 안겼다가 온 것이라고 상상한다.
“요즘 임원들을 만나고 다닌다면서?”
“무슨 말씀예요? 만날 수는 있지만 업무상 만나는 거지요.”
“업무상이라고! 형식상 직책으로 월급만 타는 당신이 해야 할 업무가 뭐야?”
“그냥 당신 도와주려고 인사치례지요. 당신 오늘 이상하네요.”
옷을 갈아입은 명희는 그래도 거짓말이 들어나는 것 같아 정색을 한다. 그녀는 지성국을 외면하고 방을 나갔다. 분통을 참느라고 얼굴이 벌겋게 된 지성국이 들고 들어왔던 가방에서 각봉투를 꺼냈다. 그것은 회사에서 퀵서비스로 받은 것이다. 한숨을 내쉰 그는 그녀를 따라 거실로 나왔다. 되도록 침착하려던 그의 언성이 높게 나왔다.
“무슨 짓이야. 내가 말하면 듣고 나와야지.”
“여기서 말씀하세요.”
명희는 아무래도 둘만의 공간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약점이 들어 날 것 같았다. 지성국이 술을 마셔서 흥분하는 것 같아 그녀는 집안 식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공연히 두려운 느낌이 드는 명희는 새치름하게 소파에 앉았다. 지성국이 그녀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이집으로 들어와서 뭐가 부족했어?”
“부족하기는요!? 당신 덕분에 편해요.”
“그런데 딴 짓을 하고 다녀?”
“딴 짓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에요?”
“그렇게도 남자가 그리웠어. 갈보 같은 년!”
“네.......!? 어떻게 그런 말을.......”
명희는 갑작스런 욕설에 놀랍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로 바라보는 지성국과 명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기에 이층에서 경미와 정희가 내려왔다.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들은 마주앉은 지성국과 명희의 험악한 분위기를 느끼고 멈추어 섰다. 지성국이 들고 나온 각봉투 탁자위에 놓았다.
“내가 출방 다녀 온 날. 어디 있었어?”
“어디 있긴요!? 집에 있었는데요.”
대답을 하지만 명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를 쳐다보는 지성국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당장 후려치고 싶은 심정에 자성국의 안면이 실룩 거렸다. 지성국의 험악하게 변하는 표정을 본 명희는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 할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바라보고 있는 동생 정희를 향했다. 경미는 아직 상황을 모르지만 정희는 그래도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졌다.
“정희야! 그날 나 집에 있었잖아?”
“아니 난 자느라고 모르겠는데.”
잠시 여유를 두지 않고 정희가 대답했다. 명희는 믿었던 정희의 말에 분노가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절망감 같은 것이었다. 명희의 시선이 경미를 향했다. 그래도 자신의 자식이니 엄마 편을 들어 주리라 명희는 생각한다.
“경미! 너는 엄마와 같이 있었잖아?”
경미는 갑작스런 물음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엄마가 무슨 뜻으로 물어 보는지도 의붓아버지와 엄마가 왜 다투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의미를 모르는 경미가 우물쭈물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엄마가 그날 외출해서 언제 들어 왔는지 모르는데.......”
“뭐라고!? 이것들이.......”
들어봐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지성국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변명을 듣고 있던 지성국이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탁자위에 팽개쳤다. 발가벗은 남녀가 엉켜있는 탁자위에 놓인 사진들. 다름이 나이라 남자에게 안겨있는 여자는 명희였다. 사진을 집어 드는 명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음........!? 이건 조작이야. 조작.......”
“조작이라고!? 이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군. 최명희라는 여자가 이런 여자인줄 이제 알게 된 내가 바보지. 더러운 년!”
“여, 여보! 내 말을 믿어 줘. 이건 음모야.”
명희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 돼가고 있었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일, 비밀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더 이상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소파에서 일어난 명희는 지성국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 가식인지 진실인지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여보! 당신 나를 사랑하잖아.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사랑!? 늙어 가면서 무슨 사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추한 꼴 보기 전에 각자의 인생을 가자고!”
단호하게 내뱉은 지성국은 명희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그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바라보고 있던 정희와 경미는 침울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간다. 전주댁은 가정부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전주댁은 식탁 앞에 앉는 정희와 경미를 보고 그제야 식사준비를 한다.
거실에 혼자 남은 명희는 북받치는 설움에 꺼져가는 목소리로 흐느껴 운다. 하루 아침에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고 외딴 도시에 홀로 남겨진 심정이었다. 서럽게 울던 명희는 지성국의 마음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지성국의 너무나도 잔인하고도 냉정한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지성국 못지않게 욕망이 많은 여자이다.------
“하 으. 으 으. 하 아. 미, 미치겠어.”
“찌걱. 찌걱. 쩌 걱.........”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드나들 때마다 끈적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깊이 박혀진 상태에서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붉게 달아오른 눈빛으로 뒤를 돌아 본 그녀가 침대에 팔을 지탱하고 둔부를 들어 올린다.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깊이 박아 넣었다.
“하 악~! 너, 너무해. 하 으........”
“왜 싫어?”
“아니, 아니 너무 좋아. 하 앙........”
정희는 페니스가 치골까지 잇닿는 옅은 통증과 함께 지지러지는 쾌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좋을 만큼 격렬한 쾌감에 그녀는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다시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밀려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펌프질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보지 속에서 뿌연 진액이 삐져나왔다.
“하 으. 으 앙. 으 으. 어떡해........”
두부처럼 흔들리는 정희의 둔부, 흔들거리는 젖가슴, 엉덩이와 하복부가 부딪는 소리, 그리고 숨 막힐 듯이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짐승이 교미를 하는 모습이었다. 땀방울이 흥건하게 맺히고 동민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격렬한 엑스터시에 빠져든 정희도 현기증마저 느꼈다. 보지 속에 박힌 페니스를 쑥 뽑아내고 동민이 침대위에 벌렁 누웠다. 한창 쾌감의 늪에 빠졌던 그녀가 신음을 터트린다.
“하 으! 난 몰라. 안 돼.”
입술을 깨문 정희가 동민의 허벅지를 타고 앉았다. 그녀는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 위로 치솟은 페니스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본다. 그녀는 힘줄까지 솟아 용솟음치는 자지를 움켜쥐고 보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람한 페니스가 그녀의 보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는 다급하게 둔부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앉으며 허리를 비튼다.
“도, 동민아. 주, 죽겠어. 아 하, 난 몰라.”
앞뒤로 허리를 흔드는 정희는 탕녀처럼 요염한 눈빛으로 동민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발가벗은 몸이 흔들릴 때마다 보지 속에 갇힌 자지가 갈피를 못 잡고 휘말린다.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린다. 엉덩이를 들어 올린 동민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 내린다. 보지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 자지가 치골까지 잇닿는다. 순간 그녀가 동민의 가슴에 손바닥을 짚고 바들바들 떤다.
“하 앗! 난 몰라. 너무 깊어........”
“찌걱. 찌걱. 쩌 억..........”
보지속의 진액이 윤활유처럼 끈적끈적한 소리를 흘려내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허리를 뒤튼다. 정희는 죽어도 좋을 만큼 쾌감을 느껴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멎을 것 같은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스스로 몸을 치솟았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보지 속에 박힌 자지가 짓이겨진다. 거친 숨을 내뱉는 동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침대 머리에 등을 대고 앉았다.
“아 항, 주, 죽겠어. 조금만........”
동민은 목덜미를 끌어안는 정희를 허벅지위에 앉혔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앉은 자세이다. 여전히 골반을 들어 올리며 비트는 정희가 묘한 눈빛으로 눈을 흘긴다. 자지가 박힌 보지 속이 뜨거운 열탕으로 변한다.
“하 으. 아 하.........”
“헛. 아흐......”
“찌 걱, 찌그덕. 찌걱.........”
땀방울과 진액이 밀리는 소리. 살갗 부딪는 소리. 공란의 몸짓이 이어진다. 정희가 자신의 젖가슴을 쥐고 동민의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동민이 젖꼭지를 잘근거리며 씹는다. 정희가 별안간 동민을 밀어붙이며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린다.
“하 윽~!”
“허 억!”
동시에 신음을 터트린 동민이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알몸을 부둥켜안고 급히 숨을 들이 마신다. 보지 속에서 흘러나온 오르가즘의 진액이 페니스를 감싸고 절정에 도달한 페니스에서 용암 같은 분비물이 분수처럼 쏘아져 나온다. 정희는 뜨거운 액체가 자궁 속까지 스며드는 또 다른 엑스터시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자웅처럼 한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는 동민은 어린아이처럼 정희의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그들은 보지 속에 박힌 자지를, 자지를 감싸고 있는 보지에서 일어나는 나머지 성감까지 음미한다. 나른함에 젖은 정희가 쓰러지듯이 동민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옆에 누웠다.
광란에 뒤이어 오는 적막감. 그것이 어쩌면 환희인지도 모른다. 남자나 여자나 성교 후에 오는 나른함과 아늑함에서 또 다른 욕망에 젖는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고독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고독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침묵을 지키던 정희가 읊조리듯이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떡하니?”
“임신........!?”
“난, 내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더 행복해지고 싶어.”
“그건, 살아온 인생을 후회한다는 말인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과거를 잊고 싶어. 동민이 너, 나하고 살래?”
“이모가 그럴 수 있어!?”
“음! 가능하다면.........”
정희의 말을 들은 동민은 곰곰이 생각한다. 동민도 정희에게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연약한 정희에게 연빈의 정을 느낀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을 수는 없다. 사람에게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한다. 상황에 따라서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그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문득 동민은 애잔하게 생각하는 정희에게 마지막 참회의 기회를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녀가 진정 과거를 후회하는 인간의 애정이 남아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침을 꿀꺽 삼킨 동민이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민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가 마주보며 가슴을 파고든다.
“나, 어떡하니?”
“왜.......!?”
“네가 너무 좋아.”
“내가 그렇게 좋아? 섹스 때문에?”
곱게 눈을 흘긴 정희가 동민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마치 작품을 감상하듯이 빤히 쳐다본다. 동민이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정에 이끌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눈썹이 가늘게 떨리던 그녀가 종알거린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네 옆에 있으면 편해.”
“그게 진심이야?”
“응!”
“내 진심을 말해 줄까?”
“말해 봐.”
동민이 소리 없이 숨을 내쉬었다.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동민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잘못하면 계획이 틀어지고 집안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고 어차피 닥쳐야 할 일들이었다. 이를 깨물어 결심을 한 동민이 입을 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아버지 회사를 인수 받을 거야. 그것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어머니는.......!?”
정희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그녀는 내심 후회스러웠던 지난일이 떠올려졌다. 동민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는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물론 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저지른 일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종용대로 결혼을 하고 언니의 뜻에 따라 이혼을 하고 보니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정말 동민이 좋았고 다시는 언니의 인생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동민이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뚫어지게 정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정희는 동민의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설마 동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연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소름이 돋은 정희는 침대모포를 끌어 당겨 앞가슴을 가렸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동민이 말을 이었다.
“난,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 가셨는지 알고 있어.”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계획적으로 이모한테 접근했어.”
“뭐라고........! 네가 어떻게?”
“이모가 싫은 건 아니야. 그렇지만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을 수 없어.”
동민은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모니터 전원을 켜고 좌판을 두들긴다. 마우스로 클릭을 하며 화면을 조정하니 영상이 펼쳐졌다. 바로 전에 정희가 동민의 방으로 들어와서 정사를 펼치는 장면이었다. 발가벗은 남녀가 하나가 되어 뒹구는 끈끈한 장면들이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정희가 하얗게 질리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네가 어떻게.......”
“이것을 가족이나 주변에 유포시키면 어떻게 될까?”
“도, 동민아. 아. 안 돼........”
“안 된다고.”
“너, 넌 악마야. 어떻게 이럴 수가.......”
기겁을 한 정희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동민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이렇도록 동민이 잔인할 줄은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욱이나 아직 경제력이 없는 그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녀 스스로 동민의 방을 찾아와 불륜의 정사를 벌였다고 식구들이 안다면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이 초래 될 것은 뻔하다. 그리고 회사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동민은 얼음처럼 찬 미소를 흘렸다.
“내가 악마라고! 나보다 더 독한 악마를 보여줄까.”
동민이 다른 아이콘을 클릭하고 화면을 조정했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영상에는 명희가 잠 옷차림으로 동민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발가벗은 두 남녀가 말없이 하나가 되어 정사를 펼친다. 표정 변화 없이 동민이 희죽 웃었다.
“당신 언니는 나를 이용하려고 내 방까지 찾아 왔어.”
“언니가, 그럴 수가.......!”
“그뿐인 줄 알아.......”
동민은 호텔에서 도청했던 CD를 컴퓨터에 넣어 작동시켰다. 벌거벗은 알몸으로 명희가 체격이 우람 한 남자와 엉키어 정사를 갖는 영상. 남자 가슴에 깔린 명희의 모습을 보는 정희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화면을 정지시키고 동민이 돌아섰다.
“너희들이 내 어머니도 이렇게 만들었지?”
“아, 아니야! 나는 아니야. 언니 말을 듣고 호텔까지 데리고 갔을 뿐이야.”
“아니라고! 너희들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할까?”
“도, 동민아! 그러지 마.”
사색이 된 정희가 침대위에서 넘어지듯이 내려왔다. 앞가슴을 감추고 있던 모포가 미끄러져 내려가고 그녀는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자신의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는 동민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나도 언니가 이제는 지겨워. 넌 그래도 날 사랑스럽다고 했잖아. 내가 싫어.”
“난 이모가 싫지는 않아. 하지만 어머님을 잊을 수는 없어. 어머님이 어떻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나도 잘 몰라. 절벽에서 차가 미끄러졌다는 것 밖에.”
“모른다고! 그게 진심이야?”
정희가 동민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였다. 동민은 조금 전까지 만해도 성욕을 참지 못하던 그녀가 측은해 보였다. 정희의 눈동자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나중에, 나중에 들은 말인데 형부는 절벽으로 미끄러지는 운전석에서 튀어 나왔다고 그랬어. 모두 언니와 형부가 꾸민 짓이야. 난 정말 후회스러워.”
“그 말이 진실이지.......!?”
“날 믿어 줘. 난 더 이상 언니 꼭두각시가 아니야. 여기서 멀지 않아 독립해 나갈 거야.”
동민은 더 이상 정희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이 약한 정희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민은 무릎을 꿇고 있는 정희의 어깨를 껴안아 일으켜 세웠다. 울먹이는 정희가 쓰러지듯이 동민의 가슴에 안겼다. 동민은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가서 눕혔다. 침대 모포를 끌어 당겨 그녀와 자신의 몸을 덮은 동민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인생이 무엇인지 회한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흐느끼듯이 울먹이던 그녀가 동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를 껴안은 동민이 어깨를 토닥였다. 격렬한 정사와 감정어린 순간이 지나고 침대등불이 가물거리는 침묵이 이어졌다. 동민이 그녀를 바라보니 눈물로 얼룩진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정희가 눈을 뜬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동민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화들짝 놀라 침대위에서 내려왔다. 지난밤이 꿈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동민을 내려다보다가 모포를 당겨 덮어 주었다.
조심스럽게 동민의 방을 나서던 그녀는 기겁을 했다. 세면장에서 나오던 명희가 버티고 서서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정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침착해야한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태연하게 세면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명희가 차갑게 쏘아붙인다.
“넌 새벽부터 동민이 방에는 왜 들어갔니?”
“음! 복사용지가 모자라서.”
“밤새도록 일했단 말이야?”
“아니 자고 일찍 일어났어.”
명희는 아무래도 정희의 모습이 미심쩍었다. 잠결에 소변을 보고 나오던 그녀도 놀랜 것이다. 어쩌면 도독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동민과 정사를 했던 명희는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잠옷을 걸친 정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확증이 없는데 정희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박 이사한테 시집이나 가!”
“나더러 늙은 홀아비에게 기라고! 동생을 생각하는 말이야?”
정희는 회사 내의 박 이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상처한지 이년이 지나고 자식은 외국유학을 가서 혼자 사는 육십이 가까운 남자였다. 명희가 몇 번 권하던 남자였다. 어처구니없는 정희는 표독스럽게 바라보는 명희를 조금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명희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정희의 또 다른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명희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돈다.
“그럼 네 처지에 총각한테 시집갈래.”
“내 처지가 어때서!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마.”
“상관 말라고!? 지금까지 네가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살긴! 언니 말대로 살다가 이 모양이라는 걸 몰라.”
“너 말 다했니?”
“이제는 언니 꼭두각시가 아니니, 말하고 싶지 않아.”
정희는 정색을 하고 이층 계단을 올라갔다. 화가 치민 명희는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정희의 뒷모습을 본다. 성질을 참지 못하는 명희는 파르르 떨다가 동민의 방문을 노려본다. 한동안 파랗게 질려 있던 명희가 안방 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간다. 잠들어 있던 동민이 여자들의 높은 언성에 눈을 뜨고 있었다. 한 숨을 길게 내쉰 동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고 호텔에서 도청한 카메라에서 인화한 사진들을 꺼냈다. 침대에서 발가벗은 남자와 명희가 엉키어 있는 정사장면들이다. 좌판을 두들겨 만들어 낸 메모를 프린트로 뽑아낸다. 사진들과 메모를 넣고 봉함을 한 각봉투를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아침 식탁을 마주한 식구들 사이에는 냉랭함이 깃들었다. 다만 명희는 오늘따라 유난히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친절함을 과시한다. 정희는 동민의 표정을 살피느라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항상 철없는 소녀처럼 재잘거리던 경미조차 시큰둥하게 식사를 하다가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집안의 황제처럼 군림하는 지성국은 이따금 기침을 하다가 통증을 느끼고 가슴을 두드린다.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선 동민은 퀵서비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캠퍼스로 향했다. 동민이 퀵서비스로 보낸 각봉투는 친전으로 아버지에게 보낸 것이다. 지성국이 퀵서비스 배달을 받은 시간은 점심식사 시간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물품 제조 회사 사장과 미팅 약속이 있어 사장실을 나서는 지성국에게 비서가 배달된 물건을 전달했다.
각봉투를 받아든 지성국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발신자의 이름도 없는 봉투 겉면에는 붉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무심코 봉투를 뜯었던 지성국은 책상을 짚고 현기증을 느꼈다. 책상을 짚고 서 있던 그는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발가벗은 명희와 낯선 남자가 침대위에 엉키어 있는 사진을 보는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진과 함께 있는 메모를 펴 들었다.
[당신의 아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는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요즘 당신의 아내가 임원진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겠지요. 차후 연락하겠으니 더 필요한 사진들이 있으면 말씀 하십시오. 그럼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메모를 읽는 지성국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문득 죽은 전처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자신의 욕망으로 시작 된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명희를 만나고부터 시작된 일들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명희에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에는 핏발이 섰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비서실의 인터폰을 누른 그는 소파 옆의 탁자 서랍에서 약병을 꺼내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 움큼 꺼내 입속으로 털어 넣는다. 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들어선다. 지성국이 처갓집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심복이다. 지성국의 파리한 얼굴빛을 보고 강 실장이 급하게 다가온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음! 조금........! 오늘 미팅 다음으로 연기하도록 해.”
“네. 왜 그러신데요?”
“나중에 말할게. 지금 병원부터 다녀와야겠어.”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지성국을 강 실장이 부축한다. 지성국은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강 실장이 부축하고 나오는 지성국을 보고 비서실에 있던 두 여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도 지성국은 여비서들에게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병원으로 간 지성국은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임시병실에서 처방된 링거액을 맞았다. 침상에 누워 지난 시간과 앞으로 대처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남다른 욕망으로 살아왔기에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지만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건강이 문제이고 회사의 앞날에 대한 애착심은 포기 할 수가 없었다.
지성국이 병실에 있는 시간에 동민은 박 기사로부터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성국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회사에 잠시 들려 강 실장에게 모종의 지시를 하고 그는 곧장 집으로 퇴근했다. 그를 마지 한 것은 동민과 가정부였다. 가정부가 있어서인지 명희는 외출해서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을 때 뒤늦게 이층에서 정희와 경미가 내려 와서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예전과 달리 전혀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던 지성국은 가정부에게 와인을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 동민은 자신의 방에서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심각하게 긴장하고 있는 동민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에 길게 숨을 들이킨다. 지성국이 천천히 와인을 두 잔째 마실 때 현관문이 열리고 명희가 들어섰다. 지성국이 외인을 마시는 모습에 명희는 깜짝 놀란다.
“아니, 여보! 건강에도 안 좋은데 왠 술을 마시세요?”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해.”
냉랭한 표정을 한 지성국이 명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들었던 잔의 와인을 마신다. 왠지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함을 느끼며 명희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서 지성국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걸터앉은 지성국은 옷을 갈아입는 명희를 뚫어지게 노려본다.
“어디 다녀 온 거야?”
“늦어서 미안해요. 동창들 만났어요.”
사실 박 이사와 식사를 하고 온 명희는 지성국의 물음에 뜨끔했다.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이 된 명희가 셔츠와 스커트로 갈아입는다. 지성국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회사에서 받았던 메모를 생각하는 지성국은 그녀가 어떤 놈의 품에 안겼다가 온 것이라고 상상한다.
“요즘 임원들을 만나고 다닌다면서?”
“무슨 말씀예요? 만날 수는 있지만 업무상 만나는 거지요.”
“업무상이라고! 형식상 직책으로 월급만 타는 당신이 해야 할 업무가 뭐야?”
“그냥 당신 도와주려고 인사치례지요. 당신 오늘 이상하네요.”
옷을 갈아입은 명희는 그래도 거짓말이 들어나는 것 같아 정색을 한다. 그녀는 지성국을 외면하고 방을 나갔다. 분통을 참느라고 얼굴이 벌겋게 된 지성국이 들고 들어왔던 가방에서 각봉투를 꺼냈다. 그것은 회사에서 퀵서비스로 받은 것이다. 한숨을 내쉰 그는 그녀를 따라 거실로 나왔다. 되도록 침착하려던 그의 언성이 높게 나왔다.
“무슨 짓이야. 내가 말하면 듣고 나와야지.”
“여기서 말씀하세요.”
명희는 아무래도 둘만의 공간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약점이 들어 날 것 같았다. 지성국이 술을 마셔서 흥분하는 것 같아 그녀는 집안 식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공연히 두려운 느낌이 드는 명희는 새치름하게 소파에 앉았다. 지성국이 그녀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이집으로 들어와서 뭐가 부족했어?”
“부족하기는요!? 당신 덕분에 편해요.”
“그런데 딴 짓을 하고 다녀?”
“딴 짓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에요?”
“그렇게도 남자가 그리웠어. 갈보 같은 년!”
“네.......!? 어떻게 그런 말을.......”
명희는 갑작스런 욕설에 놀랍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로 바라보는 지성국과 명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기에 이층에서 경미와 정희가 내려왔다.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들은 마주앉은 지성국과 명희의 험악한 분위기를 느끼고 멈추어 섰다. 지성국이 들고 나온 각봉투 탁자위에 놓았다.
“내가 출방 다녀 온 날. 어디 있었어?”
“어디 있긴요!? 집에 있었는데요.”
대답을 하지만 명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를 쳐다보는 지성국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당장 후려치고 싶은 심정에 자성국의 안면이 실룩 거렸다. 지성국의 험악하게 변하는 표정을 본 명희는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 할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바라보고 있는 동생 정희를 향했다. 경미는 아직 상황을 모르지만 정희는 그래도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졌다.
“정희야! 그날 나 집에 있었잖아?”
“아니 난 자느라고 모르겠는데.”
잠시 여유를 두지 않고 정희가 대답했다. 명희는 믿었던 정희의 말에 분노가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절망감 같은 것이었다. 명희의 시선이 경미를 향했다. 그래도 자신의 자식이니 엄마 편을 들어 주리라 명희는 생각한다.
“경미! 너는 엄마와 같이 있었잖아?”
경미는 갑작스런 물음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엄마가 무슨 뜻으로 물어 보는지도 의붓아버지와 엄마가 왜 다투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의미를 모르는 경미가 우물쭈물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엄마가 그날 외출해서 언제 들어 왔는지 모르는데.......”
“뭐라고!? 이것들이.......”
들어봐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지성국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변명을 듣고 있던 지성국이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탁자위에 팽개쳤다. 발가벗은 남녀가 엉켜있는 탁자위에 놓인 사진들. 다름이 나이라 남자에게 안겨있는 여자는 명희였다. 사진을 집어 드는 명희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음........!? 이건 조작이야. 조작.......”
“조작이라고!? 이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군. 최명희라는 여자가 이런 여자인줄 이제 알게 된 내가 바보지. 더러운 년!”
“여, 여보! 내 말을 믿어 줘. 이건 음모야.”
명희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 돼가고 있었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일, 비밀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더 이상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소파에서 일어난 명희는 지성국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 가식인지 진실인지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여보! 당신 나를 사랑하잖아.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사랑!? 늙어 가면서 무슨 사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추한 꼴 보기 전에 각자의 인생을 가자고!”
단호하게 내뱉은 지성국은 명희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그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바라보고 있던 정희와 경미는 침울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간다. 전주댁은 가정부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전주댁은 식탁 앞에 앉는 정희와 경미를 보고 그제야 식사준비를 한다.
거실에 혼자 남은 명희는 북받치는 설움에 꺼져가는 목소리로 흐느껴 운다. 하루 아침에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고 외딴 도시에 홀로 남겨진 심정이었다. 서럽게 울던 명희는 지성국의 마음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지성국의 너무나도 잔인하고도 냉정한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지성국 못지않게 욕망이 많은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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