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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22 805회 0건
찬규는 동생 상욱을 대신해서 단순히 소희의 불행을 위안하거나 보상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에 대한 애착심이었다. 그녀는 마주한 그의 그윽한 눈빛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만은 도저히 용서 할 수는 없었다. 실내의 등불을 응시하는 그녀의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아주버니 말씀만 들어도 고마워요. 하지만 제가 받은 고통의 대가는 반듯이,,,,,,,,,”
“대가........!? 헤어질 생각이라도.......”
“아뇨! 제가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아요. 내가 보기 지겨울 정도로 버틸 거니까요. 영원히 저주하면서 내 삶을 찾을 테니까요.”

어금니를 깨무는 소희의 눈동자는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순수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소희의 또 다른 강인함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내면에 숨겨졌던 열정이 저주로 변해 이글거렸다. 소희가 자신의 격한 감정을 들어내 보인 사람은 찬규가 처음이었다. 가슴속에 일어나는 분노의 불꽃을 식히려는 듯이 그녀는 그라스에 남은 맥주를 들이마셨다. 찬규가 씁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제수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해야지요.”

“어떻게.......!? 아! 결혼 전에 연극 활동을 했었지?”
“네.......!”

“촉망받는 신인배우라고 시선을 받았던 것 같은데......”
“글쎄요. 꿈이 컸기에 노력은 했어요.”

소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사라져버렸던 희망들이 꿈틀거렸다. 요즘 찬규는 방송드라마와 연극의 테마음악을 작곡중이고, 오페라의 음악감독까지 맡고 있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연기자의 꿈을 갖고 있었던 소희는 문예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소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소희가 알고 있는 아주버니 찬규는 명성보다도 실력 있는 음악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찬규를 통해 는 그녀는 변하고 있는 문예계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밖에서 아주버니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술은 감정을 진정시켜 주기도 하고 도취감에 흥분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은밀했던 감정을 들어내 보이기도 한다. 둘만의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며 느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은 의외로 뜨거운 열정이었다.

그들이 카페를 나온 거리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우울했던 소희의 얼굴은 취기로 발그스름해져 있었다. 취기 탓인가, 아니면 찬규의 애정이 깃든 말을 상기하고 있는 탓인가. 그녀가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나란히 걷고 있던 찬규가 얼른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긴 속눈썹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상가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만이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것 같은 어색함에 소희는 쑥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소희는 고개를 까닥하여 찬규에게 인사를 하고 열린 문을 걸어 나갔다. 그런데 위층에서 내려야할 찬규도 소희를 따라 내렸다. 찬규는 현관 문 앞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찬규는 소희가 불행해질 만큼 어리석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수정 같은 현명함과 정열이 숨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가슴 속에서 관능적으로 타오르는 성적 매력까지 돋보이는 그녀였다. 그녀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찬규의 감정은 흔들리고 있었다.

더욱이나 대화를 통해 찬규는 소희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찬규의 감정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불쑥 애틋하게 보이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발목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스커트를 걸쳤지만, 날씬한 몸매에 아담한 그녀의 둔부가 무척 선정적이었다. 그는 그녀의 체취에 이끌리듯이 그녀의 등 뒤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현관문 앞에 다가선 소희가 등 뒤에 서있는 찬규를 의식하고 돌아보았다. 순간 그녀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서글서글한 눈빛을 의식했다. ‘저 눈빛은 너무 뜨거워. 나를 여자로 느끼는 눈빛이 분명해.......’ 정감으로 가득한 그의 야성미 넘치는 눈빛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발자국 다가선 그가 그녀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미안해. 제수씨!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 아뇨, 고마워요. 아주버님........”

어깨를 감싼 찬규의 손길과 눈빛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는 소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느끼는 그의 눈동자에는 남편의 형이 아닌 포근한 남자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찬규의 가슴속으로 당겨졌다. 순간 소희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술기운 탓인지 그녀는 그의 가슴속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옅은 술 냄새와 함께 그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젖어 들었다.

“제수씨가 불행해지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당신은....... 사랑하고 싶은 여자야.......”
“아주버니........”

사랑!?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동자를 올려다보는 소희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글거리는 눈빛, 열정으로 가득한 입술이 그녀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 어쩌려고........!? 속으로 외치는 소희는 갈팡질팡하였다. 찬규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위에 포개졌다. 당황하여 눈동자를 크게 뜬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사르르 눈을 감았다.

‘아, 아주버님! 저는........’ 거부해야 한다는 외침은 소희의 마음뿐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속에서도 그에 대한 연정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허리를 껴안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가슴에 갇혀 뜨거운 키스를 받아드린 그녀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소희의 손에 들렸던 장바구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를 껴안은 찬규의 손길이 그녀의 둔부를 보듬어 안고 당겼다. ‘아! 벗어나야하는데! 내가 왜 이러지!?’ 그녀는 그의 뜨거운 가슴속에 갈팡질팡하였다. 상대가 남편의 형이라는 윤리 의식과 거부할 수 없는 격정의 혼탁한 회오리 속에 빠져 든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여자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하복부에 잇닿은 열기에 그녀는 현기증을 느꼈다. 남편의 거친 스킨십과는 다른 뜨겁고 포근한 그의 열정에 그녀는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농도 깊은 키스를 하던 찬규의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어왔다. ‘아! 정말 안 되는데........’ 하지만 그녀는 그의 입속으로 혀가 빨려 들어가는 짜릿함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소희는 온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짜릿함에 파르르 떨었다. 아래층의 합기도 도장에서 들리는 단원들의 기합소리가 비상계단을 타고 들려왔다. 그 소리는 본능의 유혹에 휘말리는 그녀에게 현실을 느끼게 하는 아우성이었다. 소희는 상기된 눈빛으로 그의 가슴을 살며시 밀어냈다.

“아, 아주버니. 미, 민지가 기다려요.”
“...........!”

시선을 마주할 수 없는 소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다홍색으로 변한 그녀는 허리를 굽으려 바닥에 떨어진 장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충동적인 찬규의 스킨십이었지만 평상시 그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애정의 표현이었다. 그가 장바구니를 집어 드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깊은 정감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 사랑스러워........”
“........!”

소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 대한 은밀한 애정을 직접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풀어준 찬규는 비상계단 쪽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의 강렬한 시선을 의식하는 소희는 돌아서서 현관문의 번호 키를 눌렀다. 그리고 도망치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 시켰다. 현관문 뒤에 몸을 숨긴 그녀는 그의 동정을 살폈다. 잠시 현관문을 바라보고 서있던 찬규가 천천히 비상계단 문으로 향해 갔다.

숨을 몰아쉬는 소희는 비상계단을 올라가는 찬규의 발자국소리에 청각을 곤두세웠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남자는 남편이 처음이었다. 부모의 그늘에서만 자라난 그녀는 남편을 통해 여자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주버니에게 안겨 느꼈던 열정은 남편과는 다르게 그녀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녀는 새롭게 여자로 태어나 세상 남자들을 알게 된 것만 같았다.

냉수를 들이마신 소희는 주방에서 잠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남편과의 첫날밤에도 이토록 떨리는 심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씨를 일으키는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애정! 박 찬규라는 남자에게, 아니 남편의 형인 아주버니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인가, 그녀는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사랑! 소희가 결혼 초에 남편에게 수없이 들었던 사랑이란 말.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녀는 현재의 고독하고 외로움으로 누구인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거실을 배회하던 소희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았다. 어둠이 짙어져도 소희는 전등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베란다 창문을 맑히며 지나갔다.
적막이 깃든 공간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희는 아차 싶었다. 요즘 와서 현관문까지 말썽을 부리고 있어 힘껏 닫지 않으면 닫히지가 않았다. 아주버니가 들어온 것인가........!? 현관문을 주시하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관으로 들어선 사람은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소희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어둠속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이 전혀 알 수 없는 침입자 같이 느껴졌다. 거실로 들어온 상욱은 거실 샹들리에 스위치를 올리고 화난 사람의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편에게 이질감을 느낀 소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상욱은 마치 감시를 하러 나온 사람처럼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소희를 향해 투덜거렸다.

“어둠속에서 문도 안 잠그고, 뭐하고 있는 거야?”
“.........”

대뜸 핀잔을 하는 남편의 말에도 소희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남편과 침묵하는 습관에 젖은 그녀였다. 부부 사이가 아니고 어쩌면 주종관계가 된 기분을 그녀는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남편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한다. 싱크대를 향해 돌아서서 그릇을 정리하는 그녀의 긴 스커트 자락만 찰랑거릴 뿐이었다.

상욱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도도한 아내의 모습에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치민 상욱은 아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남자로서의 권위를 인식하게 하고 싶었다. 헐렁한 티셔츠와 긴 스커트를 걸친 아내의 뒷모습이 천박하게 보인 상욱이 언성을 높였다.

“이제,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빈민촌 여자처럼 옷 꼬락서니가 그게 뭐야?”
“.........”
“대영 가문의 며느리가 그 꼴이 뭐냐고?”
“.........”

여전히 소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해야 할 목표도 잃어버린 것이다. 남편의 여자로 살기도 이미 포기한 그녀였다. 그녀는 도리어 남편의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는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그녀의 의도적인 무관심은 남편이나 시댁에 대한 보복의 일종이었다.

소희의 예상대로 상욱은 스스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아내를 쏘아보던 그는 TV 리모컨을 들어서 전원을 켰다가 이내 꺼버렸다. 그리고 거실을 배회하더니 들고 있는 리모컨을 소파에 집어 던졌다. 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가 담긴 병을 집어 들었다.

상욱은 자신의 거칠어진 감정을 아내에게 표현하려고 큰 소리가 나도록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상욱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컵에 따른 냉수를 벌컥거리며 마신 그는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설거지통에 컵을 던지며 비아냥조의 말을 던졌다.

“이 생활이 지겹지도 않아!?”
“.........”

상욱은 소희의 대답을 듣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 스스로 어떤 결심이나 결단을 유도하는 협박 같은 것이었다. 소희는 그릇을 정리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그릇을 옮기면서 무언의 저주를 하고 있었다. 관심이 무관심의 시간으로, 그리고 원망과 보복의 화신으로 변하는 그녀였다.

잠시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욱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쾅! 소리가 나도록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소희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긴장이 풀린 그녀는 멍하니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라도 내리려는지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눈물처럼 그녀의 가슴을 톡톡하게 적신다.

집을 뛰쳐나온 상욱은 승용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어놓고 한동안 격분한 감정을 식혔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여자들을 상대했던 그였지만, 아내만큼의 미모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만족을 주는 여자는 없었다. 단지, 아버지의 재력을 바탕으로 자라난 그는 사랑이란 절대적인 소유라고 생각한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욱은 아내가 다른 여자들처럼 복종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이제 아내가 매달려도 받아 드릴 수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도리어 시간이 갈수록 도도하고 차갑게 변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예상하고 처갓집을 몰락시킨 장본인이기에 아내가 그를 저주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요즘 도리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그가 아내의 도도함에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아쉽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남자의 재력 앞에 굴복할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상욱이었다. 그의 욕망과 재력 앞에 굴복하며 소유당하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은 많았다.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도 며느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상욱에게 사랑과 욕망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단호히 대성 그룹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거세지고 있었다. 상욱은 윈도우 브러시를 작동하여 앞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닦아냈다. 어깨가 으스스하고 한기를 느낀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마땅하게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의 야망을 달성하기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기에 편안하기보다는 긴장을 해야 한다. 그가 불만스런 욕구를 들어낼 수 있는 상대는 오디션에 합격시켜준 장 애리뿐이었다.

장 애리에 대한 그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욕망을 교환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군림함으로서 안락함을 느끼려는 그의 선택이었다. 연기력이나 가창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애리는 그나마 상욱의 주선으로 방송 드라마와 밤무대를 뛰기도 했다. 그가 요즘 주로 머무는 곳은 장 애리를 위해 구입해준 빌라였다. 휴대폰을 꺼내든 그는 애리의 전화 단축번호를 눌렀다.

애리가 거침없이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상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신호만 가더니 받을 수 없다는 멘트가 흘러나와 그는 짜증이 난 것이다. 다시 재 발신 버튼을 누르니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그는 벌컥 화를 냈다.

“왜 전화 안 받아?”
“죄송해요. 지금 촬영 중이라 전화 못 받았어요.”
“무슨 촬영?”
“H 방송국 특집드라마요.”

“어제 촬영 일정이 끝난 줄 알고 있는데!?”
“박 피디가 다시 촬영해야하는 파트가 있다고 해서요.”
“지금 집으로 갈게.”

아내 때문에 기분이 언짢은 상욱은 그녀의 변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아내를 멀리하는 상욱은 그렇다고 아버지의 저택에도 가지 않았다. 그가 애리에게 빌라를 구입해 준 것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상욱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의 다급하고 까칠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애리는 긴장을 하여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조금 남았는데요.”
“박 피디에게 그까짓 단막극 조연, 빨리 끝내라고 해. 술 한 잔 마시고 들어 갈 테니.”
“네. 알았어요. 식사는 어떻게 하실래요?”
“술 마시고 간다니까!”
“그럼, 끝나는 대로 들어가서......”

상욱은 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는 상욱은 앞 유리창으로 건물 위층의 베란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올려다보는 집의 베란다 창문이 보이는 거실과 방은 어둠에 쌓여있고 위층은 훤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형이 아직도 작곡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불쑥 집에 들려도 상욱은 형 찬규와 대면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었다. 대영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상욱으로서는 형을 마주하기가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사업에 참여치 않고 음악에만 몰두하며 야인 같은 생활을 하는 형이 고맙기도 했다. 승용차 지붕으로 우두둑!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는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을지로의 GS기획사에 들려 장 철호를 비롯한 팀장들과 술을 마신 상욱은 조금 거나하게 취했다. 취하지 않고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만을 견딜 수 없는 그는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취중인데도 불구하고 장 애리의 빌라까지 직접 운전을 하였다. 장 팀장은 그와 애리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지만, 기획사 직원이나 그의 승용차 운전기사 김 은철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장 애리가 상욱의 승용차 소리를 듣고 베란다를 내려다보았다. 애리는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상욱을 맞이했다. 조금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현관 안에 들어선 상욱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속살이 비치는 잠옷위에 나이트가운을 걸친 그녀는 예전의 순수함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농익은 몸매였다. 그의 가슴에 매달리는 그녀가 눈을 하얗게 흘겼다.

“자기는......! 어제 전화도 안 받더니!?”
“바빠서 그래! 전화 좀 빨리 받을 수 없어?”
“말했잖아요. 촬영 중이라고.”

“나보다 그까짓 단막극 촬영이 중요해?”
“미안해요. 그래서 화났어요?”

애리는 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연예계의 각종 음해와 모략의 경쟁 속에서 그녀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눈웃음을 하며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게슴츠레 바라보던 상욱은 대뜸 그녀의 나이트가운을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의 잠옷 앞가슴을 거칠게 젖히고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눈을 흘겼다.

“하 잉! 씻지도 않고.........”
“기분 깨지 말고 가만있어.”

애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항상 폭력적으로 스킨십을 하는 상욱의 거친 행동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상욱은 우악스럽게 그녀의 젖가슴을 끄집어내어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이미 단련된 그녀는 상욱의 머리를 양팔로 감쌌다. 그녀는 순결을 잃는 순간부터 그에게 사육당하면서 성적인 만족을 느끼기 시작했다. 젖꼭지가 깨물리듯이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이내 짜릿함에 젖어들었다.

여자와의 성관계 자체를 사랑보다는 정복이라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 상욱은 애리를 난폭하고 거칠게 다루었다. 그의 손에 의해 그녀의 잠옷이 벗겨져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녀도 반사적으로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팬티 차림이 된 그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거친 심장소리가 박동하는 그의 가슴에 안긴 그녀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상욱의 혀끝이 애리의 목덜미와 귀를 잘근거리며 열기를 뿜어냈다. 그녀의 입술을 덮친 그의 혀가 뱀처럼 그녀의 입속을 헤집었다. 그의 입속으로 혀가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온 몸의 신경이 살아나는 그녀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녀의 젖가슴과 목덜미, 그리고 얼굴을 타액으로 적시던 그가 화장대로 손을 뻗쳤다.

애리의 브래지어가 상욱의 손에 벗겨져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화장대위에 놓인 립스틱을 집어 들어 그녀의 입술을 벌겋게 칠했다. 서커스 곡예단의 피에로처럼 그녀의 입술주변을 붉게 칠해놓고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짐승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그녀는 흥분의 열기에 빠져 들었다.

거칠게 애리를 침대로 밀어 넘어 트린 상욱은 그녀의 팬티를 벗겨 집어 던졌다. 침대 모서리에 둔부를 걸친 그녀의 발가벗겨진 몸이 그대로 불빛에 들어났다. 연기자로서 몸 관리를 하고 있는 아담한 몸매에 비해 그녀의 육감적인 젖가슴과 엉덩이는 선정적이었다. 그는 그녀의 젖가슴과 그리고 허벅지 사이를 쓰다듬었다. 허리를 꿈틀거리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의 둔덕과 윤기 흐르는 음모가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이따금 상욱이 특이한 체형으로 육체관계를 시도하기에 그녀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역력하였다. 특히 술이 취한 그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의 손길에 흥분하고 현실을 벗어난 세계의 쾌락 속에 빠져 들 뿐이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그의 거친 손길에 익숙해진 그녀는 더욱 흥분의 열기에 젖어 들었다. 그의 머리를 보듬어 안은 그녀는 쾌감을 견디지 못해 둔부를 들썩였다. 목덜미와 젖가슴이 타액으로 적셔지는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린 그는 손바닥으로 꽃잎처럼 펼쳐진 보지 입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물이 많이 나와? 어떤 놈 만났어?”
“자, 자기야. 무슨 말이야? 남자는 자기가 처음이고, 자기 밖에 없는 거 알면서, 사랑해 줘요........”

클리토리스가 남자의 손끝에 마찰당하여 돌기를 일으키고 애리의 허리가 꿈틀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장난감처럼 음순을 주물러 돌기를 일으켰다. 그의 손끝이 닿는 음부의 세포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그녀는 금방이라도 엑스터시를 느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늦게까지 촬영하느라 피곤했다. 차라리 빨리 관계를 끝내기를 바라던 그녀는 보지 속이 찢어지는 충격을 느꼈다.

“하 악! 너, 너무해.......”
“너, 너도 이런 걸 원하잖아........”

애리의 다리를 들어오려 우격다짐으로 보지 속으로 남성을 밀어 넣은 상욱이 중얼거렸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녀를 간혹 볼 때마다 정상적인 육체관계보다는 강간을 하는 상상을 하고 정복감에 젖었다. 아니 생활 속에 만나는 여자에게 느끼는 성적 충동을 그녀를 통해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성이 몸속의 뼈끝까지 닿는 감각에 진절머리를 쳤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엑스터시였다.

“하 윽~! 자기야. 난 몰라. 못 참겠어.”
“넌 내 여자야! 참지 마. 느껴.”

“하 으, 아 읍! 가임기간이니, 오늘은 거기다 하지 마요.”
“기,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그, 그건 네가 알아서 해.”

몇 달 전에 애리는 임신하여 낙태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흥분해 있는 상욱에게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상욱은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보지 속 깊숙이 페니스를 박아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남성이 보지 속을 헤집을수록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애리는 다시 임신이라도 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자, 자꾸 임신하면 몸매가 뚱뚱해진단 말이야. 하 윽! 난 몰라.”
“그럼, 내 마누라가 돼서 집안에 들어앉을래?”
“하 으! 으 흡! 사모님도 있는데.......”

“사모님은 무슨?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날 사람......”
“그래도 싫어요. 저는 꼭 성공하고 말거에요. 하 으......! 난 몰라........”

대답을 하면서도 애리는 쾌감을 견디지 못해 신음을 흘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녀의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있는 상욱은 안간힘을 썼다. 잔득 발기한 남성이 보지 속을 헤집을 때마다 엑스터시를 느낄 것 같은 그녀는 허우적거렸다.

애리는 상욱의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었다. 그동안 겪었던 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하녀처럼 복종해야하는 그의 아내가 되어 울타리에 갇혀 산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단지 그녀는 연예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갈채를 받고 싶을 뿐이다. 꿈을 이루는 대가로 짓밟히는 육체의 쾌감에 허우적거리는 것이었다.

강렬한 엑스터시를 갈구하며 그의 허리를 잡아당기는 애리는 안타까웠다. 그녀는 왠지 보지 속을 마찰하는 쾌감이 예전만 못하고 포만감이 적었다. 그동안의 성관계로 둔감해진 것인가. 아니면 남자의 성기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남성에 의해 질구가 넓어진 것은 아닌지, 아리송한 그녀는 몸부림쳤다. 갑자기 보지 속을 헤집는 남성이 깊고 빠르게 진퇴를 시작했다. 헐떡거리는 남자의 숨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그녀의 신음소리도 빨라졌다.

“핫, 음, 하, 읏, 아후, 으,........”
“헉, 흐 읍, 허 으,.........”

보지속이 터지도록 짓이기는 상욱은 애리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겼다. 절정을 치닫는 그는 헐떡거리며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방안에 흘러넘치는 신음소리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라, 욕망의 덫에 걸린 남녀의 아우성이었다.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서도 아픔을 모르는 그들을 삼키고 있는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도시의 어둠은 욕망의 배설물을 흘리는 오르가즘의 외침마저 잠들게 한다.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소리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열정! 그리고 잔잔한 애상!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찬규는 새로운 악상을 구상한다. 그리고 컴퓨터에 나타난 음표들을 조정하고 다시 반복하여 건반을 두드린다. 그는 한 달 전에 TV방송국으로부터 부탁받은 드라마의 테마음악을 마무리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찬규가 작곡을 하고 있는 동안 소희는 거실에서 민지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끔 소희는 민지 보모 강 연경이 늦거나 개인사정이 있을 때 민지를 돌보고 있었다. 키들거리고 웃는 민지에게 그림책을 설명하는 그녀는 이따금 작업실 유리창 너머로 아주버니 찬규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가 연주하는 음률에 따라 그녀의 가슴은 야성적인 열정을 느끼기도 하고, 포근한 봄날에 정원을 거니는 환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를 흔들며 건반을 두드리던 찬규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생각처럼 테마의 악상이 전체 조화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던 그의 시선이 거실을 향한 유리창으로 향했다. 시선이 마주친 소희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하고 일어선 그는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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