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대전
Written by 검은나비
===1. 두 여신===
쿠우웅―
장내엔 진한 무게감이 감돈다.
온 사방이 화려하게 꾸며진 장소. 벽에는 수도자들조차 마음이 흔들릴 정도의 값진 보화와 그림들로 가득하고, 그 어떤 장식과 작은 것조차 허술하지 않다.
그리고, 진정 그곳을 대단하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탁자. 화려하지만 이 장소에 비하면 수수하다고까지 말한 탁자에는 두 명의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순백의 새하얀 옷을 걸치고 부드럽고 유한 인상의 여자, 그리고 강렬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검은 옷으로 전신을 도배한 여자.
――아니. 그들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다.
인세에 나온다면 혼자서 세상을 뒤집을 미녀. 하지만 그 외모는 그녀들의 실체에 비하면 티끌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그녀들의 실체는, 그녀들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흰 옷을 입은 미녀의 뒤에 늘어선 열두 명의 여자들. 그녀들의 등에는 모두 커다란 열두 장의 순백의 깃털 날개가 살짝 접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미녀의 뒤에 늘어선 열두 명의 남자들. 그들의 등에는 모두 커다란 열두 장의 칠흑의 피막 날개가 살짝 접혀 있다.
그렇다. 그들은 각각 천신과 마신을 보좌하는 열두 명의 대천사들과 열둘의 마왕―
즉, 탁자에 앉은 두 여인이 바로 칼리오스의 두 대신, 천신 샤이렌과 마신 카리넨인 것이다.
대천사들과 마왕들은 상대를 향해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벌써 수백 번이 넘게 벌어진 천마대전. 처음에 존재하던 마왕들과 대천사들은 전쟁 죽에 대부분 죽고, 벌써 몇 번이나 세대가 바뀌었다. 그들이 결코 서로를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주인이자 어머니인 두 여신이 조용하길 명하지 않았다면 장내는 이미 전쟁의 연장선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날카로운 분위기 속, 두 여신의 바로 옆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던 한 대천사와 한 마왕이 제각각 옆의 여신을 향해 스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어느 정도 조율이 끝난 듯합니다. 천신이시여."
"대화는 이걸로 끝입니다. 마신이시여."
두 여신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샤이렌과 카리넨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글자 그대로 천상의 울림. 여신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절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한다.
이미 자세를 취한 두 대천사와 마왕 외에도 열한 대천사와 열한 마왕은 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수고했다. 모두 나가 보도록."
"수고했군. 언제나처럼 모두 나가 있어라."
"예. 여신이시여."*12
"예. 마신이시여."*12
스물 네 명의 목소리가 장내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울리고, 잠시 후 천신과 마신의 뒤편에 존재하는 문으로 차례로 걸어 나간다.
모두가 나가고 문이 닫힌 공동. 그곳에선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굳은 얼굴 표정은 두 여신이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이기라도 할 듯하다.
스윽
거의 동시에 두 여신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 맺히는 것은 강대한 신력과 마력. 그것에 직격 당했다간 설사 드래곤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위력이 담겼다. 과연 신이라 할 만한 권위. 그리고 잠시 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두 여신은 주문을 외웠다.
"절대 침묵의 봉인!"
"차원의 차단!"
구구구궁―
새하얀 빛과 칠흑의 마력이 장내를 거세게 휩쓴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빛이 가라앉고, 다시 장내는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빛이 사라지고 몇 초 후. 두 여신은 동시에 움직였다.
"푸하~"
"후에에~"
풀썩
두 여신은 놀랍게도 그대로 탁자에 엎드려 버렸다.
피곤한 사람이 탁자에 엎드리듯, 두 팔을 쭉 뻗고 그 위에 상체를 떨어뜨린 것이다. 여신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행동. 방금 전까지 위엄이 넘치던 두 여신의 모습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대천사들과 마왕들이 본다면 두 눈을 비비리라.
두 여신은 그 자세 그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후우~ 진짜 자세 잡고 있기도 힘들다. 걔들은 뭔 말이 그리 길다니?"
"그러게 말이야. 좀 적당히 하고 끝낼 것이지... 그깟 조약 뭐 중요하다고."
치열한 설전 끝에 조약을 맺은 대천사장 마리엘과 대마왕 크리시안이 들었다간 뒷목을 잡을 소리.
하지만 두 여신은 그런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들이 쓴 마법, 아니 권능은 모든 소리를 차단하니까.
"렌, 잘 지냈니? 벌써 이게 몇 십 년 만인지."
"그러게 말이야. 언니도 잘 지냈어? 하기사 넨 언니가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천신 샤이렌은 여전히 탁자에 엎드린 채 고개만을 살짝 들어 마신 카리넨을 보며 가볍게 헤헤 웃었다.
또한 카리넨도 비슷한 자세로 샤이렌을 향해 가벼운 목소리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상대를 적대하는 천계와 마계, 그 주인 된 두 여신이 서로를 친근한 애칭으로 부르며 지낸다는 사실은 두 여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사이다.
"후엥~ 진짜 신 노릇하기도 힘들어. 뭐 이거야 다 위엄, 점잔, 조심... 무슨 신이 이렇게 어려워? 조금만 흐트려져도 애들이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밑에 애들은 물론이고 특히 마계 쪽 앞에서는 조심하라고 아주 신신 당부를 하더만."
"신이니까 그렇지 뭐.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야지 뭐 있겠니."
"우이잉... 그래도 힘든걸. 나도 놀러가고 싶단 말이야. 밑에 애들은 인간계에도 막 놀러가고 그러던데."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 신이 강림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아니?"
"우씨이~"
샤이렌은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어느새 카리넨은 샤이렌의 옆으로 다가가 의자를 두고 앉더니 그 볼을 콜 찔렀다.
"씨이! 하지 마!"
"쿡쿡. 이렇게 귀여운걸? 이렇게 콕 찔러주고 싶은 볼을 두고 어떻게 안 그러겠니."
"칫칫. 언니 너무해."
"후훗."
카리넨은 여전히 엎드려있는 샤이렌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샤이렌은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띄우며 가만히 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 언니, 그러고 보니 요즘은 뭐하고 지내?"
"나? 글쎄... 저번이랑 그렇게 다른 건 없는데. 뭐 마왕 애들이랑 놀거나, 마계 여기저기 둘러보거나... 요리 연구하거나?"
"요리? 그거 아직도 해? 할 게 아직 남았어?"
"그럼. 요리의 세계는 끝이 없단다."
"흐응... 언제 나도 요리한번 해 주라. 다음에 만날 때는 좀 가지고 와. 아, 그러고 보면 마왕 애들 꽤 바뀌었던데."
"응. 저들끼리 싸우다가 좀 죽은 애들도 있고, 이번 전쟁에서도 넷 죽었거든."
"으응... 안 슬퍼?"
샤이렌은 조심스런 눈으로 카리넨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담긴 의미를 안 카리넨은 살짝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후. 물론 기쁜 건 아니지만... 널 원망하거나 하진 않아. 이렇게 예쁜 동생을 어떻게 원망하겠니."
"우웅... 그래도 조금 미안한걸. 앞으로도 계속 할 테니까."
".....어떻게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그러면 또 별수 없지. 마왕 애들이 아무리 아끼는 애들이라고 해도 너만하겠니."
"헤헤..."
샤이렌은 카리넨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
샤이렌과 카리넨의 대화를 만약 대천사들이나 마왕들이 들었다면 그 내용에 경악하고 또 그들의 주인을 원망하리라.
수백 번을 넘게 벌어진 천마대전은 모두 천신의 주도하에 천계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천계와 마계의 존재들은 천신이 마계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진실은 단지 좋아하는 언니인 마신 카리넨을 보고 싶은 샤이렌의 수단일 뿐인 것이다.
샤이렌은 그것이 천계와 마계의 존재들에게 미안했지만, 카리넨을 향한 마음이 모든 것을 덮었다.
슬슬 품에 안긴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던 카리넨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샤이렌에게 물었다.
"그런데 네 대천사들은 전부 다 여자들이던데... 아직도 남자는 생각이 없니?"
"우우, 남자 따위 필요 없어. 여자가 더 좋다구. 그 부드럽고 따듯한 게 얼마나 좋은데."
"흐응... 너도 남자를 경험해 보면 생각이 바뀔 텐데.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진짜 짜릿한데."
"싫어! 남자 품에서 허덕이는 건 싫어. 난 여자랑만 할 거야."
단호하기까지 한 샤이렌의 태도에 카리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샤이렌은 카이렌의 품에 거꾸로 안겼다. 카리넨이 샤이렌을 뒤에서 껴안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에휴... 왜 이리 남자를 싫어하는지. 렌 너는 내가 남자가 얼마나 좋은지 벌써 그렇게 말했는데도 어째 변화가 없니."
"남자는 싫다니까? 난 여자가 좋아. ...언니처럼."
"이그... 널 모시는 신도들이 네 실체를 알면 얼마나 기겁할까? 설마 고결하고 순결한 천신 샤이렌이 레즈비언이라니."
"흥흥. 남말하긴. 마신의 사도들이 마신 카리넨이 사실은 남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색녀라는 걸 알면 기겁할 텐데?"
"그래그래, 내가 졌다."
카리넨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녀의 살짝 어두워진 표정은 보지 못했다.
잠시 후 샤이렌은 뒤돌아 카리넨과 눈을 맞추며 밝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 얼굴에는 한 점 어둠 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 언니. 우리 애들 있잖아, 진짜 귀여운 거 알아?"
"응? 귀엽다니?"
"천사는 말야, 엄청나게 감각이 예민하거든. 그리고 대천사는 더하다? 그래서 침대에서 보면 살짝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을 막 글썽거리면서 샤, 샤이렌 님... 그러는데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흐응~"
"살짝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높은 소릴 내고, 몸을 막 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거 있지. 날개를 활짝 펴고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진짜 귀여워."
카리넨은 턱을 괴고 즐겁다는 듯 떠드는 샤이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이렌은 한참을 떠들다가 조심스럽게 카리넨을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언니, 언니도 여자 쪽으로 돌아서면 안될까?"
"글쎄... 우리 쪽 애들은 그렇게 민감하진 않아서 말이야."
카리넨은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우리 쪽 애들은 어떤 쪽인가 하면 둔감한 편이지. 그리고 나는 말이야, 들어오는 쪽이 더 좋거든... 나는 남자가 아무래도 좋아. 남자랑 하는 쪽이 얼마나 기분 좋은데. 마왕 애들은 다 정력도 강하고 해서 말이야."
"......."
샤이렌은 잠시 침묵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르는 듯하더니 샤이렌은 허리춤에서 작은 막대 하나를 꺼내들었다. 살짝 흰 빛이 흐르고 금빛 선으로 감싸인 것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거 봐봐, 언니."
"뭐니? ...딜도?"
"언닛!"
"아하하, 농담이야. 어떻게 쓰는 거니?"
"거기 밑에 눌러봐. 아, 이쪽으로 겨누진 말고?"
"겨눠? 뭔가 나가는 거니? 어디..."
카리넨은 빈 공간 쪽으로 막대를 향하고는 밑에 살짝 파린 곳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막대의 위쪽에서 세 개의 기다란 가는 막대가 뻗어나가더니, 중간을 구부렸다. 마치 세 개의 손가락으로 된 집게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막대 위쪽에서 작은 구슬이 둥실 떠오르더니 세 개의 막대가 굽어진 지점에 딱 고정되고는 빛을 뿜었다.
구슬에서 뿜어지기 시작한 빛의 줄기는 마치 원통형의 작은 막대처럼 곧게 뻗어나가며 대략 1m정도의 길이를 형성하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오오? 뭐니, 이거?"
"히힛. 요즘 내가 만든 거야. 어때, 멋지지?"
"헤에... 뭐니 이건? 신성법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내 권능을 담은 거야. 빛 그 자체를 집약시켜 만든 거지. 이름은 일단 간단하게 광검."
"오오..."
카리넨은 검의 형태를 취한 그 막대를 마구 휘둘러보았다. 신기해하는 그녀를 보며 샤이렌은 자신만만하게 그 막대, 광검에 대해서 설명했고 카리넨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이것저것 실험해 보았다.
"마법이 아니라서 마법 무효화나 그런 것도 전혀 타격 없고, 그 어떤 것에도 베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도 벨 수 있지. 사용자의 의지에 전적으로 반응하는 검이야. 검 날 길이도 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고. 조금만 다듬으면 신기로도 쓸 수 있을 거 같애. 아, 근데 아직 미완성이라 약하니까 조심..."
쾅!
"...어머나."
"......."
한 손에 검은 마력을, 한 손에 부서진 광검의 파편을 든 카리넨은 살짝 땀방울을 이마에 매달고 두 손을 가까이 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굳어버린 것은 샤이렌도 다르지 않았다.
"그, 그거..."
"미, 미안. 내구도 좀 실험하려다가..."
"이, 이 망할 언니야!"
퍽!
"꺅! 너 지금 언니한테 무슨...! ...우, 우니?"
"흑, 훌쩍..."
"레, 렌 울지..."
"우에에엥~"
크게 머리를 맞은 카리넨은 샤이렌을 향해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울먹거리는 샤이렌을 보고서는 멈칫해 버렸다.
그리고 샤이렌은 그대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우에엥~ 그게 얼마나 어렵게 만든 건데... 언니 미워~ 우에엥~"
"이, 이게... 어우,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라, 응? 렌 착하지?"
"우엥~ 세상에 빛의 신기에 마력을 가져다 대면 어떻게 해! 언니 미워~ 우에엥~"
"그, 그게... 렌아, 제발 울지 마라. 응?"
카리넨은 샤이렌을 필사적으로 달랬지만, 샤이렌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자, 코 풀어. 흥!"
"흥!"
"...좀 진정됐니?"
"응... 훌쩍."
"휴우."
카리넨은 살짝 한숨을 쉬며 샤이렌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어휴, 다 큰 여자가 막 울기나 하고... 우리 렌은 언제나 크려나."
"우우! 나 다 컸다구! 내가 천신인데 뭘 더 커!"
"그래도 렌은 아직 어린애 같은걸. 세상에 샤이렌이 이렇게 울보에 응석받이라니, 누가 알까."
".....뿐인걸."
"응?"
"아, 아니야."
샤이렌이 아주 작게 중얼거린, 거의 무음에 가까운 말을 카리넨은 듣지 못했다.
잠시 카리넨의 등에서 토닥거림을 느끼던 샤이렌은 조그맣게 그녀를 불렀다.
"...언니."
"왜 그러니?"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같다."
"....그러네. 아버지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언니. 언니는 지금이랑 그때랑 뭐가 더 좋아?"
"글쎄...."
카리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샤이렌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조용히 그녀의 품 안에서 안겨있었다.
느릿한 침묵 속에서,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언니."
"...나도 널 사랑한단다. 내 동생 렌아."
"......."
"......."
다시금 침묵이 흐르고, 오직 토닥거리는 소리만이 장내를 작게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샤이렌이 눈가를 닦으며 일어났다.
"자! 슬슬 나가봐야겠네. 우리 애들이 걱정할 거야. 언니도 얼른 돌아가 봐야지?"
"그래, 그렇지..."
"자! 얼른 나가 보자구! 언니, 다음에 또 봐~ 보고싶으면 또 마계로 쳐들어갈 테니까. 다음엔 우리가 이길 꺼라구! 마계를 점령해 보여주겠어!"
"그래그래. 나도 우리 애들을 열심히 키워야겠구나.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다음에는 요리도 꼭 챙겨 와! 그럼 안녕!"
샤이렌은 후다닥 뛰어 천계 쪽의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남은 공동, 카리넨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마계 쪽의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이미 렌의 언니 넨이 아닌, 마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여신 카리넨이었다. 잠깐의 안식은 끝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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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꽤 전에 쓴 단편입니다. 이것도 거의 8개월 전에...?
실험적 작품이랄까요.
Written by 검은나비
===1. 두 여신===
쿠우웅―
장내엔 진한 무게감이 감돈다.
온 사방이 화려하게 꾸며진 장소. 벽에는 수도자들조차 마음이 흔들릴 정도의 값진 보화와 그림들로 가득하고, 그 어떤 장식과 작은 것조차 허술하지 않다.
그리고, 진정 그곳을 대단하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탁자. 화려하지만 이 장소에 비하면 수수하다고까지 말한 탁자에는 두 명의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순백의 새하얀 옷을 걸치고 부드럽고 유한 인상의 여자, 그리고 강렬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검은 옷으로 전신을 도배한 여자.
――아니. 그들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다.
인세에 나온다면 혼자서 세상을 뒤집을 미녀. 하지만 그 외모는 그녀들의 실체에 비하면 티끌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그녀들의 실체는, 그녀들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흰 옷을 입은 미녀의 뒤에 늘어선 열두 명의 여자들. 그녀들의 등에는 모두 커다란 열두 장의 순백의 깃털 날개가 살짝 접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미녀의 뒤에 늘어선 열두 명의 남자들. 그들의 등에는 모두 커다란 열두 장의 칠흑의 피막 날개가 살짝 접혀 있다.
그렇다. 그들은 각각 천신과 마신을 보좌하는 열두 명의 대천사들과 열둘의 마왕―
즉, 탁자에 앉은 두 여인이 바로 칼리오스의 두 대신, 천신 샤이렌과 마신 카리넨인 것이다.
대천사들과 마왕들은 상대를 향해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벌써 수백 번이 넘게 벌어진 천마대전. 처음에 존재하던 마왕들과 대천사들은 전쟁 죽에 대부분 죽고, 벌써 몇 번이나 세대가 바뀌었다. 그들이 결코 서로를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주인이자 어머니인 두 여신이 조용하길 명하지 않았다면 장내는 이미 전쟁의 연장선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날카로운 분위기 속, 두 여신의 바로 옆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던 한 대천사와 한 마왕이 제각각 옆의 여신을 향해 스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어느 정도 조율이 끝난 듯합니다. 천신이시여."
"대화는 이걸로 끝입니다. 마신이시여."
두 여신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샤이렌과 카리넨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글자 그대로 천상의 울림. 여신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절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한다.
이미 자세를 취한 두 대천사와 마왕 외에도 열한 대천사와 열한 마왕은 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수고했다. 모두 나가 보도록."
"수고했군. 언제나처럼 모두 나가 있어라."
"예. 여신이시여."*12
"예. 마신이시여."*12
스물 네 명의 목소리가 장내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울리고, 잠시 후 천신과 마신의 뒤편에 존재하는 문으로 차례로 걸어 나간다.
모두가 나가고 문이 닫힌 공동. 그곳에선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굳은 얼굴 표정은 두 여신이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이기라도 할 듯하다.
스윽
거의 동시에 두 여신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 맺히는 것은 강대한 신력과 마력. 그것에 직격 당했다간 설사 드래곤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위력이 담겼다. 과연 신이라 할 만한 권위. 그리고 잠시 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두 여신은 주문을 외웠다.
"절대 침묵의 봉인!"
"차원의 차단!"
구구구궁―
새하얀 빛과 칠흑의 마력이 장내를 거세게 휩쓴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빛이 가라앉고, 다시 장내는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빛이 사라지고 몇 초 후. 두 여신은 동시에 움직였다.
"푸하~"
"후에에~"
풀썩
두 여신은 놀랍게도 그대로 탁자에 엎드려 버렸다.
피곤한 사람이 탁자에 엎드리듯, 두 팔을 쭉 뻗고 그 위에 상체를 떨어뜨린 것이다. 여신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행동. 방금 전까지 위엄이 넘치던 두 여신의 모습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대천사들과 마왕들이 본다면 두 눈을 비비리라.
두 여신은 그 자세 그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후우~ 진짜 자세 잡고 있기도 힘들다. 걔들은 뭔 말이 그리 길다니?"
"그러게 말이야. 좀 적당히 하고 끝낼 것이지... 그깟 조약 뭐 중요하다고."
치열한 설전 끝에 조약을 맺은 대천사장 마리엘과 대마왕 크리시안이 들었다간 뒷목을 잡을 소리.
하지만 두 여신은 그런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들이 쓴 마법, 아니 권능은 모든 소리를 차단하니까.
"렌, 잘 지냈니? 벌써 이게 몇 십 년 만인지."
"그러게 말이야. 언니도 잘 지냈어? 하기사 넨 언니가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천신 샤이렌은 여전히 탁자에 엎드린 채 고개만을 살짝 들어 마신 카리넨을 보며 가볍게 헤헤 웃었다.
또한 카리넨도 비슷한 자세로 샤이렌을 향해 가벼운 목소리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상대를 적대하는 천계와 마계, 그 주인 된 두 여신이 서로를 친근한 애칭으로 부르며 지낸다는 사실은 두 여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사이다.
"후엥~ 진짜 신 노릇하기도 힘들어. 뭐 이거야 다 위엄, 점잔, 조심... 무슨 신이 이렇게 어려워? 조금만 흐트려져도 애들이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밑에 애들은 물론이고 특히 마계 쪽 앞에서는 조심하라고 아주 신신 당부를 하더만."
"신이니까 그렇지 뭐.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야지 뭐 있겠니."
"우이잉... 그래도 힘든걸. 나도 놀러가고 싶단 말이야. 밑에 애들은 인간계에도 막 놀러가고 그러던데."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 신이 강림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아니?"
"우씨이~"
샤이렌은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어느새 카리넨은 샤이렌의 옆으로 다가가 의자를 두고 앉더니 그 볼을 콜 찔렀다.
"씨이! 하지 마!"
"쿡쿡. 이렇게 귀여운걸? 이렇게 콕 찔러주고 싶은 볼을 두고 어떻게 안 그러겠니."
"칫칫. 언니 너무해."
"후훗."
카리넨은 여전히 엎드려있는 샤이렌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샤이렌은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띄우며 가만히 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 언니, 그러고 보니 요즘은 뭐하고 지내?"
"나? 글쎄... 저번이랑 그렇게 다른 건 없는데. 뭐 마왕 애들이랑 놀거나, 마계 여기저기 둘러보거나... 요리 연구하거나?"
"요리? 그거 아직도 해? 할 게 아직 남았어?"
"그럼. 요리의 세계는 끝이 없단다."
"흐응... 언제 나도 요리한번 해 주라. 다음에 만날 때는 좀 가지고 와. 아, 그러고 보면 마왕 애들 꽤 바뀌었던데."
"응. 저들끼리 싸우다가 좀 죽은 애들도 있고, 이번 전쟁에서도 넷 죽었거든."
"으응... 안 슬퍼?"
샤이렌은 조심스런 눈으로 카리넨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담긴 의미를 안 카리넨은 살짝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후. 물론 기쁜 건 아니지만... 널 원망하거나 하진 않아. 이렇게 예쁜 동생을 어떻게 원망하겠니."
"우웅... 그래도 조금 미안한걸. 앞으로도 계속 할 테니까."
".....어떻게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그러면 또 별수 없지. 마왕 애들이 아무리 아끼는 애들이라고 해도 너만하겠니."
"헤헤..."
샤이렌은 카리넨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
샤이렌과 카리넨의 대화를 만약 대천사들이나 마왕들이 들었다면 그 내용에 경악하고 또 그들의 주인을 원망하리라.
수백 번을 넘게 벌어진 천마대전은 모두 천신의 주도하에 천계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천계와 마계의 존재들은 천신이 마계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진실은 단지 좋아하는 언니인 마신 카리넨을 보고 싶은 샤이렌의 수단일 뿐인 것이다.
샤이렌은 그것이 천계와 마계의 존재들에게 미안했지만, 카리넨을 향한 마음이 모든 것을 덮었다.
슬슬 품에 안긴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던 카리넨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샤이렌에게 물었다.
"그런데 네 대천사들은 전부 다 여자들이던데... 아직도 남자는 생각이 없니?"
"우우, 남자 따위 필요 없어. 여자가 더 좋다구. 그 부드럽고 따듯한 게 얼마나 좋은데."
"흐응... 너도 남자를 경험해 보면 생각이 바뀔 텐데.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진짜 짜릿한데."
"싫어! 남자 품에서 허덕이는 건 싫어. 난 여자랑만 할 거야."
단호하기까지 한 샤이렌의 태도에 카리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샤이렌은 카이렌의 품에 거꾸로 안겼다. 카리넨이 샤이렌을 뒤에서 껴안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에휴... 왜 이리 남자를 싫어하는지. 렌 너는 내가 남자가 얼마나 좋은지 벌써 그렇게 말했는데도 어째 변화가 없니."
"남자는 싫다니까? 난 여자가 좋아. ...언니처럼."
"이그... 널 모시는 신도들이 네 실체를 알면 얼마나 기겁할까? 설마 고결하고 순결한 천신 샤이렌이 레즈비언이라니."
"흥흥. 남말하긴. 마신의 사도들이 마신 카리넨이 사실은 남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색녀라는 걸 알면 기겁할 텐데?"
"그래그래, 내가 졌다."
카리넨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샤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녀의 살짝 어두워진 표정은 보지 못했다.
잠시 후 샤이렌은 뒤돌아 카리넨과 눈을 맞추며 밝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 얼굴에는 한 점 어둠 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 언니. 우리 애들 있잖아, 진짜 귀여운 거 알아?"
"응? 귀엽다니?"
"천사는 말야, 엄청나게 감각이 예민하거든. 그리고 대천사는 더하다? 그래서 침대에서 보면 살짝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을 막 글썽거리면서 샤, 샤이렌 님... 그러는데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흐응~"
"살짝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높은 소릴 내고, 몸을 막 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거 있지. 날개를 활짝 펴고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진짜 귀여워."
카리넨은 턱을 괴고 즐겁다는 듯 떠드는 샤이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이렌은 한참을 떠들다가 조심스럽게 카리넨을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언니, 언니도 여자 쪽으로 돌아서면 안될까?"
"글쎄... 우리 쪽 애들은 그렇게 민감하진 않아서 말이야."
카리넨은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우리 쪽 애들은 어떤 쪽인가 하면 둔감한 편이지. 그리고 나는 말이야, 들어오는 쪽이 더 좋거든... 나는 남자가 아무래도 좋아. 남자랑 하는 쪽이 얼마나 기분 좋은데. 마왕 애들은 다 정력도 강하고 해서 말이야."
"......."
샤이렌은 잠시 침묵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르는 듯하더니 샤이렌은 허리춤에서 작은 막대 하나를 꺼내들었다. 살짝 흰 빛이 흐르고 금빛 선으로 감싸인 것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거 봐봐, 언니."
"뭐니? ...딜도?"
"언닛!"
"아하하, 농담이야. 어떻게 쓰는 거니?"
"거기 밑에 눌러봐. 아, 이쪽으로 겨누진 말고?"
"겨눠? 뭔가 나가는 거니? 어디..."
카리넨은 빈 공간 쪽으로 막대를 향하고는 밑에 살짝 파린 곳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막대의 위쪽에서 세 개의 기다란 가는 막대가 뻗어나가더니, 중간을 구부렸다. 마치 세 개의 손가락으로 된 집게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막대 위쪽에서 작은 구슬이 둥실 떠오르더니 세 개의 막대가 굽어진 지점에 딱 고정되고는 빛을 뿜었다.
구슬에서 뿜어지기 시작한 빛의 줄기는 마치 원통형의 작은 막대처럼 곧게 뻗어나가며 대략 1m정도의 길이를 형성하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오오? 뭐니, 이거?"
"히힛. 요즘 내가 만든 거야. 어때, 멋지지?"
"헤에... 뭐니 이건? 신성법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내 권능을 담은 거야. 빛 그 자체를 집약시켜 만든 거지. 이름은 일단 간단하게 광검."
"오오..."
카리넨은 검의 형태를 취한 그 막대를 마구 휘둘러보았다. 신기해하는 그녀를 보며 샤이렌은 자신만만하게 그 막대, 광검에 대해서 설명했고 카리넨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이것저것 실험해 보았다.
"마법이 아니라서 마법 무효화나 그런 것도 전혀 타격 없고, 그 어떤 것에도 베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도 벨 수 있지. 사용자의 의지에 전적으로 반응하는 검이야. 검 날 길이도 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고. 조금만 다듬으면 신기로도 쓸 수 있을 거 같애. 아, 근데 아직 미완성이라 약하니까 조심..."
쾅!
"...어머나."
"......."
한 손에 검은 마력을, 한 손에 부서진 광검의 파편을 든 카리넨은 살짝 땀방울을 이마에 매달고 두 손을 가까이 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굳어버린 것은 샤이렌도 다르지 않았다.
"그, 그거..."
"미, 미안. 내구도 좀 실험하려다가..."
"이, 이 망할 언니야!"
퍽!
"꺅! 너 지금 언니한테 무슨...! ...우, 우니?"
"흑, 훌쩍..."
"레, 렌 울지..."
"우에에엥~"
크게 머리를 맞은 카리넨은 샤이렌을 향해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울먹거리는 샤이렌을 보고서는 멈칫해 버렸다.
그리고 샤이렌은 그대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우에엥~ 그게 얼마나 어렵게 만든 건데... 언니 미워~ 우에엥~"
"이, 이게... 어우,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라, 응? 렌 착하지?"
"우엥~ 세상에 빛의 신기에 마력을 가져다 대면 어떻게 해! 언니 미워~ 우에엥~"
"그, 그게... 렌아, 제발 울지 마라. 응?"
카리넨은 샤이렌을 필사적으로 달랬지만, 샤이렌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자, 코 풀어. 흥!"
"흥!"
"...좀 진정됐니?"
"응... 훌쩍."
"휴우."
카리넨은 살짝 한숨을 쉬며 샤이렌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어휴, 다 큰 여자가 막 울기나 하고... 우리 렌은 언제나 크려나."
"우우! 나 다 컸다구! 내가 천신인데 뭘 더 커!"
"그래도 렌은 아직 어린애 같은걸. 세상에 샤이렌이 이렇게 울보에 응석받이라니, 누가 알까."
".....뿐인걸."
"응?"
"아, 아니야."
샤이렌이 아주 작게 중얼거린, 거의 무음에 가까운 말을 카리넨은 듣지 못했다.
잠시 카리넨의 등에서 토닥거림을 느끼던 샤이렌은 조그맣게 그녀를 불렀다.
"...언니."
"왜 그러니?"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같다."
"....그러네. 아버지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언니. 언니는 지금이랑 그때랑 뭐가 더 좋아?"
"글쎄...."
카리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샤이렌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조용히 그녀의 품 안에서 안겨있었다.
느릿한 침묵 속에서,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언니."
"...나도 널 사랑한단다. 내 동생 렌아."
"......."
"......."
다시금 침묵이 흐르고, 오직 토닥거리는 소리만이 장내를 작게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샤이렌이 눈가를 닦으며 일어났다.
"자! 슬슬 나가봐야겠네. 우리 애들이 걱정할 거야. 언니도 얼른 돌아가 봐야지?"
"그래, 그렇지..."
"자! 얼른 나가 보자구! 언니, 다음에 또 봐~ 보고싶으면 또 마계로 쳐들어갈 테니까. 다음엔 우리가 이길 꺼라구! 마계를 점령해 보여주겠어!"
"그래그래. 나도 우리 애들을 열심히 키워야겠구나.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다음에는 요리도 꼭 챙겨 와! 그럼 안녕!"
샤이렌은 후다닥 뛰어 천계 쪽의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남은 공동, 카리넨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마계 쪽의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이미 렌의 언니 넨이 아닌, 마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여신 카리넨이었다. 잠깐의 안식은 끝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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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꽤 전에 쓴 단편입니다. 이것도 거의 8개월 전에...?
실험적 작품이랄까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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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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