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짙게 물들였던 낙조의 황혼이 사라지고 있다. 조립식 건물 출입구 위에는 ‘럭키 건자재 상회’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출입문이 열리고 퇴근하는 남자 종업원 두 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창고건물 안을 향해 돌아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사장님! 먼저 가겠습니다!”
“사장님! 수고하세요.”
“음! 수고들 했어.”
건물 안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민 경식이 퇴근하는 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재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퇴근을 한 후에도 나머지 자재를 정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여자 사무원이 손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그에게 말을 한다.
“사장님! 사모님한테서 전화 왔어요. 전 이만 퇴근할게요.”
“음! 그래 어서 들어가 수고했어.”
여사무원의 인사를 받은 민 경식은 끼고 있는 목장갑을 벗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민 경식의 아들 준우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만화책을 보며 키들거리는 아들을 흘낏 바라본 경식이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전화를 집어 들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야, 여보.”
“뭐하는 거야? 내일 친정엄마 생일에 가야하는데, 왜 돈 안 주는 거야? 몇 번씩 말을 해야 알아들어?”
“오늘 종업원들 월급을 줘서 가게에 돈이 없어. 친정엔 오후에 간다면서? 내일 오전에 은행에서 찾아다 주면 안 돼?”
“벌써 몇 번째 전화하는 거야? 오전에 나갈 생각인데 잔말 말고 찾아다 주면 되잖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 그런데.......”
속사포처럼 전화기 너머에서 쏟아지는 아내의 목소리. 민 경식은 항상 아내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같은 심정이다. 자신에게 과분한 아내를 맞이하여 가정을 가진 탓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주눅이 든 그가 말을 잊지 못하는데 잔화기 너머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바쁘다는 핑계로 장모 생일에도 안 갈 거 아냐?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꼭 사람 기분 잡치게 해. 구두쇠처럼 돈 모아 어디다 쓸려고 그래? 밤낮 움켜쥐기만 하고.......”
“알았어........지금 은행 갔다 올게.”
“어차피 줄 건데, 왜 그렇게 사람 기분 나쁘게........ ”
민 경식은 아내의 뒷말을 흘려들으며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줄때마다 야속하지만 했다. 그의 장래 희망은 농장을 갖는 것이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작은 행복이라도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작은 희망을 같이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아내였다.
민경식과 아내와 같은 고향으로서 대전 변두리였다. 행운인지 몰라도 같은 마을에 사는 아줌마를 통해 중매가 들어왔다. 지금의 아내가 된 미영이었다. 그 당시 여고를 졸업한 미영은 그로서는 감히 다가 설 수 없기에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흠모하던 여자였다. 중매가 들어오고 미영의 부모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의 학식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한동안 흐지부지 되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못마땅해 하던 미영의 부모로부터 부랴부랴 결혼을 주선해왔다. 들리는 말로는 미영이 유부남의 아이를 가져서 낙태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어쨌든 경식으로서 미영과의 결혼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울리지 않는 인연 탓인지 그는 아내의 앙칼진 투정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
경식은 가끔 아내와 결혼한 것이 잘못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는 자신에게 과분한 아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아들 준우와 딸 정아를 낳고 보니 후회할 수도 없었다. 결혼 당시 배운 것도 없는 그는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멸시와 주위의 시선을 무릎 쓰고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끼니를 굶어가며 악착 같이 돈을 모아 지금의 경기도로 이주해서 건축자재 상회를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농장을 한다는 장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푼 두푼 조금의 여유만 있어도 인근 농지를 사 들이고 있었다.
입맛을 다신 경식은 책상 서랍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들었다. 이따금 경식의 전화 받는 모습을 힐끔거리고 보던 준우가 보고 있던 만화책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빠! 어디가려고?”
“음. 은행에 가려는데, 같이 가자.”
준우가 소파에 놓인 과자봉지를 들고 경식의 뒤를 따라 나섰다. 사무실을 나온 경식은 건물 밖에 세워진 봉고차 운전석에 올라갔다. 준우가 조수석에 올라타고 경식이 시동을 걸어 봉고차를 출발 시켰다. 벌써 10년 가까이 사용한 차량이라 덜컹거리며 도로를 달려 나갔다. 준우가 들고 온 과자를 입속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빠! 엄마한테 꿈적 못하고 멸시당하는 게 좋아?”
“멸시하긴.......!? 집안이 잘되려면 남자가 이해해야 돼.”
“친구 엄마는 무척 상냥하고 마음씨가 좋은데.”
“엄마도 예쁘고 귀엽잖아.”
“예쁘긴 하지. 하지만 너무 잔소리가 많은 거 같아.”
“너희들한테는 안 그러잖아.”
봉고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 아스팔트길로 나섰다. 경식은 아들을 힐끔 쳐다보며 표정을 살폈다. 경식은 아내의 거칠면서도 안하무인격인 성격을 들어내는 아들의 말이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준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우리한테도 가끔 그러는데! 아빠한테는 너무한 거 같고. 아빠가 엄마한테 꼼짝 못한다고 친구들이 놀려.”
“너도 크면 아빠 심정을 알거다.”
“어떤 때는 정말 우리 엄마가 아닌 거 같고, 화가 나!”
“그런 말 하지 마라. 너를 낳아준 엄마야. 식구 모두 잘되라고 엄마가 그러는 거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 준우는 차량의 앞 유리를 멀거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곰곰이 삭이면서 서로 다른 성격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살고 있는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꼭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차량이 뜸한 도로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봉고차가 마을 중심가로 진입하였다. 군부대가 인접한 곳이라 외출을 하는 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경식이 아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한손을 뻗쳐 등을 토닥거렸다. 봉고차가 사거리에 인접해서 준우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아버지는 앞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핸들을 꺾고 있었다. 순간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던 준우는 경악하였다.
갑자기 옆길에서 집채만 한 군용트럭이 짐승처럼 달려와 덮치는 것이었다. 당황한 경식은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아들을 조수석 밖으로 떠밀어냈다. 급히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소형 트럭과 군용트럭이 충돌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운전석 앞 유리창을 뚫고 튕겨 나온 경식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악~!”
낮잠을 자다가 악몽에서 깨어난 준우는 벌떡 일어나 식은땀을 흘렸다. 언제나 가슴 속에 묻혀있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준우는 그날의 악몽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과묵한 성격의 아버지이지만 그를 무척 사랑하였고 그는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아버지가 사망하던 날도 그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같이 타고 시장에 다녀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준우는 트럭 밖으로 튕겨 나와 살아 있지만,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삼년이 지나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어도 그는 아직도 아버지를 여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준우의 아버지 민 경식은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는 성실한 남자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준우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날, 늦게까지 자재를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앙탈을 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리라고 준우는 생각한다. 그는 평범한 외모와 내성적인 아버지와 비교되는 어머니는 귀염성이 있는 미모와 다르게 다혈질이고 직선적이었다.
미영은 평소에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날도 준우는 아버지가 여러 차례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아버지는 무척 주눅이 들어 있었다. 결국 어머니의 독촉을 못이긴 아버지는 뒤늦게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준우는 평소에 아버지를 머슴 부리듯 했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을 한 번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두 남매와 어머니를 위해 힘든 역경을 견디며 묵묵히 살았던 아버지가 애틋하고 그리워서 혼자만의 울분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리울수록 준우는 어머니의 도도하고 자신감에 찬 모습이 역겨워졌다. 때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고 단지 짐승처럼 암내를 풍기는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여왕처럼 군림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언제나 시끌벅적하였고 아버지는 언제나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항상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준우는 어떻게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했는지 조차도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친척들로부터 그가 들은 말에는 아버지가 옆집에 살던 어머니를 죽자고 따라 다니며 구애를 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결혼 전에 다른 남자 아기를 낙태 시킨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부모가 어떻게 결혼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남자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동정심을 느낀 준우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무시하면서도 어머니가 여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관계를 했기에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구걸하다시피 부부관계를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준우는 육체관계마저 아버지에게 군림했을 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증오란 정당한 것이다. 부정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여자로서 복종시키고 싶었다. 아들이 아닌 남자로서 어머니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은 충동에 휘말렸다. 그는 변질된 오이디푸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젖어 성적인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착실하고 다소곳하면서도 활발하던 준우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준우의 성격이 차츰 바뀌었다. 평소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식구를 대하지만 이따금 내면에서 일어나는 울분을 그는 참지 못한다. 체육관을 다니는 준우는 운동신경도 발달했지만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다. 식구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울분에 잠길 때마다 그는 체육관에 가서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 치면서 혼자만의 우울한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준우는 어머니가 그냥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 한 것인가. 자존심을 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인가. 여자의 몸은 삶의 도구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몸은 자신의 인생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여자가 섹스라는 매개체만으로 남자들이 지배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평등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준우는 남자가 성적인 욕망으로 여자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것만 같았다. 남자보다 우월감을 갖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모멸감! 그가 혼란에 휩싸이는 그것은 한창 성적인 충동을 받는 나이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발산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그가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원인이었다.
준우의 어머니 송 미영은 남편이 죽고 나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활동력이 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인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서 직접 사업에 뛰어 들었다. 민주화 운동 등 불안정 했던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불안했던 건설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재건축 붐이 일어났다. 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는 정부의 건축정책이 활성화 되었다. 남다른 외모와 대인관계에 능한 미영의 노력으로 건축자재 사업은 날로 번창해졌다.
경식이 살아생전에 사놓았던 농지가 도시개발로 인해 눈덩이처럼 가치가 높아졌다. 미영은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 건축자재 사업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남편이 사놓았던 농지를 팔아 건물을 짓고 대형음식점을 개업하였다. 미영은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에 눈독을 드렸다.
미영은 음식점, 이층에 ‘그린 필드’라는 부동산 컨설팅사무실을 차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사업에 재미를 느낀 미영은 여동생 희경을 불러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밖으로 동분서주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딸만 넷을 낳았다. 그러난 애석하게도 미영과 희경 사이에 낳았던 두 딸은 어려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미영과 희경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나 되었다.
그녀는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남편의 숨결이 살아있는 주택을 팔고 서울 외곽의 이층 개인주택을 구입하여 이사를 했다. 남편이 구입했던 땅을 처분한 유산도 많았지만 음식점과 부동산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의 통장 잔고는 날로 늘어났다. 차츰 그녀의 미모와 재산에 눈독을 드리는 남자들도 있지만, 그녀를 시기하고 견제하는 부동산 업자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돌보만큼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침대에서 일어난 준우는 방문을 열고나오며 기지개를 폈다. 자신의 방이 있는 이층에서 내려온 준우는 층계를 내려와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창문으로는 보이는 정원에는 짙푸른 상록수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여중 졸업반인 그의 여동생 정아가 세면장에 나오다가 몸을 사렸다. 제법 여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풋풋한 그녀의 몸매. 잠옷만 걸친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애구! 늦잠꾸러기 오빠!”
“푸 후! 너도 이제 일어난 모양이면서........”
준우는 잠옷이 벌어진 정아의 앞가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법 봉긋하게 솟아난 정아의 젖가슴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오누이 사이라서 평상시 부담 없던 그녀의 모습이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준우에게 혀를 날름 내밀어 보면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짓궂은 생각이 든 그가 돌아서는 그녀의 등을 껴안았다.
“오늘따라 더 정아가 예쁜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정아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준우의 가슴에 등을 껴안긴 그녀는 앞가슴을 감싸는 그의 팔을 느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손바닥 안에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그녀의 젖가슴이 닿았다. 부드러운 촉감에 그녀의 젖가슴을 보듬은 그는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흘겼다.
“못 됐어.”
“하하.........귀여워.”
“피 잇~!”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인 정아가 준우의 가슴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준우는 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준우는 요즘따라 무엇인가 허물어 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들었다. 마치 복숭아 같은 정아의 엉덩이를 터트리고 싶은 욕구라고 할까.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잠옷 밑으로 들어난 뽀얀 허벅지 피부와 아담한 엉덩이가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넋을 잃고 있던 그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준우야! 너 밥 먹을 거지?”
“네........!”
주방 입구에서 쌍꺼풀을 깊게 드리운 여인의 눈동자가 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돌보고 있는 그의 이모 송 희경이었다. 그는 집안에 있는 어머니나 이모, 그리고 정아까지 비슷하게 닮았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녀들은 모두 크지 않은 아담한 체구에 조금은 헤프게 보이는 미소가 항상 깃들어있는 귀염성 있는 미모였다.
“빨리 세수하고 와서 밥 먹어. 나, 집안일로 바쁘단 말이야.”
“엄마는.......?”
준우는 휴일에는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을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다.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희경이 되돌아 나왔다. 결혼생활을 했었던 까닭인가. 그녀의 몸매는 농익어서 제법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준우는 새삼스럽게 언제나 집안에 남자라고는 혼자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 와서 부쩍 여자에게 관심이 많아진 그는 이모의 몸매에 성적인 매력을 느꼈다. 그녀가 그를 흘깃 쳐다보며 대답했다.
“피곤한가봐! 아직 안 일어났어.”
“나 혼자 먹으면 밥맛이 없는데.......”
준우의 말에 무관심하게 흘려들은 희경이 거실로 나갔다. 그는 곁을 스치고 지나는 이모에게서 여자의 짙은 체취를 느꼈다. 거실로 나간 그녀가 탁자위에 놓인 빈 커피 잔을 집어 들려다가 탁자위에 엎질러진 커피 자국을 보고 돌아섰다. 그리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 그는 엎드려서 탁자를 닦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희경이 움직일 때마다 스커트위로 들어난 둔부가 농염하게 흔들렸다. 준우는 천천히 그녀의 등 뒤로 다가섰다.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그는 상대가 예민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는 방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엎드려 있는 그녀의 둔부를 슬그머니 쓰다듬었다. 얼굴이 붉어진 그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음을 흘렸다.
“이모, 엉덩이가 예뻐.”
“까불어........!?”
자잘하게 눈웃음을 지은 희경이 탁자를 닦더니 찻잔을 들고 일어서려다가 흠칫하였다. 준우가 슬쩍 하복부를 그녀의 둔부사이에 대고 그녀의 허리를 껴안은 것이다. 돌아선 그녀는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가볍게 눈을 흘긴 그녀가 그의 하복부를 바라봤다. 정아를 통해 충동을 받았던 그의 하복부에는 발기된 페니스가 추리닝 바지를 들고 일어나 있었다.
“이젠 제법 남자다워졌네.”
눈가가 발그스름해진 그녀가 그의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쳤다. 예기치 않게 이모가 급소를 치는 손놀림에 준우는 급히 엉덩이를 뒤로 뺐다.
“헛........! 이모!”
“호호~! 놀래기는........”
희경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준우의 페니스가 발기 되어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가끔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준우이지만 그만큼 평소 식구들에게는 스스럼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까닭이다. 주방으로 들어가던 그녀가 다시 뒤돌아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준우는 이모가 결혼한 지 이년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가 이혼한 사유를 특별히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준우가 친척들에게 어렴풋이 들은 말로는 이모부가 다른 여자와 외국으로 이민 갔다는 말도 있었고 이모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준우에게 어머니나 이모, 그리고 여동생 정아마저도 새삼스럽게 여자라는 호기심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호기심은 성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분화구였다. 그것은 또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울분의 표출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빗나간 그의 감정은 애정으로 감싸인 가족관을 벗어난 충동적인 분노였다.
거실 소파에 앉은 준우는 리모컨을 들어 TV전원스위치를 눌렀다. 모 방송국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발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성 범죄 강간범이 잡힌 것이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범인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마스크를 쓴 범죄자는 결코 반성하는 표정이 아니고, 입가에는 희소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화면을 응시하고 아나운서가 전하는 강간범의 범죄 사실을 듣는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짜릿함을 느꼈다. 어쩌면 준우가 갖고 있는 여자에 대한 적개심을 범인이 대신해 풀어준 느낌이었다. 준우의 여자에 대한 적개심의 대상은 어머니이고 그가 느끼는 분노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준우는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나서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발기한 페니스가 아직도 머리를 들고 일어서 있었다. 그는 불쑥 솟은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심호흡을 했다. 세면을 하고 나온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니 희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은 처녀 같은 그녀의 몸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농익은 체취에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식탁 앞이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희경이 시장에 다녀온다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식사를 마친 준우는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다가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전화 벨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러 번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마지못해 깨어난 미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진관동입니다.”
“나, 장 인호요.”
“아! 장 사장님. 웬일이세요?”
“송 사장! 일요일인데, 뭐해요?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데요.”
“오늘 나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지?”
미영은 능글맞은 눈빛의 장 인호 사장의 얼굴을 떠 올렸다. 그리고 선잠을 깬 것에 짜증이 났다. 벌써 한 달 전부터 노골적인 유혹을 하는 장 사장의 말이었다. 그녀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니까요.”
“허허~! 난 미영 씨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저번에 내 말 생각해봤소?”
“무슨 말인데요.......!?”
미영은 장 사장이 무슨 말을 묻는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큰둥하게 되물으며 하품을 했다. 장 인호는 오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고 딸만 둘을 데리고 살고 있다면서 미영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었다. 미영은 그를 사업상 관계 이외에 남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장 사장이 능글맞게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왜 이래! 우리 같이 살자고 했잖아.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미영 씨가 생각해본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생각해 본다고 했어요. 재혼할 생각도 없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했지.”
“그러지 말고 남은여생, 우리 즐겁게 살자고.”
“그런 말이라면 더 할 말이 없어요. 빌려 간 돈이나 빨리 돌려주시지요.”
“나간 돈이 회수가 안돼서 그래. 그러지 말고 오억만 빌려줘. 이달 말에 돈이 회수가 되는데, 이자까지 모두 돌려줄게. 부탁이야.”
“벌써 빌려간 돈이 오억 가까이 되고 이자도 한 푼 안 들어오고 있잖아요.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장 사장님이 거액을 투자한 신도건축이 부도가 났다면서요?”
미영은 기가 막혔다. 세 차례나 빌려간 돈도 적지 않은 돈인데 장 사장이 안하무인 식으로 뱃장을 부리는 것 같았다. 미영의 말에 장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나, 장 인호! 그런 정도에 무너질 내가 아냐!”
“더 이상 무리한 부탁하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나하고 같이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내가 미영 씨를 행복하게 해 줄게.”
“난 장사장님을 남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여튼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내 부탁 들어 줘야 나머지 돈도 수월 하게 받을 거야.”
능글맞은 장 인호가 끈질기게 집적거림에 미영은 무척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장 사장에게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화장대 위의 머리빗을 집어 던지며 와락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한두 살도 아니고 왜 이러세요? 더 이상 빌려 줄 돈도 없고 재혼할 생각도 없으니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내가 여자가 없어서 미영 씨와 살자고 그러고 돈이 없어서 미영 씨에게 부탁 하는 줄 알아! 그러면 앞으로 돈 돌려받을 생각도 하지 마.”
뱃장을 무리는 장 인호의 말투에 미영은 화가 치밀었다. 남편의 유산으로 밤이나 낮이나 뛰어다니면서 모은 돈을 주지 않는 다는 말에 그녀는 발끈했다.
“뭐라고요!? 협박하는 거예요? 도둑놈예요. 왜 빌려간 돈을 안줘요.”
“도둑놈이라고!? 말이면 다 인줄 알아. 뭐 이런 게 다 있어!”
“이런 거라니요!?”
“내가 송 사장 체면을 봐서 할 말도 안했는데 앞으로 조심해! 정말 그러면 국물도 없어.”
“무슨 말예요? 뭘 조심하라고.......!?”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맛살을 찌푸리는 미영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 인호의 얼굴을 떠 올렸다. 일요일을 맞이하여 쌓였던 피로를 풀려는 단잠을 깬 것도 화가 났지만, 아침부터 시비조인 목소리에 짜증이 났다.------------------
“사장님! 먼저 가겠습니다!”
“사장님! 수고하세요.”
“음! 수고들 했어.”
건물 안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민 경식이 퇴근하는 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재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퇴근을 한 후에도 나머지 자재를 정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여자 사무원이 손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그에게 말을 한다.
“사장님! 사모님한테서 전화 왔어요. 전 이만 퇴근할게요.”
“음! 그래 어서 들어가 수고했어.”
여사무원의 인사를 받은 민 경식은 끼고 있는 목장갑을 벗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민 경식의 아들 준우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만화책을 보며 키들거리는 아들을 흘낏 바라본 경식이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전화를 집어 들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야, 여보.”
“뭐하는 거야? 내일 친정엄마 생일에 가야하는데, 왜 돈 안 주는 거야? 몇 번씩 말을 해야 알아들어?”
“오늘 종업원들 월급을 줘서 가게에 돈이 없어. 친정엔 오후에 간다면서? 내일 오전에 은행에서 찾아다 주면 안 돼?”
“벌써 몇 번째 전화하는 거야? 오전에 나갈 생각인데 잔말 말고 찾아다 주면 되잖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 그런데.......”
속사포처럼 전화기 너머에서 쏟아지는 아내의 목소리. 민 경식은 항상 아내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같은 심정이다. 자신에게 과분한 아내를 맞이하여 가정을 가진 탓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주눅이 든 그가 말을 잊지 못하는데 잔화기 너머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바쁘다는 핑계로 장모 생일에도 안 갈 거 아냐?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꼭 사람 기분 잡치게 해. 구두쇠처럼 돈 모아 어디다 쓸려고 그래? 밤낮 움켜쥐기만 하고.......”
“알았어........지금 은행 갔다 올게.”
“어차피 줄 건데, 왜 그렇게 사람 기분 나쁘게........ ”
민 경식은 아내의 뒷말을 흘려들으며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줄때마다 야속하지만 했다. 그의 장래 희망은 농장을 갖는 것이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작은 행복이라도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작은 희망을 같이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아내였다.
민경식과 아내와 같은 고향으로서 대전 변두리였다. 행운인지 몰라도 같은 마을에 사는 아줌마를 통해 중매가 들어왔다. 지금의 아내가 된 미영이었다. 그 당시 여고를 졸업한 미영은 그로서는 감히 다가 설 수 없기에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흠모하던 여자였다. 중매가 들어오고 미영의 부모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의 학식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한동안 흐지부지 되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못마땅해 하던 미영의 부모로부터 부랴부랴 결혼을 주선해왔다. 들리는 말로는 미영이 유부남의 아이를 가져서 낙태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어쨌든 경식으로서 미영과의 결혼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울리지 않는 인연 탓인지 그는 아내의 앙칼진 투정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
경식은 가끔 아내와 결혼한 것이 잘못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는 자신에게 과분한 아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아들 준우와 딸 정아를 낳고 보니 후회할 수도 없었다. 결혼 당시 배운 것도 없는 그는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멸시와 주위의 시선을 무릎 쓰고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끼니를 굶어가며 악착 같이 돈을 모아 지금의 경기도로 이주해서 건축자재 상회를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농장을 한다는 장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푼 두푼 조금의 여유만 있어도 인근 농지를 사 들이고 있었다.
입맛을 다신 경식은 책상 서랍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들었다. 이따금 경식의 전화 받는 모습을 힐끔거리고 보던 준우가 보고 있던 만화책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빠! 어디가려고?”
“음. 은행에 가려는데, 같이 가자.”
준우가 소파에 놓인 과자봉지를 들고 경식의 뒤를 따라 나섰다. 사무실을 나온 경식은 건물 밖에 세워진 봉고차 운전석에 올라갔다. 준우가 조수석에 올라타고 경식이 시동을 걸어 봉고차를 출발 시켰다. 벌써 10년 가까이 사용한 차량이라 덜컹거리며 도로를 달려 나갔다. 준우가 들고 온 과자를 입속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빠! 엄마한테 꿈적 못하고 멸시당하는 게 좋아?”
“멸시하긴.......!? 집안이 잘되려면 남자가 이해해야 돼.”
“친구 엄마는 무척 상냥하고 마음씨가 좋은데.”
“엄마도 예쁘고 귀엽잖아.”
“예쁘긴 하지. 하지만 너무 잔소리가 많은 거 같아.”
“너희들한테는 안 그러잖아.”
봉고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 아스팔트길로 나섰다. 경식은 아들을 힐끔 쳐다보며 표정을 살폈다. 경식은 아내의 거칠면서도 안하무인격인 성격을 들어내는 아들의 말이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준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우리한테도 가끔 그러는데! 아빠한테는 너무한 거 같고. 아빠가 엄마한테 꼼짝 못한다고 친구들이 놀려.”
“너도 크면 아빠 심정을 알거다.”
“어떤 때는 정말 우리 엄마가 아닌 거 같고, 화가 나!”
“그런 말 하지 마라. 너를 낳아준 엄마야. 식구 모두 잘되라고 엄마가 그러는 거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 준우는 차량의 앞 유리를 멀거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곰곰이 삭이면서 서로 다른 성격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살고 있는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꼭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차량이 뜸한 도로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봉고차가 마을 중심가로 진입하였다. 군부대가 인접한 곳이라 외출을 하는 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경식이 아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한손을 뻗쳐 등을 토닥거렸다. 봉고차가 사거리에 인접해서 준우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아버지는 앞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핸들을 꺾고 있었다. 순간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던 준우는 경악하였다.
갑자기 옆길에서 집채만 한 군용트럭이 짐승처럼 달려와 덮치는 것이었다. 당황한 경식은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아들을 조수석 밖으로 떠밀어냈다. 급히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소형 트럭과 군용트럭이 충돌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운전석 앞 유리창을 뚫고 튕겨 나온 경식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악~!”
낮잠을 자다가 악몽에서 깨어난 준우는 벌떡 일어나 식은땀을 흘렸다. 언제나 가슴 속에 묻혀있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준우는 그날의 악몽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과묵한 성격의 아버지이지만 그를 무척 사랑하였고 그는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아버지가 사망하던 날도 그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같이 타고 시장에 다녀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준우는 트럭 밖으로 튕겨 나와 살아 있지만,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삼년이 지나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어도 그는 아직도 아버지를 여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준우의 아버지 민 경식은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는 성실한 남자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준우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날, 늦게까지 자재를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앙탈을 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리라고 준우는 생각한다. 그는 평범한 외모와 내성적인 아버지와 비교되는 어머니는 귀염성이 있는 미모와 다르게 다혈질이고 직선적이었다.
미영은 평소에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날도 준우는 아버지가 여러 차례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아버지는 무척 주눅이 들어 있었다. 결국 어머니의 독촉을 못이긴 아버지는 뒤늦게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준우는 평소에 아버지를 머슴 부리듯 했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을 한 번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두 남매와 어머니를 위해 힘든 역경을 견디며 묵묵히 살았던 아버지가 애틋하고 그리워서 혼자만의 울분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리울수록 준우는 어머니의 도도하고 자신감에 찬 모습이 역겨워졌다. 때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고 단지 짐승처럼 암내를 풍기는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여왕처럼 군림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언제나 시끌벅적하였고 아버지는 언제나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항상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준우는 어떻게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했는지 조차도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친척들로부터 그가 들은 말에는 아버지가 옆집에 살던 어머니를 죽자고 따라 다니며 구애를 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결혼 전에 다른 남자 아기를 낙태 시킨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부모가 어떻게 결혼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남자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동정심을 느낀 준우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무시하면서도 어머니가 여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관계를 했기에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구걸하다시피 부부관계를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준우는 육체관계마저 아버지에게 군림했을 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증오란 정당한 것이다. 부정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여자로서 복종시키고 싶었다. 아들이 아닌 남자로서 어머니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은 충동에 휘말렸다. 그는 변질된 오이디푸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젖어 성적인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착실하고 다소곳하면서도 활발하던 준우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준우의 성격이 차츰 바뀌었다. 평소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식구를 대하지만 이따금 내면에서 일어나는 울분을 그는 참지 못한다. 체육관을 다니는 준우는 운동신경도 발달했지만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다. 식구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울분에 잠길 때마다 그는 체육관에 가서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 치면서 혼자만의 우울한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준우는 어머니가 그냥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 한 것인가. 자존심을 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인가. 여자의 몸은 삶의 도구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몸은 자신의 인생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여자가 섹스라는 매개체만으로 남자들이 지배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평등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준우는 남자가 성적인 욕망으로 여자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것만 같았다. 남자보다 우월감을 갖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모멸감! 그가 혼란에 휩싸이는 그것은 한창 성적인 충동을 받는 나이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발산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그가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원인이었다.
준우의 어머니 송 미영은 남편이 죽고 나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활동력이 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인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서 직접 사업에 뛰어 들었다. 민주화 운동 등 불안정 했던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불안했던 건설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재건축 붐이 일어났다. 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는 정부의 건축정책이 활성화 되었다. 남다른 외모와 대인관계에 능한 미영의 노력으로 건축자재 사업은 날로 번창해졌다.
경식이 살아생전에 사놓았던 농지가 도시개발로 인해 눈덩이처럼 가치가 높아졌다. 미영은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 건축자재 사업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남편이 사놓았던 농지를 팔아 건물을 짓고 대형음식점을 개업하였다. 미영은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에 눈독을 드렸다.
미영은 음식점, 이층에 ‘그린 필드’라는 부동산 컨설팅사무실을 차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사업에 재미를 느낀 미영은 여동생 희경을 불러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밖으로 동분서주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딸만 넷을 낳았다. 그러난 애석하게도 미영과 희경 사이에 낳았던 두 딸은 어려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미영과 희경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나 되었다.
그녀는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남편의 숨결이 살아있는 주택을 팔고 서울 외곽의 이층 개인주택을 구입하여 이사를 했다. 남편이 구입했던 땅을 처분한 유산도 많았지만 음식점과 부동산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의 통장 잔고는 날로 늘어났다. 차츰 그녀의 미모와 재산에 눈독을 드리는 남자들도 있지만, 그녀를 시기하고 견제하는 부동산 업자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돌보만큼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침대에서 일어난 준우는 방문을 열고나오며 기지개를 폈다. 자신의 방이 있는 이층에서 내려온 준우는 층계를 내려와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창문으로는 보이는 정원에는 짙푸른 상록수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여중 졸업반인 그의 여동생 정아가 세면장에 나오다가 몸을 사렸다. 제법 여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풋풋한 그녀의 몸매. 잠옷만 걸친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애구! 늦잠꾸러기 오빠!”
“푸 후! 너도 이제 일어난 모양이면서........”
준우는 잠옷이 벌어진 정아의 앞가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법 봉긋하게 솟아난 정아의 젖가슴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오누이 사이라서 평상시 부담 없던 그녀의 모습이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준우에게 혀를 날름 내밀어 보면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짓궂은 생각이 든 그가 돌아서는 그녀의 등을 껴안았다.
“오늘따라 더 정아가 예쁜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정아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준우의 가슴에 등을 껴안긴 그녀는 앞가슴을 감싸는 그의 팔을 느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손바닥 안에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그녀의 젖가슴이 닿았다. 부드러운 촉감에 그녀의 젖가슴을 보듬은 그는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흘겼다.
“못 됐어.”
“하하.........귀여워.”
“피 잇~!”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인 정아가 준우의 가슴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준우는 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준우는 요즘따라 무엇인가 허물어 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들었다. 마치 복숭아 같은 정아의 엉덩이를 터트리고 싶은 욕구라고 할까.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잠옷 밑으로 들어난 뽀얀 허벅지 피부와 아담한 엉덩이가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넋을 잃고 있던 그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준우야! 너 밥 먹을 거지?”
“네........!”
주방 입구에서 쌍꺼풀을 깊게 드리운 여인의 눈동자가 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돌보고 있는 그의 이모 송 희경이었다. 그는 집안에 있는 어머니나 이모, 그리고 정아까지 비슷하게 닮았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녀들은 모두 크지 않은 아담한 체구에 조금은 헤프게 보이는 미소가 항상 깃들어있는 귀염성 있는 미모였다.
“빨리 세수하고 와서 밥 먹어. 나, 집안일로 바쁘단 말이야.”
“엄마는.......?”
준우는 휴일에는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을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다.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희경이 되돌아 나왔다. 결혼생활을 했었던 까닭인가. 그녀의 몸매는 농익어서 제법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준우는 새삼스럽게 언제나 집안에 남자라고는 혼자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 와서 부쩍 여자에게 관심이 많아진 그는 이모의 몸매에 성적인 매력을 느꼈다. 그녀가 그를 흘깃 쳐다보며 대답했다.
“피곤한가봐! 아직 안 일어났어.”
“나 혼자 먹으면 밥맛이 없는데.......”
준우의 말에 무관심하게 흘려들은 희경이 거실로 나갔다. 그는 곁을 스치고 지나는 이모에게서 여자의 짙은 체취를 느꼈다. 거실로 나간 그녀가 탁자위에 놓인 빈 커피 잔을 집어 들려다가 탁자위에 엎질러진 커피 자국을 보고 돌아섰다. 그리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 그는 엎드려서 탁자를 닦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희경이 움직일 때마다 스커트위로 들어난 둔부가 농염하게 흔들렸다. 준우는 천천히 그녀의 등 뒤로 다가섰다.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그는 상대가 예민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는 방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엎드려 있는 그녀의 둔부를 슬그머니 쓰다듬었다. 얼굴이 붉어진 그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음을 흘렸다.
“이모, 엉덩이가 예뻐.”
“까불어........!?”
자잘하게 눈웃음을 지은 희경이 탁자를 닦더니 찻잔을 들고 일어서려다가 흠칫하였다. 준우가 슬쩍 하복부를 그녀의 둔부사이에 대고 그녀의 허리를 껴안은 것이다. 돌아선 그녀는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가볍게 눈을 흘긴 그녀가 그의 하복부를 바라봤다. 정아를 통해 충동을 받았던 그의 하복부에는 발기된 페니스가 추리닝 바지를 들고 일어나 있었다.
“이젠 제법 남자다워졌네.”
눈가가 발그스름해진 그녀가 그의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쳤다. 예기치 않게 이모가 급소를 치는 손놀림에 준우는 급히 엉덩이를 뒤로 뺐다.
“헛........! 이모!”
“호호~! 놀래기는........”
희경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준우의 페니스가 발기 되어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가끔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준우이지만 그만큼 평소 식구들에게는 스스럼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까닭이다. 주방으로 들어가던 그녀가 다시 뒤돌아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준우는 이모가 결혼한 지 이년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가 이혼한 사유를 특별히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준우가 친척들에게 어렴풋이 들은 말로는 이모부가 다른 여자와 외국으로 이민 갔다는 말도 있었고 이모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준우에게 어머니나 이모, 그리고 여동생 정아마저도 새삼스럽게 여자라는 호기심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호기심은 성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분화구였다. 그것은 또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울분의 표출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빗나간 그의 감정은 애정으로 감싸인 가족관을 벗어난 충동적인 분노였다.
거실 소파에 앉은 준우는 리모컨을 들어 TV전원스위치를 눌렀다. 모 방송국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발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성 범죄 강간범이 잡힌 것이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범인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마스크를 쓴 범죄자는 결코 반성하는 표정이 아니고, 입가에는 희소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화면을 응시하고 아나운서가 전하는 강간범의 범죄 사실을 듣는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짜릿함을 느꼈다. 어쩌면 준우가 갖고 있는 여자에 대한 적개심을 범인이 대신해 풀어준 느낌이었다. 준우의 여자에 대한 적개심의 대상은 어머니이고 그가 느끼는 분노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준우는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나서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발기한 페니스가 아직도 머리를 들고 일어서 있었다. 그는 불쑥 솟은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심호흡을 했다. 세면을 하고 나온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니 희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은 처녀 같은 그녀의 몸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농익은 체취에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식탁 앞이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희경이 시장에 다녀온다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식사를 마친 준우는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다가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전화 벨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러 번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마지못해 깨어난 미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진관동입니다.”
“나, 장 인호요.”
“아! 장 사장님. 웬일이세요?”
“송 사장! 일요일인데, 뭐해요?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데요.”
“오늘 나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지?”
미영은 능글맞은 눈빛의 장 인호 사장의 얼굴을 떠 올렸다. 그리고 선잠을 깬 것에 짜증이 났다. 벌써 한 달 전부터 노골적인 유혹을 하는 장 사장의 말이었다. 그녀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니까요.”
“허허~! 난 미영 씨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저번에 내 말 생각해봤소?”
“무슨 말인데요.......!?”
미영은 장 사장이 무슨 말을 묻는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큰둥하게 되물으며 하품을 했다. 장 인호는 오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고 딸만 둘을 데리고 살고 있다면서 미영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었다. 미영은 그를 사업상 관계 이외에 남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장 사장이 능글맞게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왜 이래! 우리 같이 살자고 했잖아.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미영 씨가 생각해본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생각해 본다고 했어요. 재혼할 생각도 없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했지.”
“그러지 말고 남은여생, 우리 즐겁게 살자고.”
“그런 말이라면 더 할 말이 없어요. 빌려 간 돈이나 빨리 돌려주시지요.”
“나간 돈이 회수가 안돼서 그래. 그러지 말고 오억만 빌려줘. 이달 말에 돈이 회수가 되는데, 이자까지 모두 돌려줄게. 부탁이야.”
“벌써 빌려간 돈이 오억 가까이 되고 이자도 한 푼 안 들어오고 있잖아요.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장 사장님이 거액을 투자한 신도건축이 부도가 났다면서요?”
미영은 기가 막혔다. 세 차례나 빌려간 돈도 적지 않은 돈인데 장 사장이 안하무인 식으로 뱃장을 부리는 것 같았다. 미영의 말에 장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나, 장 인호! 그런 정도에 무너질 내가 아냐!”
“더 이상 무리한 부탁하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나하고 같이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내가 미영 씨를 행복하게 해 줄게.”
“난 장사장님을 남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여튼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내 부탁 들어 줘야 나머지 돈도 수월 하게 받을 거야.”
능글맞은 장 인호가 끈질기게 집적거림에 미영은 무척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장 사장에게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화장대 위의 머리빗을 집어 던지며 와락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한두 살도 아니고 왜 이러세요? 더 이상 빌려 줄 돈도 없고 재혼할 생각도 없으니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내가 여자가 없어서 미영 씨와 살자고 그러고 돈이 없어서 미영 씨에게 부탁 하는 줄 알아! 그러면 앞으로 돈 돌려받을 생각도 하지 마.”
뱃장을 무리는 장 인호의 말투에 미영은 화가 치밀었다. 남편의 유산으로 밤이나 낮이나 뛰어다니면서 모은 돈을 주지 않는 다는 말에 그녀는 발끈했다.
“뭐라고요!? 협박하는 거예요? 도둑놈예요. 왜 빌려간 돈을 안줘요.”
“도둑놈이라고!? 말이면 다 인줄 알아. 뭐 이런 게 다 있어!”
“이런 거라니요!?”
“내가 송 사장 체면을 봐서 할 말도 안했는데 앞으로 조심해! 정말 그러면 국물도 없어.”
“무슨 말예요? 뭘 조심하라고.......!?”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맛살을 찌푸리는 미영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 인호의 얼굴을 떠 올렸다. 일요일을 맞이하여 쌓였던 피로를 풀려는 단잠을 깬 것도 화가 났지만, 아침부터 시비조인 목소리에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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