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장 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준우는 식구들과 인사는 치른 셈이었다. 단지 만나 보지 못한 막내딸에 대해 그는 궁금했다. 그가 이상하게 여길 만큼 며칠이 지나도 막내딸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식구들은 막내딸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장 사장의 식구들 분위기가 겉으로는 잠잠한 것 같으면서도 새 식구가 된 준우는 잔잔한 호수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고 진숙에게 준우의 출현은 생활의 발견이 된 셈이었다. 침체된 생활 속에 빠졌던 진숙에게 그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그녀는 평상시 남편의 하루일과를 추측하거나 의붓딸들의 단점을 캐기도 하고 가정부와 집사의 관심을 끄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식구들은 없었다. 그녀는 식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자신의 젊음을 준우에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진숙의 머릿속에는 준우라는 새로운 인물이 빈 공간을 메워갔다. 그녀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예전과 다르게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며 남편의 귀가시간을 가다렸다. 아니 남편을 기다린다기보다는 남편의 승용차를 몰고 오는 준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준우를 마주하면 할 말은 없었다. 단지 그의 관심을 끌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준우가 새 식구가 된지 일주일쯤이 되는 날이었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 진숙은 퇴근한 남편을 반겼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도 그의 모습을 떠 올리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여보! 민비서 말예요! 사람이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모양예요.”
“음! 대학도 장학금으로 다녔고, 합기도 유단자이고 자격증도 많아. 내가 귀하게 쓸 인재야.”
“인물도 잘 생기고 피아노도 수준급이던데요, 저번에는 집사가 못 고치는 모터도 고치더라고요.”
“왜.....!? 민비서 같은 아들을 갖고 싶어?”
옆으로 돌아누운 장 사장이 진숙의 허리를 껴안으며 빙긋이 웃었다. 그녀는 아직 임신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더욱이나 나이 들고 조루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부부관계를 하는 남편에게 자식을 바랄 수는 없었다. 오늘따라 젖가슴을 더듬는 남편의 손이 역겨운 그녀가 눈을 흘겼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당신 나이가 몇인데요?”
“육십 넘어서도 자식을 낳는다는데, 내 나이에 아이를 못 가질 것은 없지. 어디, 오늘 만들어 볼까! 하하~!”
“당신도 참.......! 호호..........!”
“하하하.........!”
장 인호도 상반신을 들썩거리며 크게 웃었다. 진숙은 ‘제대로 힘도 못 쓰면서........’라고 말하려다가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 꿀꺽 삼켜 버렸다. 부부관계를 하면서도 남편은 헐떡거리다가 제 풀에 쓰러지기에 그녀는 항상 성적인 요구불만을 쌓여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를 떠올리는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려진 남자는 준우였다. 그녀는 갑자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남편이 예고도 없이 입술을 덮쳤기에 진숙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웃다가 갑자기 입을 막았기 때문에 그녀는 숨을 쉴 수없는 지경이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키스를 해준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재혼하고 지금까지 그녀는 남편의 전위행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장 인호는 아내의 아랫도리만 파고들며 혼자만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고, 그녀도 굳이 남편의 입술을 기다리지 않았다. 인호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 흥분이 되어 진숙의 입술을 핥으며 허겁지겁 잠옷과 속옷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그의 잠옷 바지와 팬티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진숙은 남편이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쳐 팬티를 벗겨내려고 손을 밀어 넣었을 때, 그녀는 익숙한 손길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뒤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묘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그의 손이 팬티에서 삐져나오고 말았다. 그것은 남편의 손길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인호는 얼른 오른발을 올려 엄지발가락에 아내의 팬티고무줄 부분을 걸고는 아래로 훑어 내렸다. 인호는 곧잘 그렇게 아내의 팬티를 벗기면서, 이 도령도 성춘향의 단속곳을 엄지발가락에 걸어 잽싸게 벗겼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폭력배 생활을 했던 그는 배운 것이 없어도 여자 다루는 요령 대해서는 도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었다.
인호는 아내를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고 젖꼭지를 입에 물고 빨기도 하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이 그냥 젖꼭지를 빠는 것보다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주는 것이 훨씬 기분 좋았다. 아니 기분 좋을 정도가 아니라 어떤 순간은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가물에 콩 나듯 하였다. 대부분 혼자 흥분한 남편이 억지로 보지 속으로 자지를 밀어 넣기 때문이었다.
진숙은 이따금 남편이 오랜 시간 젖을 물고 늘어지며 전위행위를 해주면 수도꼭지를 열어 놓은 것처럼 자궁 속에서 많은 액체를 분비해서 온 몸의 기능들이 활짝 열리고 남성을 받아 드릴 준비를 했다. 액체를 분비함으로서 남자의 몸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만 보아도 육체의 신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녀의 육체관계에 대해서 진숙은 가끔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여자의 비밀스러운 부분에 액체가 분비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강제적으로 성기를 들이 미는 것이 바로 강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도 남편에게 자주 강간을 당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간을 당하면서도 액체가 분비 한다는 것은 혈관 내에서 생긴 신체의 반응일 것이다.
진숙은 흥분도 하기 전에 남편의 자지가 보지 속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느껴야할 쾌감 대신에 안타까움이었다. 지극히 왜소한 남편의 일부가 보지 속을 치밀고 들어옴에 그녀는 그때서야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보지 속을 점령한 인호는 열심히 진퇴운동을 하며 오르가즘의 정상을 향해 치닫는다.
“여, 여보. 하 으........”
“헉, 헉, 허 윽, 컥.........”
흥분하기 시작한 진숙은 안타까움으로 남편의 등을 움켜쥐었다. 무언가 정상을 향해 치달아야할 진숙의 안타까움이었다. 인호는 벌써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아내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곧 사정을 할 것만 같아 헐떡거리는 그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살리고 싶었다. 조루증 같은 증세를 보이면 남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다는 생각을 한 그는 아내의 둔부를 들어 올리며 보지 속으로 깊이 자지를 박아 넣으며 안간힘을 쓴다.
“헉, 헉, 당신 조, 좋아.”
“자. 자기야. 조금만 더..........하 으. 아 하......”
남편의 물음에 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 남편이 곧 사정을 하고 말 것만 같아서였다. 인호는 더 이상 힘이 들어 버거웠다. 그는 편한 자세로 체위를 바꾸기 위해 옆으로 누워 아내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보지 속으로 자지를 진퇴시켰다. 그때마다 신음 소리에 섞여 보지 속을 적신 진액이 묘한 소리를 냈다.
“헉. 하으. 아 하. 찌걱. 찌 거덕. 헉. 아 흑. 아 항........”
정상의 궤도로 올라가고 있는 진숙은 허우적거리며 남편의 둔부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미 인호는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아내의 젖가슴을 쥐고 경직되었다. 보지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남편의 분비물을 느끼는 그녀는 허전함과 불만 속에 빠져든다. 그녀는 결국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남편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도구로 전락 되었다는 참담한 기분에 젖는다.
“기분 좋았어?”
“.........”
진숙은 남편의 묻는 말이 머나먼 동굴 속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들어진 남자의 성기가 보지 속에서 꿈틀거리지만 그녀는 안타까움에 젖어들었을 뿐, 엑스터시나 오르가즘은 거리가 먼 곳으로 등선을 넘어가 버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 그녀는 일찌감치 오르가즘을 포기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습관적인 남편과의 성경험을 통해 터득한 바였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끝나면 진숙은 잠을 못 이루고 불만과 회의에 젖어 뒤척인다. 풍부한 경제력과 안락한 생활을 위해 재취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여자가 된 것이 잘한 일인가. 그렇다고 그녀가 남편에게 성적인 불만을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남자의 자존심상 남편은 그녀를 탓할 것이 뻔하였다. 여자가 너무 성욕이 강하다고 하거나 너무 밝힌다고 할 것이다. 요즘 그녀의 고민 중에 하나가 너무 무료한 생활이 문제지만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인호는 아내에게 흡족한 시선을 보냈다. 남자는 부부의 육체관계에서 자신의 쾌감 보다는 아내가 쾌감을 느끼는 모습에 만족한다. 그는 아내의 무언의 태도를 무척 만족하다는 반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출근준비를 돕는 아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젯밤 당신 모습이 무척 섹시했어. 오늘 부산으로 출장 다녀와야 하는데, 내 생각나더라도 당신 외로워하지 마.”
진숙은 능글능글하게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이 징그럽다고 느꼈다. 습관이 되었으련만 엉덩이를 쓰다듬는 남편의 손을 후려치고 싶었다. 문득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민비서도 같이 가요?”
“아니, 장거리라서 피곤하니 KTX로 다녀올게. 업무가 복잡해서 이틀 정도 걸릴 거야. 다녀와서 당신 더 사랑해 줄게.”
성적인 욕구의 불만으로 지난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진숙은 남편과 당분간 떨어져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부부간의 잠자리는 곤욕을 치루는 시간이었다. 남자가 나이 들면 아내에게 의무적인 잠자리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녀도 남편과의 잠자리는 마찬가지였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진숙의 시선이 이따금 준우를 향했다. 젊은 혈기고 가득한 준우의 모습은 고혈압과 당뇨병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이든 남편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준우는 진숙의 시선에 무관심하며 이따금 수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든지 도도한 태도의 수진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그의 장 인호에 대한 보복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수진은 사실 준우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다르게 당당한 그의 태도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밉상스러웠다. 그녀에게 기가 죽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는 그리 흔치않았다. 수진은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탁에서 먼저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진과 식사를 하고 있는 진숙, 그리고 준우의 시선이 엇갈렸다, 장 인호가 진숙에게 물었다.
“수정 이가 안 보이는데, 어제 또 안 들어왔나?”
“어제 밤, 늦게 들어왔다가 아침 일찍 나갔어요.”
진숙을 대신해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가정부 강릉댁이 대답했다. 준우가 장 사장의 집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막내딸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인호가 음식을 먹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숙이 언짢은 표정을 했다.
“당신이 뭐라고 하세요. 여자애가 집에도 잘 안 들어오니, 얼굴도 보기 힘들고,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어휴~! 말도 안 듣고.........”
장 인호가 수저를 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막내딸 수정이 걱정스러웠으나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다룰 수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수정이 밖으로 떠도는 것은 그가 재혼을 한 탓도 있었다. 딸들은 새 엄마로 들어온 진숙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장 인호는 둘째 딸 수정 때문에 무척 고민스러웠다. 수진은 그다지 말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대학에 입학해야할 수정은 밖으로만 떠돌며 그가 야단을 치고 타일러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수정은 노골적으로 진숙을 싫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도 그는 수정이 사랑스러워 안타까웠다.
준우는 아직 만나지 못한 장 인호의 막내딸 수정에 대해서 궁금했다. 가정부 강릉댁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밤늦게 들어왔다가 나가거나, 식구들이 없는 시간에 몰래 들어왔다가 나간다는 것을 준우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용돈이 떨어지면 아버지 장 인호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준우는 식구들이 둘째딸의 행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식사가 끝나고 준우는 출장을 떠나는 장 인호를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고 회사로 출근했다. 장 인호가 회사에 있음으로 업무가 발생하고 수족처럼 움직이던 준우였다. 사장이 없으니 그는 마땅하게 할 일이 없고 자유스러웠다. 밀렸던 서류를 챙겨 놓은 그는 입사동기생들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동기생들이 그에게 한마디씩 했다.
“민 준우 씨, 보기가 힘드네.”
“사장님 직속 비서니까.......”
“그만한 실력도 있지만, 준우 씨는 운이 좋아.”
입사 동기생들은 모두 준우를 부러워했다. 그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좀 더 좋은 직장을 가지려면 대진 컨설팅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준우는 사정을 모르는 그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기억에 없는 전화번호였다. 망설이던 그가 동기생들에게 벗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저기........민 준우 씨 전화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어딘가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준우는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기억해 내려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여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준우 씨! 나, 은지야.”
“은지.......!?”
“응! 황 은지.”
“아! 오래간만이구나. 잘 지내고 있겠지!?”
준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때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의 목소리여서 그는 무척 반가웠다. 친구 철민을 통해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마땅히 인사할 말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 까. 잠시 생각을 하는 중에 은지가 말했다.
“나. 지금! 준우 씨, 회사 앞이야. 만날 수 있어? 바쁜 거 아냐.”
“그래!? 지금 내가 나갈게.”
통화를 끝낸 준우는 부리나케 걸음을 옮겼다. 설사 바쁘다하더라도 그녀를 만났을 것이다. 미색 투피스를 걸친 은지가 건물정문의 로비에서 다소곳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준우는 반가움에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으나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왠지 쑥스러워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도 미시러 갈까?”
“아니 답답해, 그냥 걷고 싶어.”
준우는 은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로수 밑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지난 시절 그녀의 입술을 탐닉하며 스킨십을 시도하던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친근감 있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준우 씨! 힘들었으리라고 생각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 준우 씨도 많이 변했네.”
“변했다고......!?”
“응, 뭐라고 할까! 예전보다 더 믿음직하고 남자다워졌어.”
“은지도 아름다워졌는걸.”
그들은 천천히 걸어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 근처에는 주로 사무실이 있는 빌딩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한창 일할 시간이라서 그런지 공원 안은 한적하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은지가 나무 그늘 밑의 벤치에 앉았다. 스커트 자락을 거머쥐는 그녀의 하얀 손이 무척 가냘프게 보였다. 그녀의 스커트 자락 밑으로 들어나는 뽀얀 허벅지를 힐끔 쳐다본 준우는 그녀가 결혼생활을 해서 그런지 성숙해졌다고 느꼈다. 그녀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철민 씨에게 준우 씨, 전화번호 알았어.......”
“음! 나도 철민에게 은지 전화번호 받았었어.”
“솔직히 난, 준우 씨가 전화 해주기를 기다렸어.”
“전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결혼 생활은 행복해?”
준우의 물음을 듣는 은지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무언가 애틋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눈동자에 습기가 배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발끝으로 땅바닥을 문질렀다.
“행복.......!? 내가 바라던 행복은 아니야. 하지만 식구들이 나로 인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어쩌면 준우 씨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거 아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사랑......! 사랑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니까.”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준우의 물음에 은지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남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숨길 것도 없지. 과거가 있고 내 부모와 형제들을 도와 줄 수 있을 만큼 돈은 넉넉하고 나이 많은 남자야.”
“과거.......!?”
“상처를 하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사는 남자. 뚜렷하게 내세울 것은 없고 남편은 한쪽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이고 폭력 전과가 있는 남자........”
“꼭 그랬어야만 했어?”
“어쩔 수 없었어.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불구가 되고, 어머니는 병들어 누워 병원비도 없고, 동생들은 나만 쳐다보고 있어서.........”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은 행복한 거야?”
준우의 물음에 은지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결혼하면서 그녀의 친정식구를 위해 남편이 집을 사준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친정식구들은 비좁은 전세방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생활비 교육비는 주지만.........,식구들은 아직도 단칸방에 살고 있어..........”
은지는 넋두리를 늘어놓듯이 천천히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털어 놓았다. 준우는 한 시절 그녀를 사랑했고 소유하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그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간 그녀가 울먹였다.
“누구에겐가 내 심정을 위로 받고 싶었어. 그게 준우 씨야. 난 아직도 준우 씨를 잊지 못하고 있어.”
준우를 바라보는 은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햇빛에 반사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준우에게 그녀는 순수한 감정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준우가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울음을 참아 내며 입술에 경련이 일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는데, 난 솔직히 준우 씨를 잊은 적이 없었어. 두려움 없이 사춘기 시절의 불장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준우 씨의 여자가 될 걸 그랬나봐.”
“..........!?”
준우는 은지가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사실 준우는 그녀를 사귈 당시 사춘기의 순수한 감정만은 아니고 젊은 혈기에 의한 충동이었다. 남자는 순간의 충동으로 여자를 소유하려 하고 여자는 호기심으로 남자를 받아 드린다고 했다. 여자와 남자의 감정은 다른 것이었다. 과거에 그는 사랑이나 애정보다는 어쩌면 충동적인 감정으로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은지의 말이 끝나고 준우는 그녀가 더욱 측은하고 애틋하였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당겼다. 그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울먹였다. 준우 자신도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여동생에 관한 심정을 들어내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우울한 그녀를 더 이상 슬프지 않게 하고 싶었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든 비둘기 한 쌍이 그들이 앉은 뒤편 나무에 앉아 날갯짓을 퍼덕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부스스 일어났다.
“나, 가봐야 될 시간이야. 남편이 기다려.”
“식사라도 같이 할 걸........”
“나중에 술 한 잔 사줘.”
“.........!”
준우는 은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서 있었다. 이따금 뒤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옮기며 망설였다. 장 사장이 없기에 회사에 들어가도 별로 할 일이 없었고 은지 때문에 가슴 한편이 찡하여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일단 회사에 들어가 동태를 살핀 후 퇴근하기로 하였다.
회사건물 입구로 향해 층계를 오르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면 퇴근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층계를 내려오려고 하다가 우뚝 섰다. 그와 마주보며 계단을 내려오던 여자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항상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 미라였다.
“어!? 준우 오빠! 또 만나네.”
“넌, 오늘 웬일이냐?”
“헤헤~! 아빠한테 용돈 받으러 왔는데.”
“아빠가 여기 일하고 있니?”
미라가 팔짝팔짝 층계를 뛰어 내려오더니 서슴없이 준우의 팔에 팔짱을 꼈다. 짧은 핫 팬티에 민소매를 걸친 그녀는 역시 발랄하고 당돌했다. 그는 아담하게 솟은 그녀의 앞가슴과 핫 팬티 밑으로 들어난 우윳빛갈의 매끈한 허벅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래. 용돈은 받았니?”
“아빠가 없어요.”
“안됐구나.”
“오빠! 오빠는 볼 때마다 멋있어진다. 나, 오빠가 좋거든.”
“왜!? 또, 돈 꿔 달라고?”
준우는 층계를 내려오며 피식 웃었다. 그의 팔에 매달린 미라가 보조개를 들어내는 싱그러운 미소를 흘리며 눈웃음을 쳤다.
“정말이라니까. 오빠가 좋다니까. 난, 오빠가 없어.”
“하하~! 어쨌든 듣기는 좋구나.”
“오빠,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클럽에 가면 안 돼?”
“그런데 다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
“난 새장에 갇히는 것 같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오빠 같이 가자.”
미라가 준우의 팔을 붙들고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있고 우연이라고 해도 그는 그녀의 청을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구나.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들어가.”
“피 잇~! 싫음 관둬요. 우리끼리 가지 뭐. 헤 헷~! 오빠 다음에 또 봐.”
층계를 뛰어 내려가는 미라가 헤픈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준우는 뒤로 질끈 묶인 머리를 찰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건물 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주차장을 빠져 나왔을 때 친구를 만난 미라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며 집으로 향해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한 준우는 정원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볼 수 있었다. 집사 박 씨는 정원수를 관리하고 있었고 진숙과 가정부 강릉댁은 정원 한구석 텃밭에 가꾼 채소를 광주리에 담고 있었다. 준우는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집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는 집사와 같이 정원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뒤를 힐끔 돌아보는 준우와 진숙의 시선이 마주쳤다. 젊은 열기가 돋보이도록 근육을 들어낸 준우의 균형 잡힌 체격! 진숙은 한동안 준우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봤다. 준우를 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 건넌방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수진의 눈동자가 햇빛에 반사되었다. 외출준비 중이던 수진은 남성미를 흠씬 느끼게 하는 준우의 매력에 동요되었다. 그녀는 외출을 하려고 걸치고 있던 바지와 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벗어던졌다.
비록 외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수진은 준우의 시선을 끌고 싶었다. 처음부터 자존심을 앞세워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점점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짧은 스커트에 민소매의 블라우스를 걸쳤다. 블라우스의 앞가슴이 깊게 패인 그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 선정적으로 들어나 보였다.
정원수에 물주기를 마친 준우가 벗어 놓은 상의를 벗어 들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일어서던 수진이 준우와 마주치고는 흠칫하였다. 그녀와 코앞에서 시선을 마주친 준우가 쓴웃음과 함께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천박하게 보이지 않아요?”
“뭐가요!?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나름대로 관심을 갖으라고 치장하고 나온 수진은 화가 나서 톡 쏘아붙였다. 비아냥거리듯이 웃음을 흘린 준우가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쳤다. 눈동자를 크게 뜬 그녀가 뒷걸음쳤다. 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 주었다.
“숙녀가 칠칠맞게........”
준우를 피해 뒷걸음치던 수진이 다리를 삐끗하며 균형을 잃고 앞으로 갸우뚱하였다. 준우가 얼른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넘어지려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안았다. 입술이라도 닿을 듯 가까워진 그들은 서로 당황하였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공연히 눈을 하얗게 흘겼다.
“남이야!? 웬 걱정이에요........댁 때문에 넘어질 뻔 했잖아요.”
“하하~! 꼭 싸우러 덤비는 사람 같네. 상냥하게 말해도 될 걸!”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준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진은 자존심 때문에 그의 호감을 받아 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녀는 상냥하게 대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녀는 자상한 그의 행동에 다시 한 번 깊은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동안 그에게 까칠했던 자신을 은연중에 후회했다.------------------------
특히 고 진숙에게 준우의 출현은 생활의 발견이 된 셈이었다. 침체된 생활 속에 빠졌던 진숙에게 그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그녀는 평상시 남편의 하루일과를 추측하거나 의붓딸들의 단점을 캐기도 하고 가정부와 집사의 관심을 끄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식구들은 없었다. 그녀는 식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자신의 젊음을 준우에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진숙의 머릿속에는 준우라는 새로운 인물이 빈 공간을 메워갔다. 그녀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예전과 다르게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며 남편의 귀가시간을 가다렸다. 아니 남편을 기다린다기보다는 남편의 승용차를 몰고 오는 준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준우를 마주하면 할 말은 없었다. 단지 그의 관심을 끌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준우가 새 식구가 된지 일주일쯤이 되는 날이었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 진숙은 퇴근한 남편을 반겼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도 그의 모습을 떠 올리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여보! 민비서 말예요! 사람이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모양예요.”
“음! 대학도 장학금으로 다녔고, 합기도 유단자이고 자격증도 많아. 내가 귀하게 쓸 인재야.”
“인물도 잘 생기고 피아노도 수준급이던데요, 저번에는 집사가 못 고치는 모터도 고치더라고요.”
“왜.....!? 민비서 같은 아들을 갖고 싶어?”
옆으로 돌아누운 장 사장이 진숙의 허리를 껴안으며 빙긋이 웃었다. 그녀는 아직 임신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더욱이나 나이 들고 조루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부부관계를 하는 남편에게 자식을 바랄 수는 없었다. 오늘따라 젖가슴을 더듬는 남편의 손이 역겨운 그녀가 눈을 흘겼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당신 나이가 몇인데요?”
“육십 넘어서도 자식을 낳는다는데, 내 나이에 아이를 못 가질 것은 없지. 어디, 오늘 만들어 볼까! 하하~!”
“당신도 참.......! 호호..........!”
“하하하.........!”
장 인호도 상반신을 들썩거리며 크게 웃었다. 진숙은 ‘제대로 힘도 못 쓰면서........’라고 말하려다가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 꿀꺽 삼켜 버렸다. 부부관계를 하면서도 남편은 헐떡거리다가 제 풀에 쓰러지기에 그녀는 항상 성적인 요구불만을 쌓여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를 떠올리는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려진 남자는 준우였다. 그녀는 갑자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남편이 예고도 없이 입술을 덮쳤기에 진숙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웃다가 갑자기 입을 막았기 때문에 그녀는 숨을 쉴 수없는 지경이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키스를 해준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재혼하고 지금까지 그녀는 남편의 전위행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장 인호는 아내의 아랫도리만 파고들며 혼자만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고, 그녀도 굳이 남편의 입술을 기다리지 않았다. 인호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 흥분이 되어 진숙의 입술을 핥으며 허겁지겁 잠옷과 속옷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그의 잠옷 바지와 팬티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진숙은 남편이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쳐 팬티를 벗겨내려고 손을 밀어 넣었을 때, 그녀는 익숙한 손길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뒤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묘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그의 손이 팬티에서 삐져나오고 말았다. 그것은 남편의 손길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인호는 얼른 오른발을 올려 엄지발가락에 아내의 팬티고무줄 부분을 걸고는 아래로 훑어 내렸다. 인호는 곧잘 그렇게 아내의 팬티를 벗기면서, 이 도령도 성춘향의 단속곳을 엄지발가락에 걸어 잽싸게 벗겼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폭력배 생활을 했던 그는 배운 것이 없어도 여자 다루는 요령 대해서는 도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었다.
인호는 아내를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고 젖꼭지를 입에 물고 빨기도 하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이 그냥 젖꼭지를 빠는 것보다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주는 것이 훨씬 기분 좋았다. 아니 기분 좋을 정도가 아니라 어떤 순간은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가물에 콩 나듯 하였다. 대부분 혼자 흥분한 남편이 억지로 보지 속으로 자지를 밀어 넣기 때문이었다.
진숙은 이따금 남편이 오랜 시간 젖을 물고 늘어지며 전위행위를 해주면 수도꼭지를 열어 놓은 것처럼 자궁 속에서 많은 액체를 분비해서 온 몸의 기능들이 활짝 열리고 남성을 받아 드릴 준비를 했다. 액체를 분비함으로서 남자의 몸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만 보아도 육체의 신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녀의 육체관계에 대해서 진숙은 가끔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여자의 비밀스러운 부분에 액체가 분비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강제적으로 성기를 들이 미는 것이 바로 강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도 남편에게 자주 강간을 당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간을 당하면서도 액체가 분비 한다는 것은 혈관 내에서 생긴 신체의 반응일 것이다.
진숙은 흥분도 하기 전에 남편의 자지가 보지 속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느껴야할 쾌감 대신에 안타까움이었다. 지극히 왜소한 남편의 일부가 보지 속을 치밀고 들어옴에 그녀는 그때서야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보지 속을 점령한 인호는 열심히 진퇴운동을 하며 오르가즘의 정상을 향해 치닫는다.
“여, 여보. 하 으........”
“헉, 헉, 허 윽, 컥.........”
흥분하기 시작한 진숙은 안타까움으로 남편의 등을 움켜쥐었다. 무언가 정상을 향해 치달아야할 진숙의 안타까움이었다. 인호는 벌써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아내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곧 사정을 할 것만 같아 헐떡거리는 그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살리고 싶었다. 조루증 같은 증세를 보이면 남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다는 생각을 한 그는 아내의 둔부를 들어 올리며 보지 속으로 깊이 자지를 박아 넣으며 안간힘을 쓴다.
“헉, 헉, 당신 조, 좋아.”
“자. 자기야. 조금만 더..........하 으. 아 하......”
남편의 물음에 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 남편이 곧 사정을 하고 말 것만 같아서였다. 인호는 더 이상 힘이 들어 버거웠다. 그는 편한 자세로 체위를 바꾸기 위해 옆으로 누워 아내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보지 속으로 자지를 진퇴시켰다. 그때마다 신음 소리에 섞여 보지 속을 적신 진액이 묘한 소리를 냈다.
“헉. 하으. 아 하. 찌걱. 찌 거덕. 헉. 아 흑. 아 항........”
정상의 궤도로 올라가고 있는 진숙은 허우적거리며 남편의 둔부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미 인호는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아내의 젖가슴을 쥐고 경직되었다. 보지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남편의 분비물을 느끼는 그녀는 허전함과 불만 속에 빠져든다. 그녀는 결국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남편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도구로 전락 되었다는 참담한 기분에 젖는다.
“기분 좋았어?”
“.........”
진숙은 남편의 묻는 말이 머나먼 동굴 속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들어진 남자의 성기가 보지 속에서 꿈틀거리지만 그녀는 안타까움에 젖어들었을 뿐, 엑스터시나 오르가즘은 거리가 먼 곳으로 등선을 넘어가 버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 그녀는 일찌감치 오르가즘을 포기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습관적인 남편과의 성경험을 통해 터득한 바였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끝나면 진숙은 잠을 못 이루고 불만과 회의에 젖어 뒤척인다. 풍부한 경제력과 안락한 생활을 위해 재취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여자가 된 것이 잘한 일인가. 그렇다고 그녀가 남편에게 성적인 불만을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남자의 자존심상 남편은 그녀를 탓할 것이 뻔하였다. 여자가 너무 성욕이 강하다고 하거나 너무 밝힌다고 할 것이다. 요즘 그녀의 고민 중에 하나가 너무 무료한 생활이 문제지만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인호는 아내에게 흡족한 시선을 보냈다. 남자는 부부의 육체관계에서 자신의 쾌감 보다는 아내가 쾌감을 느끼는 모습에 만족한다. 그는 아내의 무언의 태도를 무척 만족하다는 반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출근준비를 돕는 아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젯밤 당신 모습이 무척 섹시했어. 오늘 부산으로 출장 다녀와야 하는데, 내 생각나더라도 당신 외로워하지 마.”
진숙은 능글능글하게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이 징그럽다고 느꼈다. 습관이 되었으련만 엉덩이를 쓰다듬는 남편의 손을 후려치고 싶었다. 문득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민비서도 같이 가요?”
“아니, 장거리라서 피곤하니 KTX로 다녀올게. 업무가 복잡해서 이틀 정도 걸릴 거야. 다녀와서 당신 더 사랑해 줄게.”
성적인 욕구의 불만으로 지난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진숙은 남편과 당분간 떨어져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부부간의 잠자리는 곤욕을 치루는 시간이었다. 남자가 나이 들면 아내에게 의무적인 잠자리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녀도 남편과의 잠자리는 마찬가지였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진숙의 시선이 이따금 준우를 향했다. 젊은 혈기고 가득한 준우의 모습은 고혈압과 당뇨병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이든 남편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준우는 진숙의 시선에 무관심하며 이따금 수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든지 도도한 태도의 수진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그의 장 인호에 대한 보복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수진은 사실 준우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다르게 당당한 그의 태도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밉상스러웠다. 그녀에게 기가 죽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는 그리 흔치않았다. 수진은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탁에서 먼저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진과 식사를 하고 있는 진숙, 그리고 준우의 시선이 엇갈렸다, 장 인호가 진숙에게 물었다.
“수정 이가 안 보이는데, 어제 또 안 들어왔나?”
“어제 밤, 늦게 들어왔다가 아침 일찍 나갔어요.”
진숙을 대신해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가정부 강릉댁이 대답했다. 준우가 장 사장의 집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막내딸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인호가 음식을 먹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숙이 언짢은 표정을 했다.
“당신이 뭐라고 하세요. 여자애가 집에도 잘 안 들어오니, 얼굴도 보기 힘들고,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어휴~! 말도 안 듣고.........”
장 인호가 수저를 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막내딸 수정이 걱정스러웠으나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다룰 수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수정이 밖으로 떠도는 것은 그가 재혼을 한 탓도 있었다. 딸들은 새 엄마로 들어온 진숙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장 인호는 둘째 딸 수정 때문에 무척 고민스러웠다. 수진은 그다지 말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대학에 입학해야할 수정은 밖으로만 떠돌며 그가 야단을 치고 타일러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수정은 노골적으로 진숙을 싫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도 그는 수정이 사랑스러워 안타까웠다.
준우는 아직 만나지 못한 장 인호의 막내딸 수정에 대해서 궁금했다. 가정부 강릉댁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밤늦게 들어왔다가 나가거나, 식구들이 없는 시간에 몰래 들어왔다가 나간다는 것을 준우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용돈이 떨어지면 아버지 장 인호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준우는 식구들이 둘째딸의 행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식사가 끝나고 준우는 출장을 떠나는 장 인호를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고 회사로 출근했다. 장 인호가 회사에 있음으로 업무가 발생하고 수족처럼 움직이던 준우였다. 사장이 없으니 그는 마땅하게 할 일이 없고 자유스러웠다. 밀렸던 서류를 챙겨 놓은 그는 입사동기생들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동기생들이 그에게 한마디씩 했다.
“민 준우 씨, 보기가 힘드네.”
“사장님 직속 비서니까.......”
“그만한 실력도 있지만, 준우 씨는 운이 좋아.”
입사 동기생들은 모두 준우를 부러워했다. 그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좀 더 좋은 직장을 가지려면 대진 컨설팅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준우는 사정을 모르는 그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기억에 없는 전화번호였다. 망설이던 그가 동기생들에게 벗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저기........민 준우 씨 전화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어딘가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준우는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기억해 내려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여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준우 씨! 나, 은지야.”
“은지.......!?”
“응! 황 은지.”
“아! 오래간만이구나. 잘 지내고 있겠지!?”
준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때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의 목소리여서 그는 무척 반가웠다. 친구 철민을 통해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마땅히 인사할 말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 까. 잠시 생각을 하는 중에 은지가 말했다.
“나. 지금! 준우 씨, 회사 앞이야. 만날 수 있어? 바쁜 거 아냐.”
“그래!? 지금 내가 나갈게.”
통화를 끝낸 준우는 부리나케 걸음을 옮겼다. 설사 바쁘다하더라도 그녀를 만났을 것이다. 미색 투피스를 걸친 은지가 건물정문의 로비에서 다소곳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준우는 반가움에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으나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왠지 쑥스러워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도 미시러 갈까?”
“아니 답답해, 그냥 걷고 싶어.”
준우는 은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로수 밑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지난 시절 그녀의 입술을 탐닉하며 스킨십을 시도하던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친근감 있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준우 씨! 힘들었으리라고 생각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 준우 씨도 많이 변했네.”
“변했다고......!?”
“응, 뭐라고 할까! 예전보다 더 믿음직하고 남자다워졌어.”
“은지도 아름다워졌는걸.”
그들은 천천히 걸어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 근처에는 주로 사무실이 있는 빌딩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한창 일할 시간이라서 그런지 공원 안은 한적하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은지가 나무 그늘 밑의 벤치에 앉았다. 스커트 자락을 거머쥐는 그녀의 하얀 손이 무척 가냘프게 보였다. 그녀의 스커트 자락 밑으로 들어나는 뽀얀 허벅지를 힐끔 쳐다본 준우는 그녀가 결혼생활을 해서 그런지 성숙해졌다고 느꼈다. 그녀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철민 씨에게 준우 씨, 전화번호 알았어.......”
“음! 나도 철민에게 은지 전화번호 받았었어.”
“솔직히 난, 준우 씨가 전화 해주기를 기다렸어.”
“전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결혼 생활은 행복해?”
준우의 물음을 듣는 은지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무언가 애틋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눈동자에 습기가 배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발끝으로 땅바닥을 문질렀다.
“행복.......!? 내가 바라던 행복은 아니야. 하지만 식구들이 나로 인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어쩌면 준우 씨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거 아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사랑......! 사랑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니까.”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준우의 물음에 은지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남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숨길 것도 없지. 과거가 있고 내 부모와 형제들을 도와 줄 수 있을 만큼 돈은 넉넉하고 나이 많은 남자야.”
“과거.......!?”
“상처를 하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사는 남자. 뚜렷하게 내세울 것은 없고 남편은 한쪽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이고 폭력 전과가 있는 남자........”
“꼭 그랬어야만 했어?”
“어쩔 수 없었어.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불구가 되고, 어머니는 병들어 누워 병원비도 없고, 동생들은 나만 쳐다보고 있어서.........”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은 행복한 거야?”
준우의 물음에 은지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결혼하면서 그녀의 친정식구를 위해 남편이 집을 사준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친정식구들은 비좁은 전세방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생활비 교육비는 주지만.........,식구들은 아직도 단칸방에 살고 있어..........”
은지는 넋두리를 늘어놓듯이 천천히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털어 놓았다. 준우는 한 시절 그녀를 사랑했고 소유하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그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간 그녀가 울먹였다.
“누구에겐가 내 심정을 위로 받고 싶었어. 그게 준우 씨야. 난 아직도 준우 씨를 잊지 못하고 있어.”
준우를 바라보는 은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햇빛에 반사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준우에게 그녀는 순수한 감정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준우가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울음을 참아 내며 입술에 경련이 일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는데, 난 솔직히 준우 씨를 잊은 적이 없었어. 두려움 없이 사춘기 시절의 불장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준우 씨의 여자가 될 걸 그랬나봐.”
“..........!?”
준우는 은지가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사실 준우는 그녀를 사귈 당시 사춘기의 순수한 감정만은 아니고 젊은 혈기에 의한 충동이었다. 남자는 순간의 충동으로 여자를 소유하려 하고 여자는 호기심으로 남자를 받아 드린다고 했다. 여자와 남자의 감정은 다른 것이었다. 과거에 그는 사랑이나 애정보다는 어쩌면 충동적인 감정으로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은지의 말이 끝나고 준우는 그녀가 더욱 측은하고 애틋하였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당겼다. 그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울먹였다. 준우 자신도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여동생에 관한 심정을 들어내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우울한 그녀를 더 이상 슬프지 않게 하고 싶었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든 비둘기 한 쌍이 그들이 앉은 뒤편 나무에 앉아 날갯짓을 퍼덕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부스스 일어났다.
“나, 가봐야 될 시간이야. 남편이 기다려.”
“식사라도 같이 할 걸........”
“나중에 술 한 잔 사줘.”
“.........!”
준우는 은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서 있었다. 이따금 뒤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옮기며 망설였다. 장 사장이 없기에 회사에 들어가도 별로 할 일이 없었고 은지 때문에 가슴 한편이 찡하여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일단 회사에 들어가 동태를 살핀 후 퇴근하기로 하였다.
회사건물 입구로 향해 층계를 오르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면 퇴근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층계를 내려오려고 하다가 우뚝 섰다. 그와 마주보며 계단을 내려오던 여자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항상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 미라였다.
“어!? 준우 오빠! 또 만나네.”
“넌, 오늘 웬일이냐?”
“헤헤~! 아빠한테 용돈 받으러 왔는데.”
“아빠가 여기 일하고 있니?”
미라가 팔짝팔짝 층계를 뛰어 내려오더니 서슴없이 준우의 팔에 팔짱을 꼈다. 짧은 핫 팬티에 민소매를 걸친 그녀는 역시 발랄하고 당돌했다. 그는 아담하게 솟은 그녀의 앞가슴과 핫 팬티 밑으로 들어난 우윳빛갈의 매끈한 허벅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래. 용돈은 받았니?”
“아빠가 없어요.”
“안됐구나.”
“오빠! 오빠는 볼 때마다 멋있어진다. 나, 오빠가 좋거든.”
“왜!? 또, 돈 꿔 달라고?”
준우는 층계를 내려오며 피식 웃었다. 그의 팔에 매달린 미라가 보조개를 들어내는 싱그러운 미소를 흘리며 눈웃음을 쳤다.
“정말이라니까. 오빠가 좋다니까. 난, 오빠가 없어.”
“하하~! 어쨌든 듣기는 좋구나.”
“오빠,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클럽에 가면 안 돼?”
“그런데 다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
“난 새장에 갇히는 것 같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오빠 같이 가자.”
미라가 준우의 팔을 붙들고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있고 우연이라고 해도 그는 그녀의 청을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구나.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들어가.”
“피 잇~! 싫음 관둬요. 우리끼리 가지 뭐. 헤 헷~! 오빠 다음에 또 봐.”
층계를 뛰어 내려가는 미라가 헤픈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준우는 뒤로 질끈 묶인 머리를 찰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건물 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주차장을 빠져 나왔을 때 친구를 만난 미라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며 집으로 향해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한 준우는 정원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볼 수 있었다. 집사 박 씨는 정원수를 관리하고 있었고 진숙과 가정부 강릉댁은 정원 한구석 텃밭에 가꾼 채소를 광주리에 담고 있었다. 준우는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집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는 집사와 같이 정원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뒤를 힐끔 돌아보는 준우와 진숙의 시선이 마주쳤다. 젊은 열기가 돋보이도록 근육을 들어낸 준우의 균형 잡힌 체격! 진숙은 한동안 준우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봤다. 준우를 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 건넌방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수진의 눈동자가 햇빛에 반사되었다. 외출준비 중이던 수진은 남성미를 흠씬 느끼게 하는 준우의 매력에 동요되었다. 그녀는 외출을 하려고 걸치고 있던 바지와 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벗어던졌다.
비록 외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수진은 준우의 시선을 끌고 싶었다. 처음부터 자존심을 앞세워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점점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짧은 스커트에 민소매의 블라우스를 걸쳤다. 블라우스의 앞가슴이 깊게 패인 그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 선정적으로 들어나 보였다.
정원수에 물주기를 마친 준우가 벗어 놓은 상의를 벗어 들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일어서던 수진이 준우와 마주치고는 흠칫하였다. 그녀와 코앞에서 시선을 마주친 준우가 쓴웃음과 함께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천박하게 보이지 않아요?”
“뭐가요!?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나름대로 관심을 갖으라고 치장하고 나온 수진은 화가 나서 톡 쏘아붙였다. 비아냥거리듯이 웃음을 흘린 준우가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쳤다. 눈동자를 크게 뜬 그녀가 뒷걸음쳤다. 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 주었다.
“숙녀가 칠칠맞게........”
준우를 피해 뒷걸음치던 수진이 다리를 삐끗하며 균형을 잃고 앞으로 갸우뚱하였다. 준우가 얼른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넘어지려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안았다. 입술이라도 닿을 듯 가까워진 그들은 서로 당황하였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공연히 눈을 하얗게 흘겼다.
“남이야!? 웬 걱정이에요........댁 때문에 넘어질 뻔 했잖아요.”
“하하~! 꼭 싸우러 덤비는 사람 같네. 상냥하게 말해도 될 걸!”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준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진은 자존심 때문에 그의 호감을 받아 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녀는 상냥하게 대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녀는 자상한 그의 행동에 다시 한 번 깊은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동안 그에게 까칠했던 자신을 은연중에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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