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의 강포를 달아주는 도다.”
사람 한명이 들어가면 꽉 차버리는, 한 평도 되지 않는 골방에서 나는 절대자를 향한 기도를 올린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지금 이 기도를 시작한 지 몇 시간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몇 개의 촛불만이 이 공간에 존재하는 빛의 전부일 뿐이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꿇어앉은 무릎에는 이미 감각이 없어졌고,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해 손까지 떨린다.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촛농이 녹는 것처럼 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로 피로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기 전에는 이 기도를 멈추지 못한다.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부정(不淨)한 세계, 선(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타락해버린 세계, 악의(惡意)가 선의(善意)를 내몰고 불의(不義)가 정의(正義)인 양 위장하면서 사람들을 타락의 구덩이에 밀어 넣는 세계, 절대자께서 세우신 법보다 악마들이 만들어 낸 규칙이 우선시되는 세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뺏고 훔치고 뜯어먹고 사기치고 범하는 사이클, 영원히 계속되는 무저갱과도 같은 세계.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나는 이러한 세계를 구원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손조차 대볼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절대자를 우러러보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부디 이 가장 낮고 누추하고 썩고 더러운 이 세계에 임하소서.”
‘쿵’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땅에 부딪혀가면서 나는 애원 아닌 애원을, 간청 아닌 간청을 올린다. ‘쿵’소리 한 번에 의식이 한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임하소서. 임하소서. 임하소서..................................... 부디, 부디 임하소서.”
힘이 다 빠져버린 나는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은 채 일어나지 못한다. 숨이 붙어 있는 시체처럼, 지금의 자세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임하소서.”
나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낙원시대, 아직 세계가 악의에 물들기 전, 세계가 신의 뜻하심대로 존재하던 때에 인간들은 절대자와 지극히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옆집 사는 아저씨와 잡담을 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인간들은 절대자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이후, 인간이 품은 악의는 더욱 더 짙어져 갔고 인간과 절대자와의 간격은 더욱 더 멀어져갔다. 그리하여 지금은 절대자의 존재를 느끼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쩌면 타락하면 절대자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절대자로부터 멀어지면 다시 타락하는 악순환 반복해 온 결과 인간은 절대자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귓가에 대고 말을 걸어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인간은 그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대로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는가, 그저 전 인류가 악마화(惡魔化)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소리 높여 기도를 올려도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에 또 다시 익사할 것만 같다.
[...............ㄹㄴㄱ..........?]
라디오의 잡음과도 같은 짧은 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간다.
[...................들리는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이 좁은 방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다.
[.........너에게 내 말이 들리느냐고 물었다..............]
“들립니다. 네, 들립니다. 혹시 제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까?”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나는 이미 ‘그럴 리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너무 몸을 혹사하다보니 환청이 들리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목소리에 대답을 하기로 했다.
[.............너의 기도는 거짓이었는가?]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마치 목소리에게 마음속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가 내 생각을 몇 수는 더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믿음이 부족한 자야, 내 너에게 묻느니 너의 처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처자라 하면 내 안사람과 아들을 말하는 것인가? 안사람이라면 집에 있을 것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분별없는 아이가 아니니 별 걱정은 되지 않는다.
목회활동을 하면서 살림살이가 필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열심히 해 왔다. 안사람에게는 좋은 남편, 아들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자주 시간을 내지는 못해도 안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적어도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한번쯤은 여행도 갔었다.
아들의 교육에도 많이 신경을 썼다. 틈틈이 아들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아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이라든지 고충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부자간의 소통을 유지하려 애썼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천재나 수재를 기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키워냈다고 생각한다.
[..........불쌍하구나, 불쌍하구나. 제 발등이 썩어 들어가는 것은 보지도 못하면서 남 얼굴에 뾰루지가 난 건 그리 걱정이 되더냐?]
“.........무슨 뜻이옵니까?”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 발등이 타들어간다는 것은 곧 내 가정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있긴 한 것인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어떤 가능성도 찾질 못하겠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 보아라, 그 다음에 이곳으로 돌아오라.”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도 나는 목소리의 명령에 따라 집으로 향하기로 한다. 이것이 환청이고 다만 내 마음속 생각이 들리는 것일 뿐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집에서 쉬어야 할 것이고, 만일 가족들이 무슨 사고를 당한 징조라면(하지만 목소리의 말대로라면 외부로부터의 사고를 당했다기보다는 내부에 뭔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 발걸음을 서둘러야 할 뿐이다.
밖에서 보았을 때 집의 불은 켜져 있는 상태였다. 안사람이 집에 있다는 뜻이다. 한 줄기의 불안을 내려놓아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 진 것 같다. 역시 지나친 무리는 좋지 않다. 하루 정도라도 집에서 푹 쉬면서 심신을 안정시켜야 할 것 같다.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집에 들어서자마자 살과 살이 부딪히는, 남녀가 서로 행위를 할 때 내는 소리가 그대로 내 귀까지 들려온다. 아들은 집에 있지도 않고, 내 아내가 이상한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아내가 외간남자를 불러들인 것은 아닐 것이다.
소리는 안방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사람과 행위를 안 한지도 꽤 된 것 같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행위를 하는데 너무 힘이 부쳐서 횟수가 줄다가 어느 순간부터 행위를 하지 않게 된 것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행위지만, 나는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살짝 열려진 틈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질 못했다.
[........눈으로 본 것조차 믿지 못하는가?]
지금 들리는 목소리도 다만 환청일 뿐이다. 이것이 무슨 영화도 아니고 현실세계에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다시 안방 안쪽을 들여다보라.]
나는 다시 안방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지만,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또 다시 틈새 사이로 눈을 갖다 대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남녀가 서로 얽힌 채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살구빛 점토를 주무르는 것 같은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살아있는지 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기가 고기구멍에 들어갔다 나오고, 붉은 입술이 입술과 겹치고, 땀과 땀이 부딪히면서 탄성 있는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아내는 지금 안방 안에 있다. 당연히 그 상대는 나일 리가 없다. 나일 수가 없다.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앙. 하앙. 앙. 하. 아앙. 항.
고성능 엔진의 피스톤 운동처럼 고기를 넣었다 뺏다 하는 속도가 빨라져 간다. 그래, 적어도 안사람이 다른 남자와 붙어먹는 것이라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남편 구실을 해 주지 못했으니 그것을 다른 남자를 통해 해소하려 했다고 하면 그것에서부터 해결해 나가면 된다.
하지만, 내 아내와 붙어있는 것이 내 아들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안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는 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거리를 달렸다. 나는 거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교회로 향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기도실에 틀어박혔다.
모든 것은 거짓이다. 거짓이어야 한다.
[네가 본 것은 모두 진실이다.]
거짓이다.
[진실이다.]
내가 듣는 것은 환청이다. 내가 보는 것은 환상이다.
[네가 들은 것, 본 것 모두 사실이다.]
나는 미쳤다.
[너는 지극히 정상이다.]
눈을 감고 뜨면, 지금의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떠 보거라. 그리고 네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혼란스럽다. 도대체 내가 보지 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대체 어떻게 해야 내 아내와 아들이 붙어먹을 수 있단 말인가? 틈 사이로도 맡아지는 진한 향기. 암컷과 수컷의 냄새. 짐승과 짐승이 교미하는 냄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벌해야 하는가? 내 손으로 내 가족들을 벌해야 하는가? 절대자께서 세운 교리에 따르면, 아니 그 교리에 따르지 않더라도 내 아내와 내 아들이 한 짓은 목숨을 빼앗는 것을 포함해서 어떤 짓을 하더라도 용납될 수 있을 정도의 대죄이다. 2000년 전처럼 돌을 던져 쳐 죽인다 해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으리라.
[이제 현실도피는 그만 하라! 네가 본 모든 것이 진실이고 현실이다. 이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 너라면 네 스스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뭔가가 이끄는 것처럼 나는 기도실을 나왔다. 중앙에 십자가가 튀어나와 있는 낡은 강대상, 그 위에는 튼튼해 보이는 서류가방 하나가 올라와 있다.
[그것은 내가 너에게 내리는 것이다. 취하라.]
기다란 철봉과 플라스틱 손잡이, 플라스틱 껍데기, 쇳덩어리와 플라스틱 덩어리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수십 년간 그것만 해 온 것처럼 빠른 속도로 부품들을 조립하자 부품들은 금세 모양을 만들어냈다. CAR-15. M16을 들고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보면 ‘짧은 M16’라고 말할 것이다.
베트남의 정글에서 싸우는 특수부대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로, 수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밀림 속에서 움직임을 훨씬 편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런 것이 어떻게 해서 강대상 위에 올라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도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도구는 쓰임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면 될 뿐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탄창을 끼우고 장전손잡이를 당긴 다음 조정간을 연발에 놓는다. 예비군은커녕 민방위가 끝난 지도 한참 지났지만 총이 빗나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누구..............여보?”
“...........아버지?”
저것들은 나를 여보니 아버지나 부른다. 한때 나는 저것들을 아내라든가 아들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아내도 아니요 아들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심지어 인간조차 아니다.
저것들은 해충,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더러운 버러지들일 뿐이다.
5.56밀리의 총탄이 연속해서 나가고, 벌레의 몸 여기저기에 구멍을 낸다. 구멍마다 시뻘건 물이 올라오는 걸 봐서는 사람의 피를 잔뜩 빨아먹었던 것 같다. 얼마나 사람의 피를 많이 빨았는지 살구색 침대 시트가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버리고 말았다.
20발들이 탄창 하나를 비워버린 다음, 다시 탄창 하나를 더 써버렸다.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주머니에서 탄창 하나를 더 꺼낸다. 고기와 고기, 살과 살, 피와 고기, 살과 피가 아직 덜 섞였다. 고기 덩어리들은 잘게 부숴야 하고 피와 살을 구분할 수 없도록 잘 섞어주어야 한다.
[되었다. 이제 다 끝났다.]
당겨도 나아가지 않는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틱’ 하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린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마리의 버러지들은 확실하게 살육하였다. 열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총을 떨어트린 다음, 나는 버러지들의 잔해를 끌어다 모은다.
나는 울어야 하는가? 웃어야 하는가? 기뻐해야 하는가? 아니면 화를 내야 하는가? 혼자서는 걸음마를 떼지도 못하는 아기처럼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의 삶이 거짓말 같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거짓말로 만들어진 것 같다.
[기뻐하라, 너는 이제 이 세상을 정화하기 위한 성전(聖戰)의 선봉에 설 준비가 되었다.]
성전, 선봉,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무슨 말이 말인지를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악마들의 교묘한 계교는 인간들을 나태하게 하고, 안주하게 하며 끝내는 체념하게 한다. 창 끝은 무뎌지고 방패는 갈라지며 견고한 성벽조차 모래 부스러기로 변해버리고 말지,
하지만 성전의 선봉에 서는 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항상 최전선에 서서, 가장 고난한 곳에 서며 가장 수고로운 상태에 스스로를 빠트리며 자갈 섞인 모래바람에도 상하지 않는 견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너는 바로 지금 그 조건을 만족한 것이다.]
책장에 꼽혀있는 성경책 하나가 뽑혀 나오더니 페이지들이 휙휙 지나간다. 그 중 찢어져 나온 한 페이지가 내 앞까지 날아오고, 거기에서 나는 밑줄이 그어진 한 대목을 보게 된다.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렇다. 너는 성전의 선봉에 서는 자, 악인들의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 그 피고 발을 씻으며 그 비명소리를 승전가로 삼는 자이다. 어긋난 법칙을 바로 잡아 본래의 법을 되찾는 자이며, 절대자의 가장 충직한 장수 되는 자이다.]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방금 전까지 무엇을 고민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속에 환희가 들끓는다. 몸 안의 에너지가 거친 파도처럼 날뛰고,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나를 사명되게 한다.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침대시트를 적시고도 넘치는 피는 내가 서 있는 바닥까지 적신다. 신발 바닥에 끈적끈적한 것이 달라붙지만 그것은 불쾌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썩어왔던 수십년의 시간을 부정하는, 절대자의 명령을 받들어 절대자의 법을 지상에 선포하고 역도(逆徒)들을 짓이겨 이 세상을 완전하게 하는 절대자의 지상대리인으로써의 사명이 시작된 것이요, 역도들의 기름으로 몸을 씻음으로써 새로이 거듭나는 신성한 의식인 것이다.
[이제, 너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나는 이곳에 임하였으며, 네가 바라는 인류의 구원도 이루어질 것이다.]
거대한 종소리와 같이 엄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그렇다. 나는 비로소 만난 것이다. 그렇게 바라고 수없이 바라던 대상과 드디어 만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절대자께서 내려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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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모 종교나 모 종파 또는 특정인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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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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