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열전 34.
시집간 딸의 혼외정사를 확인한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불륜의 대상이 딸아이 시집의 사위였다.
있을수 없는 상황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딸과 정사를 마치고 그남자가 돌아갔다.
형자혼자 남아있을 집으로 급히 올라갔다.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형자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격정적인 섹스후의 음란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형자의 가랑이에서 흘러 나오는 남자의 정액을 차마 다시 쳐다볼 수 없었다.
"어머!...어..엄마!...이시간에 어쩐 일이야?"
"너 미쳤니?...금방 나간 남자 누구야?...네 시댁 사위맞지?...얼마전에 결혼한 사위말이야"
"무슨소리야?"
"다 봤어 내가!...너무 끔찍해서 내려갔다가 그남자 가는거 보고 올라온거야"
"봐..봤다구 엄마가?"
"어휴 이일을 어쩌면 좋으냐?...내가 딸을 잘못키웠구나...오서방을 어떻게 보냐구?"
"엄마는 그냥 모른체 해...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네가 뭘 알아서 해?...뚫린 입이라고 어디서 그런말을 지껄여?...너 정말 왜이래?"
"나 병진씨 없이 못살아...그사람이 내 병도 다 고쳐줬어...날 여자로 만들어줬어"
"다좋아...하지만 거기까지야...아무말도 듣고싶지 않아"
"나 죽는꼴 보고 싶으면 간섭해도 좋아...제발 내말대로 해줘"
"난 죽어도 그렇게 못해"
"그럼 나 죽는꼴 보게될꺼야"
"너 지금 애미 협박하니?...뭘 잘했다고 떠드니?...참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얘기 했잖아!..나 절대 병진씨 없이 못산다구!"
"말끝마다 그놈의 병진씨 병진씨 할꺼야?!"
"가!...가버려!...어차피 출가외인이잖아...더이상 간섭하지마!"
"오서방은?"
"어차피 우리부부 무늬만 부부였잖아...그나마 요즘 병진씨 때문에 우리부부 좋아졌어"
"그게 무슨소리야?"
"병진씨가 말끝마다 남편에게 잘하라고 그래서 나 그 어느때보다 오서방에게 잘하고 있다구"
"아휴...내가 말을 말아야지"
"제발 그래줘...엄마는 아무말도 하지말고 오늘일 잊어버려"
"내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그렇게 못해"
형자는 악을쓰며 대들었다.
내가 낳은 딸이지만 형자의 그런 험궂은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다.
독이올라 대드는 형자와 더이상 마주하기 싫어서 딸의 집에서 나왔다.
몇일을 고민했다.
결국 이대로 덮을수는 없다고 결론 지었다.
그남자의 전화번호와 직장을 알아냈다.
내 딸과 불륜을 저지른 그남자를 만났다.
그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딸과의 불륜을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여기서 멈추어 달라고 예의를 갖추고 부탁했다.
그남자는 모든것을 순순히 인정하며 내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점심도 먹지않고 일어서는 남자에게 조금 미안했다.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서는 그남자가 고마웠다.
혈기를 접고 돌아서는 젊은 남자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몇일전 내 딸과 격정적인 섹스를 했던 남자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런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밥을 먹이고 싶었지만 그는 숟가락도 들지않고 내앞에서 사라졌다.
그날밤 늦은 시간에 형자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는것 같았다.
무슨일로 달려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역시나 형자는 그남자의 이별통보를 받고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이성을 잃은 딸의 모습에서 예전의 얌전하던 형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형자는 마치 자기의 정인을 빼았은 연적을 대하듯 나를 몰아 부치고 있었다.
"엄마 내가 부탁했잖아...모른체 해달라고 사정했잖아!...도대체 왜 병진씨를 만난거야?"
"진정하고 앉아"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어?...빨리 말해봐!"
"이성을 찾아...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엄마..아니 이제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을꺼야..내 주변에 얼씬도 하지마!..다 필요 없으니까"
"혀..형자야...너 말조심해"
"말조심?...웃기지마!...나 이제 엄마딸 아니야...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을꺼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나 농담아니야...내 주변에 한번만 더 얼씬거리면 정말 죽을꺼야...내가 못할것같아?
그러면 어디 한번 더 병진씨 만나봐...내가 정말 죽는지 사는지 바로 알게 될테니까"
형자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나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고 있었다.
형자는 모진 마음을 먹고 나를 찾아온것 같았다.
형자의 말속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형자는 자기 할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뒤따라 나가며 옷깃을 잡았지만 매몰차게 뿌리치며 내앞에서 사라졌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균열이 우리 모녀사이를 벌려놓고 있었다.
일찍 내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너무 그리웠다.
이런일을 의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붙잡고 딸의 불륜을 의논할 수 있겠는가?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그날 반찬을 전해주려 형자집에 간 것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형자는 정말 전화도 받지 않았다.
현관문의 번호도 바뀌어 있었다.
집안에 있는것 같은데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서방에게 이것저것 물어볼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요일이 되어서야 형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서방이 있는 시간에 찾아가 벨을 눌렀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오서방 앞에서도 형자는 나에게 말을하지 않았다.
황급히 옷을 입더니 현관을 나가고 있었다.
급하게 형자를 따라 나서고 있었다.
무슨일인지 당황해하는 오서방을 뒤로하고 형자뒤를 따랐다.
형자가 자기차에 올라탔다.
얼른 따라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난폭스러운 출발과 함께 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형자는 아무말 없이 울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사고라도 날까봐 간이 콩알만해졌다.
형자의 차는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가한 곳에 차를 세운 형자가 차에서 내렸다.
강가로 가는 형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물가에 이른 형자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왜?"
"정말 나 이해 못하겠어?"
"그럼 어떻게 이해를 하니?...이해할 일이 따로 있는거야"
"그렇구나"
"엄마말 들어"
"엄마"
"응?"
"제발 이번 한번만 나 이해해 주면 안돼요?"
"안돼..그럴수없어"
"나 한번만 이해해 줘요...나 정말 간절해요"
"안돼!"
형자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우는딸의 뒷모습에서 몇일전에 보았던 병진씨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쓸쓸함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형자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 나간다.
눈 깜빡 할 사이에 형자의 몸이 강물속에 빠져 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떠내려 가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딸의 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하얀 물거품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이 온통 노랗게 물드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순간을 잊고 싶었던 것 같았다.
눈을떴다.
웅성이는 소리가 병원 같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하고 돌아왔다.
"여보세요!...여보세요!...아무도 없어요?!"
간호사가 들어왔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간호사의 팔을 잡으며 매달렸다.
"형자는요?!...내딸 형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환자분 지금 회복중이세요...다행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위험했었습니다...그러니 아무걱정 마시고 이 주사액 다 들어 갈때까지 누워서 쉬세요"
"전 괜찮아요...이 주사 빨리 빼주세요...얼른요!"
간호사가 링거줄을 제거해 주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형자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죽은듯이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형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형자에게 다가갔다.
형자의 손을 잡아 주었다.
형자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사람이 그렇게 좋으니?"
"...."
"엄마 앞에서 목숨을 버릴만큼 그사람을 사랑하니?"
"예"
"...."
"죄송해요 엄마"
"이혼은 안된다"
"알았어요"
"나쁜 계집애...흐흑..흑...흐흐흑"
"미안해 엄마...흑..흐흑...정말 미안해...흐흑..흑..어쩔수가 없었어요..흐흐흑..흐흑"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무슨 뜻 인지 제대로 알 것 같았다.
죽었다가 살아온 딸을 가슴에 안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우리 모녀는 한참동안 울고 또 울었다.
오서방이 놀란 눈으로 병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알수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내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래 강물에 다 빠졌어?...큰일날뻔 했잖아"
"미안해요 여보...발을 잘못 디뎠어요"
"조심해야지...아픈데는 없어?...장모님은요?"
"괜찮아요"
"나도 괜찮네 오서방...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네"
"별일 없다니 천만다행 이예요...많이 놀랐어요"
우리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사위의 눈치가 보였지만 형자를 두고 내집으로 돌아 갈수가 없었다.
오늘밤 딸의 옆에서 자지 않으면 심한 악몽에 시달릴것 같았다.
눈치빠른 사위가 안방을 우리 모녀에게 내어 주었다.
딸을 품어 안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살아온 내딸을 위해 무엇이든 해줄수 있을것 같았다.
딸의 정인을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병진씨가 형자를 만나주지 않고 있었다.
울다지쳐 잠깐 잠이들고 다시깨어 울어댔다.
형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눕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형자가 몇일 사이에 살이빠져 수척해 져 있었다.
속이상해 미칠것 같았다.
대한민국 요리 명장이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하나있는 외동딸을 굶겨 죽일 지경에 이르렀다.
오서방도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평소에 잘먹던 음식들을 아무리 해 바쳐도 형자는 먹지 못했다.
헛구역질을 하는통에 아무것도 먹일수가 없었다.
오서방이 출근하고 집청소를 마쳤다.
형자에게 미음이라도 먹이고 싶어 챙겨들고 들어갔다.
손사레를 치며 음식을 거부했다.
"어쩌려구 그래...몇술만 뜨자"
"싫어 엄마...먹으면 바로 토나올것같아"
"이게 다 무슨 일이다니?...그사람한테 전화는 해봤어?"
"내 전화 안받아요"
"그사람도 결심을 굳게 한 모양이구나"
"엄마...나 병진씨 보고싶어"
"에휴...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이꼴을 보고사누"
"죄송해요 엄마"
"휴우...내가 쫓아가서 그인간 데리고 오마"
"정말?"
"그래 내가 뭔들 못하겠니 하나있는 외동딸이 죽게 생겼는데?"
"엄마가 할 수 있으면 병진씨좀 데려다 주세요"
"내가 끌고라도 올테니까 뭐 좀 먹고 얼른 정신차려 이것아"
"그럴께...언제 데리고 올꺼야?"
"지금 갈꺼야...퇴근하는 그놈 잡아 올꺼야 내가...이제됐니?"
"응 고마워 엄마"
"에휴 정말이지 딸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속없는 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딸의 불륜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연통을 놓을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팔도 역시 안으로 굽고 있었다.
퇴근무렵 병진씨의 회사 근처에서 형자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받아 병진씨를 바꾸어 주었다.
마지못해 받는 느낌이 전화음성 에서도 느껴졌다.
"김병진씨 저 형자엄마 김도연입니다...근처에 와 있습니다"
"또 그 한정식 집입니까?"
"싫으시면 다른곳에서 만나요"
"어차피 식사도 안할건데 굳이 그곳에서 뵙기가 좀 그러네요....차라리 요란한
호프집이 더 나을것 같습니다만...아!...죄송합니다...공인이신걸 깜빡했네요"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제 차안에서 조용히 만나는건 어떠세요?"
"좋습니다"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차번호 문자로 넣어 드릴께요"
"그러시죠...제 핸드폰 번호는 아시나요?"
"알고있어요...받지를 않아서 사용중인지는 몰라도요"
"죄송합니다...사용하고 있습니다"
병진씨의 직장 건물 뒷편에 차를 주차하고 위치와 차번호를 문자로 보냈다.
가슴이 자꾸만 벌렁거려 편의점에서 팩소주를 하나 샀다.
차로 돌아와 팩소주를 홀짝거리며 다 마셔 버렸다.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지만 간이 조금 커진 느낌이 뿌듯했다.
용기인지 만용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1500원에 이런 느낌을 얻은것이 무척 남는 장사를 한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붉어진 얼굴과 냄새를 없애려고 파우더를 두드리고 껌을 씹었다.
병진씨가 백미러에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한눈에 멀리서 다가오는 남자가 병진씨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그를 기다렸다.
병진씨가 내 앞으로 다가와 서더니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있었다.
같이 몸을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형자와 혼외정사를 즐기는 병진씨를 추궁하려던 첫만남때의 그모습이 아니었다.
병진씨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것 같았다.
선입견 때문인지 병진씨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었다.
자기 손위처남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발정난 수컷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두번째 만남에서 나의 선입견은 보잘것없이 깨어지고 있었다.
당당한 사내다움이 풍기는 병진씨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형자가 왜 이 사내에게 그토록 흠뻑 빠졌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일찍 오셨습니까?...조금 더 서둘렀어야 하는데...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방금 왔어요"
"우리 차에 타죠...그리고 죄송하지만 운전을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지요"
병진씨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묻는 병진씨에게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막연하게 대답했다.
병진씨는 아무것도 모르는체 아직은 가고싶지 않은 그 강변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것도 형자가 빠졌던 바로 그 공원 한적한 곳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형자와 병진씨가 텔레파시라도 통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놀라웠다.
병진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매점에서 캔커피를 사들고 돌아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무거운 침묵속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많이 불편하지 않았다.
따듯한 캔커피의 온기를 느끼면서 검은 강물을 보며 몇일동안 들떠있던 감정을 추스렸다.
"저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절박함이나 간절함은 무엇일까요?"
"예?...아...아무도 들어주지 않을때 하는 마지막 주장이나 표현이겠죠"
"그럴수도 있겠네요...마지막 주장이나 표현...병진씨는 그런 막막함을 느껴본적 있어요?"
"없습니다...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난적은 있어요"
"그분들이 여잔가요?"
"여자들 맞아요"
"형자도 그 여자들 중 하나겠군요?"
"그럴수도 있겠네요"
"지난주에 형자가 저 강물에 몸을 던졌었어요"
"예?!...저..정말요?"
"예...나에게 마지막 이해를 구하다 좌절했어요...그리고는 뛰어 들었어요"
"무사한가요?...어떻게 되었나요?...혹시"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다행이네요........휴우"
한참 나이어린 병진씨의 긴 한숨에 많은뜻이 담겨 있는것 같았다.
형자를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신념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남자의 심지가 느껴져서 호감이 갔다.
"우리 형자 다시 거두어 주셔야겠어요"
"다시 거두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형자가 병진씨없이 하루도 못산다며 떼를쓰고 있어요...형자를 병진씨에게서 억지로 떼어
놓으면 사고가 날것같아 불안해요...그전처럼 우리형자 다시 사랑해 주세요...부탁드려요"
"참 편리하시군요"
"죄송합니다...입이 열개라도 뭐라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저나 형자씨도 잘한짓은 아니니까요...어차피 살얼음판 같았어요
이기회에 잘못된 감정을 바로잡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나나 형자씨를 위해서요"
"그러면 우리형자 죽어요...제가 경솔했어요...부탁 드릴께요...우리 형자좀 살려주세요"
"제가 할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병진씨 외에는 아무도 할수없는 일이예요...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못먹고 있습니다"
"형자씨가 식사를 전혀 못하나요?"
"예 지금 사람꼴이 말이 아닙니다"
"휴우...형자씨의 말이 그냥 하는소리가 아니었군요"
"제발 우리딸좀 살려주세요"
"내일 점심때쯤 형자씨 집으로 가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병진씨"
"형자씨 어머님 오늘 하신일 후회 하실지도 모릅니다"
"알고있어요...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어요....고맙습니다"
"운전하실수 있으세요?"
"예"
"저 좀 걷고 싶어서요...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저기...바람쐬고 이리로 오세요....차에서 기다릴께요...여기 택시도 없잖아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저...괜찮으시면...아..아닙니다"
"말씀하세요...하실 말씀이 남은것 같은데"
"실은 저도 좀 답답해서요...방해 되겠죠?...혼자 다녀 오세요"
"같이 가세요"
병진씨가 먼저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강가를 걸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답답함을 달래었다.
약간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며 옷깃을 여미었다.
병진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병진씨가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긴 한숨을 딸의남자 몰래 토해내고 있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병진씨가 내차를 몰아 형자네 아파트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이보다 성숙함이 느껴지는 병진씨의 매너가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고는 나에게 키를 건네주었다.
"택시타고 가겠습니다"
"형자에게 전화 한통만 해주고 가세요...많이 기다리고 있을꺼예요"
"가면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딸의 정부를 배웅하고 딸네 집으로 올라갔다.
형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현관까지 나와서는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얼마만에 보는지 모를 일이었다.
웃음 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었다.
"엄마...정말 고마워"
"전화왔었니?"
"응...지금 막 통화했어"
"잘했다...내일 점심때 온다고 했어"
"응 알아...정말 고마워 엄마...나 밥 좀 차려줄 수 있어?"
"계집애...그걸 말이라고 하니?....불여우가 따로 없네...이제 밥이 당겨?"
"응...병진씨가 밥 잘 챙겨먹으면 오신댔어"
"그래서 밥달라고?...줘야지 해다 바쳐야지"
"병진씨가 나랑 통화하면서 울었어요...나 아픈거 싫대요"
"에휴..이 애물단지야"
쇠고기를 잘게 다져서 죽을쑤어 주었다.
배탈이 날까봐 조금만 주었더니 두번이나 더 죽그릇을 비워냈다.
신기하게도 금방 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형자는 언제 그랬냐는듯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12시가 넘어서도 밥을 차려 주었더니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런 딸의 모습에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사위는 아마것도 모르고 형자의 회복을 좋아하며 기뻐하였다.
일이 잘 되어가고 있는것같은 자신감은 없었지만 일단의 사태는 정리되고 있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듯한 심한 피로감에 죽음같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서방이 출근했다.
형자가 그때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자꾸만 가라고 채근하며 음식장만을 하고 있었다.
형자를 밀어내고 딸의 정부에게 먹일 음식을 내손으로 장만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면서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어제 강변을 잠깐 걸었던 딸의 정부가 은근히 기다려지는 내 마음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형자는 더이상 나에게 가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대로 샤워를 하고 화장을 마쳤다.
딸의 정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내모습이 형자 앞에서 조금 민망했다.
그것은 형자도 마찬가지인것 같았다.
"너 왜 갑자기 나에게 가라고 하지않니?"
"사실은...혹시라도 병진씨가 무서운 소리 꺼낼까봐 두려워...엄마가 옆에 있어줘"
"병진씨가 그만 만나자고 할까봐 무섭다는 소리야?"
"맞아...혹시라도 병진씨가 그런말 하면 엄마가 병진씨 말려줘"
"내가 그말을 무슨 명분으로 말리니?"
"명분같은것 찾지말고 나를 위해서 한번만 해줘...앞으로 정말 엄마한테 잘할께요"
"조건이 있어...약속하면 해줄께"
"조건이요?....말해보세요...약속할께요"
"후계자수업 열심히 받아...그리고 우리집에서 병진씨 만나...여기서 불안하게 그러지말고"
"후계자 수업은 열심히 받을께요...하지만...병진씨가 엄마집에 가려고 하실까?"
"그건 내가 얘기할께...됐지?"
"알았어요 엄마...고마워요"
"정말 고마운가보네...존댓말을 다하고"
"놀리지마 엄마"
"에휴...딱한것"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진씨가 딸네집으로 찾아왔다.
딸의 정인으로 받아 들이기로 마음먹고 보는 병진씨는 정말 남자 다웠다.
키도크고 인물도 좋은데다가 몸에 배어있는 매너도 수준급 이었다.
한상가득 차려진 식탁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형자의 마른 얼굴을 보며 안타까워 하는 병진씨의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식탁에 앉은 병진씨의 식사시중을 드는 딸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보였다.
딸의 정인은 나를 조금 어려워 하면서도 형자의 시중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병진씨 얼른 잡수세요...이거랑 이거는 엄마가 직접 만드신거예요...정말 맛있을꺼예요"
"형자씨도 같이 먹어요"
"얼른 먼저 잡수세요...저는 생선찜좀 담아와서 먹을께요...병진씨 생선찜 좋아하시잖아요"
"고마워요...잘 먹을께요"
"예 주인...아..아니 병진씨 얼른 잡수세요...식는단 말이예요"
"예...그럼...저 형자씨 어머님이 어른이시니 먼저 수저를 드시죠"
"예?...예...그럴께요 형자말대로 음식 식어요...얼른드세요...저도 먹을께요"
병진씨에게 극존칭을 쓰며 식사시중을 들고있는 딸의 모습이 나를 당황시키고 있었다.
나에게는 식사를 권하지도 않는 그 무심함이 조금 서운했다.
병진씨가 오히려 나를 챙기며 식사를 권해 주어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병진씨는 음식도 참 맛있고 복스럽게 먹어주었다.
자꾸만 사위처럼 느껴지는 병진씨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오서방이 떠올랐다.
이랬건 저랬건간에 내 딸이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수 있게 만드는 병진씨가 고마웠다.
아마도 이세상 모든 엄마는 자기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내를 예뻐할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병진씨가 점점 예쁘게 보였다.
아니 무척 예뻤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모여 앉았다.
피해주려 했지만 오히려 형자가 나를 자기 둘 사이에 앉혔다.
차를 마시며 서로 어색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병진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제가 오늘 여기에 온것은 형자씨와 그동안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벼..병진씨...거기서 멈춰주세요 제발"
"병진씨...형자 말대로 멈추어 주세요...어제 말씀 드렸듯이 형자와의 관계 이어가 줘요
엄마인 내가 오죽하면 이런 부탁을 하겠어요...형자도 너무 행복해 하고 옆에서 보아도
우리딸에게 병진씨가 있어줘야 할것같아요...제발 이렇게 부탁하는 저를 봐서라도 형자
다시한번 거두어 주세요..제 부탁 들어주시면 제가 두고두고 보답하면서 살께요 병진씨"
"형자씨 어머님 지금 하신말씀 정말 진심이세요?
"간절하게 부탁드릴께요...정말 진심입니다"
"나중에 일이 크게 벌어지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형자가 오서방에게 이혼을 당하더라도 이제 어쩔수 없을것같네요...우리형자 많이
사랑해 주세요...불쌍한 아이예요...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면 제가 뒤집어 쓸께요"
"어..엄마!"
"넌 그냥 가만히있어...병진씨 형자옆에 있어 주실꺼죠?"
"그렇게 하겠습니다...저도 형자씨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그리고 한가지만 더 부탁할께요"
"말씀해 보세요"
"여기말고 제집에서 형자만나 주세요...여기는 아무래도 조금불안한것 같아서요..제가
두사람 편안하게 쉴수있는 공간 만들어 놓을께요...어차피 형자도 후계자 수업때문에
제집에 매일 와야 하거든요...다른뜻은 없으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어떠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여러가지로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딸이 병진씨를 너무 사랑해서 벌어진 일인걸요...우리형자 잘 부탁 드릴께요"
"명심하겠습니다"
형자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병진씨와 나서는 형자를 보며 모든것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형자와 병진씨의 방패막이가 될것이라 다짐했다.
내 딸이 정말 행복해하는 모습에 최고의 가치를 두기로 결론내렸다.
진정한 사위가 새로 하나 생긴것으로 마음먹었다.
더이상 미안한 마음속에 떠오르던 오서방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딸과 병진씨를 위해 집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가 제일 큰 고민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고민이 의외로 즐거웠다.
마치 딸아이를 시집 보내는 엄마의 설레임 같은것이 느껴졌다.
이참에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영업중인 한정식 식당인 한국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요리강습을 하는 별채는 공사를 결심했다.
별채 바로뒤 안채가 이번공사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았다.
1층은 내가 쓰고 2층을 딸과 병진씨가 마음놓고 쓸수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인테리어 업체를 방문해야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두사람에게 큰 선물이 될것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형자는 평생 병진이 옆에 있어야할것 같습니다.
멋진 아지트가 생기는 두사람이 부럽네요...
남자에게 그런 아지트는 로망 아닌가요?
즐독하시고 댓글로 응원해 주십시요.
추운날씨에 감기조심 하시구요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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