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사육을 당하는 모녀(3)
3, 팔려간 모녀
“좋아 그렇다면 아직 양해각서의 기한이 남았는데 그럼 우리 친척집에 가서 그 어른 수발을 들면 어때?”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어른이라 함은 몇 달 전에 상처를 하고 시골에서 혼자 사는 부호로서 나이는 육순이 조금 지난 사람이었고
상을 당하였을 때부터 삼오까지 그 집에 있었던 동안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영감이었지만 반면에
우리 수지에게는 온갖 선심을 다 쓰며 대하여 주었기에 이산한 눈초리에는 신경을 안 쓰고 수지에게
좋게 대하여 준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던 사람이었고 또 놈의 집에 그대로 머물다가는 불쌍한 우리 수지마저 놈의
더러운 노예가 된다면 큰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자 전 놈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 노인의 집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놈의 차를 타고 저는 그 영감님의 집으로 수지와 함께 갔습니다.
“당숙 이게 이 여자의 통장이고 이 통장에 월급이며 급료를 꼬박고박 불입만 해 주시면 되고
쟤가 시집을 갈 나이가 되면 저에게 연락만 해 주시면 도장이며 양해각서 원본을 가져와 저 여자에게 주면 되니까
적당하게 일을 시키시고 마음대로 부리시면 되니까 그리 아시고 데리고 계시면 아무 탈도 안 생깁니다”하는 말만 남기고 놈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놈은 자기 당숙이란 영감에게 천만 원의 몸값을 받았고 또 대신에 저를 가지고 놀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까지도 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 영감에게도 무식한 저는
또 하나의 양해각서를 써주고 공증을 받은 후였고 후회를 하였을 때는 이미 그 영감에게도 덜미가 잡힌 후였습니다.
그 양해각서의 내용은 그 영감의 조카라는 더러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통장에 월급은 부어 주지만 다른 특별한 상여금이나 수지에 대한 용돈은 일부는 현금으로 주지만 장래를 생각하여
수지 명의의 통장은 만들어서 입금을 시키되 대신 수지의 교육 문제는 전적으로 그 영감님에게 맡기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였으나
거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다시 그 더러운 영감에게 발목이 잡힌 후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그 영감에게 조카에 첩 놀음에 이은 또 다시 첩 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더러운 영감은 조카가 데리고 놀던 저를 데리고 놀기 시작을 하였고 이미 남자의 맛을 알게 된
저는 조카며 당숙을 떠나 남자로서 그 영감의 노리개가 되었고 돈 많은 부호답게 철이면 철마다
보약을 먹는 바람에 그 영감의 조카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힘으로 제 몸을 공략을 하였고
유식한 말로 섹스의 맛을 잘 알게 된 저는 오히려 제 스스로가 영감님 품에 안기길 원하였고 욕정을 풀어야 하였습니다.
반면에 그 영감님은 우리 수지에게 너무나 잘 대하여 주었고 용돈도 넉넉하게 주었으며 현금으로 만원을 주었다면
통장에도 같은 금액을 저금을 시켜주었고 저에게 확인도 시켜주는 자상함을 보여 주었기에
저는 그 영감님을 하늘같이 존경을 하며 물받이 노릇도 하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지도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며 따랐고 그런 대견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점점 수지 아빠인 명수 오빠의 생각을 지울 수가 있었습니다.
옛말에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있듯이 그 영감님의 저를 사육하는 방법은 그 영감님의 조카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더러운 조카란 작자가 매로 저를 사육을 시켰다면 그 조카의 당숙이란 영감님은 매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저를 사육을 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섹스였습니다.
섹스의 맛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익히 장 알던 그 영감님은 자기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섹스를
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섹스를 해 주려고 하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저를 아주 미치도록
흥분을 시킨 다음에 절정의 꼭대기에 다다르려고 하면 그 때서는 하든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잠을 자라고 하든지 아니면 뭘 가지고 오라고 하여 불붙던 제 몸에 찬물을 뿌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그 영감님의 성질을 알게 되자 저는 그 영감님이 하라고 하면 무슨 짓이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친구들을 초대를 해 두고 파티를 한다면서 설이 거나하게 취하면 저에게 홀랑 벗게 하고
상위에 눕게 한 다음 가랑이를 꼭 오므리라고 한 후에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고는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그 술을 마시게 하였고 그러면 그 영감님의 친구들은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저의
은밀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마셔도 화를 내기는커녕 박장대소를 하며 더 하라고 권유를 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생일 파티를 열어 주기를 좋아하든 그 영감님은 생일인 친구의 좆을 빨아주며 흔들게 하여 그 더러운 물을 먹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친구들의 좆을 발아주고 흔들게 하고 또 저의 알몸을 구석구석 만지게 하였지만 섹스만은 결코 허용을 안 하였습니다.
아니 심지어 짓궂은 친구가 자신의 좆을 제 보지에 잠시 대어보기만 하자고 하여도 질색을 할
정도로 제 보지에 다른 사람의 좆을 넣게 하지는 절대로 안 하고 오로지 좆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영감님뿐이란 것을 제 머리 속에 각인을 시킬 정도로 아주 치밀하게 저를 사육을 시키며 즐겼습니다.
한 번은 그 영감님 친구들 중에 유별나게 정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여러 진구들을 초대하여 술파티를 하다가
흥이 나자 알몸으로 상위에 누워 다리를 오므리고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고 그 술을 돌려가며 마시다가
소변이 마려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는데 영감님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 친구 분이 몰래
화장실로 뒤따라 들어왔고 다짜고짜 소변을 하던 저를 일으켜 세우고는 엎드리게 하여 좆을 막 박으려고 하는
순간에 영감님이 눈치를 차리고 화장실로 달려왔고 그 자리에서 영감님은 그 친구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리더니 의절을 선언하고 가라고 하더니 그 후로 그 친구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제 보지에 남의 좆을 박는 것은 못 보는 성질을 가진 이상한 사람이었으나 난 그렇게라도 저를 지켜주려고 하는
영감님의 마음이 고마워 더 충실하게 영감님의 말에 복종을 하는 진정한 노예로 변하였습니다.
그런 파티의 농도도 차츰 더 찐하게 변모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영감님이 친구를 초대를 한다면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니 오이를 잘 깎아 몇 개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이로 반찬을 만들 까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며 껍질만 잘 깎아 두면 된다고 하여 보기 좋게
깎아 두었더니 술판이 돌아가고 여흥이 불을 붙기 시작을 하자 예전처럼 알몸으로 오라고 하면서
깎아 둔 오이들도 한께 가져오라고 하기에 영문도 모르고 가져가자 눕게 하더니 한 친구에게
그 오이를
저의 보지에 박으라고 시켰고 그 친구가 오이를 보지에 박자 웃으며 다리를 오므리게 하였고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더니 친구에게 마시라고 하고는 마시자 안주를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오이를 물고
요령껏 입으로만 이용을 하여 반대로 꼽게 하고 보지에 박혔던 부분을 잘라 먹게 하였고 그 친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을 한 끝에
영감님 말처럼 외로 올라와 있던 부분을 보지에 박았고 보지에 박혀 있던 부분을 웃으며 잘라 먹었습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중에 저는 구태여 남자의 좆이 아니라도 만족을 할 수가 있다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영감님이 저를 사육을 시킨다고 최고의 불이 붙은 순간 다른 일을 시키거나 잠을 자라고 할 때에
오이나 다른 것을 제 보지에 박고 들락날락 시켰더니 꺼지다 만 불이 다시 지펴지며 욕정을 해결을 할 수가 있었으나
그도 오래 가지 못 하고 영감님에게 그렇게 하는 장면이 발각이 난 후에는 영감님의 말이 없으면
길쭉하게 생긴 오이나 가지 바나나 심지어는 무 토막까지도 집안에 들릴 수 없게 하였기에 더 이상
그런 짓을 하기에는 불가능하였고 오로지 믿을 것은 여감님의 말씀에 복종을 잘하여 좆으로 제
욕정을 달래는 길 뿐이란 것을 알았기에 저는 더 충실하게 영감님 말씀에 복종을 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수지는 열심히 공부를 잘 하였습니다.
또 그런 파티를 하게 될 경우에는 수지는 자기 방에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으며 수지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려고 생각도 안 하였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아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어미로서도 고마운 일이었고 키우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영감님에게 팔아먹은 그 더러운 인간이 어쩌다가 내려오기라도 할라 치면 영감님은
그 더러운 조카란 녀석의 동태를 살피며 어서 올라가라고 재촉을 하였고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겠다고 할라 치면
아예 수지와 저를 자기 옆에 잠들게 하여 보호를 해 주는 세밀함도 보여주어서 저를 안심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더러운 인간은 닭 좆던 개처럼 있다가 저의 통장만 확인을 시켜주고 가야 하였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전 쾌재를 불러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더러운 인간이 영감님에게 모욕을 당하고 저의 통장과 도장 그리고 양해각서 전부를 영감님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그게 어떤 일 인고 하니 그 부근에 또 다른 영감님과 그 더러운 인간의 인척이 살았는데 그 인척이
그만 운명을 하게 되었고 상을 치르게 되었으나 마침 우리 수지가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라고
저는 수지의 뒷바라지 때문에 상가에 가서 일을 돕지 못 하고 집에 있게 되었는데 그 더러운 인간도
자기 인척의 상에 내려 왔다가는 제 모습이 눈에 안 보이자 야심한 시간에 영감님 몰래 우리 집으로 왔고
싫다고 하는 저를 억지로 끌고 가 집 뒤 안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려다가 제사 심하게 반항을 하자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찢고는 강제로 엎드리게 한 후에 좆을 막 박고 흔들려고 하는
순간에 영감님이 저를 발견을 하였고 그 더러운 인간을 발로 차서 쓰러트린 후에 주머니 안에서
통장과 도장 그리고 양해각서 전부를 영감님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다시는 근처에 발걸음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을 치는 멋진 사건이 생긴 후 그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 저로서는 천만다행의 사건이라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자 전 영감님에 대한 믿음이 더 갔고 영감님이 죽으라고 한다면 열 길 불 섶에라도 뛰어 들어가지는 못 할 지언 정
흉내라도 낼 정도의 마음이 생기자 저는 더 정성을 다하여 영감님을 극진하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한 가지 불만 아니 섭섭한 점은 있었습니다.
아무리 난쟁이 병신이었지만 영감님은 친구들 앞에서는 저를 알몸으로 만들기 까지 하면서 내 놓기를 꺼려하지 않았으나
자기들 가족에게는 저의 신분은커녕 얼굴도 들어내게 안 하고 명절이나 무슨 제사만 있으면 또 하나 더 있던
집으로 가서 아들이며 며느리 그리고 손자를 보고 왔지 저에게 함께 가자고 하거니 식솔들을 데리고는
오지를 않는 것이 불만이면 불만이었고 섭섭한 점이었지만 그 말만 하면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얼버무리기 일쑤였지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를 않아 영감님의 마나님이
죽었다는 것과 아들 둘에 며느리 둘 그리고 손자가 몇이 있다는 사실 왜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 아들이나 며느리 혹은 손자들도 할아버지를 찾지도 않았기에 저는 그 영감님의 가족들 얼굴은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영감님들의 친구들 말에 따르면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나의 존재를 알기는 하였지만 오로지
밥이나 해 주고 등이나 긁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지 저랑 같이 잠자리를 함께하고 친구들이 오면
갖가지 시중을 든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또 관심을 안 둔다는 사실 정도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불만은 영감님에게 하여도 쇠귀에 경 읽기라 몇 번을 해 보곤 단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영감님은 수시로 그 더러운 인간에게 빼앗은 통장과 영감님이 만들어 준 우리 딸아이 수지의
저금통장은 보여주었는데 그 금액은 점점 늘어나 약속을 한 대로 우리 수지가 시집을 갈 즈음에는
호화로운 예단은 물론 약간의 지참금을 해 주고도 남아서 집도 하나 장만을 하고 노후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가게도 하나 마련을 할 수가 있겠다는 기대감에 저는 더 헌신적으로 영감님의 수발을 들며 사육을 당하고 있었지만
정작 저는 사육을 당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를 못 하고 오로지 영감님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을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흘러서 우리 수지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고 저와는 달리 신체발육도 아주 좋아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을 하였고 엉덩이도 제법 여자다운 티를 내는 것이 어미인 제 마음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우리 수지에게 있었습니다.
보통 여자들의 젖가슴이 부풀기 시작을 하고 엉덩이가 여자 티를 내기 시작을 하면 생리가 있게 마련이었지만
우리 수지는 생리는 없이 가슴만 부풀기 시작을 하였고 엉덩이도 여자 티를 내기만 하였습니다.
딸이기 전에 같은 여자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붙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 만 저에게는 뾰쪽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의논을 할 상대는 오로지 영감님뿐이었지만 영감님도 남자인지라 그 영감님의 조카인 그 더러운 인간이
우리 딸에게 하였던 행동이 생각나 선뜻 영감님에게 물을 수도 없어서 한 동안 저 혼자 가슴앓이를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수지가 6학년에 놀라가서도 생리가 없이 점점 가슴만 더 부풀어 오르자 덜컥 겁이 났고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어쩔 방법이 없이 영감님에게 유식한 말로 자문이란 것을 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이르고 말았습니다.
못 배운 것이 여실하게 들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배우기라도 하였더라면 산부인과 병원이나 아니면 수지 학교의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였으련만
왜소한 제 모습을 수지의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에게 보이기도 싫었기에 그렇게 하지도 못 하였고
또한 왜소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병원에도 못 간 것은 다 요즘 말처럼
가방끈이 짧은 이유였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다가는 영감님에게 상의를 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먹자 용기가 생겼고 밥이 이슥 하자 저는 용기를 내어 영감님의 침실로 갔습니다.
“어제 하고도 또 하고 싶어 왔니?”영감님이 침대에 누워서 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이 영감님도”하며 눈을 흘기며 침대 모서리에 앉자
“그럼 뭐지?”하며 제 팔을 잡아당기더니 품에 저를 안으며 물었습니다.
“이러지 마시고 제 고민 하나 해결을 해 주세요”하자
“무슨 고민이지”하며 일어나 앉으시기에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수지........”하고 말의 운은 띠웠지만 더 이상은 말하기 곤란하였기에 주저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래 수지가 왜?”하고 물으시기에
“글쎄 우리 수지가 아직 생리가 없고 가슴만 부풀어요, 어떡하죠?”하고 용기를 내어 묻자
“흠 난 벌써 생리를 시작 한 줄 알고 나에게 말을 안 한 임자만 속으로 원망을 하였는데 정말 없어?”하시기에
“아니 수지 생리를 하는 것 하고 영감님에게 말을 안 한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하고 눈을 흘기며 묻자
“허어 이런 여자가 첫 생리를 하면 선물도 사 주고 또 떡도 해서 나누어 먹는 것이 기본이 아니냐?”하며 말씀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저로서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었기에 말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하여간 수지 가슴이 부풀기 시작을 한지 제법 오래 되었을 것인데 이거 큰일이군.
큰일이야”하며 저보다 더 저의 딸아이 수지에 대하여 걱정을 하 주는 것이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어떡하죠?”하고 묻자
“그럼 내일 아는 사람 중에 병원을 하였던 의사가 있었으니 한 번 찾아가 물어보고 와서 말을 해 줄게”하고 말을 하더니
제 가슴에 손을 넣고 젖꼭지를 매만지며 저의 몸에 열기를 느끼게 만들었고 열기를 느끼기 시작을 한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알몸이 되어 영감님 품에 안기게 되었고 영감님은 대단한 힘으로 제 몸의 불을 꺼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영감님은 오전에 외출을 하였고 밤이 늦어서야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셨기에
차마 묻지 못 하고 영감님 옆에 누워서 축 늘어진 좆을 주무르며 한숨을 푹푹 쉬며 겨우 잠을 청 할 수 있었고
눈을 떴을 때는 몸의 무거움을 느껴서 였고 그 원인은 새벽부터 좆이 선 영감님이 욕정을 풀려고 올라온 후였습니다.
새벽부터 한 바탕 폭풍우가 영감님과 저의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저는 일어나 밥을 하였고 수지에게 아침을 먹이고 학교로 보냈습니다.
“뭐래요?”그리고 영감님이 다시 일어나시고 세수를 마치자 조반을 함께 들며 물었습니다.
“뭐가 뭐래요 지?”하시기에
“아이 영감님도 우리 수지 이야기 말 이예요”저는 눈을 흘기며 물었습니다.
“하하하 참 그렇지, 그런데 그게 별 것 아니긴 아닌데 다른 한 편으로는 큰 문제이기도 하다고 하더군, 음”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영 안 나온다고 하던가요?”놀라며 묻자
“그건 아니고 참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하며 달력을 보시기에
“무슨 요일은 무슨 요일 이예요, 토요일이지”역시 눈을 흘기며 말을 하자
“참 그렇지 임자 내일 임자가 있었다던 고아원에 한 번 다녀오지”하시기에
“아니 고아원엔 왜요?”하고 묻자
“거기 가서 임자가 정확하게 몇 살부터 생리를 하였는지 알아보고 와”하셨습니다.
이 영감님에게 그 더러운 인간이 팔아버려 시골로 온 후로 단 한 번도 못 가본 고아원이 갑자기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장선생님의 안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영감님”하며 안기자
“참 그러지 말고 오늘 당장 갔다가 하루 고아원에서 푹 쉬고 내일 오지, 아니 내일 내가 데리러 가지”하고 말을 하더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고아원에 모처럼 가면서 빈손으론 갈 수 없으니 먹을 것이라도 사 가”하며 수표를 한 장 꺼내어 주었습니다.
“어머머 영감님 너무 많아요”전 수표를 받아 보고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뭐, 원아들도 많은 모양이던데 그 정도는 돼야지 아이들에게 과자부스러기라도 하나씩 돌아가지”하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영감님은 역시 부호답게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다녀 올 게요, 참 영감님 저녁이며 조반 그리고 수지 밥은 안 갈레요”하며 수표를 다시 영감님에게 주며 말하자
“어허 나나 수지나 한두 끼 사 먹으면 되지 다녀와”하며 다시 수표를 제 손에 쥐어주시고는 전화기를 짚더니
“응 여기 00야 00별장 몰라? 당장 차 한 대 보네”하고는 전화를 끊으시더니
“택시 불러 놨어 어서 준비 해”하시며 제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셨습니다.
“고......고마워요 영감님”하고 말을 하는 저의 눈에는 고마움에 눈물이 흘러 촉촉이 젖어 있었고
저의 방으로 와 모처럼의 외출에 신명이 난 간단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더니 대문 앞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영감님에게 다녀오겠다고 다시 인사를 하고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서 제가 자라던 고아원을 향하여 부푼 마음으로 갔습니다.
********************
어떤 독자가 장애인을 등장시킨 글이라 안 좋다면 중단을 요구합디다.
그렇다면 <계묵용의 백치아다다>는 문학작품이라서 장애자 등장이 괜찮고 위의 글은 안 된다는 말인지 묻고 싶네요.
3, 팔려간 모녀
“좋아 그렇다면 아직 양해각서의 기한이 남았는데 그럼 우리 친척집에 가서 그 어른 수발을 들면 어때?”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어른이라 함은 몇 달 전에 상처를 하고 시골에서 혼자 사는 부호로서 나이는 육순이 조금 지난 사람이었고
상을 당하였을 때부터 삼오까지 그 집에 있었던 동안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영감이었지만 반면에
우리 수지에게는 온갖 선심을 다 쓰며 대하여 주었기에 이산한 눈초리에는 신경을 안 쓰고 수지에게
좋게 대하여 준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던 사람이었고 또 놈의 집에 그대로 머물다가는 불쌍한 우리 수지마저 놈의
더러운 노예가 된다면 큰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자 전 놈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 노인의 집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놈의 차를 타고 저는 그 영감님의 집으로 수지와 함께 갔습니다.
“당숙 이게 이 여자의 통장이고 이 통장에 월급이며 급료를 꼬박고박 불입만 해 주시면 되고
쟤가 시집을 갈 나이가 되면 저에게 연락만 해 주시면 도장이며 양해각서 원본을 가져와 저 여자에게 주면 되니까
적당하게 일을 시키시고 마음대로 부리시면 되니까 그리 아시고 데리고 계시면 아무 탈도 안 생깁니다”하는 말만 남기고 놈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놈은 자기 당숙이란 영감에게 천만 원의 몸값을 받았고 또 대신에 저를 가지고 놀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까지도 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 영감에게도 무식한 저는
또 하나의 양해각서를 써주고 공증을 받은 후였고 후회를 하였을 때는 이미 그 영감에게도 덜미가 잡힌 후였습니다.
그 양해각서의 내용은 그 영감의 조카라는 더러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통장에 월급은 부어 주지만 다른 특별한 상여금이나 수지에 대한 용돈은 일부는 현금으로 주지만 장래를 생각하여
수지 명의의 통장은 만들어서 입금을 시키되 대신 수지의 교육 문제는 전적으로 그 영감님에게 맡기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였으나
거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다시 그 더러운 영감에게 발목이 잡힌 후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그 영감에게 조카에 첩 놀음에 이은 또 다시 첩 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더러운 영감은 조카가 데리고 놀던 저를 데리고 놀기 시작을 하였고 이미 남자의 맛을 알게 된
저는 조카며 당숙을 떠나 남자로서 그 영감의 노리개가 되었고 돈 많은 부호답게 철이면 철마다
보약을 먹는 바람에 그 영감의 조카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힘으로 제 몸을 공략을 하였고
유식한 말로 섹스의 맛을 잘 알게 된 저는 오히려 제 스스로가 영감님 품에 안기길 원하였고 욕정을 풀어야 하였습니다.
반면에 그 영감님은 우리 수지에게 너무나 잘 대하여 주었고 용돈도 넉넉하게 주었으며 현금으로 만원을 주었다면
통장에도 같은 금액을 저금을 시켜주었고 저에게 확인도 시켜주는 자상함을 보여 주었기에
저는 그 영감님을 하늘같이 존경을 하며 물받이 노릇도 하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지도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며 따랐고 그런 대견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점점 수지 아빠인 명수 오빠의 생각을 지울 수가 있었습니다.
옛말에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있듯이 그 영감님의 저를 사육하는 방법은 그 영감님의 조카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더러운 조카란 작자가 매로 저를 사육을 시켰다면 그 조카의 당숙이란 영감님은 매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저를 사육을 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섹스였습니다.
섹스의 맛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익히 장 알던 그 영감님은 자기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섹스를
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섹스를 해 주려고 하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저를 아주 미치도록
흥분을 시킨 다음에 절정의 꼭대기에 다다르려고 하면 그 때서는 하든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잠을 자라고 하든지 아니면 뭘 가지고 오라고 하여 불붙던 제 몸에 찬물을 뿌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그 영감님의 성질을 알게 되자 저는 그 영감님이 하라고 하면 무슨 짓이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친구들을 초대를 해 두고 파티를 한다면서 설이 거나하게 취하면 저에게 홀랑 벗게 하고
상위에 눕게 한 다음 가랑이를 꼭 오므리라고 한 후에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고는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그 술을 마시게 하였고 그러면 그 영감님의 친구들은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저의
은밀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마셔도 화를 내기는커녕 박장대소를 하며 더 하라고 권유를 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생일 파티를 열어 주기를 좋아하든 그 영감님은 생일인 친구의 좆을 빨아주며 흔들게 하여 그 더러운 물을 먹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친구들의 좆을 발아주고 흔들게 하고 또 저의 알몸을 구석구석 만지게 하였지만 섹스만은 결코 허용을 안 하였습니다.
아니 심지어 짓궂은 친구가 자신의 좆을 제 보지에 잠시 대어보기만 하자고 하여도 질색을 할
정도로 제 보지에 다른 사람의 좆을 넣게 하지는 절대로 안 하고 오로지 좆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영감님뿐이란 것을 제 머리 속에 각인을 시킬 정도로 아주 치밀하게 저를 사육을 시키며 즐겼습니다.
한 번은 그 영감님 친구들 중에 유별나게 정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여러 진구들을 초대하여 술파티를 하다가
흥이 나자 알몸으로 상위에 누워 다리를 오므리고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고 그 술을 돌려가며 마시다가
소변이 마려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는데 영감님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 친구 분이 몰래
화장실로 뒤따라 들어왔고 다짜고짜 소변을 하던 저를 일으켜 세우고는 엎드리게 하여 좆을 막 박으려고 하는
순간에 영감님이 눈치를 차리고 화장실로 달려왔고 그 자리에서 영감님은 그 친구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리더니 의절을 선언하고 가라고 하더니 그 후로 그 친구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제 보지에 남의 좆을 박는 것은 못 보는 성질을 가진 이상한 사람이었으나 난 그렇게라도 저를 지켜주려고 하는
영감님의 마음이 고마워 더 충실하게 영감님의 말에 복종을 하는 진정한 노예로 변하였습니다.
그런 파티의 농도도 차츰 더 찐하게 변모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영감님이 친구를 초대를 한다면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니 오이를 잘 깎아 몇 개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이로 반찬을 만들 까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며 껍질만 잘 깎아 두면 된다고 하여 보기 좋게
깎아 두었더니 술판이 돌아가고 여흥이 불을 붙기 시작을 하자 예전처럼 알몸으로 오라고 하면서
깎아 둔 오이들도 한께 가져오라고 하기에 영문도 모르고 가져가자 눕게 하더니 한 친구에게
그 오이를
저의 보지에 박으라고 시켰고 그 친구가 오이를 보지에 박자 웃으며 다리를 오므리게 하였고
가랑이 사이에 술을 붇더니 친구에게 마시라고 하고는 마시자 안주를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오이를 물고
요령껏 입으로만 이용을 하여 반대로 꼽게 하고 보지에 박혔던 부분을 잘라 먹게 하였고 그 친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을 한 끝에
영감님 말처럼 외로 올라와 있던 부분을 보지에 박았고 보지에 박혀 있던 부분을 웃으며 잘라 먹었습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중에 저는 구태여 남자의 좆이 아니라도 만족을 할 수가 있다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영감님이 저를 사육을 시킨다고 최고의 불이 붙은 순간 다른 일을 시키거나 잠을 자라고 할 때에
오이나 다른 것을 제 보지에 박고 들락날락 시켰더니 꺼지다 만 불이 다시 지펴지며 욕정을 해결을 할 수가 있었으나
그도 오래 가지 못 하고 영감님에게 그렇게 하는 장면이 발각이 난 후에는 영감님의 말이 없으면
길쭉하게 생긴 오이나 가지 바나나 심지어는 무 토막까지도 집안에 들릴 수 없게 하였기에 더 이상
그런 짓을 하기에는 불가능하였고 오로지 믿을 것은 여감님의 말씀에 복종을 잘하여 좆으로 제
욕정을 달래는 길 뿐이란 것을 알았기에 저는 더 충실하게 영감님 말씀에 복종을 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수지는 열심히 공부를 잘 하였습니다.
또 그런 파티를 하게 될 경우에는 수지는 자기 방에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으며 수지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려고 생각도 안 하였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아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어미로서도 고마운 일이었고 키우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영감님에게 팔아먹은 그 더러운 인간이 어쩌다가 내려오기라도 할라 치면 영감님은
그 더러운 조카란 녀석의 동태를 살피며 어서 올라가라고 재촉을 하였고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겠다고 할라 치면
아예 수지와 저를 자기 옆에 잠들게 하여 보호를 해 주는 세밀함도 보여주어서 저를 안심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더러운 인간은 닭 좆던 개처럼 있다가 저의 통장만 확인을 시켜주고 가야 하였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전 쾌재를 불러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더러운 인간이 영감님에게 모욕을 당하고 저의 통장과 도장 그리고 양해각서 전부를 영감님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그게 어떤 일 인고 하니 그 부근에 또 다른 영감님과 그 더러운 인간의 인척이 살았는데 그 인척이
그만 운명을 하게 되었고 상을 치르게 되었으나 마침 우리 수지가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라고
저는 수지의 뒷바라지 때문에 상가에 가서 일을 돕지 못 하고 집에 있게 되었는데 그 더러운 인간도
자기 인척의 상에 내려 왔다가는 제 모습이 눈에 안 보이자 야심한 시간에 영감님 몰래 우리 집으로 왔고
싫다고 하는 저를 억지로 끌고 가 집 뒤 안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려다가 제사 심하게 반항을 하자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찢고는 강제로 엎드리게 한 후에 좆을 막 박고 흔들려고 하는
순간에 영감님이 저를 발견을 하였고 그 더러운 인간을 발로 차서 쓰러트린 후에 주머니 안에서
통장과 도장 그리고 양해각서 전부를 영감님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다시는 근처에 발걸음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을 치는 멋진 사건이 생긴 후 그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 저로서는 천만다행의 사건이라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자 전 영감님에 대한 믿음이 더 갔고 영감님이 죽으라고 한다면 열 길 불 섶에라도 뛰어 들어가지는 못 할 지언 정
흉내라도 낼 정도의 마음이 생기자 저는 더 정성을 다하여 영감님을 극진하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한 가지 불만 아니 섭섭한 점은 있었습니다.
아무리 난쟁이 병신이었지만 영감님은 친구들 앞에서는 저를 알몸으로 만들기 까지 하면서 내 놓기를 꺼려하지 않았으나
자기들 가족에게는 저의 신분은커녕 얼굴도 들어내게 안 하고 명절이나 무슨 제사만 있으면 또 하나 더 있던
집으로 가서 아들이며 며느리 그리고 손자를 보고 왔지 저에게 함께 가자고 하거니 식솔들을 데리고는
오지를 않는 것이 불만이면 불만이었고 섭섭한 점이었지만 그 말만 하면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얼버무리기 일쑤였지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를 않아 영감님의 마나님이
죽었다는 것과 아들 둘에 며느리 둘 그리고 손자가 몇이 있다는 사실 왜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 아들이나 며느리 혹은 손자들도 할아버지를 찾지도 않았기에 저는 그 영감님의 가족들 얼굴은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영감님들의 친구들 말에 따르면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나의 존재를 알기는 하였지만 오로지
밥이나 해 주고 등이나 긁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지 저랑 같이 잠자리를 함께하고 친구들이 오면
갖가지 시중을 든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또 관심을 안 둔다는 사실 정도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불만은 영감님에게 하여도 쇠귀에 경 읽기라 몇 번을 해 보곤 단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영감님은 수시로 그 더러운 인간에게 빼앗은 통장과 영감님이 만들어 준 우리 딸아이 수지의
저금통장은 보여주었는데 그 금액은 점점 늘어나 약속을 한 대로 우리 수지가 시집을 갈 즈음에는
호화로운 예단은 물론 약간의 지참금을 해 주고도 남아서 집도 하나 장만을 하고 노후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가게도 하나 마련을 할 수가 있겠다는 기대감에 저는 더 헌신적으로 영감님의 수발을 들며 사육을 당하고 있었지만
정작 저는 사육을 당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를 못 하고 오로지 영감님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을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흘러서 우리 수지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고 저와는 달리 신체발육도 아주 좋아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을 하였고 엉덩이도 제법 여자다운 티를 내는 것이 어미인 제 마음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우리 수지에게 있었습니다.
보통 여자들의 젖가슴이 부풀기 시작을 하고 엉덩이가 여자 티를 내기 시작을 하면 생리가 있게 마련이었지만
우리 수지는 생리는 없이 가슴만 부풀기 시작을 하였고 엉덩이도 여자 티를 내기만 하였습니다.
딸이기 전에 같은 여자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붙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 만 저에게는 뾰쪽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의논을 할 상대는 오로지 영감님뿐이었지만 영감님도 남자인지라 그 영감님의 조카인 그 더러운 인간이
우리 딸에게 하였던 행동이 생각나 선뜻 영감님에게 물을 수도 없어서 한 동안 저 혼자 가슴앓이를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수지가 6학년에 놀라가서도 생리가 없이 점점 가슴만 더 부풀어 오르자 덜컥 겁이 났고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어쩔 방법이 없이 영감님에게 유식한 말로 자문이란 것을 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이르고 말았습니다.
못 배운 것이 여실하게 들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배우기라도 하였더라면 산부인과 병원이나 아니면 수지 학교의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였으련만
왜소한 제 모습을 수지의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에게 보이기도 싫었기에 그렇게 하지도 못 하였고
또한 왜소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병원에도 못 간 것은 다 요즘 말처럼
가방끈이 짧은 이유였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다가는 영감님에게 상의를 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먹자 용기가 생겼고 밥이 이슥 하자 저는 용기를 내어 영감님의 침실로 갔습니다.
“어제 하고도 또 하고 싶어 왔니?”영감님이 침대에 누워서 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이 영감님도”하며 눈을 흘기며 침대 모서리에 앉자
“그럼 뭐지?”하며 제 팔을 잡아당기더니 품에 저를 안으며 물었습니다.
“이러지 마시고 제 고민 하나 해결을 해 주세요”하자
“무슨 고민이지”하며 일어나 앉으시기에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수지........”하고 말의 운은 띠웠지만 더 이상은 말하기 곤란하였기에 주저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래 수지가 왜?”하고 물으시기에
“글쎄 우리 수지가 아직 생리가 없고 가슴만 부풀어요, 어떡하죠?”하고 용기를 내어 묻자
“흠 난 벌써 생리를 시작 한 줄 알고 나에게 말을 안 한 임자만 속으로 원망을 하였는데 정말 없어?”하시기에
“아니 수지 생리를 하는 것 하고 영감님에게 말을 안 한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하고 눈을 흘기며 묻자
“허어 이런 여자가 첫 생리를 하면 선물도 사 주고 또 떡도 해서 나누어 먹는 것이 기본이 아니냐?”하며 말씀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저로서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었기에 말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하여간 수지 가슴이 부풀기 시작을 한지 제법 오래 되었을 것인데 이거 큰일이군.
큰일이야”하며 저보다 더 저의 딸아이 수지에 대하여 걱정을 하 주는 것이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어떡하죠?”하고 묻자
“그럼 내일 아는 사람 중에 병원을 하였던 의사가 있었으니 한 번 찾아가 물어보고 와서 말을 해 줄게”하고 말을 하더니
제 가슴에 손을 넣고 젖꼭지를 매만지며 저의 몸에 열기를 느끼게 만들었고 열기를 느끼기 시작을 한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알몸이 되어 영감님 품에 안기게 되었고 영감님은 대단한 힘으로 제 몸의 불을 꺼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영감님은 오전에 외출을 하였고 밤이 늦어서야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셨기에
차마 묻지 못 하고 영감님 옆에 누워서 축 늘어진 좆을 주무르며 한숨을 푹푹 쉬며 겨우 잠을 청 할 수 있었고
눈을 떴을 때는 몸의 무거움을 느껴서 였고 그 원인은 새벽부터 좆이 선 영감님이 욕정을 풀려고 올라온 후였습니다.
새벽부터 한 바탕 폭풍우가 영감님과 저의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저는 일어나 밥을 하였고 수지에게 아침을 먹이고 학교로 보냈습니다.
“뭐래요?”그리고 영감님이 다시 일어나시고 세수를 마치자 조반을 함께 들며 물었습니다.
“뭐가 뭐래요 지?”하시기에
“아이 영감님도 우리 수지 이야기 말 이예요”저는 눈을 흘기며 물었습니다.
“하하하 참 그렇지, 그런데 그게 별 것 아니긴 아닌데 다른 한 편으로는 큰 문제이기도 하다고 하더군, 음”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영 안 나온다고 하던가요?”놀라며 묻자
“그건 아니고 참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하며 달력을 보시기에
“무슨 요일은 무슨 요일 이예요, 토요일이지”역시 눈을 흘기며 말을 하자
“참 그렇지 임자 내일 임자가 있었다던 고아원에 한 번 다녀오지”하시기에
“아니 고아원엔 왜요?”하고 묻자
“거기 가서 임자가 정확하게 몇 살부터 생리를 하였는지 알아보고 와”하셨습니다.
이 영감님에게 그 더러운 인간이 팔아버려 시골로 온 후로 단 한 번도 못 가본 고아원이 갑자기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장선생님의 안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영감님”하며 안기자
“참 그러지 말고 오늘 당장 갔다가 하루 고아원에서 푹 쉬고 내일 오지, 아니 내일 내가 데리러 가지”하고 말을 하더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고아원에 모처럼 가면서 빈손으론 갈 수 없으니 먹을 것이라도 사 가”하며 수표를 한 장 꺼내어 주었습니다.
“어머머 영감님 너무 많아요”전 수표를 받아 보고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뭐, 원아들도 많은 모양이던데 그 정도는 돼야지 아이들에게 과자부스러기라도 하나씩 돌아가지”하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영감님은 역시 부호답게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다녀 올 게요, 참 영감님 저녁이며 조반 그리고 수지 밥은 안 갈레요”하며 수표를 다시 영감님에게 주며 말하자
“어허 나나 수지나 한두 끼 사 먹으면 되지 다녀와”하며 다시 수표를 제 손에 쥐어주시고는 전화기를 짚더니
“응 여기 00야 00별장 몰라? 당장 차 한 대 보네”하고는 전화를 끊으시더니
“택시 불러 놨어 어서 준비 해”하시며 제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셨습니다.
“고......고마워요 영감님”하고 말을 하는 저의 눈에는 고마움에 눈물이 흘러 촉촉이 젖어 있었고
저의 방으로 와 모처럼의 외출에 신명이 난 간단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더니 대문 앞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영감님에게 다녀오겠다고 다시 인사를 하고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서 제가 자라던 고아원을 향하여 부푼 마음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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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자가 장애인을 등장시킨 글이라 안 좋다면 중단을 요구합디다.
그렇다면 <계묵용의 백치아다다>는 문학작품이라서 장애자 등장이 괜찮고 위의 글은 안 된다는 말인지 묻고 싶네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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