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속으로 나온 지렁이 [제30부]
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창가를 내려 비추고 있었다.
한낮인데도 침대위의 두 사람은 내려올 줄 모르고 누워있었다.
이미 두 사람은 잠에서 깬 듯 눈을 뜨고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고 지쳐보였다.
남자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 또한 남자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여자의 눈에서 가끔 떨어지는 눈물 말고는...그녀의 뺨은 온통 얼룩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답답한 시간이 방안을 더욱 적막으로 몰고 가는 게 싫었는지 남자가 먼저 입을 연다.
[난 말이야, 난....날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라..........
더러운 육신을 타고난 것이 부끄러워 그런 건지, 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몸이었지.
끈질긴 생명이었는지 한 노인부부의 손에서 자랐어.
그러나 그분들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난 세상을 저주해.........갈 갈이 찢어버리고 싶도록...........
날 이해하라고는 않겠어. 그런다고 달라질 것 없는 나니까........후후. 빌어먹을 세상.]
남자는 옆에서 듣던 말 던 자기신세를 밝히며 허탈해한다.
그의 말속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러나 여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넌 대학생이라고. 후후.....그래도 좋은 환경에 자랐다는 걸 알 수 있어.
난 국졸이 나의 전부야.
어찌하다 수감생활 중 검정고시로 중졸을 증명한 것 외에는...........
난 잘난 여자나 예쁜 여자, 아니 이세상의 모든 여자를 내 발밑으로 기게 하고 내
한마디에 죽고 사는 그런 개로 만들어 살고 싶어.
더러운 세상에 악마가 되어 처절하게 더럽혀놓고 죽고 싶은 게 내 꿈이며 희망이야.
흐흐흐...........]
두이는 계속 혼자말로 자기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입으로는 냉소를 짓고 눈에서는 살기를 내뿜으며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는지 부르르 몸까지 떨고 있다.
[..........................]
두이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유진을 본다.
유진은 그저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두이는 유진의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아직도 울고 있구나. 너는..............]
두이는 유진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에 서린 슬픔을 보았기에 웬 지 가슴이 뭉 컬하여 더 볼 수가 없었다.
둘은 또 다시 침묵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혀 열릴 것 같지 않던 유진의 입이 열린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세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다.
시선은 고정되고 동작은 움직임이 없었고 다만 입만 벙긋거리며 두이에게 묻는 것이다.
두이는 당황했다.
유진의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두이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유진이 이상했지만 번뜻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그것을 대답으로 말해준다.
[후후후. 아마 날 죽이고 싶어 하겠지.]
[맞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왜 당신이 불쌍하게 느껴질까요. 그것이 슬퍼요.
그런 마음이 드는 내 자신이 너무나 슬퍼요.............]
유진은 말을 하면서 또 다시 굵은 눈물을 뺨으로 쏟아낸다.
그녀는 어젯밤 철두철미하게 망가졌다.
너무나도 지겨운 공부에 그리고 문뜩 문뜩 생각나는 남자로 인해 그녀는 이상한 곳에 발을 디밀게 되었고 마담의 배려 하에 별 이상 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그리고 스스로 자청하여 남자의 세계를 더욱 알고자 왔었는데 그녀는 여자로서 감당하지 못할 수치와 고통으로 만신이 으깨어지고 부서지는 그런 경우를 당했던 것이다.
순간의 호기심과 욕구가 도저히 자기가 앞으로 해나갈 일에 자신감이 없도록 산산조각 내어놓은 느낌이었으니 그 타는 속마음이 오죽했으랴......고상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야할 자신이 세상 창녀보다 못한 꼴을 보였으니 그 누구 앞선 자랑스러운 몸이 될지 몰라도 이 남자 앞에서는 한낱 창녀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한이 되어 그녀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후후후. 동정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난 눈물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 난 우는 것도 그걸 보는 것도 질색이거든.........
자.......일어나......... 커피라도 먹어야겠어.]
두이가 이부자리를 걷어내며 일어나려고 한다.
자기가 한 행위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고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야겠죠. 인정머리 없는 댁에게 말해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겠죠.
그래요 많이 늦었네요. 커핀 제가 끓여드릴게요.]
유진은 두이의 냉정함에 기가 질리는지 약간 몸서리를 치더니 쌀쌀맞게 말을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한다.
[아...악.............]
유진 이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버리고 만다. 아랫도리의 두 구멍에 커다란 막대기로 쑤셔놓은 듯 벌린 다리를 오 무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조금 움직였는데도 아래에서 오는 따가움과 커다란 고통이 온몸을 짓눌러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고 그곳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 그만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왜 그래. 뭐가 있어.]
두이가 벌떡 일어나 덮고 있는 침대보를 거둔다.
두이는 여자가 놀라고 거친 신음에 혹시 침대에 더러운 곤충이나 다른 이물질이 있어 유진을 괴롭혔다고 믿었다.
[아니 그냥 두세요, 빨리 이불 덮어요. 아이... 몰라.]
유진은 당황했다.
두이가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줄 몰랐다.
두이의 행동을 막으려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만 자기의 벌거벗은 추한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유진은 그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두이는 보았고 알았다.
자기도 그녀도 아직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이지만 그녀의 나체가 눈 아래 몽땅 드러났다가 지금은 한곳만 가리 우고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아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트에 점점이 떨어진 혈 혼이. 그리고 수없이 각인되어있는 얼룩반점이 지난 시간에 일어났던 엄청난 행위의 결과이고 그것 때문에 유진이 꼼작 달싹 못한다는 것을.......
두이는 유진을 쳐다보고 그녀의 몸과 시트를 다시 바라본 후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하........알 것 같군. 그랬어. 으하하하...]
두이는 신나게 웃고 난 뒤 유진을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그녀의 가슴에 손을 가져간다.
몽실몽실하고 더없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살집이 만져진다.
유진은 눈을 감은 체, 손은 사타구니만 가린 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르르 떨고 있다.
[감촉이 좋은데. 하하하..............]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격이었다.
꼼작 못하는 유진 이를 희롱하며 즐기는 것이다.
유진은 부끄럽고 민망해 죽을 맛이었다.
관계를 가질 때와는 전혀 다른 낯선 남자에게 몸을 보여준 그런 느낌에 유진은 죽고만 싶어지도록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그런데 두이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갑자기 자기의 손을 걷어낸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손 대신에 그의 손이 와서 그곳을 덮더니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유진은 홍당무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손을 들어 두이의 손을 밀치려고 를 하지 못한다.
눈을 꼭 감고는 수치를 감내하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두이는 유진의 검고 길며 그리고 넓게 분포한 털 지대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난 이것이 좋아. 난 이것을 그냥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밤낮으로 만지고 싶어.
난 꼭 그렇게 하며 살 거야.
내주위에 수많은 여자를 두고 모두다 홀랑 벗겨 그 속에서 제왕이 되어 마음껏 향락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흐흐흐...........]
두이는 징그러운 웃음과 묘한 상상을 하며 이루어지지도 않을 묘한 꿈을 나타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러할...... 그런 꿈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두이는 여자의 털 밭을 누비다가 한차례 가볍게 그곳을 때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짝. 아야.................너무해 당신은.............씨 이......]
유진은 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두이를 원망한다.
수치도 모자라 고통까지 남겨주니 어찌 눈에 쌍심지가 돋지 않으리.
그런데 유진의 표정은 쌀쌀하고 날카로운데 그 빛을 내며 쳐다보는 눈빛엔 원망도 서려있었지만 뭔가 자욱한 안개 같은 것이 또 다른 모습으로 두이를 바라보고 있어 그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진정 미워하는 것인지 아님 다른 음이 있는 것인지. 두이는 유진의 마음 따윈 알 필요도 없다는 듯 그녀를 가볍게 때려주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린다.
유진은 힘들게 몸을 움직여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고는 다시 어떤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두이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옷을 전부 입은 두이가 침대 가에 앉아 힘없이 누워있는 유진을 쳐다본다.
[쉬었다 가.........그리고 괜히 여기 올 필요도 없어.
난 여자가 더러 있고 또 여자들 간에 질투하는 꼬락서니는 죽어도 못 보는 성미니.......
유진도 자존심이 대단한 것 같으니 그 꼴은 못 보지 않겠어. 하하하........]
두이는 여전히 말없이 누워있는 유진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려준 뒤 방을 나선다.
누워있는 유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마음속의 격정을 참고 있는 모양이다.
거리엔 별로 사람들이 없었다.
차들만 속도를 내며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었고 간혹 지나가는 사람도 모두다 옷깃을 세우고 이른 추위와 대항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두이 역시 잠바의 깃을 올리고 천천히 걷는다.
사실 속도 쓰리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분명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직 자기 힘으로는 시기상조였기에 마음속으로 묻어두고 정처 없이 무덤덤한 발걸음으로 내딛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식당골목입구에 와 있었다.
두이는 골목을 보더니 다시 빙긋 웃고는 금산식당을 향한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그렇게 정다울 수 없다.
두이는 들어서는 자기를 보며 반갑기도 하며 외박을 한 나무람인지 원망도 섞인 영 순의 눈초리를 받는다.
두이는 애써 모른척한다.
[어디서 잤어, 흥........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영 순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두이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후후. 좋은 냄새가 날거야. 어제 포식했으니............]
두이는 냄새를 맡는 영순 에게 더욱 몸을 디 밀며 약 올리듯 말한다.
[흥.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있지 왜 왔어..........]
영 순은 금방 토라진다.
[후후후. 그래도 정들었던 곳인데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그건 그렇고. 어때 해장술이나 한잔 주지 않겠어.
싫다면 그냥 가고..........]
두이는 영 순을 바라본다.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얼굴엔 묘한 웃음마저 번져있다.
영 순은 깜 작 놀란다.
두이가 헛소리를 하는 남자가 아니란 걸 알기에................
[뭐라..안 돼, 여기서 못가.. 우린 어찌하라고.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영 순은 다급했다.
두이의 손을 잡아끌고는 난로 옆에 앉히고는 그녀도 마주보며 앉는다.
[무슨 일이 있었어. 왜 그래......내가 기분 나쁜 거야. 정말 왜 그래...........
가지마. 응.........우리랑 있자.........응.......]
영 순은 두이의 손을 잡고 안 절 부절이다.
[그렇게 됐어,
거처가 생겼어, 여기서 멀지 않은 초록 오피스텔1205호야.
당신도 알잖아. 그 곳을..............]
두이는 자기의 거처가 생겼고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영 순의 눈에 금방 물기가 고인다.
물론 가까운 곳이지만 서로 떨어져 산다는 게 영 순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좋다고 떨어져있으면 두이의 성정으로 보아 마구 난봉 짓을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두이의 거처가 좋은 곳에 마련되었는데 가지마라 할 수도 없고 그녀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이제 이 남자에 속했고 이 남자 없이는 세상 살아갈 맛도 없이 되었는데 그리고 여자로서 느끼는 커다란 기쁨도 이 남자에게서 받았는데 이 남자를 옆에 두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두이는 슬슬 자기 곁에서 멀어지려는 느낌을 받았으니 어찌 섭섭하고 괴롭지 않으리.
눈물이 흘러내릴 듯 글썽글썽한 눈으로 쳐다보는 영순 에게 두이가 정답게 말한다.
[그곳은 이곳보다 따뜻해, 그리고 당신이 종 종 와서 청소도 해주면 좋으련만.....
물론 다른 여자가 있어 그럴 필요도 없지만 당신이 오면 내가 편할 텐데..........]
두이는 영 순을 달랜다.
어찌 보면 영 순도 피해자이다.
자기로 인해 사람으로서는 못할 짓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오직 자기하나만을 위하여 모든 걸 내팽개친 여자가 아니던가,
천륜을 어기게 한 것도 사실 자기이고 모든 범죄는 자기로 인해 만들어진 일이 아닌가....
지금 그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자기에게 매달리려는 영 순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두이는 정답게 웃어준다.
[그럼요, 내가 할거 에요. 당신의 모든 것을 내가 보살필 거 에요.
제발. 내게서 멀어지려고만 말아주세요.]
영 순은 급히 대답한다.
그리고 희망에 젖은 감동의 눈으로 뒤바뀐다.
[내가 왜. 당신처럼 나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모든 걸 나에게 다 주려하는 당신을 내가 왜 버려 죽어도 그런 일은 없어.
다만 내일에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여자문제라도.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내게서 떠나기 전에는 내가 당신을 놓지 않겠어.]
두이는 그랬다.
진정 그런 마음이었다.
말은 무뚝뚝하고 표현은 없었지만 항상 영 순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있었다.
두이는 비록 어머니 같은 나이지만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다.
[아....고마워요.. 절대로. 당신의 속을 섞이지 않겠어요........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아할 거 에요. 아..............]
영 순은 이 순간 감동에 넘쳐있었다.
자기가 이때까지 두이에게 말을 낮추어 불렀다가 이 순간 말투가 경어로 바뀐 줄도 모르고 그저 두이의 마음 주는 것에 감동하였고 두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나 수모도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허허. 이것 참. 해장술이나 먹으려 했더니만.....이 무슨 순애보인가...허 허 참....]
[그러네요, 호호,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금방 차려올 테니..................]
그녀는 금방 입에 화려한 미소를 피우고 만다.
그리고 급히 일어나 주방 쪽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신이 났다.
두이가 행여 나이가 많은 자기를 내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지금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싫지도 않고 앞으로도 모든 게 나하기 마련이라는 걸 느꼈기에 당장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후후후..................]
두이는 영 순의 모습을 보며 또 빙긋이 웃는다.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망아지처럼 좋아 날뛰는 것 같아서이다.
.....................................
31부에 계속
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창가를 내려 비추고 있었다.
한낮인데도 침대위의 두 사람은 내려올 줄 모르고 누워있었다.
이미 두 사람은 잠에서 깬 듯 눈을 뜨고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고 지쳐보였다.
남자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 또한 남자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여자의 눈에서 가끔 떨어지는 눈물 말고는...그녀의 뺨은 온통 얼룩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답답한 시간이 방안을 더욱 적막으로 몰고 가는 게 싫었는지 남자가 먼저 입을 연다.
[난 말이야, 난....날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라..........
더러운 육신을 타고난 것이 부끄러워 그런 건지, 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몸이었지.
끈질긴 생명이었는지 한 노인부부의 손에서 자랐어.
그러나 그분들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난 세상을 저주해.........갈 갈이 찢어버리고 싶도록...........
날 이해하라고는 않겠어. 그런다고 달라질 것 없는 나니까........후후. 빌어먹을 세상.]
남자는 옆에서 듣던 말 던 자기신세를 밝히며 허탈해한다.
그의 말속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러나 여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넌 대학생이라고. 후후.....그래도 좋은 환경에 자랐다는 걸 알 수 있어.
난 국졸이 나의 전부야.
어찌하다 수감생활 중 검정고시로 중졸을 증명한 것 외에는...........
난 잘난 여자나 예쁜 여자, 아니 이세상의 모든 여자를 내 발밑으로 기게 하고 내
한마디에 죽고 사는 그런 개로 만들어 살고 싶어.
더러운 세상에 악마가 되어 처절하게 더럽혀놓고 죽고 싶은 게 내 꿈이며 희망이야.
흐흐흐...........]
두이는 계속 혼자말로 자기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입으로는 냉소를 짓고 눈에서는 살기를 내뿜으며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는지 부르르 몸까지 떨고 있다.
[..........................]
두이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유진을 본다.
유진은 그저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두이는 유진의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아직도 울고 있구나. 너는..............]
두이는 유진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에 서린 슬픔을 보았기에 웬 지 가슴이 뭉 컬하여 더 볼 수가 없었다.
둘은 또 다시 침묵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혀 열릴 것 같지 않던 유진의 입이 열린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세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다.
시선은 고정되고 동작은 움직임이 없었고 다만 입만 벙긋거리며 두이에게 묻는 것이다.
두이는 당황했다.
유진의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두이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유진이 이상했지만 번뜻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그것을 대답으로 말해준다.
[후후후. 아마 날 죽이고 싶어 하겠지.]
[맞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왜 당신이 불쌍하게 느껴질까요. 그것이 슬퍼요.
그런 마음이 드는 내 자신이 너무나 슬퍼요.............]
유진은 말을 하면서 또 다시 굵은 눈물을 뺨으로 쏟아낸다.
그녀는 어젯밤 철두철미하게 망가졌다.
너무나도 지겨운 공부에 그리고 문뜩 문뜩 생각나는 남자로 인해 그녀는 이상한 곳에 발을 디밀게 되었고 마담의 배려 하에 별 이상 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그리고 스스로 자청하여 남자의 세계를 더욱 알고자 왔었는데 그녀는 여자로서 감당하지 못할 수치와 고통으로 만신이 으깨어지고 부서지는 그런 경우를 당했던 것이다.
순간의 호기심과 욕구가 도저히 자기가 앞으로 해나갈 일에 자신감이 없도록 산산조각 내어놓은 느낌이었으니 그 타는 속마음이 오죽했으랴......고상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야할 자신이 세상 창녀보다 못한 꼴을 보였으니 그 누구 앞선 자랑스러운 몸이 될지 몰라도 이 남자 앞에서는 한낱 창녀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한이 되어 그녀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후후후. 동정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난 눈물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 난 우는 것도 그걸 보는 것도 질색이거든.........
자.......일어나......... 커피라도 먹어야겠어.]
두이가 이부자리를 걷어내며 일어나려고 한다.
자기가 한 행위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고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야겠죠. 인정머리 없는 댁에게 말해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겠죠.
그래요 많이 늦었네요. 커핀 제가 끓여드릴게요.]
유진은 두이의 냉정함에 기가 질리는지 약간 몸서리를 치더니 쌀쌀맞게 말을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한다.
[아...악.............]
유진 이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버리고 만다. 아랫도리의 두 구멍에 커다란 막대기로 쑤셔놓은 듯 벌린 다리를 오 무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조금 움직였는데도 아래에서 오는 따가움과 커다란 고통이 온몸을 짓눌러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고 그곳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 그만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왜 그래. 뭐가 있어.]
두이가 벌떡 일어나 덮고 있는 침대보를 거둔다.
두이는 여자가 놀라고 거친 신음에 혹시 침대에 더러운 곤충이나 다른 이물질이 있어 유진을 괴롭혔다고 믿었다.
[아니 그냥 두세요, 빨리 이불 덮어요. 아이... 몰라.]
유진은 당황했다.
두이가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줄 몰랐다.
두이의 행동을 막으려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만 자기의 벌거벗은 추한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유진은 그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두이는 보았고 알았다.
자기도 그녀도 아직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이지만 그녀의 나체가 눈 아래 몽땅 드러났다가 지금은 한곳만 가리 우고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아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트에 점점이 떨어진 혈 혼이. 그리고 수없이 각인되어있는 얼룩반점이 지난 시간에 일어났던 엄청난 행위의 결과이고 그것 때문에 유진이 꼼작 달싹 못한다는 것을.......
두이는 유진을 쳐다보고 그녀의 몸과 시트를 다시 바라본 후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하........알 것 같군. 그랬어. 으하하하...]
두이는 신나게 웃고 난 뒤 유진을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그녀의 가슴에 손을 가져간다.
몽실몽실하고 더없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살집이 만져진다.
유진은 눈을 감은 체, 손은 사타구니만 가린 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르르 떨고 있다.
[감촉이 좋은데. 하하하..............]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격이었다.
꼼작 못하는 유진 이를 희롱하며 즐기는 것이다.
유진은 부끄럽고 민망해 죽을 맛이었다.
관계를 가질 때와는 전혀 다른 낯선 남자에게 몸을 보여준 그런 느낌에 유진은 죽고만 싶어지도록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그런데 두이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갑자기 자기의 손을 걷어낸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손 대신에 그의 손이 와서 그곳을 덮더니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유진은 홍당무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손을 들어 두이의 손을 밀치려고 를 하지 못한다.
눈을 꼭 감고는 수치를 감내하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두이는 유진의 검고 길며 그리고 넓게 분포한 털 지대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난 이것이 좋아. 난 이것을 그냥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밤낮으로 만지고 싶어.
난 꼭 그렇게 하며 살 거야.
내주위에 수많은 여자를 두고 모두다 홀랑 벗겨 그 속에서 제왕이 되어 마음껏 향락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흐흐흐...........]
두이는 징그러운 웃음과 묘한 상상을 하며 이루어지지도 않을 묘한 꿈을 나타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러할...... 그런 꿈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두이는 여자의 털 밭을 누비다가 한차례 가볍게 그곳을 때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짝. 아야.................너무해 당신은.............씨 이......]
유진은 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두이를 원망한다.
수치도 모자라 고통까지 남겨주니 어찌 눈에 쌍심지가 돋지 않으리.
그런데 유진의 표정은 쌀쌀하고 날카로운데 그 빛을 내며 쳐다보는 눈빛엔 원망도 서려있었지만 뭔가 자욱한 안개 같은 것이 또 다른 모습으로 두이를 바라보고 있어 그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진정 미워하는 것인지 아님 다른 음이 있는 것인지. 두이는 유진의 마음 따윈 알 필요도 없다는 듯 그녀를 가볍게 때려주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린다.
유진은 힘들게 몸을 움직여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고는 다시 어떤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두이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옷을 전부 입은 두이가 침대 가에 앉아 힘없이 누워있는 유진을 쳐다본다.
[쉬었다 가.........그리고 괜히 여기 올 필요도 없어.
난 여자가 더러 있고 또 여자들 간에 질투하는 꼬락서니는 죽어도 못 보는 성미니.......
유진도 자존심이 대단한 것 같으니 그 꼴은 못 보지 않겠어. 하하하........]
두이는 여전히 말없이 누워있는 유진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려준 뒤 방을 나선다.
누워있는 유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마음속의 격정을 참고 있는 모양이다.
거리엔 별로 사람들이 없었다.
차들만 속도를 내며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었고 간혹 지나가는 사람도 모두다 옷깃을 세우고 이른 추위와 대항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두이 역시 잠바의 깃을 올리고 천천히 걷는다.
사실 속도 쓰리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분명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직 자기 힘으로는 시기상조였기에 마음속으로 묻어두고 정처 없이 무덤덤한 발걸음으로 내딛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식당골목입구에 와 있었다.
두이는 골목을 보더니 다시 빙긋 웃고는 금산식당을 향한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그렇게 정다울 수 없다.
두이는 들어서는 자기를 보며 반갑기도 하며 외박을 한 나무람인지 원망도 섞인 영 순의 눈초리를 받는다.
두이는 애써 모른척한다.
[어디서 잤어, 흥........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영 순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두이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후후. 좋은 냄새가 날거야. 어제 포식했으니............]
두이는 냄새를 맡는 영순 에게 더욱 몸을 디 밀며 약 올리듯 말한다.
[흥.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있지 왜 왔어..........]
영 순은 금방 토라진다.
[후후후. 그래도 정들었던 곳인데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그건 그렇고. 어때 해장술이나 한잔 주지 않겠어.
싫다면 그냥 가고..........]
두이는 영 순을 바라본다.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얼굴엔 묘한 웃음마저 번져있다.
영 순은 깜 작 놀란다.
두이가 헛소리를 하는 남자가 아니란 걸 알기에................
[뭐라..안 돼, 여기서 못가.. 우린 어찌하라고.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영 순은 다급했다.
두이의 손을 잡아끌고는 난로 옆에 앉히고는 그녀도 마주보며 앉는다.
[무슨 일이 있었어. 왜 그래......내가 기분 나쁜 거야. 정말 왜 그래...........
가지마. 응.........우리랑 있자.........응.......]
영 순은 두이의 손을 잡고 안 절 부절이다.
[그렇게 됐어,
거처가 생겼어, 여기서 멀지 않은 초록 오피스텔1205호야.
당신도 알잖아. 그 곳을..............]
두이는 자기의 거처가 생겼고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영 순의 눈에 금방 물기가 고인다.
물론 가까운 곳이지만 서로 떨어져 산다는 게 영 순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좋다고 떨어져있으면 두이의 성정으로 보아 마구 난봉 짓을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두이의 거처가 좋은 곳에 마련되었는데 가지마라 할 수도 없고 그녀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이제 이 남자에 속했고 이 남자 없이는 세상 살아갈 맛도 없이 되었는데 그리고 여자로서 느끼는 커다란 기쁨도 이 남자에게서 받았는데 이 남자를 옆에 두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두이는 슬슬 자기 곁에서 멀어지려는 느낌을 받았으니 어찌 섭섭하고 괴롭지 않으리.
눈물이 흘러내릴 듯 글썽글썽한 눈으로 쳐다보는 영순 에게 두이가 정답게 말한다.
[그곳은 이곳보다 따뜻해, 그리고 당신이 종 종 와서 청소도 해주면 좋으련만.....
물론 다른 여자가 있어 그럴 필요도 없지만 당신이 오면 내가 편할 텐데..........]
두이는 영 순을 달랜다.
어찌 보면 영 순도 피해자이다.
자기로 인해 사람으로서는 못할 짓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오직 자기하나만을 위하여 모든 걸 내팽개친 여자가 아니던가,
천륜을 어기게 한 것도 사실 자기이고 모든 범죄는 자기로 인해 만들어진 일이 아닌가....
지금 그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자기에게 매달리려는 영 순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두이는 정답게 웃어준다.
[그럼요, 내가 할거 에요. 당신의 모든 것을 내가 보살필 거 에요.
제발. 내게서 멀어지려고만 말아주세요.]
영 순은 급히 대답한다.
그리고 희망에 젖은 감동의 눈으로 뒤바뀐다.
[내가 왜. 당신처럼 나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모든 걸 나에게 다 주려하는 당신을 내가 왜 버려 죽어도 그런 일은 없어.
다만 내일에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여자문제라도.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내게서 떠나기 전에는 내가 당신을 놓지 않겠어.]
두이는 그랬다.
진정 그런 마음이었다.
말은 무뚝뚝하고 표현은 없었지만 항상 영 순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있었다.
두이는 비록 어머니 같은 나이지만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다.
[아....고마워요.. 절대로. 당신의 속을 섞이지 않겠어요........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아할 거 에요. 아..............]
영 순은 이 순간 감동에 넘쳐있었다.
자기가 이때까지 두이에게 말을 낮추어 불렀다가 이 순간 말투가 경어로 바뀐 줄도 모르고 그저 두이의 마음 주는 것에 감동하였고 두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나 수모도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허허. 이것 참. 해장술이나 먹으려 했더니만.....이 무슨 순애보인가...허 허 참....]
[그러네요, 호호,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금방 차려올 테니..................]
그녀는 금방 입에 화려한 미소를 피우고 만다.
그리고 급히 일어나 주방 쪽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신이 났다.
두이가 행여 나이가 많은 자기를 내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지금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싫지도 않고 앞으로도 모든 게 나하기 마련이라는 걸 느꼈기에 당장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후후후..................]
두이는 영 순의 모습을 보며 또 빙긋이 웃는다.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망아지처럼 좋아 날뛰는 것 같아서이다.
.....................................
31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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