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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님 달님 이야기 - 9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48 846회 0건
9. 갈등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학교 생활과 과외지도에 열중하며 영미와의 접촉하는 시간을 줄였다.
영미도 나에게 도발하지 않고 평범한 오누이 사이가 된 것처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즈음 영미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듯 했다.
전 보다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고 늦게 오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영미야! 너 요즘 남자친구 생겼나 보다?”
“어. 조금…… 사귀기 시작한 남자 있어.”
“그럼 나한테도 소개시켜 주지?”
“조금 더 지켜 보고……”

나는 영미가 사귀는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몇 주 동안 영미를 채근해서 결국 만날 약속을 잡게 되었다.


생맥주 집에서 만난 강민교는 나와 비슷한 건장한 체구였다. 키는 180㎝ 정도에 몸무게는 나보다 더 나갈 것 같은 약간 비만형이었고 얼굴은 귀티가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는데 그는 신형 국산 차를 타고 와서 기선을 잡는 듯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학교는 1년이 빨랐다. 군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중에 느낀 것은 비교적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고 특히 여자들에게는 킹카로 불릴 만한 남자라는 것이었다. 외모나 매너에서도 흠 잡을 데가 없었으며 학교도 국내에서 2~3위를 다투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집안의 부에 대해서도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바람기가 다분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나만의 우려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1시간 정도의 대면을 갖고 둘만의 시간을 주며 헤어졌다.
더 같이 시간을 보내자는 것을 사양하며 돌아오는 길에 뭔지 모를 불만이 내 가슴에 가득 쌓여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질투라는 것을 알았다.
객관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강민교가 영미에 비해서 절대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지만 나에게는 영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그의 내제된 바람기를 들추어내며 그것이 그의 엄청난 흠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애틋한 감정으로 느끼고 있는 영미의 가치는 강민교의 조건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생각되었고 급기야는 그가 내 동생을 빼앗아가는 도둑이나 산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둑에게 내 동생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렬해지고 있었다. 나중에 그에게서 버림받는 영미를 상상하며 영미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억지 주장이 먹혀 들지 않을 거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이 가을은 깊어지고 나는 나날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오빠. 나 오빠한테 할 말이 있는데……”

가을이 깊어갈 무렵 어느 날 저녁식사 때 영미가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말없이 어서 말하라는 투로 빤히 영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사실은 오빠한테 물어볼 말이 있는데……”
“뭔데?”
“나…… 저……”

내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다그쳐 물었다.

“뭔데 그래?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해봐.”
“아냐…… 됐어. 나중에 말할게.”

나의 궁금증은 더 커졌다.
분명 자신의 신상에 관한 말일 것 같은데 내가 그 동안 겪은 영미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관련된 일이니?”
“응.”

영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안 되니?”
“그건 아닌데……”
“그럼? 민교가 같이 자자고 하니?”

내가 넘겨짚어서 유도심문을 했다.
영미가 놀란 듯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너도 그러고 싶어?”
“잘 모르겠어……”

나는 속으로 극구 말리고 싶었다.
‘거 봐라. 이제 그 자식 본성이 나오는 거다. 너를 따먹고 차버리려는 거다. 단물이 나올 때까지 그것만 쏙 빨아먹고 내 팽개쳐버리려는 거다. 절대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외쳐댔지만 내 입에서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해. 민교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 또 네가 민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 사랑이 확실한 믿음이 되었을 때는 같이 자도 되겠지……”
“……”
“민교를 사랑하니?”
“응. 조금…… 잘 모르겠어.”
“그럼 좀더 기다려 봐라.”
“그런데 그가 자꾸 자자고 요구해……”
“그런다고 잘 수는 없지…… 남자는 성적인 욕구가 좀 더 강하고 억제하기가 힘들어…… 그리고 한 번 그런 관계가 되면 예전으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한 거야. 그리고 너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거야.”
“그런데 나도 그렇게 싫지가 않아…… 그리고 그가 한 번쯤은 잠자리를 같이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영미의 말에 조금 놀라며 말했다.

“영미야! 여자는 남자하고 달라. 함부로 아무하고나 자고 그러면 안돼. 너도 그런 것은 알지 않니?”
“나는 그런 생각이 싫어! 남자들은 이 여자 저 여자 많이 자면 자랑거리고, 여자는 왜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더욱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겨우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남자는 그렇게 해 놓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여자는 큰 상처가 남는 거야.”
“나는 처녀성도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때그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충실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해.”
“임신이라도 되면……”
“그건 조심하면 되잖아.”
“영미야! 더 깊이 생각해 봐라. 나는 내 동생이 불행해지는 것이 싫다.”
“나도 지금 말한 것이 그 동안 생각만 했던 거야. 진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그래…… 너한테 그리고 민교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믿음이 생길 때까지 더 기다려봐라.”
“응. 오빠 고마워.”

나는 영미가 고맙다고 하는 말에 한편으로는 오빠로서의 자부심도 있었지만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더 컸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영미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에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걱정이 돼서 버스정류장에 나가서 기다렸지만 12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휴대폰 같은 것도 없었고 전화도 주인집을 통해서 받아야 했기 때문에 답답하고 막막한 기분만 들었다. 얼마 전에 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혹시 민교와 함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줄어드는 마음도 들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하고 더 불안한 느낌이었다.
1시 정도까지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결국 영미는 내게서 떠났구나. 결구 민교에게로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커다란 상실감이 들었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영미와 부부가 되어 오순도순 사는 상상, 사람 없는 두메산골에서 논밭 일구며 사는 상상……
어렸을 적에 소꿉놀이하던 일들을 회상하기도 하며 새벽녘까지 잠든 듯 잠이 들지 않은 듯 몽롱하면서도 의식이 있는 가수면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은 잠들기 전의 상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드물게도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을 내가 인식할 수 있었다. 꿈과 상상의 중간 정도 되는 이상한 꿈이었다.
따뜻한 양지에서 영미와 내가 엄마 아빠가 되어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엄마야!”

소꿉놀이를 하다가 할머니에게서 들은 해님 달님 이야기를 내가 영미에게 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영미도 나랑 함께 할머니에게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나의 이야기를 듣다가 놀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둘이 몰래 뒷문으로 나가서 우물 옆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어…… 호랑이가 쫓아와서 우물을 들여다보니까 그 안에 오빠와 동생이 있거든 그래서……”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나보다 한 살 많은 옆집의 성기가 살아있는 참새 새끼를 한 마리 가지고 와서 영미에게 주며 더 잡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영미와 소꿉놀이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영미가 내 이야기를 마저 듣기를 바랬지만 영미는 성기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심한 질투와 분노를 느끼며 영미에게 가지 말라고 소리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영미는 성기와 뛰어가며 뒤돌아보고 함께 나를 비웃었다.
내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쫓아갔지만 이상하게도 둘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영미야! 이리 와…… 빨리 안 올래? 돌아 와…… 빨리 와……”

‘빨리 와’ 하는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나며 현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자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꿈속의 성기의 얼굴과 현실의 민교 얼굴이 겹쳐지며 나는 꿈에서 느끼던 절망감을 현실에서도 느끼게 했다.


영미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돌아왔다.
내가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오빠. 나 피곤해. 잘래. 다음에 이야기 해.”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그 동안 몰랐던 영미와의 벽을 느끼며 서글픈 마음으로 별 수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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