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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34 1,768회 0건
내 이름은 이수현. 나이 17세. 현 고등학교 1학년이다. 170의 그리 크지 않은, 아니 오히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여자 애들보다 더 날씬한 몸매에 그리 잘나지 않은 평범한 얼굴의 여자 애들에게 인기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그런 내 모습에 불만이 있다거나 다른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4년 전 중학교 입학을 얼마 앞두고 엄마를 하늘로 보내야 했지만 그 역시도 날 방황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는 못했다.

슬펐다. 한없이 슬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보내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하루하루 준비하면 각오한 나날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랬었는지 모른다. 몸이 약해 나를 낳고서 내게 모유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고, 따뜻한 품 한번 구경시켜주지 못하고서 매일 침상 위에서 내게 한줄기 미소만을 보내주었던 엄마의 모습에서 이미 사신은 그 언저리에서 항상 맴돌며 눈치를 보고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추억이 있었다. 그렇게 침상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마였지만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과 우리 가족들의 온기가 있어 슬프지 않았다. 단지 아쉬운 건 나이답지 않게 너무 일찍 조숙해져버린 내 어린 날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래도 남들에 비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약간은, 정말 약간일망정 조숙해져버린 나 자신이 조금은 씁쓰레할 따름이다.

아버지의 재혼.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버지도 새 출발을 하셔야한다고 생각은 들지만, 결코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작다거나 소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니 그동안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에라도 아버지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한켠 쓸쓸하고 반감이 생기는 것은 내가 아직 어리다는 증거리라.

사실 아버지의 재혼은 나와 누나가 주동이 되어 주위 친지 분들, 외가식구들과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 아버지와 함께 반 강제로 강행하는 것이었다. 이제 고 3이 되는, 수험생이라고 불리며 집안에서 가장 떠받들어지는 시기가 된다면 가정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이유, 아직 어린 내가 엄마 없이 홀 아버지 밑에서만 생활한다면 사춘기인 때라 삐뚤어지기 십상이라며 갖은 핑계들, 그다지 신빙성이 있거나 타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들을 근거로 결혼을 성사시켰다.

새어머니. 37세의 중년의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2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몸매뿐 아니라 얼굴 역시도 그 이상으로 볼 수가 없다. 최현희라 불리는 그녀는 아버지가 첫사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이미 아버지 곁에는 엄마가 있었고 얼마 후 아버지는 결혼을 하셨다. 그녀가 아버지의 후배로 등록한 것은 그 이후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줄곧 혼자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미련한 사랑, 새엄마의 미련한 사랑, 20 여년이 흘러서야 이루어지는가.

이민욱. 그는 여전했다. 세월조차 그를 비껴갔는지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희옥 선배를 사랑했고 여전히 난 그에게 있어서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가 함께 살자했을 때 이제는 흘러간 세월이라 생각했는데 왜 그리 덥썩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그를 아직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미련이라도 남은 걸까. 지금 생각해봐도 우습지도 않는다.

"계속 혼자 지낼꺼니?"
"..그건 왜 물어요?"
"..."
"모르겠어요. 어느새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나봐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 잖아요?"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지 않을래? 형식이야 어떻든, 네게 봄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같이 지냈으면 좋겠구나.."

항상 그랬다. 이리저리 회피하고 방황했다. 희옥 이라는 존재가 있어 잠시 그를 붙들어 두었지만 그녀가 떠난 지금 그에게 다시 방황은 시작되나 보다. 그녀가 남긴 끈들 때문인가. 그가 그렇듯 나 역시 그의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 그의 자식들과 친지들에 의해 우리는 엮어져 있었다.

그의 자식, 이제는 나의 아들, 딸이기도 한 수현과 세희는 밝고 착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도 구김 한 점 없이 오히려 혼자된 아빠를 걱정하고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가끔씩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남들 배아파 낳아 힘겹게 기른 자식을 난 힘 한점 들이지 않고 너무도 좋은 자식을 둘씩이나 가지게 되었음에 이 행복이 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지금껏 혼자서 방황하던 내게 신이 축복을 내려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하였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7시. 고3 수험생인 난 매일 이 시간이면 집을 나선다. 8시부터 시작되는 보충수업을 듣기엔 그리 부족하지 않은 시각이지만 그래도 좀 일찍 가서 차분하게 수업준비를 하고 싶어 여유있게 집에서 나선다. 새엄마. 참 좋은 사람이다. 예쁘고 세련되고 기품 있으면서 또 한편으론 20대 처녀같다. 새엄마와 자신이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우리가 자매인줄로만 안다. 몸매 역시 처녀 같은 것이 누구도 그녀를 유부녀로, 30대 중반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하긴 지금껏 독신으로 지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빠도 안정을 찾고 웃음을 찾았으면 좋겠다. 무언가 공허한 듯 허공만 쳐다보며 엄마의 영상만 담배연기로 그려내는 아빠의 모습이 지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수현이와 함께 아빠와 재혼을 성사시킨 건. 새엄마가 들어오면 우리가 싫어할까 봐, 수험생인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이라도 끼칠까 저어되어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바라만 보던 외가 식구들과 친가 어른들도 나와 수현이가 앞장서자 미리 생각이라도 해 두신 듯 새엄마를 소개시켜주셨다.

집안끼리도 친하고 아빠와의 과거, 그리고 지금껏 독신으로 지내온 것들이 가슴에 걸렸었나보다. 어찌됐건 그 끝은 그나마 해피하다며 다들 만족해했다. 나나 세현이도 충분히 만족한다. 거부감도 들지 않고 돌아가신 엄마에게서 못 받은 애정을 대신 받는 기분이랄까. 비록 함께 지낸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럽다. 때론 친구같고 때론 언니같고 또 때론 엄마같은, 정말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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