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어떻게 선배의 집을 나왔는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차가운 선배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젠…"
끝이다.
선배의 따뜻한 미소, 선배의 따뜻한 손, 그것들을 느낄 기회는 이제 없다.
끝났다.
"…아쉬울 건 없잖아…"
쓸데없는 감정에 얽매여 권태를 맞느니보다, 이대로 끝내는 것이 담담하다.
"그래. 그런 거야."
나는 모로 돌아누웠다. 들어왔을 때부터 켜지 않은 불이기에, 그대로 자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나의 감정은…"
…
언제나의 시간에 눈이 뜨였다.
선배와 같이 가던 시간.
"…"
나는 다시 누웠다.
"용현군! 일어나! 늦었어!"
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쿄코씨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눈이 뜨였다. 정신이 들기도 전에 시트가 홱 하고 나꿔채졌다.
"오늘도 먼저 나간 줄 알았는데…! 빨리 가!"
"…우… 지금 몇 시?"
"8시 20분 조금 넘었어!"
"…마이 갓…!"
나는 허둥지둥 일어나 의자에 걸려 있는 가방과 제복을 들고 뛰어내려갔다.
타타타타 하고 도로를 질주하는 나.
수업시간에는 착실하지 못해도, 지각이란 내 사전에 없단 말이다!
나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더 가속했다.
그리고, 전방 100미터의 학교를 향하는 직선도로에의 커브를 돌은 직후…
"…!"
가방을 양 손으로 얌전히 들고서, 자신의 집 대문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여자애.
긴 흑발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허무한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
"…말도 안되는…"
저만치의 앞에서. 마네킹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지팡이의 아가씨.
히메카와 키즈나 선배…
"설마… 지금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시간 이상을, 이렇게 바람이 불어닥치는 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설마… 하지만, 그것 말고는 도저히 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
나는 달렸다.
타타타탁 하는 뜀박질 소리조차 밟아 없애버려는 듯이, 선배의 맞은 편 인도를 질주했다.
"용현군…?"
타타타타타탁!
소리가 멀어져간다.
당연하다. 선배는 달릴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이, 그런 연출이 계속되었다.
나는 항상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시각에 나서곤 했지만, 선배는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내 시간대에,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알고 그랬다기 보다는 계속 기다려 온 것이다.
항상 일찍 와서 일직의 역할을 대신 하고, 홈룸시간까지 자는 것이 습관이며 일상이었던 나의 그 변화된 패턴에, 놀라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그도 그럴 듯이, 자신들이 항상 문을 열고 들어오면 처음으로 눈에 뜨이던 녀석이 이번엔 그 반대로, 다 모여있는 교실에 혼자 드르륵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조금은 괴롭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왜 피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어째서 내가 피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이 나올 때 까지, 나는 계속 선배한테서 도망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있다.
"…후우…"
나는 전력질주를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타타타타타…!
최대한 보폭을 넓혀서, 최대한 발끝을 세워서, 가능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달린다.
"아…!"
"용현군"하고 부르는 동안 이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에까지 가 있을까, 그것이 두려웠던지 선배는 언제부턴가 내 발 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짧게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씽 하고 선배의 앞을(물론 맞은편 인도다)지나쳤다. 저렇게 몇 번 부르다가, 내가 없어진 것을 알면 천천히 학교로 가는 것이겠지.
따닥! 따닥! 따다닥!
"뭐, 뭐하는 짓이야…!"
오늘은 달랐다.
선배가 지팡이를 빠르게 내짚어가면서, 비틀비틀, 아니 허겁지겁, 아니 둘 다 더한 모양으로 황망히 도로를 가로질러(더 정확히 말하면, 대각 앞으로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바보같이…!"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혼란스럽다.
그것도 바로 건너는 것이 아니고 갈팡질팡 대각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좌충우돌이다.
빠앙!
끼이익!
사방에서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와, 브레이크 소리에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 선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버렸다.
"젠장…!"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어찌어찌, 도로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멍하게 서 있는 선배의 왼손을 나꿔채는데 성공했다.
"…아…"
"바보같이!"
"용현군… 나는…"
"됐으니까, 빨리 나와!"
"…"
"…"
"…핫…"
퍼뜩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여전히 선배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그것도, 선배와 보조를 맞추어 이끌어 주고 있었다.
"…"
나는 선배의 손을 놓았다.
"…아."
그대로 등을 보인 채, 터벅터벅 하고 걸어간다. 그러자, 나의 발소리를 확인한 선배가 지팡이를 짚으며, 따닥거리며 따라왔다.
"저기…"
"…"
"전 이제 안 아프니까… 그 일이라면 신경쓰지 마세요…."
"…그 일은 미안해."
나는 일단 사과했다. 쌍방의 승인 하에 이루어지는 교미와는 다르게, 인간의 충동적인 발정이란 것은 일방적이 되니까. 그것에 대한 잘못은 나에게 있다.
"…괜찮아요."
선배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그 말 이후로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 탓일까, 곧 사그라져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틀려.
선배는 잘못한 게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단지…
"나는 선배를 좋아하지 않아."
따닥, 하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선배는 곧 지팡이를 놀려 부지런히 나를 따라왔다.
"…내가 싫은가요?"
"…."
어느 새 교문을 들어섰다. 늑장을 부리는 생도들이 제법 있기에, 조금은 초조함을 줄일 수 있었다. 이윽고 신발장에 들어섰을 때,
"흐윽…"
선배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왜, 하고 물을 사이도 없이,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는… 보이지 않으니까… 나 혼자 생각해서… 용현군을 좋아했는데도…"
좋아했다고? 나는 왠지 화가 났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를 해?
"나를 좋아해? 웃기는군."
"…!"
"그럼 그때 왜 나를 거부했어?."
낮지만 강한 목소리로 선배에게 내뱉았다. 기억하고 있다. 이런 짓을 한다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라는 선배의 말을.
"그때의 용현군의 느낌은… 내가 좋아하는 용현군이 아니었어요…!"
"하, 바보 소리! 내가 무슨 분신 써? 나는 언제나 나야!"
"…난 보이지 않아요! 느낌이라고 했어요. 용현군의 말, 용현군이 잡아주는 손, 모두 나에겐 하나하나 느낌으로 전해져 올 뿐이에요!"
선배가 눈물이 달린 눈으로, 내 쪽을 향해 소리친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선배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용현군이 내 손을 잡아줄 때마다… 나는 기뻤는데도…"
"…"
"나는 아파도… 용현군을 생각했는데…"
"…"
"좋아한다는건… 서로 쌓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보같은 소리. 나는 히로세와 그런 감정을 쌓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하루만에 생겼다.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왜 쌓지도 않고 도망치려고 해요? 내가 그 때 용현군을 거부해서?"
쌓아봤자 허무만을 남기고 허물어져 버린다는 걸 잘 아니까.
"좋아하지 않는다니요… 그럼 저번까진 나를 좋아해서 나랑 이야기하고, 나와 같이 걸은 건가요?"
그… 그것은….
"용현군, 단지 나를 품어보고 싶었던 거군요."
"…맞아."
"…!"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산을 갖다준 친절 역시, 결국은 그것이 목적이었지 않은가. 굳이 응답할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긍정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망설이지도 않고. 오히려 그렇게 쉽게 튀어나온 나의 말에, 내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이젠 됐어요. 내가 바보에요. 혼자 좋아한 내가 바보에요."
선배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었다.
그대로, 비틀거리면서도 정확히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이제 더 이상, 내 손 따위는 필요없다.
선배는 더 이상 집 앞에 서 있지 않았다.
나도 점차 시간을 바꾸어, 원래 갔던 그 시간대, 즉 일직이 갈만한 시간대에 집을 나섰지만, 도중 선배를 보는 일은 없었다.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이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더욱 큰 상실감을 맛보기는 싫었으니까… 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 상실감이라는 것을 느낄 계기조차, 없어져 버렸다.
선배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도 선배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같은 학교의 갑돌이와 을순이다.
처음부터, 내가 선배와 사귄다든지,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처음 목적인 "장님 여자 강간 구제"라는 명목은 이미 지켰다. 그걸로 내 임무는 끝이다.
더 이상, 서로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선배와 나의 관계는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다행이다….
며칠 후.
청소를 하고 조금 늦게 승강구로 내려오던 도중, 중정을 가로질러 가는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책을 끼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겠지…
지팡이를 따닥거리며, 비틀비틀 가는 선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
따닥거림이 멈추었다.
선배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있는 승강구를 돌아보았다.
"…들릴 리가 없어."
분명히 그랬건만, 나는 어느 새 계단 뒤로 숨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배가 나를 발견할 이유 따위는 없었는데도.
"…"
그리고 몇 초 후, 따닥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곧 멀어져 갔다.
"용현군, 왜 그래?"
"…아?"
"딴 생각 하고 있지?"
나의 자지를 잡고 아래 위로 흔들고 있던 쿄코씨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뇨…."
"그런데 이건 왜 이렇지?"
나의 자지는, 발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딱딱해지지도 않은 상태. 그러니까 어딘가 축 처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면 될려나…?"
쿄코씨는 몸을 들더니, 자신의 커다란 유방의 골 사이에 나의 자지를 넣고, 자신의 손으로 유방을 조인다. 자지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은 확실히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쿄코씨는 곧, 그 유방을 아래 위로 흔들기 시작했다. 유방과 나의 자지가 마찰될 때마다, 쾌감이 왔다.
"…웃!"
나는 그대로 사정해 버렸다. 거의 한 달동안, 참고 있었던 대량의 정액이 그대로 기세좋게 쿄코씨의 얼굴에 퍼부어졌다.
"후후… 오늘은 많네…."
나는 그대로,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정액을 손으로 걷어내는 쿄코씨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언제나의 나라면, 이 다음에도 발기하여, 쿄코씨에게 삽입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불현 듯, 저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던 것을, 나는 매일매일 해 왔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다만 씨를 뿌리는 행위를 나는 당연하게 해 왔다는 것을.
"쿄코씨와 나의 관계는…"
건강한 수컷과, 욕구 왕성한 암컷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태도 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는 짓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것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렇담 선배는…"
나의 몸을 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날 밤의 히로세도 마찬가지다.
"용현군의 손에서 마음이 느껴져요…"
"나의…?"
"…용현군!"
"아, 네?"
갑작스런 부름에 현실로 돌아온 내 앞에는, 쿄코씨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네…. 어디 아파?"
"…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니, 이미 원 상태로 돌아가버려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쉬는 게 낫겠어. 빨리 자."
쿄코씨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저 때의 눈치 빠르고 남을 배려해 주는 쿄코씨는 정말로 존경할만 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엎어져 자 버렸다.
어떻게 선배의 집을 나왔는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차가운 선배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젠…"
끝이다.
선배의 따뜻한 미소, 선배의 따뜻한 손, 그것들을 느낄 기회는 이제 없다.
끝났다.
"…아쉬울 건 없잖아…"
쓸데없는 감정에 얽매여 권태를 맞느니보다, 이대로 끝내는 것이 담담하다.
"그래. 그런 거야."
나는 모로 돌아누웠다. 들어왔을 때부터 켜지 않은 불이기에, 그대로 자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나의 감정은…"
…
언제나의 시간에 눈이 뜨였다.
선배와 같이 가던 시간.
"…"
나는 다시 누웠다.
"용현군! 일어나! 늦었어!"
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쿄코씨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눈이 뜨였다. 정신이 들기도 전에 시트가 홱 하고 나꿔채졌다.
"오늘도 먼저 나간 줄 알았는데…! 빨리 가!"
"…우… 지금 몇 시?"
"8시 20분 조금 넘었어!"
"…마이 갓…!"
나는 허둥지둥 일어나 의자에 걸려 있는 가방과 제복을 들고 뛰어내려갔다.
타타타타 하고 도로를 질주하는 나.
수업시간에는 착실하지 못해도, 지각이란 내 사전에 없단 말이다!
나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더 가속했다.
그리고, 전방 100미터의 학교를 향하는 직선도로에의 커브를 돌은 직후…
"…!"
가방을 양 손으로 얌전히 들고서, 자신의 집 대문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여자애.
긴 흑발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허무한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
"…말도 안되는…"
저만치의 앞에서. 마네킹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지팡이의 아가씨.
히메카와 키즈나 선배…
"설마… 지금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시간 이상을, 이렇게 바람이 불어닥치는 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설마… 하지만, 그것 말고는 도저히 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
나는 달렸다.
타타타탁 하는 뜀박질 소리조차 밟아 없애버려는 듯이, 선배의 맞은 편 인도를 질주했다.
"용현군…?"
타타타타타탁!
소리가 멀어져간다.
당연하다. 선배는 달릴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이, 그런 연출이 계속되었다.
나는 항상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시각에 나서곤 했지만, 선배는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내 시간대에,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알고 그랬다기 보다는 계속 기다려 온 것이다.
항상 일찍 와서 일직의 역할을 대신 하고, 홈룸시간까지 자는 것이 습관이며 일상이었던 나의 그 변화된 패턴에, 놀라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그도 그럴 듯이, 자신들이 항상 문을 열고 들어오면 처음으로 눈에 뜨이던 녀석이 이번엔 그 반대로, 다 모여있는 교실에 혼자 드르륵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조금은 괴롭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왜 피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어째서 내가 피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이 나올 때 까지, 나는 계속 선배한테서 도망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있다.
"…후우…"
나는 전력질주를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타타타타타…!
최대한 보폭을 넓혀서, 최대한 발끝을 세워서, 가능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달린다.
"아…!"
"용현군"하고 부르는 동안 이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에까지 가 있을까, 그것이 두려웠던지 선배는 언제부턴가 내 발 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짧게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씽 하고 선배의 앞을(물론 맞은편 인도다)지나쳤다. 저렇게 몇 번 부르다가, 내가 없어진 것을 알면 천천히 학교로 가는 것이겠지.
따닥! 따닥! 따다닥!
"뭐, 뭐하는 짓이야…!"
오늘은 달랐다.
선배가 지팡이를 빠르게 내짚어가면서, 비틀비틀, 아니 허겁지겁, 아니 둘 다 더한 모양으로 황망히 도로를 가로질러(더 정확히 말하면, 대각 앞으로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바보같이…!"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혼란스럽다.
그것도 바로 건너는 것이 아니고 갈팡질팡 대각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좌충우돌이다.
빠앙!
끼이익!
사방에서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와, 브레이크 소리에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 선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버렸다.
"젠장…!"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어찌어찌, 도로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멍하게 서 있는 선배의 왼손을 나꿔채는데 성공했다.
"…아…"
"바보같이!"
"용현군… 나는…"
"됐으니까, 빨리 나와!"
"…"
"…"
"…핫…"
퍼뜩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여전히 선배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그것도, 선배와 보조를 맞추어 이끌어 주고 있었다.
"…"
나는 선배의 손을 놓았다.
"…아."
그대로 등을 보인 채, 터벅터벅 하고 걸어간다. 그러자, 나의 발소리를 확인한 선배가 지팡이를 짚으며, 따닥거리며 따라왔다.
"저기…"
"…"
"전 이제 안 아프니까… 그 일이라면 신경쓰지 마세요…."
"…그 일은 미안해."
나는 일단 사과했다. 쌍방의 승인 하에 이루어지는 교미와는 다르게, 인간의 충동적인 발정이란 것은 일방적이 되니까. 그것에 대한 잘못은 나에게 있다.
"…괜찮아요."
선배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그 말 이후로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 탓일까, 곧 사그라져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틀려.
선배는 잘못한 게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단지…
"나는 선배를 좋아하지 않아."
따닥, 하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선배는 곧 지팡이를 놀려 부지런히 나를 따라왔다.
"…내가 싫은가요?"
"…."
어느 새 교문을 들어섰다. 늑장을 부리는 생도들이 제법 있기에, 조금은 초조함을 줄일 수 있었다. 이윽고 신발장에 들어섰을 때,
"흐윽…"
선배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왜, 하고 물을 사이도 없이,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는… 보이지 않으니까… 나 혼자 생각해서… 용현군을 좋아했는데도…"
좋아했다고? 나는 왠지 화가 났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를 해?
"나를 좋아해? 웃기는군."
"…!"
"그럼 그때 왜 나를 거부했어?."
낮지만 강한 목소리로 선배에게 내뱉았다. 기억하고 있다. 이런 짓을 한다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라는 선배의 말을.
"그때의 용현군의 느낌은… 내가 좋아하는 용현군이 아니었어요…!"
"하, 바보 소리! 내가 무슨 분신 써? 나는 언제나 나야!"
"…난 보이지 않아요! 느낌이라고 했어요. 용현군의 말, 용현군이 잡아주는 손, 모두 나에겐 하나하나 느낌으로 전해져 올 뿐이에요!"
선배가 눈물이 달린 눈으로, 내 쪽을 향해 소리친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선배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용현군이 내 손을 잡아줄 때마다… 나는 기뻤는데도…"
"…"
"나는 아파도… 용현군을 생각했는데…"
"…"
"좋아한다는건… 서로 쌓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보같은 소리. 나는 히로세와 그런 감정을 쌓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하루만에 생겼다.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왜 쌓지도 않고 도망치려고 해요? 내가 그 때 용현군을 거부해서?"
쌓아봤자 허무만을 남기고 허물어져 버린다는 걸 잘 아니까.
"좋아하지 않는다니요… 그럼 저번까진 나를 좋아해서 나랑 이야기하고, 나와 같이 걸은 건가요?"
그… 그것은….
"용현군, 단지 나를 품어보고 싶었던 거군요."
"…맞아."
"…!"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산을 갖다준 친절 역시, 결국은 그것이 목적이었지 않은가. 굳이 응답할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긍정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망설이지도 않고. 오히려 그렇게 쉽게 튀어나온 나의 말에, 내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이젠 됐어요. 내가 바보에요. 혼자 좋아한 내가 바보에요."
선배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었다.
그대로, 비틀거리면서도 정확히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이제 더 이상, 내 손 따위는 필요없다.
선배는 더 이상 집 앞에 서 있지 않았다.
나도 점차 시간을 바꾸어, 원래 갔던 그 시간대, 즉 일직이 갈만한 시간대에 집을 나섰지만, 도중 선배를 보는 일은 없었다.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이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더욱 큰 상실감을 맛보기는 싫었으니까… 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 상실감이라는 것을 느낄 계기조차, 없어져 버렸다.
선배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도 선배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같은 학교의 갑돌이와 을순이다.
처음부터, 내가 선배와 사귄다든지,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처음 목적인 "장님 여자 강간 구제"라는 명목은 이미 지켰다. 그걸로 내 임무는 끝이다.
더 이상, 서로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선배와 나의 관계는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다행이다….
며칠 후.
청소를 하고 조금 늦게 승강구로 내려오던 도중, 중정을 가로질러 가는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책을 끼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겠지…
지팡이를 따닥거리며, 비틀비틀 가는 선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
따닥거림이 멈추었다.
선배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있는 승강구를 돌아보았다.
"…들릴 리가 없어."
분명히 그랬건만, 나는 어느 새 계단 뒤로 숨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배가 나를 발견할 이유 따위는 없었는데도.
"…"
그리고 몇 초 후, 따닥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곧 멀어져 갔다.
"용현군, 왜 그래?"
"…아?"
"딴 생각 하고 있지?"
나의 자지를 잡고 아래 위로 흔들고 있던 쿄코씨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뇨…."
"그런데 이건 왜 이렇지?"
나의 자지는, 발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딱딱해지지도 않은 상태. 그러니까 어딘가 축 처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면 될려나…?"
쿄코씨는 몸을 들더니, 자신의 커다란 유방의 골 사이에 나의 자지를 넣고, 자신의 손으로 유방을 조인다. 자지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은 확실히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쿄코씨는 곧, 그 유방을 아래 위로 흔들기 시작했다. 유방과 나의 자지가 마찰될 때마다, 쾌감이 왔다.
"…웃!"
나는 그대로 사정해 버렸다. 거의 한 달동안, 참고 있었던 대량의 정액이 그대로 기세좋게 쿄코씨의 얼굴에 퍼부어졌다.
"후후… 오늘은 많네…."
나는 그대로,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정액을 손으로 걷어내는 쿄코씨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언제나의 나라면, 이 다음에도 발기하여, 쿄코씨에게 삽입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불현 듯, 저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던 것을, 나는 매일매일 해 왔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다만 씨를 뿌리는 행위를 나는 당연하게 해 왔다는 것을.
"쿄코씨와 나의 관계는…"
건강한 수컷과, 욕구 왕성한 암컷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태도 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는 짓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것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렇담 선배는…"
나의 몸을 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날 밤의 히로세도 마찬가지다.
"용현군의 손에서 마음이 느껴져요…"
"나의…?"
"…용현군!"
"아, 네?"
갑작스런 부름에 현실로 돌아온 내 앞에는, 쿄코씨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네…. 어디 아파?"
"…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니, 이미 원 상태로 돌아가버려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쉬는 게 낫겠어. 빨리 자."
쿄코씨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저 때의 눈치 빠르고 남을 배려해 주는 쿄코씨는 정말로 존경할만 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엎어져 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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