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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4:18 2,358회 0건
크로테스크 8

참으로 말 많은 여자다.

방금도 어떤 청취자가 이메일로 보낸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읽어주더니 자신의 감상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제넘게 자신의 충고를 덧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갈현동에 사시는 00님...지금은 헤어진 그 여자 때문에 많이 가슴이 아프겠지만 힘을 내세요 지금의 이별이 감당할 수 없이 큰 아픔이지만 00님의 멋진 앞날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세요..제가 힘이 되도록 도와드릴께요 님이 신청하신 리타 쿨리지의 "we are all alone"을 들려드릴께요]


렉스턴에 달려 있는 그다지 좋지 않은 스피커를 통해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너가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냐? 당신이 해결사요?

디제이면 디제이 답게 음악이나 곱게 틀어줄것이지 먼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헤어진 여자한테 복수하겠다면 그 여자 디제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게 있다면 나한테 말을 해야지...

내가 그거 전문인데 말이야...

천만원이 없나?

잘하면 복수도 하고 돈도 벌수 있을텐데...


담배를 한개피 물고 운전석에 달려 있는 차창문을 반쯤 내리고 쏟아지는 비를 바라 보았다.

[outside rain begins and it may never end

so cry no more
.......

close the window calm the light
and it wiil be alright
........

we are al alone, we are all alone]


누군가 똑똑하고 차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내 코에서 막 쏟아지는 희뿌연 담배 연기와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핼쑥한 얼굴로 하얀 우산을 든채 서 있는 미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간주가 시작될 무렵에 미영이가 조수석에 앉아서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비벼 끄면서 입을 열었다.

"점심은 먹었니?"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아뇨..배고프지 않아요...그런데 우리 동네까지 웬일이세요....전 이제 크로테스로 출근하지 않는데"

"이 동네가 전부 니꺼냐?...지나가다가 너 생각이 나서 전화한거 뿐이야"

"거짓말....사장님은..절대로 계획없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에요...일부러 나 만나려고 오신거죠?"

"그렇다면 너가 어쩔거냐....사실 이거 돌려주려고 왔다.."

난 주머니에서 하얀색 종이 봉투를 꺼냈다. 그녀가 봉투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거 돌려주실려고 왔어요?....돌려주실 필요 없어요...어짜피 이건 사장님 돈이니 돌아가야 할 곳은 사장님 주머니에요"

"퇴직금이라고 줬던거야...청수가 그러던데 죽어도 이건 못받겠다고 그랬다며?"

"전부 안받은건 아니에요...그 돈에서 그만둘때까지 일했던것 만큼은 정확히 계산해서 뺐어요...나머지를 돌려드린거에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살펴보았다. 볼살이 토실해서 귀여운 애 였는데 지금은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감행중인 여자의 얼굴 같았다. 내 시선을 피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 노래 제목 뭐에요...?"

스피커에서 이제 막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면서 미영이가 물었다.

"나도 몰라..들었는데 제목을 잊어버렸어...어떤 얼간이가 신청한 노래야..."

음악이 끝날때까지 그렇게 우두커니 듣던 그녀가 다시 중얼거렸다.

"가사가 무척 가슴아프네요...창문을 닫고 불을 끄세요..방해할 필요도 없어요.. 괜찮을 거에요 ..우린 모두 외로운 사람들...아무렇지 않은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그녀가 혼잣말 처럼 멍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꼭 내 심정을 말하는 거 같네요..나도 매일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어두운데 혼자 웅크리고 그렇게 지내요...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할 수 없어요...."

"영어 잘하네...그게 그렇게 듣고 바로 해석이 되니 넌?"

그녀가 다시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동을 걸어서 쉬고 있던 렉스턴을 깨웠다.

불광동 터미널을 빠져나와서 일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렉스턴을 몰고 갈때까지도 미영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어디 가는거에요?...엄마 한테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하고 왔어요..."

그녀가 자기 동네와 멀어지고 있는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에게 말했다.

"널 납치 하는거야...오늘 집에는 다 들어갔다고 생각해"

그녀는 나의 농담에도 이렇다 저렇다 반응이 없었다.

사십분 정도를 달려서 일산 호수공원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비오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앞을 가로막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비 내리는 호수가 잘 보이는 곳에 렉스턴을 주차시키고 다시 담배를 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오다가 생각해 보니 너 영문과라 그랬지?"

그녀가 고개를 까닥했다.

"어쩐지 팝송 한번 듣고 바로 해석하는 폼이 심상치 않더라니...내년에 졸업반이지?"

"네..."

"언제 복학할거니?"

"올해까지만 사장님 가게에서 일하고 내년봄에 복학할 생각이었어요...지금은 그만뒀지만요..."

"등록금은 많이 모았니?"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내가 주는 돈은 안받아?....그 정도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될줄 알았는데..혹시 모자라서 그러니?.."

"아뇨...너무 많던걸요...사장님 주신 돈은 제가 졸업하고 다시 일년은 더 다녀도 될 정도였어요.."

"그럼 잘 楹?..다시 줄테니까 받아라"

"제가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사장님이 이상하신 거에요...아르바이트 그만뒀다고 아무도 그렇게 많이 주진 않아요"

"너무 많아서 못받는게 아니겠지...내가 동정심으로 주는거라 생각했으니 그랬던건 아닐까?"

내 말에 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조수석에 있는 창문으로 돌려버렸다.

"받기 싫으면 받지 마라...점심도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문을 닫고 웅크린채 그렇게 곰처럼 지내렴...봄은 아직도 멀었으니...꽤 오랫동안 동면할 수 있을거야...너가 없어도 크로테스는 잘 굴러간다. 너보다 더 유능한 카운터를 구했으니까 말이야...너보고 다시 나오라는 뜻도 아니야...그리고 막말로 너하고 나는 업주와 종업원 관계 밖에 더 되겠어?...우린 다시 보는 일도 없을거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너랑 나랑은 모르는 사람일거야...너가 길을 걷다가 임자 없는 돈을 줍는다면 주머니에 넣지 않겠니? 이 돈도 그런거라 생각하고 받아라...난 길게 여러번 말하는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또 너가 거절하면 그땐 너에게 주지 않을거야"

"사장님은 아무에게나 그렇게 돈을 덥썩 주시나요? 사장님이 그렇게 돈이 많으세요?"

그녀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 몰랐냐?...난 돈이 덤비는 사람이야...돈을 주체 못하는 내가 아무에게나 돈을 줬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게 되나? 모든건 내 마음이야"

"그만두죠...저 집에 갈래요..불광동으로 다시 데려다 주세요"

그녀가 표나게 화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내가 말했다.

"난 절대로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도 않는다. 가게에서 손님들한테 내가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걸 너도 몇번 봤을거야...안주가 맛이 없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나 술이 늦게 나왔다고 투정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난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난 절대로 미안해 하지 않아...안주가 맛이 없으면 다른데 가면 될 것이고 술이 늦게 나오면 천천히 쳐먹으면 될거 아니냐? 누가 우리 가게에 와서 술 쳐먹으라고 그랬나? 그 자들처럼 너가 지금처럼 나한테 화날 이유는 전혀 없어...이 돈으로 학교 다니기 싫으면 그만이야 지금처럼 화난얼굴을 할필요는 없어"

"알았어요...내가 화날 이유야 없죠..하지만 이건 말할께요...사장님의 그 잘난 인생관은 사장님의 것일 뿐이에요..사장님의 가치관이 있다면 나도 있는거죠...미안하단 말을 안하신다니 저도 듣고 싶진 않네요 그만가죠"

"내가 이돈을 어떻게 쓰더라도 넌 상관할 이유가 없어 알겠니?"

"그럼요...어련하시겠어요? 길에 뿌리시던 아님 저 호수가에 던지시든 상관하지 않겠어요..."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화를 꾹꾹 참으면서 치욕스러움을 감내하느라 애를 쓰는 미영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까 꺼낸 흰봉투를 다시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그녀가 매의 눈을 하고 날 노려보면서 외쳤다.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이 돈은 받지 않겠다구요...그렇게 돈 쓸데가 없어서 쩔쩔 매시면 자선단체에 기부하시는게 어떨까요?"

난 다시 빙그레 웃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건 돈이 아니야...그 안에 든게 돈인지 아닌지 어떻게 너가 안다고 그런 소릴 하니?"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이건 뭐죠? 그때 그 봉투와 같은데.."

"그렇게 궁금하면 너가 확인해 보면 될거 아니니?"

그녀가 잠시 주저하다가 봉투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꺼냈다. 그녀가 그 종이를 읽어보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에요...영어로 쓰여진건 영수증 같고 이건....항공기 티켓같은데요?"

"너 영문과잖아 임마...아까 팝송은 잘도 알아들으면서 그 정도도 해석 못하니?"

"농담하지 마세요..이게 뭐에요?"

담배를 다시 갑에서 꺼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너가 다시 거절할거 같아서 아예 딴걸로 바꿔왔다....영수증은 시드니에 있는 랭귀지스쿨 반년치 등록금이고 이 항공권은 일주일 후 시드니로 출발하는 콴타스(Quantas)항공 좌석표다...물론 왕복표야,...그 항공권에는 내것도 들어있으니 너가 잘 간수했다가 일주일 후에 영종도에서 만나자"

그녀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첨에 너에게 준 돈보다 작게 들었으니 그렇게 인상쓸거 없어...그리고 공짜도 아냐 사실은 내가 시드니에 갈 일이 생겼는데 난 영어를 잘 모르잖아...가 있는 동안 너가 통역을 해줘..."

그녀가 더듬거리면서 말을 했다.

"사장님...어떻게 아무말도 안하고 이렇게....전 유학 갈 마음이 없어요"

"생각보다 비싸서 비행기 삯이랑 학원비를 빼면 별로 남는것도 없어....반년동안은 너가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해야 할거야...쉽지는 않겠지만 바닷바람이나 쐬면서 놀다 와라"

그녀가 티켓과 영수증을 손에 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게 한눈에도 보였지만 난 아예 미영이가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영수증은 이미 교환가치가 없는 물건이야...이 티켓이야 환불하면 해지 수수료만 좀 물고 돈으로 바꿀수 있겠지만 어쨌든 너가 이걸 받지 않겠다면 난 정말로 길에다가 돈을 버리는 셈이고 아마 자선단체도 이 영수증은 받지 않을걸?...자 선택은 너가 해라...이걸 버리든 말든 알아서 하렴"

그녀가 두장의 종이를 양손에 꼬옥 쥐고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말많은 여자 디제이 방송이 드디어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거에요?...제가 ..제가 그런일을 당했기 때문에 불쌍해서 그런가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떨리면서 울음이 섞여 나왔다.

"이거 참 오늘따라 나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군...난 아무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착각은 하지마 ..난 또한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까...따라서 너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뿐이야"

"그래요...알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렉스턴을 깨워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뒤로 빼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일주일 뒤면 너도 서양으로 가야 할텐데...그 새끼들 입맛에 너도 길을 들여놔야 하지 않겠어?....비싼건 못사주고 저기 싸구려 양식집이 있어 거기서 점심이나 먹자"

"네에..사장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했다.

"테리우스"라는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유럽풍의 2층짜리 식당앞에 렉스턴을 주차시키는데 그때까지 묵묵히 앉아있던 미영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왜 시드니에 가시는 거에요?"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다시 렉스턴을 잠재우면서 내가 말했다.

"완전히 과거를 지우기 위해서...."




"테리우스" 에서 나와 미영이가 그라탕과 칠리소스가 곁들여진 레드포크를 늦은 점심으로 먹고 있을때
성민지는 한남동에 있는 임성제의 집을 나와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쏟아지는 여름 장마비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으며서 자신의 아파트를 향해 걷고 있었다.

우산을 임성제의 집에 두고 온것이 뒤늦게서야 생각이 났지만 그녀는 새롭게 우산을 사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비맞은 생쥐처럼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임성제가 훔쳐간 자신의 입술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면서 임성제의 모습과 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일주일 안으로 당신을 포르노에 출연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타날꺼야)

포르노라니....안방 서랍에 있는 그런 포르노?

남녀가 벌거벗고 실제 성행위를 한다는 영화...

대학교 2학년때 같은 과 여자애가 구해와서 첨으로 포르노의 실체를 알았을때 성민지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성행위를 담은 비디오가 있단 말을 듣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세상에는 정말로 그런게 있었다.

결혼전에 남편과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 훈이를 놓은 이후에 성민지는 포르노의 존재가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가끔씩 보는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그런 내용은 역겹기만 했었다.

한번은 포르노에 나온 외국 남자의 물건이 너무 길어서 남편에게 정말로 사람이 저렇게 길수 있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태연히 웃으면서 저건 다 조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의 귀두 아래 부분에 있는 힘줄을 빼면 성기가 길어지게 되고 거기에다 컴퓨터 그래픽을 첨가하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여진다고 그랬다.

다만 길이는 길어지더라도 힘줄을 제거했기 때문에 단단하지는 않다고 부연설명까지 해주었다

성민지가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물었을때 임성택은 포르노란 것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끔 한다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을때도 성민지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제로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이 잘도 구해오는 포르노를 보면 남자들의 성기는 한결같이 컸고 여자들의 가슴은 민망할 정도로 컸었다.

그런 여자들의 가슴을 볼때마다 성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과 비교해 보았고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그 여자들의 가슴크기가 징그럽기도 한편으로는 샘이 나기도 했었다.

성민지는 자신도 그렇지만 길이가 큰 남자의 물건을 마냥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남자들은 그래도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할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민지는 저런 비디오를 찍는 남자와 여자들은 정상인이 아닐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남편과 섹스할때도 가끔씩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인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하고 다른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성민지의 상식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저들은 섹스에 광적일 정도로 탐닉하는 인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일거라고 성민지는 늘 생각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섹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성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사랑은 커녕 징그럽게 느껴졌던 외국인과 정사를 치루었다. 비록 그것이 강간에 가까운 것이었지만...중요한것은 그녀는 그 과정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부정을 해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어제는 그 일을 떠올리면서 미친여자처럼 카페 화장실에서 난생처음 자위란것도 한 자신이었다.

자위가 끝나고 밀려드는 허무함과 수치스러움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아니면...내가..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색녀란 말인가?)


그녀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지금 어제의 그 행위를 탓할때가 아니었다.

임성제는 자신을 상대로 포르노를 찍으려는 사람이 1주일안에 나타날거라고 말했었다.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몰래 카메라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뉴스에서 들은적이 있는 그녀였지만 그건 포르노가 아니었다.

마음이 나쁜 사람들이 연인들의 정사를 몰래 찍어서 퍼뜨린 것일 뿐이었다. 도대체 미친 여자가 아니고서야 그런 영화를 찍자는데 네 그럴께요 라고 대답을 한단 말인가...

성민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파트에 들어온 뒤에야 성민지는 자신이 비를 쫄닥 맞고 왔단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으스스 추워왔다.

훈이는 자기 방에서 새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성민지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샤워기에 몸을 내 맡긴채 성민지는 감기가 걸려서 내일 출근을 못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들었거나..시동생이 막말을 한 것일꺼야...그런일은 있을수가 없어,,,하지만 정말로 그 말이 사실이라면..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말거야...)

그렇게 말을 하자 마음이 좀 가벼워 졌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극장에서 날 범한 그 흑인이랑 관련된 일일까?....혹시 그때 누군가가 그 장면을 찍었던 것은 아닐까?...그래서 그걸 미끼로 날 협박하려는 것이라면...)

성민지는 다시 걱정이 되어 견딜수가 없었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때의 광경을 다시 떠올렸다.

극장에는 자신과 그 흑인 그리고 뒤에 있던 한 남자 이렇게 셋뿐이었다.

더 이상 들어온 사람은 없었고 그 남자는 잠을 자고 있었다.그리고 그 흑인이 옆자리로 슬그머니 다가왔고 자신의 입을 가리고...그리고....

몸에 칠해진 비누거품이 샤워기의 물에 녹아서 바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렸을까...짧은 시간이었어 길어야 15분?....혹시 누군가가 숨어서 그 장면을 찍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가 다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느닷없는 상황이어서 주변에 다른 사람이 나타냈더라도 자신이 눈치를 채기는 힘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 없는 이야기야...어두운 그 곳에서 더구나 극장에서 아무리 대범하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할리가 없어...맞아 그럴리가 없어...그런데 그 팬티는?...화장실에 누군가 갖다놓은 그 팬티는 뭘까?)


(정확한 내 사이즈고 내가 즐겨입는 브랜드였어...마치 내가 흑인에게 팬티를 빼앗긴것을 알고 갖다놓은 듯한 그 건 뭐란 말인가?)

다시 그녀의 심리가 불안한 쪽으로 기우뚱 거리기 시작했다. 우연이 아닌거 같았다. 그녀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욕실을 나와서 몸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날 노리는 사람들이었을까? 왜? 왜 날 ? 혹시 시동생이?...그가 과거의 감정으로 그랬던 것일까? 시동생이라면 내가 입는 속옷 사이즈와 브랜드를 알지도 몰라...아니야...사이즈라면 몰라도 그 브랜드는 최근에 구입하는 것들인데..시동생이 그것까지 알턱이 없어..그런데 시동생은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고 내게 말을 해주었을까? 정말로 그와 관계된 일일까? 그렇다면 왜 미리 내게 말을 해주는 것일까? 포르노를 찍겠다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생각이 너무 많아지자 성민지는 다시 미미한 편두통을 느꼈다.

주방의 가스렌지에 빨간색 꼬마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올려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뽀글뽀글 주전자에서 김이나고 꼭지에 달린 방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면서 물이 다 끓었다는 신호를 보낼때까지 그녀는 거실에 앉아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마냥 턱을 손으로 괴고 앉아 있었다.

늘 하던대로 설탕 한스푼 프림 한스푼으로 커피를 만들었고 김이 나는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거실 탁자쪽으로 가져왔다.


(비록 오늘 시동생이 그런 행동을 보였지만...그는 나에 대한 집착을 끊겠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인거야...한때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였어..비록 그의 편집증 증세 때문에 내가 그의 곁을 떠났지만 이정도 선에서 그가 내게서 맘을 돌린다면 오늘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닐수도 있어....난 시동생과 키스를 한게 아니라 옛 연인과 만난거였어...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요즘 안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구나...훈이 아빠는 빚을 지고...난 ..난 그런 일을 당하게 되구...시동생은 내게 그런 못된 짓을 하고...하지만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구 그랬어...살다보면 안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구 어떤것은 피할수도 없는거야... 영원히 안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을거야...빚은 시댁의 도움으로 갚을수 있을거구...당분간 내는 은행이자는 내가 일하는 것으로 충분할거야...시동생 일은 오늘로서 더 심각해지지 않을거고...그때 그 끔찍한 일은...아무도 못봤어...미친 개에게 물린거야 그 자는 섹스에 미친 변태에 불과해...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아무일도 없을거야...그리고 오늘 시동생이 말한 그 포르노는....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야...시동생은 원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가진 남자야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꺼내서 괜히 겁을 주려고 한걸꺼야...)

그녀가 드디어 이런식으로 최종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내렸다.

이렇게 까지 생각하는데 꽤 힘이 드는 그녀였지만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두통증세도 사라지고 있었다.

겨우 마음에 미소를 되찾은 그녀가 그때까지 멍청하게 내버려둔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잔을 내려놓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아무리 정신상태가 이상하다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그러고도 자신이 정신과 의사야?
그 병원은 얼마가지 않아서 망할게 틀림없어 흥...)


그녀는 다 마신 커피잔을 싱크대에 던져두고 안방 침실로 들어갔다.

긴장하고 비를 맞고 걸어와서 몸이 무거웠고 피곤해 졌다. 시계를 올려다 보니 오후 4시였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는 임성택은 아직 전화도 없었다. 그녀가 침대쪽으로 들어가서 누워서 이불을 잡아 당겼다.

이대로 잠깐 눈을 붙일까 아니면 자고 있는 훈이를 위해서 간식이라도 만들어 줄까 ?



심야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창밖은 어두운걸 보니 저녁이거나 밤일거 같았다.

조금씩 흔들려 오는 버스 안은 침침하고 어두웠다. 자신을 포함해서 열명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그 중 몇명은 이야기를 나머지는 잠을 자고 있었다.

자신을 태운 버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성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습관대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버스가 잠시 멈추고 사람이 올라탔다.

버스로 올라온 사람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묻지도 않고 자신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성민지는 책에서 눈을 떼고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책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 남자는 카페에서 사장을 만나러 왔던 그 흑인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팡팡 뛰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왜 자리도 많은데 하필 내 옆에 앉았을까?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고개를 돌려 다른 자리를 보니 아까 열명 남짓한 버스 안은 웬일인지 사람들로 그득했고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좁은 통로에 서 있는것도 보였다.

그녀가 단념하고 다시 책을 읽으려는데 옆에 앉은 흑인으로 부터 특유의 버터냄세 같은 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고 가능하면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창쪽으로 엉덩이를 옮기는데 창에 그 흑인의 미소가 비쳤다.

치열이 가지런하고 눈부시게 하얀 이빨이 그녀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버스가 다시 속력을 내면서 달리자 자신이 등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좌석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흑인은 별 움직임없이 팔짱을 낀채 눈을 감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부비면서 얼굴을 책쪽으로 다가가는데 향긋한 냄세가 느껴지고 부드러운 느낌이 옆으로 부터 전해져 왔다.

너무도 부드러운 느낌이어서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그 느낌을 감상하는데 아랫부분이 간지러워져 왔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때 자신의 아래로 흑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게 보였다.

놀란 그녀의 눈이 흑인의 눈과 마주쳤을때 흑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치마안에 얼굴을 넣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목구멍에 뭐라도 걸렸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가 시트를 두손으로 움켜쥐었다.

자신의 팬티 안으로 흑인의 부드러운 혀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숨소리 하나 내지도 않고 자신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이 온통 새하얀 색으로 채색되는가 싶더니 자신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게 느껴졌다.

그녀는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의 은밀한 부분이 울컥울컥 애액을 토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혓바닥은 감미롭고도 집요했다.

자신도 모르게 흑인의 머리쪽으로 두손이 다가가다가 문득 눈을 돌려서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희한한 광경을 사람들은 무시하는 것인지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자고 있는 사람 무표정한 얼굴로 통로에 서 있는 남자...아직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너편의 남녀..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고 창가는 어두웠다.

흑인이 발 아래서 몸을 일으키더니 미소를 띠우면서 자기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의 두툼한 입술이 유난히 검게 보인다고 성민지는 생각했다.

그의 입술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열었다. 휘감기듯이 부드럽게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파고 들어서 그녀의 혀를 찾고 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그 혀를 향해서 자신의 혀를 내어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빨아들이기 시지각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주위의 사람들도 흔들리는 버스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려서 자신의 치마안을 탐색하자 자신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었다.

바지 위로 딱딱한 것이 느껴지자 손바닥을 오그려서 그걸 쥐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안에서 더욱 커지는 것을 느끼자 더욱 세게 쥐었고 손끝에서 우람한 힘을 느끼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아~안타까운 한숨을 토했다.

그가 웃으면서 바지를 내리자 그렇게 확인하고 싶었던 실체가 눈앞에 드러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가 그녀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아래로 잡아당기자 그녀의 얼굴이 옆자리에 앉은 흑인의 사타구니 쪽으로 빨려가듯이 다가갔고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으로 그걸 감쌌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기운이 그녀의 입안으로 부터 전해져 왔고 그녀는 갈증난 사슴처럼 허겁지겁 빨기 시작했다.

순간 등뒤로 부터 뜨거운 것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자신의 몸안으로 헤짚고 들어오는 힘이 느껴졌다.

분명히 조금전까지 자신의 눈앞에 있던 그 검은색 피부의 남자가 어느틈엔가 자신의 뒤에 서 있었고 그가 뒤에서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그가 더 쉽게 들어오도록 엉덩이를 벌려대는 자신이 너무 자극적일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몸이 흔들리면서 앞에 서 있는 무표정한 남자의 얼굴이 어슴푸레 보였다.

사람들이 그제서야 자신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떤자는 입을 헤벌리고 있었고 어떤 여자는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도 챙피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도 이상했다. 창피는 커녕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봐 주자 알수없는 쾌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더 힘을 내라는 뜻일까?...




눈을 떴다.

꿈이었다.

성민지는 눈을 뜬채 멍하게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제비꽃을 수 놓은 침실 천정 벽지가 어둡게 보였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날이 저물었는지 어두웠다.

그렇게 우두커니 몸을 반쯤 일으켰을때 치칙하는 화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서 떨어진 브라운관이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티비를?....내가 자기 전에 티비를 틀어놓았던가..)

기억을 더듬어 가던 성민지는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다가 비디오를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건 남편이 몇일전에 구해온 미국 포르노였다.

티비라도 보기 위해서 리모콘을 누르다가 비디오 전원을 잘 못 눌렀고 그 안에 꽂혀 있던 그 테이프가 작동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다른때 같으면 그냥 껐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걸 보기 시작했고 이십분 정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한숨을 쉬면서 오늘 하루는 포르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참으로 괴이하단 생각을 했다.

꿈으로 까지 나타날건 또 뭐람

그렇게 푸념하면서 이불을 걷는데 시트가 가득 젖어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자신도 알수없는 자신의 심리를 원망하면서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름 장마는 언제 끝이 날려는지 세차게 비를 창밖에서 퍼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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