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혹성상인 35. --- 쇼핑몰
35.
“이런, 이건, 이거 너무 이상해.”
한스가 거울을 보며 울상을 짓자 링링도 킥킥 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변장인데 이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이건 전혀 나 같지 않아.”
“트레이드 트윈은 회사의 지배 영역이 아니에요. 도련님은 지난번 성처녀 방송 때문에 너무 얼굴이 알려져 있어요. 외국에서 신분이 드러나면 위험하지요. 도련님은 지금부터 회사측 트레이더 행세를 해야 해요.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니 증권거래 쯤이야 할 줄 아시겠죠?”
“트레이더?”
“네. 그리고 이름도 평범한 제임스 클라크라고 되어 있어요. 자, 봐요 저기 트레이드 트윈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링링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보니 거대한 붉은 행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행성은 커다란 무지개빛 고리를 두르고 있고 붉은 표면 곳곳에 황록색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아니, 저런 가스거성에 사람이 산단 말이요?”
“아니죠. 가스거성이 아니고 그 위성이에요. 저 가스거성의 위성 23개중 2개가 트레이드 트윈이에요. 서로 반대편 방향에 있는 두 개의 위성이에요. 크기는 둘다 지구 만해요. 푸른 빛을 띠는 것이 블루센?이고 붉은 빛을 띠는 것이 레드쌍깡이죠. 이 두 위성은 이오즈카 가문이 지배하고 있어요.”
“이 위성들을 트레이드 트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뭐죠?”
“이시스는 3분되어 있어요. 회사가 지배하는 영역, 회사에 우호적인 행성들, 그리고 적대적인 행성들. 트레이드 트윈은 그 3세력이 함께 거래를 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지요. 정치적으로 중립인 자유무역지대라고 보면 되요. 여기서는 서버와 금을 비롯한 모든 것이 자유롭게 거래되지요. 심지어 거래가 불법인 마약이나 무기들 조차 트레이드 트윈의 주변 위성에서 암거래가 이루어져요. 가보면 알겠지만 이곳에는 온 이시스의 장사꾼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내가 할 일은 뭐죠?”
“트레이드 트윈을 견학하고 이오즈카를 만나보는 것이에요. 도착하는 날이 이곳의 연휴 기간이니 2일 쉬면서 둘러보고 다음날 트레이딩 플로어에 나가 잠깐 거래를 해보면 되요.”
이제 스크린은 온통 붉은 빛 가스 거성의 표면으로 덮여 붉게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 붉은 빛을 보며 한스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트레이드 트윈의 사람들은 하루의 반을 저걸 보고 살 거 아닌가요. 어디 정신 사나워서 살겠나.”
“…그래서 증권시장이 발달한 거에요. 모두 가 거의 미친듯한 상태에서 거래를 하죠. 때문에 언제나 활황을 보이는 곳이죠.”
멀리 붉은 거성의 위에 혹처럼 솟아난 위성이 보였다. 붉은 빛의 위성. 우주선은 레드쌍깡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갔다. 레드쌍깡의 주변에는 무려 여섯 개의 우주 정거장이 보였다. 어디나 수 많은 우주선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시스 최대의 무역지대다운 면모였다.
한스 일행은 우주정거장에서 셔틀로 갈아타고 레드썅깡의 중심지인 스페이스하버로 내려가 트라이어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제임스, 우리 쇼핑하러 갈까요?”
링링의 말에 한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옛날부터 쇼핑은 질색이었다. 아마도 남자에게 최대의 고통은 여자랑 같이 쇼핑하러 가는 것일 것이다. 남자 친구를 벌주고 싶으면 같이 쇼핑을 가라, 이게 페리옷행성 여자들 사이에서 나도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쇼핑을 앞에 두면 서로가 너무도 다른 점에 놀라게 된다. 한스는 특히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였다.
“제임스, 당신이 전에는 본 적이 없던 쇼핑이에요. 전우주적 명품이 모두 모여있는 초고급 백화점이에요.”
한스는 여전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임스, 이건 탱고의 명령이에요. 미쓰바시 백화점을 보지 않고는 트레이드 트윈을 봤다고 할 수 없어요.”
탱고의 지시. 링링이 한스에게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이다. 탱고란 말이 나오면 한스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가스거성의 반대편에 있는 듯 레드쌍깡의 하늘은 붉은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무지개빛 고리와 지평선 너머로 스며드는 붉은 기운은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곳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뭔가 흥분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미쓰바시에 들어간 한스는 바로 실망감을 느꼈다. 엄청난 규모를 제외하면 여느 곳에서 많이 보던 쇼핑몰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끝없이 늘어선 판매 부스와 물건들, 흥정하는 장사꾼들, 이 쇼핑은 한없이 피곤하게 될 것처럼 느껴졌다. 한스가 하품하는 모습을 본 링링이 웃으며 한스를 이끌었다.
중앙의 한 장소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둘이 그곳에 타자 그 엘리베이터(?)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멎고 그들이 내린 곳은 마치 은행 창구 같은 곳이었다. 한스는 벽에 크게 써져있는 문구를 보았다.
- 자유와 기쁨의 천국, 미쓰바시의 심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거기에서 둘은 100 굴덴 씩을 예치했다. 이곳은 미쓰바시 쇼핑몰의 심장부. 엄청난 돈을 미리 예치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갑부가 아니면 아예 근처에 가볼 수도 없는 곳이다. 한스와 링링은 출입허가를 받고 거대한 자동문을 지나 미쓰바시의 심연으로 들어갔다.
처음 마주치는 곳은 여성 명품관. 넓고 호화로운 매장에 사치스러운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링링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한스는 여자들이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러나 한스의 눈빛도 곧 달라졌다. 각 매장에 두세 개씩 서있는 마네킹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이라도 이렇게 예쁘기는 힘들었다. 한스는 거의 넋을 잃고 마네킹을 바라 보았다. 보기 드문 미모의 얼굴에 부드러운 여성미가 두드러진 몸매, 그리고 사치스러운 의상과 보석이 출렁이는 액세서리들… 한스는 두근거리는 속 마음을 숨기고 여기 저기 명품 코너들의 마네킹을 쳐다보았다. 이시스에 와서 수 많은 미녀들을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는 마네킹들은 우아한 기품과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함께 간직한 최상의 여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한 코너에 이르자 판매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링링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 사치스러운 옷들과 장신구들을 살폈다. 한스도 같이 보았다. 블라우스 한 벌에 100 루프, 스커트 하나에 120 루프, 머리띠는 20루프. 도저히 상상도 하기 힘든 가격이 붙어 있는 상품들을 보며 한스는 혀를 내둘렀다.
링링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감히 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회사 공금으로 100굴덴을 예치하기는 했지만 이 비싼 물건을 살 만한 배짱은 없는 것 같았다. 한스는 의상들을 따라 쭉 훑어 보았다. 110루프, 80루프, 20루프, 400루프, 80루프, 120루프, 100코페, 65루프, 220루프…
무심코 쭉 읽어나가던 한스는 아차하고 다시 눈을 돌렸다. 100코페가 있네. (1000 코페가 1루프임) 뭐가 100코페였지? 한스의 눈은 물건을 쭉 따라가다가 마네킹의 몸에 가서 멈췄다. 블라우스 120루프, 스커트 65루프, 그런데 그 중간에 써있는 100코페. 뭐가 100코페지? 다른 가격표는 분명한 물건에 붙어 있는데 이 가격표는 무엇의 가격인지 알기 어려웠다. 한스는 가격표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다른 가격표는 모두 검은 글자로 되어 있는 반면 100코페 만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스가 100코페 가격표를 유심히 보고 고개를 들자 마네킹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으응? 한스가 다시 보자 마네킹이 눈을 깜박였다. 놀란 한스가 판매원을 보았다.
판매원이 웃으며 한스에게 말을 건냈다.
“그녀를 원하시나요?”
“사람이었나요?”
“네, 미쓰바시의 서버입니다.”
“그럼 100코페란 가격은?”
“하룻밤 가격이지요.”
한스는 그 말을 들고 고개를 들어 매장을 둘러 보았다. 매장 코너마다 서있는 두세 명의 마네킹. 그것들이 진짜 마네킹이 아니라 서버들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하룻밤을 살 수 있다는 말이지. 한스는 갑자기 미쓰바시에서 쇼핑이 즐거워질 것 같았다.
한스가 여기 저기 서있는 서버들을 둘러 보며 어느 서버를 사야 좋을까 궁리하고 있는 동안 링링은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스는 보석이 박힌 머리띠를 하나 집어 링링의 머리에 끼워 주었다. 링링은 그녀답지 않게 수줍은 기색을 보였다.
“링링, 이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데.”
“…”
“링링,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받아요. 이거 하나 주세요. 얼마죠? 아 35루프요. 예.”
한스는 인심을 팍 썼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회사 돈인데 링링한테 환심을 사둬야 한스가 서버를 살 때 링링이 트집을 잡지 않을 것 같았다. 링링은 머리띠를 만지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전략정보처의 일급 정보원도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라 끄리세리아 매장을 나오는 링링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한스는 그 틈을 타서 주변 매장들에 옷을 전시하기 위해 서있는 서버들을 둘러 보았다. 모두가 뛰어난 미인이어서 어떤 서버를 골라야 할 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여기 저기 다른 매장들을 기웃거리던 링링은 마침내 한스의 속셈을 알아채고 한스의 팔을 잡았다.
“제임스, 여기서 이러지 말아요. 훨씬 좋은 코너들이 많이 있으니까 우리 거기 가서 봐요. 내가 말리지 않을께요.”
링링은 더 이상 옷가게들을 기웃거리지 않고 한스의 팔을 잡고 매장을 쭉 걸어갔다. 한스는 링링에게 끌려가면서도 늘어서 있는 서버들의 몸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눈여겨 보았다.
100코페, 250코페, 80코페, 1루프, 60코페, 300코페…
엄청나게 비싼 옷이나 장신구에 비해 이런 미녀들의 값이 이렇게 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링링의 머리띠를 산 돈 만으로도 이런 미녀를 수백 명이나 살 수 있는 것이다. 여자의 값이 이렇게 싼데 왜 그 여자들이 입는 옷이나 장신구의 값은 이렇게 비싼가. 도대체 그런 옷을 입고 액세사리를 걸치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다음 매장은 생활용품 매장이었다.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가구 같은 제품들이 늘어서 있고 물론 그 사이 사이에서 늘씬한 서버들이 그 제품을 사용하며 선전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제품들의 가격은 의류매장과 마찬가지로 학을 뗄 정도로 비쌌다. 그에 반해 그 사이에서 일하는 서버들의 몸값은 100 코페 내외였다.
한스는 계속 침을 삼키며 매장 사이를 지나갔다. 생활용품 매장의 끝에 이르자 다음 매장의 문이 보였다. 문 위에는 INNERWARE (속옷) 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한스와 링링이 문 앞에 가자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안에는 우아하고 야시시한 핑크빛 분위기가 가득차 있었다. 매장을 걸어가며 한스는 눈둘 곳을 찾기 어려웠다. 여기 저기 늘씬 늘씬한 미녀들이 하늘거리는 얇은 속옷 만을 입은 채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깨 위에서 히프 부근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반투명 속옷을 입은 미녀가 무릎을 반쯤 굽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스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반투명 속옷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출렁이고 오똑 선 젖꼭지는 속옷 위로 튀어 나와 보였다. 속옷이 반쯤 가리는 하체는 아무 것도 안입은 나체였다. 속옷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엉덩이와 다리의 선은 차라리 완전한 나체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그 반투명 속옷에 붙어 있는 가격은 200루프, 그 밑 허벅지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서버의 가격은 250 코페.
그 반대편에 있는 서버는 짙은 살색 팬티스타킹 하나 만 입고 소파 위에 다리를 뻗은 채 앉아 있었다. 다리를 슬쩍 꼬아 앉아있는 서버의 각선미가 한스의 눈을 간질렀다. 팬티스타킹은 10루프, 서버는 80코페.
한스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링링은 아까 의류매장에서 만큼의 관심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추렁추렁 주름이 줄줄이 접혀있는 속옷이나 복잡한 레이스와 작은 보석들이 섞여 있는 팬티, 브래지어 등을 볼 때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한스의 관심은 반대편이었다. 가능하면 입은 것이 적은 쪽, 그러니까 여자의 나체쪽에 관심이 갔다. 브래지어만 입고 아래에 스타킹을 신고 스타킹 끈을 허리에 고정시킨 채 서있는 서버를 보았다. 그녀의 아랫배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랫배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덮고 있는 보지털을 보며 끈달린 스타킹을 입고 있는 것이 완전히 벗은 것보다 더 자극적인 이유를 생각했다. 브래지어 60루프, 스타킹 8루프, 서버 80코페.
커다란 엉덩이. 한 서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엉덩이에는 작은 흰색 삼각팬티 하나. 한스는 원래부터 레이스 달린 복잡한 고급 팬티보다 단순한 흰색 면팬티가 더 자극적이었다. 서버의 팬티는 작고 앙증맞아 엉덩이 사이의 골에 살짝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엉덩이는 두 개의 완벽한 복숭아 모양을 이루며 가운데로 모아지고 있었다.
부드럽고 매끄러워 보이는 살결, 무척 크면서도 우아한 볼기짝. 엉덩이 밑으로 작은 팬티가 불룩해지며 큰 씹두덩을 감추고 있는 표시가 뚜렷하게 보였다. 팬티 주변으로 검은 털들이 쭈삣쭈삣 삐져 나와 보였고 면팬티에 검붉은 보지가 비쳐지는 느낌. 한스는 그 팬티에 써 있는 20루프라는 가격과 그녀의 큰 볼기짝에 붙어있는 60코페/200루프 라는 가격을 보았다.
200루프! 60코페는 붉은색으로 200루프는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200루프는 뭐지. 한스는 판매원에게 물어 보았다.
“붉은색 가격은 하룻밤 접속의 가격이고요, 푸른색은 완전히 사는 값이에요.”
35.
“이런, 이건, 이거 너무 이상해.”
한스가 거울을 보며 울상을 짓자 링링도 킥킥 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변장인데 이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이건 전혀 나 같지 않아.”
“트레이드 트윈은 회사의 지배 영역이 아니에요. 도련님은 지난번 성처녀 방송 때문에 너무 얼굴이 알려져 있어요. 외국에서 신분이 드러나면 위험하지요. 도련님은 지금부터 회사측 트레이더 행세를 해야 해요.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니 증권거래 쯤이야 할 줄 아시겠죠?”
“트레이더?”
“네. 그리고 이름도 평범한 제임스 클라크라고 되어 있어요. 자, 봐요 저기 트레이드 트윈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링링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보니 거대한 붉은 행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행성은 커다란 무지개빛 고리를 두르고 있고 붉은 표면 곳곳에 황록색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아니, 저런 가스거성에 사람이 산단 말이요?”
“아니죠. 가스거성이 아니고 그 위성이에요. 저 가스거성의 위성 23개중 2개가 트레이드 트윈이에요. 서로 반대편 방향에 있는 두 개의 위성이에요. 크기는 둘다 지구 만해요. 푸른 빛을 띠는 것이 블루센?이고 붉은 빛을 띠는 것이 레드쌍깡이죠. 이 두 위성은 이오즈카 가문이 지배하고 있어요.”
“이 위성들을 트레이드 트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뭐죠?”
“이시스는 3분되어 있어요. 회사가 지배하는 영역, 회사에 우호적인 행성들, 그리고 적대적인 행성들. 트레이드 트윈은 그 3세력이 함께 거래를 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지요. 정치적으로 중립인 자유무역지대라고 보면 되요. 여기서는 서버와 금을 비롯한 모든 것이 자유롭게 거래되지요. 심지어 거래가 불법인 마약이나 무기들 조차 트레이드 트윈의 주변 위성에서 암거래가 이루어져요. 가보면 알겠지만 이곳에는 온 이시스의 장사꾼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내가 할 일은 뭐죠?”
“트레이드 트윈을 견학하고 이오즈카를 만나보는 것이에요. 도착하는 날이 이곳의 연휴 기간이니 2일 쉬면서 둘러보고 다음날 트레이딩 플로어에 나가 잠깐 거래를 해보면 되요.”
이제 스크린은 온통 붉은 빛 가스 거성의 표면으로 덮여 붉게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 붉은 빛을 보며 한스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트레이드 트윈의 사람들은 하루의 반을 저걸 보고 살 거 아닌가요. 어디 정신 사나워서 살겠나.”
“…그래서 증권시장이 발달한 거에요. 모두 가 거의 미친듯한 상태에서 거래를 하죠. 때문에 언제나 활황을 보이는 곳이죠.”
멀리 붉은 거성의 위에 혹처럼 솟아난 위성이 보였다. 붉은 빛의 위성. 우주선은 레드쌍깡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갔다. 레드쌍깡의 주변에는 무려 여섯 개의 우주 정거장이 보였다. 어디나 수 많은 우주선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시스 최대의 무역지대다운 면모였다.
한스 일행은 우주정거장에서 셔틀로 갈아타고 레드썅깡의 중심지인 스페이스하버로 내려가 트라이어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제임스, 우리 쇼핑하러 갈까요?”
링링의 말에 한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옛날부터 쇼핑은 질색이었다. 아마도 남자에게 최대의 고통은 여자랑 같이 쇼핑하러 가는 것일 것이다. 남자 친구를 벌주고 싶으면 같이 쇼핑을 가라, 이게 페리옷행성 여자들 사이에서 나도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쇼핑을 앞에 두면 서로가 너무도 다른 점에 놀라게 된다. 한스는 특히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였다.
“제임스, 당신이 전에는 본 적이 없던 쇼핑이에요. 전우주적 명품이 모두 모여있는 초고급 백화점이에요.”
한스는 여전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임스, 이건 탱고의 명령이에요. 미쓰바시 백화점을 보지 않고는 트레이드 트윈을 봤다고 할 수 없어요.”
탱고의 지시. 링링이 한스에게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이다. 탱고란 말이 나오면 한스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가스거성의 반대편에 있는 듯 레드쌍깡의 하늘은 붉은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무지개빛 고리와 지평선 너머로 스며드는 붉은 기운은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곳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뭔가 흥분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미쓰바시에 들어간 한스는 바로 실망감을 느꼈다. 엄청난 규모를 제외하면 여느 곳에서 많이 보던 쇼핑몰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끝없이 늘어선 판매 부스와 물건들, 흥정하는 장사꾼들, 이 쇼핑은 한없이 피곤하게 될 것처럼 느껴졌다. 한스가 하품하는 모습을 본 링링이 웃으며 한스를 이끌었다.
중앙의 한 장소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둘이 그곳에 타자 그 엘리베이터(?)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멎고 그들이 내린 곳은 마치 은행 창구 같은 곳이었다. 한스는 벽에 크게 써져있는 문구를 보았다.
- 자유와 기쁨의 천국, 미쓰바시의 심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거기에서 둘은 100 굴덴 씩을 예치했다. 이곳은 미쓰바시 쇼핑몰의 심장부. 엄청난 돈을 미리 예치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갑부가 아니면 아예 근처에 가볼 수도 없는 곳이다. 한스와 링링은 출입허가를 받고 거대한 자동문을 지나 미쓰바시의 심연으로 들어갔다.
처음 마주치는 곳은 여성 명품관. 넓고 호화로운 매장에 사치스러운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링링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한스는 여자들이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러나 한스의 눈빛도 곧 달라졌다. 각 매장에 두세 개씩 서있는 마네킹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이라도 이렇게 예쁘기는 힘들었다. 한스는 거의 넋을 잃고 마네킹을 바라 보았다. 보기 드문 미모의 얼굴에 부드러운 여성미가 두드러진 몸매, 그리고 사치스러운 의상과 보석이 출렁이는 액세서리들… 한스는 두근거리는 속 마음을 숨기고 여기 저기 명품 코너들의 마네킹을 쳐다보았다. 이시스에 와서 수 많은 미녀들을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는 마네킹들은 우아한 기품과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함께 간직한 최상의 여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한 코너에 이르자 판매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링링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 사치스러운 옷들과 장신구들을 살폈다. 한스도 같이 보았다. 블라우스 한 벌에 100 루프, 스커트 하나에 120 루프, 머리띠는 20루프. 도저히 상상도 하기 힘든 가격이 붙어 있는 상품들을 보며 한스는 혀를 내둘렀다.
링링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감히 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회사 공금으로 100굴덴을 예치하기는 했지만 이 비싼 물건을 살 만한 배짱은 없는 것 같았다. 한스는 의상들을 따라 쭉 훑어 보았다. 110루프, 80루프, 20루프, 400루프, 80루프, 120루프, 100코페, 65루프, 220루프…
무심코 쭉 읽어나가던 한스는 아차하고 다시 눈을 돌렸다. 100코페가 있네. (1000 코페가 1루프임) 뭐가 100코페였지? 한스의 눈은 물건을 쭉 따라가다가 마네킹의 몸에 가서 멈췄다. 블라우스 120루프, 스커트 65루프, 그런데 그 중간에 써있는 100코페. 뭐가 100코페지? 다른 가격표는 분명한 물건에 붙어 있는데 이 가격표는 무엇의 가격인지 알기 어려웠다. 한스는 가격표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다른 가격표는 모두 검은 글자로 되어 있는 반면 100코페 만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스가 100코페 가격표를 유심히 보고 고개를 들자 마네킹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으응? 한스가 다시 보자 마네킹이 눈을 깜박였다. 놀란 한스가 판매원을 보았다.
판매원이 웃으며 한스에게 말을 건냈다.
“그녀를 원하시나요?”
“사람이었나요?”
“네, 미쓰바시의 서버입니다.”
“그럼 100코페란 가격은?”
“하룻밤 가격이지요.”
한스는 그 말을 들고 고개를 들어 매장을 둘러 보았다. 매장 코너마다 서있는 두세 명의 마네킹. 그것들이 진짜 마네킹이 아니라 서버들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하룻밤을 살 수 있다는 말이지. 한스는 갑자기 미쓰바시에서 쇼핑이 즐거워질 것 같았다.
한스가 여기 저기 서있는 서버들을 둘러 보며 어느 서버를 사야 좋을까 궁리하고 있는 동안 링링은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스는 보석이 박힌 머리띠를 하나 집어 링링의 머리에 끼워 주었다. 링링은 그녀답지 않게 수줍은 기색을 보였다.
“링링, 이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데.”
“…”
“링링,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받아요. 이거 하나 주세요. 얼마죠? 아 35루프요. 예.”
한스는 인심을 팍 썼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회사 돈인데 링링한테 환심을 사둬야 한스가 서버를 살 때 링링이 트집을 잡지 않을 것 같았다. 링링은 머리띠를 만지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전략정보처의 일급 정보원도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라 끄리세리아 매장을 나오는 링링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한스는 그 틈을 타서 주변 매장들에 옷을 전시하기 위해 서있는 서버들을 둘러 보았다. 모두가 뛰어난 미인이어서 어떤 서버를 골라야 할 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여기 저기 다른 매장들을 기웃거리던 링링은 마침내 한스의 속셈을 알아채고 한스의 팔을 잡았다.
“제임스, 여기서 이러지 말아요. 훨씬 좋은 코너들이 많이 있으니까 우리 거기 가서 봐요. 내가 말리지 않을께요.”
링링은 더 이상 옷가게들을 기웃거리지 않고 한스의 팔을 잡고 매장을 쭉 걸어갔다. 한스는 링링에게 끌려가면서도 늘어서 있는 서버들의 몸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눈여겨 보았다.
100코페, 250코페, 80코페, 1루프, 60코페, 300코페…
엄청나게 비싼 옷이나 장신구에 비해 이런 미녀들의 값이 이렇게 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링링의 머리띠를 산 돈 만으로도 이런 미녀를 수백 명이나 살 수 있는 것이다. 여자의 값이 이렇게 싼데 왜 그 여자들이 입는 옷이나 장신구의 값은 이렇게 비싼가. 도대체 그런 옷을 입고 액세사리를 걸치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다음 매장은 생활용품 매장이었다.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가구 같은 제품들이 늘어서 있고 물론 그 사이 사이에서 늘씬한 서버들이 그 제품을 사용하며 선전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제품들의 가격은 의류매장과 마찬가지로 학을 뗄 정도로 비쌌다. 그에 반해 그 사이에서 일하는 서버들의 몸값은 100 코페 내외였다.
한스는 계속 침을 삼키며 매장 사이를 지나갔다. 생활용품 매장의 끝에 이르자 다음 매장의 문이 보였다. 문 위에는 INNERWARE (속옷) 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한스와 링링이 문 앞에 가자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안에는 우아하고 야시시한 핑크빛 분위기가 가득차 있었다. 매장을 걸어가며 한스는 눈둘 곳을 찾기 어려웠다. 여기 저기 늘씬 늘씬한 미녀들이 하늘거리는 얇은 속옷 만을 입은 채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깨 위에서 히프 부근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반투명 속옷을 입은 미녀가 무릎을 반쯤 굽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스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반투명 속옷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출렁이고 오똑 선 젖꼭지는 속옷 위로 튀어 나와 보였다. 속옷이 반쯤 가리는 하체는 아무 것도 안입은 나체였다. 속옷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엉덩이와 다리의 선은 차라리 완전한 나체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그 반투명 속옷에 붙어 있는 가격은 200루프, 그 밑 허벅지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서버의 가격은 250 코페.
그 반대편에 있는 서버는 짙은 살색 팬티스타킹 하나 만 입고 소파 위에 다리를 뻗은 채 앉아 있었다. 다리를 슬쩍 꼬아 앉아있는 서버의 각선미가 한스의 눈을 간질렀다. 팬티스타킹은 10루프, 서버는 80코페.
한스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링링은 아까 의류매장에서 만큼의 관심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추렁추렁 주름이 줄줄이 접혀있는 속옷이나 복잡한 레이스와 작은 보석들이 섞여 있는 팬티, 브래지어 등을 볼 때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한스의 관심은 반대편이었다. 가능하면 입은 것이 적은 쪽, 그러니까 여자의 나체쪽에 관심이 갔다. 브래지어만 입고 아래에 스타킹을 신고 스타킹 끈을 허리에 고정시킨 채 서있는 서버를 보았다. 그녀의 아랫배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랫배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덮고 있는 보지털을 보며 끈달린 스타킹을 입고 있는 것이 완전히 벗은 것보다 더 자극적인 이유를 생각했다. 브래지어 60루프, 스타킹 8루프, 서버 80코페.
커다란 엉덩이. 한 서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엉덩이에는 작은 흰색 삼각팬티 하나. 한스는 원래부터 레이스 달린 복잡한 고급 팬티보다 단순한 흰색 면팬티가 더 자극적이었다. 서버의 팬티는 작고 앙증맞아 엉덩이 사이의 골에 살짝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엉덩이는 두 개의 완벽한 복숭아 모양을 이루며 가운데로 모아지고 있었다.
부드럽고 매끄러워 보이는 살결, 무척 크면서도 우아한 볼기짝. 엉덩이 밑으로 작은 팬티가 불룩해지며 큰 씹두덩을 감추고 있는 표시가 뚜렷하게 보였다. 팬티 주변으로 검은 털들이 쭈삣쭈삣 삐져 나와 보였고 면팬티에 검붉은 보지가 비쳐지는 느낌. 한스는 그 팬티에 써 있는 20루프라는 가격과 그녀의 큰 볼기짝에 붙어있는 60코페/200루프 라는 가격을 보았다.
200루프! 60코페는 붉은색으로 200루프는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200루프는 뭐지. 한스는 판매원에게 물어 보았다.
“붉은색 가격은 하룻밤 접속의 가격이고요, 푸른색은 완전히 사는 값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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