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케치 2부
"밥을 잘 먹지 않는것 같더구나..보낸 밑반찬이 그대로 있더구나.."
커다란 투명유리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태혁은 그제서야 어머니를 바라본다.
"걱정하지마세요..알아서 챙겨먹고 있어요."
"공부는 잘돼니?"
"아시잖아요..저 대학가기 힘들다는거."
"......"
짧지만 단오한 태혁의 말에 어머니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태혁도 알고있었다..차가운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세상 누구보다도 태혁을 사랑하는분..
그분만 보면 이렇듯 애초롭고 불쌍해 보이기만한다..
따뜻하게 대해드려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속맘관 다르게 항상 이렇게 차가운 말들만 내뱉어지곤했다..
그렇기에 좀더 솔직하게 그녀를 대할 수 있는 그날까지 가능하면 그녀를 피하고 싶은 것이 태혁의 맘이었다.
"집에 무슨일 있어요??"
"내일이..아버지 생신이시잖니.."
"......."
태혁은 슬그머니 창밖을 바라보는것으로 그녀의 말을 회피한다.
"아버지가 내일은 네가 꼭 오기를 바라시더구나.."
그 말은 새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바램일것이 분명했기에 태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미누나는 잘 있죠?"
"그럼..유미가 네 걱정 많이한단다..유미도 꼭 보고싶다고 전해달라더구나."
유미는 어느새 대학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태혁이 그 집을 나올때 어머니를 제외하곤 속시원한 느낌이었지만 자신을 배웅하며 살며시 눈시울을 붉히던 유미를 바라보며 가슴아파
해야했다.
"태혁아..누나 미워하지마...미안해...미안해.."
마지막 그녀의 떨리던 젖은 목소리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가끔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곤 했지만 태혁이 이런저런 핑계로 그녀와의 만남을 피하곤했다.
"갈 수 있으면 갈게요.."
"그래..꼭 오렴..그리고 이것...."
태혁의 눈에 그녀가 내미는 하얀 봉투가 보였다..
"지난달에 주신것 아직 남아있어요.."
"받아두렴..널 위한것 이전에 날 위해 그러는거야..엄마 맘좀 편하게 해주렴.."
"잘쓸게요..."
태혁은 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눈가는 항상 붉은 자욱이 없어질 날이 없었다..
태혁으로 인해 그렇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저 잘지내니 걱정마시고 어머니도 건강하세요..이젠 저로 인해 더이상 눈물짓지 마시고요.."
태혁은 그제서야 마음속 수많은 하고 싶던 말들중 하나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래...그래야지..."
태혁의 말에 어머니의 눈가는 어느새 붉어지고 있었다.
"태혁아~"
교문을 나서는 태혁을 철한이 뛰어오며 불렀다.
"자식..말도없이 혼자가냐??..어제도 혼자가더니.."
태혁은 그런 철한을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중학교까지 친구가 없이 홀로 보내다시피한 태혁에게 철한은 유일한 친구였다.
중학시절부터 태혁의 주먹은 그 또래 아이들에게 소문나 있었기에 누구도 태혁에게 쉽게 다가서질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태혁은 교실 제일 뒷자리에서 하루 온종일 창밖을 바라보거나 엎드려 잠을 자는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철한은 그런 태혁과 같은반이었다.
입학하고 몇일이 지나서였다..
태혁이 쉬는시간 화장실을 갔을때 철한이 몇몇 아이들과 담배를 피우려 하고 있었다.
태혁이 못본 채 볼일을 본 후 나가려 할 때였다.
"야!"
태혁이 뒤를 돌아보니 철한이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너 문앞에서 짱좀 봐"
태혁은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문밖에서 짱을 볼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더이상 태혁을 부르지 않았다.
수업종이 울리자 철한은 태혁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너 이새끼야..짱보라니까 도망가??..씹팔놈 다음 쉬는시간에 너 죽었어."
철한이 말을 하고 자리에 앉으려 할때 태혁이 녀석의 어깨를 잡아채며 턱에 주먹을 날렸다.
철한은 갑작스런 주먹에 교실바닥에 주저앉은채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진일에 교실안은 찬물 끼언은듯 차갑게 식어갔다.
"너..너 이 개새끼.."
"얌전히 찌그러져있어.."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고 철한은 자리에 앉았다.
"개새끼 쉬는시간에 보자.."
살며시 고개를 뒤로 돌린채 철한이 이를갈며 내뱉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기나긴 수업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철한은 번개같이 태혁에게 주먹을 날렸지만 태혁은 녀석의 주먹을 흘린채 다시금
관자놀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런 상황을 미쳐 생각지 못한 철한은 다시금 바닥으로 쓰러졌고 태혁의 발이 녀석의 배를 후려쳤다..
"컥!"
태혁은 그런 녀석을 뒤로 한채 유유히 교실을 나가버렸다.
철한은 독기있는 녀석이었다.
그뒤로 몇번이나 태혁에게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수없이 얻어터졌다.
언젠가부터 철한은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을 내리 치는 녀석의 표정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어느날인가 부터 태혁을 대하는 철한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그리곤 녀석답지않게 수줍게 말을했다..
"우리..친구먹자.."
태혁도 그런 녀석이 어느샌가 친근하게 느껴져 둘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태혁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짓는 친구가 철한이었다.
"어제,오늘 혼자 어딜가는거야?"
"집.."
"집?? 어두컴컴한 방에 뭐 찾아먹을게 있다고.."
"그집말고."
"아~~"
태혁은 철한에게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해준적이 있었기에 철한은 태혁이 말하는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무슨날이야??"
"응."
"그럼 오늘은 안돼겠네?"
"뭐가??"
"냄비들이랑 술한잔 할려했더니.."
"미안해..혼자가라.."
"혼자 그년들 상대하느라 뼈골빠질일 있냐??..그러지 말고 내일 술한잔하자.."
"그러던지.."
"얼마전에 꼬신년이 있는데..꽤 괜찮아..소개시켜줄게..."
"그래."
"그러고보니 너랑 같이 여자만난적 한번도 없다 그치..!"
태혁은 철한의 말에 살며시 미소짓는다.
녀석은 태혁만큼이나 키가컸고 덩치도 좋았다..하지만 녀석의 말을 듣노라면 외모와 상반되게 가끔 아주 귀엽다는 느낌이 들곤했다.
"그럼 내일 약속한거다.."
"그래.."
철한이 떠나가고 태혁은 다시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태혁아..."
"유미누나.."
태혁이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앉아있던 유미가 뛰듯이 다가와 태혁을 안는다.
"너..정말 너무 나뻐...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저녀석 매정한거 빼면 남는게 있을려고..."
옆에서 음식을 장만하시던 어머니가 웃으며 한 말 거들었다.
"누나 안보고 싶었니??....누난 태혁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안보고싶었어.."
"어머??...엄마 태혁이 말하는것 좀 보세요..."
"유미 네가 좀 때려주렴.후훗"
"풋.."
태혁은 오랜만에 이집에서 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버진..."
태혁은 어렵게 말을꺼내곤 금방 얼굴이 붉어졌다.
"응 아직 안오셨어..오빠도 조금 늦는다고 하고...오히려 잘됐지??"
농담같은 말이었지만 태혁의 맘을 잘 알고 있는 유미의 진심이었다.
유미는 태혁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스스럼 없이 불러대며 애교를 부리곤했다.
태혁은 그런 유미의 행동때문에 더욱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와~~~우리 태혁이 키가 더 큰것같다...그런데 살이 많이 빠진것 같다."
태혁은 웃으며 유미를 바라본다..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웨이브진 긴머리..물기있는 눈동자..물기있는 도톰한 입술..그 입술사이로 그녀의 말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미는 웃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윗치아를 살짝 드러낸채 깊지 않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의 눈은 한없이 맑기만했다.
"오늘도 안오면 찾아가서 때려줄려고 했어..정말 누나 안보고 싶었어?? 응? 응?"
"보고싶었어.."
"우와...태혁이도 그런말 할줄 아는구나..신기하다.."
"풋~"
"하하하하...거봐..웃으니깐 얼마나 보기좋니??"
유미와 태혁은 잠시 동안 이야기하다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를 도왔다.
음식이 다 장만되어질 즈음 아버지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태혁이왔구나...이녀석...잘왔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래..고맙구나.."
잠시 후 태혁은 안방에서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그래..그동안 잘지냈고??"
"네."
"어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하시는거 알지?"
"네.."
"어떠냐..이제 다시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련??"
"죄송합니다.."
"그래...강요할 순 없는일이지...하지만 태혁아..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집으로 들어오렴.."
"...."
"얼마 후면 유석이가 군대를 가는거 알고있니??"
"몰랐습니다"
"유석이 군대가면 집안이 텅빌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네가 그 자리를 메꾸어 주었으면 한다."
"....."
"아버진 니가 내 말을 조금 신중히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네.."
태혁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몇년새 이분의 얼굴에 못보던 주름이 늘어난것 같았다..
그때문일까..이젠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고 느껴지는건...
"네가 집을 나선후 나도 많이 생각했다..그리고 네게 많은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내게 서운한것 많다는거 알고 있다..내가 어리석었다..다시금
내게 기회를 주렴.."
한때는 그랬었다..유석형만을 감싸도는 그를 보며 어느샌가 태혁은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한번 시작된 그런감정은 갈수록
깊어졌었다..새아버지에게도 문제는 있었지만 태혁자신도 먼저 그를 이해할려고 노력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때 태혁은 사춘기였기에 더욱 비틀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조금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더라면..오늘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이제 나가서 저녁 먹어야지..유석이놈은 요즘 제법 늦으니 우리 먼저 먹자.."
"네"
오랫만에 태혁은 가족이란 울타리속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생일상 올라온 맛있는 음식보다 그들이 흘려내는 웃음으로 인해 배부를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낼 즈음 유석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앉거라.."
유석은 지금 대학 사학년이었다..
곧 있을 군입대 때문인지 유석은 요즘 주위사람들 만나는 일로 바쁜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다."
유석이 자리에 앉으며 태혁에게 말을 건냈다.
"네"
"녀석..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자주 찾아뵈라.."
"...."
"자..이제 오빠도 왔으니 촛불 끄셔야죠..."
유미나 눈치 있게 서둘러 케익에 초를 밝혔다..
가족이 부르는 생일 축가뒤로 아버지가 촛불을 끈 후 태혁은 수줍게 준비한 선물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녀석..돈이 어디있다고..고맙구나.."
유미..유석도 선물을 건넸지만 아버진 태혁의 선물을 제일 먼저 풀었다.
평소 정장을 즐겨 입는 아버지에게 태혁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선물했다..
"와~~~이쁘다...넥타이랑 색깔도 잘 맞네..."
"잘 입으마.."
"네.."
뒷쪽에서 과일을 깍던 어머니의 눈에선 어느샌가 또다시 눈물 방울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전과는 의미가 다른 눈물이었다..
태혁이 그들의 가족이 된 후 처음으로 밝게 웃을 수 있는 날이었다.
밖은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리고 있었지만 붉을 밝힌 그 집안은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혁아 자고가.."
유미가 서운한 눈빛으로 태혁의 팔을 잡았다.
"내일 학교갈려면..."
"그렇구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렴."
"네"
태혁이 인사를 하고 돌아설때였다.
"태혁아.."
아버지가 태혁을 불렇다..
"네."
"아버지말 깊이 생각해보거라."
"네"
대답을 한 후 태혁을 발걸음을 옮겼다..
"저 태혁이 앞에까지만 바래다 줄게요.."
어느새 유미가 태혁에게로 뛰어왔다..
"아버지가 뭐라그러셨어??"
"별것아냐"
"말해봐..집에 들어오라고 하셨지??..그렇지?? 응??..응??"
유미가 말을하며 자연스럽게 태혁의 팔짱을 끼었다..
태혁은 흠칫놀라며 유미를 바라본다..그리곤 가볍게 실소를 터트린다.
"그래.."
태혁의 대답과 함께 유미가 태혁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로인해 태혁은 걸음을 멈추고 유미를 바라보았다.
"약속해..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
"오빠도 이젠 예전처럼 못되게 굴지 않아..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잊고 같이 살자"
"생각해볼께.."
"누나..태혁이 안들어오면 매일 전화해서 괴롭힐거야..그리고 울거야..그러니 꼭 들어와 응?? 약속해..."
"누나..."
"누나 믿고 기다릴게...."
"그만 들어가봐 너무 많이 왔어.."
"핏..바로 이앞인걸.."
"누나한텐 위험해.."
"뭐가??"
"누나가....아냐..어서들어가.."
"그래 그럼 조심해서가...전화하면 반갑게 받고.."
"응"
"가..."
유미의 모습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유미누나!"
"응??..왜??"
"고마워.."
"핏..싱겁긴.."
돌아오는길 태혁은 가슴이 뻥 뚫린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라 생각했는데...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쉬운 길이었는데 그동안 왜 그토록 헤메였는지 알 수 없었다.
집을 들어서기 전까지 느꼈던 많은 갈등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오늘 그 집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는 태혁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밥을 잘 먹지 않는것 같더구나..보낸 밑반찬이 그대로 있더구나.."
커다란 투명유리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태혁은 그제서야 어머니를 바라본다.
"걱정하지마세요..알아서 챙겨먹고 있어요."
"공부는 잘돼니?"
"아시잖아요..저 대학가기 힘들다는거."
"......"
짧지만 단오한 태혁의 말에 어머니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태혁도 알고있었다..차가운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세상 누구보다도 태혁을 사랑하는분..
그분만 보면 이렇듯 애초롭고 불쌍해 보이기만한다..
따뜻하게 대해드려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속맘관 다르게 항상 이렇게 차가운 말들만 내뱉어지곤했다..
그렇기에 좀더 솔직하게 그녀를 대할 수 있는 그날까지 가능하면 그녀를 피하고 싶은 것이 태혁의 맘이었다.
"집에 무슨일 있어요??"
"내일이..아버지 생신이시잖니.."
"......."
태혁은 슬그머니 창밖을 바라보는것으로 그녀의 말을 회피한다.
"아버지가 내일은 네가 꼭 오기를 바라시더구나.."
그 말은 새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바램일것이 분명했기에 태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미누나는 잘 있죠?"
"그럼..유미가 네 걱정 많이한단다..유미도 꼭 보고싶다고 전해달라더구나."
유미는 어느새 대학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태혁이 그 집을 나올때 어머니를 제외하곤 속시원한 느낌이었지만 자신을 배웅하며 살며시 눈시울을 붉히던 유미를 바라보며 가슴아파
해야했다.
"태혁아..누나 미워하지마...미안해...미안해.."
마지막 그녀의 떨리던 젖은 목소리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가끔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곤 했지만 태혁이 이런저런 핑계로 그녀와의 만남을 피하곤했다.
"갈 수 있으면 갈게요.."
"그래..꼭 오렴..그리고 이것...."
태혁의 눈에 그녀가 내미는 하얀 봉투가 보였다..
"지난달에 주신것 아직 남아있어요.."
"받아두렴..널 위한것 이전에 날 위해 그러는거야..엄마 맘좀 편하게 해주렴.."
"잘쓸게요..."
태혁은 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눈가는 항상 붉은 자욱이 없어질 날이 없었다..
태혁으로 인해 그렇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저 잘지내니 걱정마시고 어머니도 건강하세요..이젠 저로 인해 더이상 눈물짓지 마시고요.."
태혁은 그제서야 마음속 수많은 하고 싶던 말들중 하나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래...그래야지..."
태혁의 말에 어머니의 눈가는 어느새 붉어지고 있었다.
"태혁아~"
교문을 나서는 태혁을 철한이 뛰어오며 불렀다.
"자식..말도없이 혼자가냐??..어제도 혼자가더니.."
태혁은 그런 철한을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중학교까지 친구가 없이 홀로 보내다시피한 태혁에게 철한은 유일한 친구였다.
중학시절부터 태혁의 주먹은 그 또래 아이들에게 소문나 있었기에 누구도 태혁에게 쉽게 다가서질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태혁은 교실 제일 뒷자리에서 하루 온종일 창밖을 바라보거나 엎드려 잠을 자는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철한은 그런 태혁과 같은반이었다.
입학하고 몇일이 지나서였다..
태혁이 쉬는시간 화장실을 갔을때 철한이 몇몇 아이들과 담배를 피우려 하고 있었다.
태혁이 못본 채 볼일을 본 후 나가려 할 때였다.
"야!"
태혁이 뒤를 돌아보니 철한이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너 문앞에서 짱좀 봐"
태혁은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문밖에서 짱을 볼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더이상 태혁을 부르지 않았다.
수업종이 울리자 철한은 태혁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너 이새끼야..짱보라니까 도망가??..씹팔놈 다음 쉬는시간에 너 죽었어."
철한이 말을 하고 자리에 앉으려 할때 태혁이 녀석의 어깨를 잡아채며 턱에 주먹을 날렸다.
철한은 갑작스런 주먹에 교실바닥에 주저앉은채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진일에 교실안은 찬물 끼언은듯 차갑게 식어갔다.
"너..너 이 개새끼.."
"얌전히 찌그러져있어.."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고 철한은 자리에 앉았다.
"개새끼 쉬는시간에 보자.."
살며시 고개를 뒤로 돌린채 철한이 이를갈며 내뱉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기나긴 수업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철한은 번개같이 태혁에게 주먹을 날렸지만 태혁은 녀석의 주먹을 흘린채 다시금
관자놀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런 상황을 미쳐 생각지 못한 철한은 다시금 바닥으로 쓰러졌고 태혁의 발이 녀석의 배를 후려쳤다..
"컥!"
태혁은 그런 녀석을 뒤로 한채 유유히 교실을 나가버렸다.
철한은 독기있는 녀석이었다.
그뒤로 몇번이나 태혁에게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수없이 얻어터졌다.
언젠가부터 철한은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을 내리 치는 녀석의 표정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어느날인가 부터 태혁을 대하는 철한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그리곤 녀석답지않게 수줍게 말을했다..
"우리..친구먹자.."
태혁도 그런 녀석이 어느샌가 친근하게 느껴져 둘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태혁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짓는 친구가 철한이었다.
"어제,오늘 혼자 어딜가는거야?"
"집.."
"집?? 어두컴컴한 방에 뭐 찾아먹을게 있다고.."
"그집말고."
"아~~"
태혁은 철한에게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해준적이 있었기에 철한은 태혁이 말하는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무슨날이야??"
"응."
"그럼 오늘은 안돼겠네?"
"뭐가??"
"냄비들이랑 술한잔 할려했더니.."
"미안해..혼자가라.."
"혼자 그년들 상대하느라 뼈골빠질일 있냐??..그러지 말고 내일 술한잔하자.."
"그러던지.."
"얼마전에 꼬신년이 있는데..꽤 괜찮아..소개시켜줄게..."
"그래."
"그러고보니 너랑 같이 여자만난적 한번도 없다 그치..!"
태혁은 철한의 말에 살며시 미소짓는다.
녀석은 태혁만큼이나 키가컸고 덩치도 좋았다..하지만 녀석의 말을 듣노라면 외모와 상반되게 가끔 아주 귀엽다는 느낌이 들곤했다.
"그럼 내일 약속한거다.."
"그래.."
철한이 떠나가고 태혁은 다시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태혁아..."
"유미누나.."
태혁이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앉아있던 유미가 뛰듯이 다가와 태혁을 안는다.
"너..정말 너무 나뻐...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저녀석 매정한거 빼면 남는게 있을려고..."
옆에서 음식을 장만하시던 어머니가 웃으며 한 말 거들었다.
"누나 안보고 싶었니??....누난 태혁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안보고싶었어.."
"어머??...엄마 태혁이 말하는것 좀 보세요..."
"유미 네가 좀 때려주렴.후훗"
"풋.."
태혁은 오랜만에 이집에서 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버진..."
태혁은 어렵게 말을꺼내곤 금방 얼굴이 붉어졌다.
"응 아직 안오셨어..오빠도 조금 늦는다고 하고...오히려 잘됐지??"
농담같은 말이었지만 태혁의 맘을 잘 알고 있는 유미의 진심이었다.
유미는 태혁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스스럼 없이 불러대며 애교를 부리곤했다.
태혁은 그런 유미의 행동때문에 더욱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와~~~우리 태혁이 키가 더 큰것같다...그런데 살이 많이 빠진것 같다."
태혁은 웃으며 유미를 바라본다..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웨이브진 긴머리..물기있는 눈동자..물기있는 도톰한 입술..그 입술사이로 그녀의 말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미는 웃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윗치아를 살짝 드러낸채 깊지 않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의 눈은 한없이 맑기만했다.
"오늘도 안오면 찾아가서 때려줄려고 했어..정말 누나 안보고 싶었어?? 응? 응?"
"보고싶었어.."
"우와...태혁이도 그런말 할줄 아는구나..신기하다.."
"풋~"
"하하하하...거봐..웃으니깐 얼마나 보기좋니??"
유미와 태혁은 잠시 동안 이야기하다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를 도왔다.
음식이 다 장만되어질 즈음 아버지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태혁이왔구나...이녀석...잘왔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래..고맙구나.."
잠시 후 태혁은 안방에서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그래..그동안 잘지냈고??"
"네."
"어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하시는거 알지?"
"네.."
"어떠냐..이제 다시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련??"
"죄송합니다.."
"그래...강요할 순 없는일이지...하지만 태혁아..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집으로 들어오렴.."
"...."
"얼마 후면 유석이가 군대를 가는거 알고있니??"
"몰랐습니다"
"유석이 군대가면 집안이 텅빌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네가 그 자리를 메꾸어 주었으면 한다."
"....."
"아버진 니가 내 말을 조금 신중히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네.."
태혁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몇년새 이분의 얼굴에 못보던 주름이 늘어난것 같았다..
그때문일까..이젠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고 느껴지는건...
"네가 집을 나선후 나도 많이 생각했다..그리고 네게 많은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내게 서운한것 많다는거 알고 있다..내가 어리석었다..다시금
내게 기회를 주렴.."
한때는 그랬었다..유석형만을 감싸도는 그를 보며 어느샌가 태혁은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한번 시작된 그런감정은 갈수록
깊어졌었다..새아버지에게도 문제는 있었지만 태혁자신도 먼저 그를 이해할려고 노력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때 태혁은 사춘기였기에 더욱 비틀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조금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더라면..오늘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이제 나가서 저녁 먹어야지..유석이놈은 요즘 제법 늦으니 우리 먼저 먹자.."
"네"
오랫만에 태혁은 가족이란 울타리속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생일상 올라온 맛있는 음식보다 그들이 흘려내는 웃음으로 인해 배부를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낼 즈음 유석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앉거라.."
유석은 지금 대학 사학년이었다..
곧 있을 군입대 때문인지 유석은 요즘 주위사람들 만나는 일로 바쁜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다."
유석이 자리에 앉으며 태혁에게 말을 건냈다.
"네"
"녀석..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자주 찾아뵈라.."
"...."
"자..이제 오빠도 왔으니 촛불 끄셔야죠..."
유미나 눈치 있게 서둘러 케익에 초를 밝혔다..
가족이 부르는 생일 축가뒤로 아버지가 촛불을 끈 후 태혁은 수줍게 준비한 선물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녀석..돈이 어디있다고..고맙구나.."
유미..유석도 선물을 건넸지만 아버진 태혁의 선물을 제일 먼저 풀었다.
평소 정장을 즐겨 입는 아버지에게 태혁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선물했다..
"와~~~이쁘다...넥타이랑 색깔도 잘 맞네..."
"잘 입으마.."
"네.."
뒷쪽에서 과일을 깍던 어머니의 눈에선 어느샌가 또다시 눈물 방울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전과는 의미가 다른 눈물이었다..
태혁이 그들의 가족이 된 후 처음으로 밝게 웃을 수 있는 날이었다.
밖은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리고 있었지만 붉을 밝힌 그 집안은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혁아 자고가.."
유미가 서운한 눈빛으로 태혁의 팔을 잡았다.
"내일 학교갈려면..."
"그렇구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렴."
"네"
태혁이 인사를 하고 돌아설때였다.
"태혁아.."
아버지가 태혁을 불렇다..
"네."
"아버지말 깊이 생각해보거라."
"네"
대답을 한 후 태혁을 발걸음을 옮겼다..
"저 태혁이 앞에까지만 바래다 줄게요.."
어느새 유미가 태혁에게로 뛰어왔다..
"아버지가 뭐라그러셨어??"
"별것아냐"
"말해봐..집에 들어오라고 하셨지??..그렇지?? 응??..응??"
유미가 말을하며 자연스럽게 태혁의 팔짱을 끼었다..
태혁은 흠칫놀라며 유미를 바라본다..그리곤 가볍게 실소를 터트린다.
"그래.."
태혁의 대답과 함께 유미가 태혁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로인해 태혁은 걸음을 멈추고 유미를 바라보았다.
"약속해..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
"오빠도 이젠 예전처럼 못되게 굴지 않아..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잊고 같이 살자"
"생각해볼께.."
"누나..태혁이 안들어오면 매일 전화해서 괴롭힐거야..그리고 울거야..그러니 꼭 들어와 응?? 약속해..."
"누나..."
"누나 믿고 기다릴게...."
"그만 들어가봐 너무 많이 왔어.."
"핏..바로 이앞인걸.."
"누나한텐 위험해.."
"뭐가??"
"누나가....아냐..어서들어가.."
"그래 그럼 조심해서가...전화하면 반갑게 받고.."
"응"
"가..."
유미의 모습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유미누나!"
"응??..왜??"
"고마워.."
"핏..싱겁긴.."
돌아오는길 태혁은 가슴이 뻥 뚫린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라 생각했는데...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쉬운 길이었는데 그동안 왜 그토록 헤메였는지 알 수 없었다.
집을 들어서기 전까지 느꼈던 많은 갈등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오늘 그 집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는 태혁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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