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마법사 1부
으........ 머리야......... 여기가 어디야........ ?
타는듯한 갈증과 세상이 돌아가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나는 서서히 눈을 떳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사물들로 보아 아침인듯 했다. 새벽의 얼마되지않는 햇살사이로 낯선 풍경들이 시각을 찔러왔다. 둥근 천장형광등, 밝은색의 벽지, 냉장고와 옻장, 화장대........ 몸은 꼼짝도 하지않은채 눈만을 굴려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바라보면서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2분 정도 정신을 차리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 한 끝에야 겨우 내 의식은 제자리를 찾는듯했고, 그제서야 내가 어느 여관의 침대위에서 아침을 맞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 그래 어제 녀석들하고 술 마셨지..........
어제는 한 녀석의 생일이었고, 다른 한 녀석에게는 입대환송회였다. 생일과 군대환송회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이상하리만큼 빨리 달구었고, 나를 포함한 녀석들은 엄청난 속도로 술을 들이부었었다. 1차, 2차, 결국 룸까지 갔고...... 결국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하하......... 술마시고 필름 끊긴적이 언제였더라....... 하하...........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에 겸연쩍어하던 나에게 내 목은 여전히 타는듯한 갈증을 호소해왔고, 물병을 찾아들고 컵을 찾을 겨를도없이 마셔댔다.
물병의 물을 반 이상 마셔대고서야 겨우겨우 갈증은 진정되는듯 했고, 비로소 내 코 끝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음........? 뭐야 이거.........
물병을 손에 든 채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그 냄새의 원인을 찾았다.
침대위에는 이불이 둘둘 말린채 무엇인가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자궁 속에 들어있는 태아 마냥 어떤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고, 어제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그게 독사같은 친구녀석 가운데 하나이리라 생각했다.
하하.......... 독사같은 놈들이라도 챙겨주는 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하는데.......?
어느 녀석인지는 몰라도 나를 챙겨주었으리라 생각되는 그 녀석이 고마웠기에 강렬한 그 냄새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침대를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서 새벽의 공기를 한웅큼 들이마셨다. 내 폐속으로 차가운 아침공기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내 속으로 그 공기를 밀어넣고 싶었다.
그 서슬에 놀란것일까, 침대위의 녀석이 몸을 움찔하는 기색이 들렸고,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그 녀석을 깨워 자초지종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가만 침대 곁으로 다가간 나는 발치께의 이불 끝자락을 잡고서 확 당겼다. 그 녀석은 자신의 살갗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가 싫었던지 황급하게 다시 이불을 부여잡고서 돌아누웠고, 그 바람에 베개에 짓눌려있던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어........ 누구야...........이??...........
남자의 머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불 자락 밖으로 새어나오는 낯선 냄새는 도저히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였다.
설마........
불현듯 내 머리속으로 번개같은 하얀것이 때리듯이 지나갔다. 긴머리, 좁은 어깨, 익숙치않은 냄새........ 그러다가 내 눈 속으로 이불자락 밖으로 드러난 하얀 다리가 들어왔다. 지나치게 가는 다리였다. 남자의 다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했고....... 그제서야 내 머리속으로 나와는 다른, 아니 남자와 함께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존재가 들어왔다.
여자......... 누군데.......... 여기 있는거야............?
내 입은 나도 모른채 벌어지기 시작했고 지난 밤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 머리속은 여전히 하얀 공백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지난 밤의 일을 기억하기에는 어제 마신 술이 너무 많았다.
그랬구나......... 그게 여자 냄새였구나........ 그것 참.........
마치 생전처음 맡아보는 것처럼 생경해하면서 나는 아침에 내 코를 자극하던 그 강렬한 냄새를 다시 맡아보았다.
냄새가 콧 속으로 들어오면서 기억속에 있던 여자에대한 기억들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력고사를 치고서 처음으로 독사같은 녀석들과 함께 갔던 사창가, 대학 1학년때 만났던 여자,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되었던 2살위의 여자.........
별로 많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었다.
여자라........ 후훗........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제의 술자리가 파한 뒤에 친구녀석들 가운데 한 놈이 나에게 이 여관을 잡아주면서 여자를 들여보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랬을 만한 녀석이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눈앞의 물체가 꿈틀거렸다.
내 손이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여자의 발목을 잡고있었던 것이다. 내가 손을 놓자 그 다리는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내 눈에는 그 다리의 환영이 남아있었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 곁을 떠나갔던 여자를 생각하면서 내 눈 앞에서 사라진 여자의 다리를 다시금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잊었을 것이라 여겼던 무엇인가가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솟아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욕망이라고 단순히 정의 내리기에는 어려운 무었이었다. 그리움, 소유욕, 흥분, 안타까움........... 여러가지가 뒤섞인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후......... 어쩔수없이 나도 남자란 건가.............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생각 속에 빠져서 과거의 기억들에서 헤매고 있는 와중에도 내 심장은 계속 달렸고, 내 눈 앞에는 여전히 여자의 다리가 남긴 환영이 살아 숨쉬는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낯선 여관방, 낯선 여자의 살내음, 낯선 아침공기의 상쾌함........ 그리고 잊었다고 여겼던 욕망........
....................... ..
얼마나 그런 생각들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내 손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이불을 들추고 있었다.
후욱............
이불이 들춰지자 예의 그 하얀 다리가 다시 내 눈속으로 들어왔고, 여자의 체취가 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여자의 살내음에 흥분했던 것일까....... 내 심장은 가파는 고개를 오르고 있었고 연신 가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 손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의 기억을 따라서 드러난 여자의 종아리 부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손 끝에 와닿는 그 느낌......... 한편으론 생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했던 그것이 전류처럼 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부드러움과 따뜻함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허우적대고 있었다.
좀 더 보고 싶다는, 좀 더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생각되로 내 손은 이불자락을 더 위로 올려붙이고 있었다.
이불이 들춰질수록 드러나는 모습은 내 눈을 마비시켜 나갔다. 더이상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엔 이미 내 코 앞에 여자의 다리가 다가와 있었다.
코 끝에 와닿는 느낌은 손을 타고 다가오는 느낌과는 또 달랐다. 이 느낌이 무었일까...........
난 그 느낌을 조금더 느껴보고 싶었고 내 오른손은 여전히 여자의 종아리 부근에 놔둔채 입을 가져갔다. 무릎이라고 생각되는 그 부분은 내 무릎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고, 혀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약간의 염분기가 느껴지는 너무나 따뜻한 느낌이었다. 내 혀는 마치 어린아이가 사탕을 핥아먹듯이 내 입속에서 움직였고........ 내 혀 때문에 입 속에서 여자의 체모는 반항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음............"
순간 이불 속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고, 화들짝 놀라서 내 손과 입을 떼고말았다. 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여자의 다리도 조금 움직이다 말고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마치 불장난이라도 하다가 들킨 꼬마처럼 놀랐던 나는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름 모를 여자와 첫밤을 보냈을 때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씁씁해 했지만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성이라는 녀석과 본능이라는 녀석이 엮어내는, 이 세상 남자들이라면 철들고서부터 누구나 겪는 혼돈이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생경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여자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네 행동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아니다, 네 자신이 그런 충동에 좌지우지될만큼 냐약한 존재였던가, 네 양심이 지시하는대로 움직여라.......... 양심? 뭐가 양심인가? 본능을 숨긴채 누군가가 강요한 도덕이라는 굴레속에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비양심이 아닌가!.......... 양심은 본능의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본능표출의 올바는 양상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길잡이? 그 웃기는 이성과 본능은 사회에 바뀜에 따라,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런것 아니었던가? 본능은 그자체로 인간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인가?.................
얼마동안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 속에서 들려오는 그런 다툼을 물끄러미 보고있었고, 그러는 동안에 내 심장은 차차 잦아들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아마도 내 속에 들어앉은 이성이라는 놈이 본능이라는 놈을 제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일출전이라 사물이 어둑어둑하게만 보였을 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새벽이란 시간은 나에게 낯선 시간이었고, 그런 만큼 어렵사리 맞이한 이 새벽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
그렇게 침대위에 앉은채, 넋나간 사람마냥 창문 밖을 바라보던 내 귀에 다시금 여자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려 그 모습을 본 내 귀에는 다시 내 심장이 미칠듯이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끗희끗하지만 분명히 내 눈에 들어온 모습은 여자의 가슴언저리였고, 그 가슴은 분명히 두개였던것으로 기억하지만 하나만 드러나 보였다. 그것도 온전한 모습이 아닌 반 정도만...............
모로 누운 여자의 자세때문이었을까......... . 드러난 여자의 왼쪽 가슴은 야간 아래로 흘러내린듯 보였지만 겨드랑이 사이로 낀 이불때문에 단단히 눌려있었다.
이미 내 심장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