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9부
연주는 직장에 출근해서 한동안 일손이 잡히 질 않았다..연재가 어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기 때문이다..수도없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전화는 꺼져있는
상태였다..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네..현두자동차 홍보부 김연주입니다.."
"...누나...나 연재..."
"연재니?? 어디야?? 어떻게된거니??"
"미안,누나 재민이 집에서 같이 있다 그만 잠이 들어서..."
순간, 연주는 걱정했던 마음이 누그러드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재야,,무슨일 있는건 아니지??"
"일은...그런일 없어..많이 걱정했지??..미안해 누나"
"그래...자세한 이야긴 누나 집에 들어가서 하자."
"응..."
연주와의 전화를 끝낸 연재는 눈을 감았다..
마치 어제의 일이 꿈만같았다..
생의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연재는 스스로 더욱 어른이 된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떻을 때 지영이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늦게 잠이든 지영의 잠든 모습이 천사처럼 아름다왔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고 싶었지만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것이 그제서야 마음에 걸렸 다..
연재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지영을 깨워 여관을 나왔다..
여관을 나오면서 둘은 멋쩍은듯 서로 웃음을 지었다..
"집으로 갈거야??"지영이 물었다..
"응..일단 집으로 갔다가 학교로 가야겠지...너는??"
"응...나도.."
"그럼 있다가 연락할게..."
"응..."
지영을 태운 버스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연재는 발걸음을 옮겼다..
재민은 강의를 마친 후 연재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연재는 무슨 바쁜일이 있는지 서둘러 인사만 남기고 훌쩍 가버렸다..
재민은 여지껏 공부도 되질 않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과외집으로 향했다..
몸이 아파서 지난주엔 과외를 쉬었기에 맘이 편칠 안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집문을 여는 사람은 윤경이었다.. "오빠~~~~~~"
"응...윤경이구나...어머닌 어디 가셨니??"
"응..오늘 부부동반 모임있는 날이라서 나가셨어..
." "오빠 많이 아팠다면서??...지금은 괜찮아요??"
윤경은 재민이 많이 걱정된듯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경이한테 미안하구나..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그런말이 어디있어요?? 아파서 못 온건데..그리고..엄마도 오빠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맙다...그럼 지금 혼자 있는거야??"
"네.."
재민이 윤경의 방에 들어온 후 잠시후 윤경이 쥬스를 가지고 왔다..
"오빠 이거 마셔요.."
"그래 ..고마워...가만 우리 어디까지 했더라??"
"응...00까지..."
"아~~~~그랬지??.....자 그럼...."
재민은 서둘러 준비해온 문제들을 펼치며 수업을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불연듯 재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재민은 영은일것이라 생각됐다..하지만 윤경이 앞에 있었기에 할수없이 전화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재민이니??"
뜻밖에도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연주였다..
"아..누나..."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하구나..."
"미안하긴요...무슨일 있으세요??"
"저기..혹시...어재 연재 너와 함께 있었니??"
순간, 재민은 연재가 어제 외박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난 연재는 재민에게 아무말도 없었다...
재민은 조금 망설였으나 이내 대답했다..
"네..어제 연재가 우리집에서 저와 함께 있었어요..연재가 전화를 드리는걸 잊었나 보 네요...죄송해요..저라도 전화드렸어야 하는건데..."
"응..그렇구나...네가 미안할게 뭐있어...그래 알았어..참..몸은 어떠니??"
"네..좋아요..."
"미안하구나..집에 오라고해놓고..푹.쉬게도 못해주고..."
"아니에요..편하고 좋았어요...실은 준비할게 있어서 일찍 온거에요..그러니 그런생각 마세요..."
"그래..집에 자주오고....또 연락하자..."
"네...."
무척이나 떨리는 전화통화를 끝낸후 아직도 귓가에 남아 맴도는 연주누나의 목소리의 여운을 느끼듯 재민은 멍하니 있었다..
"오빠!...오빠!"
윤경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재민은 정신을 차렸다..
"으..응??"
"갑자기 왜 그러세요??..무슨 안좋은 전화였어요??"
"아,아니...신경쓰지마..자..문제는 다 풀었어??"
당황하는 재민을 보며 윤경은 궁금했지만 더이상 묻지는 못했다.
과외시간이 다 지나갔지만 윤경의 부모님은 아직까지 오시질 않았다..
재민은 밤늦은시간 윤경을 홀로 두고 집으로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윤경이 부모님께서 좀 늦으시는 구나.."
"원래 모임있는날은 좀 늦으세요.."
"윤경이 배고프지 않니??"
"배고파요~~"
"그럼 우리 같이 저녁먹을까??"
"와~~~정말요?? 좋아요....히힛"
재민은 윤경과 밖에서 사먹자고 했지만 윤경이 끝끝내 라면을 먹겠다고 고집하는 바람 에 지금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윤경은 냉장고에서 꺼낸 파를 썰고있었다..
"밖에서 맛있는거 사준다니깐...."
"히힛...난 라면이 좋아요...얼마나 맛있다고요..."
재민은 종종 여자들이 분식을 너무나 좋아하는걸 보면 이해가 되지않았다..그렇잖아도 혼자서 종종 라면을 주식으로 해결해야 했던 재민에게 라면이나 밀가루 음식은 여간 괴로운것이 아니었다.
"와~~~~맛있겠다.."
냄비의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나오는 라면을 보며 윤경이 말했다.윤경은 배가 많이 고 팠는지 라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재민도 그런 윤경을 보며 덩달아 맛있게 라면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후 윤경은 차를 내왔다..
재민이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 찰라 윤경이 물었다..
"오빠~ 언제 우리 놀이동산에 한번가요..."
"놀이동산??"
"네...전 그런거 엄청 좋아해요..엄마도 오빠랑 같이 간다고하면 허락하실 거에요.."
재민은 그렇잖아도 윤경의 과외때문에 미안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어머님이 허락하시면 그러도록 하자.."
"정말요?? 그럼 약속"
윤경이 귀엽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재민의 눈앞으로 가져왔다..
윤경의 집에서 나오면서 재민은 연주와의 전화통화를 생각했다.
연재가 분명 어제 연락없이 외박을 한듯했다..
"연재는 누나한테 아무말도 안했던 것일까??"
"연재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것일까??"
생각끝에 재민은 연재가 그렇게 둘러댄 것이라면 연주가 자신을 통해 확인한 것이기에 궂이 연재에게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연재에게 무슨일이 있는건 확실한데..."
무슨 특별한 변화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내일은 연재와 대화를 해봐야겠다..."
재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연재는 지금 지영의 집에 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지영과 만나 지영의 집으로 온것이다..
들어선 순간 여자의 방이란걸 느끼게 하듯 여인의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작은 침대와 텔레비젼..비디오..작은 오디오..한쪽 벽에 늘어선 걸려있는 행가의 옷들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품들...
누가봐도 여자 혼자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지영의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 다...
연재는 침대에 펼쳐져 있던 잡지를 읽고있었다..
지영이 부억에서 차를 끓이는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지영이 차를 끓여 들고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 햐얀색 긴치마로 갈아입은 지영을 보며 연재는 자신이 지영의 남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를 잘 못 끓이는데 이해하고 마셔..."
지영이 수줍게 커피를 건넸다..
연재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한 커피향이 코에 스며들 며 향기로움을 더해주었다..
"맛있기만 한걸...."
"누나한테는 전화했어??"
"응..아까..."
"뭐라그러셔??"
"그냥..재민이 집에서 잤다고 했어..."
"응..."
"참,연재야 나 아르바이트 알아볼려고..."
"아르바이트??"
"응..이젠 새로운 아르바이트 알아봐야지..."
"그,,그래..."
그랬다..연재로 인해 그녀는 더이상 그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이젠 여느 학생 처럼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뭐 생각해 둔거라도 있어??"
"글쎄..아직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나도 같이 알아볼게..실은 나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볼려고 하는 중이었거든..."
연재 또한 계속되진 않았지만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물론 연재에게 부족하진 않을 정도로 누나가 용돈을 주었지만 솔직히 누나에게 용돈을 받아쓴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미안하기만 했다..
"그럼 우리 내일부터 서로 알아보자..."
"그래..."
연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지영의 손을 잡았다...
지영이 연재의 손을 맞잡는다...
지영의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연재에게 느껴졌다..
순간,연재는 지영을 안는다...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연재의 입술이 지영의 입술을 찾는다..
입술이 만나자 그리웠는지 서로의 입술이 벌어진다...
진한 키스속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재민은 하숙방에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다..
비록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재민의 사랑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재민의 연주에 대한 사 랑은 짙어만갔다..그날 병실의 밤을 보내면서 재민에게 연주는 이제 하나의 신앙처럼 굳어져만 갔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멀리오고 만것이다..
재민은 연주가 자신의 사랑이 되지 못한다해도 이제는 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럴수록 하나의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영은이었다..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영은을 거부하지 못한것이 재민은 너무 미안했다...재민이 이 렇게 계속 흐린 관계를 지속할수록 가장 상처를 받을 사람은 다름아닌 영은이었다..
"그래..상처를 줄거라면 어짜피 일찍 말하는게 옳아"
재민은 많은 생각끝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막상 결정은 내렸지만 여린 아이인 영은에게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 다...
여러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재민은 포기하듯 이불을 머리위로 끌어올렸다...
안그래도 연재와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연재가 먼저 재민에게 왔다.
"재민아...."
"아~~연재야..."
"재민아 나..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볼려고.."
"아르바이트??"
"응..아르바이트 쉰지 꽤 됐잖아..이제 다시 해야지.."
"뭐 특별히 하려고 하는건 있어??"
"아니..이제 구해봐야지.."
"요즘 아르바이트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던데..."
"구하다보면 나하나 일할 자리는 생기겠지..."
"그래..참...요즘 무슨일 있냐??"
"무슨일이라니??"
"아니..그냥..좀 바빠보여서..지영이랑은 어때??"
"응...잘지내...실은 지영이랑 사귀는 중이야.."
"그래?? 잘됐구나...정말 잘됐어..."
재민은 연재의 말을 듣곤 정말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고맙다...역시 내걱정해주는 사람은 너하고 누나뿐이다."
"참..누나는 잘 지내시지??"
연재입에서 누나란 말이 나오자 재민은 자신도 모르게 누나에대해 묻는다..
"그럼..잘지내지..참 너.우리누나 생일날 올거지??"
"으응..."
재민은 안그래도 연재에게 그 이야길 듣고 싶어 하던 차였다..
모래가 연주의 생일이었다..
"그래 꼭와~가능하면 영은이도 같이와..나도 지영이 이참에 누나한테 소개시켜 줄려 고해~"
"그래?...그래..나도 가능한한 그러도록 노력해볼게..."
재민은 연재 입에서 영은이 튀어나오자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나지금 지영이하고 약속있어서 그만 가볼게.."
"그래..."
재민은 연재가 가고난후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과외시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무슨 결심이 들었는지 재민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타고 영은의 목소리가 전해왔다..
"나야..재민이.."
"어머..재민아~~~"
영은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묻어났다..
"저기 지금좀 만날 수 있을까??"
"지금??...어디서??"
"내가 너희 학교 근처로 갈게..00에서 만나자..."
"그래..."
영은은 뜻하지 않은 재민의 전화에 기뻐했다...
하지만 재민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영은이 먼저 손짓을 했다..
"오래 기다렸니??"
"아니야..나도 방금왔어.."
재민의 얼굴을 보자 무엇이 그리 기쁜지 영은은 환히 웃음짓는다.
순간,재민은 이런 영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갑자기 무슨일이야?? 재민이가 날 먼저 만나자고 하고.."
재민은 그녀의 말에 또 다시 미안함을 느껴야했다..
"응...할말이 있어서...."
"무슨말??"
얼굴을 재민에게 가까이 하며 영은이 귀엽게 말하자 재민은 맘속의 말을 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우선 차..시키자"
재민은 웨이터를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두잔의 커피가 나오도록 재민은 커피잔을 매만지며 영은의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영은은 재민과 만난것이 너무도 좋은지 연신 이얘기 저얘기 끝이없이 재잘거렸다..
재민은 마음속으론 이야길 꺼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영은의 이 야기에 공허한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영은의 이야기가 잠시 끊어졌을때 재민은 크게 숨을 들이킨 후 드디어 이야길 꺼냈다 ..
"영은아...."
"응??"
"실은 오늘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보자고 했어.."
"뭔데??...."
영은은 궁금한지 눈을 크게 뜨고 재민을 쳐다봤다..
재민은 말을 꺼내고서도 다음말을 쉽게 이어가지 못했다...
순간,영은은 재민이 하려는 이야기가 어려운 이야기임을 느끼며 진지하게 재민을 바라 봤다..
"우리 한강에 갔었던날 기억하니??"
"응.."
"그날 난 과분하게도 니가..날 좋아한다는 소릴 들었었지..."
"......."
"나..여자한테 그런이야기 듣는건 처음이었어...그리고 영은이처럼 예쁘고 착한여자한 테 그런이야길 처음 들었음에 감사해..."
"....."
영은은 묵묵히 재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고있었다..하지만,재민의 이야기를 그정도 에서 끊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더이상 듣다가는 분명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 가 나올것만 같았다.
"너에게 말했었지..널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여기까지 이야기한 재민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재민의 이런맘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아니면 자신의 직감이 부축이기라도 하듯 영은이 말했다..
"하기 힘든이야기라면......나중에 해...."
영은의 말을 듣자 재민은 비로소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번에도 우유부단하다가는 아마도 영원히 말을 꺼낼수 없을것만 같았다..
"아니야..이야기할게...실은 ...나...마음속 깊이 한여자를 사랑하고있어...그 사랑이 너무 강해서 영은이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미안해..."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했다..영은은 조금 식은 커피를 입으로 가 져갔다..하지만 파르르 떨고 있는 입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재민이 이야기를 어 렵게 열때부터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설마..설마했다..영은은 지금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냥 이렇게 앉아있는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것 같았다..
재민은 얼마만큼은 영은의 상태를 느끼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영은아..나 네가 얼마나 나에게 과분한 사람인줄 알아..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너 의 사랑스런 모습들에 나 또한 모든걸 잊고싶기도 했어..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 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기만해져...이런 감정을 가지고 더이상 속이는 자체가 너한테 그리고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나에게 스스로 용서가 되지않았어...미안해..."
재민은 더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영은은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려 무수히 노력했다...
하지만 눈앞의 재민에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분한맘도 슬픈 맘도 느껴지질 않았다...그저 멍했다...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둘사이를 깨어놓은건 영은이었다..
"바보~~~그런말을 그렇게 어렵게하니??...내가 널 좋아하는것 처럼 너도 누군가를 좋 아할수 있는거잖아...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그런말 해준거 고마워...그리고 너무 나한 테 미안해 하지마.."
재민은 침착하게 오히려 자신을 감싸주는 영은의 말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영은은 마지막 남은 평정의 감정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네 사랑이 부디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잘될거야..넌 좋은 아이니까...우리 더이상 밝은이야기는 힘들겠다..오늘은 이만 헤어지자...나 먼저 갈게...."
"영은아~~~~"
재민의 부름을 뒤로하고 영은은 카페를 걸어나갔다..
재민은 영은의 뒷모습을 보다 한동안 영은의 커피잔만을 쳐다보았다...
한편,거리로 나온 영은은 그제서야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한번 흘러내린 눈 물은 그치질않았고 온세상이 뿌옇게 보였다..발은 걷고있었지만 영은은 자신이 걷고있 다는 것조차 느끼질 못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영은을 쳐다보았지만 영은 은 느낄 수 없었다...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 들의 인파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영은과 그렇게 헤어진뒤 재민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기분은 엉망인 채 재민은 윤경의 집을 향했다..
어제 끝내 재민은 윤경의 부모님을 뵙지 못한채 집으로 향했었다.
재민이 윤경의 집으로 들어섰을때 윤경의 어머님이 재민을 반겼다.
"어머..재민학생 어서와요..."
"안녕하셨어요?? 지난주에 과외를 쉬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말 말아요..어머..얼굴이 헬쓱해졌네...아직도 몸이 안좋아보여요..."
"아니에요..이젠 괜찮아요...."
실제로 재민은 몇일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얼굴이 헬쓱했다..
"참..어제는 고마웠어요...모임이 늦어지는 바람에..."
"고맙긴요...저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윤경과 수업을 하면서도 재민은 심난했다...
여린 영은이 걱정되어서 도저히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윤경은 오늘 재민이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완 다르게 무언가 자주 생각에 잠겨있었고 자신이 재민을 부를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오빠~~~~!"
재민은 윤경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윤경을 쳐다본다..
"응?? 왜 어디가 안풀리니??"
"아뇨..그게 아니라 오빠 어디 아파요??"
"아니야..미안하다..잠시 무얼 좀 생각하느라고..."
"네...."
윤경은 재민이 오늘 이상했지만 다시 풀던 문제에 눈을 가져갔다.
"재민 학생 ..저녁 먹고 가요.."
과외를 마치고 나오는 재민에게 윤경어머니가 말했다..
"아..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저녁차려 놨으니 먹고가요..."
"그래요 오빠..."
옆에서 윤경이 재민을 붙잡았다..
재민은 식욕이 없었지만 자신을 위해 저녁상을 차려놓은것을 보곤 할 수 없이 대답했 다..
"네..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차린게 변변하지가 않아서..그래도 많이 먹어요..."
말은 그러했지만 상에는 갖가지 음식이 가득했다..
"참 윤경이가 재민학생이랑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하던데..어떻게 시간이 되요??"
음식을 넘기던 재민은 윤경을 쳐다보았다..
윤경은 음식을 먹으며 베시시 웃고있었다..
"네??...네..그럼요"
"괜히 재민학생 시간 빼앗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괜찮습니다..."
"그리고 윤경이 아버지가 고맙다고 재민학생과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는데 시간 괜찮겠어요??"
"고맙긴요...괜찮습니다...."
"그러지말고 시간한번 내보세요...애 아버지 부탁도 있고 나도 진작부터 한번 그러고 싶었어요.."
이렇게까지 말하자 재민은 달리 더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윤경은 집앞까지 재민을 따라나왔다,,
"오빠..우리 언제 놀이동산에 갈거에요??"
윤경은 말나온김에 확답을 받겠다는듯 물었다..
"윤경이 시간될때 가자..."
"오빠..그럼 이번 주 일요일 어때요??"
"그래..."
"와~~~신난다..."
"이제 그만 들어가봐...."
재민은 하염없이 따라오는 윤경에게 말했다..
"네...그럼 오빠 토요일날 연락하기에요..."
"그래...":
"조심히 가세요.."
인사를 하며 윤경은 집으로 뛰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재민은 심난했다..
아까 낮에 그렇게 영은과 헤어지고 난후 좀처럼 영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 에 맴돌았다..
심난해 하는 재민의 눈앞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재민은 잠시 포장마차에 눈길을 주다 안으로 들어섰다..
술을 마시고 조금은 잊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술기운이 더욱 심난하게 만들었다...재민 은 혼자서 술 한병을 비운뒤 포장마차를 나왔다..낮엔 따스했지만 아직도 아침 저녁은 서늘했다...
취기가 오르는 몸을 추스르며 재민은 하숙방으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려던 재민은 멈칫했다..
문앞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재민은 순간 너무도 놀랐다...영은이었다..
재민은 영은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영은아~~~영은아!"
그제서야 영은이 무릎에 파뭍혀있던 고개를 들며 흐린시선으로 재민을 쳐다본다..
"재..민이구나...."
"어떻게된거야?? 왜 여기서 이러고있어??
"연재한테..연재한테 ...너..사는곳...."
술을 많이 마신듯 영은은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또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영은아!"
재민은 취한 영은을 엎고 하숙방으로 향했다...
연주는 직장에 출근해서 한동안 일손이 잡히 질 않았다..연재가 어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기 때문이다..수도없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전화는 꺼져있는
상태였다..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네..현두자동차 홍보부 김연주입니다.."
"...누나...나 연재..."
"연재니?? 어디야?? 어떻게된거니??"
"미안,누나 재민이 집에서 같이 있다 그만 잠이 들어서..."
순간, 연주는 걱정했던 마음이 누그러드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재야,,무슨일 있는건 아니지??"
"일은...그런일 없어..많이 걱정했지??..미안해 누나"
"그래...자세한 이야긴 누나 집에 들어가서 하자."
"응..."
연주와의 전화를 끝낸 연재는 눈을 감았다..
마치 어제의 일이 꿈만같았다..
생의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연재는 스스로 더욱 어른이 된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떻을 때 지영이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늦게 잠이든 지영의 잠든 모습이 천사처럼 아름다왔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고 싶었지만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것이 그제서야 마음에 걸렸 다..
연재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지영을 깨워 여관을 나왔다..
여관을 나오면서 둘은 멋쩍은듯 서로 웃음을 지었다..
"집으로 갈거야??"지영이 물었다..
"응..일단 집으로 갔다가 학교로 가야겠지...너는??"
"응...나도.."
"그럼 있다가 연락할게..."
"응..."
지영을 태운 버스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연재는 발걸음을 옮겼다..
재민은 강의를 마친 후 연재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연재는 무슨 바쁜일이 있는지 서둘러 인사만 남기고 훌쩍 가버렸다..
재민은 여지껏 공부도 되질 않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과외집으로 향했다..
몸이 아파서 지난주엔 과외를 쉬었기에 맘이 편칠 안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집문을 여는 사람은 윤경이었다.. "오빠~~~~~~"
"응...윤경이구나...어머닌 어디 가셨니??"
"응..오늘 부부동반 모임있는 날이라서 나가셨어..
." "오빠 많이 아팠다면서??...지금은 괜찮아요??"
윤경은 재민이 많이 걱정된듯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경이한테 미안하구나..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그런말이 어디있어요?? 아파서 못 온건데..그리고..엄마도 오빠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맙다...그럼 지금 혼자 있는거야??"
"네.."
재민이 윤경의 방에 들어온 후 잠시후 윤경이 쥬스를 가지고 왔다..
"오빠 이거 마셔요.."
"그래 ..고마워...가만 우리 어디까지 했더라??"
"응...00까지..."
"아~~~~그랬지??.....자 그럼...."
재민은 서둘러 준비해온 문제들을 펼치며 수업을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불연듯 재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재민은 영은일것이라 생각됐다..하지만 윤경이 앞에 있었기에 할수없이 전화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재민이니??"
뜻밖에도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연주였다..
"아..누나..."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하구나..."
"미안하긴요...무슨일 있으세요??"
"저기..혹시...어재 연재 너와 함께 있었니??"
순간, 재민은 연재가 어제 외박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난 연재는 재민에게 아무말도 없었다...
재민은 조금 망설였으나 이내 대답했다..
"네..어제 연재가 우리집에서 저와 함께 있었어요..연재가 전화를 드리는걸 잊었나 보 네요...죄송해요..저라도 전화드렸어야 하는건데..."
"응..그렇구나...네가 미안할게 뭐있어...그래 알았어..참..몸은 어떠니??"
"네..좋아요..."
"미안하구나..집에 오라고해놓고..푹.쉬게도 못해주고..."
"아니에요..편하고 좋았어요...실은 준비할게 있어서 일찍 온거에요..그러니 그런생각 마세요..."
"그래..집에 자주오고....또 연락하자..."
"네...."
무척이나 떨리는 전화통화를 끝낸후 아직도 귓가에 남아 맴도는 연주누나의 목소리의 여운을 느끼듯 재민은 멍하니 있었다..
"오빠!...오빠!"
윤경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재민은 정신을 차렸다..
"으..응??"
"갑자기 왜 그러세요??..무슨 안좋은 전화였어요??"
"아,아니...신경쓰지마..자..문제는 다 풀었어??"
당황하는 재민을 보며 윤경은 궁금했지만 더이상 묻지는 못했다.
과외시간이 다 지나갔지만 윤경의 부모님은 아직까지 오시질 않았다..
재민은 밤늦은시간 윤경을 홀로 두고 집으로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윤경이 부모님께서 좀 늦으시는 구나.."
"원래 모임있는날은 좀 늦으세요.."
"윤경이 배고프지 않니??"
"배고파요~~"
"그럼 우리 같이 저녁먹을까??"
"와~~~정말요?? 좋아요....히힛"
재민은 윤경과 밖에서 사먹자고 했지만 윤경이 끝끝내 라면을 먹겠다고 고집하는 바람 에 지금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윤경은 냉장고에서 꺼낸 파를 썰고있었다..
"밖에서 맛있는거 사준다니깐...."
"히힛...난 라면이 좋아요...얼마나 맛있다고요..."
재민은 종종 여자들이 분식을 너무나 좋아하는걸 보면 이해가 되지않았다..그렇잖아도 혼자서 종종 라면을 주식으로 해결해야 했던 재민에게 라면이나 밀가루 음식은 여간 괴로운것이 아니었다.
"와~~~~맛있겠다.."
냄비의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나오는 라면을 보며 윤경이 말했다.윤경은 배가 많이 고 팠는지 라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재민도 그런 윤경을 보며 덩달아 맛있게 라면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후 윤경은 차를 내왔다..
재민이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 찰라 윤경이 물었다..
"오빠~ 언제 우리 놀이동산에 한번가요..."
"놀이동산??"
"네...전 그런거 엄청 좋아해요..엄마도 오빠랑 같이 간다고하면 허락하실 거에요.."
재민은 그렇잖아도 윤경의 과외때문에 미안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어머님이 허락하시면 그러도록 하자.."
"정말요?? 그럼 약속"
윤경이 귀엽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재민의 눈앞으로 가져왔다..
윤경의 집에서 나오면서 재민은 연주와의 전화통화를 생각했다.
연재가 분명 어제 연락없이 외박을 한듯했다..
"연재는 누나한테 아무말도 안했던 것일까??"
"연재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것일까??"
생각끝에 재민은 연재가 그렇게 둘러댄 것이라면 연주가 자신을 통해 확인한 것이기에 궂이 연재에게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연재에게 무슨일이 있는건 확실한데..."
무슨 특별한 변화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내일은 연재와 대화를 해봐야겠다..."
재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연재는 지금 지영의 집에 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지영과 만나 지영의 집으로 온것이다..
들어선 순간 여자의 방이란걸 느끼게 하듯 여인의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작은 침대와 텔레비젼..비디오..작은 오디오..한쪽 벽에 늘어선 걸려있는 행가의 옷들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품들...
누가봐도 여자 혼자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지영의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 다...
연재는 침대에 펼쳐져 있던 잡지를 읽고있었다..
지영이 부억에서 차를 끓이는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지영이 차를 끓여 들고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 햐얀색 긴치마로 갈아입은 지영을 보며 연재는 자신이 지영의 남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를 잘 못 끓이는데 이해하고 마셔..."
지영이 수줍게 커피를 건넸다..
연재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한 커피향이 코에 스며들 며 향기로움을 더해주었다..
"맛있기만 한걸...."
"누나한테는 전화했어??"
"응..아까..."
"뭐라그러셔??"
"그냥..재민이 집에서 잤다고 했어..."
"응..."
"참,연재야 나 아르바이트 알아볼려고..."
"아르바이트??"
"응..이젠 새로운 아르바이트 알아봐야지..."
"그,,그래..."
그랬다..연재로 인해 그녀는 더이상 그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이젠 여느 학생 처럼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뭐 생각해 둔거라도 있어??"
"글쎄..아직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나도 같이 알아볼게..실은 나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볼려고 하는 중이었거든..."
연재 또한 계속되진 않았지만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물론 연재에게 부족하진 않을 정도로 누나가 용돈을 주었지만 솔직히 누나에게 용돈을 받아쓴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미안하기만 했다..
"그럼 우리 내일부터 서로 알아보자..."
"그래..."
연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지영의 손을 잡았다...
지영이 연재의 손을 맞잡는다...
지영의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연재에게 느껴졌다..
순간,연재는 지영을 안는다...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연재의 입술이 지영의 입술을 찾는다..
입술이 만나자 그리웠는지 서로의 입술이 벌어진다...
진한 키스속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재민은 하숙방에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다..
비록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재민의 사랑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재민의 연주에 대한 사 랑은 짙어만갔다..그날 병실의 밤을 보내면서 재민에게 연주는 이제 하나의 신앙처럼 굳어져만 갔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멀리오고 만것이다..
재민은 연주가 자신의 사랑이 되지 못한다해도 이제는 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럴수록 하나의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영은이었다..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영은을 거부하지 못한것이 재민은 너무 미안했다...재민이 이 렇게 계속 흐린 관계를 지속할수록 가장 상처를 받을 사람은 다름아닌 영은이었다..
"그래..상처를 줄거라면 어짜피 일찍 말하는게 옳아"
재민은 많은 생각끝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막상 결정은 내렸지만 여린 아이인 영은에게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 다...
여러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재민은 포기하듯 이불을 머리위로 끌어올렸다...
안그래도 연재와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연재가 먼저 재민에게 왔다.
"재민아...."
"아~~연재야..."
"재민아 나..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볼려고.."
"아르바이트??"
"응..아르바이트 쉰지 꽤 됐잖아..이제 다시 해야지.."
"뭐 특별히 하려고 하는건 있어??"
"아니..이제 구해봐야지.."
"요즘 아르바이트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던데..."
"구하다보면 나하나 일할 자리는 생기겠지..."
"그래..참...요즘 무슨일 있냐??"
"무슨일이라니??"
"아니..그냥..좀 바빠보여서..지영이랑은 어때??"
"응...잘지내...실은 지영이랑 사귀는 중이야.."
"그래?? 잘됐구나...정말 잘됐어..."
재민은 연재의 말을 듣곤 정말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고맙다...역시 내걱정해주는 사람은 너하고 누나뿐이다."
"참..누나는 잘 지내시지??"
연재입에서 누나란 말이 나오자 재민은 자신도 모르게 누나에대해 묻는다..
"그럼..잘지내지..참 너.우리누나 생일날 올거지??"
"으응..."
재민은 안그래도 연재에게 그 이야길 듣고 싶어 하던 차였다..
모래가 연주의 생일이었다..
"그래 꼭와~가능하면 영은이도 같이와..나도 지영이 이참에 누나한테 소개시켜 줄려 고해~"
"그래?...그래..나도 가능한한 그러도록 노력해볼게..."
재민은 연재 입에서 영은이 튀어나오자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나지금 지영이하고 약속있어서 그만 가볼게.."
"그래..."
재민은 연재가 가고난후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과외시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무슨 결심이 들었는지 재민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타고 영은의 목소리가 전해왔다..
"나야..재민이.."
"어머..재민아~~~"
영은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묻어났다..
"저기 지금좀 만날 수 있을까??"
"지금??...어디서??"
"내가 너희 학교 근처로 갈게..00에서 만나자..."
"그래..."
영은은 뜻하지 않은 재민의 전화에 기뻐했다...
하지만 재민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영은이 먼저 손짓을 했다..
"오래 기다렸니??"
"아니야..나도 방금왔어.."
재민의 얼굴을 보자 무엇이 그리 기쁜지 영은은 환히 웃음짓는다.
순간,재민은 이런 영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갑자기 무슨일이야?? 재민이가 날 먼저 만나자고 하고.."
재민은 그녀의 말에 또 다시 미안함을 느껴야했다..
"응...할말이 있어서...."
"무슨말??"
얼굴을 재민에게 가까이 하며 영은이 귀엽게 말하자 재민은 맘속의 말을 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우선 차..시키자"
재민은 웨이터를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두잔의 커피가 나오도록 재민은 커피잔을 매만지며 영은의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영은은 재민과 만난것이 너무도 좋은지 연신 이얘기 저얘기 끝이없이 재잘거렸다..
재민은 마음속으론 이야길 꺼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영은의 이 야기에 공허한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영은의 이야기가 잠시 끊어졌을때 재민은 크게 숨을 들이킨 후 드디어 이야길 꺼냈다 ..
"영은아...."
"응??"
"실은 오늘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보자고 했어.."
"뭔데??...."
영은은 궁금한지 눈을 크게 뜨고 재민을 쳐다봤다..
재민은 말을 꺼내고서도 다음말을 쉽게 이어가지 못했다...
순간,영은은 재민이 하려는 이야기가 어려운 이야기임을 느끼며 진지하게 재민을 바라 봤다..
"우리 한강에 갔었던날 기억하니??"
"응.."
"그날 난 과분하게도 니가..날 좋아한다는 소릴 들었었지..."
"......."
"나..여자한테 그런이야기 듣는건 처음이었어...그리고 영은이처럼 예쁘고 착한여자한 테 그런이야길 처음 들었음에 감사해..."
"....."
영은은 묵묵히 재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고있었다..하지만,재민의 이야기를 그정도 에서 끊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더이상 듣다가는 분명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 가 나올것만 같았다.
"너에게 말했었지..널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여기까지 이야기한 재민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재민의 이런맘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아니면 자신의 직감이 부축이기라도 하듯 영은이 말했다..
"하기 힘든이야기라면......나중에 해...."
영은의 말을 듣자 재민은 비로소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번에도 우유부단하다가는 아마도 영원히 말을 꺼낼수 없을것만 같았다..
"아니야..이야기할게...실은 ...나...마음속 깊이 한여자를 사랑하고있어...그 사랑이 너무 강해서 영은이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미안해..."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했다..영은은 조금 식은 커피를 입으로 가 져갔다..하지만 파르르 떨고 있는 입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재민이 이야기를 어 렵게 열때부터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설마..설마했다..영은은 지금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냥 이렇게 앉아있는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것 같았다..
재민은 얼마만큼은 영은의 상태를 느끼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영은아..나 네가 얼마나 나에게 과분한 사람인줄 알아..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너 의 사랑스런 모습들에 나 또한 모든걸 잊고싶기도 했어..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 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기만해져...이런 감정을 가지고 더이상 속이는 자체가 너한테 그리고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나에게 스스로 용서가 되지않았어...미안해..."
재민은 더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영은은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려 무수히 노력했다...
하지만 눈앞의 재민에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분한맘도 슬픈 맘도 느껴지질 않았다...그저 멍했다...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둘사이를 깨어놓은건 영은이었다..
"바보~~~그런말을 그렇게 어렵게하니??...내가 널 좋아하는것 처럼 너도 누군가를 좋 아할수 있는거잖아...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그런말 해준거 고마워...그리고 너무 나한 테 미안해 하지마.."
재민은 침착하게 오히려 자신을 감싸주는 영은의 말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영은은 마지막 남은 평정의 감정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네 사랑이 부디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잘될거야..넌 좋은 아이니까...우리 더이상 밝은이야기는 힘들겠다..오늘은 이만 헤어지자...나 먼저 갈게...."
"영은아~~~~"
재민의 부름을 뒤로하고 영은은 카페를 걸어나갔다..
재민은 영은의 뒷모습을 보다 한동안 영은의 커피잔만을 쳐다보았다...
한편,거리로 나온 영은은 그제서야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한번 흘러내린 눈 물은 그치질않았고 온세상이 뿌옇게 보였다..발은 걷고있었지만 영은은 자신이 걷고있 다는 것조차 느끼질 못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영은을 쳐다보았지만 영은 은 느낄 수 없었다...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 들의 인파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영은과 그렇게 헤어진뒤 재민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기분은 엉망인 채 재민은 윤경의 집을 향했다..
어제 끝내 재민은 윤경의 부모님을 뵙지 못한채 집으로 향했었다.
재민이 윤경의 집으로 들어섰을때 윤경의 어머님이 재민을 반겼다.
"어머..재민학생 어서와요..."
"안녕하셨어요?? 지난주에 과외를 쉬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말 말아요..어머..얼굴이 헬쓱해졌네...아직도 몸이 안좋아보여요..."
"아니에요..이젠 괜찮아요...."
실제로 재민은 몇일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얼굴이 헬쓱했다..
"참..어제는 고마웠어요...모임이 늦어지는 바람에..."
"고맙긴요...저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윤경과 수업을 하면서도 재민은 심난했다...
여린 영은이 걱정되어서 도저히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윤경은 오늘 재민이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완 다르게 무언가 자주 생각에 잠겨있었고 자신이 재민을 부를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오빠~~~~!"
재민은 윤경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윤경을 쳐다본다..
"응?? 왜 어디가 안풀리니??"
"아뇨..그게 아니라 오빠 어디 아파요??"
"아니야..미안하다..잠시 무얼 좀 생각하느라고..."
"네...."
윤경은 재민이 오늘 이상했지만 다시 풀던 문제에 눈을 가져갔다.
"재민 학생 ..저녁 먹고 가요.."
과외를 마치고 나오는 재민에게 윤경어머니가 말했다..
"아..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저녁차려 놨으니 먹고가요..."
"그래요 오빠..."
옆에서 윤경이 재민을 붙잡았다..
재민은 식욕이 없었지만 자신을 위해 저녁상을 차려놓은것을 보곤 할 수 없이 대답했 다..
"네..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차린게 변변하지가 않아서..그래도 많이 먹어요..."
말은 그러했지만 상에는 갖가지 음식이 가득했다..
"참 윤경이가 재민학생이랑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하던데..어떻게 시간이 되요??"
음식을 넘기던 재민은 윤경을 쳐다보았다..
윤경은 음식을 먹으며 베시시 웃고있었다..
"네??...네..그럼요"
"괜히 재민학생 시간 빼앗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괜찮습니다..."
"그리고 윤경이 아버지가 고맙다고 재민학생과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는데 시간 괜찮겠어요??"
"고맙긴요...괜찮습니다...."
"그러지말고 시간한번 내보세요...애 아버지 부탁도 있고 나도 진작부터 한번 그러고 싶었어요.."
이렇게까지 말하자 재민은 달리 더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윤경은 집앞까지 재민을 따라나왔다,,
"오빠..우리 언제 놀이동산에 갈거에요??"
윤경은 말나온김에 확답을 받겠다는듯 물었다..
"윤경이 시간될때 가자..."
"오빠..그럼 이번 주 일요일 어때요??"
"그래..."
"와~~~신난다..."
"이제 그만 들어가봐...."
재민은 하염없이 따라오는 윤경에게 말했다..
"네...그럼 오빠 토요일날 연락하기에요..."
"그래...":
"조심히 가세요.."
인사를 하며 윤경은 집으로 뛰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재민은 심난했다..
아까 낮에 그렇게 영은과 헤어지고 난후 좀처럼 영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 에 맴돌았다..
심난해 하는 재민의 눈앞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재민은 잠시 포장마차에 눈길을 주다 안으로 들어섰다..
술을 마시고 조금은 잊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술기운이 더욱 심난하게 만들었다...재민 은 혼자서 술 한병을 비운뒤 포장마차를 나왔다..낮엔 따스했지만 아직도 아침 저녁은 서늘했다...
취기가 오르는 몸을 추스르며 재민은 하숙방으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려던 재민은 멈칫했다..
문앞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재민은 순간 너무도 놀랐다...영은이었다..
재민은 영은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영은아~~~영은아!"
그제서야 영은이 무릎에 파뭍혀있던 고개를 들며 흐린시선으로 재민을 쳐다본다..
"재..민이구나...."
"어떻게된거야?? 왜 여기서 이러고있어??
"연재한테..연재한테 ...너..사는곳...."
술을 많이 마신듯 영은은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또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영은아!"
재민은 취한 영은을 엎고 하숙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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