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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44 2,204회 0건
목이의 모험(완결)

어렴풋한 감각에 한년이는 꿈속에서도 방황하고 있었다. |
"이런 숏도...할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평소에 짝사랑하던 창이 오빠의 품에 안겨 따땃한 아랫도리를 맘껏 제공하고 싶은 꿈속 제맘과는 달리 창이 오빠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 느긋하게..안타깝게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아호..거길....제대로 해야지....으흐...미쳐."
한년이의 안타까움은 절정에 달해 꼬물락 꼬물락 엉덩이가 손바닥을 따라다니며 안타깝게 밀어부친다. 하지만 꿈이 달리 꿈이랴? 맘먹은 대로 다 되면 뭣땀시 꿈이여. 새끼줄로 동여맨 듯, 동아줄로 동여맨 듯 한년이의 몸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덜 못하고 물먹은 솜뭉치 등짐 진 나귀모냥 천근만근 나락으로 빠져든다.
솟구친 젖꼭지는 양지바른 무덤꼭대기 쇠말뚝처럼 꼿꼿하고, 나지막한 동산 언덕 잔디가 무성한 샘은 한겨울 온천마냥 김이 모락모락 낮은데로 흘러넘치며 넘치는 물길따라 가물치 한 마리 유혹을 하는디...이놈의 가물치는 가물치콧구녕.....영 감이 빠가야로다. 창이오빠 대역 목이는 오날날 시근벌떡 따땃하다 못해 푸들푸들 시뻘겋게 달궈진 옥수수 한자루를 한손으로 부여잡고, 한손으로는 한년이의 옹달샘을 희롱하며 곧 다가올 축포터지는 시간을 예비하고 있겄다.
머리속에 무지개가 그려지고 아롱아롱 봄날 풀밭에 메뚜기떼가 난데없이 뛰어날더라. 군옥수수 흔들어볼 염두도 내지 못하고 안타까움은 더해만 가네....아이고오..목이 죽네... 속으로 외쳐불며 콧김소리 조절하랴, 꿈틀거리고픈 아랫도리 제어하랴 바쁘다 바뻐. 잔디밭 새 옹달샘 건들면 샘주인 깰까봐 감히 언접도 못하던 목이의 손가락 하나가 발을 헛디뎌 퐁당 빠져버린다.
엇 뜨거라 후닥닥 뛰어나오고 보니 샘임자는 싫은 기색없이 오히려 살포시 다리를 열어 너 가져라 하네 . 살며시 한발 다시 담궈보니 뜨끈하니 좋네. 한발 더 담그어 보니 어허..천국이여... 목이는 본격적으로 작심을 하고 퐁당 뛰어든다. 둔팅이 한년이는 맷돌에 깔린 민며느리 신세로 꼼짝도 못하고 미꾸라지 한 마리 흙탕물을 휘젓는다. 얼래 미끈거리는거....매끈매끈...뜨끈뜨끈...
제 죽을 줄 모르고 미꾸라지 한 마리 온 물울 휘젓누나.. 초짜깡패 꼴을 보니 한년이의 불편한 숨소리와 억지로 참아내는 목이의 숨소리로 미루어 이미 일은 벌어졌나보다. 짐작에 상상을 보탠 귀는 열릴 대로 열리고 오관이 전부 제 앞 이불 속으로 쏠리넌디 이미 떠들썩한 고스톱판은 놈의 생각에서 멀어졌구나.
젊은 혈기 감당못해 사고를 저지른 목이놈도 놈이지만 한년이 누님도 동생칭구와 붙을 지경이면 이건 자유연애주의자가 아니라 아예 횟집을 차려도 되겠다. 비린내도 안 가신 날날한 어린 횟감 초장도 안 바르고 꿀꺽 삼키다니.....
내가 바보여! 평소에 누나가 귀한 놈들뿐이라서 미련곰탱이건 프리섹스지상주의개걸레건 간에 항상 연모의 정을 품어오던 한년이였기에 초짜놈의 가슴은 억장이 미어지고 찢어지는구나.
평소에 남들은 저를 바보라고 생각하건만 저는 절대로 바보가 아니라고 믿어왔던 순진한 놈의 가슴은 와글와글 도깨비가 들끓고 여기저기서 화산이 피식거리며 터져오른다. 홧김에 부엌칼을 년놈들의 모가지에 꽂아넣고 인생 마감할까하는 생각이 초짜놈의 도깨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디...이게 웬 난리여... 느닷없이 꼰대성님이 출현해서 일을 망가뜨리네...너 이눔...목이 오늘 형님땜시 목숨건졌다.
화성카페 E.T마담(그 당시 영화 E.T가 개봉됐었던가? 잘 몰르겄다) 궁뎅이에 질펀하게 틀어박았던 손을 씻지도 않고 지릿한 내음을 흐뭇하게 맡으며 딸년방을 활딱 열어젖힌 꼰대성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덜이 노름질을 하는 광경이었다. "이런 씨부랄 새끼덜이...대그빡에 잉크도 안 마른 놈들이 노름이냐?"
일단 아버지의 자격으로 욕을 버럭 질러놓고 방안에 후다닥 뛰어들어오니 파랗게 질린 십오인조 어둠의 개새들은 오들오들 떨며 자유당깡패의 엄청난 박력앞에 초라해진다. "숏만한 새끼덜이.................."
고만고만하게 자라나는 자식의 모습을 흐뭇한 기대속에, 때로는 금을 캐는 광부의 가슴으로.....백경을 때려잡는 에이허브선장(이 양반 아는 남의 나라 얘기가 딱 이거 하나라..인용하는 바)의 용맹한 기상으로 큰남자(두목)가 되라고 누누이 훈계하던 꼰대성님 마음이 약해졌다.
"까짓 노름이야 남자의 의무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아 겁에 질려 뻣뻣해진 아들의 칭구들을 주욱 둘러보며 맥주냄새 풍기는 목소리로 한소리 한다.
"야~! 얼마짜리냐?"
"백원짜린디유..."
간신히 기어나오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들놈의 손에 흔쾌히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붙이고 자기도 끼자는 소리를 간신히 접어넣고 일어나며 다시 한소리가 나간다.
"밤새진 마라이.....내일 공부해야 하니께..."
글공분지 쌈공분진 몰라도 공부는 공부다. 功夫가 맞는진 몰라도 쿵푸의 우리말 발음은 공부다. (사족-확인해 볼 사람은 PCE에뮬 중에 쿵푸....찾아봐라. 타이틀에 한자로 나옹께...)
초짜깡패 쌈질에 느느니 "아야! 아야!" 청춘의 훈장 아야자국만 남는다. 훌쩍 일어나며 방안을 살피니 꼰대성님의 레이다에 두가지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꽁꽁 고이고이......폼으로 갖다놓은 세계문학전집 뒤편에 숨겨놓았던 군납딱지가 선명하고 파르란 양주병이 어린새끼덜 피우던 재떨이 옆에 빈병으로 누워있다.
송충이 눈썹이 울그락불그락 파르라니 떨리는디 가만히 보니 양주병을 깟을성 싶은 세년놈은 사이도 좋게 나란히 누워서 숨을 쥑이고 있다.
"이것들을..."
새삼스럽게 아빠의 체면이 생각난 꼰대성님은 암말도 않고 나갈라고 하는디 가만히 봉께 아들 친구중에도 젤 쪼그만게 젤 극성스런 자식이 딸년이랑 발과 발이 꼬인게 불현듯 보인다. "이것들이...." 발이 걸린 듯, 모션을 쓰면서 휙허니 이불을 걷어봉께....이것이 웬일이여. 두 년놈이 다정스럽게 팔과 팔을 맏잡고 거의 끌어안고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고 있네. 이것이 뭔일이냐....하늘이 콰쾅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꼰대성님은 이를 바드득 갈아버렸다.
"갈데까지 갔구먼."
젠..이냥반까지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한년이는 한년이대로 꿈속에서 창이오빠와 열렬하고 진한 연애도중이었고 목이는 목이대로 맞아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칭구의 누나를 희롱하던 와중에 와장창 집이 무너지는 대갈일성에 화들짝 놀라 남의 사타구니에 들었던 손을 빼고 내 사타구니에 들었던 손도 빼고 얼떨결에 잡은 것이 상대의 팔이었을 뿐이고 한년이와 목이는 진실로 연애와는 무관한 사이였던 것이더라. 한년이로 봐서도 별로 목이랑 거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 당연지사고....
헌데..이 양반은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걸로 오인에 오인을 거듭하고 있더라. 생각해 보라. 불같은 연정이 가슴을 치고, 봄날 살랑거리는 바람만 스쳐도 방향이 새끈달짝하게 풍길 꽃같은 나이의 처녀총각이라고는 해도, 동생친구고 누난디 한자리에 누워 다리 좀 꼬이고 윗몸 살짝 붙였다고 아랬도리까지 붙었다고 착각을 하다니...이 냥반 인생 헛살았다... (뭐 허긴....목이놈이 하긴 넘 했지만도....)
어쨌건 착각이 병이라도 마음만은 침착을 금새 되찾아 냉정하게 계산이 돌아가는 우리의 아바이성님.....그때만은 흉악무도하던 마음에도 아버지로서의 자애로움이 따스하게 깃들었다는 야그...
"내가 여기서 벌컥 화를 내고 이놈을 잡아족치면 지깟게 맞아죽어야지 별수야 있겠냐만 그리 되면 내 딸년은 어쩌나?"
상상은 갖은 상상을 더하고 날개를 달아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다 다시 지상으로 떨어졌다. "음..결심했어!" 중대한 결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지고 말보다 주먹이 빠른 깡패생활이 천직이라 믿고 있었던 아바이성님은 곧장 목이의 뒷덜미를 잡아 번쩍 들었다.
"이놈...일어나라.."
목이는 자신의 무모함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저 솥뚜껑만한 주먹으로 몇대나 맞으면 죽을까 오리발을 내밀까 그냥 순순히 시인하고 감형을 받을까 열심히 머리가 돌아가고 있다.
"아흠....아..아버님..왜 그러세요?"
졸린 목소리를 한껏 과장해서 진짜로 잠만 잤음을 몸으로 보여주려 필생의 연기력을 짜내어 삶과 죽음의 문턱에 발바닥을 올려놓는다.
"너 이놈.... 나랑 얘기 좀 하자."
질질질 개 끌려가는 심정으로 뒷목을 달랑 들리운 채 꼰대성님의 손에 끌려가는 목이를 열세놈의 개새들은 왜저리도 무참하게..하는 심정으로...한놈의 초짜 개새는 내가 저럴줄 알았지..형님 파이팅..하는 심정으로 멀거니 보고 있었다.
"이새끼들..친구도 필요없구나....말려주기라도 하지..."
하지만..누가 감히 자유당중진깡패의 손에서 불쌍한 목이의 목숨을 구해주려고 자기 목숨을 버릴수 있으랴?
"누나 깨워서 내 방으로 보내라."
목이의 모습이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에게 끌려 들어가는 악당의 늘어진 몸뚱이마냥 휘리릭 방문안으로 사라지고 나자 걸쭉한(형님께선 무쟈게 자애로우신 음성) 음성이 열네놈의 개새들에게 들려온다.
"한년이랑 목이놈이 개입된 무언가 중대하고 미묘한 사건"임을 감지한 열세놈의 눈길이 한놈에게 쏠린다. 이 놈은 얼떨결에 자신에게 집중된 눈초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검지와 중지사이에 엄지손가락을 꽂아넣어 치켜든다.
"허헉....씹.."
무려 열네놈의 눈을 피해 공공장소에서 거시기를 한 목이놈의 추잡스러움에 전율하며, 한편으로는 놈의 용기에 감탄을 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로 목숨이 끊어질 삶에 대한 동정까지 어린 눈길이 번쩍번쩍 개새들간에 교차한다.
"진짜냐?"
끄덕끄덕..... "저 눔...진짜 죽었다." 정작 한년이는 이게 뭔소린가 싶어 깬 척도 못하고 안깬 척도 못하고 옴쭉을 못하고 있었다. "씹이 뭔 소리냐? 저 어린새랑 나랑 뭔.......?" 하고 생각하던 한년이...언뜻 자신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감지한다.
"이....이런..개자식이...."
부라쟈는 말려올라가 맨젖이 내복안에서 둥둥 떠다니고 아랫도리 빤쓰 사이로는 시냇물이 끈적하게 흐른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목이놈의 손에 농락당한 진실을 알게 된 한년이! 부시럭거리며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누운 채로 가다듬고 매몰차게 자리를 차고 일어난다.
성범죄에 대한 고발정신으로 순식간에 중무장한 한년이 저벅거리며 아빠방으로 향하다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으니...이순자 마음이 전두환 마음이랄까? 이심전심...그래도 구여운 동생친구들인디...한놈이 죽으면 다른 놈들 맘이 얼매나 아플까? 측은지심도 병이라고 한년이 매몰차던 생각을 변덕스럽게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오리발로 마음을 정하고 세문반짜리 물갈퀴쓰레빠를 절벅거리며 보무당당하게 아빠 방문을 연 한년이...순간 황당해서 입이 딱 벌어진다.
"술상 좀 봐 오너라."
마패마크 선명한 군납위스키 마패가 또 한 병 떡 허니 아빠와 목이놈 사이에 벌떡 서 있다. 어쨌건 스토리가 너무 황당하다고 시비걸지 말자. 어린시절 공부못한 놈 없고, 고등학교 때 안 놀았던 놈 없고, 군대가서 고생 안 한 놈 없고, 방위 받고 특수부대 안 나온 놈 없더라. 뻥은 뻥으로.....썰은 썰로.......그리 알고 그냥 보고 듣자. 묘하게 스토리가 이상해진다고 생각한 건 한년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쩐지 많이 보던 연속극 스토리가 생각이 난 한년이...다른 건 미련곰팅인디 이런 건 워찌 그리도 빨리 돌아가는지...제꺽 돌아가는 물레야가 머리속에서 빙글 맴을 돈다.
큰맘먹고 작년 여름에 장만한 냉장고를 뒤져봐야 안주거리 나올 리가 없고 겨우 김치 한 보시기랑 금년운수 대통하라고 방문 위에 걸고 남은 북어 한 마리가 나온다. 소주잔 두 개 달랑 올려놓고 보니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얼핏 쏟아졌으면...한년이가 아니지... 개다리 소반에 주섬주섬 올려놓고 마루에 올려놓는데 동생친구놈들이 방문을 열고 무언가 흔든다.
오징어 한 마리 받아서 접시 위에 받쳐놓고 방안에 내려놓으니 아버지 얼굴이 금새 화안해진다.
"어쩐 일로 오징어가 다 있다냐? 너도 이리 앉어라."
이쯤 되면 짐작할 만한 인사들은 스토리가 어찌 돌아가는지 짐작을 했을 것이다. 목이는 불길한 예감으로 꿇어앉은 몸을 떨고 있었다. 한년이도 곱게 내리깔은 눈꺼풀이 파르라니 떨며 무슨 얘기가 나올 것인지 답답한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고, 방문 밖 마루 밑에는 스파이 개귀신이 한 마리 진을 치고 숨을 죽이며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여기서 꼰대성님이 초고수였다면 젓가락이 문풍지를 뚫고 마루기둥에 박혔겠지만...다행이도 이 냥반..그리 고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라...스파이 개귀신은 감지를 못하시었다.
"느그들....얼마나 됐냐?"
최대한 인자하게 나오는 아빠의 말씀에 한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든다.
"무슨 얘기래유? 아버지."
한년이 아빠....한숨을 휘유...쉬고 나서 눈을 감고 목소리를 깐다. "숨길 생각은 말어...아버지가 다 이해하니께 얘기해라. 느그들 그리 된지 얼마나 됐어?"
"아버지...그런....전 무슨 말씀인지...."
"어허...이것이....아버지 앞이라고 숨길라고만 들지 말고 얘기 할 건 얘기해야 하는 벱이여.. 내가 화 내지 않을 테니께 다 얘기해라. 솔직하게 대답하면 안 혼 날 것이고 거짓말하면 혼쭐이 날 것이다(이런 얘길 믿는 순진한 삶은 이젠 없겠지!). 니가 얘기 못 허겄으면 남자인 네놈이 얘기해 봐라."
"아....아버님...그게...무슨 말씀인지.....?"
울상이 된 목이. 청천벽력도 유분수가 된 한년이는 오만상을 쓰다말고 고리눈을 부릅뜬 아빠의 눈초리와 마주치고는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푹 수그린다. "이 놈 자식이....야! 임마...사내가 사고를 쳤으면 시인할 줄도 알고 책임 질 줄도 알아야지. 거짓부렁이 어디야...이 자식아..." 대갈일성에 기둥이 흔들거리고 지붕이 들썩거린다.
"아....아니요..저..그게...거짓말이 아니고......"
목이...불쌍한 목이...괜히 호기심에 장난 한번 쳤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려 이승 하직하는구나 속에선 눈물이 앞을 가리는디....이 냥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간 그나마 감형받을 것도 못 받고 진짜로 저 세상 간다는 정도는 안다.
"빨랑 바른 말 안해?"
불호령에 기가 팍 죽은 목이 기어코 진실을 고백하고 만다.
"저기...유....아버님...사실은....그게......오늘이...처음....."
"뭐여? 이런 베라먹을 새끼!"
술병을 높이 들어 원수놈의 머리통을 까려던 꼰대성님...불현듯 양주병이 아깝다는 생각이 거기서 왜 드누? 술상에 놓여있는 북어로 칼자루를 바꾸어 기어코 한 대 내리치고 만다. 바싹 마른 북어대가리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진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목이는 뼈저리는 아픔으로 깨닫는다. 대가리가 깨지는 아픔을 신음소리 한마디 못 내고 두주먹을 불끈 쥐고 발바닥에 기를 모아 부들부들 떨며 참아내는 차.....머리에서 무언가 거무죽죽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런 씨양...대가리가 터졌네.."
북어대가리도 터지고 목이 대가리도 터졌다. 한년이 어쩔까 눈치를 보다가 얼른 방문앞에 걸레를 집는디.....아빠는 대갈일성을 또 터뜨리신다.
"야 이년아...너 걸레여! 수건으로 해."
대가리가 뽀사진 목이는 방바닥으로 주르륵 쏟아지는 피같은 피를 보며 목이 메인다. "아....아버님.....잘 못 했슈.....죽을 죄를 졌슈..."
"이 새끼가....죽을 죄를 뭐하러 져 임마...에라이...."
또 한번 북어검이 하늘을 가르다 말고 멈칫한다. 터진 대가리를 또 터칠 수 없는 건 인지상정.....북어 대가리는 잘려나갔어도 몸통에 피 묻으면 술안주 못 한다. 한년이가 얼굴에 묻은 피를 대강 닦아주고 어느새 물수건을 해서 터진데다 올려준다.
"네 놈의 자식..몇 번이나 했어?"
"오.....오늘....진짜 첨이여유..."
"진짜여?" "예."
"후우....다 내 죄지...애비라고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없으니께....딸년이 베라벨 짓을 다 하는구만....알겄다. 술이나 따라라."
피는 얼굴을 타고 흐르고 억울한 목이의 눈물이 찔끔거리는디 부릅뜬 고리눈의 꼰대성님 얼굴이 장비같이 보인다. 눈물을 감추려 애를 쓰면서 병을 들어 잔을 채우고 얼핏 한년이를 보니 빨개진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질질 흐른다.
"아! 네년은 왜 울고 지랄여. 이미 엎지러진 물....울어봐야 소용없다. 썩 그쳐!"
"아.....아버지....그게 아니고...."
"이년이...그래도 입은 살아서....썩 안 그쳐?"
이번엔 구들장까지 들썩인다. 찍소리도 못하고 한년이 눈물을 훔치며 으응으응 울음을 참고 잔뜩 불만인 얼굴로 방구들만 내려다 보고 있다.
"내 더 말 않겄다. 네 놈이 체구는 숏만해도 깡다구 하나는 세다는 거 알고 있다. 남자가 일을 저질렀으믄 책임을 져야하는 법! 너 내일부터 나보구 형님이라고 하지 마라. 알겄냐?"
"예?.........예!"
커헉..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더니...이게 뭔 지랄이냐... "형님이라고 하지 말믄....아버님? 그럼..한년이는 나랑? 크헉...미치겠다." 술 한잔을 톡 털어넣은 한년이 아버지는 문득 생각난 듯 문밖에 대고 아들을 부른다.
"야 이눔아......친구들 그만 가라고 해라. 방좀 치우고...."
"크헉...신방까지...."
상황이 말같지 않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우리의 목이마저 이성이 메말라버렸다.
"니가 우리 아들 친군께...학교 졸업할라문 일년남았냐?" "예."
"너 공부도 좀 한다며? 대학 갈거냐?" "별로 갈 맘 없습니다." "그럼 뭐 해 먹고 살거냐?" "제 좋아하는 일하며 살랍니다." "이 자식이 누구 놀리냐? 너 좋아하는 그 일이 뭐얀마!" 이 냥반 성질이 불같은 건 좋은디 너무 앞서나가서 진짜로 번갯불이다. "얘는 노래 잘 한 대요. 가수할 거래요. 아버지." "딴따라? 그거 못 쓴다. 사람 버리기 딱이여." "......." "천방지축 못 하는 거 없는 놈이구만.....재주 열가지 가진 놈치고 제 밥벌이하는 놈 못 봤다. 한 가지나 열심히 해 이눔아." "......" "너 대학 갈 자신은 있냐? 공부 하먼?" "그거야...해봐야 알지만...갈 순 있을 겁니다." "자신 있어? 없어?" "이...있습니다." "전기여? 후기여?" "예? 저...전기쥬." "그라믄 너 딴 맘 먹지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해라. 저 빌어먹을 놈들이랑 어울리지 말고.....어린 놈이 연애질 할 생각이나 꾸덜 말고 방구석에 턱 틀어박혀서 공부나 혀. 남자는 주먹도 쓰고 술도 마실줄 알고 연애에 노름방도 댕길줄 알아야 하지만.....그거 다 소용없다. 끝에 가서는 공부 많이 한 놈이 끝발 젤 좋다." "예." "니가 골샌님이 아니라 낫긴 하구만...그래도 넌 아직 어린 놈이니께....뭐라고 말은 못 하겄다. 하지만..이놈...네놈이 날 함부로 보면 네 집안 식구덜은 몽땅 몰살인줄 알아라. 이눔.."
데려가라는 말보다 더 무섭다. 이놈의 손끝이 웬수지....목이는 이제부터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할 중진깡패님이 무서워서 한숨도 맘대로 못 쉰다. 초라하게 쪼그라져만 가는 자신이 한없이 미운 목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세시가 넘어가건만 한년이 아버님의 잔소리는 끊일줄 모르고 양주 한병에 겨우 두잔 얻어마신 목이는 앞으로의 한심스런 인생이 가여워서 취해버렸다. 어질어질한 머리에 저리다 못해서 이제는 감각도 없어져 버린 아랫도리는 건들건들 제 멋대로 기우뚱거린다
. "그만 건너가 자거라. 넌 좀 남아 있고...."
꿇었던 무릎을 피는 것도 힘에 겨워 비틀거리자 한년이가 얼른 부축을 해서 일으킨다. 눈치로 봐서는 큰절이라도 하고 가야 하건만 목이는 취한데다 심사가 뒤틀어져서 어기뚱하게 문지방을 넘는다. 안 움직이려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기다시피 한년이 방으로 돌아오자 한년이 동생....친구놈의 새파란 눈초리가 날아온다.
"이런.....씹새끼...."
막 날아오는 한방은 방바닥에 뒹굴며 어찌어찌 피해냈는데 명치끝으로 발끝이 파고들어 아예 온몸을 마비시킨다. 호흡이 딱 끊어지며 머리속을 윙하는 소음이 휩쓸고 간 다음 목이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목이가 정신을 차린 건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오는 녘이었다. 한년이가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이마에 방금 갈았는지 서늘한 냉기를 품은 수건이 올려져 시원했다.
"깼니?"
"어? 누나....물 좀...."
정신이 들면서 왜 자신이 여기에 누워서 한년이의 수발을 받고 있는지 자초지종을 순식간에 기억한 목이는 타는 목마름으로 캑캑거렸다.
"아버지한테는 아무말도 안 했으니까 알아서 잘 해.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윗몸을 받쳐주며 물그릇을 입에 대준 한년이의 목소리가 어쩐지 목이에게 다정하게 들린다. "미...미안해요. 누나!" "미안한줄 아는 녀석이 그런 짓을 벌려? 너나 나나 이제 큰일났다." "후유......"
"난 따로 좋아하는 사람 있으니까 아버지 하신 얘기는 신경쓰지 마! 그리고 다신 우리집에 얼씬도 하지 말고....무슨 말인지 알았지?" "네." "나쁜 녀석....니가 그럴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쬐그만 것도 사내라고...."
"미안해요 누나."
"됐어. 어쨌건 머리터지고 얻어맞느라고 고생했다. 아프지 않으면 자자. 피는 그쳤으니까...."
"괜찮아요. 집에 갈래요."
"그 몰골로 가긴 어딜 가. 눈 좀 붙이고 피 묻은 옷 빨아놨으니까 마르면 입고 가."
"고마워요."
한년이 말을 듣고서야 알았는데 목이는 빤쓰바람에 누워있었다. 옆자리에 누운 한년이가 목이 얼굴을 한번 쓰다듬었다.
"또 딴 생각하면 이번엔 누나가 혼내준다." "안 그럴께요." "자자...팔베개 해 줄까?" "머리..." "아 그렇지. 그럼 그냥 자. 잘 자." "잘 자요. 누나." 그걸로 끝이다. 목이의 훌륭한 깡패의 꿈도 그걸로 끝이 났고 이 황당한 얘기의 결말도 지어졌다.

한년이는 일년 후 여름에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짝사랑하던 창이오빠보다 더 멋진(본인의 주장만) 남자를 만나서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얼마전에 들은 얘기로는 그 남자도 딴따라 노릇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아들 하나랑 대전인가서 술장사를 한다고 한다.
십오인조 어둠의 개새들은 목이를 방출하고 십사인조로 개편했다가 차츰 세력이 약해져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해골파로 흡수통합되어 버려서 명맥이 끊겼다. 지금도 서너명은 훌륭한 깡패의 꿈을 못 버리고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다가 작년의 조직폭력배 난동사건으로 전부 수감되어 버렸다.
진짜로 목이의 "아버님"이 될 뻔 했던 그 냥반은 서너달 전 간암으로 생을 마쳤다.
그 냥반의 아들...인 친구는 목이와 동창회 멤버로 한달에 한번은 꼭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어김없이 나오는 옛날 제 누나 추행한 얘기 땜에 반년에 한번은 주먹다짐을 벌인다.
주인공 목이는 친구들에게 "xx의 매형"으로 소문이 나서 한동안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어린 날라리들 자라는 풀밭에 물 줄 일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는 거 아냐!) 신분을 숨기고 재기에 성공해서 지금은 숏도 못 버는 컴팔이로 연명하며 여자친구 셋씩 만나며 잘 놀고 있다고 한다.

이상으로 숏도 아닌 얘기를 들어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쓰잘데기없는 썰은 여기서 마감하기로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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