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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44 2,518회 0건
복수 2부

2. 제주도의 푸른 밤.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흰색의 작은 공이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다.
골프공의 피복을 벗겨보면 제일 안쪽에는 기름이 채워져 있는 고무공이 들어있다.
그 고무공을 가늘은 고무줄로 단단하게 수 백번을 감고, 맨 바깥에는 플라스틱 피복을 씌우는 것이다.
골프공의 그 놀라운 탄력의 비결은 바로 그 단단하게 감아놓은 고무줄에 있다.
"나이스 샷!"
일본인 바이어들의 골프실력은 형편없었고 그만큼 많은 거리를 움직여야 했다.
1번 홀을 끝내고 나서 캐디가 슬며시 그들이 사용하는 골프공 네 개를 건네주며 싱긋 웃었다.
적당한 아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슬그머니 페어웨이를 벗어난 볼을 찾는 척 하면서 적당한 자리에서 볼을 떨어뜨려 놓고는 호들갑을 떠는 수법을 그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었지만 어쨋든 캐디의 재치는 내게 얼마간 한숨을 돌릴수 있게 만들었다.

라운딩이 끝난 후 사우나를 거쳐서 간단한 맥주로 바이어와의 이틀째 일정은 끝이 났다.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일본인들과 술을 마실때는 도무지 흥이 안 난다.
그들은 이런 저런 주접들을 떨어가면서 열심히 재미있게 마셔대지만 도대체 주량 자체가 처음부터 틀리니 오히려 술맛이 떨어지게 된다.
맥주를 마시면 다음날 고생을 하게 되는 이상한 체질 때문에 주로 양주나 소주를 마시는 게 내 술취향인데 대부분 온더락스 잔에 얼음을 가득 넣고 술로 빈 공간을 철철 넘치게 채워서 두 세 번에 나눠 마신다.
일본인들은 의례 위스키가 나오면 물을 타고 온더락스 잔에 삼분의 일밖에 안되는 잔을 홀짝거리면서 열번쯤에 나눠 마시니 도대체 같이 술을 마실 기분이 안 난다.
하기야 필리핀인들은 맛좋은 산미겔 맥주에 얼음을 가득 넣고 한병으로 밤새우는 것도 보긴 했지만.....

수연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내일부터는 골프카라도 태워서 다녀야만 하겠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먼저 올라가 쉬세요. 전 한잔만 더 하고 갈께요."
"저도 한잔만 더 하고 싶어요."
"피곤하지 않아요?"
"네. 피곤해요. 하지만 상쾌해요. 일본에 가 있었던 시간이 쓸데없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곳에서의 불쾌했던 일들, 외롭던 날들...그런 것들에 대한 묵은 감정이 한번에 씻겨 나간 기분이에요."
"기본 좋아요?"
"네 매우 좋아요. 어제는 솔직히 떨렸어요. 오래간만인데 그 사람들과 과연 대화가 통할까...
통역을 잘 못해서 일을 망치는게 아닐까....벼라별 걱정을 다 했었는데...생각보다 쉽고 재밌어요. 아까 골프장에서 하야시상이 무심코 욕을 해 놓고 제 눈치를 볼 때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었어요. 호호호..."
"수연씨가 좋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수연의 방은 내 방과 마주 보고 있었다.
맛이 순하고 달짝지근한 J&B 한 병은 내게는 가벼웠지만 나와 똑같은 잔에 똑같이 따른 술을 두잔이나 마신 수연에게는 강도가 약하지 않았다.
"아~! 이거 달짝지근해요. 호호.."
기분이 좋은지 자꾸 웃음을 흘리며 수연이 잔을 들어 단숨에 주욱 마셨다.
"연우씨. 저 노래듣고 싶어요."
취한 듯한 얼굴이던 수연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내 코 끝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매력적인 얼굴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였지만 주욱 잊고 살았었다.
삶이 고단해서라는 말로는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첫사랑에 실패한 후로 난 목소리를 읽은 꾀꼬리가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아.....나의 말좀 들어보렴....두눈을 꼭 감고.....나의 말좀 들어보렴....
따스한 마음을...나눠주고....굳은 일 슬픈 일들을 우리 함께 나누자...
모진 풍파 헤치고 달속의 전설을 생각하면서.....우리 사랑....우리사랑..하는 맘.....
수연과 내 노래는 적당히 잘 어울렸다.
첫사랑 여자애와 곧잘 부르던 노래...사랑하는 사람아....그 사랑을 짓밟은 녀석의 부인과 이런 노래를 하고 있는데 화음이 되다니...묘한 운명이다.
취기가 오르는 몸을 내게 기댄 채 방으로 올라가면서도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달콤한 여자의 향기가 불끈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침대에 눕혀주고 위에서 바라보았다.
수연은 눈을 감고 흐드러지는 삼십초반의 육체를 농염하게 내던지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다가 막 몸을 움직이려는 찰라에 번쩍 수연이 눈을 떴다.
"안 돼요!"
무엇이 안 되는 건가...무시하고 그녀의 몸에 내몸을 올렸다.
탄력있는 몸을 누르며 입술을 가져갔다.
젖은 입술이었지만 열리지는 않는다.
잠시 그대로 입술을 대고 있다가 일어났다.
"가겠습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창밖에 보이는 호텔 안마당의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보인다.

이후로 일본 쪽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 회사에 가끔씩 수연을 불러야 했다.
그녀는 깔끔한 인상처럼 자신이 맡은 일을 깔끔하게 해내는 성격이어서 사원들도 그녀를 좋아했다.
몇 개월 동안 일본의 오더가 꾸준히 증가했고 결국 수연을 마케팅과의 일본담당 대리라는 직책으로 출근을 시켰다.

뜨내기오더를 가끔씩 넣던 일본의 조그만 회사 중역이 한국에 건너온 날 나와 수연은 예사롭게 술자리에 동행했다.
재천과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수연은 물 마시듯 술을 마셔댔고, 접대부로 착각했는지 상소리를 해대는 상대중역과 몸을 비벼가며 춤을 추는 의외의 모습도 보였다.
"수연씨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저 취하긴 했지만 정신은 말짱해요. 걱정 마세요.."
"저 자식 뭐라는 거예요?"
"저랑 자고 싶대요."
일본인이 술에 취해 내 쪽을 보고 있던 수연의 뒤에 붙어서 웃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어멋...."
뺨을 갈기는 소리도 요란하게 남자의 얼굴이 돌아갔다.
"칙쇼.."
남자의 손이 들리는 걸 보며 그들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나는 테이블을 뛰어넘어 덮쳤다.
수연이 분을 참지 못해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뭔가 일본말로 욕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하자는 데 뭐라고 할까요 사장님."
"한자도 빼지 말고 그대로 말해 주세요. 내 회사의 직원을 희롱하려 한 네놈을 용서할 수 없다. 너같은 돼지새끼와는 더 이상 거래하고 싶지 않다. 잘 가라."
일본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장난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l니다."
"희롱을 장난이라고 여기는 게 말이 되느냐. 나는 내 회사 직원 한사람이라도 다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 너는 여자를 때리려고 했다. 너는 더러운 놈이다. 나는 너같은 치졸한 자식이 중역으로 있는 회사와는 거래할 수 없다."
수연이 그대로 전했는지 남자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더니 고함을 지르며 화를 냈다.
"됐습니다. 더 이상 통역할 필요 없습니다. 가십시다."
생각 같으면 얼굴에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혼자 남은 일본인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밖으로 나오며 들은 수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저를 사장님이 숨겨놓은 여자라고 하네요. 미리 말해줬으면 안 건드렸다고 하는데요."
"허허허...친구 부인이라고 하면 기겁을 하겠군요."
"저 술 한잔만 더 사주시겠어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후후..별 일 아니에요. 그냥 쪽발이놈 하는 짓에 화가 난 것뿐이에요."
"그런 정도라면 술 마시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바래다 드릴께요."
"미안해요. 사장님. 괜히 저 때문에 일도 망치시고... "
"허허.. 언제부터 사장이었다구...밖에 나와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네. 연우씨!"
"접대 자리까지 수연씨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제가 바보였어요. 그런 수모를 당하게 해서...정말 죄송합니다."
"저 오늘 술 마시고 싶었어요. 접대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거 저도 알아요. 괜찮아요. 연우씨..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수연에게 있는 것이 확실했다.
요즘의 나! 어쩌면 수연에게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복수랍시고 거창하게 제주도에까지 데려갔었는데 거기서의 수연은 깔끔하고 멋진 여자라는 걸 알았다.
항상 남의 것을 울궈내려고 혈안이 된 재천이 이런 여자를 얻는 건 천부당 만부당하다.
어쩌면 이 여자가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기 전에 나와 만났더라면 지금의 내 아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복수라는 이름으로 이 여자의 인생을 짓밟으려했던 계획 자체가 시들해져 버렸다.

스카치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수연은 말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내가 먼저 물어보기도 뭐해서 같이 술만 마셔주고 있었다.
"저 회사 그만두어야 할까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재천씨가 저 회사 나가는 거 싫어해요."
"왜 싫어하죠?"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지..... 그냥 회사 나가고 재천씨 혼자 남는 게 싫대요."
"허허.. 그런 녀석이 맨날 저는 낚시터에서 산대요?"
"재천씨...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던 당구장도 그만두고....."
"뭐라도 일을 하는 게 좋을텐데..."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대요. 그러면서.....저도 회사에 못 나가게 하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한 대요? 후후...."
헛헛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도대체 그런 놈이라니.... 제가 혼을 좀 내줄까요?"
"요즘 들어서 괜히 짜증만 늘어나고...."
"혹시......손찌검도 하나요?"
".........."
"그렇군요. 그 녀석 전에는 그리 형편없지는 않았었는데..."
"연우씬 모르죠? 재천씨 왜 회사에서 쫓겨났는지....."
"......"
"저도 재천씨 다니던 회사 여직원 중에 친구가 있어서 알게 됐어요.... 그런 얘기 듣고도 그사람이랑 살수가 있다는 게 저도 신기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사건 얘기는 저도 친구한테 들어서 안 거고 첨엔 강도를 당한 줄로 알았어요. 그 사람 여직원을....열 아홉 먹은 여상 취업반 아이를...강간했대요. 처음에 한번 그리고 두세 번 계속 되고 임신한 줄도 모르는 그 여자애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갔는데....홀어머니랑 단 둘뿐인 집이었어요. 여자애가 배가 나오게 되자 임신사실을 안 거죠. 여자애를 좋아하던 또래 남자애 하나가 재천씨 회사를 찾아온 거예요.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그 남자애는 남편을 야구방망이로 때렸어요. 머리를 때려서 기절을 시켜놓고 남자의 그곳을......엉망을 만들어놓은 거예요. 경비원들이 남자애를 잡긴 했지만 그런 추문으로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회사에서는 쉬쉬하며 숨긴 거죠. 남편은 병원에서 두달만에 퇴원했지만 회사에서는 사표를 내서 수리된 걸로 해 놓고 발도 들이지 못하게 했어요. 퇴직금 몇 푼이 나왔지만 병원비도 안 되는 돈이었어요. 짓뭉개진 그것은 모양은 복원을 시켰지만....제 구실은 못 해요.."
"그런 일이....."
"사실 저 재천씨 안 좋은 버릇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요..후후...제 친구 중 한 애가 재천씨를 알고 있더라구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나쁜 짓 많이 했다구 하더군요."
".........."
"지금도 연우씨에게 손이나 벌리고... 마누라 내 보내서 먹고사는 사람이 감놔라 팥놔라 하면서 되레 의심이나 하고..."
"의심이라뇨? 혹시 저랑 수연씨 사이를?"
"네! 그래요. 그 사람 연우씨가 저를 어떻게 할거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어요."
"허허...그런...."
"저 알고 있는 거 또 하나 있어요. 재천씨랑 연우씨 사이에...."
"........"
"그이는 그걸 겁내나 봐요. 연우씨가 자기에게 복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후후..."
"......."
"그 사람 사실은 연우씨를 많이 겁내고 있어요. 이젠 처지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 일 이후로 연우씨가 무섭게 변해버렸다고 가끔 얘기하곤 해요."
"그 얘긴 그만 하시죠."
"진짜로 복수하고 싶은 맘 없어요?"
"........"
"저 왜 일본에 갔는지 알고 있죠? 재천씨도 첨엔 모르는 척 하더니 언젠가 부부싸움 끝에 얘길 하더군요. 결혼하고 나서 몇 년 후에 알게 됐다고.....갈보라고 욕을 하대요."
"........."
"말 해 줘요. 알고 있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연우씨가 말해 준건 아니겠죠. 한 동넨데 그런 일쯤 모르겠어요. 후후..잊으려고 일본에 간 건데.....하필 고향 사람을 사귀다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건 수연씨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런 나쁜 일은 그만 잊어버려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내내 악몽에 시달려요. 그 나쁜 자식들....더 나쁜 건 재천씨가 가끔 그들 중에 몇 명과 어울린다는 거예요....흑..."
"..........."
"처음 당구장 개업날 그 중에 한 명이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재천씨가 처음 저를 때린 것도 그날이었어요."
"울지 말아요."
"잊으려 해도 그 사람들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더구나 이젠 고향에 내려왔으니 온통 주변에서 제 얘길 하는 것 같고 뒤에서 욕하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어요. 그런 나를 재천씨는 걸레라고 욕하며 때리고...흑... 전 정말 죽고 싶었어요."
"..........."
"저 병원에 갔었는데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대요.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임신을 못하는 거래요. 후후..그런데 이젠 재천씨가 임신을 시킬 수가 없게 돼 버렸어요.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한잔 더 주세요."
울음은 멎었지만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는 수연의 모습은 울고 있을 때보다 더 아파 보였다.
"제주도에서 연우씨 유혹하려고 했었어요. 부자에 성실하고 자상한 당신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진 못했지만 애인으로라도 지내고 싶었다구요. 이제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 중에 하나가 돼 버린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피가 흐르는 내 아이! 난 왜 이렇게 됐죠? 왜?..."
수연은 끝내 통곡을 하고 말았다.
바의 구석진 자리였지만 민감한 손님들의 눈길이 두사람을 훑고 지나간다.

"나 안 들어갈래요."
수연의 선언에 내 감정은 무덤덤했다.
"연우씨는 들어가세요. 저 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아무 데서나 구겨져서 하루만이라도 이수연이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방만 잡아주고 갈께요."
내가 과연 방만 잡아주고 돌아 나올 수 있을까?

왜 여자들은 호텔 방문 앞에 서면 취하는 걸까?
평소 주량을 넘긴 수연 역시도 속이 안 좋은 듯 고약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키홀더에 열쇠를 걸고 돌아 나오려는 순간 그녀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곧 괴로운 구토음이 들렸다.
"등 두드려 줄까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여자는 손을 내저으며 거부했지만 계속 그러기엔 뒤집히는 위장이 용서하지 않는다.
토닥토닥 부드러운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는 머리 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여자의 속옷은 무슨 색깔일까?"
애써서 생각을 지우며 수연을 두들기는 손에 힘을 주었다.
한동안 토악질을 하던 수연이 풀썩 주저앉으며 힘들게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잠깐만...방에서 기다려 주세요..."
담배 한 개피를 피우자 수연이 방으로 들어왔다.
세수를 했는지 화장이 지워진 맨 얼굴이었다.
"속 괜찮아요?"
"네. 이제 괜찮아졌어요. 저 추하죠?"
"아뇨...하하.. 술 마시고 변기랑 씨름 안 하는 사람 없어요. 괜찮아요."
"그래도.....창피해요."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고개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하는 수연의 모습이 신방에 들어온 새신부 같다.
"전 이만 돌아갈께요.. 그리고 내일은 출근하지 말고 하루 푹 쉬세요."
"네. 술 다 깰 때까지는 꼼짝도 못 할 거 같아요."
"내일 점심때 데리러 올께요. 그럼.."
방문을 닫고 돌아서며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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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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