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애정비사 두번째 이야기 09
**(편집자 주) 본 글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이책>에 있으며 관련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출판사 사전 허락 하에 전재함)
제 9화 호스테스와 2차를 나가다
술맛은 술맛이리라. 하지만 나는 진정 그것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설사 찝찌름한 맛이 섞였어도, 야릇한 살내음
이 섞였어도, 전혀 알아낼 리가 없었다.
박수소리와 함께 짠짜자잔, 하는 팡파르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 밴드 연주자들이 룸 안에 있었
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나였다. 한껏 달아오른 나의 귀밑만
으로도 현옥의 젖었을 팬티는 말려지기에 충분할 노릇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
머리채를 눌러대던 현옥의 손길이 치워졌다. 그래야 고작 십
수초도 안 지났는지 여전한 박수소리 속에 그녀의 하복부가
물러섰고, 흡사 엄청난 도전을 해냈다는 듯 소파에서 내려오
며 나머지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기까지 하
는 그녀였다.
난 내가 제 정신인가마저 의심이 들었다. 그제야 아찔한 살
그림자에서 벗어난 내 시선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희창이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미진은
깔깔대며 그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현옥은 고작 벗어둔 하이힐만 다시 신고서 폴짝 내 옆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팬티와 밴드스타킹 차림 그대
로였다. 남자들과 같은 여자 앞에서 그런 쇼를 부렸으니 부끄
럼을 탄다면 응당 내가 아니라 그녀여야 함에도 이 아가씨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도리어 공개적으로 놀림감이 된 건 나 혼자였다.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현옥은 나에게 안주까지
먹여주고 있었다. 얼마간 정신을 가다듬던 나는 화끈대는 얼
굴을 달래려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껏의 취기
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화를 내기라도 해야 되나? 아마도 희창이 녀석 혼자만 있
었다면 뒤집어엎으며 괜스런 화풀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사람이 많았다. 지금 젖가슴을 출렁이며 즐거
워하는 현옥도 그렇지만 연예인 호스테스 이미진을 앞에 두
고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나의 처지였다.
"야, 처음엔 그렇게도 빼더니 현옥이 너 제법 잘하네? 이럴
바엔 다음에는 너부터 불러야겠다."
"핏, 싫어요. 난 이사님 앞에서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왜? 그럼 누구 앞에서 할 건데?"
"그야 여기 제 파트너 창희씨한테만이죠!"
와하하, 재차 폭소가 터져나온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현옥
을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눈웃음을 띠며 자랑스럽게 내게 팔
짱까지 끼고 있었다.
"이거 안되겠구만. 다음부터 여기 올 때는 짱이 너랑만 와
야겠군."
어휴… 한심스런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대
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술자리였다.
어쨌든 결국 분위기를 깨지 않은 이상 그것을 기화로 좌중
은 한층 더 신바람이 나고 있었다. 어느새 밴드도 사라지고
짙은 담배연기와 횡설수설 잡담만이 오고가는 룸 안이었다.
모두들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희창이에게서도 슬슬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지 나만이 - 아직까지
군기가 잡혀서일까 - 그 중 가장 덜 취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희창씨. 저 화장실 좀…"
그 무렵 미진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문 밖으로 나가준
덕분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나도 그 틈을 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나, 나도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얼레, 창희 너 뭐하러 그리 가냐?"
"응?"
"화장실은 저기란 말야. 저기 저 문."
그런가. 이게 고급 룸살롱의 차이인 모양이었다. 희창이가
손가락질을 한 곳에는 룸의 문보다는 작지만 또 하나의 화려
한 나무문이 있었다. 이 룸 안에 딸린 별도의 화장실이었다.
그 안은 상상외로 널찍했다. 이 안에 들어올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리 호사스러운지. 그곳은 보통 크기의 웬만한 술집
전체에 하나만 있어도 족할 크기였다. 게다가 칫솔부터 로션
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 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붉어진 안색을 잠시 삭히며 방으로 돌아오려던 나는 빼꼼
이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실상 내가 화장실에 오려던 목적
은 다른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늦어질 듯한 술자리
였기에 집에 늦는다는 전화라도 드릴 요량이었다.
미진은 아직이었고 희창이는 무언가 현옥과의 얘기에 열중
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달린 룸의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왔다.
복도만 해도 기도인지 지배인인지 덩치 큰 남자 하나가 허
리를 꾸벅거려왔다. 전화 있는 곳을 묻자 그가 즉각 품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어 주고 있었다. 이것 쓰십시오 - 아무리
공손해도 그렇게는 못할 일이다. 아무래도 그 사내 앞에서 집
에 전화를 건다는 건 께름직스러웠다.
나는 알아서 찾겠다 대꾸하고는 그 길게 융단이 깔린 복도
를 이리저리 혼자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모퉁이
를 막 더 돌려는 찰나였다.
"알았다니까요. 걱정하지 마, 상진이 오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어럽쇼, 이게 누구 목소리더라. 아무리 흥청망청하는 룸살
롱이라지만 방음장치가 하도 철저한 탓에 복도는 사위가 조
용했다. 그런 탓에 그 목소리는 나지막해도 똑똑히 들리고 있
었다.
나는 복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나였다. 하늘하늘
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미진, 그녀가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열심히 핸드폰을 들고 통화중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 상진이 오빠라고 한 것 같은데…
취중이라 어쩌면 귀도 흐려졌을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그녀
가 휙하니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만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
았다.
"어멋!"
그녀에게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도 저으기 놀래야
했다. 그녀는 어디서 났는지 다소 어두운 복도 안에서도 선글
라스를 끼고 있었다.
"여, 여기서 뭐하세요?"
"아, 저… 전화 좀 찾으려구요."
"언제부터 거기 서 계신 거예요?"
이상하다. 마치 나를 맞딱드린 것이 크나 큰 실수라도 되는
것처럼 따져 묻는 그녀였다.
"바, 방금요."
내가 얼버무리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탁, 핸드폰을 닫더니
나를 비켜서 지나가 버렸다. 룸 안으로 돌아갈 그녀에게 핸드
폰이라도 빌리고자 했던 나는 그 바람에 머쓱해져야만 했다.
상진씨란 이름을 그녀가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했다. 선
글라스야 이곳에서 다른 사람이나 일반인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낯설지 않은 이름에 저
으기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희창이에게 비서 같은 존재라 했
으니 그가 미진을 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것은 없었다.
어쩌면 희창이를 잘 모셔달라는 그의 안부 전화일 수도 있
다. 그렇게 치부한 나는 결국 전화 찾기를 포기하고 룸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 동안 그곳에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
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일어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다시 치마
를 갖춰 입은 현옥은 벗어두었던 블라우스 자락을 열심히 그
안으로 챙겨 넣는 중이었고, 미진은 희창이에게 재킷을 걸쳐
주고 있었다.
"얌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한참 기다렸잖아."
"미, 미안… 근데 뭐하는 거야? 어디 나가려구?"
"그래. 이제 2차 가야지."
2차? 은근히 비척거리는 녀석인데 아직 더 술을 마실 여력
이 남아 있단 말일까.
희창이는 앞장서서 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미 술값조차
계산이 끝난 듯했다. 룸살롱 입구로 따라나가자 마담과 웨이
터에게 둘러싸여 줄줄이 인사를 받는 그였는데, 우리 등뒤에
서는 현옥이 나서며 발랄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사님. 언니랑 저 옷 갈아입고 나올게
요."
나는 난데없는 그 소리에 저으기 입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저 아가씨들과 함께 2차를 나간다는 소리 아니냐.
"이사님 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응, 대리 운전 하나씩 붙여줘. 나는 미진이 차를 탈 테니
까, 저 친구가 내 차를 탈 거야."
희창이는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거리낌없는 행동에 나
는 슬쩍 눈치를 보며 녀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임마, 이게 뭐야?"
"응? 왜?"
"너 이렇게 막 돈 써도 돼? 난 아까 그냥 너랑 소주나 한
잔…"
소주나 한 잔하려고 했어, 라는 내 말은 끝내 녀석이 걱정
말라 내젓는 손에 의해서 무시당했다. 그러나 걱정스럽기 만
한 나로서는 그에게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희창이 너, 더 마실 수나 있는 거야?"
"더 마셔? 뭘 더 마셔?"
"술 말이야. 아까 2차 간다며…?"
얼레. 다그치는 나인데 피식, 녀석에게선 실소가 터져나왔
다. 어리둥절한 나는 그 어이없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야, 내가 언제 술 마신다던?"
"그럼 뭐야?"
"글쎄 창희 넌 신경 끄고 따라오기나 해. 아까 보니까 너
현옥이란 걔 꽤 마음에 들어하더구만…"
현옥이? 그럼? 나는 무릎을 쳤다. 그럼 지금 이 희창이 놈
이 말하는 것은 설마 -
◆계속◆
**(편집자 주) 본 글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이책>에 있으며 관련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출판사 사전 허락 하에 전재함)
제 9화 호스테스와 2차를 나가다
술맛은 술맛이리라. 하지만 나는 진정 그것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설사 찝찌름한 맛이 섞였어도, 야릇한 살내음
이 섞였어도, 전혀 알아낼 리가 없었다.
박수소리와 함께 짠짜자잔, 하는 팡파르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 밴드 연주자들이 룸 안에 있었
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나였다. 한껏 달아오른 나의 귀밑만
으로도 현옥의 젖었을 팬티는 말려지기에 충분할 노릇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
머리채를 눌러대던 현옥의 손길이 치워졌다. 그래야 고작 십
수초도 안 지났는지 여전한 박수소리 속에 그녀의 하복부가
물러섰고, 흡사 엄청난 도전을 해냈다는 듯 소파에서 내려오
며 나머지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기까지 하
는 그녀였다.
난 내가 제 정신인가마저 의심이 들었다. 그제야 아찔한 살
그림자에서 벗어난 내 시선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희창이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미진은
깔깔대며 그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현옥은 고작 벗어둔 하이힐만 다시 신고서 폴짝 내 옆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팬티와 밴드스타킹 차림 그대
로였다. 남자들과 같은 여자 앞에서 그런 쇼를 부렸으니 부끄
럼을 탄다면 응당 내가 아니라 그녀여야 함에도 이 아가씨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도리어 공개적으로 놀림감이 된 건 나 혼자였다.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현옥은 나에게 안주까지
먹여주고 있었다. 얼마간 정신을 가다듬던 나는 화끈대는 얼
굴을 달래려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껏의 취기
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화를 내기라도 해야 되나? 아마도 희창이 녀석 혼자만 있
었다면 뒤집어엎으며 괜스런 화풀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사람이 많았다. 지금 젖가슴을 출렁이며 즐거
워하는 현옥도 그렇지만 연예인 호스테스 이미진을 앞에 두
고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나의 처지였다.
"야, 처음엔 그렇게도 빼더니 현옥이 너 제법 잘하네? 이럴
바엔 다음에는 너부터 불러야겠다."
"핏, 싫어요. 난 이사님 앞에서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왜? 그럼 누구 앞에서 할 건데?"
"그야 여기 제 파트너 창희씨한테만이죠!"
와하하, 재차 폭소가 터져나온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현옥
을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눈웃음을 띠며 자랑스럽게 내게 팔
짱까지 끼고 있었다.
"이거 안되겠구만. 다음부터 여기 올 때는 짱이 너랑만 와
야겠군."
어휴… 한심스런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대
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술자리였다.
어쨌든 결국 분위기를 깨지 않은 이상 그것을 기화로 좌중
은 한층 더 신바람이 나고 있었다. 어느새 밴드도 사라지고
짙은 담배연기와 횡설수설 잡담만이 오고가는 룸 안이었다.
모두들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희창이에게서도 슬슬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지 나만이 - 아직까지
군기가 잡혀서일까 - 그 중 가장 덜 취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희창씨. 저 화장실 좀…"
그 무렵 미진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문 밖으로 나가준
덕분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나도 그 틈을 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나, 나도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얼레, 창희 너 뭐하러 그리 가냐?"
"응?"
"화장실은 저기란 말야. 저기 저 문."
그런가. 이게 고급 룸살롱의 차이인 모양이었다. 희창이가
손가락질을 한 곳에는 룸의 문보다는 작지만 또 하나의 화려
한 나무문이 있었다. 이 룸 안에 딸린 별도의 화장실이었다.
그 안은 상상외로 널찍했다. 이 안에 들어올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리 호사스러운지. 그곳은 보통 크기의 웬만한 술집
전체에 하나만 있어도 족할 크기였다. 게다가 칫솔부터 로션
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 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붉어진 안색을 잠시 삭히며 방으로 돌아오려던 나는 빼꼼
이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실상 내가 화장실에 오려던 목적
은 다른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늦어질 듯한 술자리
였기에 집에 늦는다는 전화라도 드릴 요량이었다.
미진은 아직이었고 희창이는 무언가 현옥과의 얘기에 열중
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달린 룸의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왔다.
복도만 해도 기도인지 지배인인지 덩치 큰 남자 하나가 허
리를 꾸벅거려왔다. 전화 있는 곳을 묻자 그가 즉각 품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어 주고 있었다. 이것 쓰십시오 - 아무리
공손해도 그렇게는 못할 일이다. 아무래도 그 사내 앞에서 집
에 전화를 건다는 건 께름직스러웠다.
나는 알아서 찾겠다 대꾸하고는 그 길게 융단이 깔린 복도
를 이리저리 혼자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모퉁이
를 막 더 돌려는 찰나였다.
"알았다니까요. 걱정하지 마, 상진이 오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어럽쇼, 이게 누구 목소리더라. 아무리 흥청망청하는 룸살
롱이라지만 방음장치가 하도 철저한 탓에 복도는 사위가 조
용했다. 그런 탓에 그 목소리는 나지막해도 똑똑히 들리고 있
었다.
나는 복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나였다. 하늘하늘
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미진, 그녀가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열심히 핸드폰을 들고 통화중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 상진이 오빠라고 한 것 같은데…
취중이라 어쩌면 귀도 흐려졌을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그녀
가 휙하니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만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
았다.
"어멋!"
그녀에게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도 저으기 놀래야
했다. 그녀는 어디서 났는지 다소 어두운 복도 안에서도 선글
라스를 끼고 있었다.
"여, 여기서 뭐하세요?"
"아, 저… 전화 좀 찾으려구요."
"언제부터 거기 서 계신 거예요?"
이상하다. 마치 나를 맞딱드린 것이 크나 큰 실수라도 되는
것처럼 따져 묻는 그녀였다.
"바, 방금요."
내가 얼버무리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탁, 핸드폰을 닫더니
나를 비켜서 지나가 버렸다. 룸 안으로 돌아갈 그녀에게 핸드
폰이라도 빌리고자 했던 나는 그 바람에 머쓱해져야만 했다.
상진씨란 이름을 그녀가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했다. 선
글라스야 이곳에서 다른 사람이나 일반인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낯설지 않은 이름에 저
으기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희창이에게 비서 같은 존재라 했
으니 그가 미진을 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것은 없었다.
어쩌면 희창이를 잘 모셔달라는 그의 안부 전화일 수도 있
다. 그렇게 치부한 나는 결국 전화 찾기를 포기하고 룸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 동안 그곳에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
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일어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다시 치마
를 갖춰 입은 현옥은 벗어두었던 블라우스 자락을 열심히 그
안으로 챙겨 넣는 중이었고, 미진은 희창이에게 재킷을 걸쳐
주고 있었다.
"얌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한참 기다렸잖아."
"미, 미안… 근데 뭐하는 거야? 어디 나가려구?"
"그래. 이제 2차 가야지."
2차? 은근히 비척거리는 녀석인데 아직 더 술을 마실 여력
이 남아 있단 말일까.
희창이는 앞장서서 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미 술값조차
계산이 끝난 듯했다. 룸살롱 입구로 따라나가자 마담과 웨이
터에게 둘러싸여 줄줄이 인사를 받는 그였는데, 우리 등뒤에
서는 현옥이 나서며 발랄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사님. 언니랑 저 옷 갈아입고 나올게
요."
나는 난데없는 그 소리에 저으기 입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저 아가씨들과 함께 2차를 나간다는 소리 아니냐.
"이사님 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응, 대리 운전 하나씩 붙여줘. 나는 미진이 차를 탈 테니
까, 저 친구가 내 차를 탈 거야."
희창이는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거리낌없는 행동에 나
는 슬쩍 눈치를 보며 녀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임마, 이게 뭐야?"
"응? 왜?"
"너 이렇게 막 돈 써도 돼? 난 아까 그냥 너랑 소주나 한
잔…"
소주나 한 잔하려고 했어, 라는 내 말은 끝내 녀석이 걱정
말라 내젓는 손에 의해서 무시당했다. 그러나 걱정스럽기 만
한 나로서는 그에게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희창이 너, 더 마실 수나 있는 거야?"
"더 마셔? 뭘 더 마셔?"
"술 말이야. 아까 2차 간다며…?"
얼레. 다그치는 나인데 피식, 녀석에게선 실소가 터져나왔
다. 어리둥절한 나는 그 어이없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야, 내가 언제 술 마신다던?"
"그럼 뭐야?"
"글쎄 창희 넌 신경 끄고 따라오기나 해. 아까 보니까 너
현옥이란 걔 꽤 마음에 들어하더구만…"
현옥이? 그럼? 나는 무릎을 쳤다. 그럼 지금 이 희창이 놈
이 말하는 것은 설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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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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