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3
커트는 꿈속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얀과의 정사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리듬을 타고 있었는데 그의 귓가에서 누군가
의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서..는...안...된...다...]
뚝뚝 끊기는 것 같기 도하고 어찌 보면 느릿느릿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한 이 음성은 계속해서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얀의 탐스러운 가슴을 이지러뜨렸다.
얀이 더욱 달뜬 신음 성을 내뱉자 커트의 귓전에서는 더욱더 큰 소리
가 맴돌았다.
[당..장.. 그..만...둬..라..]
그러나 커트는 이미 얀의 몸에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얀은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며 커트를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커트에
게 무엇을 요구하는 듯 했다. 커트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그녀 쪽으로
내밀자 얀 역시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커트의 얼굴이 점점
그녀를 향해 다가오자 얀은 여전히 웃으면서 자신의 얼굴을 변화시켰다.
그녀의 흰 얼굴에서 비늘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입과 눈이 찢어지면서
완벽한 뱀의 얼굴이 갖춰졌다. 그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커트의 얼
굴을 삼키기 시작했다. 커트는 멍한 얼굴로 뱀의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샥, 하는 소리와 함께 뱀의 목이 잘려나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커트는 뱀의 몸에서 벗어났고, 뱀은 고통스럽다는
듯 울부짖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일 그를 지켜보고 있
던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쇠막대기
라고 불릴만한 것이 들려져 있었다.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말했다.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의 말에 커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꿈을 꾼 것이었다. 하지만 이
미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커트가 다행이란 듯 한숨을
내쉬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의 말에 커트는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옆에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다...당신은... ]
[너는 사념 체에게 잡아 먹힐 번했다.]
커트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다..당신은 누구지? ]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는 커트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커트는 그것을 세
번씩이나 듣고 있는 중이었다.
[바..방금 나는 꿈을 꾼 것 같은데...]
후드를 쓴 남자가 커트를 향해 무엇을 던졌다. 그것은 뱀의 목이었다.
[마계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 짓지 않는다... 그리고 차원 따위도
구분 짓지 않지]
커트는 자신이 꾼 꿈이 현실 아닌 현실임을 직감하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무슨 말이지?]
[해가 짧아졌군...]
[내가 묻는 말에 답해!!]
커트는 화가 나서 외쳤다. 그의 말에 후드를 쓴 남자가 말했다.
[너의 5동료가 어디로 갔다 생각하나?]
그것은 커트 역시 궁금해 왔던 것이었다.
[알고 있다면 말해다오]
[내가 먼저 물었다.]
[모르니까 말해달라는 것 아닌가!]
[성격이 급한 친구로군... 그대의 5동료는 지금 그대들이 흔히 말하는
인간계에 있다.]
그의 말에 커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들이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지? ]
[너의 동료들은 마계에도 있다.]
그의 말에 커트는 자신의 검을 후드의 남자에게로 겨누었다.
[너의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다. 그들은 어떻게 인간계로 간
것이지?]
후드를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가 말했다.
[그들은 인간계와 마계 두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물과는 다른 힘을
가진 그들은 자유롭게 마계와 인간계를 이동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그들은 마물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들은 오랫동안 마물들과 싸워온 자들이다. 인간 중에서는 강한 편
에 속하는 자들이지 그리고 그러한 강한 자들의 사념체 또한 강한
법이다. ]
커트는 여전히 검을 그에게 겨누며 말했다.
[그럼 너의 말은 펠과... 다른 녀석들이 내가 꾼 꿈처럼 꿈에 잡아 먹
혔단 말인가?]
[반정 도는 맞췄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사념... 사념이다. 그것은 꿈
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환상과 같이 나타
나며 공포와 불안이 극도에 달했을 때 생겨나기도 하지... 너희들의
리더였던 펠이라는 자는 강한 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불안했지 너
희들이 말하는 인간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야...
처음의 그러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커져갔어... 그래서 강한
펠마저 자신의 사념 체에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리더인 펠이 인간
계로 가버리자 그후로 너희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갔지... 처음에는
다들 마계에서 죽을 생각을 하고 왔지만 누군가가 마계를 빠져나갔
다는 생각을 하니 죽고 싶겠나? 그리고 남은 너희 동료들은 겉으로
는 마물을 혐오하면서 거침없이 베어 나갔지만 속으로는 서서히 마
물들과 타협해갔지... 결국 그들도 자신들의 사념에 먹이가 된 것이
다... ]
그의 말을 듣던 커트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그럼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지?]
[마계에서의 마물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마물들의 존재를 묻고 있는 게 아니잖아!]
[내말에 먼저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 너는 궁금한 게 많을 테니까...]
그의 말에 커트는 검을 땅바닥에 꽂고는 입을 열었다.
[마물들은 마계에 있는 사악한 무리들일 뿐이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흐흐흐... 난 너의 그 단순함이 좋단 말야... 그 단순함이 너를 여태껏
살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내가 아까 말했던 게 생각나나? 너의 동료들은 인간계에도 존재하고
마계에도 존재한다.]
[물론 ]
[그건... 너 역시 다르지 않다. 아니 그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하
는 말이다. 마계는 인간들의 사념들이 모인 또 다른 공간이다. 하지
만 이곳은 인간계와 그렇게 다르지 않아. 마물들끼리도 서로를 죽
이고 먹으려 드는걸 너 역시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
[헛소리!! 마물과 인간을 비교하다니... 대상이 잘못됐군 그래...]
[너는 아직 각성이 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게 계속 마계에 남아있게
된다면 너는 며칠을 가지 못해 사념 체에 잡아먹히고 말걸? 그... 뱀
말이야...]
[각성이라니?]
[인간계와 마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각성... 그리고 그것을 깨닫
게 된다면 너는 흔히들 말하는 인간계와 마계를 자유자제로 이동할
수 있는 사도가 된다.]
[사도?]
[우리는 그런 자들을 사도라고 부르지... 사도는 마계와 인간계를 이동
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들은 흩어진 상태에서는 자신들밖에 이동할
수 없어... 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그럼... 나의 동료들도 사도라는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강력한 사념 체의 노예 가된 자들이
지... 하지만 각성을 통해 사도가 된 너와는 근본적으로 틀리다. ]
커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후
드를 눌러쓴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묻자... 그들이 인간계를 자유자제로 이동할 수 있다면 왜 그들
이 굳이 인간계로 돌아 간 것이지?]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사념 체에 잡아먹혀 사도가 된 상태지만 본능
적으로는 인간계에 대한 갈망에 가득 차있다. 그래서 마계를 떠난
것이겠지...]
커트는 그의 말에 생각을 정리했다.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무엇인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고있었다. 후드를 쓴 사람은 그런 커트를 한번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그러자 커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잠깐! 잠깐! 어딜 가는 거야!]
그 남자는 몸을 반쯤 돌리며 말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은데...]
[물어 볼 것이 아직 많다. 기다려...]
커트의 말에 그는 두손을 공손히 모아 자신의 배에 얹으며 말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한가?]
[어..어떻게 하면 각성... 아니 인간계와 마계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을 깨달을수 있지?]
[그걸 인식하고 있다면 너는 이미 인간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잠... 잠깐! 너는 누군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인가?]
커트의 말에 그자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나 역시 너처럼 마계에 갇힌 채 오도가도 할 수 없는 그런 운명을
가진 자지...]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커트의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커트는 멍하니 선 채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미 밤이 오고 있었다.
커트는 눈을 떴다. 그는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서 눈을 양쪽으로 굴려보았다. 그
때 그의 머리위로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해가 나타났다. 해는 구름의 범
위에서 벗어나자 눈부신 빛을 발했다. 커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옆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들고는 주위를 두리
번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문득 자신이 인간계에 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
런 생각이 들자 그는 검을 어깨에 매고는 잽싸게 숲에서 벗어났다. 숲
을 나오자 인간이 사는 마을이 절벽 밑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
이 정말 인간계에 온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또 환각이 온 것이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현실같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을 무수히 해왔
지만 실제로 이렇게 인간계로 돌아오고 나니 그는 멍해져 있었다. 그
러나 그는 감상적인 생각을 접고는 절벽 밑의 마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을에 들어서니 사람들 모두가 커트를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
었다. 그는 그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며 길을 걸었다. 그는 갑자기
인간계로 돌아온 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데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커트는 태양이 내리비치자 습관적으로 졸음이 밀려왔다. 그는 잠이나
청할 겸해서 마을 가까이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서 눈을 붙였다. 한참
동안 잠을 자고 있는데 그의 주위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
다. 커트는 본능적으로 마물이 나타났음을 느끼고는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가 눈 깜짝 할 사이에 검을 휘두르려 하자
주위의 웅성임들이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커트는 마물들의 소리가 아
니자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커트가 본 그들은 하나같이 손
에 곡괭이며 낫등을 들고 있었고, 수십 여명이 커트를 둘러싸고는 두
려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커트는 그들이 사람이며 자신을
왜 이토록 경계하는지 궁금해서 검을 내려 놓고는 말했다.
[뭐지? 내게 볼일이 있나?]
그러자 어떤 자가 말했다.
[어서..어서 우리 마을에서 떠나라.... ]
[응?]
[우리..우리 마을은... 이방인을 싫어한다..어서 떠나라...]
그의 말에 커트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는 내가 가고싶은 곳을 간다. 너희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데...]
[듣기 싫다!!! 어서 떠나라!!!]
한사람이 그렇게 외치자 커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따라서 외쳤다.
[어서 여기를 떠나라!! 떠나라!!]
커트는 화가 났는지 검을 휘둘러 자신의 옆에 있던 거대한 나무를 베
어버렸다. 그러자 나무는 기우뚱하더니 사람들 쪽으로 쓰러졌다. 사람
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커트가 말했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나도 이런 곳에서 오래 있고 싶
지는 않다. 소원이라면 당장 꺼져주지...]
그가 악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벗어나려 하자 누군가가 사람들
에게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보며 울부짖었다.
[또... 또 ... 죽었어요... 이번에는 앞집의 에니타에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공포에 떨었다. 커트는 그
러한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누군가가 또 외
쳤다.
[저 자다!! 저자가 마을에 나타나서 그런 것이다.]
[저 자를 잡아라... 저 자가 원흉이다....]
사람들이 다시 곡괭이 등을 높이 치켜들고 커트에게 말하자 커트는 씨
익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인간과 마물이 같다는 거로군....]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검을 들어 시끄럽게 구는 이들의 몸을 반토막
내어 버렸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시체들이 쌓인 정 중앙에 말없이 서있자 누군가
가 지붕 위에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히히히 이제 마물이 없으니... 인간을 대신해서 베시는 건가?]
커트는 그의 목소리가 낯 익자 고개를 들어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그
러자 그곳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가슴을 입에 물고
있는 레날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신음 섞인 여자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의 손을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커트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이 여기에 있다니... 의외군...]
레날드는 여전히 그런 짓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네가 마계에서 나온 게... 나로서는 놀랍군 그래... ]
[펠은 어디 있지?]
그의 말에 레날드는 소리 높여 웃었다.
[맞아 맞아... 너는 펠의 추종자 였지... 네가 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시지... 펠이 어디 있는 지만 말해...]
레날드는 커트의 말에 분노의 눈빛을 띄우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 역시 펠 그 개자식을 찾아서 찢어
죽이고 싶을 뿐이야.]
[너는 여전히 펠을 미워하는군...]
[물론... 배신 한 녀석의 말로가 어떤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겠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커트가 그 말을 마치자 레날드는 황홀경에 도취되어 있는 여자를 커트
에게로 집어 던졌다. 순간 커트의 얼굴이 악귀와 같이 변하며 날아오
는 여자를 반토막 내버렸다. 검의 예기가 지붕에까지 미치자 레날드는
재빠르게 그곳을 피하면서 자신의 검을 내리쳤다.
[애송이 녀석!! 네가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나?]
커트는 거칠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검을 휙하고 돌리며 레날드의
검을 쳐내자 레날드의 검이 부서지며 튕겨나가 버렸다. 레날드는 몸이
반토막 날 위기에서 벗어나자 한숨을 몰아쉬며 주문을 외웠다.
[언 홀리 볼트!]
시커먼 볼트가 커트에게로 날아오자 커트는 검의 옆면으로 볼트를 쳐
내버리고는 몸을 회전시켜 레날드의 가슴을 베어갔다. 레날드가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며 그의 검을 피했지만 커트의 빠른 검에 의해 그의
다리가 무릎까지 잘려버렸다. 하지만 레날드는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커트는 그것을 지켜보다 허리춤에서 원통
모양의 물체를 꺼내 레날드를 향해 겨누었다. 그것을 보자 레날드의
눈이 삽시간에 커지더니 커다랗게 포효를 했다. 그러자 레날드의 등을
뚫고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이 뾰족해 지면서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 새의 얼굴로 변해 갔다. 새가 날개를 퍼덕거
리며 도망치려 하자 커트는 방아쇠를 당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원통의 입구에서 화약이 발사되었다. 불을 잔득 머
금은 화탄이 괴물 새에게로 날아가자 괴물 새는 자신의 날개를 앞으로
접어 화탄을 막았다. 또다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 새가 뒤로 밀
려 났다. 커트는 떨어지는 괴물 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괴물
새는 땅에 닿기 직전 날개를 크게 퍼덕 이더니 다시 허공을 향해 비상
했다. 커트는 괴물 새가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어떻게 쫓아 갈
수가 없었다. 화약도 재 장전까지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이 괴물 새가 흘린 피를 따라서 추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커트는 피를 따라 몇 시간이 넘게 추격을 했지만 괴물 새의 피가 점
점 멎어버리자 더이상 추격을 할 수가 없었다. 괴물 새를 따라 추격을
계속 하니 커트는 어느새 다른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배가 몹시
고파옴을 느껴 마을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마을 식당에 들어가자 사
람들이 모두 커트를 쳐다보았다. 커트는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는 몇
가지 음식을 시켰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주인장이 선불이라
고 말하자 커트는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강하던 커트도 돈이 없으니
음식을 못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 반토막 내어버린 다음 음식
을 찾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런 일로 검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
다. 그가 아무말 없이 검을 들고 일어서려 하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봐 주인장! 이분 음식값은 내가 낼 테니 음식 가져와요]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지자 그가 커트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커트의 얼굴에는 고마움 따위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히죽
웃으면서 커트의 앞에 앉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좀 앉아도 되겠소?]
[이미 앉아 놓고 뭘 묻는 거지?]
직설적인 그의 말에 그 사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검이 매우 크군요... 전사입니까?]
[알면서 왜 묻지?]
[하하하... 재미있으신 분이군요...]
[내 음식값을 대신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받고 싶나?]
다른 사람 같으면 커트의 말에 줬던 것도 다시 뺏고 싶은 마음이었겠
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인사 받으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내뿜는 분위기에 끌려
말을 붙여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뭐가 궁금한가?]
[하하하... 저는 모험가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죠... 당신 같은 전사는
처음 봅니다. 이런 특이한 장비며... 분위기란... 꽤나 경험이 많은 분
같군요]
[좋을 대로 생각해...]
[하하 요즘... 이곳의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 근방은 모
두 이방인을 경계하죠... 당신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뭐가 말입니까?]
[이방인을 경계 하는 것 말이야...]
[아.. 네... 예전에도 이방인을 경계하는 것이야 여전했지만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고 있거든요...]
그의 말에 커트는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그 이유를 알고있나? ]
[하하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소문으로는 악마가 강림했다는 이
야기가 있습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로군.... ]
[네?]
[그런 소문이 생긴 곳은 어디지?]
[이곳에서 동쪽으로 쭉 다가보면 마을이 하나 나옵니다. 탄광촌이라
남자들이 많은 곳인데... 요즘 들어서 그곳에 이유 없이 남자들이 죽
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커트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트가 시킨 음식
이 나오자 그는 그것을 빠르게 먹어 치운 후 음식값을 대신 내준 이에
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마을에서 말을 한 마리 훔쳐 탄광촌 마을로 몸
을 돌렸다. 그곳은 괴물 새가 날아간 방향과 일치하는 곳이었다.
커트는 꿈속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얀과의 정사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리듬을 타고 있었는데 그의 귓가에서 누군가
의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서..는...안...된...다...]
뚝뚝 끊기는 것 같기 도하고 어찌 보면 느릿느릿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한 이 음성은 계속해서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얀의 탐스러운 가슴을 이지러뜨렸다.
얀이 더욱 달뜬 신음 성을 내뱉자 커트의 귓전에서는 더욱더 큰 소리
가 맴돌았다.
[당..장.. 그..만...둬..라..]
그러나 커트는 이미 얀의 몸에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얀은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며 커트를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커트에
게 무엇을 요구하는 듯 했다. 커트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그녀 쪽으로
내밀자 얀 역시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커트의 얼굴이 점점
그녀를 향해 다가오자 얀은 여전히 웃으면서 자신의 얼굴을 변화시켰다.
그녀의 흰 얼굴에서 비늘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입과 눈이 찢어지면서
완벽한 뱀의 얼굴이 갖춰졌다. 그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커트의 얼
굴을 삼키기 시작했다. 커트는 멍한 얼굴로 뱀의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샥, 하는 소리와 함께 뱀의 목이 잘려나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커트는 뱀의 몸에서 벗어났고, 뱀은 고통스럽다는
듯 울부짖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일 그를 지켜보고 있
던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쇠막대기
라고 불릴만한 것이 들려져 있었다.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말했다.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의 말에 커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꿈을 꾼 것이었다. 하지만 이
미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커트가 다행이란 듯 한숨을
내쉬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의 말에 커트는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옆에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다...당신은... ]
[너는 사념 체에게 잡아 먹힐 번했다.]
커트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다..당신은 누구지? ]
[이것이 현실인 것 같나... 아니면 꿈인 것 같나?]
그는 커트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커트는 그것을 세
번씩이나 듣고 있는 중이었다.
[바..방금 나는 꿈을 꾼 것 같은데...]
후드를 쓴 남자가 커트를 향해 무엇을 던졌다. 그것은 뱀의 목이었다.
[마계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 짓지 않는다... 그리고 차원 따위도
구분 짓지 않지]
커트는 자신이 꾼 꿈이 현실 아닌 현실임을 직감하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무슨 말이지?]
[해가 짧아졌군...]
[내가 묻는 말에 답해!!]
커트는 화가 나서 외쳤다. 그의 말에 후드를 쓴 남자가 말했다.
[너의 5동료가 어디로 갔다 생각하나?]
그것은 커트 역시 궁금해 왔던 것이었다.
[알고 있다면 말해다오]
[내가 먼저 물었다.]
[모르니까 말해달라는 것 아닌가!]
[성격이 급한 친구로군... 그대의 5동료는 지금 그대들이 흔히 말하는
인간계에 있다.]
그의 말에 커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들이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지? ]
[너의 동료들은 마계에도 있다.]
그의 말에 커트는 자신의 검을 후드의 남자에게로 겨누었다.
[너의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다. 그들은 어떻게 인간계로 간
것이지?]
후드를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가 말했다.
[그들은 인간계와 마계 두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물과는 다른 힘을
가진 그들은 자유롭게 마계와 인간계를 이동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그들은 마물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들은 오랫동안 마물들과 싸워온 자들이다. 인간 중에서는 강한 편
에 속하는 자들이지 그리고 그러한 강한 자들의 사념체 또한 강한
법이다. ]
커트는 여전히 검을 그에게 겨누며 말했다.
[그럼 너의 말은 펠과... 다른 녀석들이 내가 꾼 꿈처럼 꿈에 잡아 먹
혔단 말인가?]
[반정 도는 맞췄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사념... 사념이다. 그것은 꿈
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환상과 같이 나타
나며 공포와 불안이 극도에 달했을 때 생겨나기도 하지... 너희들의
리더였던 펠이라는 자는 강한 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불안했지 너
희들이 말하는 인간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야...
처음의 그러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커져갔어... 그래서 강한
펠마저 자신의 사념 체에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리더인 펠이 인간
계로 가버리자 그후로 너희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갔지... 처음에는
다들 마계에서 죽을 생각을 하고 왔지만 누군가가 마계를 빠져나갔
다는 생각을 하니 죽고 싶겠나? 그리고 남은 너희 동료들은 겉으로
는 마물을 혐오하면서 거침없이 베어 나갔지만 속으로는 서서히 마
물들과 타협해갔지... 결국 그들도 자신들의 사념에 먹이가 된 것이
다... ]
그의 말을 듣던 커트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그럼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지?]
[마계에서의 마물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마물들의 존재를 묻고 있는 게 아니잖아!]
[내말에 먼저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 너는 궁금한 게 많을 테니까...]
그의 말에 커트는 검을 땅바닥에 꽂고는 입을 열었다.
[마물들은 마계에 있는 사악한 무리들일 뿐이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흐흐흐... 난 너의 그 단순함이 좋단 말야... 그 단순함이 너를 여태껏
살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내가 아까 말했던 게 생각나나? 너의 동료들은 인간계에도 존재하고
마계에도 존재한다.]
[물론 ]
[그건... 너 역시 다르지 않다. 아니 그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하
는 말이다. 마계는 인간들의 사념들이 모인 또 다른 공간이다. 하지
만 이곳은 인간계와 그렇게 다르지 않아. 마물들끼리도 서로를 죽
이고 먹으려 드는걸 너 역시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
[헛소리!! 마물과 인간을 비교하다니... 대상이 잘못됐군 그래...]
[너는 아직 각성이 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게 계속 마계에 남아있게
된다면 너는 며칠을 가지 못해 사념 체에 잡아먹히고 말걸? 그... 뱀
말이야...]
[각성이라니?]
[인간계와 마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각성... 그리고 그것을 깨닫
게 된다면 너는 흔히들 말하는 인간계와 마계를 자유자제로 이동할
수 있는 사도가 된다.]
[사도?]
[우리는 그런 자들을 사도라고 부르지... 사도는 마계와 인간계를 이동
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들은 흩어진 상태에서는 자신들밖에 이동할
수 없어... 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그럼... 나의 동료들도 사도라는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강력한 사념 체의 노예 가된 자들이
지... 하지만 각성을 통해 사도가 된 너와는 근본적으로 틀리다. ]
커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후
드를 눌러쓴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묻자... 그들이 인간계를 자유자제로 이동할 수 있다면 왜 그들
이 굳이 인간계로 돌아 간 것이지?]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사념 체에 잡아먹혀 사도가 된 상태지만 본능
적으로는 인간계에 대한 갈망에 가득 차있다. 그래서 마계를 떠난
것이겠지...]
커트는 그의 말에 생각을 정리했다.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무엇인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고있었다. 후드를 쓴 사람은 그런 커트를 한번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그러자 커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잠깐! 잠깐! 어딜 가는 거야!]
그 남자는 몸을 반쯤 돌리며 말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은데...]
[물어 볼 것이 아직 많다. 기다려...]
커트의 말에 그는 두손을 공손히 모아 자신의 배에 얹으며 말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한가?]
[어..어떻게 하면 각성... 아니 인간계와 마계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을 깨달을수 있지?]
[그걸 인식하고 있다면 너는 이미 인간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잠... 잠깐! 너는 누군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인가?]
커트의 말에 그자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나 역시 너처럼 마계에 갇힌 채 오도가도 할 수 없는 그런 운명을
가진 자지...]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커트의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커트는 멍하니 선 채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미 밤이 오고 있었다.
커트는 눈을 떴다. 그는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서 눈을 양쪽으로 굴려보았다. 그
때 그의 머리위로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해가 나타났다. 해는 구름의 범
위에서 벗어나자 눈부신 빛을 발했다. 커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옆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들고는 주위를 두리
번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문득 자신이 인간계에 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
런 생각이 들자 그는 검을 어깨에 매고는 잽싸게 숲에서 벗어났다. 숲
을 나오자 인간이 사는 마을이 절벽 밑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
이 정말 인간계에 온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또 환각이 온 것이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현실같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을 무수히 해왔
지만 실제로 이렇게 인간계로 돌아오고 나니 그는 멍해져 있었다. 그
러나 그는 감상적인 생각을 접고는 절벽 밑의 마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을에 들어서니 사람들 모두가 커트를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
었다. 그는 그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며 길을 걸었다. 그는 갑자기
인간계로 돌아온 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데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커트는 태양이 내리비치자 습관적으로 졸음이 밀려왔다. 그는 잠이나
청할 겸해서 마을 가까이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서 눈을 붙였다. 한참
동안 잠을 자고 있는데 그의 주위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
다. 커트는 본능적으로 마물이 나타났음을 느끼고는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가 눈 깜짝 할 사이에 검을 휘두르려 하자
주위의 웅성임들이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커트는 마물들의 소리가 아
니자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커트가 본 그들은 하나같이 손
에 곡괭이며 낫등을 들고 있었고, 수십 여명이 커트를 둘러싸고는 두
려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커트는 그들이 사람이며 자신을
왜 이토록 경계하는지 궁금해서 검을 내려 놓고는 말했다.
[뭐지? 내게 볼일이 있나?]
그러자 어떤 자가 말했다.
[어서..어서 우리 마을에서 떠나라.... ]
[응?]
[우리..우리 마을은... 이방인을 싫어한다..어서 떠나라...]
그의 말에 커트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는 내가 가고싶은 곳을 간다. 너희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데...]
[듣기 싫다!!! 어서 떠나라!!!]
한사람이 그렇게 외치자 커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따라서 외쳤다.
[어서 여기를 떠나라!! 떠나라!!]
커트는 화가 났는지 검을 휘둘러 자신의 옆에 있던 거대한 나무를 베
어버렸다. 그러자 나무는 기우뚱하더니 사람들 쪽으로 쓰러졌다. 사람
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커트가 말했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나도 이런 곳에서 오래 있고 싶
지는 않다. 소원이라면 당장 꺼져주지...]
그가 악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벗어나려 하자 누군가가 사람들
에게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보며 울부짖었다.
[또... 또 ... 죽었어요... 이번에는 앞집의 에니타에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공포에 떨었다. 커트는 그
러한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누군가가 또 외
쳤다.
[저 자다!! 저자가 마을에 나타나서 그런 것이다.]
[저 자를 잡아라... 저 자가 원흉이다....]
사람들이 다시 곡괭이 등을 높이 치켜들고 커트에게 말하자 커트는 씨
익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인간과 마물이 같다는 거로군....]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검을 들어 시끄럽게 구는 이들의 몸을 반토막
내어 버렸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시체들이 쌓인 정 중앙에 말없이 서있자 누군가
가 지붕 위에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히히히 이제 마물이 없으니... 인간을 대신해서 베시는 건가?]
커트는 그의 목소리가 낯 익자 고개를 들어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그
러자 그곳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가슴을 입에 물고
있는 레날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신음 섞인 여자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의 손을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커트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이 여기에 있다니... 의외군...]
레날드는 여전히 그런 짓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네가 마계에서 나온 게... 나로서는 놀랍군 그래... ]
[펠은 어디 있지?]
그의 말에 레날드는 소리 높여 웃었다.
[맞아 맞아... 너는 펠의 추종자 였지... 네가 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시지... 펠이 어디 있는 지만 말해...]
레날드는 커트의 말에 분노의 눈빛을 띄우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 역시 펠 그 개자식을 찾아서 찢어
죽이고 싶을 뿐이야.]
[너는 여전히 펠을 미워하는군...]
[물론... 배신 한 녀석의 말로가 어떤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겠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커트가 그 말을 마치자 레날드는 황홀경에 도취되어 있는 여자를 커트
에게로 집어 던졌다. 순간 커트의 얼굴이 악귀와 같이 변하며 날아오
는 여자를 반토막 내버렸다. 검의 예기가 지붕에까지 미치자 레날드는
재빠르게 그곳을 피하면서 자신의 검을 내리쳤다.
[애송이 녀석!! 네가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나?]
커트는 거칠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검을 휙하고 돌리며 레날드의
검을 쳐내자 레날드의 검이 부서지며 튕겨나가 버렸다. 레날드는 몸이
반토막 날 위기에서 벗어나자 한숨을 몰아쉬며 주문을 외웠다.
[언 홀리 볼트!]
시커먼 볼트가 커트에게로 날아오자 커트는 검의 옆면으로 볼트를 쳐
내버리고는 몸을 회전시켜 레날드의 가슴을 베어갔다. 레날드가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며 그의 검을 피했지만 커트의 빠른 검에 의해 그의
다리가 무릎까지 잘려버렸다. 하지만 레날드는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커트는 그것을 지켜보다 허리춤에서 원통
모양의 물체를 꺼내 레날드를 향해 겨누었다. 그것을 보자 레날드의
눈이 삽시간에 커지더니 커다랗게 포효를 했다. 그러자 레날드의 등을
뚫고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이 뾰족해 지면서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 새의 얼굴로 변해 갔다. 새가 날개를 퍼덕거
리며 도망치려 하자 커트는 방아쇠를 당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원통의 입구에서 화약이 발사되었다. 불을 잔득 머
금은 화탄이 괴물 새에게로 날아가자 괴물 새는 자신의 날개를 앞으로
접어 화탄을 막았다. 또다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 새가 뒤로 밀
려 났다. 커트는 떨어지는 괴물 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괴물
새는 땅에 닿기 직전 날개를 크게 퍼덕 이더니 다시 허공을 향해 비상
했다. 커트는 괴물 새가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어떻게 쫓아 갈
수가 없었다. 화약도 재 장전까지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이 괴물 새가 흘린 피를 따라서 추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커트는 피를 따라 몇 시간이 넘게 추격을 했지만 괴물 새의 피가 점
점 멎어버리자 더이상 추격을 할 수가 없었다. 괴물 새를 따라 추격을
계속 하니 커트는 어느새 다른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배가 몹시
고파옴을 느껴 마을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마을 식당에 들어가자 사
람들이 모두 커트를 쳐다보았다. 커트는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는 몇
가지 음식을 시켰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주인장이 선불이라
고 말하자 커트는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강하던 커트도 돈이 없으니
음식을 못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 반토막 내어버린 다음 음식
을 찾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런 일로 검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
다. 그가 아무말 없이 검을 들고 일어서려 하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봐 주인장! 이분 음식값은 내가 낼 테니 음식 가져와요]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지자 그가 커트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커트의 얼굴에는 고마움 따위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히죽
웃으면서 커트의 앞에 앉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좀 앉아도 되겠소?]
[이미 앉아 놓고 뭘 묻는 거지?]
직설적인 그의 말에 그 사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검이 매우 크군요... 전사입니까?]
[알면서 왜 묻지?]
[하하하... 재미있으신 분이군요...]
[내 음식값을 대신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받고 싶나?]
다른 사람 같으면 커트의 말에 줬던 것도 다시 뺏고 싶은 마음이었겠
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인사 받으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내뿜는 분위기에 끌려
말을 붙여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뭐가 궁금한가?]
[하하하... 저는 모험가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죠... 당신 같은 전사는
처음 봅니다. 이런 특이한 장비며... 분위기란... 꽤나 경험이 많은 분
같군요]
[좋을 대로 생각해...]
[하하 요즘... 이곳의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 근방은 모
두 이방인을 경계하죠... 당신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뭐가 말입니까?]
[이방인을 경계 하는 것 말이야...]
[아.. 네... 예전에도 이방인을 경계하는 것이야 여전했지만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고 있거든요...]
그의 말에 커트는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그 이유를 알고있나? ]
[하하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소문으로는 악마가 강림했다는 이
야기가 있습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로군.... ]
[네?]
[그런 소문이 생긴 곳은 어디지?]
[이곳에서 동쪽으로 쭉 다가보면 마을이 하나 나옵니다. 탄광촌이라
남자들이 많은 곳인데... 요즘 들어서 그곳에 이유 없이 남자들이 죽
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커트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트가 시킨 음식
이 나오자 그는 그것을 빠르게 먹어 치운 후 음식값을 대신 내준 이에
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마을에서 말을 한 마리 훔쳐 탄광촌 마을로 몸
을 돌렸다. 그곳은 괴물 새가 날아간 방향과 일치하는 곳이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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