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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타락을 동경하다 - 1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5 02:29 1,931회 0건
희뿌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잔뜩 찌푸린 잿빛의 하늘. 버스의 가장 뒷자리 오른쪽 창가에 앉아서, 엔진의 진동을 기분 좋게 몸으로 느끼면서 난 이어폰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다. 귀를 때리는 시원한 음악소리. 더불어 조금전가지만 해도 복잡하게 헝클어졌던 내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을 더 느낄 새도 없이, 버스는 곧 학교 근처의 정류장에 멈추어 버렸다.
밖은 상당히 추웠다. 난 코트깃을 여미고, 이어폰을 다시 한 번 떨어지지 않게 잘 꽂은 뒤에 이미 보충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시간의 학교로 향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약 3분 정도를 걸어가자 학교 건물과 그것을 둘러싼 높다란 담장이 보였다.

담장.
학교.
우리를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시켜버리는 방해물.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오늘은 저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날이다, 라는 생각도 거의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습관....이겠지? 젠장. 싫다, 정말 이런 건. 괜시리 기분이 나빠졌다. 한심한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누군가가 시원하게 몇 대 갈겨주기라도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학교로 가는 이 골목엔 이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 골목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교복으로 봐서 우리 학교 학생인 듯한 한 소녀가 보였다. 교칙을 무시하는 듯 어깨를 훨씬 넘어가서 거의 허리까지 닿는 긴 생머리에, 타이트하게 줄여 입은 스커트, 요새 유행하고 있는, 가방인지 핸드백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가죽 재질의 작은 가방. 거기에 일본 여고생처럼 발목을 덮는 루즈삭스까지 신고 있었다. 까져도 단단히 까진 애 같아 보였다. 하지만....아무리 그런 애라도 대뜸 나 좀 쳐 달라고 하면 당황하겠지. 그럼........

"치게 만들면 되잖아?"

간단하게 해답이 나왔다. 누가 보면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난 미친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이 현재 내 기분을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난 조금 걸음을 빨리하여 그 소녀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무슨 정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과감히 소녀의 한쪽 팔을 잡아 담벼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약간 놀란 눈동자로 난 바라보는 소녀의 입술에 키스하였다.

"읍........."

소녀의 몸이 움찔거리며 날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서 그녀에게 떠밀리는 척 하면서 뒤로 물러나면, 그 다음엔 내 뺨에 불이 나겠지.
그런데 난 소녀에게서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몸은 이미 의식의 지배를 벗어난 지 오래. 내 혀가 미끄러져 나와 소녀의 입술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소녀의 입안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소녀의 거부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내 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난 놀라서 그만 얼굴을 뒤로 빼 버렸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와 나의 입을 타액의 실이 길게 연결해주었다.

".........."

".........."

서로 말이 없었다. 난 당황과 혼란스러움에 눈을 돌리고 소녀의 옆벽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소녀는 침착한 눈빛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팔, 아파."

잠시 후에 소녀가 입을 열었고, 난 그제서야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채 붙잡고 있던 소녀의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에, 소녀는 손목을 몇 번 문지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손을 내 쪽으로 뻗기 시작했다. 치려는 건가? 난 눈을 질끈 감았고, 곧 내 뺨에는 소녀의 부드러운, 하지만 날씨로 인해 조금 차가워진 손이 닿았다. 그 손은,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 내리고 있었다.

"어.........."

하지만 내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소녀가, 내 입술에,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 입안에 분명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소녀의 혀. 그녀는 나보다 더 능숙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 아주 오랫동안, 나와 소녀는 인적 드문 어느 골목길에서, 짧지만 긴 시간동안 달콤한 키스의 감촉을 나누었다.
황홀하면서도, 한편으론 의문이 일고 당황스러웠던 겨울 아침의 키스는, 긴 여운을 남긴 채 그녀에 의해서 끝났다. 처음과 같은, 그 은빛 실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것으로.
그 후론 침묵의 시간이었다. 소녀는 내 양쪽 뺨에 손을 댄 채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난 어느 새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채 소녀의 두 눈을 보고 있었다. 소녀의 작게 벌려진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와 우리 둘 사이를 메워갔고, 그 순백의 여운이 사라질 즈음에 내 입이 열렸다.

"왜........날 때리지 않았지......? 또 아까의 그건........."

"...........싫어?"

"싫진 않아. 하지만, 하지만 넌..........."

"그럼 된 거야. 우리 둘 다 싫지 않다면 문제는 없는 거잖아."

그리고 나서 그녀는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내 입가에 묻은 키스의 흔적을 닦아주었다. 입술을 스치는 소녀의 손가락이, 한순간 내 아래턱을 살짝 눌렀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살짝 벌어진 입술 위를, 다시 한 번 소녀의 입술이 덮여졌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그런 격렬한 키스는 아니었다. 마치 엄마가 자식에게 해 주는 것처럼 가벼운 키스. 소녀의 입술은 이내 떨어졌고, 따뜻한 온기만을 내 입술 위에 남긴 채 그녀는 내 손을 빠져나가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놓치기 싫어.
그냥, 이대로 어디론가 가고 싶어.
혼자서?
혼자는........이제 싫어.

뛰었다. 그리고 소녀의 손목을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학교 교문이 보였고, 지각한 학생들을 잡기 위해 나온 선생들의 모습 역시 보이기 시작했다.
싫다. 저 인간들, 모두.

"야, 임마!"

내가 멈추지 않고 자기 곁을 지나쳐 계속 달리자 나에게 외친다.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저곳으로 들어가라고. 하지만, 그따위 개소릴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달려서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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