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27화 신성전투(7)
"이럴수가..."
중앙 진 약간 높은 언덕에 진을 치고 그 가운데에서 펼쳐진 전투를 감상하던 귀족들이 말문을 닫지 못하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손에 쥔 술잔이 바닥을 구르며 잔안에 들어 잇던 술이 흘러 내렸다.
"어..어떻게 저런 일이"
"어찌 저런일이..."
"저런 저런 저 쳐죽일 놈들"
"이대로 둬선 안되오 당장이라도 저들을 막아야 하오"
"그렇소이다. 감히 천한 것들이 어디서 감히"
귀족들이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본다는 듯이 당혹감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 앞에는 용병단에게 처참히 학살당하고 있는 기사단의 모습이 들어왔다. 용병단은 전장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기사단의 목을 베어가고 잇었다.
용병들 중 일부분은 자신들을 노려보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자신들의 양 옆의 다른 용병단을 공격했던 기사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용병단 양 옆의 기사단은 멀리서도 느낄정도로 뚜렷한 살기와 분노를 터뜨렸지만 정작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지 못한채 그저 주먹과 창을 휘두르며 분노만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저기 채 죽지 못했던 기사들이 내지른 비명소리가 귀족들의 귀에 아프게 들려왔다.
"저런 발칙한 놈들"
"전하 저런 놈들을 가만히 둘 수 없사옵니다, 어찌 감히 천한것들이"
막사 한가운데 모인 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분분히 외쳐댔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외침은 막사 전면의 노인이 손을 들자 침묵으로 바뀌었다.
노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바닥에 엎어진 기사들의 목을 쳐내며 그들의 무구들과 말들을 챙기는 용병단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허탈하면서도 어딘지 통쾌한듯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흠 과히 보기 좋지는 않군. 하지만 어찌됐건 이로써 칼로쉬의 얼굴에 똥칠을 하게 생겼지 않소? 휘하 기사단이 일개 저런 용병들에게 모욕을 당했으니 말이오. 하하하하"
노인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전 분노를 터뜨리던 귀족들마져 통쾌하다는 듯한 얼굴로 일제히 돌변했다.
"하하하 맞습니다. 형편없는 기사단이었습니다."
"칼로쉬측은 저 용병단을 기사로 받아 들이는게 낫겟군요?"
"아니지요. 우리가 저 용병단을 불러서 깃발을 만들어 줍시다. 칼로쉬 대공측 기사단을 물리친 그림을 그려서요"
"오 그것이 좋겠군요"
노인이 자신의 뒤에서 그렇게 말하는 귀족들을 힐끔 쳐다 보았다. 귀족들이 이내 다시금 잠잠해 졌다.
"황태자 저하 어떻게 보셨는지요?"
노인이 몸을 돌려 무료한 듯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이는 청년을 향해 물었다. 황태자가 노인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케인즈경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황태자에 의해 부름을 받은 중년의 케인즈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케인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귀를 기울였다.
케인즈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해대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흠, 먼저 저 용병단은 많은 준비를 해왔던 듯 싶습니다. 아, 물론 이곳의 전투는 그 방법이나 형식등이 일체 비밀에 붙여져 왔었습니다. 하지만 돈이란 능히 드래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지요."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즈가 그런 귀족들의 반응을 즐기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아마 저들은 그렇게 해서 기사단이 어떤 전법으로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공격하는지 알고 잇을 것입니다.
사실 이 신성전투는 그 공격과 공격의 형식에 있어서 너무나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사단이든 일반 용병단이든 말입니다.
사실 매번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기사단의 발을 묶는 것과 똑같을 뿐 아니라 오늘의 저런 사단도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자들이면 능히 저런식의 대응도 예상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런 전투? 글세요? 전투라 불리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벌어진다 하더라도 오히려 상황은 정 반대로 나타나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를 든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저렇게 방패와 창을 연계한 방어진을 구축했을 때 그 주위로 조금만 돌아간다면 능히 더 적은 피해로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기사단이 진격하는 데 있어서 그 기동이 원활 하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조금 더 간격을 두고 전진 한다면 능히 파훼하지 못할 진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사단이 조금만 융통성을 보여서 이번처럼 저 용병단이 뒤로 물러날 때 조금만 양 옆으로 움직여 그들의 배후를 치게 된다면 저 용병단은 그대로 전멸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친 저 방어진은 도리어 저들의 발을 묶는 족쇄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조그마한 주로만 허락되고 더욱이 뒤로나 옆으로의 움직임은 극단으로 제한된 이 전투의 방법이 저 기사단의 불행이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흠... 잘 알겟소."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노인을 향해 바라보앗다. 그리곤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렇다는군요?"
황태자가 마치 남의 일 인양 그렇게 말했다. 노인이 희미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립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전하 옆에 이처럼 영명한 참모가 있다는 것은 제국의 앞날에 펠리온의 가호가 함께 한 것일 것입니다."
황태자가 고개를 저었다.
"과찬입니다. 저보다는 오히려 대공 밑의 수하들이 더 유능하다고 들었습니다만?"
황태자의 말에 노인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유능하긴요? 그저 밥이나 축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보다 여기 레폴트 공작의 아들이 뛰어난 기사라고 하더군요"
노인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돌려 레폴트를 향했다. 황태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호기심이 묻어 나왔다. 레폴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펴고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사실 제 아들 놈에게 제 휘하의 기사단을 하나 맡기긴 했지만 그것은 그놈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천성이 게으르고 엉뚱한 놈인지라 도대체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입니다. 오히려 밥이나 축내고 있는 것은 제 아들놈일 따름입니다.
이처럼 두 분께서 그렇게 관심 가질 만한 놈이 아닙니다."
"흠 그런가요?"
레폴트의 말에 황태자가 지나가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빙긋이 웃고는 다시 레폴트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겸양할 필요는 없네. 아마 흑색창기단이라고 했던가? 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만. 그래 이번에도 같이 온 것으로 알고 있네만?"
레폴트의 얼굴에 약간 식은 땀이 흘렀다.
"같이 오기는 왔습니다만 너무나 예의를 모르는 놈이라..."
"흠 무인에게 궁중에서처럼 예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테지. 약간의 무례는 개념치 않을테니 한번 얼굴이나 보여주겠나?"
노인의 말을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었는지 레폴트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자에게 뭔가를 이야기 했다. 레폴트의 뒤에 잇던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사밖을 나갔다.
"너무나 무례한 놈인지라 부디 어떤 말을 하더라도 맘에 두지 마시옵소서"
레폴트가 황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게 말했다. 황태자와 노인이 알겟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폴트의 고개가 올려질쯤 막사 안으로 자신의 몸을 온통 흑색 무구로 두른 제이슨이 천천히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제이슨이 황태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팔을 가슴에 붙이고 고개를 숙여 군례를 올렸다.
"호? 제법 호기있게 생겼구려?"
황태자가 레폴트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레폴트가 살짝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천천히 일어나는 레폴트를 향해 황태자의 곁에 서 있는 노인을 가르켰다.
"이분에게도 인사드려라. 이분은 제국 삼공 중 하나이신 듀코브니 대공이시다."
제이슨이 레폴트의 말에 몸을 일으켜 다시 군례를 드렸다. 노인이 기꺼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과연 무장의 기개가 엿보이는 인재로군요."
"과찬이십니다."
제이슨이 고개를 숙인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듀코브니가 제이슨에게 빌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는 방금 일어난 저 전투를 어떻게 보았는가?"
제이슨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전투라 하시면?"
듀코브니가 살짝 몸을 돌려 평원을 보였다. 어느새 전장은 얼추 정리가 끝나고 기사단은 아하루의 용병단을 견제하며 새로운 제 3진을 향해 돌격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수아비 용병단도 그런 기사단에 맞추어 천천히 진을 이룬채 뒤로 주츰 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전투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제이슨이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방적인 학살입니다. 기병이 보병을 학살하기 위한 전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런"
누군가 제이슨의 말이 끝나자 경호성을 내뱉었으나 듀코브니가 고개를 재빨리 그곳으로 돌리자 이내 침묵으로 되돌아갔다.
노인이 다시 제이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얇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이 전투는 원래 기병에 의한 보병의 학살이겠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기사단에 의한 평민인 용병단의 학살이기도 하고 말일세"
노인의 말에 좌중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노인이 그런 고요함에 기분 좋은 듯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가 묻는 것은 그러한 학살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방금 전 벌어진 보병들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네"
"저 전투라면 그다지 할 말은 없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특수한 전투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건가?"
듀코브니가 그렇게 묻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답변은 드릴 수 없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호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기 케인즈 경은 단번에 저 용병단을 훼파할 작전을 생각해 내셨던데?"
듀코브니가 그렇게 놀리듯 말했다. 제이슨이 케인즈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게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얼굴로 돌아갔다.
"글세요? 케인즈경이야 저보다 뛰어난 전략가시니 제가 뭐라고 할 말은 없군요. 하지만 일반 전투라면 저도 꽤나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것입니다."
"그래?"
듀코브니가 잠시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내 눈빛은 사라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과 같군 그래?"
이번엔 제이슨이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설마하니 누가 감히 대공 각하의 철벽의 기사단들에게 피해를 주겠습니까?"
레폴트가 그렇게 말했다. 듀코브니도 그런 레폴트의 웃음에 같이 따라 웃었다.
"하하하 모를 일이지요."
"하하하 그럼 제 휘하 기사단은 아예 박살이 나겟군요?"
"오우 그럼 제 기사단은 아마 흔적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보다 더 불쌍한 것은 칼리나 대공이겟죠. 그 휘하 기사단은 아예 가루가 될테니 말입니다."
귀족들이 이때다 기회를 잡았는지 일제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됐다 그만 물러나라"
레폴트가 그런 다시금 떠들썩한 분위기에 재빨리 제이슨을 향해 말했다. 제이슨이 레폴트의 말에 다시금 황태자와 듀코브니에게 군례를 올렸다.
이미 황태자의 관심은 제이슨에게 멀어졌는지 제이슨의 군례를 보는제 마는체 하고는 손을 들어 물러 나게 했다.
제이슨이 막사 밖으로 물러 나갈 때 문득 듀코브니의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나저나 칼리나도 참 불쌍하오. 저번에 그의 이름을 딴 휘하 공작의 기사단이 해체되더니 이번에 저렇게 개망신을 당하니 말입니다.
여하튼 조만간 발 밑이 무너지면 그 꼴이 더욱 우습게 되겠소이다. 그려"
"하하하 과연 그렇군요?"
"큭큭큭"
듀코브니의 그런 조롱에 따라 다른 귀족들이 웃음이 더욱 크게 높아만 갔다.
"이럴수가..."
중앙 진 약간 높은 언덕에 진을 치고 그 가운데에서 펼쳐진 전투를 감상하던 귀족들이 말문을 닫지 못하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손에 쥔 술잔이 바닥을 구르며 잔안에 들어 잇던 술이 흘러 내렸다.
"어..어떻게 저런 일이"
"어찌 저런일이..."
"저런 저런 저 쳐죽일 놈들"
"이대로 둬선 안되오 당장이라도 저들을 막아야 하오"
"그렇소이다. 감히 천한 것들이 어디서 감히"
귀족들이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본다는 듯이 당혹감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 앞에는 용병단에게 처참히 학살당하고 있는 기사단의 모습이 들어왔다. 용병단은 전장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기사단의 목을 베어가고 잇었다.
용병들 중 일부분은 자신들을 노려보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자신들의 양 옆의 다른 용병단을 공격했던 기사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용병단 양 옆의 기사단은 멀리서도 느낄정도로 뚜렷한 살기와 분노를 터뜨렸지만 정작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지 못한채 그저 주먹과 창을 휘두르며 분노만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저기 채 죽지 못했던 기사들이 내지른 비명소리가 귀족들의 귀에 아프게 들려왔다.
"저런 발칙한 놈들"
"전하 저런 놈들을 가만히 둘 수 없사옵니다, 어찌 감히 천한것들이"
막사 한가운데 모인 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분분히 외쳐댔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외침은 막사 전면의 노인이 손을 들자 침묵으로 바뀌었다.
노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바닥에 엎어진 기사들의 목을 쳐내며 그들의 무구들과 말들을 챙기는 용병단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허탈하면서도 어딘지 통쾌한듯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흠 과히 보기 좋지는 않군. 하지만 어찌됐건 이로써 칼로쉬의 얼굴에 똥칠을 하게 생겼지 않소? 휘하 기사단이 일개 저런 용병들에게 모욕을 당했으니 말이오. 하하하하"
노인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전 분노를 터뜨리던 귀족들마져 통쾌하다는 듯한 얼굴로 일제히 돌변했다.
"하하하 맞습니다. 형편없는 기사단이었습니다."
"칼로쉬측은 저 용병단을 기사로 받아 들이는게 낫겟군요?"
"아니지요. 우리가 저 용병단을 불러서 깃발을 만들어 줍시다. 칼로쉬 대공측 기사단을 물리친 그림을 그려서요"
"오 그것이 좋겠군요"
노인이 자신의 뒤에서 그렇게 말하는 귀족들을 힐끔 쳐다 보았다. 귀족들이 이내 다시금 잠잠해 졌다.
"황태자 저하 어떻게 보셨는지요?"
노인이 몸을 돌려 무료한 듯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이는 청년을 향해 물었다. 황태자가 노인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케인즈경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황태자에 의해 부름을 받은 중년의 케인즈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케인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귀를 기울였다.
케인즈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해대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흠, 먼저 저 용병단은 많은 준비를 해왔던 듯 싶습니다. 아, 물론 이곳의 전투는 그 방법이나 형식등이 일체 비밀에 붙여져 왔었습니다. 하지만 돈이란 능히 드래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지요."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즈가 그런 귀족들의 반응을 즐기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아마 저들은 그렇게 해서 기사단이 어떤 전법으로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공격하는지 알고 잇을 것입니다.
사실 이 신성전투는 그 공격과 공격의 형식에 있어서 너무나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사단이든 일반 용병단이든 말입니다.
사실 매번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기사단의 발을 묶는 것과 똑같을 뿐 아니라 오늘의 저런 사단도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자들이면 능히 저런식의 대응도 예상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런 전투? 글세요? 전투라 불리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벌어진다 하더라도 오히려 상황은 정 반대로 나타나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를 든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저렇게 방패와 창을 연계한 방어진을 구축했을 때 그 주위로 조금만 돌아간다면 능히 더 적은 피해로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기사단이 진격하는 데 있어서 그 기동이 원활 하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조금 더 간격을 두고 전진 한다면 능히 파훼하지 못할 진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사단이 조금만 융통성을 보여서 이번처럼 저 용병단이 뒤로 물러날 때 조금만 양 옆으로 움직여 그들의 배후를 치게 된다면 저 용병단은 그대로 전멸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친 저 방어진은 도리어 저들의 발을 묶는 족쇄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조그마한 주로만 허락되고 더욱이 뒤로나 옆으로의 움직임은 극단으로 제한된 이 전투의 방법이 저 기사단의 불행이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흠... 잘 알겟소."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노인을 향해 바라보앗다. 그리곤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렇다는군요?"
황태자가 마치 남의 일 인양 그렇게 말했다. 노인이 희미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립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전하 옆에 이처럼 영명한 참모가 있다는 것은 제국의 앞날에 펠리온의 가호가 함께 한 것일 것입니다."
황태자가 고개를 저었다.
"과찬입니다. 저보다는 오히려 대공 밑의 수하들이 더 유능하다고 들었습니다만?"
황태자의 말에 노인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유능하긴요? 그저 밥이나 축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보다 여기 레폴트 공작의 아들이 뛰어난 기사라고 하더군요"
노인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돌려 레폴트를 향했다. 황태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호기심이 묻어 나왔다. 레폴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펴고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사실 제 아들 놈에게 제 휘하의 기사단을 하나 맡기긴 했지만 그것은 그놈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천성이 게으르고 엉뚱한 놈인지라 도대체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입니다. 오히려 밥이나 축내고 있는 것은 제 아들놈일 따름입니다.
이처럼 두 분께서 그렇게 관심 가질 만한 놈이 아닙니다."
"흠 그런가요?"
레폴트의 말에 황태자가 지나가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빙긋이 웃고는 다시 레폴트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겸양할 필요는 없네. 아마 흑색창기단이라고 했던가? 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만. 그래 이번에도 같이 온 것으로 알고 있네만?"
레폴트의 얼굴에 약간 식은 땀이 흘렀다.
"같이 오기는 왔습니다만 너무나 예의를 모르는 놈이라..."
"흠 무인에게 궁중에서처럼 예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테지. 약간의 무례는 개념치 않을테니 한번 얼굴이나 보여주겠나?"
노인의 말을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었는지 레폴트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자에게 뭔가를 이야기 했다. 레폴트의 뒤에 잇던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사밖을 나갔다.
"너무나 무례한 놈인지라 부디 어떤 말을 하더라도 맘에 두지 마시옵소서"
레폴트가 황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게 말했다. 황태자와 노인이 알겟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폴트의 고개가 올려질쯤 막사 안으로 자신의 몸을 온통 흑색 무구로 두른 제이슨이 천천히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제이슨이 황태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팔을 가슴에 붙이고 고개를 숙여 군례를 올렸다.
"호? 제법 호기있게 생겼구려?"
황태자가 레폴트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레폴트가 살짝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천천히 일어나는 레폴트를 향해 황태자의 곁에 서 있는 노인을 가르켰다.
"이분에게도 인사드려라. 이분은 제국 삼공 중 하나이신 듀코브니 대공이시다."
제이슨이 레폴트의 말에 몸을 일으켜 다시 군례를 드렸다. 노인이 기꺼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과연 무장의 기개가 엿보이는 인재로군요."
"과찬이십니다."
제이슨이 고개를 숙인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듀코브니가 제이슨에게 빌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는 방금 일어난 저 전투를 어떻게 보았는가?"
제이슨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전투라 하시면?"
듀코브니가 살짝 몸을 돌려 평원을 보였다. 어느새 전장은 얼추 정리가 끝나고 기사단은 아하루의 용병단을 견제하며 새로운 제 3진을 향해 돌격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수아비 용병단도 그런 기사단에 맞추어 천천히 진을 이룬채 뒤로 주츰 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전투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제이슨이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방적인 학살입니다. 기병이 보병을 학살하기 위한 전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런"
누군가 제이슨의 말이 끝나자 경호성을 내뱉었으나 듀코브니가 고개를 재빨리 그곳으로 돌리자 이내 침묵으로 되돌아갔다.
노인이 다시 제이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얇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이 전투는 원래 기병에 의한 보병의 학살이겠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기사단에 의한 평민인 용병단의 학살이기도 하고 말일세"
노인의 말에 좌중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노인이 그런 고요함에 기분 좋은 듯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가 묻는 것은 그러한 학살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방금 전 벌어진 보병들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네"
"저 전투라면 그다지 할 말은 없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특수한 전투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건가?"
듀코브니가 그렇게 묻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답변은 드릴 수 없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호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기 케인즈 경은 단번에 저 용병단을 훼파할 작전을 생각해 내셨던데?"
듀코브니가 그렇게 놀리듯 말했다. 제이슨이 케인즈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게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얼굴로 돌아갔다.
"글세요? 케인즈경이야 저보다 뛰어난 전략가시니 제가 뭐라고 할 말은 없군요. 하지만 일반 전투라면 저도 꽤나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것입니다."
"그래?"
듀코브니가 잠시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내 눈빛은 사라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과 같군 그래?"
이번엔 제이슨이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설마하니 누가 감히 대공 각하의 철벽의 기사단들에게 피해를 주겠습니까?"
레폴트가 그렇게 말했다. 듀코브니도 그런 레폴트의 웃음에 같이 따라 웃었다.
"하하하 모를 일이지요."
"하하하 그럼 제 휘하 기사단은 아예 박살이 나겟군요?"
"오우 그럼 제 기사단은 아마 흔적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보다 더 불쌍한 것은 칼리나 대공이겟죠. 그 휘하 기사단은 아예 가루가 될테니 말입니다."
귀족들이 이때다 기회를 잡았는지 일제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됐다 그만 물러나라"
레폴트가 그런 다시금 떠들썩한 분위기에 재빨리 제이슨을 향해 말했다. 제이슨이 레폴트의 말에 다시금 황태자와 듀코브니에게 군례를 올렸다.
이미 황태자의 관심은 제이슨에게 멀어졌는지 제이슨의 군례를 보는제 마는체 하고는 손을 들어 물러 나게 했다.
제이슨이 막사 밖으로 물러 나갈 때 문득 듀코브니의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나저나 칼리나도 참 불쌍하오. 저번에 그의 이름을 딴 휘하 공작의 기사단이 해체되더니 이번에 저렇게 개망신을 당하니 말입니다.
여하튼 조만간 발 밑이 무너지면 그 꼴이 더욱 우습게 되겠소이다. 그려"
"하하하 과연 그렇군요?"
"큭큭큭"
듀코브니의 그런 조롱에 따라 다른 귀족들이 웃음이 더욱 크게 높아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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